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짧게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부터 메모장(컴퓨터 프로그램)에 쓴 다음에 붙여넣는 버릇이 들었다. 글 쓰다 그게 날아갔다는 말을 보면 난 그런 일 별로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컴퓨터가 멈춘다거나 쓴 걸 저장하지 않아 날릴 때도 있다. 새벽에는 시간이 늦어서 ‘밤에 쓰지’ 하고는 내가 쓴 걸 다른 데 저장하지 않고 메모장을 닫았다. 그걸 할 때는 중요한 거 없겠지 하고 ‘저장 안 함’을 눌렀다. 자려고 하자 내가 쓴 걸 저장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메모장 닫기 전에 확인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냥 닫지 않고 저장하는 메모장에 써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잠은 빨리 들지 않고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작가 이름은 알았지만 소설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윤성희는 예전에 한권인가 두권인가 보고 윤고은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성희는 모르겠고 얼마전에 윤고은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는 걸 알았다. 본래 이름은 고은주로 끝에 주를 빼고 엄마 성인 윤을 붙여서 윤고은이라 했단다. 고은주라는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윤고은이라는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고은주라는 소설가가 있어서 바꿨다고 한다. 은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많다. 내가 알았던 사람도 여럿이다. 난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은주》(권비영)라는 소설도 있다.
내가 뭐라 썼더라 하면서 다시 썼다. 똑같지 않지만 저런 말을 썼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다시 쓰면 될 텐데 쓸데없는 말을 했다. 윤고은은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말은 못 썼지만. 윤성희와 윤고은 소설을 악스트에서 먼저 만났는데 그 소설도 책에 실렸다.
생존배낭은 있을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윤고은
한겨레출판 2016년 05월 20일
윤고은 책은 처음 만났다. 책은 처음이지만 단편 <된장이 된>은 악스트에서 보았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 다른 데서 봤는데일지도. 아버지는 열다섯해 전 같은 회사에 다닌 동기한테 빌려준 돈 천만원 대신 된장 오십킬로그램을 받아온다. 된장 오십킬로그램이 천만원은 안 될 것 같은데. 어떤 사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그동안 돈을 받으려 애쓴 일을 말하려는 것일 테지만, 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돈은 왜 투자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때는 잘되리라고 믿었겠지. 아버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한테서 악착같이 돈 받아내지 못할 것 같다. 돈 받을 기회도 여러 번 놓쳤다. 딸인 ‘나’도 다르지 않았다. 떼인 돈 받아준다고 한 조는 돈이 아닌 된장을 받았다. 빌려준 돈은 못 받았지만 돈을 대신해서 다행인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아직 세상은 살만 하다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람들한테 보여준 다음에 태울 수 있을까. 오래전 그림이 남아서 지금 사람도 보는 건데. 로버트 재단에서 하는 미술관은 그림을 전시하고 나중에 그것을 모두 태운다. <불타는 작픔>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로버트가 사람이 아닌 개라는 거다. 로버트 재단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마당 딸린 개’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로버트가 진짜 그랬다. 가끔 개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일은 거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겠지. 로버트가 하는 말을 통역하는 최부장도 있다. 남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더 고유성을 가질까. <전설의 존재>에서도 고유성이라는 게 나오는데. 바로 나오는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일지도. 자신이 생각한 게 진짜 자기 안에서 나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도 한다. 비슷한 것이라 해도 남의 것을 그대로 쓰면 안 되겠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달력 작가는 진짜 있을까. 예전에 글을 잘 쓴 사람이 지금은 자신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큰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놓칠 수 없는 마음이 보인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게 또 나온다. X-ray가 아닌 <Y-ray>다. Y-ray는 새로운 빛으로 사람 몸을 인식한다. 몸 속이 공장처럼 보이고 없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런 사람을 Y라고 한다. Y-ray를 찍어서 그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Y-ray를 찍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 달라서 차별받는 사람. <책상>은 작가 비서로 일하는 사람이 하루는 작가가 말한 문장을 찾으려고 평소와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여기 나온 비서는 자신이 아닌 작가의 말만 쓰고 작가 이름으로 여러 사람한테 전자편지를 쓴다. 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걸까. 그런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다옥정 7번지>는 1930년에서 산책을 하던 박태원이 2010년으로 와서 박태원 노릇을 하다 이상이 되는 이야기다. 이것도 이렇게 한줄로 말하다니. 시간여행처럼 보이지만 지금 사람은 박태원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진과 얼굴이 달라서. 진짜 그런 일 있을까. 아주 다른 사람을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 아는 일 말이다. 어쩐지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오두막>은 조금 어두워 보인다. 세해 전 제주도에서 사람 발길이 뜸한 오두막에 있던 두 사람은 오두막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지만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 사람과 한 사람이니 용기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가 아니더라도 남자가 자리를 떠났을 때 여자를 도왔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두 사람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제주도에서 친환경 가로등을 세운다지만. 그것을 보고 나는 빛공해를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도 무서운 일이 일어나겠지. 밝으면 그런 일이 줄어들까. 안 좋은 일을 함께 겪으면 그 일을 같이 이야기하기보다 서로 더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함께 견디는 일도 쉽지 않겠다. 생존배낭은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나온다.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만드는 거다. 실제 이런 거 있을까. 재해를 대비해 준비하는 것도 나을지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사흘 동안 견딜 수 있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데, 이건 사흘 뒤에 구조가 될 것을 생각한 걸까. ‘나’는 생존배낭에 넣을 양말 계약을 하려고 양말 만드는 회사 사장 홀튼을 만나러 울룰루에 가려 한다. ‘나’는 차를 잘못 탄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홀튼 같다. ‘나’는 제대로 계약을 따내지 않을지.
