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는 4학년이 되면 클럽(동아리)활동을 해야 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그런 걸 할 수 있단 말이야 하고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4학년 때 한 건 합창부였다. 노래하는 게 좋아서 거기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별로 즐겁지 않았다. 합창부는 클럽활동이 있는 날만 하지 않고 다른 때도 연습했다. 연습 안 하고 가는 아이는 다음 날 선생님한테 혼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지만 연습 때문에 싫증났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건 거의 못했다. 어쩌면 그때 거기에 큰 뜻을 두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클럽활동으로 못하면 그냥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건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몰랐던 걸까. 이번에 하려는 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데.

 

 초등학교 4학년 때 합창부 하기 싫었던 건 늦게까지 연습해서였다. 어떤 건 날마다 어느 정도 연습해야 잘한다. 초등학생인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친구는 집에 가는데 나만 남아 합창 연습을 해야 해서 우울했다. 노래하는 거 좋아했지만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즐겁다면 오래 연습하는 것도 좋아할까. 야구 만화 <크게 휘두르며>를 보면 야구라는 운동 쉬운 게 아니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동도 연습을 꾸준히 해야 익숙해지고 조금 잘한다. 뭐든 타고난 사람은 조금만 해도 잘하겠지만. 니시우라 고등학교 야구부 아이들은 모두 야구를 좋아하고 늘 이기고 싶다고 했다. 아침 연습도 힘들다 여기지 않고 즐겁게 했다. 뭔가 하려면 그렇게 즐겨야 한다. 초등학교 때 합창부 선생님은 왜 연습하는지 말한 적 없는 것 같다. 그런 걸 학생한테 제대로 말해줬다면 좀더 나았을걸. 그때 나뿐 아니라 거의 다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연습에 빠지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 해도 늘 즐거운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힘들고 벽이 나타난다. 그 시간을 잘 견뎌야 한다. 잘 못하면 어떤가. 결과보다 그것을 하는 시간을 즐기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힘든 것도 즐기자. 어쩌면 이건 나 스스로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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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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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렸을 때도 죽음을 가끔 생각했겠지만, 지금 더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기는 해도 내가 언제 죽음을 맞을지가 아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기분은 어떨까 하는 거다. 이 생각은 몇해 전부터 했는데, 아마 내가 그 일에 놓여있지 않아서 생각하는 거겠지. 막연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지 않을까 했다.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있지 않을까. 거기에도 정답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신이 아쉬움 없이 살 방법을 찾아야겠지. 하지만 아쉬움 없는 삶이 있을까. 누구나 다 조금은 아쉬워하고 살 거다.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자신이 놓여있는 형편도 그러면 좀 나을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꾸려고 애써야겠지. 다시 생각하니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바꿀 수 없는 것도 있구나. 그때는 마음을 바꾸면 좀 나을지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마음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사람은 다 언젠가 죽는다. 그것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보존과학자로 국립고궁미술관에서 일하는 정안은 어머니 유전자를 물려받아 오래 살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정안은 아버지나 외할머니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안은 누군가를 깊이 사귀지 않았다. 남이 자신을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귀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정안이 생각한 것도 다르지 않겠다. 정안은 자신이 일찍 죽을 걸 알게 되는 사람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모두가 정안이 얼마 못산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고 떠나가지는 않을 텐데. 정안이 보존과학자가 된 건 오래 자신이 살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정안은 벌써 죽은 미라를 보거나 미라가 입은 옷을 복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상아(이름이 딱 한번 나온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재해로 죽은 사람 식구를 찾아가 위안하는 일을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하지 못한 사람도 만났다. 상아 가까이에는 늘 죽음이 있었다. 상아는 죽음에서 달아나려고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은 아닐까.

 

