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95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평점 :
시인 임솔아는 시 쓰고 소설을 쓴다니 어쩐지 부럽네. 소설은 아직 못 만났지만,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 임솔아 시집을 보고 생각한 건, 여전히 시를 잘 모르겠다야. 잘 못 알아듣는 내가 문제겠지. 어떤 시는 보다보면 영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게 뚝 끊기기도 해. 문득 이런 거 자주 본다는 걸 깨달았어. 그건 꿈이야. 꿈에서는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정신없기도 하잖아. 그렇다고 그게 아주 상관없는 건 아니기도 하지. 이렇게 말해도 난 내 꿈이 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어떤 때는 꿈이 잘 생각나지만 어떤 때는 꿈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좋은 꿈 꾼 것 같은 날도. 그땐 좀 아쉬워. 다른 거 하는데 꿈속 장면이 떠오를 때도 있어. 아침에 꾼 꿈이 밤에 갑자기 생각나는 거지. 그냥 그뿐이야. 그걸 떠올린다고 무언가를 알지도 않고 선명하게 떠오르지도 않아. 꿈은 그래도 시는 바로 사라지지 않겠군.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
.
.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모래>에서, 1연과 9연 10~11쪽)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는 말을 보니, 자신 안에 자신이 아주 많다고 한 말이 떠올랐어. 그런 뜻으로 쓴 걸지. 자신 안에 자신이 많으면 더 괴로울까. 남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하는데. 자신 안에 자신이 많다는 건 자신만 힘들다 생각하는 것인지. 그게 그렇게 나쁠까. 이런 말은 시집하고 하나도 상관없군.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는 해. 어떤 때는 좋은 말이 좋게 들리지만 어떤 때는 좋은 말이 거짓처럼 들리기도 해. 거짓처럼 들리는 건 내 마음이 안 좋아서 그런 거겠지. 뭐든 좋게 보려고 하면 다 좋게 보이고 안 좋게 보려고 하면 다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언제나 좋게 보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끔 어우둔 내가 내 마음속에서 속삭여.
살의를 느꼈나요? 기자는 물었다. 필리핀의 열두 살 킬러는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저었다.
동생들이 굶고 있어서요, 방아쇠만 당겼을 뿐인데요.
미안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도 식구가 있었을 텐데.
제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돈을 받았을 테죠. (<살의를 느꼈나요>에서, 70~71쪽)
문을 열어둔 가게에 쥐가 들어왔어. ‘나’는 쥐를 잡으려 하지만 쉽지 않아. ‘나’는 쥐를 보면 죽여야겠다 생각해. 이렇게 이어지는 시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어. 열두 살 아이가 사람을 죽인. 그 아이는 동생이 굶어서 그랬다고 하는군. 이건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어린이가 전쟁을 하다니.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할 텐데, 어릴 때부터 전쟁을 알면 사람 목숨이 소중하다는 걸 모를지도 모르겠어. 아무리 살의가 없다 해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여도 괜찮을지. 이거 조금 슬픈 이야기군. 나중에 ‘나’는 쥐를 잡았을까. 아니 잡기보다 죽였을지도.
시 여러 편에 개 이야기가 담겼어. 임솔아는 개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기르던 개가 죽은 적도 있는 듯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그때 무척 슬플 거야. 시에서 말하는 개는 한마리일지 여러 마리일지. 어떤 때는 주인 없는 개를 만나기도 해. 그 개를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을지. 여기에는 나중에 어떻께 됐을지 알고 싶은 시가 여러 편 있어. 그런 건 시를 보는 사람이 상상해야 하는 건가. 제목이 <아홉 살>인 시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홉 살 아이가 개미를 죽이는 게 떠오르기도 했어. 마지막은 현실 같았어. “미안하지가 않다. /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 (<아홉 살>에서, 43쪽)” 이런 일 정말 있지. 사람은 재해를 당하면 힘들어도 다시 살려 하잖아. 그런 게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막을 수 있는 일도 있을 텐데.
여기 실린 시는 여러 번 봐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해. 다는 아니고 조금이야. 어떤 시든 한번보다 여러 번 만나면 더 좋겠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