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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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동안 책을 보았는데 내가 대체 무엇을 본 건지 잘 모르겠어. 이 책은 지금이 아니고 나중에 보는 게 나았을까. 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본 것만으로도 신기하지만. 예전에 나도 우연히 《사피엔스》를 보고 새로운 걸 알기도 했는데. 그때까지 사피엔스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제대로 몰랐어. 아니 아주 조금 알았을 테지만 자세한 건 몰랐던 것 같아. 인류라는 게 한 종이 아니고 여러 종이 있었는데 지금 남은 건 사피엔스뿐이라는 거. 살아남았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쩐지 의심스럽기도 해. 사피엔스는 살아남으려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잖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사피엔스》를 만나서군. 어쩐지 사람만 사람을 죽이는 것 같기도 해. 동물이나 식물도 살아남으려고 다른 것과 싸우겠지만.

 

 이 책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있을 텐데 난 어쩐지 이상하기도 했어.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고, 유발 하라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더라구. 그러면서 내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왜 그랬는지 책을 거의 다 볼 때쯤에야 깨달았어. 여기 실린 글은 벌써 일어난 일도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있어. 유발 하라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고 쓴 거야. ‘호모데우스’ 말고도 ‘앞날 역사’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걸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 앞에서 그걸 생각하고 책을 봤다면 좋았을걸. 거의 다 봤을 때쯤에야 알다니. 여기에 쓰인 일이 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아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자신을 알려고 잠시 쉬고 생각하기보다 전자편지를 구글이 볼 수 있게 한다는 거야. 그것뿐 아니라 많은 정보도. 아직은 전자편지을 구글이 볼 수 없지만, 그건 감시 받는 느낌 들지 않을까. 그런 일 아주 없는 건 아니군. 지금 많은 사람은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를 사잖아. 그것 또한 자신의 정보잖아. 안젤리나 졸리는 아직 암에 걸리지 않았는데 수술받았다고 하더군요.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꼭 그 병에 걸리는 건 아닐지도 모를 텐데.

 

 언젠가 소설을 보면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머리를 숙이고 무서워하다니 하는 생각을 했어. 그 답은 《사피엔스》에 있었어. 그걸 이제야 알다니. 사람, 그러니까 인류는 신화를 만들고 약속을 만들었어. 사회에서 만든 약속이 있어서 사람은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지. 그게 없었다면 지금처럼 인류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는 사람 신기하기도 해. 하지만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는 건 안 좋은 듯해. 지구에 사는 건 무엇이든 소중한데 인류는 많은 걸 사라지게 만들었어. 인류가 살아가는 데 있어야 하는 것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런저런 약속을 해도, 지구가 좋아지지 않는 건 경제가 성장해서라는군. 인류는 경제에 많이 매달려 있어. 한국도 경제가 가라앉았다 하면서 다시 살려야 한다 하잖아. 그게 지구에는 좋은 게 아니었어. 그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군. 평소에 별로 생각한 적 없어. 그저 지구는 갈수록 나빠지는구나 했어. 인류가 경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전에는 기아, 전염병,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았어.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많은 나라가 평화로워. 21세기에는 죽지 않는 걸 생각한다고도 했어. 오래 살아서 이것저것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떤 부자는 그저 오래 살고 싶다고 했대. 끝이 있기에 사람은 거기에 가기까지 잘 살려고 할 텐데. 삶에 꼭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그걸 생각하면 좀 낫겠지. 그건 정말 스스로 생각하는 걸까. 사람한테 자유 뜻은 없다고도 하니. 우리가 하는 건 그저 전기신호일 뿐이다고도 하잖아. 아니 그런 말이 있다 해도 난 마음은 있다고 생각해. 뇌가 여러 가지를 익히고 몸이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인류가 신이나 만들어낸 것을 믿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앞으로는 데이터교가 나타난다고 하던데. 아니 이건 벌써 나타났어. 데이터가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가끔은 그것을 뛰어넘는 것도 괜찮겠지. 인류가 아주 대단하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인류기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거야.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좋을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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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나이를 먹고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하던 걸 죽 하기도 한다. 난 책은 어릴 때부터 읽지 못했지만, 걷기는 어릴 때부터 했다. 그때는 일부러 걷기보다 학교에 가야 해서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어딘가에 갈 때면 늘 걷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만 가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모두 집에서 멀었다. 초등학생 때는 동네에 친구가 있어서 학교에 같이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살던 곳은 시골로 둘레가 거의 논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논 사이에 있었다. 길 옆에는 논에 물을 대는 작은 개울도 있었는데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면 뱀이 보였다. 어렸을 때는 뱀을 가끔 봤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한 뒤로는 거의 못 봤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집에서 걸어서 30분쯤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늦게까지 공부해서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왔다. 고등학생 때는 마침 걸어다니는 아이가 있어서 함께 다녔다. 예전에 함께 걸어다닌 친구도 있었는데 지금은 연락하지 않다니. 혼자 밤길을 다니는 게 무서워서 함께 걸어다녔구나. 어느 정도 걷고 나면 나 혼자 남았다. 10분에서 15분 정도는 혼자 걸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빨리 집에 가서 라디오 들어야지 했을지도.

