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81

오다 에이치로

集英社  2016년 04월 04일

 

 

 

일본에는 만화가 아주 많이 나온다. 오랜 시간 나오는 것도 있는가 하면 잠깐 나오다 사라지는 것도 있겠지. 일본에서는 만화하는 걸 도박에 비유하기도 한다. 잘되면 엄청나게 벌고 안 되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온 만화가 <바쿠만>이다. 한국말로 하는 도박하는 사람일까(노름꾼, 도박꾼). <바쿠만>은 책이 아닌 만화영화로 보았다. 거기에서 만화가가 일하는 걸 조금 엿보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만화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만화가도 있지만 만화가를 돕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라고 만화가가 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잘나가는 만화가 밑에서 일을 한다. 되는 사람은 잘되지만, 안 되는 사람은 언제까지고 안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만화가를 돕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 일 한다고 해서 안 좋을 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만화를 내지 못하면 오래 못하겠지. 이런 말은 왜 꺼낸 걸까. <원피스>는 사라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서다. 하지만 앞으로 끝까지 나올지 이건 알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 없으면 연재는 못할 테니까. <원피스>는 별 문제없이 끝까지 가겠지 했는데,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잘 나올 때 즐겁게 만나야 하는데.

 

드레스로자에서 나온 루피와 동료 몇과 로는 아주 커다란 코끼리 위에 있는 환상의 섬에 닿았다. 조는 코끼리여서 전에 코끼리섬이라 했다. 정확하게는 코끼리 등 위 섬이다. 로는 자기 동료를 만나러 가고 루피는 나미와 쵸파를 만났다. 이건 지난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코끼리섬은 어떤 일이 일어난 뒤였다. 나라가 망했다. 누군가 천년이나 이어온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대체 누가 왜 그랬을까. 상디와 나미와 쵸파 브룩 모모노스케가 코끼리섬에 왔을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인질로 잡힌 시저도 있었다. 지금 보이지 않는 사람은 상디와 시저다. 서니호에 타고 먼저 코끼리섬에 가려한 동료 앞에는 사황에서 한 사람인 빅맘 배가 나타났다. 상디가 싸우겠다고 했는데 그때 상디 혼자 빅맘 배로 가지 않고 서니호에 있던 쵸파와 나미와 브룩이 함께 싸워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서니호는 그렇게 코끼리섬에 갔다. 그때 코끼리섬은 습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전에 잠깐 상디와 브룩이 누군가와 싸웠는데 그건 코끼리섬에 사는 밍크족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코끼리섬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 부하였다. (밍크족은 두 발로 걷는 동물 모습이다.)

 

서니호가 코끼리섬에 간 것을 먼저 말하다니. 시간을 좀더 뒤로 돌려서 코끼리섬에 찾아온 건 사황에서 한사람인 카이도 부하 잭이었다. 잭과 잭 부하. 카이도가 관계했다니. 잭은 코끼리섬에서 왜국 사무라이 라이조를 찾았다. 라이조를 찾는 건 카이도겠지. 아직 이름만 나온 라이조는 어떤 사람이길래 찾는 걸까. 루피와 만난 긴에몬과 칸주로도 라이조를 만나려고 코끼리섬에 간 거다. 잭이 코끼리섬에 쳐들어와서 다짜고짜 사무라이 라이조를 내놓으라고 했다. 코끼리섬에 사는 밍크족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잭이 밍크족을 잡아서 고문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잭은 루피와 로가 도플라밍고를 무찔렀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를 남겨두고 그곳을 떠났다. 상디와 나미 쵸파 브룩은 밍크족을 도왔다. 코끼리섬에 독가스가 퍼져 있었는데 그건 시저가 만든 거였다. 시저는 어쩔 수 없이 독가스를 없앴다. 밍크족은 밀짚모자 일당이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루피와 다른 동료도 반겼다. 처음에는 몰라서 공격했지만.

