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드러내기

 

  잔혹한 그림 왕국   The Grimm Conclusion (2013)

  애덤 기드비츠   유수아 옮김

  미래엔아이세움  2016년 05월 25일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독일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그림 형제 동화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실린 동화는 많을 텐데 책으로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그것을 조금 안다니 신기하다. 아마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봤겠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그림 동화가 잔인하다는 걸 알았다.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만 보는 건 아닐 거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화라는 말이 어린이책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일지도. 그림 동화가 잔인해서 그것을 아이한테 그대로 보게 할 수 없다고 여긴 어른이 내용을 많이 바꾸었다. 그런 일 지금이라고 없을까. 어린이는 밝고 예쁜 것만 보아야 할까. 어릴 때부터 어두운 이야기를 보고 삶이 덧없구나 생각하는 건 안 되겠지만. 어려도 사람한테는 안 좋은 감정이 있다는 것과 세상이 밝고 예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생각 조금 엄한 건지도.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알았던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건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어서겠지.

 

동화에서 아이는 모두 집을 떠날까. 파랑새를 찾으려고 떠나는 건 생각난다. 그 아이들은 왜 파랑새를 찾으려고 했을까. 부모가 행복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드는데. 아이는 부모 눈치를 많이 본다. 내가 그런 것을 경험했던가.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이 아파도 잘 참는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그 뒤로 나는 아파도 아무 말 안 했다. 돈도 아끼고. 지금 생각하니 어렸을 때 난 그게 착한 거다 생각한 건지도. 그때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파도 참고 돈도 잘 안 쓴다. 어릴 때 든 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를 하다 이런 말을 했구나. 집을 떠난 아이는 이런저런 경험을 한다. 경험을 하고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어쩐지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린다와 요링겔은 쌍둥이로 둘이 태어났을 때 아빠는 무척 기뻐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이 태어나서 기뻤지만 아빠가 죽은 슬픔에 빠져서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 아이가 혼자가 아니고 둘인 게 다행이구나. 둘은 서로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결혼하고 새아빠와 두 딸이 오고 집은 안 좋아졌다. 엄마는 정말 요린다와 요링겔을 생각하고 다시 결혼한 걸까. 누군가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요린다와 요링겔은 어쩌다 보니 집을 떠난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둘은 괴롭고 아픈 것을 피하듯이 집을 떠난 거다.

 

부모한테 맞는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슬픔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하고,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한테 감정을 삼키라 한다. 자신이 아프고 괴로운 일에서 피하면서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다니. 둘은 감정을 참고 참아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만약 요린다와 요링겔이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린다와 요링겔이 지옥에서 악마네 할머니를 만나 자기들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다. 사람은 즐겁고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화내야지, 그런 것을 억누르면 안 된다. 화라고 해서 별거 아닌 일에 욱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참지 않고 그것을 말하는 거다. 자기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지 모를 거다. 요린다가 여왕이 됐을 때 그랬다. 백성이 어떤지 잘 살펴보지 않았다. 요링겔은 아이를 때리는 부모를 엄하게 다스렸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넓게 보아야 하는데.

 

아이한테 어두운 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잔인한 건 별로다. 좀 잔인한 게 나온다. <신데렐라>에서 의붓언니가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는 건 많이 알려졌을지도. 엄마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달아나서 요린다와 요링겔도 그렇게 했다. 부모를 따라 아이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요린다와 요링겔은 엄마한테 자신들 마음을 털어놓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나중에 알았구나. 요린다와 요링겔이 죄책감과 자신들한테 마음을 쓰지 않는 엄마 때문에 집을 떠났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다. 엄마도 괴롭고 두려웠다는 걸. 엄마는 요린다와 요링겔을 사랑했지만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아내가 죽고 아이한테 마음 쓰지 않고 일에 빠지는 아빠가 생각나는구나.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그때는 아이가 고생하겠다. 자신이 아픔이나 괴로움을 피한다고 해서 아이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겉으로 드러내는 게 좋겠지. 말할 사람이 없으면 글로 나타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마음이 조금 나아질 거다.

