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무섭다고 하면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바람이 세게 부는 밤 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고 여기는 사람은 있을 것 같다. 그런 건 방에 불을 켜면 괜찮다. 빛이 그림자를 몰아낸다. 어떻게 해도 멈추지 않는 것도 있다. 그건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난 거기에서 빠져나와서다.

 

 몇해전 여름에 난 산에 올랐다. 잠깐 걷다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걷다 보니 산속에 작은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아이는 걷지 못하고 할머니가 돌봤다. 아프면 병원이 가까운 곳에 사는 게 나을 텐데. 할머니는 아이한테는 산속이 좋다고 말했다.

 

 잠시 쉬고 떠나려고 하니 아이가 나를 붙잡았다.

 

 “언니, 하룻밤 자고 가.”

 

 나는 망설였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하고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아이와 잠깐 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누웠지만 잠은 들지 않고 난 오래 뒤척였다. 그런 것을 알았는지 아이가 나한테 말했다.

 

 “언니, 자?”

 

 “아직.”

 

 “언니, 곧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거야. 그거 별거 아니니까 무서워하지마.”

 

 “무슨 소린데?”

 

 “나무가 집으로 다가오는 소리야.”

 

 “나무가 움직인다고?”

 

 그 말을 듣고 난 누워있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집 가까이에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가 더 다가오면 집이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언니, 걱정하지마. 나무는 그저 다가오는 것뿐이야.”

 

 아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그게 집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 나무가 집을 에워쌌다. 난 무척 놀라서 그곳에서 달아났다.

 

 이튿날 낮에 집이 있던 곳에 가 보니 집은 사라지고 나무만 있었다.

 

 나무가 그날만 다가온 건 아닐 거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는 밤마다 집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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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본 우리 나무 이야기
나영학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나무도 많다. 나무를 보러 산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다니 다행이 아닌가 싶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 나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거겠다. 둘레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 종류는 아주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무에 따라 사는 곳이 다르기도 하니 높은 곳이나 추운 곳에 사는 건 보기 어렵겠구나. 지역에 따라서도 볼 수 있는 나무가 좀 다르겠다. 예전에 내가 잘 다니던 길에는 양버즘나무가 있었다. 전깃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가지를 잘라서 볼품없게 만들기도 했다. 몇해 전에 양버즘나무를 없애고 거기에 동백나무를 심었다. 내가 사는 곳을 대표하는 나무가 동백이라 해도 그렇지. 나무가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고 양버즘나무가 왜 없어졌는지 알았다. 그 말 때문에 없앤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양버즘나무가 안 좋다는 말이 나왔나보다. 식물에는 다 독이 조금은 있을 거다. 그게 자신을 지키는 것일 테니까. 그런 게 사람한테 나쁜 것일지. 나무가 내 보내는 피톤치드도 곤충을 쫓아내려는 거다. 피톤치드는 사람한테는 좋다.

 

 여기에는 많은 나무가 실렸다. 볼 때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실제 나무를 보고 글을 보면 훨씬 잘 기억할지도 모를 텐데. 한번 쭉 훑어 본 것만으로도 괜찮다. 진짜 숲에 간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볼 때는 숲에 간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좋다고 하면 그게 없어질 때까지 쓰고, 한번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 그걸 없애려고 한다. 좋아도 안 좋아도 사라진다니. 어떤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 텐데. 그 말이 틀린 건 아닐지 몰라도, 무슨 일이든 더 자세히 알아봐서 나쁠 건 없겠지. 지구온난화 때문에 제주 한라산에 있는 구상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말은 예전에도 봤구나. 구상나무뿐 아니라 소나무도 없어질 수 있다니.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나무에 소나무는 앞에 있을 것 같은데. 난 지금까지 바늘같은 잎뿐 아니라 다른 것도 소나무라 생각했다. 그건 측백나무였다. 학교에서 먹을 갈 때 그 잎을 넣기도 했는데. 솔잎은 송편을 찔 때 쓴다. 옛날 사람은 어떻게 솔잎을 깔고 송편을 찔 생각을 했을까. 그게 아주 좋은 거기도 하다. 이제는 솔잎 마음대로 못 뜯던가. 어떤 나무로는 약을 만들기도 한다. 본래 식물이 약 재료기도 하구나.