 

이제 상디가 왜 그곳에 없는지 말해야겠다. 서니호가 코끼리섬에 간다고 한 걸 빅맘 배에 있던 사람이 들었다. 어인섬에서도 만난 페코무즈 고향이 코끼리섬이었다. 코끼리섬은 늘 움직여서 쉽게 찾을 수 없지만, 페코무즈는 바로 찾았다. 페코무즈는 상디와 동료가 코끼리섬 사람을 도와줘서 시저만 데려가려 했는데, 빅맘 밑에 들어간 카포네 갱 베지가 페코무즈를 공격하고 쓰러뜨렸다. 베지는 다른 동료를 인질로 잡고 상디한테 자기 말을 들으라 한다. 빅맘이 결혼식 차모임에 상디를 불렀다고 했다. 결혼식 신랑이 상디였다. 본인도 모르는 결혼식이라니. 상디 집안에서 멋대로 정한 거였다. 상디 집안은 살인을 전문으로 했다. 이런 게 이제서야 나오다니. 상디는 자신이 매듭을 짓겠다 하고 다른 동료는 달아나게 하고 혼자 떠났다. 꼭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예전에 상디 어린시절이 나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상디는 자기 집에서 뛰쳐나온 걸까. 집안에서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 그것보다 꿈이 생겨서였을지도. 어떻게 상디가 집을 나왔는지 나오면 좋겠다. <헌터X헌터> 에서 본 키르아가 생각난다. 키르아 집안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현실에서는 이걸 일이라 하지 않지만,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코끼리섬이라고 했는데 나라 이름은 모코모 공국이다. 별나게도 이곳은 두 사람이 낮과 밤을 나누어서 다스린다. 낮왕은 이누아라시고 밤왕은 네코마무시다. 이름이어서 그대로 썼다. 쉽게 괴물 개와 괴물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누아라시는 왕이지만 네코마무시는 나리다. 총사대(삼총사)와 가디언즈가 있다. 둘은 예전에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사이가 나빠서 서로 얼굴 보기 싫어한다고 한다. 이누아라시는 루피가 쓴 밀짚모자를 보고 예전에 샹크스를 만났다는 말을 했다. 저녁 여섯시가 되자 이누아라시는 바로 잠들었다. 다음에는 고래숲에 있는 네코마무시를 만났다. 네코마무시는 좀 웃긴다. 브룩이 참 좋아한다. 어쩐지 루피하고도 잘 맞아 보이기도 하는데. 다쳤으면서 목욕하고 먹을 거 먹고, 쵸파가 주사 놓는다고 하니 강아지풀로 자기 마음을 끌어달라고 한다. 루피와 동료를 보고는 잔치하자고 했다. 루피는 상디 일을 조용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혼자 빅맘이 여는 차모임에 숨어들려고 한다. 여기에는 아직 페코무즈가 있었다. 루피는 페코무즈한테 차모임에 데려다달라고 한다.

 

 

네코마무시는 쵸파한테 자신이 강아지풀로 놀 때 주사를 놓으라 하고, 주사 한대 맞고 다 나았다고 한다

브룩은 그런 네코마무시를 보고 웃고, 우솝은 생긴 것과 다르게 주사를 무서워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도 정략결혼이 나오다니. 빅맘 딸(친딸이 맞을까)과 상디를 결혼시키려는 것은 집안 때문이다. 빅맘 딸이 예쁘면 상디는 결혼하고 싶어할까. 아니 상디는 아직 누구 한사람을 좋아하기보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고 싶어할 것 같다. 루피가 혼자 가도, 그곳에서 누군가 도와주거나 페코무즈가 조금 도와주겠지. 마지막에는 반전이. 그건 원피스에 자주 나오는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한권 보면 다음 이야기 빨리 보고 싶다. 이 마음이 가시기 전에 다음 82권 보아야 할 텐데. 일이 복잡하게 얽힌 듯하다. 어떻게 풀릴지 잘 봐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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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다머   My Friend Dahmer (2012)

  더프 백더프   강수정 옮김

  미메시스  2015년 12월 30일

 

 

 

 

 

 

 

 

 

 

 

 

 

 

 

제목을 보고 나는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놀리는 이야긴가 했다. 그렇게 놀린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왜 장애인이 나온다고 생각했느냐면 제프리 다머(제프)가 그렇게 보이는 그림이 있어서다. 책 뒷면을 보면 이게 어떤 이야긴지 바로 알 수 있다. 그건 나중에 보았다. 미국에는 그래픽노블이라는 게 예전부터 나온 것 같은데, 한국에는 몇해 사이에 줄줄이 나오는 것 같다. 나온 지 오래됐는데 내가 안 지 몇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 처음으로 보았다. 만화는 조금 봤지만.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아주 다른 걸까. 작가는 만화라고 생각하고 그렸는데, 누군가 이것을 멋지게 보이게 하려고 그래픽노블이라 한 건 아닐까. 그 뒤로 이런 식으로 그린 걸 그래픽노블이라 한 거다. ‘이런 식’을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난 한국사람이라 만화소설이라 하고 싶은데. 만화로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 게 많이 나온 걸로 안다. 그냥 만화라고 해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그림 이야기’ ‘그림책’이라 하면 어쩐지 어린이가 보는 책 같겠다. 이런 것과 다르게 보이게 하려고 그래픽노블이라 한 것일지도.

