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 차가운 면이 있는가 하면 따스한 면도 있다. 사회는 서로 경쟁하게 하기도 하고, 서로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더 크게 볼 것인지 그건 자기 마음에 달린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도 자신이다. 옳은 답은 없지만, 누군가한테 아픔을 주기보다 힘든 사람 곁에 말없이 있어주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거짓과 참된 것이 뒤섞인
거의 모든 거짓말
전석순
민음사 2016년 05월 10일
난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런 말로 시작하다니. 거짓말 안 해 본 적은 없지만 일부러 거짓말 하지는 않는다. 난 거짓말 하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이야기.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일까. 남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말하는 건 별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뭐라 하면 좋을까 하고 거짓말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나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말한 사람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고 하는 거다. 그런 건 그냥 믿는 게 낫겠다. 이 소설을 보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실제로는 거짓말 자격증이 없지만, 거짓말로 먹고사는 사람은 있을 거다. 이건 사기를 말하는 건 아니다. 소설도 거짓말이다 하지 않는가. 소설가는 거짓말로 먹고사는구나. 그밖에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어떤 말에든 화내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마음속을 부글부글 끓어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겠지. 거짓 웃음을 웃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 연기자는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
갑자기 참된 것과 거짓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은 여기에서도 한다. ‘나’는 거짓말 자격증 1급을 따려고 일을 하는데, 남한테 거짓말 친다 여겼는데 자신이 속고 만다.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고 치는 거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거짓말을 친다니 재미있기도 하다. ‘나’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거짓말을 하는 게 나오는데, 그것을 보니 난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거짓말도 하면 마음이 안 좋은데. 난 다른 사람이 싫어할 말뿐 아니라 좋아할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좋아할지 잘 모르는 건지도. 그것도 있지만 그런 말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좋은 말도 잘 못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겠다. 이건 거짓말 치는 것과 좀 다른가. 어린이는 자기한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고 거짓말 하기도 한다.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이 아닐 때도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소설 속에서는 거짓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잘 구했다. 거짓말 자격증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까. 그건 어쩐지 감시 감기도 하다. ‘감사’라는 말도 있지만. 햄버거 가게라면 손님한테 인사하는 것부터 가게 청소는 잘 되었는지 위에서 하라고 한 걸 했는지. 그런 일을 백화점과 레스토랑에서도 하게 한다. 실제 그런 걸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 몰래 보러 다니는 사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뿐 아니라 ‘나’ 엄마도 거짓말을 친다. ‘나’ 엄마는 결혼식에 가서 가짜 친척을 연기했다. ‘나’는 까다로운 일 두가지를 해내면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으리라 여겼다. ‘나’가 거짓말을 잘 쳐서 남자와 소년이 ‘나’를 좋아하게 됐다면 ‘나’는 1급이 됐을까. 자신과 사귀는 사람이나 남편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 좀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런 사람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짜 같으면서 진짜처럼 보이는 건 소설을 잘 써서일까.
부모가 하는 거짓말은 속아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이 어려워도 그걸 아이한테 말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나’ 엄마가 하는 건 공갈보다 허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좀 쓸쓸하게 여겼다. 차라리 엄마가 거짓말 치기를 바랐다. 나이 든 부모를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식구 이야기도 나오고 거짓말 치게 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소설을 다 읽으니 여기에는 거짓말과 참된 게 섞여있는 것 같았다. 소설은 거의 그렇기는 하다. 이 소설 재미있게 보이면서도 뭔가 서글픈 느낌도 든다.
☆―
거짓말은 나쁜 아이가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친다. 있는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굳이 거짓말에 손댈 필요는 없다.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결국 거짓말을 치게 만드는 건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거짓말은 사랑해 달라고 보내는 삶의 첫번째 신호일지도 모른다. (71쪽)
“늙었다고 잘 속는 줄 아니?”
“그럼?”
“잘 속는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기댈 곳 없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들이 어물쩍 거짓말에 기대는 거야.” (150쪽)



꽃과 사람
기쁨의 정원
조병준
샨티 2016년 06월 30일
몇해전, 이렇게 말했지만 아마 열해는 넘지 않았을까 싶어. 조병준 아저씨를 안 게. 아니 그것보다 먼저 책으로 알고 PAPER에서 글을 봤을 거야. 그 뒤에 병준 아저씨 블로그를 봤던 것 같아. 여기에도 그런 말 나오는데, 그건 블로그에 옥상에 핀 꽃 사진과 글 올렸다는 이야기야. 이 책 이야기 들었을 때 내가 떠올린 건 병준 아저씨 블로그야. 자주 가서 글을 보거나 댓글을 쓰지 못했지만 한때 알았어. 난 병준 아저씨를 기억해도 병준 아저씨는 나를 잊었겠지.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여전히 병준 아저씨 블로그가 있지만. 이 책을 보니 지금은 블로그보다 다른 곳에 글을 쓰는 것 같아. 많은 사람이 하는 그거 있잖아, 얼굴책. 거기에 쓰는 게 더 편한 사람도 있는 거겠지. 지금도 거기에 이런저런 글을 쓸지도 모르겠어.
