지구

 

 

 

 가장 먼저 지구를 생각해 볼까. 사람과 동, 식물 같은 목숨 있는 게 사는 곳이다. 지구에 목숨을 가진 게 살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자세한 건 잘 모른다. 오래전에 지구에는 아주 커다란 공룡이 살았다. 사람이 나타나기 전 지구다. 가끔 공룡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그곳에는 식물이 참 많다. 어디든 숲이 우거졌을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육식공룡뿐 아니라 초식공룡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공룡이 사라진 건 정말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설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언젠가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가 더 걱정이다. 지진, 태풍…….

 

 인류는 지금 바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만약 떠난다면 사람만 갈까. 책이나 영화에 나온 것처럼 다른 생물도 가져가야 할 듯하다. 그러면 우주선이 아주 커야겠다. 어쩐지 지금은 지구 자체가 우주선 같기도 하다. 사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고 늘 같은 곳을 돌지만. 지구를 좀더 생각하고 지구환경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 작은 일 하나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일회용품 덜 쓰기.

 

 

 

 

 

 

 

 

 신비로운 달이지만 이걸 과학으로만 보면 재미없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구나. 난 둥근달보다 아직 다 차지 않은 초생달이 좋다. 달력을 잘 보고 달이 차려는 건지 기우는 건지 잘 알아봐야겠구나. 기우는 건 기우는 것대로 괜찮다. 본래 우주가 그렇기는 하다.

 

 달에 토끼가 있다고 생각한 건 동양뿐일까. 서양은 달에 뭐가 있다고 상상했을까. 달의 여신, 이 말을 하니 세일러문이 생각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한다. 달의 뒷면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달의 뒷면을 상상하고 소설을 쓰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다니. 달의 뒷면 한번 봤는데 그렇게 멋지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걸.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누군가 말하지 않는 일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낫다. 아니 알아야 할 것과 그대로 둬야 할 것을 알아야겠구나. 어렵다.

 

 

 

 

 

 

 

 

 해는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빛이 지구에 닿는다. 아니 지금 거리가 가장 적당하다. 해와 지구 사이가 지금보다 더 가깝거나 더 멀었다면 지구에 목숨 있는 게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다른 별에 나타났을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난 몰랐겠구나. 아예 내가 없었을 테니 이런 생각 자체가 없었겠다. 어쩌면 해처럼 불 타는 별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은하를 벗어나면 해와 같은 게 또 있어서 어딘가에는 생물이 살지도. 있다면 그쪽은 그쪽대로 살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딱 맞는 거리를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도 딱 맞는 거리를 지키면 훨씬 좋겠다 싶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언젠나 거리 조절을 하려고 애써야겠지.

 

 

 

 ☆

 

 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있는데 겨우 지구 달 해만 말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 지구는 목숨 있는 게 사는 곳이고 달과 해는 지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싶다.

 

 

 

 지구 : 달아, 해야 늘 거기 있어서 고마워.

 

 달 : 지구야, 그건 니가 거기 있어서야.

 

 해 : 난 지구 너랑 먼 곳에 있지만 언제나 널 생각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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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좋아한 것은

 

 내가 예전에 좋아한 것은 친구랑 놀기. 이건 초등학교 5학년 초까지야. 5학년보다 4학년 때까지라고 해야겠어. 4학년 때 집에 일이 생겨서 그 뒤로 몇해 동안 안 좋았어. 내가 우울함을 느끼게 된 건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어. 아니 그것보다 더 전이었던가. 우울하기는 했지만 책은 못 봤네. 그때 책을 만났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또 이런 말이라니. 지금 생각났는데 어릴 때는 기분 안 좋으면 잤어. 지금이라고 아주 다르지 않지만 책을 봐서 덜 자. 책 보면서 조금 졸기도 하던가.