 

범죄소설을 보면 연쇄살인범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나오기도 한다. 《내 친구 다머》는 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연쇄살인범이 어릴 적 친구인 사람도 있을 거다. 이 책을 그린 더프 백더프도 여러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와 친구였다. 아주 친한 건 아니었다. 더프는 중학교 때는 제프를 잘 몰랐다. 제프가 있다는 것을 안 건 중학생이 되고 몇달이 지난 뒤다. 이런 거 보니 나도 다르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같다고 말할 수 없겠지. 난 죽은 동물을 모은 적 없고 동물을 죽이고 싶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제프는 죽은 동물을 모아두었다. 그건 중학생 때까지 하고 고등학생이 되고는 죽은 동물 살을 발라냈다. 이건 한단계 앞으로 나아갔다고 해야 할까. 제프는 중학생 때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고 해서 다 제프처럼 되는 건 아니다. 더프와 다른 친구가 제프한테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더프와 친구들은 그저 제프가 가짜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거나 뇌성마비 환자 흉내내는 걸 재미있게 보았다. 제프는 그때 아이들이 자신한테 관심 가진 걸 좋게 생각했을까.

 

제프 부모는 자주 싸웠다. 엄마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예민했다. 이런저런 약을 먹고 발작을 일으켰는데, 제프는 그런 엄마를 보고 흉내낸 거였다. 엄마와 아버지는 결국 헤어졌다. 아버지가 먼저 집을 나가고 제프가 고등학교를 마치기 얼마 전에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제프는 집에 혼자 남았다. 나중에 제프가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알았을 때 아버지는 제프가 고등학생 때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프가 집에서는 아무 조짐을 보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엄마가 제프한테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아서 몰랐겠지. 부모 때문에 제프 마음이 불안정한 것도 있었지만, 제프는 남성을 좋아했다. 그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충동스런 상상을 했다.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독한 술을 마셨다. 학교에서도 늘 술에 취했있었는데, 학교 선생님은 제프한테 별 말 하지 않았다. 선생님 가운데 제프와 이야기하려 한 사람이 있었다면 제프가 자기 마음을 털어놓았을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땠을지. 더프는 학교에서는 제프와 장난쳤지만 학교 밖에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제프가 웃기는 행동을 한다 해도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더프를 탓할 수 없겠다. 친한 친구도 아니니 그 애한테 마음 쓰기도 힘들겠지.

 

학교라는 데를 다녀서 제프가 어떤 선을 넘지 않았는데, 학교를 마치고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집에 혼자 있던 제프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죽인다. 제프가 사람을 죽인 건 성 충동이다. 시체를 조금 먹기도 했단다. 그렇게 먹으면 자신과 늘 함께 있을 것 같았다고. 아홉해 뒤에 제프는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처음에 자수했다면 나았을까, 아버지가 제프를 군에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제프가 연쇄살인범이 된 데는 가정환경 탓이 클까. 아무리 날 때부터 이상하다 해도 자라는 환경이 괜찮으면 좀 낫겠지. 1970년대에도 동성애를 좋게 여기지 않았을 거다. 그때도 동성애자는 있었을 텐데. 제프는 자신을 받아들여줄 사람이 없다 여기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욕망을 채우려한 것일지도. 가정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부모가 자주 싸우고 불안해도 다른 데 마음을 써서 그것을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제프가 누군가한테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말했다면 나았을 텐데 싶다. 제프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구나.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사람을 만나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써서 괜찮다. 책을 보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친구를 사귀기 힘든 사람은 책을 친구로 사귀면 어떨까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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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Kindred (1979)

  옥타비아 버틀러   이수현 옮김

  비채  2016년 05월 31일

 

 

 

 

 

 

 

 

 

 

 

 

 

