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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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람이 평생 동안 만날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책을 빨리 읽느냐 천천히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전 책을 천천히 봅니다. 천천히 깊이 잘 읽는 게 아니고 책읽는 속도가 느립니다. 책을 자꾸 보다보면 조금 빨라지기도 하지만 아주 빨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떤 책을 읽었는지와 느낌을 잘 남겼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고 한해가 되었을 때쯤부터는 제가 읽은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수첩에 적었어요. 그건 지금도 해서 수첩이 몇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수첩이나 공책을 채우는 거 즐겁지 않으세요. 저는 그런 거 즐겁고 늘어나는 수첩, 공책 보는 것도 좋습니다(수첩은 작아서 괜찮은데 공책은 좀 커서 잘 둘 수 없군요). 맨 처음에 제가 읽은 책 제목과 작가를 적은 수첩을 넘겨보니, 읽고도 잊어버린 책이 많이 보였어요. 제가 읽은 책 제목은 잘 잊어버리지 않기도 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어버리는군요. 책 내용은 잊어버려도 오랫동안 그 책을 봤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저만 그런 건 아니겠네요.

 

 이제는 라디오 방송에서 새로 나온 책소개를 못 듣지만 몇달 전에는 들었어요. 그때 이 책 이야기도 조금 했습니다. 제가 다치바나 다카시 책을 한권이라도 만났는지 만나지 않았는지 생각나지 않아요. 한권쯤 만났을 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알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언젠지 생각나지 않는데, 다치바나 다카시 서재인 고양이 빌딩을 소개하는 방송 봤어요. 제가 텔레비전을 안 본 지 열해가 넘었으니 그것을 본 것도 열해가 넘었겠습니다. 고양이 빌딩뿐 아니라 다치바나 다카시도 그때 알았을지도. 오래전에 봤지만 인상이 깊어서 잊지 않았네요. 라디오 방송에서 책 이야기 들었을 때 서재 사진 찍는 거 힘들었겠다 생각했습니다. 여기 실린 사진은 책장 전체를 찍은 사진 한장이 아니고 책장 칸마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이어붙였어요. 컴퓨터로 사진을 이어붙였겠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이런 말부터 하다니. 그것보다 책만 두는 빌딩을 지은 게 놀라운 일이죠. 예전에도 그게 놀라워서 텔레비전 방송에서 소개했겠지요. 책은 그때보다 더 늘어났을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가진 책은 고양이 빌딩뿐 아니라 릿쿄 대학 연구실에도 있어요.

 

 한사람을 아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그 사람이 가진 책입니다. 그걸로 많은 걸 알 수 있다고 한 사람도 있군요. 책을 많이 모아둔 사람이어야겠습니다. 저는 책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것보다는 많지만. 이 말은 예전에도 했는데, 제가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책으로 가득한 방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책 좋아하는 사람은 한번쯤 생각하는 거지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겠습니다. 방 하나도 아니고 건물 통째를 책으로 채웠잖아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언론인 평론가로 글을 써요. 처음에는 문예춘추 출판사에서 기자로 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다치바나 다카시가 어떤지 알았을지. 아니 이 책을 보고 조금 알았네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관심 가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러 나라 말을 공부하고 책을 많이 봤어요. 이렇게 한줄로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군요. 책을 많이 보는 사람 공통점은 여러 나라 말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도 여러 나라 말 알았겠지요. 움베르토 에코도 이름만 알고 책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

 

