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생각하다 예전에 제가 쓴 것을 읽어보니 유치하면서 재미있는 게 있더군요. 그걸 썼다는 건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쓴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그때는 거의 기억했는데. 술술 잘 읽힙니다. 제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끝이 어떨지 다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그런 것도 썼어요. 지금이라고 아주 새롭고 다른 걸 쓰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못 쓰는군요. 유치해도 쓰기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쓴 거여서 그런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신이 쓴 거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네요. 좀 유치해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보다보면 벌써 끝일지도.
행복은 가까이에
방값을 올려주지 않으면 그만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에 산 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좋은 방은 아니지만 방값이 싸서 오래 살았는데 옮겨야 할 때가 찾아왔다.
정보신문을 뒤져보아도 좋은 곳은 없었다.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돈에 맞는 곳이 없었다. 방을 빼야 할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이 세상에 내 한몸 누일 곳이 없다니 무척 슬펐다. 정보신문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 아주 싼 방이 보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주인한테 전화를 하고 찾아가 보았다. 싼 방이어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는 달리 부자들만 사는 곳이고 이층집이었다. 겉만 멋지고 지하에 있는 방은 아닐까 했는데, 아주 좋은 방이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방, 정말 여기에 쓰여 있는대로 받으실 거예요?”
“네, 그럴 거예요.”
주인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이층집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다른 식구는 남자한테 집을 물려주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벌써 집이 있다니 부러웠다.
“저기…… 내일, 아니 오늘 바로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꼭 지키세요. 밤 12시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말고, 다른 방 문도 열지 마세요. 그리고 저한테 할 말이 있으면 계단 옆에 있는 인터폰으로 하세요. 혹시, 밤늦게 들어오지는 않겠죠?”
“날마다 이층에 계세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네, 알았습니다. 다른 방에도 누군가 살아요?”
“아, 네.”
“그런데 12시 넘어서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12시 넘어서는 괜찮아요. 정각 12시만 아니면 됩니다. 이제 그만 물어보시죠. 자꾸 물어보시면…….”
“아, 네 미안합니다.”
짐은 조금밖에 없었다. 한곳에 오래 살았는데도 늘어난 것이 별로 없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밥은 거의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노트북 컴퓨터를 썼으니 짐이 없을만 했다. 이제는 뭔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주인 남자가 방을 빼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짐이 이것밖에 없어요?”
“네, 하하.”
“여기 열쇠 받으세요.”
“제 집은 아니지만 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쉬세요.”
“네, 아저씨도.”
“아저씨라뇨? 제 이름은 김유진이에요. 이름으로 말하면 좋겠네요.”
“그러죠.”
“아가씨는 이름이 뭐죠?”
“저는 민수영입니다.”
“제가 말한 거 잊지 않았죠? 꼭 지키세요.”
“네.”
새로운 곳에서 사는 건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나는 늘 설렜던 것 같다. 전보다는 나아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곳도 좋은 곳이어서 그런지 무척 설렌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하지 마라 하면 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배가 아파 달려간 화장실에서 나온 시간은 정확하게 12시였다. 어디선가 ‘댕~ 댕~’ 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지만,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방에서 누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무척 놀라 화장실 문을 조금 연 채 밖을 내다보았다. 방에서 나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부엌을 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해서 할머니가 나온 방문을 열려고 했는데 잠겨 있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본 건 도대체 뭐였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까 귀신이었을까? 할머니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밤에 한번 더 보기로 했다.
낮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밤이 오기만 을 기다렸다. 11시 59분에 내 방을 나가서 12시에 부엌에 갔다. 정신만 차리면 괜찮다 생각하고 방문을 노려보았다. 12시가 되자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나왔다.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있는 부엌으로 왔다. 나를 보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웃어 보였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만난 뒤부터 낮에도 할머니가 보였다.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주인 남자한테 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쩌면 주인 남자는 알고 있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게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귀신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알고 싶었다.
밤 12시에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다. 금세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가씨, 나 안 무서워?”
“하하,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 말할 수 있네요. 그동안 왜 한마디도 안 했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말을 안 해서 그랬지.”
“아, 예.”
할머니는 부엌 식탁에 앉기도 하고 차도 마셨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 이럴까?
“할머니, 귀신 맞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왜 여기에 계세요? 다른 세계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 내가 이곳에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늘 집에만 있으니 찾을 수가 없구랴.”
할머니한테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오랫동안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행복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새로 태어나면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자는 약속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할머니가 다시 태어났을 때 알아보지 못할까 싶어서…….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럼.”
“왜 지금까지 찾으러 나가지 않았어요?”
“내가 귀신이기는 해도 사람이 도와줘야 해. 누가 나하고 같이 가야 하거든.”
“주인 남자분한테 부탁하지 그러셨어요.”
“나도 여러 번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
“그런데 할머니는 누구한테나 보이세요?”
“그렇지는 않아.”
남자는 할머니 증손자였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는데 남자한테는 보였다.
