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

 

 

 

매운 바람속에 숨어 있는

당신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

 

 

 

 

 

 

 

알려는 마음과 알리는 것

 

  왕과 서커스   王とサーカス (2015)

  요네자와 호노부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2016년 06월 27일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제목으로 썼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닌데, 이건 고전부 시리즈하고 아주 다르네요. 제가 잘 모르는 거고 아주 다르지 않기도 할까요. 요네자와 호노부 소설은 지금까지 세권 읽고 이번이 네번째예요. 여러 권 읽는다고 그 작가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책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지 하는 작가는 아닙니다(작가한테 미안한 말이네요). 제가 책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하는 작가는 얼마나 될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네요. 볼 수 있으면 보고 못 보면 말지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런 말 처음 하는 거 아닌데, 예전에는 책이나 CD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제가 크게 바라지 않는 마음이어서 저 자신도 그런가봐요. 왜 저를 말했느냐 하면, 제가 어떤 글이든 쓰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보니 어떤 분은 자주 글을 쓰기를 바라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그렇게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별로 잘 알려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그랬네요. 저는 많은 사람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글을 잘 써야 하는데, 또 보고 싶게 쓰지 못하는군요. 다른 노래도 들어보고 싶게 하는 목소리가 생각나다니.

 

처음에 저는 여기 나오는 다치아라이 마치를 남자로 생각했습니다. 마치는 여자 이름일지도 모를 텐데 그랬습니다. 기자고 네팔에 혼자 가서 그랬나봐요. 여자라고 네팔에 혼자 못 갈 거 없고 여자 기자도 많은데. 마치는 본래는 신문기자였는데 그 일을 그만두고 자유기고가가 됐어요. 네팔에 간 건 새로 하는 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는데, 왕궁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요. 황태자가 부모와 형제를 죽였다고 합니다. 마치는 왕궁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알려고 군인을 만나는데 그 사람이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습니다. 등에는 INFORMER(배신자)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치는 그 사진을 찍고 그것이 왕궁에서 일어난 사건과 상관있을까 하고, 자신이 그 사람을 만나서 죽임 당한 걸까 합니다. 마치가 잘 생각하니 거기에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처음 생각한 대로 기사를 썼다면 마치는 많은 사람한테 비난을 들었겠지요. 아무 상관없다는 게 드러나도 마치는 안 좋았을 겁니다. 다시는 기자로 지낼 수 없었겠지요.

 

네팔이라는 나라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기자 같은 사람이 네팔이나 그쪽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알려서 세계 사람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거겠지요.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고 안 것을 다른 사람한테 알리려고 하는 건 기자만이 아닐 거예요. 이 책을 보니 어떤 것은 알려져서 좋아졌지만 어떤 것은 안 좋아지기도 했더군요. 알고 알리는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기자한테는 부조리한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팔에서 갓난아기가 쉽게 죽는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갓난아기가 덜 죽게 되었지만, 안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알려지고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답니다. 이런 일 다른 데서도 본 적 있네요. 안 좋은 것을 세상에 알리면 거리로 나가야 하기에 그대로 두라고 하는 거. 사람들한테 알려진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한 다음에 알리면 어떨까 싶은데, 기자가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어린이가 일하는 곳도 많지요. 그것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다 해도 그것을 아주 못하게 할 수 없잖아요. 그 아이가 집안 식구를 먹여 살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곳을 없애는 것보다 일하는 환경을 바꾸는 게 더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밖에 못하다니. 어른이 일할 곳을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빠르게 알 수 있어요. 언젠가는 전쟁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더군요. 저는 텔레비전을 안 봐서 몰랐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슬픈 일이 재밋거리가 되기도 한다니. 그런 것을 다룰 때는 좀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못된 것이 없는지 거듭 확인하고 알리면 좋겠습니다. 잘못 알리는 것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치는 자신이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는 것과 알리는 것을 깊이 생각하더군요. 무엇인가를 알리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요. 제대로 알아보고 참된 것을 전하려 애써야죠. 자극이나 재미가 아닌. 이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만 그런 건 아니네요.