 여기에는 다치바나 다카시 서재에 있는 책 이야기가 담겼어요. 책 사진도 많습니다. 자신이 읽은 책이라 해도 그것을 자세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못해요. 짧게는 말해도 길게는 못할 거예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잘 기억하고 있더군요. 자신이 좋아해서 읽은 것도 있고 책을 쓰려고 모아둔 것도 있었어요. 저는 잘 읽지 않는 쪽 책뿐이었습니다. 죽음을 말하는 건 아주 조금 봤지만, 다치바나 다카시가 가진 책을 보고 세상에는 아주 많은 책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 성을 말하는 책도 많고, 첩보기관, 스파이 이야기도 많더군요. 한번쯤 보고 싶다 생각한 건 리처드 파인만 책입니다. 과학을 잘아는 사람은 예전부터 리처드 파인만을 알았겠지만, 저는 몇해 전에 이름을 알았습니다. 철학도 그렇군요. 서양문명을 이해하려면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신학에도 관심을 가졌어요. 하긴 고대 사람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알려고 했네요. 지금은 통섭이라는 말을 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 그것을 다 이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그냥 아는 게 아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아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서재에 있는 책을 보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을 읽지 않나 했습니다. 많이 읽는 건 아니지만 읽기도 하더군요. 읽었다고 해야 할지도. 저는 소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국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고 시집도 팔립니다. 일본은 시 쓰는 사람이 얼마 없고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가봐요. 그래도 일본에는 오래전에 쓰인 하이쿠나 단카(와카) 같은 게 남아있어요. 그런 거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가진 책은 10만권에서 20만권 사이라고 하는데 20만권에 가깝겠지요. 제가 맨 처음에 한사람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이 어느 정도나 될까 말한 건 이것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몇천권밖에 읽지 못했어요. 언제 일만권이 될지. 책을 일만권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한번 거기까지 가 보고 싶습니다. 책 일만권 만나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해 보는 거 괜찮겠지요. 책을 많이 깊이 읽기는 좀 힘들겠습니다. 아주 깊이는 아닐지라도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낫겠지요. 잘 못하지만 그게 제가 책 읽는 방법입니다.

 

 저는 다치바나 다카시 서재를 보고 앞으로 책을 잘 읽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책이 좋아도 가끔 힘들기도 해요. 그런 때를 잘 넘기고 싶습니다. 책을 즐겁게 만나면 괜찮을까요.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달리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하기가 생각나는군요. 그것도 좋겠고 그것보다 쉽게 생각하면 그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펴고 읽으면 되겠지요. 앞으로 제가 어떤 책을 만날지 기대됩니다.

 

 

 

*더하는 말

 

 이 책을 봤을 때는 저런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다시 책읽기 힘들다 생각합니다. 난 이걸 왜 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책은 많지 않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책 때문에 조금 걱정스럽고, 많지 않지만 쌓아둔 게 있어서 그걸 보면서 저게 무너지면 어쩌나 합니다. 실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책이 무너졌습니다. 그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얼마나 정리를 못하면 그럴까 싶지요. 맞아요, 전 정말 정리 못합니다. 이런 창피한 말을. 책을 잘 정리해둘 곳이 없어요. 책 아주 많은 사람보다 많이 적은 편인데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군요. 저 같은 사람은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조금이라도 줄이면 좋을 텐데. 버리기 아까운 마음도 들고 정리하기 귀찮은 마음도 들어서 아직은 그대로 둘까 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정리하면 낫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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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9 0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 너무 많아져서 같은 책을 두 번 읽기 너무 어려워요.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팔게 되니까 팔기 전에 한 번 더 읽으려고 노력하게 되어서 좋은 거 같더라고요ㅎ; 읽다가 아니다 싶음 팔아요. 책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니 계속 놔둬도 안 읽을 확률이 높아서요. 읽고 싶다면 또 사겠지 싶기도 하고ㅎ; 미련두고 책 낡아가는 거 보는 게 점점 괴로워요^^;

희선 2017-07-02 02:32   좋아요 1 | URL
출판사가 잘 안 된다고 해도 책은 끊임없이 나오는군요 그렇다 해도 많은 출판사가 잘되는 건 아니겠습니다 한해에 책을 한권도 내지 못하는 출판사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곳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럴까요 좋아하는 책 여러 번 본다는 사람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해요 다 알지 못해도 다른 책이 보고 싶어서... 읽을 때 집중해서 보고 싶은데 늘 그러지도 못합니다 써도 시간이 가면 잊어버리는군요


희선
 
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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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말보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소설 제목 이야기다. ‘양과 강철의 숲’은 뭘까, 이건 피아노면서 조율사가 걷는 숲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건 나무지만, 피아노 안에 들어가는 해머는 양털로 굳힌 펠트로 만들고 해머가 치는 현은 강철로 만든다. 피아노 겉은 봤지만 안은 사진으로만 봤다. 피아노는 현악기일까 타악기일까. 두가지 요소가 다 들어간 악기 같다. 피아노 건반을 치면 소리가 나는데, 그건 피아노 속에서 건반과 이어진 해머가 현을 쳐서다. 피아노 치는 사람은 그것도 느낄까. 피아노를 배울 때 그런 걸 알았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난 그저 손가락으로 건반을 친다는 느낌만 알았다. 해머가 현을 쳐서 피아노 건반이 무거운가보다. 무겁다고 했지만 아주 무거운 건 아니다. 그건 기분 좋은 묵직함이다.