다른 사람이 할머니를 볼 수 없었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퍼졌다.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만 남겨두고 모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남자는 자신이 남겠다고 했다.
밤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자서 아침에 늦잠을 잘 때가 많았다.
그런 어느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자다 점심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문을 여니 뭔가 떨어졌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었다. 그것을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층에는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올라갔다. 방문이 여러 개 있었다. 어느 방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렸다.
“여긴 무슨 일이죠?”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저한테 할 말 있으면 인터폰으로 하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해요?”
“네?”
“이거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들어 보였다. 남자는 별거 아니다 했다.
“저 혼자 여기 가라는 말씀이세요? 솔직히 말하면 저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같이 가면 안 돼요?”
“…….”
남자는 망설이다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한분 더 같이 가요. 유진 씨도 아는 사람인데…….”
남자는 놀란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저는 할머니 소원 들어드리고 싶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다잖아요. 그리고 놀이공원이라면 할아버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는 아이일 거 아니예요.”
“할머니, 기쁘죠?”
“그래. 아가씨 고마워.”
“할머니 일 때문이지만 저도 기뻐요. 소풍가는 것 같아서.”
놀이공원에 간다는 기쁨에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일층에서 나는 소리에 남자가 깨었는지 부엌으로 들어왔다.
“뭐하세요?”
“김밥 싸요. 조금만 하면 다 돼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런 거 뭐하러 싸요. 가서 사 먹으면 되는데.”
나는 그냥 웃었다.
하늘은 맑고 소풍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웃음 가득한 얼굴인데 남자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유진 씨, 좀 웃어요.”
“…….”
놀이공원은 사람으로 붐볐다. 할머니가 걱정스러웠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할머니도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와서 그런지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할머니, 혼자 다니지 말고 저희하고 함께 다녀야 해요. 세상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어요.”
“유진 씨, 여기 놀러온 거지만, 할아버지 찾으러 온 거기도 하잖아요. 할머니 혼자 다니고 싶으실지도 몰라요. 그렇죠, 할머니?”
“맞아, 나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남자는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돕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있었을 거다. 혼자 그 커다란 집에 남은 것을 보면 말이다.
“할머니, 돌아다니다 12시 30분에 여기에서 만나요. 유진 씨는 저하고 놀이 기구 타러가요.”
할머니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남자와 나는 걸었다. 식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갑자기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 놀이공원에 처음 와봐요. 유진 씨하고 할머니한테 무척 고맙네요. 유진 씨도 할머니 걱정 많이 했지요?”
“…….”
“제 느낌인데, 오늘 여기에 할아버지 오셨을 것 같아요.”
우리 앞에 회전목마가 나타났다.
“유진 씨, 우리 이거 타요. 별로 무섭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괜찮으니 수영 씨 혼자 타세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나는 남자를 끌고서 함께 회전목마를 탔다. 내 손을 뿌리치지 않을까 했는데 함께 타서 고마웠다.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만 탔다. 사람들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남자도 나와 비슷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할머니를 걱정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과 놀이기구 타는 사람을 보는데 할머니가 보였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할아버지 환영도 보였다.
“유진 씨, 저기 할머니 좀 보세요.”
남자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할머니에게 가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봐요. 유진 씨도 할아버지 환영 보여요? 할머니 얼굴 좀 보세요. 무척 행복해 보여요. 할머니에게 시간을 드려야죠.”
얼마 뒤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섯 살 남자아이를 찾는 거였다. 남자는 더 기다릴 수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할머니와 남자아이가 먼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할머니!”
할머니는 밝게 웃었다. 남자아이 엄마 아빠를 찾아주라는 말을 하고는 조금씩 희미해졌다.
“할머니…….”
할머니가 떠나고 두 해가 흘렀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유진과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곧 아이를 낳을 거다.
“유진 씨, 일층 보러 오늘 온다고 했어요?”
“아마 그럴 거예요.”
“좋은 사람이 오면 좋겠네요.”
초인종이 울렸다. 유진이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을 보고 우리 둘은 무척 놀랐다. 지난해 놀이공원에서 만난 남자아이 엄마와 아빠였다. 한 해 만에 만난 것이었는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만난 사람 같았다.
“유진 씨, 아기가 나오려나봐요.”
“그래요? 저기, 집 좀 부탁드릴게요.”
병원에 갔지만 아기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웃고 배를 쓰다듬었다. 할머니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힘내. 곧 예쁜 딸을 만날 거야.”
할머니 말처럼 딸이었고 아주 건강했다.
“유진 씨, 아기 예뻐요?”
“그럼요. 누구 딸인데.”
“있죠, 저 할머니 만났어요. 어쩌면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난 걸지도 몰라요.”
“정말 그럴까요?”
“네.”
유진과 나는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남자아이 식구는 일층으로 이사오고, 남자아이는 딸아이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남자아이와 딸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보였다. 우리는 놀랐지만 곧 웃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