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꿈을 꾼 사람한테는 거의 ‘꿈은 반대라잖아’ 말하곤 하지. 꿈이란 건 정말 뭘까.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꿈을 잘 보면 자신을 알 수 있다고도 하는데. 나도 꿈을 잊어버리지 않아야겠다 한 적 있는데 그러다 말았어. 사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그것보다 내 마음이 다른 데 관심을 가져서일지도 모르겠군. 변덕스러운 내 마음. 본래 마음은 그런 것이기도 하지.

 

 난 처음 간 곳이어도 길을 잃지 않아. 그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는군. 처음 간 곳은 잘 몰라서 오래 걸어. 시간 걸려서라도 내가 가려던 곳에 가. 하지만 꿈속에서는 늘 길을 잃어. 대체 왜 그럴까. 정말 그것만은 현실과 반대군. 며칠전 꿈속에서도 집에 가려고 했는데, 난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이상한 곳을 걸었어. 꿈속에서는 그럴 때 무섭기도 해. 현실에서라고 아주 다르지 않기는 하지만. 언젠가 꿈을 꾸면서도 그게 꿈이라는 걸 알 때가 있다고 했는데, 길을 잃었을 때는 그렇지도 않아.

 

 지금은 버스를 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버스를 잘못 타서 오래 걸은 적 있어. 이건 꿈속에서도 그래. 그때는 버스를 잘못 탄 건지,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한 건지. 비슷한 꿈을 여러 번 꾸기도 하잖아. 아주 똑같은 건 아니지만. 버스 잘못 타거나 잘못 내리는 꿈도 가끔 꿔.

 

 몇해 전에는 학생으로 돌아가 시험 보는 꿈을 자주 꿨어. 이런 꿈은 학생 때도 꾸지 않았는데. 꿈에서 다른 사람은 시험 문제를 잘 푸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거야. 시간은 자꾸 가는데 문제를 못 풀어서 어떻게 하나 했어. 어쩌면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지도 몰라. 꿈에서는 참 길게도 느껴지는데. 괴로움에 빠졌다가 잠을 깨고는 ‘꿈이었구나’ 했어.

 

 지금까지 난 즐거운 꿈 별로 못 꾼 것 같아. 소설에서는 꿈을 뚜렷하게 적기도 하는데. 실제 그런 식으로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 난 늘 꿈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져. 한번은 꿈을 이어서 꾸려고 한 적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 무슨 꿈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아. 선잠에 들면 가위에 잘 눌렸어. 이런저런 걱정을 할 때도 그랬지만. 요새는 선잠을 거의 안 자서 괜찮아.

 

 누군가는 꿈이 있어서 꿈을 꾼다고도 하더군. 나도 꿈꾸는 거 좋아. 멋짓 꿈 한번 꿔 보고 싶지만 이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 꿈꾸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여겨야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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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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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국 단편소설을 만나다 보니 다른 걸 더 봐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봐도, 끝까지 보고 나면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진영 소설은 이걸로 세번째네요(6월에 새로운 소설 나왔군요). 그래도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책이길래 봤습니다. 두번째 《구의 증명》도 어쩌다 보니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한번 볼까 하고 본 거예요. 이게 세번째 책이더군요. 그래선지 마지막 소설 <팽이>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 이름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소설 거의 잊어버렸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저도 왜 그게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단편에 그런 게 자주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편소설에 근친상간이 나오기도 했지요. 어쩌면 생각뿐이었을지도. 이것도 제가 그런 소설을 만났는지, 아니면 그런 말만 본 건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팽이>를 보니 그 말이 잠깐 생각났어요. 그렇다 해도 분위기뿐이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 단 둘이 작은 방에서 살면 그럴 수도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애틋하기도 한데, 오빠가 동생 재이를 잘 보살핍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요. 오빠가 먼저 작은 방을 떠납니다. 재이와 함께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한 건지도.