 

 도무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 이타도리가 학교 체육관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를 듣고 거기에서 숲 냄새를 맡았다. 피아노 소리에서 숲 냄새를 맡다니. 그 일은 도무라를 조율사가 되게 했다. 자기 삶을 아주 많이 바뀌게 하는 일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일이 찾아온다 해도 많은 사람은 그것을 잘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도무라는 산골 마을에 살고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아무 일이나 하고 살겠지 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만났다. 그게 피아노 조율이다. 도무라는 이타도리가 가르쳐준 조율 전문학교에서 두해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일하는 에토 악기에서 일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 소설은 도무라가 조율사라는 꿈을 갖고 그것을 이뤄가는 이야기가 아닌, 도무라가 조율사로 사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도무라 삶이 모두 담긴 건 아니다. 여기에는 도무라가 조율사로 살고 두해 남짓한 시간이 담겼다. 도무라는 여전히 조율사로 살겠지.

 

 글렌 굴드 피아노 이야기를 보고 피아노에 조율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를 오랫동안 조율한 사람은 베른 에드퀴스트다. 피아노 연주는 듣기 좋지만 조율하는 소리는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어긋난 피아노 소리를 잘 맞추면 무척 기쁘겠다. 피아노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피아노만 생각하면 안 된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바라는 소리를 시작해 어디에서 치는지 어떤 곡을 치는지도 조율에 영향을 준다. 도무라가 조율 전문학교를 마치고 조율사가 됐지만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다. 도무라는 조율 보조로 따라간 곳에서 쌍둥이를 만난다. 도무라는 쌍둥이에서 언니 쪽인 가즈네 피아노를 더 좋아했다. 어떤 사정으로 쌍둥이가 피아노를 칠 수 없었을 때 도무라는 그게 가즈네가 아니기를 바랐다. 시간이 흐르고 가즈네는 피아노와 살기로 마음먹는다. 피아노로 먹고사는 게 아닌 피아노와 살겠다니. 도무라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는 피아노와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조율사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피아노를 자주 치면 소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건 피아노 조율을 자주 해서일 수도 있겠다. 피아노를 자주 치지 않으면 소리가 어긋날 일은 없을 테니 조율은 거의 하지 않겠지.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느냐에 따라서도 조율이 바뀐다. 연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잘 쓰지 못하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건 아쉽지만. 피아노를 아주 치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피아노가 좋고 조율을 아주 잘해도 그 소리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조율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피아노 치는 사람이 가진 것을 알게 하기도 한단다. 피아니스트가 되려 한 아키노는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를 치고 연주자가 아닌 조율사가 되었다. 이루지 못할 꿈을 언제까지고 잡고 있기보다 놓는 용기도 있어야겠다. 아키노가 피아노에서 아주 멀어진 것도 아니다. 아키노가 조율사가 된 건 피아노를 좋아해서겠지. 쌍둥이 동생 유니도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고 조율사가 되기로 한다.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하려고. 나중에 도무라와 유니 두 사람에서 누가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했을까. 둘 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도무라는 가즈네가 칠 피아노 조율을 먼저 했다.

 

 이야기가 좋아도 그것을 잘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러 가지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도무라가 부러웠다. 도무라가 조율사가 되고 헤매기도 하지만, 이타도리는 그런 도무라한테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피아노 조율은 잠깐 하고 잘하게 되는 게 아니겠지. 조율만 그런 건 아니다.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143쪽)” 힘을 주는 말이지만 어떤 일이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난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게 없는 걸까. 또 나를 생각하다니. 도무라가 어떻게 하면 조율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난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고 잘 쓸까 생각했다. 도무라가 조율을 그만두지 않기로 한 것처럼 나도 책읽고 쓰는 걸 그만두지 않아야겠다 마음먹었다.