 

 

 

 

 

 

 

 

 

 

 

 

 

 

 

 

 책은 썼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단풍을 보려고 어딘가에 가 본 적은 없다. 거의 볼 일 있을 때 나가서 길에서 본다. 사진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저기를 작은 공원이라 해도 괜찮겠지. 운동기구도 조금 있고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공연하는 곳도 만들어뒀지만 거기에서 한번이라도 공연했을까. 했지만 내가 한번도 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단풍을 봐서 좋았다. 도서관에 여러 사람이 와서 강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한번도 못 봤다. 그런 걸 잘 이용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거의 책만 빌린다. 그것만 해도 괜찮기는 하다.

 

십일월에는 씰(실seal이라 써야 하겠지만 저기에도 씰이라 쓰여 있으니)이 나온다. 며칠에 나오는지 잘 모르는데, 이달 첫째주에 동네 우체국에 갔을 때 물어보니 7일에 나온다고 했다. 그날 갔더니 거기에서는 팔지 않는다는 거다. 멀리 시내까지 나가야 해서 며칠 지나서 가기로 했다. 며칠 지나면 다 팔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샀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는 사지 않다가 우연히 우체국에 가서 성탄절 씰을 보고 예뻐서 샀다. 그때는 우표와 다르지 않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는 스티커로 나왔다. 그게 언제부턴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스티커로 나온다. 올해는 독립운동가 열사람이다. 뜻깊게 보인다.

 

나라를 되찾으려고 애쓴 사람에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어쩌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나라가 있는 거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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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시집을 한달에 한권 정도는 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움이 될까요. 어디에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에. 생각을 다르게 한다거나 상상력을 키우는 데. 이건 소설을 봐도 되는 것일지도.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시를 보는 건 아니군요. 하나 있습니다. 시가 아니어도 시처럼 느껴지게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겁니다. 한달에 한권으로는 어림없을지도. 책을 읽고 써도 저만의 글을 쓰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어렵더군요. 몇해 동안 책을 읽고 쓰기 꾸준히 했는데 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잘 못 써도 쓰면 괜찮더군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게 꼭 맞는 건 아닐지라도. 책은 사람마다 그 사람이 놓인 형편에 따라 보겠지요. 저와 상관없는 일이 나올 때는 무슨 말을 쓰면 좋을까 합니다. 자신과 상관없다 해도 생각해 보는 게 괜찮겠지요.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몇번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소설에서 잘 보는 건 이야기예요. 그런 소설만 있는 건 아닌데. 이야기가 뚜렷하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좋을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런 걸 보면 ‘작가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합니다. 제가 잘 못 알아듣고 작가 탓을 하는 거군요. 시는 어떨까요. 시도 이야기가 있는 거 있어요. 제가 그런 시 좋아합니다. 다행하게도 시는 잘 몰라도 느낌이 괜찮다 하기도 합니다. 그게 어떤지 뚜렷하게 말할 수 없지만. 시를 보고 그게 어떤지 잘 말하는 사람 부럽습니다(글 잘 쓰는 사람은 다 부럽군요). 시는 시인 이야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때도 있겠지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쓰는 것이겠지요. 시만 그렇게 쓰는 건 아니군요. 시도 자주 만나면 조금은 알 수 있겠지요. 처음 봤을 때는 ‘뭐지’ 해도 나중에 다른 데서 보면 뭔가 느낌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 말 들은 말이기는 하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본 소설에는 기형도 시 <조치원鳥致院>이 나왔습니다. 이 시는 기억하지 못한 거기는 하지만, 그걸 보니 시집 한번 펼쳐보고 싶기도 하더군요.

 

어떤 책은 읽다보면 나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도 뭔가 쓰지 못하지만. 단지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뿐입니다. 쓸거리도 떠오르게 하면 좋을 텐데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이 시집을 보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뭔가는 못 쓰고 이런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책이나 영화와 음악 그리고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요. 쓰고 싶은 마음만 드는 건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여기 담긴 시가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을 끄집어 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건 다시 제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겠네요. “떠오르고 싶었을 텐데 미안해” 그렇게 제 마음속에 가라앉은 건 얼마나 될지요. 아주 많지는 않을 거예요. 쓰고 싶다 생각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책 읽지 않았을 때도 그런 일 있어요. 아니 그때도 책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읽거나 보았을 거예요.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휴일의 평화>에서, 57쪽)

 

 

 

10

 

사랑을 잃은 자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  (<먼지 혹은 폐허>에서, 79쪽)

 

 

 