 

 

어떤 것보다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별로 못 본 게 있어. 그건 SF야. 다시 생각하니 SF만 별로 안 본 건 아니군. SF를 글로는 별로 못 봤지만, 만화영화나 영화로는 조금 봤어. 그런 거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아. 만화영화나 영화는 보여주어서 어렵게 보이지 않는 거겠지. 기계나 로봇이 어떤지 설명하는 글은 뭐가 뭔지 알기 어렵잖아. 과학소설은 과학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이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어. 과학소설에도 사람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닌데, 좀더 넓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가기도 해. 지구도 사람한테는 넓은데 우주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고 모르는 게 많아. 그런 걸 상상하는 게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어. 지구에 살아도 세계를 다 돌아보지 못하는데. 지구는 우주의 한 부분이고 그 안에는 사람도 들어가지. 우주를 생각하면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기도 해. 사람이 우주를 생각하고 겸손해지면 좋을 텐데, 우주를 어떻게 이용할까를 더 많이 생각하지. 이건 과학이 발달한 뒤겠군. 그전에는 신을 생각하고 무서워했잖아. 신화나 별자리 같은 걸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도 잘 몰라. 우주라는 말을 하니 저런 게 생각났어.

 

과학소설이라고 해서 다 우주, 외계인이 나오는 건 아니군. 시간여행도 SF에 넣기도 해. 이런 건 쉽게 볼 수 있고 나도 여러 번 봤어. 기계로 하는 시간여행 이야기도 있지만 우연히 자신이 사는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가는 이야기도 있어. 이게 그래. 어떤 건 법칙 같은 게 나오지 않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게 나와. 다나는 다나 조상 루퍼스 목숨이 위험해지면 19세기로 가고, 다나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때 자신이 사는 20세기(1976년)로 돌아와. 규칙은 없어. 자신이 가고 싶을 때 가지 않고 갑자기 다른 시대로 가. 바라지 않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기도 하지. 다나는 1976년을 사는 흑인 여성으로 소설을 쓰고 그게 팔리기를 바라. 다나 남편 케빈은 백인이고 소설가야. 둘 다 소설을 쓴다고 말해도 될 텐데. 다나가 쓴 소설은 팔리지 않았지만 케빈은 책을 세권 내고 잘 팔리기도 했어. 지금도 인종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만, 1976년에는 더했겠지. 아주 없지 않았겠지만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실제 두 사람 친척은 두 사람 결혼을 반기지 않았어. 1976년도 이런데 다나가 가는 19세기는 더했지. 그때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잖아.

 

다나는 자신이 바라지 않는 시간여행을 해. 다나는 처음 그곳에 가서 루퍼스라는 백인 남자아이를 구해. 다나가 그곳에 갔다 온 시간은 단 몇초였어. 바로 그날 또 루퍼스를 구하는데, 루퍼스는 강에 빠졌을 때보다 커 보였어. 두번째 때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걸 알고 자신이 루퍼스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세번째 때는 남편 케빈도 함께 그 시대로 가. 그게 좋았던 건지 안 좋았던 건지. 다나가 자기 시대로 돌아올 때 케빈이 바로 옆에 없어서 혼자 왔거든. 다나가 다음에 그곳에 가니 다섯해가 흐른 뒤였어. 루퍼스는 다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하면서 케빈한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대신 흑인을 재산으로만 생각하는 루퍼스 아버지가 케빈한테 연락했어. 아주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사람이 있겠지. 루퍼스한테 다나가 그랬을까. 루퍼스는 흑인 앨리스를 좋아하면서도 다나가 곁에 있기를 바랐어. 그 마음은 무엇일까. 앨리스가 루퍼스를 받아들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앨리스가 그러지 못한 건 루퍼스가 19세기 미국 남부 사람이어서일지도.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때(19세기) 사람, 거기에서도 남자는 흑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루퍼스는 앨리스를 사람으로 좋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지. 그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겠지. 그때 많은 흑인과는 다른 다나를 만나고 루퍼스가 달라질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이 소설을 쓴 사람은 흑인 여성이야. 그것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싶기도 해. 흑인 인권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여자나 남자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람을 봐야 할 텐데. 루퍼스가 그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루퍼스가 그 시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쉬워. 루퍼스는 그랬다 해도 그 시대에도 흑인이나 여성을 존중한 사람 있지 않았을까. 피부색과 상관없이 위험한 사랑을 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지금도 인종 문제가 다 사라진 건 아니야. 여성이 살기에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 남자 여자 조금 다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살면 좋겠어.