 

 한 학년 올라간 6학년 땐가는 피아노를 배웠어. 그때가 좋았어. 피아노 오래 배우지 못해서 아쉬워. 그곳은 피아노 학원이라고 할 만한 곳은 아니었어. 가정집을 피아노 가르치는 곳으로 꾸민 것 같아. 그런 곳은 교습소라고 해야 할까. 거기 이름이 뭐였는지 잊어버렸군. 그 집 대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은 피아노방이고 오른쪽은 선생님 집이었어. 피아노가 놓인 방은 세갠가, 네갠가, 세개가 맞는 것 같아.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이 희미한데, 학생이 연습하는 피아노방은 두개였던 것 같아. 두번째 방에는 피아노가 두대고, 세번째 방에는 한대로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 내가 주로 연습한 곳은 어딜까, 두번째 방이야. 나만 그런 건 아니었겠군.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연습 못해서 책을 거기 두고 다녔는데, 누군가 내 책에 낙서를 한 적이 있어. 그때 기분 별로 좋지 않았어.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은 하루에 한시간쯤이었어. 한시간쯤이 되면 선생님이 첫번째 방으로 불러서 연습한 거 치라고 했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지, 처음에는 건반이 어떤지 가르치고 쳐 보게 했어. 초등학교 6학년은 학교에서 음악을 배워서 악보 계이름 알아서 조금만 알려주면 혼자서도 칠 수 있겠지. 혼자 연습하는 건 재미있는데 선생님 옆에서 치는 건 참 어색했어. 다행하게도 피아노 못 친다는 말은 듣지 않았어.

 

 내가 피아노를 배운 건 겨우 몇달이야. 한해도 아니고, 한해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거기 그만두고는 다시 가 본 적 없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고등학생 때 피아노 교습소 선생님이 같은 반 아이 엄마라는 거 알았어. 그 애하고 아주 친하지는 않았어. 그 애는 쌍둥이로 다른 한 사람은 다른 학교에 다니고 집안 형제가 다 악기했던 것 같아. 그 애는 바이올린을 했어. 피아노도 칠 수 있었겠지. 내가 피아노 배우러 다닐 때 어쩌면 그 애가 집에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고등학생 때 한번 찾아가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지금 들어. 이젠 시간이 더 많이 흘렀군.

 

 말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보다 아쉬운 것이 됐네. 내가 노래를 좋아해서 악기에도 관심을 가졌던 걸까. 지금도 악기에서 피아노를 가장 좋아해. 다른 것도 듣고 그것도 한번 써 보면 괜찮을 텐데. 바이올린에 조금 관심 가진 적 있기는 해. 언젠가 이야기를 쓴다면 저주받은 바이올린……,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바이올린도 괜찮고 첼로도 괜찮아. 음악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거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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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서늘하기보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고 해야겠지요. 가을이 깊어가고 시월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마지막 날이네요). 십일월도 가을인데 이상하게 십일월부터 겨울이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첫눈이 십일월에 와설지도. 아니 십일월은 쓸쓸한 달입니다. 한해 마지막 달 십이월보다. 어쩌면 지금 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가면 나아질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십일월에 은행잎이 많이 떨어진 길을 걸었는데 그때 기분 별로였습니다. 그런 것을 좋게 여길 수도 있어야 할 텐데,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건 끝이 아니고 다음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나무는 겨울이라고 해서 쉬지 않습니다. 나무가 잠시라도 쉴 때 있을까요. 우리 몸속 세포나 미생물도 쉬지 않고 움직이죠. 그게 살아있기에 우리가 있는 겁니다. 쓸쓸함에 빠지지 않아야 할 텐데.

 