 

 

 

 

☆―

 

“부디 명심하십시오. 고귀한 가치는 연약하고, 지옥은 가깝습니다.”  (495쪽)

 

 

 

 

 

 

 

 

 

 

잘하는 게 없어도

모자란 게 많아도

내가,

나임을 좋아하고 싶다

 

 

 

 

 

 

 

다름과 같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가기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다. 반반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가 균형이 맞았을 때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과학 의학이 발달하고 달라졌을 거다. 한국만 남자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을 거다. 중국은 땅이 넓지만 사람도 아주 많아서 나라에서 아이를 하나만 낳으라 한다. 그 말을 따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다. 처음에 아들을 낳으면 아이를 더 낳지 않아도 딸을 낳으면 더 낳겠지. 딸은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부모가 버리기도 한다. 일본은 여성이 집안을 이을 때도 있었지만 무사시대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부터가 맞던가. 신라에는 여왕이 있었던 적도 있는데 그때뿐이었을까. 어쩌다가 남자는 힘, 여자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하게 된 걸까. 남자라고 해도 힘없는 사람도 있고 여자보다 예쁜 사람도 있다. 남자와 여자 몸이 달라서 다른 점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건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하면 남자가 꼭 형광등을 갈까. 이런 말 가끔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형광등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의자만 놓으면 여자도 갈 수 있다. 실제 그러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본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엄마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가끔 보는 아빠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건 아이에 따라 다를까. 엄마가 엄하고 아빠가 조금 다정하고 용돈도 많이 주면 마음속으로는 아빠를 더 좋아할까. 좀 이상한 생각이구나. 아이라고 사람을 모르지 않겠지. 누가 더 나은지 생각하기보다 엄마 아빠 다르다 생각하면 될까. 여자와 남자는 함께 이야기하고 아이를 기르면 훨씬 좋지 않을까 싶다. 집안 일을 여자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 말 전에도 한번 했던가. 조선시대에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닐 거다. 허난설헌과 허균 아버지 허엽은 초당두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초당두부 먹어 본 적 없지만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 허난설헌과 허균이 워낙 잘 알려져서 아버지는 묻혔구나. 그 반대일 때가 더 많은데.

 

조선은 여러 가지로 차별을 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신분으로. 조선초기에는 여성도 조금 기를 펴고 살았다는데 어쩌다 갈수록 뒤로 밀려났을까. 조선시대에 여성이 좀더 목소리를 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자라고 차별받지 않은 건 아니다. 조선은 양반 사회여서 서출은 대접받지 못하고 생각이 다르면 차별받기도 했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시대 때문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 아버지 허엽은 허난설헌이 글공부하고 시를 쓰게 했는데, 허난설헌 시집에서는 그걸 못하게 했다. 허엽은 허난설헌이 잘살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을 것 같은데 왜 다른 집안에 보냈을까, 아쉽다.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우라고 했다. 동생 허균은 허난설헌이 쓴 시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 허균이 있어서 허난설헌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구나. 양반 집안 딸로 글을 쓴 여성이 허난설헌밖에 없었을까. 더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묻혔겠다.

 

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남자는 언제까지고 어린이라고 하는데 그건 남자만 해당하는 말일까. 여자가 어떻다고 하는 것에서 나와 맞는 건 별로 없다. 그런 걸 잘 본 건 아니지만. 여자 남자 조금은 다를 거다. 사람도 자라는 것에 따라 많이 다른데. 같은 것도 있을 거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걸 인정하고 누가 더 잘났는지 겨루기보다 서로 모자란 점을 채워주면 어떨까 싶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하는 거 조금 어려울까. 사람을 여자 남자로 나누고 싸잡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통계가 아주 틀린 건 아닐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오른손잡이 중심이구나. 그밖에 이성애자, 비장애인. 그 반대쪽에 선 사람도 있는데.

 

지난번에는 서울 경기에 동네 책방이 많은 것 같다고 했는데 다른 지방에도 없지 않다. 이번에 제주도에 있는 동네 책방 두 곳을 소개했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많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모임을 오래 하려면 그곳 사람이 많은 게 좋겠지. 요즘 영어를 진짜 많이 쓴다는 걸 깨달았다(이건 첫번째 책방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생각한 건데). 책방이 중심이니 책방 사진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책방 주인 사진도 함께 실었다면 더 좋았겠다. 땡스북 도우미가 먼저 읽은 책 열권도 빠지지 않았다. 소설이 아닌 다른 책도 보자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구나. 소설도 여러 가지 생각하고 보면 좀 낫겠지. 소설 읽기 쉽지 않기도 하니까. 책을 잘 읽으면 할 말이 많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책 읽기를 놀이처럼 재미있게 하라고 한다. 책 읽기는 한번 빠지면 그만두기 어렵겠지. 책을 읽고 쓰지 못해도 그것을 생각해보는 게 낫다. 예전에 난 쓰지 않고 읽기만 했다. 책을 읽고 쓰다 보니 조금 힘들지만 잠시라도 생각해서 좋다. 그게 다 내 생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생각해봐야 하겠구나.