심보선 시는 처음 만났는데(제가 아는 시인이 많은 건 아니군요), 시집 보기 전부터 내가 이걸 잘 볼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냥 보면 될 텐데, 이렇게 보기까지 두해가 걸렸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보고 싶었지요. <슬픔이 없는 십오 초>라니. 슬픔이 담긴 시가 많이 보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슬프고, 사람을 슬픈 짐승이라고도 하지요.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작가는 슬픔으로 글을 쓰기도 하네요. 자신의 슬픔에 빠져서 둘레를 못 보면 안 되지만, 슬픔을 알아야 남의 슬픔에 공감하겠지요. 슬픔이나 아픔을 좋아하지 못해도 아주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이 쓸쓸하지 않게.

 

 

 

 

 

 

 

 

 

 

 

네 슬픔이 내게 인사하네

 

 

 

지난 밤 꿈에 네가 나왔어

오랜만이어서 기뻤지만

우는 널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마음 아팠어

 

현실의 넌 울지 않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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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6-11-13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시집 한권!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응원드립니다. /^^/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인들은 좀 아는데 (시집을 좀 많이 봤습니다.) 그 후론 모르는 시인이 많아 2000년대 이후 활동한 시인들을 좀 들춰보려고 하는데, 생활(직장, 아이)이 발목을 물고 있고, 많은 책들이 여전히 줄 서 있어 쉽지 않습니다만, 시간을 내 볼 계획입니다.

희선 2016-11-13 00: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조금 쓸데없는 말이지만, 제가 책을 읽고 쓰고부터는 시집을 보면 뭐라 쓰지 하는 마음에 좀 멀리 했습니다 한국소설도 마찬가지네요 그것도 있고, 다른 책을 보다보니 시는 잘 못 보게 되기도 했어요 여전히 시집 많이 나오고 시인도 많더군요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해도 책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러네요 하지만 얼마 못 보기도 합니다 한달에 한권 보기로 한 건 다른 것도 있는데 그건 올해 별로 못 봤습니다

가을에 시가 어울리죠 아니 시는 언제 봐도 괜찮습니다 雨香 님한테 시를 만나는 시간이 나기를 바랍니다


희선

오거서 2016-11-13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뚜렷하게 말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도 응원합니다! ^^

희선 2016-11-15 01:28   좋아요 1 | URL
시를 보는 것도 정해진 답은 없는 거겠죠 그때 자기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희선
 

 

 

 

원피스 82

오다 에이치로

集英社  2016년 07월 04일

 

 

 

몇달 전에 <원피스>를 보다 어떤 생각을 했다. 그걸 떠올리고 책을 본 다음에 써야지 했는데 지난번에 잊어버렸다. 내가 깨달은 건 <원피스>에는 철없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거다. 철없다고 하다니. 만화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니 그럴 수 있는데,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다니. 그때 내가 생각한 말은 철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걸로 바꿨다. 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여기에는 나이랑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어쩐지 이걸 보는 사람도 비슷할 것 같다. 힘든 현실을 잊으려고 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꿈꾸는 철없는 사람이 더 많이 보는 듯하다. 이 말은 내가 철없다는 거구나. 그렇기는 한데 난 조금 다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언가 하지 않으니까. 시작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끝이 어떨지 생각해버린다. 내가 이렇게 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겁쟁이가 된다. 난 ‘못해’보다 ‘하기 싫어, 귀찮아’ 할 것 같다. 루피는 ‘못한다’는 말 싫어하는데, ‘하기 싫다’고 하는 말은 어떻게 생각할까. 난 여기저기 다니면서 하고 싶은 건 없으니 좀 괜찮지 않을까. 나도 하고 싶은 건 한다. 그게 적을 뿐이고 잘 못할 뿐이다. 어쩐지 변명 같구나.