 

 

 

 

☆―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한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하다가 잔인해지기를 되풀이했다. 그를 내 조상으로, 내 남동생으로, 내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내 주인으로, 내 애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507쪽)

 

 

 

 

 

 

 

    

 

    

 

    

 

    

 

 

 

 

 

 

 

이중의 어려움을 가졌지만

 

  블러드차일드   Bloodchild and other stories (1996)

  옥타비아 버틀러   이수현 옮김

  비채  2016년 05월 31일

 

 

 

 

 

 

 

 

 

 

 

 

 

 

 

소설을 쓴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소설에 나오는 사람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사람이 쓴 소설을 보면 거기 나오는 사람도 한국사람이려니 한다. 지금까지 흑인이 쓴 글 본 적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있었는데 내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아프리카 사람이 쓴 거 본 적 있다), 백인보다는 아주 적은 듯하다. 그뿐 아니라 중국사람이나 다른 아시아 사람이 쓴 것도 별로 못 봤다.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거기 나오는 사람을 백인이라 생각했던가. 이건 잘 모르겠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미국 사람으로 여성이고 흑인이다. 책을 읽다 여기에 흑인이 많이 나온다는 걸 느꼈다. 모두 흑인일지 몇몇사람만 흑인일지. 한국사람이나 백인은 쉽게 생각해도 흑인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왜 그럴까. 자주 안 봐서 그런 것일지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피부를 가진 사람이 사는데, 백인을 더 생각하지 않나 싶다. 한국소설에 외국사람이 나오면 이름이나 겉모습으로 외국사람임을 나타내야 하고, 이건 흑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도 한국사람을 소설에 나오게 할 때 한국사람이라 하겠다.

 

지난번에 옥타비아 버틀러 소설 《킨》을 보고 재미있어서 단편은 어떨까 하고 보았다. 여기에는 작가가 그 글을 쓰게 된 이야기도 있다. 《킨》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으로 흑인 여자 다나가 노예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자신의 조상을 구한다. 흑인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쓴 건 아닐까 하기도 했는데. 여기 실린 단편은 SF와 판타지다. SF는 잘 안 보는 건데. 왜 읽기 힘들까 생각하니 실제 있는 것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SF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주나 외계인이 나온다. 여기에도 외계인이 나오는 거 있다. <블러드차일드>와 <특사>다. <블러드차일드>에 나오는 사람은 거의 흑인이 아닐까 싶다. 노예였던 사람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간 거니까. 그곳에서 사람은 틀릭의 숙주가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한식구에서 한사람이다. 작가는 남자가 임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집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영화 <에일리언>에서도 사람 안에서 외계 생물이 자라지 않았던가. 거기에서는 여자였지만. <특사>에 나오는 건 커뮤니티라고 한다. 사람을 감싼다고 해서 조개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커뮤티니가 오고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도 있다. 어떤 사람은 노아처럼 커뮤니티가 시키는 일을 하려고 한다. 커뮤니티 통역을 하는 노아는 커뮤니티와 사람이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암을 치료하는 약 때문에 DGD가 되고 DGD 부모 때문에 DGD가 된 아이. DGD인 사람은 규정식을 먹어야 한다. 언젠가는 ‘표류’를 하는데 그건 자폐증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DGD와 DGD 사이에서 난 사람에는 DGD를 안정시키는 냄새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건 현실에서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이 이야기는 <저녁과 아침과 밤>이다. 약 때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과 소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질병에 걸렸다. 죽은 사람도 많고 말하는 능력을 잃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하기도 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몸짓으로 말한다. 라이는 남편과 아이가 죽고 혼자 살다 다른 곳에 사는 친척이 아직 살았는지 찾아가보기로 한다. 라이가 탄 버스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한 남자를 만난다. 라이는 친척을 찾아가기보다 그 남자와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데 남자는 다른 사람한테 죽임 당한다. 사람이 죽임 당해도 경찰이 없으니. 절망스러울 때 말을 할 수 있는 아이 둘이 나타난다. 이건 희망이겠지.