 

여기에는 열쇠말로 보는 책 얼개가 있다. 어떤 주제로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텐데 그런 건 여전히 못한다. 잘 모르는 건 쉬운 것부터 보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어려운 걸 보려 해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지도. 잘 모르는 분야 책을 만나는 건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다르니 좀더 용기를 내야겠다.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

 

 

 

새파란 하늘에 두 손을 담근다면

내 손도 파랗게 물들까

 

시리게 파란 하늘이라 해도

내뻗은 손과 마음은 얼릴 수 없다

 

당신 마음에 파랑 일어도

끝없이 펼쳐진 파랑이 잠재워주리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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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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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일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 일에 옳은 답은 없으리라고 본다. 누군가를 사귄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다르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처음은 아닌데 히로사와는 좀 다르게 보인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난 사람을 색깔로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했지. 누구하고든 잘 어울리는 사람이 부럽다. 히로사와가 그렇다. 누구한테든 잘 맞춘다. 이게 좋을 수도 있지만 히로사와 자신은 그런 자신이 좋을지. 누구하고든 안 좋은 사이가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남한테 자신을 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히로사와는 그건 아닌 듯하다. 다른 말은 없이 히로사와 말만 하다니. 나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는 말을 먼저 하려고 했는데, 다른 말을 먼저 하고 중간에서 끊었다. 어쩌면 더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뒤엉킨 생각을 잘 풀어야 하는데.

 

처음 말해야 하는 사람은 후카세 히로카즈다. 후카세는 특징 없고 다른 사람 눈길을 끌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후카세가 가장 잘하는 건 커피다. 커피를 내린다고 해야겠지. 일본소설에서만 그런 건지, 다른 나라 소설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데, 인스턴트 커피도 특정한 사람이 타면 맛이 다르다고 한다. 아니 지금 생각하니 한국소설에서도 그런 사람 본 것 같다. 그 사람은 뭐가 달라서 맛있을까. 그런 걸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난 내가 탄 게 가장 좋다. 이건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좀 쓸데없는 말을 했다. 후카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커피를 마셨는데 인스턴트는 여러 잔 마시니 다음날 안 좋아서 드리퍼와 전용원두를 사고, 대학생이 되고는 커피 전문 책을 읽었다. 이런 사람은 한국에도 좀 있지 않을까. 커피 때문에 후카세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자신이 있을 곳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자신이 있어도 되는 곳을 찾는 건 아니지만. 자신도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겠지.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거 마음 쓰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을까. 아주 없지 않을지도. 그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가보다.

 

소설은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것은 후카세 여자친구 미호코가 받은 편지에 적힌 말이다. 미호코는 충격을 받고 후카세한테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후카세는 세해 전에 대학 친구 넷과 함께 놀러 간 별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히로사와는 후카세가 대학생 때 만난 친구다. 히로사와는 그때 별장에서 차를 타고 한 친구를 데리러가다 사고로 죽었다. 후카세는 히로사와를 처음 생긴 단짝친구라 여겼는데, 다른 세 사람과 히로사와가 다른 식으로 친하게 지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다니. 히로사와가 죽었을 때는 그럴 정신이 없었겠지. 후카세가 히로사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 보려고 한 건 다른 친구 셋도 같은 편지를 받고 한 사람은 죽을 뻔한 일이 있어서다. 후카세는 세 친구를 만나 히로사와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히로사와를 잘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하고 가장 친하다 여겼는데, 히로사와는 누구하고나 친하게 지냈다. 이런 건 가까이에서 보면 알 텐데 후카세는 왜 못 봤을까. 아니 그것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하고만 친하다 여기면 안 된다. 그 친구한테는 자신이 모르는 친구가 있을 테니까. 후카세는 친구가 없어서 그걸 몰랐겠구나. 나도 친구 별로 없었지만 그건 알았다. 나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거 아니다는 거. 후카세는 히로사와 고향에 가서 학교 친구를 만나고 후쿠하라라는 친구를 알게 된다. 후쿠하라는 후카세와 비슷했다. 겉모습은 아니고 분위기라고 할까, 생각이라고 할까. 후쿠하라도 자신이 히로사와와 단짝이라 여겼다.