 

 피아노 조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이다. 피아노 연주회에서 누가 피아노를 조율했는지 알고 싶어할까.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은 다르겠다. 피아노는 자기 악기를 가지고 다닐 수 없어서 어떤 피아노든 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피아노여도 조율이 자신한테 맞으면 잘 치겠다. 세상에는 조율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게 많을 거다. 삶은 헛되지만 헛된 일은 없을지도. 도무라가 양과 강철의 숲을 걷듯, 난 나만의 숲을 걸어야겠다. 앞으로는 피아노 소리 잘 들어볼까 한다. 나도 도무라가 맡은 숲에서 나무가 흔들리는 냄새 맡아보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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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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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사는 게 어려워도 자라면 조금 나아지기도 합니다. 이건 모두한테 해당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어릴 때뿐 아니라 자라서도 바라는 걸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자신이 겪은 일을 남이 겪게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담긴 소설에서 마지막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작은 사람들의 노래>에서 균은 어린시절 어머니한테 버림받고 아이를 가두고 굶기고 때리는 보육원에서 자라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다른 곳에서 자라요. 보육원에는 자원봉사로 성가대원이 와서 노래했지만,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당하는 일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균은 용접 일을 했는데 조선소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송이 죽습니다. 균은 송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균이 증언하지 않겠다고 한 건, 송이 죽게 된 일에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예요.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안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회사 쪽이겠지만, 동료가 죽게 된 일에 자신은 아무 상관없다 말하다니. 균이 고아로 자라고 균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어머니가 없는 건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만, 송한테 사고가 일어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은 건 안 좋게 보였습니다. 균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았겠지요. 어릴 때 보육원에서 들은 노랫소리를 들은 걸 보면.

 

 진짜 마음은 다르면서 좋은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송의 어머니는 송이 살았을 때 균이나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아무 때나 놀러오라고 해요.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많은데 그러지 마세요.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도 하니까요. 손보미 소설 <임시교사>에서도 아이를 맡기는 엄마가 P부인한테 ‘내 집처럼 생각하세요’ 하는군요. 그런 말은 인사치레일 때가 많지요. 정말 그런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만. 균은 배신당한 것 같은 마음을 한번 더 느낍니다. 필리핀에 사는 가난한 아이 앨리를 후원하는데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구호단체에서 보낸 엽서를 받습니다. 균은 앨리를 자기 딸처럼 여겼는데, 앨리한테 돈을 보내는 건 균만이 아니었어요(어떤 한 사람과 자신이 가장 친하다 여겼는데 그 사람은 누구나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겠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죠. 한사람이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겠지요.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보내는 돈이 아주 많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부터 구호단체에서 균한테 한 아이한테 여러 사람이 돈을 보낸다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싶네요. 균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고아처럼 산 권은은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로 빛을 보고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됩니다. 시사잡지사 기자인 ‘나’는 스무해 만에 권은을 만납니다. 