 

여기 실린 글 가운데서 <가까운 친척>은 쉬운 편이다. 이건 SF도 판타지도 아니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근친상간이니까. 어머니는 딸한테 비밀이 들킬까봐 딸과 거리를 두었다. 딸은 어머니가 그러지 않아야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아직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없지만. <마사의 책>은 소설 쓰는 마사가 신을 만나고 사람이 좋은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다. 꿈이 유토피아라고. 꿈에서만 좋고 현실은 어두워도 괜찮을까. 마사는 사람이 좋은 꿈을 꾸면 현실도 잘 살아가리라고 하는데. 꿈만 꾸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쩌려고. 꿈속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이 잠들게 하는 만화도 있다. 그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서 주술을 풀려고 한다. 마사가 말하는 꿈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도 꿈을 꾸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이건 괜찮은 거겠지.

 

미국에서 흑인이고 여성으로 글을 쓰는 건 무척 어려웠을 거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어렸을 때 이모한테 자신은 작가가 되어 돈을 벌겠다고 하니 이모는 흑인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말에 옥타비아 버틀러가 뜻을 굽히지 않고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아 다행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끈질기게 썼다고 한다. 글을 쓰는 데 성별이나 피부색은 상관없기는 하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물고 늘어져서 쓰라 한다. 끈기가 있어야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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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여자로 사는 건 힘들지 않을까. 여자를 좀더 생각해주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밤늦게 다니지 마라는 말을 듣는 건 여자뿐이다. 이건 언제부터 그랬을까. 아주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말 안 하고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올까.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범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언제부턴가 ‘묻지 마’ 살인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어떤 사건이든 그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 안에는 좀더 다른 것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여자를 표적으로 삼고 죽인 사건 말이다. 올해(2016) 5월 17일에 일어난 일이 처음은 아닐 거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서울 강남역 가까운 곳 남녀 공용 화장실로 범인은 앞에 온 남성 여섯은 그냥 보내고 일곱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칼로 찔러 죽였다. 남자 여자를 떠나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만, 범인은 남성으로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된 걸까.

 

성차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단다. 예전에 여성은 재산이기도 하고 정치에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아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정말 그럴까. 난 남자 여자를 떠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자도 있다. 자신이 더 높은 데 있다는 식으로. 그런 사람은 무언가를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남자일 때는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여자가 그러면 싫어한다. ‘여자가 어디서 나대는 거야,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할지도. 드라마에 그런 거 자주 나왔다. 지금은 어떨지. 살림이 쉬운 것도 아닌데, 살림을 우습게 보는 남자도 있다. 돈을 받고 남의 집 살림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안 좋은 말할 때 ‘남자가’ 하는 말보다 ‘여자가’ 하는 말이 더 많지 않나 싶다. 운전하다 조금 잘못한 여자한테도 남자는 욕한다.

 

오래전에는 사회가 여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아들)을 여자(엄마)가 기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런 사람이 많은 건 아니겠지만. 여자(엄마) 혼자 아이를 길러야 하는 건 아니다. 부모, 엄마 아빠가 함께 길러야 한다. 연쇄살인범에는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지만,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가장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머니나 아버지다. 어머니를 죽인 다음에 여자를 죽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아무 상관없는 여자를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고 죽이기도 한다. 가정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이어서 여성한테 한마디 들으면 더 기분 나빠한다. 이건 성차별이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화풀이를 늘 어린 아들한테 하는 어머니, 아들 앞에서 늘 어머니를 낮잡아 보는 아버지.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자랄지도. 부모라고 해서 아이한테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좀더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 텐데 싶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가정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학교에서. 일터에서는 남녀차별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여성이 알게 모르게 차별의 말을 그냥 넘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세상에는 남녀차별뿐 아니라 많은 차별이 있다. 그런 게 세상에서 모두 사라지기는 어렵겠지. 무엇이든 한번에 바뀌지 않고 조금씩 바뀐다. 여성을 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바뀌기를 바란다. 여성한테 여성성을 밀어부치지 않아야 하듯이 남성한테도 남성성을 밀어부치지 않아야 한다. 남자니까 울면 안 돼 같은 말은 아주 안 좋겠지. 남자한테 여자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바람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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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가리지 않고 읽는다. 내게 비 오는 날 책 읽기는 특별하지 않다. 비 오는 날 좀 다른 일을 하려면 걷기일 텐데, 비 오는 날 걷는 건 싫어한다. 하루 내내 비가 내린 건 아니다. 아침에는 해도 뜨고 맑았는데 하늘에 구름이 깔리더니 낮에는 조금씩 내렸다. 비가 내릴 때는 하늘을 보지 않았는데 알고 있다니, 보아야만 날씨를 아는 건 아니다. 소리로도 알 수 있다(비는 냄새로도 알 수 있구나). 빗길을 달리는 차 소리가 들려서 알았다. 언젠가는 큰 빗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가 엄청나게 내려도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빗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빗물이 빠지지 않고 차오르는 곳에 끊임없이 내리면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닥이 아닌 물에 떨어져서 소리가 흡수된 것일지도. 지난 여름에 비가 얼마 오지 않아서 가끔 비 내리는 건 괜찮겠지 했지만, 너무 많이 오는 건 싫다. 날씨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를 빌 수는 있겠지. 그건 나만이 하는 마음 가라앉히기 방법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지도.