 이번 악스트는 다른 때보다 두꺼워요. 무엇 때문인가 보니 장편소설이 다섯편이나 실렸더군요. 연재소설도 재미있게 보면 좋을 텐데 앞에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을때가 많고 집중도 잘 안 됩니다. 집중 못하는 건 제 탓일지도. 날마다 읽는 건 어떨까요. 저는 읽어본 적 없지만 예전에는 신문에 장편소설이 실리기도 했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했던 건 그때는 문예지가 많지 않아서였을지도. 이제는 사라지는 문예지도 있지만, 예전보다 문예지가 많고 인터넷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건 바로 반응을 알 수 있겠군요. 그게 소설가한테 힘이 될지. 힘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연재소설을 찾아서 읽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한번도 안 본 건 아니예요.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인터넷 연재여도 날마다 하지 않고 한주에 두번 정도군요. 인터넷에 연재한 게 책으로 나오면 작가는 기쁘겠습니다. 악스트에 실린 장편소설 이야기하다 다른 길로 빠졌군요. 이 정도만 말해야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미움이나 복수도 있을 테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하는 것도 넣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 있잖아요. 누군가한테 시달리는 사람도 그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겠지요. 피하면 되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장애물을 없애려고 사람을 죽였다 하면 그 사람을 미쳤다 할지도 모르겠네요. 장애물이라 해서 그렇군요. 오래전에 왕은 별거 아닌 걸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꾸 자기 앞에 나타나고 자신을 힘들게 하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그 사람을 죽이거나 자신을 죽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흐르지 않으면 좋을 텐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는 겁니다. 그것도 자신이 편하고 싶어서겠지요. 살아서 편해지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죽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 할 수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밑을 보면 떨어지고 싶잖아요. 저는 그렇던데. 어쩌면 그건 중력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중력이 죽음을 부추기는 건지. 거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높은 곳에는 가지 않아야 합니다. 다리 위도 마찬가집니다. 높은 곳에 가더라도 밑을 오래 보지 않으면 괜찮겠네요.

 

 앞에서 좀 어두운 말을 했습니다. 악스트 열쇠말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살해)’여서. 이것은 추리소설에만 나오는 게 아니기도 하군요.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에는 몸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을 죽일 수도 있더군요. 그건 하려고 해서 한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지도. 폭력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말로 하는 폭력도 있지요. 그걸 하는 사람은 당하는 사람이 어떤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폭력은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신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대단합니다. 저는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그걸 끊으려 애쓰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네요.

 

 황정은 소설 중편 <웃는 남자>는 단편 <웃는 남자>와 또 다른 단편 다음이더군요. 하나가 더 있었다니. 저는 단편 <웃는 남자>밖에 못 읽어봤어요. 나중에 세편을 함께 묶은 책을 내도 괜찮겠네요. 황정은은 자신이 첫째여서 동생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소설가여서 그런 걸 깨달은 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읽어도 조금 알겠군요. 첫째는 동생한테 시키는 거 잘하지 않나요. 둘째는 자기 물건에 조금 집착하고. 부모가 아이를 똑같이 대하려 해도 잘 안 될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섭섭하게 생각해도 자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지요. 세상에 나이를 먹고 철드는 사람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다들 어른인 척하는 거겠지요. 이렇게 생각해도 저한테 어른은 늘 어른입니다.

 

 책이 두껍다 해도 읽다보면 끝납니다. 삶도 그렇군요. 살다보면 끝나겠지요.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려 다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사람 삶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거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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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자전거 타기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사람한테는 그런 거 많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닦기, 이런 건 어릴 때 배우고 익혀서 몸이 기억하잖아요. 날마다 되풀이하는 건 거의 그렇겠군요. 신기하게도 자전거는 오래 타지 않아도 탈 수 있어요.

 

 제가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탄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예요. 집에 그렇게 크지 않은 자전거가 있어서 혼자 연습했습니다. 자전거는 뒤에서 누가 잡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저는 혼자 탔군요. 처음에는 넘어지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에 자전거를 타 본 것 같기도 한데 누가 저를 태우고 자전거를 움직인 것 같아요. 희미한 기억이군요.

 

 달리기는 조금 하면 숨이 많이 찹니다. 저는 달리기보다 걷기가 좋아요. 달리지 않고도 달리는 느낌을 느끼고 싶을 때는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사람이 걷는 길을 자전거가 빨리 달리면 무서워요. 자전거길과 사람이 걷는 길이 같다니. 그렇다고 찻길에서 타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좁고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서는 자전거 천천히 몰면 좋겠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이라 했는데 그런 건 말하지 못했네요. 사실 그건 설명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자전거에 타고 중심을 잘 잡고 발로 페달을 돌리면 앞으로 나가요. 자전거는 페달로 빠르기를 조절합니다. 페달을 천천히 조금 돌리면 천천히 달리고 빨리 많이 돌리면 빨리 달려요. 페달을 빨리 돌리고 발을 쉬어도 관성으로 앞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물리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전거 타고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기분도 좋습니다.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심잡기예요. 이걸 할 수 있으려면 몇번 넘어져봐야 합니다.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면 좋습니다.