 

지난번에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카이도 부하 잭이 찾는 라이조가 코끼리섬에 있다는 거다. 밍크족과 왜국 고즈키 집안은 형제와 같았다. 나라가 망하는데도 밍크족은 라이조가 그곳에 없다고 말했다. 왜 그랬느냐 하니, 적한테 동료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말은 루피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거다. 이번에 루피가 동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다. 동맹을 맺으면 친구라고.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동맹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인지 몰라도. 고즈키는 왜국 다이묘였다. 모모노스케와 긴에몬은 부자 사이가 아닌 주군과 가신 사이였다. 모모노스케가 자신은 높은 사람이야 하니, 루피가 그게 무슨 상관이야 했다. 루피가 가진 이런 점 부럽다. 루피는 누가 어떤 자리에 있든 똑같이 대한다. 보통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편하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높은 사람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인가. 나도 루피처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루피를 보고 일본 사람은 저럴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루피가 별나다는 걸 알았다. 루피는 오다 에이치로가 만들고 이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 거겠지. 찾아보면 루피 같은 사람 실제로도 있을 거다.

 

왜국은 굳게 닫힌 곳이다. 모모노스케 아버지 고즈키 오뎅(이름이 오뎅이라니, 조금 웃었다. 모모노스케는 복숭아가 들어간다)은 해적왕 골 D 로저와 함께 모험하고 세상의 비밀을 알았다. 고즈키 오뎅이 죄를 지어 처형당했는데 죄는 나라를 나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즈키 오뎅을 죽인 건 쇼군과 카이도다. 긴에몬은 고즈키 오뎅이 남긴 말을 지키겠다고 한다. 그것은 닫힌 왜국을 여는 일이다. 긴에몬은 카이도, 쇼군과 싸우는 걸 루피와 로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난 루피가 싫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다. 왜 싫다고 하는지 짐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루피는 모모노스케한테 그 말을 하게 했다. 여덟살이어도 모모노스케는 다이묘 고즈키 집안 후계자니까. 이런 것도 여러 번 봤다. 여러 번인데 생각나는 건 나미, 비비, 로빈……, 시라호시도 했던가. 루피도 어렸을 때 잘 울었으면서 그건 잊어버렸나 싶기도 하다. 본래 루피와 로는 카이도를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그게 왜국을 구하는 일이 되겠다. 그렇다고 루피와 로와 둘의 동료만 싸우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더 큰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카이도 부하 숫자가 많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왜국무사, 밍크족이 함께 싸우고, 예전 흰수염 해적단 1번대 대장 마르코한테도 도움 받으려 한다. 마르코는 한해전에 검은수염해적단과 싸우고 졌다. 그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네코마무시가 마르코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사이 나쁜 네코마무시와 이누아라시는 잠시 싸우지 않기로 했다. 카이도와 싸우는 건 시간이 더 지난 뒤다. 상디도 데려와야 한다.

 

코끼리섬을 떠날 때가 다가오다니. 카이도 부하 잭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했는데 그건 잘못된 거였다. 잭은 다시 코끼리섬에 오고 커다란 코끼리를 죽이려 했다. 천년이나 산 코끼리니 늙었다면서. 커다란 코끼리는 살아있다. 코끼리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몇 있지만 코끼리와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루피도 코끼리 목소리는 들었지만 코끼리는 루피 말을 못 들었다. 코끼리는 잭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모모노스케한테 알리고 자신한테 싸우라고 말하라 했다. 모모노스케가 그 말을 하자 커다란 코끼리는 잭이 탄 배와 다른 배를 공격했다. 여기에서 싸움이 일어나려나 했는데 커다란 코끼리가 해결했다. 커다란 코끼리(즈니샤, 이름 있는데 이제야 말했다)는 무슨 죄를 지어서 천년이나 바다를 돌아다니는 건지. 모모노스케는 코끼리섬에 남기로 했다. 여기에서 잠시 헤어진다. 왜국에 가는 쪽, 마르코 찾으러 가는 쪽, 상디 데리러 가는 쪽, 코끼리섬에 남는 쪽으로. 나중에는 모두 왜국에서 만나기로 한다. 코끼리섬에 있는 사람은 그냥 거기에 있을까. 모모노스케가 커다란 코끼리와 이야기하고 왜국에 갈까.