 

난 학교 다닐 때 단짝친구는 없었다. 있었으면 했지만 사귀기 힘들었다. 단짝은 헤르만 헤세가 쓰는 소설 속 두 사람 같기도 하다. 히로사와와 후카세나 히로사와와 후쿠하라. 빛과 그림자. 히로사와하고 좀더 말했다면, 후카세가 생각만 하지 않고 말했다면 세해 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친하다 여기는 사람한테도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기는 어렵겠지. 히로사와가 별장에 갈 때 점심을 왜 친구들과 다른 걸 먹었는지 나중에 친구들한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소년탐정 김전일>에 그것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게 나온다. 그런 건 추리소설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이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후카세는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일을 털어놓을까. 세해 전에 있었던 일에도 네 사람이 숨긴 게 있다. 그것 때문에 네 사람은 자신들을 살인자다 하는 말에 반응한 거다. 어떻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면 끝이 없다. 목숨과 상관있는 일은 남한테 알리는 게 좋다고 본다. 히로사와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뒤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쉽지 않다. 내가 그렇게 못하는 거고 다른 사람은 잘할까. 후카세는 히로사와가 죽은 일에 자신은 잘못이 없다 생각했다. 히로사와가 운전하려고 했을 때 바깥에는 비가 내렸다. 술을 조금 마셨든 마시지 않았든 그런 때 운전하는 건 위험하다. 나라면 밤이고 비도 내리니 안 가는 게 좋겠다고 말렸을 거다. 술 조금 마신 것도 말하고. 후카세는 어쩐지 다른 두 사람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가끔 나 자신이 별거 아니어서, 하는 생각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데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걸로 괜찮다. 나도 이 생각을 마음에 새겨두어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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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드의 피아노

  A Romance on Three Legs

  : Glenn Gould's Obsessive Quest for the Perfect Piano (2008)

  케이티 해프너   정영목 옮김

  글항아리  2016년 07월 11일

 

 

 

 

 

 

 

 

 

 

 

 

 

바이올린이나 첼로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 스트라디바리우스다(내가 아는 게 이것뿐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오래되고 잘 관리한 것은 아주 비싸겠지.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혼자 들 수 있는 건 자기 악기를 어디든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할 수 있다. 피아노는 크고 옮기기 힘드니 자기 것을 고집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글렌 굴드는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로만 연주하고 싶어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는 건 아는데, 피아노도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 한 사람이 시간을 많이 들여 만드는 건 아니지만 거의 손으로 만들었다. 피아노는 일본 피아노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한국에서 만드는 것도 생각난다. 많이 만드는 것과 스타인웨이에서 만드는 피아노는 다르겠지.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비쌌다. 이곳은 아직 있을까. 피아노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해도 아주 없어진 건 아니겠지.

 

이 책을 보니 스타인웨이에서 만든 피아노는 다 달라 보였다. 공장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은 피아노를 만들고 안에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건 많이 만드는 피아노에는 할 수 없는 거다. 대를 이어 피아노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 책 제목이 《굴드의 피아노》여서 피아노 이야기를 먼저 조금 했다. 글렌 굴드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연주를 들어봤는지 그건 모르겠다. 고전음악을 그렇게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피아노 연주는 좋아하지만, 고전음악보다 대중음악을 더 들었다. 엄마가 굴드한테 피아노를 가르칠 때 연주하는 걸 따라부르라고 한 걸 보니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났다. 굴드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언제나 그것을 따라불렀다는 게. 어떤 음반에서는 굴드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단다. 굴드는 다른 소리에는 민감했는데, 자신이 앉은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나 연주를 따라부르는 소리는 마음 쓰지 않았다. 누가 자기 몸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고 밝은 색을 싫어한다는 말을 보고 아스퍼거증후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나 보다. 굴드한테는 음악이 있어서 그런 게 심하게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상은 천재한테는 마음이 넚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남과 조금 다르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이건 나도 들어간다고 해야겠다. 내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식구가 그런 것을 알고 배려하기도 하던데. 내가 무엇인가 되었다면 좀 나았을까 싶지만. 내가 왜 그런지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 이해받지 못하는 거겠지. 우울하다. 굴드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손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고 병균을 두려워하고 건강에 마음을 많이 썼다. 다른 사람과 손잡기 싫어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었다. 이건 좀 안 좋은 거 아닌가. 약이 아픈 몸을 낫게 하지만 약을 잘못 먹으면 더 안 좋다. 굴드는 더울 때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 자신이 치는 피아노에 꽤 까다로웠다. 의자는 자신이 늘 앉는 것을 가지고 다녔다. 굴드가 피아노 치는 자세는 사진으로 봐도 안 좋은 걸 알겠다. 자세가 그래서 몸이 안 좋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굴드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는데, 굴드는 세게 맞았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굴드는 그렇게 느꼈을 테니까.

