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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국 단편소설을 만나다 보니 다른 걸 더 봐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봐도, 끝까지 보고 나면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진영 소설은 이걸로 세번째네요(6월에 새로운 소설 나왔군요). 그래도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책이길래 봤습니다. 두번째 《구의 증명》도 어쩌다 보니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한번 볼까 하고 본 거예요. 이게 세번째 책이더군요. 그래선지 마지막 소설 <팽이>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 이름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소설 거의 잊어버렸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저도 왜 그게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단편에 그런 게 자주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편소설에 근친상간이 나오기도 했지요. 어쩌면 생각뿐이었을지도. 이것도 제가 그런 소설을 만났는지, 아니면 그런 말만 본 건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팽이>를 보니 그 말이 잠깐 생각났어요. 그렇다 해도 분위기뿐이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 단 둘이 작은 방에서 살면 그럴 수도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애틋하기도 한데, 오빠가 동생 재이를 잘 보살핍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요. 오빠가 먼저 작은 방을 떠납니다. 재이와 함께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한 건지도.
갑자기 일본 만화영화 <반딧불이 무덤>이 떠오르는군요. 전쟁이 일어나고 부모가 죽고 오빠와 여동생은 친척집에 살았는데 공습이 일어나고 그 집도 타요. 그 뒤 오빠가 여동생을 잘 돌보지만 동생은 병으로 죽어요. 혹시 병은 방사능 피폭이었을까요. 좀 오래전에 봐서 그런 건 생각도 못하고 그냥 동생이 병에 걸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맨 처음에 오빠도 죽은 걸로 나오는가봐요. 죽은 사람으로 나와서 예전 일을 떠올렸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팽이>하고는 좀 다르지만 오빠와 여동생이 나와서. 여기 실린 소설은 어둡지만 어둡지 않게 말해요. 그저 제 느낌이지만. 소설은 늘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끝없이 어두운 것도 있지만. <월드빌 401호>가 그렇군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서야 종철은 문 밖으로 나옵니다.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엘리>나 <새끼, 자라다>는 잘 모르겠습니다. <엘리>에 나온 코끼리(엘리)는 다른 것을 나타내는 걸까요. 이루기 어려운 꿈. 그걸 보면서 저한테도 그런 코끼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걸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식구)은 한심하게 보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끼, 자라다>에는 사막에서 낙타가 낳은 자라 새끼 펭귄 새끼 그리고 낙타 새끼를 잡아먹는 사마귀가 나와요. 펭귄 새끼는 자신의 조상이 살던 곳을 찾으려 하지만 사마귀한테 눈을 먹히고는 이상해져요. 사막이라는 건 어떤 커다란 세상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거기에 묻히고 마는. 이건 개미지옥이네요.
돈 앞에서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 있을까요. 아주 없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길에 떨어진 돈을 보고 학교에서 배운 게 생각났어요. 길에 떨어진 돈은 주인을 찾아주거나 그냥 그곳에 두라는 말이. 저는 그 말대로 돈을 줍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뒀습니다. 그때 뒤에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이 그 돈을 주웠어요. 제가 그렇게 한 건 그때 한번입니다. 그 뒤부터는 길에 떨어진 돈 주웠어요. 아주 많이 주운 건 아니지만, 그런 건 주인 찾아주기 힘들잖아요. <돈가방>에는 적은 돈이 아니고 3억이나 들어있었습니다. 형제 부부는 부모 산소에 가서 돈가방을 주워요. 형은 동생과 둘이 절반으로 나누자고 하고, 동생은 거기에 없는 동생한테도 나눠주자고 해요. 그러다 형이 사업이 잘 안 된다 하고 보름 뒤에 동생한테 반을 준다고 하니, 동생은 그러자고 하지요. 동생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동생 아내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어쨌든 형 부부가 돈가방을 가져가지만, 며칠 뒤 동생한테 전화해서는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해요. 저는 그 말 거짓말 아닐까 했는데,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나옵니다. 반전일지도. 그런 돈 꺼림칙해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소설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해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저도 욕심낼지도. <남편>은 여학생 강간살인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간 남편을 아내도 조금씩 의심하는 이야깁니다. 아내는 남편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꾸 안 좋은 말을 하니, 남편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요. 그런 일 그렇게 쉽게 둘레 사람한테 알려질까요. 범인으로 잡힌 것도 아닌데. “의심은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진실을 만든다. (47쪽)”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한테 둘레 사람은 더 좋은 데 들어가라고 말하기도 할까요. <어디쯤>은 ‘나’가 아버지가 한번 가 보라고 한 곳에 가다 길을 잃는 이야깁니다.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괜찮았는데 어머니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던 건지. 어머니는 ‘나’가 공무원시험준비를 한다 생각하고 아버지는 어떤 곳에 찾아가면 ‘나’를 알아봐줄거다 해요. ‘나’는 아버지가 써준 곳에 가려 했는데 어딘가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게 됩니다. 이건 갇힌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있기도 해요.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학교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그런 거 하던 사람이 일터에서도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창>이 그런 이야기예요. ‘나’는 지금 일하는 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했어요. 꼭 그렇게 할 건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 일터에도 누군가를 따돌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런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한테 안 좋은 짓을 하면 그게 자신한테 돌아온다고 하잖아요.
앞에 것으로 끝이다 생각했는데 <주단>과 <첫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사랑>은 짧게 말하면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주단>이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건 이름입니다. 쌍둥이 형제 주와 단이에요. 쌍둥이지만 단은 갈수록 근육이 약해져서 일찍 죽는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아픈 아이한테 마음을 더 쓰기도 하죠. 주는 그게 마음 아파서 그런 건지 가끔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건 주 자신이 그렇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어린이는 싫은 일은 잊기도 한다잖아요. 주는 자신만 건강해서 단한테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단은 아파서 힘들었겠지만 주는 주대로 힘들었겠지요. 주가 다른 사람한테는 단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이어서 괜찮았겠지요. 쌍둥이여서 통하는 것도 많았을 겁니다. 저는 그저 두 사람을 보는 것밖에 못했네요.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단>뿐 아니라 다른 소설도 다르지 않겠지요.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는 게 소설읽깁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