예전에 오랜만에 병준 아저씨 블로그를 보았는데, 그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어. 다음에 봤을 때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둘 다 봤는지 하나만 봤는지. 우연히 그런 소식을 알게 돼서 참 이상했어. 그 뒤에도 가끔 생각하기도 했어. 이제 책 나오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만 하고 블로그는 안 보고 병준 아저씨 잘 살겠지 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병준 아저씨 몸이 안 좋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알면 그걸 바람이 알고 가르쳐 주는 걸까. 느낌이 있었다 해도 내가 지나쳤군. 그때 알았다 해도 내가 무언가 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저 병준 아저씨 몸이 나아지기를 바라기만 했겠지. 병준 아저씨한테는 좋은 사람이 많아. 친구 동생 조카……, 친구는 다른 나라에도 많아. 병준 아저씨는 여기저기 다니는 거 아주 좋아하거든. 예전에 서른살엔가 하던 일 그만두고 길을 떠났어. 그렇게 길을 나서고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 그게 《길에서 만나다》라는 책으로 나왔어.
서른살 뒤부터 어딘가에 다니는 것이 병준 아저씨 삶이 된 것 같아. 한번은 인도 콜카타에 머물면서 봉사활동을 했어. 그건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에 담겨있어. 내 기억이 정확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예전에 블로그 글 보면서도 병준 아저씨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한번 떠나면 그걸 그만둘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병준 아저씨도 그런 사람이야. 나랑은 반대지. 난 어디 다니는 거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병준 아저씨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 지금까지 쓴 책은 거의 사람 이야기야. 여기저기 여러 나라에 친구가 있다니 대단해. 그런 거 아무나 할 수 없기도 해.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서로 잊지 않아. 이것도 부러운 점이야. 난 그렇게 못해.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겠지.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고 병준 아저씨는 옥상 뜰을 가꿔. 그게 엄청 넓거나 멋지지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뜰이었어. 단호박을 먹고 난 다음에 그 씨앗을 심다니,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아니 병준 아저씨는 식물을 예전부터 좋아했어.
옥상에 만든 뜰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꽃뿐 아니라 채소도 있었어. 채소 기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여. 잡초가 끈길지게 나고 여러 벌레가 꼬였어. 벌레는 그런 거 잘도 알아내고 찾아오지. 사람이 식물을 먹기 좋게 길들인 게 아니고 식물이 사람을 길들였다고 해. 이 말 다른 책에서도 봤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 병준 아저씨는 채소를 기르면서 세계를 생각하기도 해. 생물은 여러 가지여야 하는데 많은 게 사라지고 사람이 먹는 것만 많이 기른다는. 이것도 맞는 말이야. 그것 때문에 지구는 오염되고 기온도 올라갔지. 잘사는 나라는 음식을 버리기도 하는데 못사는 나라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기도 한다니. 남는 거 버리지 말고 굶는 사람한테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잘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모두 잘사는 건 아니잖아. 잘사는 나라에 사는 못사는 사람한테 남는 게 도움이 되겠지. 다른 나라 사람도 생각하면 좋겠어.
채소에도 꽃이 핀다는 거 알아. 사람이 먹는 것은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지. 꽃이 피기 전에 다 거두니까. 채소에 피는 꽃도 잘 보면 예뻐. 그런 걸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식물을 기르는 것이 마음을 좋게 할 때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기도 할 거야. 병준 아저씨는 어디 갈 때면 옥상 뜰이나 식물을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는데 죽기도 했어. 그런 모습 봤을 때는 차라리 기르지 말지 했어. 부탁할 사람이 있으면 좀 나은 걸지도. 병준 아저씨가 다른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꽃이나 채소가 허전한 병준 아버씨 마음을 달래줬을 것 같아. 그러니 그걸 그만두지 못하는 거겠지. 병준 아저씨한테 꽃과 사람은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그곳에 있으면서 병준 아저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게.
병준 아저씨 앞으로 몸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아야 친구 만나러 가지요. 친구 만나고 돌아오면 그 이야기 또 들려주세요.
희선
☆―
겨울엔 조금 외롭고 쓸쓸해도 된다.
겨울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씨앗도 뿌리도 잠자는 시간엔
사람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늘어져도 된다.
쉬라고, 자라고 겨울이 오니까.
그렇게 쉬어야, 잘 자야
또 깨어나고 또 피어날 테니까.
겨울엔 조금 많이 외롭고 쓸쓸해도 된다.
그래야 기쁨의 봄이 오니까.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