 

굴드가 마음에 들어한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에서 만든 CD 318이다. 베른 에드퀴스트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조율사로 굴드 피아노를 조율했다. 예전에 피아노를 생각하다 조율을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베른이 피아노 조율 배우는 걸 보니 어려워 보였다. 베른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숫자와 소리를 색깔로 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살던 곳을 떠난 것이기도 했다. 굴드가 CD 318을 좋아한 것처럼 베른도 그것을 좋아하고 굴드가 바라는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누군가 피아노를 옮기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나보다. 그 일을 솔직하게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 뒤에 CD 318을 여러 번 고쳤지만 굴드가 바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똑같은 걸 만들 수 없나 했는데, 똑같은 걸 만든다고 해도 그게 CD 318은 아니겠지. 배는 다 다르다는 것이 생각났다. 지금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가는 거의 성격이 별로다. 성격이 별난 사람이 잘 알려져서 예술가 성격이 별로다 생각하는 건지도. 예술가는 다른 건 잘 모르고 하나만 생각할 것 같다. 굴드는 서른한 살에 연주를 그만두고 그 뒤로는 스튜디오에서 녹음만 했다. 여기저기 다니는 게 힘들고 피아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겠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도 잘해야 할 텐데. 자기 악기만 고집하는 사람은 지금도 있을 것 같다. 굴드는 자신이 쉰쯤에 피아노를 그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는데 1982년 쉰살에 뇌졸중으로 죽었다. 굴드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 받았겠지. 베른은 굴드 피아노를 오래 조율했는데 굴드가 죽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 굴드 소식을 바로 듣지 못한 베른은 무척 섭섭했겠다. 아무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가 다가오면 몸 어딘가에서 그런 것을 느끼는 건 아닐까. 굴드도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흔한 말이고 언젠가도 했는데). 굴드가 연주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 들어보고 싶다.

 

 

 

 

 

 

 

소년은 기타를 만났지

 

 

 

소년은 늘 혼자였어요.

그렇다고 소년이 혼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 아빠는 아침 일찍 일을 나갔다 밤늦게 들어와서

소년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소년은 씩씩하게 지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소년은 말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소년과 같이 놀지 않고,

가끔 놀리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조금 억울하고 쓸쓸했지만

그 마음을 나타내지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늦은 밤 소년이 잠을 자다 깼을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소년을 부르는 듯했습니다.

소년은 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소리는 아빠가 치는 기타에서 나는 거였어요.

아빠는 소년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소년에게 기타를 건넸습니다.

 

기타는 조금 컸지만,

소년한테 좋은 동무가 되었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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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짧게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부터 메모장(컴퓨터 프로그램)에 쓴 다음에 붙여넣는 버릇이 들었다. 글 쓰다 그게 날아갔다는 말을 보면 난 그런 일 별로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컴퓨터가 멈춘다거나 쓴 걸 저장하지 않아 날릴 때도 있다. 새벽에는 시간이 늦어서 ‘밤에 쓰지’ 하고는 내가 쓴 걸 다른 데 저장하지 않고 메모장을 닫았다. 그걸 할 때는 중요한 거 없겠지 하고 ‘저장 안 함’을 눌렀다. 자려고 하자 내가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메모장 닫기 전에 확인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냥 닫지 않고 저장하는 메모장에 써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잠은 빨리 들지 않고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작가 이름은 알았지만 소설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윤성희는 예전에 한권인가 두권인가 보고 윤고은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성희는 모르겠고 얼마전에 윤고은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본래 이름은 고은주로 끝에 주를 빼고 엄마 성인 윤을 붙여서 윤고은이라 했단다. 고은주라는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윤고은이라는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고은주라는 소설가가 있어서 바꿨다고 한다. 은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많다. 내가 알았던 사람도 여럿이다. 난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은주》(권비영)라는 소설도 있다.

 

내가 뭐라 썼더라 하면서 다시 썼다. 똑같지 않지만 저런 말을 썼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다시 쓰면 될 텐데 쓸데없는 말을 했다. 윤고은은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말은 못 썼지만. 윤성희와 윤고은 소설을 악스트에서 먼저 만났는데 그 소설도 책에 실렸다.

 

 

 

 

 

생존배낭은 있을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한겨레출판  2016년 05월 20일

 

 

 

 

 

 

 

 

 

 

 

 

 