 

 난 아주 좋아하는 나무는 없다. 그냥 나무가 괜찮다. 좋아하는 게 하나 있고 그것을 만났을 때 아주 반가워하면 좋을 텐데 아쉽구나. 봄이면 매화 벚꽃이 피어 좋고……. 그 다음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다니. 5~6월에 피는 꽃은 거의 하얀색이다. 무슨 까닭이 있는 걸까. 여름에도 피는 꽃 있을 텐데. 여름에는 더워서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구나. 나무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기는 하다. 사람이 아주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 건 나무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무를 더 많이 심으면 좋을 텐데. 이런 말했지만 난 나무 심어본 적 없다. 씨앗은 심어봤지만. 내 나무가 있으면 그걸 좋아할 텐데. 나무 심는 날이 있을 때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아니 나무 심는 날은 아직 그대로고 그날 쉬지 않을 뿐이구나. 나무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옛날에는 산에 나무가 없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구나. 그래도 잘못 심은 것도 있다고 한다. 나무를 심기 전에 잘 알아보아야 하는데.

 

 우리 둘레에는 나무로 된 게 참 많다. 책도 나무로 만든 거구나. 도서관은 나무가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나무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 오래 산 나무는 이런저런 것을 봤겠다. 사람이 나무의 기억을 볼 수 있다면 어떨지. 그런 건 꼭 보아야 아는 건 아니구나. 사람한테는 상상력이 있다. 그 상상력으로 앞으로 나무가 살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사람과 식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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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돈 주워본 적 있으세요. 그런 일 많은 사람이 한두번은 해 봤겠지요. 저도 언젠가 편지를 보내려고 나갔다가 우체국 앞에서 꾸깃꾸깃 접힌 천원을 주웠습니다. 편지는 우체국 앞에 있는 우체통에 넣었어요. 돈을 줍고 지금 나오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아니고 더 일찍이나 늦게 갔다면 줍지 못했겠지요. 그런 돈은 주인 찾아주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인을 찾아줄 수 없는 돈도 있지만, 바로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있어요. 그건 뭔가 사고 거스름돈을 더 받았을 때예요. 계산하는 사람은 늘 그걸 해서 잘못하는 일 거의 없지만 가끔 잘못하기도 해요. 어렸을 때 한번 그런 적 있는데 그때는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집에 다 와서 알았던 것 같아요. 아주 조금은 돈 아꼈다는 마음 있었을 거예요.

 

 얼마전에는 우체국에서 우표 살 때 우체국 사람이 계산을 잘못해서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거스름돈을 더 줘서 돌려주고(그런 일 몇번 있었어요). 그렇게 하고도 저는 저 때문에 계산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은 안 좋은 거겠지요. 돈을 제대로 내고 돌려줬으니.

 

 저는 제 마음이 편하려고 계산 잘못하면 그걸 말하고 거스름돈 더 받으면 돌려줍니다. 물건값보다 돈을 덜 내거나 거스름돈을 더 받으면 제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걸 해 보지 않아도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걸 아는 거군요. 어쩌면 오래전에 거스름돈 더 받고 돌려주지 못한 게 제 마음에 남아서 저를 찌르는 건지도.

 

 거스름돈 더 받은 게 얼마 안 된다 해도 돌려주면 그걸 받은 사람은 기뻐할 겁니다. 남을 믿지 못하던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마음을 바꿀지도 몰라요.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 자기 마음뿐 아니라 세상도 좋게 만들 것 같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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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가면 또 하루가 온다. ‘백일 글쓰기’ 이제 얼마 하지 않았는데 힘들다. 시작하고부터 그날 것을 쓰고 나면 바로 ‘내일은 뭐 쓰지’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걱정하다니. 그나마 잠깐 동안은 아직 하루가 다 가지 않았는데 벌써 걱정하나 한다. 그랬는데 다음 날이 오면 또 같은 걱정을 한다. 바보 같다.

 

 글쓰기가 아니어도 난 걱정이 많다. 책을 보면서는 이걸 다 보고 어떻게 쓰지부터(이것도 글쓰기잖아), 비 온다고 하면 비 많이 오면 어쩌지, 이렇게. 날씨는 한주쯤 뒤까지 알 수 있어서 한주 전부터 걱정한다. 늘 이런 건 아니다. 여름에 심하고 다른 때는 마음 많이 쓰지 않고, 편지 보낼 때만 알아본다. 사람이 하는 걱정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많다. 나도 그걸 안다. 나도 걱정 안 하고 살고 싶다.