권은한테 카메라를 준 사람이 바로 ‘나’예요. ‘나’가 어렸을 때 권은한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준 건 그것을 돈으로 바꾸기를 바라서였는데, 권은은 카메라가 생긴 다음 어두운 방에서 나오고 다시 학교에 다녀요. 권은한테 카메라는 빛이었습니다. 권은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알마 마이어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여겨요. 알마 마이어는 유대인으로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1940년에 게토나 수용소에 끌려갈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때 알마 마이어와 사귀고 호른을 연주하던 장이 알마 마이어를 숨겨줘요. 알마 마이어가 숨어 있던 곳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장은 음식과 함께 자신이 작곡한 곡 악보를 그 안에 한장씩 넣어줬어요.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알마 마이어한테 악보는 내일을 꿈꾸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그 뒤 알마 마이어는 미국으로 갑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는 알마 마이어 아들 노먼 마이어가 유대계 미국 사람으로 팔레스타인에 구호품을 보내려다 공격받고 죽은 다음에 알게 됩니다. 노먼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구호품을 팔레스타인에 보내려 한 건 장이 알마를 살린 일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나’는 권은을 살렸네요.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그 일이 알려질 때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남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그 일을 잊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잊지 않지요. 누군가를 만나고 지금까지 닫은 마음을 연 사람도 있습니다. <동쪽 伯의 숲>에 나오는 한나가 그랬습니다. 한나는 아버지가 나치가 일으킨 전쟁을 찬성한 일을 알고는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 했는데, 독일에 공부하러 온 한국사람 안수 리를 만나고 마음이 바뀝니다. 하지만 안수 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한나는 안수 리를 찾지 않습니다. 이 소설 배경에는 예전에 있었던 ‘동백림 사건’이 나오더군요. 동 베를린을 1960년대에는 동백림이라 했나봐요. 시간이 많이 흐르고 한나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자인 발터는 독일작가와 아시아 작가 교류의 밤에서 한국사람 희수한테 안수 리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요. 발터는 안수 리가 한나의 죽음을 알고 슬퍼해야 한나의 삶이 온전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 (100쪽)”입니다. 안수 리는 이름을 바꾸고 살았습니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힘든 일을 겪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 독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안수 리는 부끄러움 때문에 살았다고 해요. 알듯말듯한 말입니다. 좋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겠다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시대 때문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또 나오는군요. 세번째 소설입니다. 예전에 이 소설 제목 ‘사물과 작별하기’ 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소설은 1967년이고 이건 1971년으로, 같은 사람이 한국을 자기 마음대로 했군요. 역사라는 큰 흐름 안에는 개인이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작은 줄기를 만날 수 있지요(언젠가도 이 말 했을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 좋아하게 된 서군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 고모는 죄책감도 갖고 있었습니다. 서군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재일 조선사람으로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는데, 고모는 그것을 자신 탓으로 여겼어요. 서군이 고모한테 잠시 맡긴 원고뭉치를 고모가 서군이 다니는 학교 사람한테 건네고 서군이 잡혔습니다. 고모는 원고뭉치를 받은 사람이 기관원이었다고 여겼지만, 서군이 잡힌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어요. 알츠하이머병으로 고모는 여러가지를 잊었는데 서군만은 잊지 못했어요. 소설을 이끌어가는 조카 ‘나’는 고모와 서군을 만나게 해주지만, 고모는 서군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말을 합니다. 좀더 일찍 서군과 고모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동쪽 伯의 숲>에서도 한나가 안수 리를 다시 만날 일을 두려워했군요. 고모와 서군은 옛시대가 잃어버린 물건 같은 걸까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개인이 힘들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잖아요.