 

 갑자기 일본 만화영화 <반딧불이 무덤>이 떠오르는군요. 전쟁이 일어나고 부모가 죽고 오빠와 여동생은 친척집에 살았는데 공습이 일어나고 그 집도 타요. 그 뒤 오빠가 여동생을 잘 돌보지만 동생은 병으로 죽어요. 혹시 병은 방사능 피폭이었을까요. 좀 오래전에 봐서 그런 건 생각도 못하고 그냥 동생이 병에 걸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맨 처음에 오빠도 죽은 걸로 나오는가봐요. 죽은 사람으로 나와서 예전 일을 떠올렸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팽이>하고는 좀 다르지만 오빠와 여동생이 나와서. 여기 실린 소설은 어둡지만 어둡지 않게 말해요. 그저 제 느낌이지만. 소설은 늘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끝없이 어두운 것도 있지만. <월드빌 401호>가 그렇군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서야 종철은 문 밖으로 나옵니다.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엘리>나 <새끼, 자라다>는 잘 모르겠습니다. <엘리>에 나온 코끼리(엘리)는 다른 것을 나타내는 걸까요. 이루기 어려운 꿈. 그걸 보면서 저한테도 그런 코끼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걸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식구)은 한심하게 보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끼, 자라다>에는 사막에서 낙타가 낳은 자라 새끼 펭귄 새끼 그리고 낙타 새끼를 잡아먹는 사마귀가 나와요. 펭귄 새끼는 자신의 조상이 살던 곳을 찾으려 하지만 사마귀한테 눈을 먹히고는 이상해져요. 사막이라는 건 어떤 커다란 세상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거기에 묻히고 마는. 이건 개미지옥이네요.

 

 돈 앞에서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 있을까요.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길에 떨어진 돈을 보고 학교에서 배운 게 생각났어요. 길에 떨어진 돈은 주인을 찾아주거나 그냥 그곳에 두라는 말이. 저는 그 말대로 돈을 줍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뒀습니다. 그때 뒤에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이 그 돈을 주웠어요. 제가 그렇게 한 건 그때 한번입니다. 그 뒤부터는 길에 떨어진 돈 주웠어요. 아주 많이 주운 건 아니지만, 그런 건 주인 찾아주기 힘들잖아요. <돈가방>에는 적은 돈이 아니고 3억이나 들어있었습니다. 형제 부부는 부모 산소에 가서 돈가방을 주워요. 형은 동생과 둘이 절반으로 나누자고 하고, 동생은 거기에 없는 동생한테도 나눠주자고 해요. 그러다 형이 사업이 잘 안 된다 하고 보름 뒤에 동생한테 반을 준다고 하니, 동생은 그러자고 하지요. 동생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동생 아내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어쨌든 형 부부가 돈가방을 가져가지만, 며칠 뒤 동생한테 전화해서는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해요. 저는 그 말 거짓말 아닐까 했는데,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나옵니다. 반전일지도. 그런 돈 꺼림칙해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소설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해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저도 욕심낼지도. <남편>은 여학생 강간살인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간 남편을 아내도 조금씩 의심하는 이야깁니다. 아내는 남편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꾸 안 좋은 말을 하니, 남편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요. 그런 일 그렇게 쉽게 둘레 사람한테 알려질까요. 범인으로 잡힌 것도 아닌데. “의심은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진실을 만든다. (47쪽)”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한테 둘레 사람은 더 좋은 데 들어가라고 말하기도 할까요. <어디쯤>은 ‘나’가 아버지가 한번 가 보라고 한 곳에 가다 길을 잃는 이야깁니다.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괜찮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던 건지. 어머니는 ‘나’가 공무원시험준비를 한다 생각하고 아버지는 어떤 곳에 찾아가면 ‘나’를 알아봐줄거다 해요. ‘나’는 아버지가 써준 곳에 가려 했는데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게 됩니다. 이건 갇힌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있기도 해요.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학교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그런 거 하던 사람이 일터에서도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창>이 그런 이야기예요. ‘나’는 지금 일하는 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했어요. 꼭 그렇게 할 건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 일터에도 누군가를 따돌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런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한테 안 좋은 짓을 하면 그게 자신한테 돌아온다고 하잖아요.