 

 얼마 뒤 걱정뿐 아니라 아주 나중 걱정도 가끔 한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뒤랄까. 그것을 자주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보면 더하는 것 같다. 그때를 대비하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 그것만 생각하다 지금 해야 하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사는 건 참 쉽지 않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닌 것 같으니. 아니 이것도 저것도 다 맞기도 하다. 구별을 잘 해야 한다. 내가 그걸 잘 하고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먼저 해야 하는 것과 나중에 해도 괜찮은 것을 틀리지 않아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해도 잘못할 때 있을 거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보다 조금은 걱정하고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긴장 없이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빨리 움직이지 못할 거다. 앞에 쓴 걱정 말고도 순간순간 하는 걱정 많다. 그런 건 잠시만 하고 잊어버린다. 사람은 본래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고 밖에 나가지 못하면 안 되겠지.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가끔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어떤 건 자신이 조심하면 되지만 그게 안 되는 것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앞으로는 걱정 조금만 해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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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11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백일 글쓰기 하시는군요.
저도 옛날에 해 봤는데 마라톤도 하는데요 뭐.
응원이 최고죠.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잘 마무리하십시오.^^

희선 2017-10-12 01:3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보다 끝까지 하자, 하는 게 더 좋겠군요 마라톤은 생각만 해도 숨이 차네요 학교 다닐 때는 800m 달리기 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마라톤보다 힘들지 않다 생각하면 좀 낫겠습니다 마라톤은 그것대로 괜찮은 거겠지요


희선
 

 

 

 

 “멍~, 멍~.”

 

 “야~옹, 야~옹.”

 

 아침이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개와 고양이는 만나기만 하면 저런다. 아니, 친하게 지내는 녀석들도 있지만 이곳에 자주 오는 녀석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난 이 놀이터에 내내 서 있는 은행나무다. 나 말고 다른 나무도 있지만, 다들 새침해서 쉽게 말걸기 어렵다. 아니 우리 나무는 다른 나무와 말하기보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여기 오는 사람 그리고 동물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것만 해도 하루가 빨리 간다. 가끔 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던가.

 

 이곳은 아파트 한쪽에 만든 작은 놀이터다. 거의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오는데, 어른보다 아이가 많고 약속이라도 한듯 사람마다 정해진 시간에만 온다. 작은 아이와 엄마는 늘 해가 그리 높이 뜨지 않았을 때 온다. 다른 사람이 오고 해를 보면 해는 거의 비슷한 곳에 떠 있다.

 

 지금은 작은 아이라 하지만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는 엄마가 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이제 혼자 걷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건 무척 신기했다. 작은 아이는 모래밭에서 잘 노는데, 가끔 내 옆에 오기도 한다.

 

 얼마전부터는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 둘이 함께 와서 그네를 탔다. 이 아파트에 살게 됐나보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예전에 본 건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들을 봤을 때는 조금 놀랐다. 한 아이가 그네 타는 걸 봤는데, 바로 뒤 같은 아이가 철봉을 했다. 잘 보니 아이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다. 새들은 여기저기 다녀서 얼굴이 똑같은 세사람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잠깐 놀다 가는 아이도 있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해질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간다. 해가 진 다음에 놀이터는 동물 차지가 된다. 초저녁에는 개가 놀고 밤에는 고양이가 모인다. 다들 낮에는 어디 있다 어두워지면 그렇게 모이는 건지. 개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아침이면 꼭 소동을 벌인다.

 

 늦은 밤에 오는 사람도 있다. 그 아이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고양이와 개가 그 아이 몸에 닿으면 아무 저항없이 지나갔다. 사람이나 동물은 가까이 가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옆으로 비켜서 가는데. 그 모습을 보았을 때도 신기했다. 이제는 그런 모습도 익숙하다. 그 아이는 놀이기구를 타고 놀기보다 고양이와 놀았다. 고양이를 손으로 잡지 못해도 함께 뛰어다니는 게 즐거워 보인다.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이곳에 자꾸 오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마음먹고 아이한테 말을 했다.

 

 “얘, 넌 어떻게 여기 오는 거야?”

 

 아이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찾으려고 둘레를 두리번거렸다.

 

 “얘, 나야 은행나무.”

 

 “와, 은행나무가 말을 하다니. 그렇게 신기한 건 아닌가. 내가 여기 있으니.”

 

 “넌 대체 뭐야. 보통 사람하고 다르던데.”

 

 “나? 난 혼이야. 사람이 죽으면 나타나는.”

 

 “뭐, 그러면 넌 죽은 거야?”

 

 “맞아. 아주 떠나기 전에 여기서 놀고 싶었어.”

 

 나한테 사람 같은 얼굴이 있었다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을 거다.

 

 아이는 곧 오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떠나기 전날, 여기에 못 보던 하얀 고양이가 찾아왔다. 그 고양이도 아이처럼 몸이 희미했다. 아이와 고양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이제 아이가 이곳에 오지 않겠구나 했다.

 

 “멍~, 멍~.”

 

 “야~옹, 야~옹.”

 

 또 시작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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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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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2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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