 

 앞에서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자전거 타기는 하루면 익힐 수 있습니다(운동신경이 안 좋은 사람은 좀 어려울까요). 일상생활에서 하는 건 빼고, 한번 배우면 잊지 않고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거 얼마 없잖아요. 자전거는 무엇보다 환경에 좋습니다. 다른 연료가 쓰이지 않고 발로 페달을 돌리면 바퀴가 굴러갑니다. 날씨 좋고 쉬는 날 자전거 한번 타 보면 어떨까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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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난 아무소리도 내지 못했다. 언젠가 많은 사람이 나를 옮겨서 이곳에 두었다. 여기 오기 전에 난 멋진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내 둘레에 서서 노래했다. 노래하는 사람들 얼굴은 즐거워 보였는데 왜 나를 이렇게 어두운 곳에 두고 갔을까.

 

 혹시 그 일 때문일까.

 

 난 스스로 건반을 움직일 수 있다. 새로운 집으로 옮기고는 그것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아기한테 한번 보여줬다. 내가 건반은 움직여도 건반 뚜껑은 열 수 없다. 건반 뚜껑을 연 건 그 집 아기였다. 아기는 무슨 힘으로 뚜껑을 열었을까. 아기는 침대에서 나를 보고는 입으로 뭐라고 웅얼웅얼했다. 아기가 그렇게 하자 건반 뚜껑이 열렸다. 그때 내가 건반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아기가 자기 힘으로 건반을 눌러 소리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보다 내가 먼저 건반을 움직여 소리를 내자 아기가 손뼉을 치고 웃었다.

 

 이곳으로 나를 옮긴 그날은 많은 사람이 집에 찾아와 아기한테 축하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날은 아기가 태어나고 한해가 되는 날이었던가 보다. 사람은 한해에 한번씩 자신이 태어난 날을 축하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엄마와 아빠가 축하하는 걸 봤다.

 

 아기 엄마가 건반 뚜껑을 열고 생일 축하 노래를 쳤다. 거기 모여 있던 사람은 아기를 둘러싸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아기 엄마가 아기를 안으려고 나를 떠나자, 나도 아기를 축하하려고 건반을 움직였다. 그건 내가 부르는 노래다. 내 노래가 끝난 순간 모두의 눈이 나를 보았다. 곧 누군가 소리쳤다.

 

 “피아노가 저절로 소리를 내다니. 귀신들렸다는 소문 정말인가봐.”

 

 그 말을 듣고 난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소리를 내면 귀신 들렸다고 하고는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사실 이렇게 어두운 곳에 있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난 그집 아기하고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창이는 잘 지낼까.

 

 창이 집을 떠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바깥에서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나고는 창고문이 열렸다. 귀신들린 다른 물건이라도 두러 온 건가 했다. 이곳은 스스로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악기나 물건이 많았다. 곧 몇사람 발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그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했어요.”

 

 “네. 자신은 귀신들린 피아노가 좋다고.”

 

 가끔 내 소문을 듣고 나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호기심으로 그런 거였다. 그런 사람 집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런 사람은 건반 뚜껑도 열지 않고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지 않는다고 나를 떠나 보냈다.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가 보다.

 

 여러 사람이 힘을 써서 나를 어떤 집으로 옮겼다. 사람이 내 자리를 잡아주자 바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야, 오랜만이야. 나야, 창이.”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처음 온 곳이 아닌 것 같았다. 난 창이 집으로 돌아왔다. 창이는 아기였을 때 일을 잊지 않았나보다. 건반 뚜껑이 열렸다면 대답 대신 노래라도 했을 텐데. 앞으로는 창이 손가락이 건반을 눌러 내가 노래하게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언젠가 창이가 바란다면 내 노래를 들려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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