 

 앞에 것으로 끝이다 생각했는데 <주단>과 <첫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사랑>은 짧게 말하면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주단>이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건 이름입니다. 쌍둥이 형제 주와 단이에요. 쌍둥이지만 단은 갈수록 근육이 약해져서 일찍 죽는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아픈 아이한테 마음을 더 쓰기도 하죠. 주는 그게 마음 아파서 그런 건지 가끔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건 주 자신이 그렇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어린이는 싫은 일은 잊기도 한다잖아요. 주는 자신만 건강해서 단한테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단은 아파서 힘들었겠지만 주는 주대로 힘들었겠지요. 주가 다른 사람한테는 단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이어서 괜찮았겠지요. 쌍둥이여서 통하는 것도 많았을 겁니다. 저는 그저 두 사람을 보는 것밖에 못했네요.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단>뿐 아니라 다른 소설도 다르지 않겠지요.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는 게 소설읽깁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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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컴퓨터를 그렇게 빨리 쓰지 않았다. 인터넷이 생기고서야 조금 쓰게 됐다. 그래도 그게 벌써 열해가 넘었다(정확하지 않게 말하다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언제나 새 것이 아닌 헌 거다. 그게 안 좋은 건 아니다. 형편이 그러니 어쩔 수 없고 컴퓨터를 쓸 수 있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컴퓨터를 처음 썼을 때 나온 모니터는 뒤가 튀어나와서 크고 무거웠다. 그때 그것을 보고 저것도 언젠가 얇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그런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얇은 게 나왔다. 하지만 난 그거 쓰고 싶지 않았다. 우체국에서 그런 걸 잠깐 써 봤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니터는 처음에 15인치를 쓰다가 그게 고장나고 못 쓰게 되고는 17인치 중고모니터를 샀다. 그걸로 바꿨을 때는 글자가 조금 크게 보인 것 말고는 안 좋은 점 없었다. 그걸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랐다.

 

 며칠 전에 컴퓨터 모니터가 켜지지 않았다. 몇달 전부터 조금 이상한 점이 나타나기는 했다. 모니터가 잘 켜지지 않거나 가끔 모니터가 어두웠다. 그건 모니터에 불이 덜 들어온 느낌이다. 어두운 건 컴퓨터를 껐다 켜면 괜찮았다. 컴퓨터 모니터가 아주 켜지지 않은 하루 전날에는 모니터가 켜질 때까지 10분이나 걸렸다. 그렇게 켜진 모니터 끄지 않고 둘걸 하는 생각을 다음날 밤에 했다. 내가 컴퓨터를 켜는 때가 거의 밤이어서 이상이 생긴 건 밤에 안다. 모니터는 전날 조짐이 보였구나.

 

 지금까지 쓰던 모니터는 이제 나오지 않는 거다. 그래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중고가 남아있을까. 내가 그런 걸 찾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어서 그냥 컴퓨터 가게 사람이 보여준 걸 샀다. 이번에도 중고로. 많은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 얇은 거 쓸 때 난 쓰지 않고 늦게야 쓰게 됐다. 그것도 4 : 3이다. 가벼워서 들고 오는 건 힘들지 않았지만, 써 보니 마음에 안 든다. 난 17인치가 있었으면 했는데, 먼저 쓴 것보다 2인치 크고 모니터가 좀 밝다. 예전 것은 색이 진했다. 지금 건 글자를 가까이에서 보면 모눈종이에 쓴 것처럼 보인다. 무척 가까이에서 봐서 그런 거겠지만. 이걸 어쩌나 싶다. 이것도 쓰다보면 익숙해질까.

 