윤고은 책은 처음 만났다. 책은 처음이지만 단편 <된장이 된>은 악스트에서 보았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 다른 데서 봤는데일지도. 아버지는 열다섯해 전 같은 회사에 다닌 동기한테 빌려준 돈 천만원 대신 된장 오십킬로그램을 받아온다. 된장 오십킬로그램이 천만원은 안 될 것 같은데. 어떤 사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그동안 돈을 받으려 애쓴 일을 말하려는 것일 테지만, 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돈은 왜 투자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때는 잘되리라고 믿었겠지. 아버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한테서 악착같이 돈 받아내지 못할 것 같다. 돈 받을 기회도 여러 번 놓쳤다. 딸인 ‘나’도 다르지 않았다. 떼인 돈 받아준다고 한 조는 돈이 아닌 된장을 받았다. 빌려준 돈은 못 받았지만 돈을 대신해서 다행인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람들한테 보여준 다음에 태울 수 있을까. 오래전 그림이 남아서 지금 사람도 보는 건데. 로버트 재단에서 하는 미술관은 그림을 전시하고 나중에 그것을 모두 태운다. <불타는 작픔>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로버트가 사람이 아닌 개라는 거다. 로버트 재단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마당 딸린 개’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로버트가 진짜 그랬다. 가끔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일은 거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겠지. 로버트가 하는 말을 통역하는 최부장도 있다. 남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더 고유성을 가질까. <전설의 존재>에서도 고유성이라는 게 나오는데.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생각한 게 진짜 자기 안에서 나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도 한다. 비슷한 것이라 해도 남의 것을 그대로 쓰면 안 되겠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달력 작가는 진짜 있을까. 예전에 글을 잘 쓴 사람이 지금은 자신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큰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놓칠 수 없는 마음이 보인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게 또 나온다. X-ray가 아닌 <Y-ray>다. Y-ray는 새로운 빛으로 사람 몸을 인식한다. 몸 속이 공장처럼 보이고 없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런 사람을 Y라고 한다. Y-ray를 찍어서 그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Y-ray를 찍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 달라서 차별받는 사람. <책상>은 작가 비서로 일하는 사람이 하루는 작가가 말한 문장을 찾으려고 평소와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여기 나온 비서는 자신이 아닌 작가의 말만 쓰고 작가 이름으로 여러 사람한테 전자편지를 쓴다. 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걸까. 그런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다옥정 7번지>는 1930년에서 산책을 하던 박태원이 2010년으로 와서 박태원 노릇을 하다 이상이 되는 이야기다. 이것도 이렇게 한줄로 말하다니. 시간여행처럼 보이지만 지금 사람은 박태원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진과 얼굴이 달라서. 진짜 그런 일 있을까. 아주 다른 사람을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 아는 일 말이다. 어쩐지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오두막>은 조금 어두워 보인다. 세해 전 제주도에서 사람 발길이 뜸한 오두막에 있던 두 사람은 오두막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지만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 사람과 한 사람이니 용기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가 아니더라도 남자가 자리를 떠났을 때 여자를 도왔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두 사람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제주도에서 친환경 가로등을 세운다지만. 그것을 보고 나는 빛공해를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도 무서운 일이 일어나겠지. 밝으면 그런 일이 줄어들까. 안 좋은 일을 함께 겪으면 그 일을 같이 이야기하기보다 서로 더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함께 견디는 일도 쉽지 않겠다. 생존배낭은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나온다.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만드는 거다. 실제 이런 거 있을까. 재해를 대비해 준비하는 것도 나을지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사흘 동안 견딜 수 있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데, 이건 사흘 뒤에 구조가 될 것을 생각한 걸까. ‘나’는 생존배낭에 넣을 양말 계약을 하려고 양말 만드는 회사 사장 홀튼을 만나러 울룰루에 가려 한다. ‘나’는 차를 잘못 탄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홀튼 같다. ‘나’는 제대로 계약을 따내지 않을지.

 

마지막 이야기는 따듯한 걸까. 겨우 다섯살 많은 형이 동생을 살리는 이야기도 나오니까. 동생은 사십년이 지나서야 형을 묻은 곳에 찾아가려 한다. 그곳을 찾을 수 있을지. 짧게 호주 원주민과 백인 사인에서 난 애버리지니 이야기도 나온다. ‘나’가 만난 위키도 그랬는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삶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

 

Y. 그것은 놀라운 힘을 가진 말이었다. Y. 그 한마디에 연애는 끝이 났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으며, 대출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꿈은 대출조자 되지 않았다. Y. 그것은 불길한 낙인이었다. 상점에 들어가 고를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다. 집 밖에서 움직일 때마다 갖가지 제약이 따라붙었다.  (<Y-ray>에서, 132쪽)

 

 

 

 

 

 

 

 

 

 

 

 

 

 

 

 여러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문학동네  2016년 04월 21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고,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 마음도 다 알기 어렵다. 가깝기에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깊이 알고 싶지 않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사귀는 건 상대가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지는 것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사람 사귀기 어렵겠다. 처음부터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식구다. 식구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기 어렵다. 아예 연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식구 이야기를 하다니. 여기 실린 소설이 식구뿐 아니라 친구 이야기로 보이기도 해서다. 식구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다. 올케 셋과 시누이 하나,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헤어진 남편과 아내. 단편소설을 하나로 말하기 어렵지만 하나하나 말하기도 어렵다.