 

중요한 걸 먼저 말하지 못했다. 코끼리섬에는 빨간색 포네그리프가 있었다(포네그리프는 커다란 돌로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로드 포네그리프로 모두 네개가 있는데 하나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하나는 카이도가 하나는 빅맘이 갖고 있었다. 루피는 바로 그걸 빼앗으러 가자고 한다. 빨간색 포네그리프를 다 읽으면 마지막 섬 라프텔에 갈 수 있다. 그래서 로드(길)가 붙었나보다. 돌을 훔치지 않고 탁본을 뜨면 된다고 네코마무시가 말했다. 나도 루피처럼 생각하고 그 커다란 돌을 어떻게 가져오나 했는데. 모모노스케 집안 이야기도 못했구나. 고즈키 집안은 석공으로 오래전 조상이 포네그리프에 역사를 새겼다. 로드 포네그리프가 코끼리섬에 있는 건 그것 때문이다.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도 고즈키 집안 신하다. 고즈키 오뎅이 로저 배에 탔을 때도 함께 있었는데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는 끝까지 갔다 오지 않았다. 지난번에 이누아라시가 샹크스 이야기를 했는데 배에 함께 있었구나. 카이도는 로드 포네그리프는 찾는 걸까, 아니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은 걸까. 고즈키 집안에는 포네그리프를 읽을 수 있는 게 전해졌는데 고즈키가 죽어서 끊겼다. 포네그리프를 읽을 수 있는 건 로빈뿐이다. 로빈은 동료가 자신을 지켜줄 거다 했다.

 

마리조아에서 여러 나라 왕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가보다. 비비는 아버지를 따라가고, 시라호시는 무섭다 하고, 레베카는 비올라 시녀로 가려 한다. 이거 보고 루피가 만나고 도와준 사람이 왕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이사이 보통 사람도 있었지만. 비비 시라호시 레베카 셋이 만나면 루피와 동료 이야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은 나이도 비슷하다. 셋이 만나는 모습 나올까. 상디 집안도 왕족이다. 나라 없이 다니는 왕족. 그런데 왜 사람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할까. 그렇구나 이것 또한 힘이다. 빅맘 딸 사진을 본 상디는 조금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스릴러바크에서 만난 로라와 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로라 엄마가 아닐지. 로라 엄마가 빅맘하고 상관있지 않을까 했는데. 루피는 나미 쵸파 브룩과 페콤즈 그리고 페드로 캐럿과 함께 상디를 되찾으러 간다. 상디 이름에는 삼이 들어 있는데 이건 셋째여서였다(본래는 넷째구나). 상디 동생은 욘디고 누나는 레이주다. 욘디에는 사가 레이주에는 영이 들어있다. 욘디는 상디처럼 여자를 보면 좋아하지만 마음이 차가웠다. 누나인 레이주는 생선독을 먹은 루피를 도와줬다. 바닷속에서 징베는 서니호를 보았다. 여기서 다시 만나는구나, 만날까. 상디 결혼 상대인 푸딩은 어떤 사람일까. 이번에 조금 나왔다. 초콜릿으로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푸딩은 루피와 쵸파를 도와줬다. 루피와 푸딩은 서로를 몰랐다. 루피가 상디 동료라는 것과 푸딩이 상디와 결혼할 상대라는 것을. 처음 만났으니 모르는구나. 푸딩이 루피를 도와주면 좋겠다.

 