 두 사람은 고궁박물관에서 만난다. 그렇다고 바로 친해지지는 않는다. 드라마가 아닌 소설이니, 드라마라고 해서 두 사람이 바로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상아는 우연히 고궁박물관에 가고, 정안도 다른 날과 다르게 미라가 전시된 곳으로 나갔다. 상아가 미라 손을 싼 악수(시체 손을 싸는 헝겊)에 손을 뻗으려는 걸 보고 정안은 상아한테 유리를 만지면 안 된다 말하고, 다음 전시 안내장을 상아한테 건넨다. 미라 특별전에서 정안과 상아가 잠시 만나지만 별일은 없다. 마지막은 상아가 힘들어서 정안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정안은 상아를 찾아간다. 정안은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일을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아도 시작보다는 그게 끝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아주 조금 희망을 가졌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으로 보아도 되는 걸까, 두 사람이 만나지 않은 것보다 만난 게 더 나았을까. 두 사람이 만나고 서로 좋아하고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도 괜찮겠지만 앞날을 알 수 없는 것도 괜찮겠지. 영화는 그런 게 더 많지 않나 싶다. 그런 영화 원작은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거다. 상아가 다른 사람을 위안해주는 일을 했지만, 실제 위안 받은 건 상아 같다. 아니 상아만 그런 건 아니겠다. 정안도 위안 받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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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 1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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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8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 동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이어졌는데, 드디어 맑은 날이 찾아왔다. 비 그친 세상은 선명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떠 갔다. 맑은 날이 온 게 기쁜지 새들도 노래했다. 며칠 동안 듣지 못한 새소리다.

 

 아침이 조금 지나서 나온 산책길인데도 공기가 기분 좋았다. 길에는 바쁘게 걷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모두 어디론가 갔겠지. 찻길에도 차가 가끔 지나갔다. 걸어도 그렇게 멋진 풍경은 볼 수 없다. 도시에 살면 다 그렇겠다.

 

 열두시가 넘고 집배원이 다녀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온 편지가 있을까 하고 밖에 나가보니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친구 성민이었다. 오랜만에 소식이 와서 반가웠다.

 

 성민이는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 사귄 친구다. 나는 새학년이 되면 늘 힘들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더했다. 그래서 학교에 조금 일찍 가서 책을 읽고는 했는데, 성민이도 그랬다. 그때 성민이와 난 같은 소설을 읽었다. 그걸 알고 우리는 바로 친해졌다. 그 뒤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 가거나 성민이네 집에 가기도 했다. 성민이네 집에는 책이 많았다. 나도 언젠가는 방 하나를 책으로 가득 채워야겠다 생각했지만, 그건 이루지 못했다. 방도 좁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성민이와 함께 보낸 고등학교 시절은 무척 즐거웠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민이와 나는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소식이 뜸해졌다. 그런 성민이가 이렇게 편지를 쓰다니 무슨 일일까 했다. 난 편지를 꺼내서 보았다.

 

 

 

 요새는 거의 날마다 하늘이 높고 파랗다. 나뭇잎들은 푸른옷에서 노랗고 빨간 옷으로 많이 갈아입었다. 성민이한테서 편지를 받고 한달이 지났다. 지금 난 오랜만에 성민이를 만나러 간다. 성민이는 어떤 모습일까.

 

 문 뒤에는 성민이가 있다. 난 숨을 한번 깊이 쉬고 문을 두드렸다.

 

 “성민아, 결혼 축하해.”

 

 “희진아, 정말 오랜만이야. 여기 오기 힘들었을 텐데 잘 찾아왔구나, 고마워.”

 

 

 

 

 

 

 

 이 글에는 이름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지만,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예전에 쓴 거 다음 이야기다. 본래는 고등학생 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생각나는 게 없어서 못 썼다. 생각만 하지 않고 썼다면 뭔가 썼을까. 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는 걸로 할까 하다가 이렇게 됐다. 본래 어떤 글이든 생각하는 대로 쓰기 어렵고 쓰다보면 바뀌기도 한다. 밑에 붙인 글이 이것보다 앞에 이야기다. 예전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를 보고 써 봤다. 그래서 그 책이 들어간 거다. 그거 읽을 때마다 써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못했다.

 

 

 

 

 

 

 

친구

 

 

 

 

 고등학생이 되고는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간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집중도 잘되고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홀로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30분 남짓이다. 그 뒤에는 반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 온다.

 

 한주가 지나고는 나홀로 교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 대각선 앞자리에 앉는 아이가 나보다 조금 뒤에 학교에 왔다. 그 아이도 학교에 일찍 와서 나처럼 책을 읽었다. 하루하루 가다보니 그 아이가 어떤 책을 보는지 알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책 이야기를 나눠본 친구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주가 지나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 아침에 나는 교문에 서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교실에 같이 들어가면서 잠깐 이야기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5분, 10분이 지나도 그 아이가 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다른 날보다 늦게 학교에 왔다. 교실에서 말을 해봐도 될 테지만 누군가한테 먼저 말하기 어려워하는 나여서. 뒤에서 보니 그 아이는 자기 짝하고는 조금 친해진 듯했다.

 

 첫째 시간이 끝나자 그 아이는 가방에서 다음 시간 교과서와 다른 책을 꺼내서 그 책을 읽었다. 얼핏 보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책이었다. 나는 어쩐지 반가워서 그 아이 옆에 가서 말을 했다.