마지막 이야기는 따듯한 걸까. 겨우 다섯살 많은 형이 동생을 살리는 이야기도 나오니까. 동생은 사십년이 지나서야 형을 묻은 곳에 찾아가려 한다. 그곳을 찾을 수 있을지. 짧게 호주 원주민과 백인 사인에서 난 애버리지니 이야기도 나온다. ‘나’가 만난 위키도 그랬는데.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삶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
Y. 그것은 놀라운 힘을 가진 말이었다. Y. 그 한마디에 연애는 끝이 났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으며, 대출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꿈은 대출조자 되지 않았다. Y. 그것은 불길한 낙인이었다. 상점에 들어가 고를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다. 집 밖에서 움직일 때마다 갖가지 제약이 따라붙었다. (<Y-ray>에서, 132쪽)


여러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베개를 베다
윤성희
문학동네 2016년 04월 21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고,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 마음도 다 알기 어렵다. 가깝기에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깊이 알고 싶지 않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사귀는 건 상대가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지는 것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사람 사귀기 어렵겠다. 처음부터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 식구다. 식구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기 어렵다. 아예 연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식구 이야기를 하다니. 여기 실린 소설이 식구뿐 아니라 친구 이야기로 보이기도 해서다. 식구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다. 올케 셋과 시누이 하나,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헤어진 남편과 아내. 단편소설을 하나로 말하기 어렵지만 하나하나 말하기도 어렵다.
소설과 상관없이 제목으로 말할까. 그것도 하나나 둘밖에 못할지도. <가볍게 하는 말>에서 가볍게 하는 말은 뭘까 싶다. 고모가 고모 친구 장례식장에서 친구 아들한테 한 말 “산 사람은 살아야지” (29쪽)일까. 고모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손자한테 말했다. 혹시 고모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일지도. 고모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고 고모는 손자와 산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제목이 무엇을 뜻할까 했다. 딸과 어머니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어머니는 자신이 왜 아이를 낳으려 했는지 말하고 딸은 그 말을 듣는다. 딸은 쌍둥이였는데 언니가 없었다. ‘못생겼다고 말해줘’는 동생이 언니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더는 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어머니는 정말 딸이 죽었다는 걸 모를까. <날씨 이야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우는 얼굴은 다 비슷하지만 웃는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다. <휴가>는 ‘나’가 고등학교 때 친구 박의 식구와 휴가를 보내는 이야기다. 둘이지만 본래 한사람이 더 있었다. 그 친구는 죽고 ‘나’는 결혼하려다 하지 못하고 박은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나’는 셋에서 하나라도 잘살아서 다행이다 한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헤어지면 친구로 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베개를 베다>에서 남자는 헤어진 아내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간 동안 물고기 밥을 주러 아내 집에 간다. 베개를 베면 쉽게 잠들고 꿈을 꾼다. 아내한테 전화하는 꿈이다. 꿈에서만 전화하지 않고 실제로 말했다면 어땠을지.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도훈이 초등학생에서 서른 후반까지 나오는 이야기다. 팔길이만큼의 세계는 어떤 걸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일까. 그것보다 가깝거나 멀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낮술>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만나고 ‘나’를 낳고, 아빠는 사고로 죽는다. 이렇게 말하니 두 사람이 만나고 아무 문제없이 결혼한 것 같구나.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겁을 먹고 달아났다가 돌아왔다. 나이를 먹으면 계단이 무섭다는 어느 할머니 말을 듣고. <모서리>는 오래전에 죽은 사촌형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염이 조와 군복을 입고 술을 마시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말했구나. <다정한 핀잔>에서는 사고로 수술을 받는 미희 언니를 ‘나’와 미희 언니 동생이 이야기한다. 미희 언니 동생은 미희 언니 이십대를 몰랐다. 함께 산다고 언니와 동생이 서로를 잘 알까. 미희 언니와 동생은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미희 언니가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한테 뭐라 말하기를 바랐다. 그 일이 이뤄진다면 좋을 텐데. <이틀>은 감기로 회사를 이틀 쉬면서 겪는 일이다. 죽은 아내와 딸을 생각했는데. 감기는 꾀병이 아닐지. 첫날은 지금까지 못 본 목련나무를 본다. 이틀째에는 트럭 밑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우고, 할머니 밭을 간다. 지금까지 둘레를 보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쉰 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없다. 우리 둘레에 사는 사람 이야기처럼 보인다. 살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사는.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도 들어간다. 그런 것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누구나 아픔을 갖고 살겠지. 힘을 내고 산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 같다. <날씨 이야기>에 나오는 언니는 좀 다른가. 잘못 온 엽서 때문에 미움을 생각한다니.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에 빠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달 찾기
달과 지구는 우주에서 저마다 돌고
돌다보면 어느 때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건 몇십해 만에 찾아오는 일
견우와 직녀도 해마다 한번 만나는데
달과 지구 사이는 몇십해 만에야 가까워지는구나
몇십해 만에 커다란 달을 볼 수 있다기에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하늘은 캄캄한데 달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든 빛만 가득했다
그 빛이 달빛을 가린 걸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겨우 달을 보았다, 아니 찾았다
달은 며칠 전과는 다른 쪽에서 빛났다
엉뚱한 곳에서 달을 찾았구나
찾으려는 것이 언제나 그곳에 있다 해도
그곳이 늘 같은 곳은 아니다
네 마음도
내 마음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