코끼리섬에 라이조가 있다고 했는데 라이조 이야기는 못했다. 어디에서 하면 좋을까 하다 기회를 놓쳤다. 라이조는 닌자였다. 루피 쵸파 우솝에 조로와 로는 라이조한테 인법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게 좀 웃겼다. 이름이 라이조여서 번개 같은 것을 쓸까 했는데. 천둥이던가. 나미 무기도 고쳤다. 번개는 나미구나. 혁명군총본부를 검은수염해적단이 부쉈다는 기사가 있었다. 다행하게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이건 기사로만 나오고 마는 건가. 카이도와 싸우기 전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보이는 건 왤까. 빅맘하고는 지금 크게 부딪치지 않겠지. 상디와 함께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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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가 우주에 가고 싶어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밤하늘 별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 때일까. 그게 언제인지 잘 몰라. 원시시대는 아니었을 것 같아. 그때는 지구에서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을 테니까. 아주 오래전에는 아주 커다란 동물뿐 아니라 날씨도 사람을 살기 어렵게 했을 거야. 문자를 만들고 한 곳에 머물러 살게 되자 눈을 더 먼 곳으로 돌린 건지도.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지. 오래전에는 천동설로 지구를 중심으로 별이 움직인다 여겼어. 자연철학을 한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알았겠군. 진리라고 해도 그게 늘 그대로는 아니야. 바뀌지 않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뀌는 것도 있어. 그건 진리가 아닌 지식이라 해야 할까. 지식은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는 말을 언젠가 보았는데. 사람은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 과학은 인류가 나타났을 때부터 있었겠지. 아니 인류가 없었을 때도 있었겠어. 그때는 말이 없었겠지만. 그런 때는 상상하기 어렵기도 한데,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지금 과학은 서양 중심이지만, 동양에는 동양만의 과학이 있었어. 갑자기 이런 게 생각나다니 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갈 수 없는데. 다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조금씩 합쳤다면 다른 것도 나타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새로운 게 밀려온 건 순식간이어서 정신차리기 힘들었을지도. 과학 수학은 참 어려워. 그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학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알아도 사는 데 문제없기는 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알려는 게 과학이지. 지구뿐 아니라 우주 비밀도 알고 싶어하지. 지구가 우주의 한 부분이군. 우주 어딘가에는 생물체가 있을까. 과학소설에는 우리가 실제 본 적 없는 것들이 나와 그런 걸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거의 로봇이 하기도 해. 이건 지금 세상과 다르지 않군. 로봇 때문에 사라진 일도 많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아. 과학이 발달하는 게 인류한테 좋기만 한 건지 잘 모르겠어. 뭐든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지만. 돈을 덜 들이고 돈을 많이 벌려는 생각보다 다른 것을 더 생각했으면 해. 무언가를 했을 때 일어날 일을. 그런 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거야. 사람만 생각하지 않고 지구에 사는 목숨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해.

 

소설 한권 읽고 별 생각을 다했군. 과학 실험을 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나오지도 않는데. 과학소설도 보통소설처럼 봐도 괜찮을 텐데, 그게 잘 안 돼. 왜 그럴까. 과학소설이라고 해서 과학을 잘 알아야 볼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과학소설은 과학을 좋아하고 로봇이나 우주에 관심있는 사람이 더 좋아할 것 같기도 해. 과학이 우리 생활과 멀지 않기는 할 텐데. 그걸 잘 모르고 살지.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쳐주면 과학을 재미있게 생각할지도 모를 텐데. 하지만 쉬운 것만 배우면 대학에 가기 어려울지도. 킵 아빠가 킵이 다니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더니 그런 것만 배우면 안 된다고 하더라구. 킵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 그때부터 어려운 공부를 해. 이런 거 재미있게 보여. 킵 아빠는 뭐든 킵이 스스로 하게 해. 아이가 바라는 게 있으면 바로 해주는 부모가 있기도 하잖아. 그렇게 자라다 부모가 없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지. 부모는 아이가 홀로 설 수 있게 조금만 도와주는 게 좋을 듯해. 그것도 알게 모르게. 킵이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갈 자격이 생긴 다음에 한 말은 ‘달에 가고 싶다’야. 그 말을 듣고 킵 아빠는 ‘그러렴’ 해. 해결 방법은 킵한테 찾으라 한 거야.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달이라니.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아직 인류가 달에 가지 못했어. 하인라인은 인류가 달에 가는 세상을 그렸어. 다른 건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데. 라디오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이 있잖아. 킵은 텔레비전을 만들었어. 아직 컬러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소설에는 컬러 텔레비전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아직 인류는 달에 기지를 세우지 못하고 우주로 나가 살지도 못해. 지구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겠지. 있다 해도 멀어서 찾지 못한 걸지도. 지구와 조금 달라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 있을지. 가끔 외계인한테 잡혀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그 사람은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외계인이 만든 것 같은 문명도 있지. 킵은 비누회사에서 하는 경품대회에 참가해. 표어를 써서 보내는 건데, 1등 상품이 달 여행이야. 킵은 5782개나 보내. 엄청난 숫자야. 난 킵이 많이 보내서 뭔가 되려나 했는데, 1등과 같은 게 있었지만 소인이 늦어서 킵은 으뜸상이 됐어. 으뜸상한테는 낡은 우주복을 줬어. 우주에 가지 못하는데 우주복이 있으면 뭐 하나 싶은데, 킵은 우주복을 입어보고 고치기도 해. 어느 날 킵이 우주복을 입고 놀고 있는데 무전기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리고 우주선이 나타나. 킵이 바라는 방법은 아니지만 킵은 그렇게 해서 달에 가. 달에 가고 싶다고 한 거 이뤘군. 여자아이는 본래 이름이 있지만 피위라고 해. 피위 아빠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야. 피위가 외계인, 아니 우주 해적이 지구로 옮겨오려 한다더군. 많은 숫자가 몰려온 게 아니어서 다행인가. 우주경찰이라는 엄마생물도 있어.