 “너, 이름 김성민이지? 나는 오희진이야.” 성민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이 책 나도 요새 읽고 있어.” 성민이는 그 말에 반가운 듯 웃었다.

 

 우리가 학교에 일찍 와서 읽은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미카미 엔)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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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에 어떤 작가가 죽었다는 말을 보았다. 그 작가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작가가 젊어서 그랬는지 왜 어떻게 죽은 건지 마음 쓰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도 잘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려서 겨우 찾았다. 그 작가는 새 소설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 쓰기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는데, 마지막 책이 나오는 것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

 

 가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이걸 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왤까. 이런 말을 하다니. 나 또한 죽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했으면서. 난 아직 살아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무척 힘든 날이 와서 그런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리라고 할 수 없다. 별거 아닌 걸로도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 생각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할 수도 있겠지. 누군가는 사람한테는 죽을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그 말 난 잘 모르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 된다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생각나서 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죽음은 가진 사람 못가진 사람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텐데 그걸 스스로 앞당겨야 할까 싶다. 난 지금까지 돈 못 벌고 이룬 거 없고 혼자다. 이런 나도 산다. 누군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난 식구라는 거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단지 식구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다니. 어쩌면 나한테도 그런 면이 아주 없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한테 크게 피해주지 않으려 한다. 난 말을 안 해서 문젠가. 식구 때문에 힘든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 식구라 해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나밖에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또 쓸쓸하다. 이런 생각이어서 혼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서로를 존중하고 사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본다.

 

 사는 법은 하나가 아니고 정해져 있지 않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되든 잘 되지 않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사는 동안 건강하면 좋겠지만, 아프면 어떻게 할까. 지금 난 그런 때는 말할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한다. 그런 건 받아들이면 좀 나을 것 같다. 병에 걸리면 삶이 많이 달라질 거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그걸 할 수 없을 때도 있겠지. 살면서 그런 때가 오면 어떻게 할지 먼저 생각해두면 괜찮겠다.

 

 왜 사람은 이 세상에 올까 싶기도 한데, 거기에 그렇게 큰 뜻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큰 일을 해내는 것도 좋지만 한 세상 조용히 살다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기 삶을 살고 가끔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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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글을 쓰다 보니 자기 마음에 있던 상처가 나았다고 했다. 그런 글쓰기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난 여전히 이겨내지 못하는 게 많고 마음이 하나도 좋지 않다. 내 기분이 좋지 않은 걸 글로 쓴다 해도 그때뿐이다. 아니 그런 거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다른 것만 쓴다. 뚜렷하게 말하기 힘들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는데 어쩌란 말인가. 분명 난 예전에 좋지 않았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해도 그게 내 무의식에 남아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집에서도 이런 나를 아주 이상하게 여긴다. 그래서 더 쓸쓸한지도 모르겠다. 내 편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글을 쓴다 해도 이런 건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쓸 게 생각나지 않고 우울해서. 사람은 우울하면 그 우울함을 이해받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 나한테 어떤 일이 있어서 안 좋다 말하면 그 말에 “많이 우울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뭐, 그런 거 가지고” 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이런 말한 적은 없고 책을 보고 생각한 적은 있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마음속은 그렇다 해도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우울하고 짜증난다고 말한 사람도 시간이 가면 제대로 생각한다. 어쩐지 이건 나 같구나.

 

 가끔 우울하고 나쁜 생각에 빠지면 책이고 글이 뭐에 쓸데있을까 싶다. 사람은 한순간에 이상해지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건 마가 끼었다 해야 할지도. 그때가 지나면 자신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을 거다. 한순간을 어떻게 넘기면 좋을까. 그걸 넘기게 해줄 게 나한테는 없는 것 같다. 지금 생활이 있다. 그것이 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나을까. 실제로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5학년 땐지 6학년 땐지 난 죽고 싶었다. 실제 죽으려고 숨을 오래 참았는데 조금 어지럽기만 했다. 요즘 아이들은 성적이나 학교에서 괴롭힘 당해서 죽고 싶다 생각할까, 난 뭐가 괴로웠을까. 그때만 죽고 싶었던 건 아니다. 몇해 전에는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했다. 그건 무척 밝은 햇빛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방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 참을 수 있지만 한때는 왜 이렇게 밝은 거야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정말 이상하구나.

 

 사람은 잘살든 못살든 저마다 힘들다. 나도 이걸 잊지 않아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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