 

 정치 때문에 피해를 입은 개인도 있고, 가난한 나라에서 기회가 많은 미국으로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사람만 미국으로 간 건 아니군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미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요. <번역의 시작> <잘 가, 언니> <시간의 거절>에는 미국으로 간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잘 가, 언니>에 나오는 언니는 <시간의 거절>에 나오는 화가 제인 김으로 바뀐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을 여기 실린 소설에서 느꼈는데 생각나는 건 하나뿐입니다. <잘 가, 언니>는 슬프기도 해요. 심장이 안 좋은 동생 때문에 언니는 자기 꿈을 놓아버리고 일을 한 지 얼마 안 돼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대학원생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동생이 세번째 심장수술을 받을 때, 언니가 강도 총에 맞고 죽어요. 고등학생 때는 앞으로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나이를 더 먹으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언니가 고등학생 때 꿈을 아주 놓지 않고 언젠가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습니다. 동생은 언니를 대신해서 자유롭게 살았지만, 늘 언니를 생각해요. 동생은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언니를 보내줍니다.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고 붙들고 사는 것도 좋지 않겠지요.

 

 지금은 철학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이건 옛날부터 그랬을지도). 언젠가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제 철학은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인문학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없애다니. <산책자의 행복>에서 미영은 스무해를 대학에서 철학 강사를 하다 일자리를 잃고, 암에 걸린 어머니 치료비를 대다 개인파산까지 합니다. 미영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철학을 가르칠 때 한 말과는 다르게 행동해요. 편의점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오면 모르는 척해요. 미영처럼 하는 사람 많겠지요. 철학은 지금 미영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미영은 마지막으로 학생을 가르칠 때 만난 중국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메이린이 독일에서 전자편지를 보내도 답장하지 않아요. 메이린이 미영을 만난 건 한국에서 사귄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힘들 때였어요. 미영은 메이린한테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127쪽)” 합니다. 미영이 메이린한테 그런 말을 했지만, 어쩐지 지금 미영은 그러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미영은 개한테 쫓긴 뒤에 살고 싶다 생각합니다. 메이린이 보내는 전자편지가 나오는 건 미영이 그걸 본다는 거겠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메이린이 답장 없는 전자편지를 몇해 동안 보내지 않았겠습니다. 함께 말을 나누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누군가 있다는 게 힘이 되겠지요. 이 생각은 해설 때문에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주>는 다른 나라에 입양된 나나가 문주라는 이름 뜻을 찾으려는 이야기예요. 이름 뜻보다 자기 정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책을 보면서 걱정했는데, 어떻게든 썼네요. 첫번째 소설 <빛의 호위>는 따듯한 이야깁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거의 다 어둡지만 따스해요. 마지막에 실린 <작은 사람들의 노래>는 좀 다르군요. 소설이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겠지요. 균은 소설 바깥에서 다르게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희선

 

 

 

 

☆―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자의 행복>에서, 142쪽)

 

 

 비가 온다 해도 피하지 않고 젖은 몸으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삶은 그곳에도 있을 터였다.  (<시간의 거절>에서,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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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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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황인숙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처음 본 시는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다. 이 기억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 시는 친구가 알려주었다. 그 뒤에 그 시가 담긴 시집을 사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그 시집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황인숙 시집을 다 산 건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산 게 《리스본行 야간열차》(2007)다. 그게 나왔을 때 산 건지 나중에 산 건지. 지난 시간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때가 많은 건 아니지만, 어느 때부터는 흐릿하다. 흐릿한 시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대로 흐릿하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슬프구나. 흐릿하게 지냈다 해도 어떤 건 생각나기도 한다. 늦은 밤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한 것. 사는 데 별로 도움 안 되는 거다. 본래 그런 거 아닌가, 자신이 좋아하는 건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한다. 내가 그걸 엄청 좋아했던 걸까, 그저 시간을 보내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별로 쓸쓸하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황인숙 시를 어떻게 봤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걸 보기 전에 예전 것을 한번 봤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를 텐데 게을러서 그러지 못했다. 시가 어둡지 않고 밝았다는 인상만 생각났다. 시말이 통통 튀었던가. 여기 담긴 시에도 그런 느낌이 있다. 그렇다 해도 시가 아주 밝지는 않다. 밝고 맑게 보이지만 시에 흐르는 정서는 쓸쓸함과 슬픔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전에 쓴 시도 그랬을까. 2015년엔가 《리스본行 야간열차》를 가끔 펴보기도 했는데, 다 읽지 않고 조금만 봐서 잘 모르겠다. 아니 거기에도 쓸쓸함이나 슬픔이 있었을 거다.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시로 쓴다고도 한다. 기쁜 일을 쓰는 적이 없지 않겠지만 슬픔이나 아픔을 더 많이 쓰겠지. 김기택 시인은 시 쓰기를 우는 방법에서 하나라고도 했다.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그림자에 깃들어>에서, 9쪽)

 

 

 

 모든 게 슬프게 보이는 건 자기 마음이 슬퍼서구나. 나도 가끔 어떤 모습을 보면 슬프기도 했다. 어쩐지 지금은 덜한 것 같다. 별로 마주치지 않아서일지도. 나를 슬프게 한 건 길가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사각형 통 안에 든 햄스터, 철창 너머에 묶인 강아지다. 큰 개는 길에서 만나면 무서운데 줄에 묶인 개는 안되어 보인다. 자신도 잘 모르는 슬픔을 느끼는 건 언젠가 끝이 찾아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 아직 젊었을 적에

젊은 줄 모르고 젊었지

그때는 아무도 내게

젊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늙었다고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이 없네  (<아현동 가구 거리에서>에서, 37쪽)

 

 

 

점심시간 막 지나

황성자 씨 가방 챙겨 나간다

─아줌마, 어디 가세요?

─집에 가

─왜요?