 

지구가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는 듯한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니. 달에 간 걸 안 킵은 피위와 함께 달 기지에 가서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다시 잡히고 명왕성에 끌려가. 명왕성이라니. 말이 안 된다 해도 이런 상상을 하면 재미있겠지. 우주에는 우주 해적(킵은 벌레머리라고 해)만 있는 게 아니야. ‘세 은하 연맹’이라는 것도 있어. 이건 현실에 있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어떤 것이 위험하다 여기고 아예 없애버리려는 것도 그렇고. 인류가 그렇게 될 뻔했어. 다행하게도 인류를 없애지는 않았어. 외계에서 인류를 없애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인류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과학소설에는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이건 재미있어. 언젠가 인류는 달에 기지를 세울까. 우주도 마음대로 다니고. 그때 우주 해적보다 엄마생물을 만나면 훨씬 좋을 것 같아. 엄마생물이라 한 것은 피위야. 엄마생물이 곁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하다고 해. 엄마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래. 이건 하인라인이 우주 어딘가에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쓴 것일지도.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엄마 하면 따듯함과 편안함을 떠올리는가봐. 신기한 일이지. 피부색이나 말은 달라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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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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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곳곳을 걸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아주 없지 않겠지만, 볼 게 없어서 걷지 않거나 늘 다니는 곳만 다닐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그러네요. 제가 늘 걸어다니기는 해도 아주 멀리까지 걸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합니다. 하루로는 모자랄 듯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도 제주도를 다 아는 건 아니겠지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건물이나 문화재 같은 게 있는 곳은 가끔 걸어다녀도 좋을 듯싶네요. 가장 먼저 경주가 떠오르는 건 왜인지. 제가 사는 곳에도 뭔가 있을지 모를 텐데 아쉽게도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런 곳은 집에서 먼 곳이어서 걸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 지금은 많이 달라진 배 타는 곳에는 가 볼 수 있겠네요. 일제강점기 때 배나 화물차가 다닌 곳도 있을 텐데. 오래전부터 쓰지 않은 철길 본 적 있어요. 그런 게 남아있다니.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듯한 건물도 있고, 지금도 그런 게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중학교 때 친구집이 그랬던 것 같은데, 그쪽에 안 가 본 지 오래됐군요. 예전 시청도 참 오래된 곳일 텐데. 저는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네요. 이건 어디나 그렇겠군요.

 

제가 달라진 게 별로 없다고 했는데, 저는 잘 느끼지 못하는 거고 저도 달라졌겠지요. 다른 곳에 가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을. 잠시 생각만 하고 그걸 해내지 못했네요. 지금은 어딘가에 가는 것을 아예 좋아하지 않습니다. 떠나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고 나라까지 떠나기도 합니다.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 사람도 있고, 떠나고 그곳에 눌러앉은 사람도 있겠지요. 어떤 까닭으로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든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곳 말과 사람과 추억이 있는 곳이 떠오르겠습니다. 허수경은 경남 진주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을 나온 뒤 서울에서 일하다 1992년에 독일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어떤 일로 그곳에 눌러앉게 됐는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나봅니다. 살다보면 뜻밖에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독일에 가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겠지요. 갑자기 집 안이 아닌 밖으로 나가야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고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별일 일어나지 않거든요.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허수경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면서 좋은 일이 있었겠지 하는 것 같네요.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는 쓸쓸했겠지요.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갔으니. 그럴 때는 걸으면 좋을까요. 걸어서 그곳을 알아보는 거죠. 이사해도 그런 거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이사 별로 안 해 봐서 그런 일 없었군요. 어릴 때는 ‘이사하는구나’ 했을 뿐이고. 이사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많네요. 제가 사는 곳도 잘 모르고 허수경이 걸은 독일 뮌스터도 모릅니다. 이곳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답니다. 세계사 시간엔가 한번쯤 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생각나는군요. 그게 30년 전쟁 뒤에 한 건가. 아니면 어쩌려고 이런 말을. 예전에 독일을 소개한 사람이 있지요. 전혜린. 슈바빙인가가 생각나는군요. 허수경이 걸은 뮌스터도 좀 알려지겠습니다. 걷기만 한 건 아니고 스무해를 살았답니다. 그 정도 살면 거의 고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제가 별말을 다했네요. 어디든 고향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저도 지금 사는 곳 고향은 아니예요. 고향이다 생각 안 하고 사는 것 같기도 하네요. 고향이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호적에 쓰인 곳이기도 하지요. 그게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달라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사는 것도 다르지 않고.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함을 잘 모릅니다.