 

 오랫동안 날마다 걸어서 그랬는지 난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한해에 한번 정도는 걸렸지만. 지금은 거의 걸리지 않는다. 지금 괜찮은 건 감기 바이러스에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힘들이지 않고 할 만한 운동이 뭐냐고 한다면, 난 바로 걷기라고 말하겠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때는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다리가 잘 뭉쳤다. 그거 말고는 아픈 데 없었는데, 한동안 걷지 않고 우울하게 지내서였는지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도 아플 때가 있었구나.

 

 옛날 사람은 아주 많이 걸었다. 그때는 탈 것이 적어서 그랬겠지만, 산책이 하루 하는 일에 들어 있었다(한국은 아니었을까). 글쓰는 사람은 걸으면서 생각하고 그걸 썼다.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가 다니는 곳에서는 정신차려야 한다. 지금을 사니 지금에 맞는 걷기를 하면 괜찮겠지.

 

 걷기가 어디에 좋은지 말하지 못했다. 걷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좋다. 몸을 움직여서 그런 거겠다. 몸을 잘 움직이지 않아 몸과 마음이 잘 지치는 사람이 있을 거다(난 몸은 괜찮아도 마음은 쉽게 지치는구나). 날마다 잠깐이라도 걷는다면 몸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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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저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것을 썼습니다. 처음 쓴 건 그게 아니지만, 어쨌든 그때 그 글에 쓴 이름은 ‘희진’이에요. 그러고는 저 혼자 내 분신이야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어쩌면 이 생각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 했을지도). 책을 보면 작가가 같은 이름을 여러 소설에 썼더군요. 그때는 연작소설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나오는 사람 이름은 같아도 좀 다른 이야기 같았어요. 그런 소설을 봐서 저도 같은 이름을 다른 이야기에 쓰기도 했습니다.

 

 한핸가 두핸가는 쓸 이야기가 조금 떠올랐습니다. 한달에 한편쯤 썼어요. 늘 떠오른 건 아니고 억지로 쓴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써도 재미있었어요. 이야기를 쓰다가 한번은 친구 이름을 거기에 썼습니다. 자주 나오지 않고 한번인가 두번 나왔어요. 이야기가 길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무슨 목표가 있던 게 아니어서 그런지 한두해가 지나자 이야깃거리가 똑 떨어졌습니다. 쓸 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전 생각나면 썼거든요. 요새는 날마다 이것저것 쓰는데 이런 제가 신기합니다. 별거 쓰지 못하고 몇해를 보냈어요. 그래도 여전히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쓰지 못하면, 책 읽은 거라도 쓰자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고 그걸 쓴 게 햇수로 세해가 됐을 때 제가 사는 곳에 물난리가 났어요. 다행하게도 컴퓨터는 괜찮았습니다. 컴퓨터는 책상이 아니고 커다란 상 위에 두고 바닥에 앉아서 써요. 집으로 물이 들어오려고 했을 때, 컴퓨터 본체를 옆에 있는 물건 위에 올렸습니다. 그런 건 물이 들어오기 전에 해야 했는데, 부질없이 비가 그치기를 바랐어요. 비는 날이 새고야 그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밤이 제가 보낸 밤에서 가장 긴 밤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런 말을 한 건, 그런 일이 있고 그 해에 여러 사람을 알고 책 읽고 쓰는 걸 많이 생각해서예요. 다음해쯤인가는 다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이야기를 써 보자 했을 때는 쓰는 것마다 동화 같았는데(차라리 동화를 쓰자 한 적도 있군요), 몇해가 지난 다음에는 좀 달라졌습니다. 동화 같은 느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좀 무서운 이야기나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가 떠오르고 쓰고 싶더군요. 그건 제가 만난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이야기가 생각났다 해도 어쩌다 한번이었어요. 그런 걸 쓰면서 거기에 (블로그) 친구 이름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친구님한테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물어볼게요.