─김 반장이 가래네

황성자 씨 순한 눈

끔벅, 끔벅하면서

얼굴 붉히고 웃는다

 

황성자 씨가 화장실 갔다가

작업대로 못 돌아오고 공장을 헤맬 때면

젊은 아가씨들 킥킥거렸다

 

37년 다닌 공장

더 다니려고 숨겨온 치매

기어이 들키고 말았네

 

-<미로>, 137쪽

 

 

 

 시인 황인숙은 1958년생이다. 내가 시인을 알았을 때 본 시에는 젊음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나이 듦이 보인다. 이상은 노래 <언젠가는>에서도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한다. 젊을 때는 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지만 나이 들면 나이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구나. 한국은 나이 드는 걸 슬프게 생각하게 한다. 젊을 때 힘들게 일하고 나이 들고 그제야 조금 편하게 살려고 하니 병이 들기도 한다. 황인숙 동생은 나이 들고 로또를 샀다. 시인 동생이 그 시를 보고 “누나, 이런 시는 왜 썼어.” 했을 것 같다. 잘 걸어다니지 못하는 할머니가 높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슬프게 보인다. 할머니를 모시는 걸 테지만 할머니는 갇혀있다는 느낌도 들 거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먹고 늙는다. 그다음에는 세상을 떠나겠구나.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만큼 자신이 늙는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먹는 걸 우울하게 생각하기보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다 생각하고 사는 게 낫겠지만. 나이 든 분 마음도 조금 헤아리면 좋겠다.

 

 

 

어제도 그제도 오셨으니

내일도 오실 거죠?

모레도 글피도,

언제까지라도 오실 거죠?

 

네 부드러운 레몬빛

눈 속에서 아른거리는 딱정벌레

가냘픈 기대

 

아니야, 아니!

영원히는 지키지 못할 그 눈빛

네 연한 레몬빛

내 머릿속에 시리게 쏟아지네

 

차라리 얼른 저버릴까

영원히는 지키지 못할 그 약속

가슴 저미네

영원히는 뛰지 못할 내 가슴

 

-<영원히는 지키지 못할 그 약속>, 34쪽

 

 

 

 지금 한국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황인숙은 1984년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뽑혔다. 황인숙을 시인이 되게 해준 시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갔다니. 몇해 전에는 《도둑괭이 공주》라는 소설도 썼다. 거기에는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시집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많다.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다 안 좋은 말을 듣고, 어떤 아파트 사람은 그곳 지하실 문을 닫고 새끼를 모두 죽게 했다. 그냥 잠시 살게 해도 될 텐데. 길에서 사는 고양이뿐 아니라 길에서 사는 사람 이야기도 조금 있다. 길에서 길고양이를 봐도 나쁜 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고양이에는 주인이 버린 것도 있을 거다.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기르지 않았으면 한다. 황인숙 시는 고양이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시를 고양이처럼 쓰는가 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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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울 것

  임경선

  예담  2017년 01월 30일

 

 

 

 

 

 

 

 

 

 

 

 

 

 

 

 산문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 삶이 많이 드러나기도 한다. 산문이라고 해서 자기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니지만. 산문에는 자기 둘레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평소에 관심 가진 일을 깊이 있게 쓰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니 많은 글이 산문이구나. 임경선은 소설도 쓰는데 소설은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난 ‘연애’와 연이 없어서 말이다. 이 말 다른 책 보고도 했는데, 임경선 책이었던 것 같다. 연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또 같은 말을 하다니 그런 내가 좀 우습다. 그렇다고 그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임경선이 쓴 소설이 그렇고 에쿠니 가오리나 아니 에르노 그리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연애소설 쓰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게 사랑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누군가한테는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겠다. 사랑은 남녀 사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난 넓은 사랑을 생각하면 괜찮겠구나. 어쩌다 이런 말로 시작했을까.