 어쩐지 지금은 컴퓨터 모니터가 글쓰기보다 영상 보기에 좋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크기도 그렇고. 글 쓰는 데는 모니터 큰 게 더 안 좋지 않나 싶다. 얇아도 예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모니터가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건 비싸겠지. 노트북컴퓨터는 좀 괜찮을까.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쓰기에 편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사라지는 건 크고 무거운 컴퓨터 모니터만이 아니다. 처음 나오고 오래 나오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대로인 것보다 없어지는 게 더 많다. 사람이 찾지 않으면 그렇게 되겠다. 바뀌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문젤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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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사이에 제가 사는 곳에 도서관이 여러 곳 생겼지만, 다른 곳은 좀 멀어서 가기 어려워요. 만약 빌릴 수 있는 책이 세권보다 많다면 조금 멀어도 다른 곳에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 두 곳에서 책을 빌려도 모두 세권밖에 빌릴 수 없어요. 한곳에서 두권 빌리면 다른 곳에서는 한권 빌려야 하는 거죠. 이제 도서관이 여러 곳 생겼으니 한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이 다섯권쯤 되면 좋을 텐데요. 지난해 팔월부턴가는 달마다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두배로 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날이 ‘문화의 날’ 이라더군요. 책을 많이 빌려도 빌리는 기간은 똑같아요. 제가 책을 많이 빌리면 기간 안에 다 못 읽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 적당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25분쯤 걸리고 좀 빨리 걸으면 20분 걸려요. 20분으로 줄이려면 다른 거 안 보고 도서관에 가는 것 하나만 해야 합니다. 제가 가면서 이것저것 많이 보지는 않아요. 길을 건너거나 신호등 앞에 서면 나무를 보거나 하늘이나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조금 쓸데없는 생각도 해요. 가끔 맞은편에 선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이 저한테 말을 하기도 하더군요. 왜 그러는지. 지금까지 한 두세번이었습니다. 요새는 사람 안 보고 먼 곳을 봐요. 제가 좀 멍하게 있으면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서 나갈 때 준비하는 건 별로 없어요. 다 읽은 책을 가방에 넣고 나가요. 밖에 나가면 여름에는 덥지만 다른 때는 조금 추워요. 처음 느낌은 그런데 걸으면 춥지 않아요. 움직여서 그렇겠습니다. 도서관까지 횡단보도는 네개고 거기에서 두곳에 신호등이 있어요.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 우체국 은행 아파트가 늘어섰어요. 이런 건 별나지 않군요. 초등학교도 있네요. 점심시간이 가까울 때 가면 음식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제가 냄새만 맡고 ‘오늘 점심은 뭐구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학생수는 줄어든다는데 제가 사는 곳 둘레에는 초등학교가 여러 곳 있어요. 지금 세어보니 네곳입니다. 아파트가 많아서 그럴까요.

 

 제가 도서관에 걸어가는 길은 늘 똑같아요.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을 텐데 늘 같은 길로만 다닙니다. 자주 봐서 같아 보여도 늘 같지는 않겠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는 아니지만 도서관에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옆을 지날 때가 좋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있어서 꽃을 볼 수 있거든요. 얼마전에 알았는데 어떤 길은 찻길을 조금 넓히고 거기 있던 나무를 없앴더군요. 나무가 더 있어야 하는데 없애다니.

 

 별거 없는 이야기네요. 무언가 하나 인상깊은 것을 말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그래도 도서관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해서 좋고 나무나 꽃을 만나서 좋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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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 네다섯해쯤 살던 곳은 시골로 집 둘레는 논이 펼쳐졌다. 동네가 그리 크지 않고 그곳과 다른 곳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았다. 큰 마을이 아니어도 거기 사는 사람을 다 알고 지내지는 못했다. 어려서 그랬겠지. 다행하게도 가까운 곳에 친구가 둘이나 있었다. 나중에는 우리 셋보다 한살 어린 아이가 살게 되고 함께 놀았다.

 

 친구 둘은 나이가 같았는데 하나는 한 학년 위였다. 초등학교 1, 2학년까지는 그냥 친구로 지냈는데 3학년인가 4학년 때부턴가는 자신이 한 학년 위니 언니라고 하라는 거다. 그걸 그 친구가 생각한 건지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다른 친구는 먼저 언니라고 했다. 난 왜 그래야 하지 했는데, 얼마 뒤 나도 언니라고 한 것 같다. 그 친구 둘이 가끔 나를 따돌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친구는 그 일 기억할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친구와 제대로 말 못한 것 같다. 그때는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아서 주소를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구나. 중학생 때 편지로라도 연락했다면 좋았을 텐데. 고등학생이 되고 한 학년 위인 친구가 나한테 편지를 썼다.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 한 학년 위였다.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가 달랐다. 고등학생 때는 두 친구와 편지를 나누었다.

 

 고등학생 때 난 좀 웃겼다. 어렸을 때는 나이 같은데 왜 언니라고 해야 해, 했으면서 고등학생 때는 언니라고 했다. 편지로. 어쩌면 같은 학교 선배여서 그랬던 건지도. 같은 학교여도 학년이 달라서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런저런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고등학교 마치고는 다시 친구라고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 만났을 때부터 친구라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더 편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둘 다 연락이 끊겼다. 한 친구는 몇해 전까지 편지를 나누었는데, 답장이 없어서 나도 쓰지 않게 되었다. 친구가 나한테 편지 쓰지 않아도 나는 가끔 편지 쓸걸 그랬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해도 친구가 잘 지냈으면 한다. 어릴 적 친구 둘뿐 아니라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 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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