 

소설과 상관없이 제목으로 말할까. 그것도 하나나 둘밖에 못할지도. <가볍게 하는 말>에서 가볍게 하는 말은 뭘까 싶다. 고모가 고모 친구 장례식장에서 친구 아들한테 한 말 “산 사람은 살아야지” (29쪽)일까. 고모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손자한테 말했다. 혹시 고모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일지도. 고모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고 고모는 손자와 산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제목이 무엇을 뜻할까 했다. 딸과 어머니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어머니는 자신이 왜 아이를 낳으려 했는지 말하고 딸은 그 말을 듣는다. 딸은 쌍둥이였는데 언니가 없었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동생이 언니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더는 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어머니는 정말 딸이 죽었다는 걸 모를까. <날씨 이야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우는 얼굴은 다 비슷하지만 웃는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다. <휴가>는 ‘나’가 고등학교 때 친구 박의 식구와 휴가를 보내는 이야기다. 둘이지만 본래 한사람이 더 있었다. 그 친구는 죽고 ‘나’는 결혼하려다 하지 못하고 박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나’는 셋에서 하나라도 잘살아서 다행이다 한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헤어지면 친구로 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베개를 베다>에서 남자는 헤어진 아내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간 동안 물고기 밥을 주러 아내 집에 간다. 베개를 베면 쉽게 잠들고 꿈을 꾼다. 아내한테 전화하는 꿈이다. 꿈에서만 전화하지 않고 실제로 말했다면 어땠을지.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도훈이 초등학생에서 서른 후반까지 나오는 이야기다.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어떤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일까. 그것보다 가깝거나 멀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낮술>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만나고 ‘나’를 낳고, 아빠는 사고로 죽는다. 이렇게 말하니 두 사람이 만나고 아무 문제없이 결혼한 것 같구나.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겁을 먹고 달아났다가 돌아왔다. 나이를 먹으면 계단이 무섭다는 어느 할머니 말을 듣고. <모서리>는 오래전에 죽은 사촌형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염이 조와 군복을 입고 술을 마시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말했구나. <다정한 핀잔>에서는 사고로 수술을 받는 미희 언니를 ‘나’와 미희 언니 동생이 이야기한다. 미희 언니 동생은 미희 언니 이십대를 몰랐다. 함께 산다고 언니와 동생이 서로를 잘 알까. 미희 언니와 동생은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미희 언니가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한테 뭐라 말하기를 바랐다. 그 일이 이뤄진다면 좋을 텐데. <이틀>은 감기로 회사를 이틀 쉬면서 겪는 일이다. 죽은 아내와 딸을 생각했는데. 감기는 꾀병이 아닐지. 첫날은 지금까지 못 본 목련나무를 본다. 이틀째에는 트럭 밑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우고, 할머니 밭을 간다. 지금까지 둘레를 보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쉰 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없다. 우리 둘레에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보인다. 살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사는.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도 들어간다. 그런 것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누구나 아픔을 갖고 살겠지. 힘을 내고 산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 같다. <날씨 이야기>에 나오는 언니는 좀 다른가. 잘못 온 엽서 때문에 미움을 생각한다니.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에 빠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달 찾기

 

 

 

달과 지구는 우주에서 저마다 돌고

돌다보면 어느 때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건 몇십해 만에 찾아오는 일

견우와 직녀도 해마다 한번 만나는데

달과 지구 사이는 몇십해 만에야 가까워지는구나

 

몇십해 만에 커다란 달을 볼 수 있다기에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하늘은 캄캄한데 달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든 빛만 가득했다

그 빛이 달빛을 가린 걸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겨우 달을 보았다, 아니 찾았다

달은 며칠 전과는 다른 쪽에서 빛났다

엉뚱한 곳에서 달을 찾았구나

 

찾으려는 것이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해도

그곳이 늘 같은 곳은 아니다

네 마음도

내 마음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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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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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슬픔입니다. 얼마 전에 시집을 보고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쁜 건 아니지요. 이 말도 했군요. 시집을 보고 느낀 슬픔과 이 소설집을 보고 느낀 슬픔은 조금 다른 듯도 합니다. 살다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잖아요. 그건 산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느낀 건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슬픔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로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슬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 더는 감당할 수 없음에 관계를 끊는 데서 오는 슬픔, 알 수 없는 까닭으로 관계가 끊어지는 데서 오는 슬픔. 더 있을 테지만 생각나는 건 이만큼뿐이네요. 이런 슬픔도 살다보면 찾아오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세상에는 사랑뿐 아니라 슬픔도 흘러 넘칩니다. 이런 말 때문에 이 책 못 읽겠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안 될 텐데. 여기에 슬픔이 담겨 있다 해도 눈물을 쏟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할 뿐입니다. 이건 저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소설 보면서 작가는 잘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쓴 최은영은 일본 사람 친구가 있고, 독일 플라우엔, 프랑스 리옹,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가 본 적이 있을까 했습니다. 다른 나라가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이에요. 이장욱은 어딘가에 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갔다오기도 했더군요. 그때 바로 소설을 쓴 건 아니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썼다고 합니다(《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담긴 소설). 최은영은 어땠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게 별난 건 아니지만, 최은영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소설에 쓴 건 아닐까 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쇼코와 소은은 최은영 자신일까 하기도. <미카엘라>에서도 최은영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는군요. 작가는 자신이 쓴 글 자체만 보기를 바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다르지만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런 것을 생각해도 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봤습니다.