 

 가끔 책속에 나온 작가 소개를 보면 작가가 언제 태어났는지가 없을 때가 있다. 그걸 작가가 쓰지 않기로 하기보다 편집자가 빼자고 할 때가 더 많을까.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임경선한테 어떤 편집자가 나이를 빼자고 말했다. 나이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데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좋게 보일 텐데. 언제부턴가 한국은 나이 많은 사람을 안 좋게 보게 되었다. 나라고 다르지 않구나. 난 나이만 먹고 한 게 없어서 더 그렇기는 하다. 지금까지 대체 뭐하고 산 건가 싶어서. 그렇다고 바라는 삶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지금 삶에 만족하고 살아야겠지. 임경선이 행복과 욕망은 다르다고 말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말도 여러 번 했는데 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거 없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울함에 빠진다.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지. 그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하고 임경선이 비슷한 게 하나 있다. 그건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로 말하기보다 편지(임경선은 전자편지)로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거다. 임경선은 스물다섯에 회사에 다녔다. 그때 친구와 거의 날마다 전자편지를 주고받고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인쇄하고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도 하다니. 아쉽게도 난 전자편지를 오랫동안 나눈 친구는 없다. 그것도 쓰다보면 쓰겠지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쓴다 해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못할 거다. 아니 이건 예전부터 그랬다. 가끔 책이나 영화에서 여자친구끼리 별 이야기를 다 하는 걸 보고 여자친구는 저런 건가 하기도 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난 하지 않는 쪽이다. 나한테 쓴 편지에 이런저런 말을 한 사람도 별로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조금이라도 할까. 지금은 전자편지를 거의 쓰지 않지만, 여전히 편지를 쓴다. 내가 더 아날로그스럽지 않나 싶다. 편지를 좀더 재미있게 쓰면 좋을 텐데. 아니 별거 아닌 말이라도 써서 보내고 싶다. 조금은 가볍게 생각해도 괜찮을 텐데 싶다.

 

 예전에 임경선이 하루키 이야기를 쓴 것을 보고, 임경선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한사람 더 말했다. 줌파 라히리다. 나도 많이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고 그 소설가를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주 많이 좋아하는 소설가는 없을지라도 비슷비슷하게 좋아하는 소설가는 많다. 한사람 한사람한테 좀더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만나면 조금은 소설이나 소설가를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소설가가 단 한사람인 사람은 없을 거다. 임경선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서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게 여겼다.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온 세계 사람이 놀라고 재미있게 생각했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문학이 넓어졌다 생각했을 텐데. 밥 딜런이 받고는 사람들이 문학을 더 넓게 생각하겠다. 이건 좋은 일이겠지.

 

 난 친구가 아주 적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인터넷이라고 다르지 않다. 임경선도 친구가 얼마 없다고 했는데 나보다 많아 보인다. 그건 당연한가. 나보다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 그렇겠다. 사람은 왔다가도 떠나간다. 그것을 좀더 잘 받아들이고 싶다. 임경선은 그런 걸 잘하는 것 같다. 상대가 자신이 한 말에 기분 나빠 한다 해도 할 말은 했다. 그게 더 나은 거기는 하다. 일부러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면 자신이 힘들다. 나도 잘 못하는데. 아니 어떤 때는 아쉽기도 하다.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그건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과 잘 지내도록 해야겠다. 사람 관계도 흘러가는 물과 다르지 않다. 흘러가면 흘러가는대로 두는 게 낫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가끔 남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나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살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을 끄는 것을 편하게 하기.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도 어려움은 찾아온다. 그런 게 없는 건 없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것을 즐기면 괜찮겠지. 임경선은 글을 그렇게 쓰고 책을 냈겠다. 남을 부러워해도 자신은 그 사람이 될 수 없고, 자신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난 앞으로 자유롭게 나로 살까 한다(말은 이렇게 해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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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06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십니까^^ 전자인사/
얼마전에 줌파 라히리 책 읽다가 저랑 호흡이 잘 안 맞아서 덮고 다른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ㅎ;
사람 관계도 그런 거 같아요. 늘 좋을 수만 없고 전혀 친해질 수 없는 사람도 있고...

희선 2017-06-07 02:53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괜찮게 보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건 연기하는 사람, 그것도 일본 사람... 제가 처음 봤을 때 한 역이 별로여서 안 좋은 인상이 죽 남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른 데서는 괜찮은 사람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연기자보다 그 사람이 연기한 사람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도 처음에는 뭔지 잘 모르다가 시간이 흐르고 보면 다르기도 하더군요 그런 일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저는 처음에 별로다 생각하면 그게 죽 가기도 해요 다르게 보려고도 해야 할 텐데... 인터넷 안에서도 사람을 잘못 보기도 하죠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