 

앞에서 어디 가는 거 안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선지 어딘가에 갔다 오고 쓴 책도 잘 안 봐요. 이 책을 보기로 한 건 ‘걸어본다’ 는 말 때문입니다. 제가 걷는 건 좋아하니까요. 실제 뮌스터를 걷는 건 아니지만, 책으로 걸어보는 경험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을 하고 책을 봤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이거 대체 무슨 이야긴가 했습니다. 얼마전에 만난 책에서도 프랑스 역사를 말해서 어리둥절했는데. 어디든 지난날이 있지요. 그것을 알고 어딘가에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아주 다를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지금밖에 볼 수 없지만, 알고 가면 지난날도 볼 듯합니다. 뮌스터는 독일에 있는 한 도시예요. 학생이 아주 많아서 학생 도시라고 한답니다. 독일 하면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유대인 학살, 나치는 동성애자와 장애인을 거세하고 죽였더군요. 제2차 세계전쟁 때는 뮌스터도 폭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부서진 건 되살리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잘못한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지요. 그렇기는 해도 다 정리하지 못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소설이 있어서 한 말입니다.

 

시작은 독일 시인 시로 합니다. 허수경은 독일말을 배우고 열해가 지나고 독일 시를 읽었다고 하네요. 소설은 어떻게든 봐도 시는 본래 말로 보기 어렵겠지요. 독일말로 쓴 시를 한국말로 옮겨도 그걸 그대로 느끼기 어려운데. 제2차 세계전쟁 때 쓰인 글로 《안네의 일기》가 잘 알려져 있잖아요. 안네와 비슷한 나이에 시를 쓴 사람도 있더군요. 젤마 메르바움 아이징어는 열다섯 때부터 시를 쓰고 열여덟에 강제 수용소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쓴 시는 친구들이 지켰습니다. 이 이야기 윤동주 생각나게 하는군요. 윤동주가 묶은 시집도 친구가 지켰잖아요. 뮌스터 길 바닥에는 ‘걸림돌’이라는 경고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전쟁 때 끌려간 사람 이름이 쓰인 황동판입니다. 그런 사람 아주 많을 텐데. 그렇게 해서라도 잊지 않으려고 하는군요. 한국에도 많은 피해자가 있는데, 그건 일본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그걸 잊어야 하는 건 아니죠. 황동판을 보니 일본 위안부로 끌려간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느새 한국을 되찾은 지 일흔한해째입니다. 이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아야 하는 일이고 그런 일 많군요.

 

 

                      

 

                       여기에 살았다.

                       (이름)

                       (태어난 해)

                       (죽은 해)

                       (끌려간 곳)

 

 

 

거의 모르는 뮌스터여서 허수경을 잘 따라가려 했는데, 어쩐지 가끔 놓친 듯합니다. 저는 모르는 곳에서도 잘 걷습니다. 칠기박물관 성당 도서관 책방 뮌스터아 강. 여기저기 다니려면 하루로는 안 되겠군요. 푸른반지처럼 보이는 산책길을 걸으면 기분 좋을 듯합니다. 거기에는 자전거길도 있어요. 깜박했는데 뮌스터에서는 자전거 많이 탄답니다. 도시기는 해도 한국처럼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 듯해요. 한국에도 그런 곳 있을지도 모를 텐데. 한국은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짓기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요. 독일을 다 돌아본 건 아니어도 괜찮군요. 여러 곳이 아닌 한 곳이어서 더 좋습니다.

 

 

 

희선

 

 

 

 

☆―

 

경고한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85쪽)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기억하지 않고 묻어버린 공동체 과거는 언젠가는 그 공동체에게 비수를 들이댄다.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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