 

다섯번째까지 보면 관계가 끊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쇼코의 미소>(마음속으로는 웃음이라 생각하고 봤습니다)에서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한국학생과 일본학생 문화교류라는 것으로 만난 소유와 쇼코가 한주를 소유네 집에서 함께 보내고 편지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만 편지를 나눈 게 아니고 소유네 할아버지와 쇼코도 편지를 나눠요. 소유네 외할아버지한테 쇼코는 친구였어요. 소유한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쇼코한테는 했어요. 소유와 쇼코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부터는 연락이 끊겨요. 소유와 쇼코가 편지를 나누지 않게 됐지만 몇해 뒤에 소유가 쇼코를 만나러 일본에 갑니다. 그때 소유는 괜히 쇼코를 만났다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니 피천득 수필 <인연>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소유 할아버지가 죽고 소유는 쇼코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됩니다. 쇼코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걸. 소유는 할아버지가 쇼코한테 보낸 편지로 할아버지 마음도 조금 알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한테 자기 마음을 터놓기 어렵죠. 식구와 마주이야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지.

 

다음 <씬짜오, 씬짜오>는 독일에서 베트남 사람과 독일말로 말합니다.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도 자기 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로 이야기 하는군요. 같은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할 때가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말로 할 때는 더할지도. 그래도 서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한지와 영주>는 조금 다릅니다. 프랑스에서 케냐 사람인 한지와 한국사람인 영주는 영어로 말합니다. 둘은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는 듯하지만, 그걸 겉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한지는 케냐로 돌아가기 두주 전부터 영주를 피합니다. 한지는 영주한테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영주는 한지가 왜 그럴까 하지만 한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묻지 않습니다. 물어도 한지는 대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생각할 수 있는 건 정을 떼려고 했다는 거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는 국경도 없다 하지만, 한지는 돌보아야 하는 여동생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이해하지 못해 관계가 틀어지고(<씬짜오, 씬짜오>), 문화가 달라서 멀어졌네요(<먼 곳에서 온 노래>).

 

관계가 끊긴다 해서 슬프기만 한 건 아니예요. 따듯함도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자신은 잘살고 순애 언니는 못사는 것 같아 더 보기 어렵다 생각한 <언니, 내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순애 언니한테 자신이 한 잘못을 용서받았다 여깁니다. 사는 게 차이가 많이 나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요. 저도 저랑 상관없는 사람이 자랑하는 걸 보면 부러워하면서 이런 말을 했네요. 남은 남, 자신은 자신이다 생각하면 괜찮을 텐데,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세 사람이 중심이라 해야겠네요. 소은과 미진 그리고 율랴. 소은과 미진이 함께 산 적 있고 미진과 율랴가 함께 산 적 있네요. 미진이 세상을 떠나고 소은과 율랴는 함께 미진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유와 쇼코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는군요(<쇼코의 미소>). <미카엘라>와 <비밀>도 관계가 끊어지는 거 맞네요. 죽음으로. <미카엘라>는 조금 먼 사이지만 슬퍼합니다. 가깝지 않다 해도 그때(20140416) 한국 사람은 모두 슬퍼했네요. <비밀>은 손녀가 중국에서 죽음을 맞고 할머니가 손녀를 그리는 이야기예요. 이걸 읽으면 손녀가 죽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된 건가 했습니다. 아직 슬픔이 가득해서 차마 그 말을 못하는 건 아닌지. 할머니는 자신이 죽었다면 손녀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할머니는 예전에 암으로 죽는다고 했는데 다 나았습니다. 앞으로는 딸과 사위와 함께 살아가겠지요.

 

슬프지만 따듯하다 말했는데 왜 그런지 제대로 말하지 못했네요. 그냥 그럴 때가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이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겠지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습니다. 헤어질 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플 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있어서 기쁠 때도 많잖아요. 그 사람은 식구, 친구,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말하는 거예요.

 

 

 

희선

 

 

 

 

☆―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쇼코의 미소>에서, 18쪽)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한지와 영주>에서,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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