 

 “앞으로 제가 쓰는 글에 이름 써도 괜찮을까요(이름 모르는 분도 있군요).”

 

 누구는 쓰고 누구는 쓰지 않으면 섭섭하겠습니다. 친구 이름을 다 쓸 만큼 이야기가 저를 찾아온다면 좋겠습니다(친구 많지 않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겠지요. 가끔은 찾아보기도 할게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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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나는 털북숭이에 네발 달린 고양이지만, 단 한번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이걸 안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얼마전에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그런 깨달음이 찾아왔다. 단 한번이라는 건 마지막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사람이 되면 그날 난 세상을 떠나겠지. 함께 사는 사람 혜영과도 헤어질 거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혜영이 집으로 들어왔다. 다른 날보다 늦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을까.

 

 “피, 다녀왔어. 오늘 잘 지냈어.”

 

 혜영은 늘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한테 오늘 잘 지냈느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양이 말로 “응, 뭐 그럭저럭.” 하는데, 혜영은 그 소리를 “야옹, 야옹.”으로 알아들었다. 사람과 고양이는 다른 말을 쓰니 어쩔 수 없다.

 

 내 이름은 피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피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혜영이 나를 보고 자꾸 “피.”,  “피.” 해서 내 이름인가 했다. 내가 태어나고 고양이 엄마와 잠깐 살 동안 들은 이름은 피가 아니었다. 그건 무척 오래 전이어서 생각나지 않는다.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피라는 이름 괜찮다.

 

 “피…….”

 

 집으로 들어온 혜영이 이상하다.

 

 혜영은 집에 오면 옷을 갈아입고 내 밥을 챙겨주는데 지금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누워 있다. 아니 쓰러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아까 혜영이 들어오고 뭔가 소리가 난 것 같다. 난 혜영한테 가까이 다가가 앞발로 혜영을 건드려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을 핥아도 눈을 뜨지 않았다. 난 쓰러진 혜영을 보고 지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여기는 해돋이 아파트 101동 205호예요.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쓰러졌어요.”

 

 내가 혜영을 엄마라고 하다니. 사람으로 변신했더니 여자아이 모습이었다. 119에 전화하고 5분이 지났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나는 가야 한다. 혜영이 깨어나면 내가 없어서 슬퍼하겠지만 난 기쁘다.

 

 “잘 지내. 사람 엄마. 그동안 즐거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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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어릴 때는 누구하고나 쉽게 친구가 된다. 다른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은 따지지 않는다. 내가 이곳 군산에 오기 전에 살았던 곳은 부산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는데 어렸을 때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할까. 기억은 움직이기보다 한장 한장 찍힌 사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군산(그때 살던 곳은 옥구군이었다)에 왔다. 난 어려서 가기 싫다는 말은 못하고 어른들을 따라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살게 된 곳은 한칸짜리 방이었다. 거기에서 가까운 곳에 내 또래 아이가 둘이나 있어서 그 애들하고 친구가 되었다. 가까이에서 보다가 함께 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초등하교 1학년 때는 둘레 환경에 아주 많이 영향받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학년이 올라가고 그것을 싫어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쯤부터였을지도.

 

 나이를 먹고 자아라는 게 더 확실해지면 친구 사귀는 게 좀 바뀔까. 좋아하는 게 같으면 쉽게 친구가 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사람 만난 적 없다. 어쩌면 만났지만 오래 사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도 한 말인데 같은 걸 좋아해도 그 마음이 똑같은 건 아니다. 좋아하는 지점이라고 할까 그건 좀 다르겠지. 그래도 그게 서로를 가깝게 해주기는 할 거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으면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이 친구를 사귄다고 하던데.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거 함께 말할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그런 걸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시간이 좀 흐르고 혼자 좋아하면 어떤가 했다. 그래서 책 읽고 쓰는구나. 지금은 좋아하는 게 다르면 어떤가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 걸 보다가 거기에 조금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그런 것도 있구나 하면 괜찮겠지. 난 그런 것도 있구나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이건 책 이야기다. 이것저것 넓게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잘 안 되어도 자꾸 생각해야 조금이라도 하리라고 본다.

 

 블로그 친구가 같은 책을 보면 나하고 어떻게 다르게 봤는지 보고, 다른 책을 보면 그게 어떤 건지 살펴봐야겠다(같은 책을 볼 때보다 다른 책 볼 때가 훨씬 많다). 그게 따로 또 같이가 아닐까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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