 

이번 악스트는 탁하고 연한 노랑이다. 연하고 어두운 노랑이라 해야 할까. 지난번 분홍도 밝은 건 아니었다. 분홍에 검정 물감 한방울을 떨어뜨린다면 그런 색이 나오지 않을지. 이번 건 노랑에 검정 조금, 하얀색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노랑 하니 노란 은행잎이 떠오른다. 한국소설과 다른 나라 소설로 나뉘었는데 다른 나라 소설은 이번부터 주제를 정했다고 한다. 이번 주제는 ‘여자’다. 올해 나온 책을 보면 페미니즘이 많은 것 같다. 여성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커졌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여성이 예전과 다르게 바깥에서 일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지금은 집안 일이나 아이 기르는 걸 부부가 함께 한다. 그런 사람이 늘고 있겠지.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동안은 두 사람이 일해도 집안 일은 여자가 다해야 했다. 바깥에서 똑같이 일하고 와서 집안 일까지 해야 한다니, 여자 힘들구나. 지금이라고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 남자 여자 다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을 바라지 않는 게 좋겠다.

 

서양 동양 할 것 없이 예전에는 여자가 글쓰기 쉽지 않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그런 시대에 글을 썼다. 올컷은 네 자매에서 둘째로 집안 일도 도맡아 했단다.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둘째 조가 떠오르는데, 조는 올컷이 바라는 모습이었다. 올컷은 《작은 아씨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빚 때문에 썼다. 쓰기 싫은 것을 써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다니, 본래 삶이 그렇기는 하다. 김연수는 시를 쓰려 했지만 소설을 쓰게 되었다. 시간이 나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을 본 사람이 소설 같다 했다. 김연수는 소설을 응모했다. 꼭 해야지 하고 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했더니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끝은 아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써야 한다. 김연수는 그래서 지금 한국 소설가겠지. 소설을 안 쓰고 일을 한 적도 있다. 김연수는 마지막으로 써 보고 싶은 것이 떠올라서 《꾿빠이, 이상》을 썼다. 소설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쓰는 것이라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써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소설을 쓰려면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그래야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쓰기도 하겠다.

 

한국소설에는 내가 읽어본 것도 몇권 있다. 이문구가 시골에서 쓰는 한국말을 잘 살려 썼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걸 알았다. 이문구는 토속말을 만드는 실험으로 소설을 썼다. 다시 김연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노트북 컴퓨터 왼쪽 시프트가 고장 나서 글을 못 썼다는. 그럴 때는 종이에 쓰면 될 텐데 했다. 난 왼쪽 시프트 새끼손가락으로 누르지 않는다. 어떻게 쓰느냐 하면 오른쪽 손가락으로 다 누르려고 한다. 왼쪽 시프트를 누르고 ‘얘’를 쓰는 게 편하겠지. 난 왜 그런 버릇이 들지 않은 걸까. 다른 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한국소설을 조금이라도 보는 건 <악스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읽고 쓴 글을 보고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글만 읽는 것과 소설을 읽는 건 많이 다르다. 여전히 한국 단편은 읽기 힘들다. 힘들어도 읽어보는 게 좋겠지, 가끔일지라도. 다 알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느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난 밤에 어디 다니는 건 싫어한다. 낮이라고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요즘은 늦은 밤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나 미술관이 있는가 보다.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문 여는 빵집이 나오는 소설이 있는데, 그런 책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이라는 정책으로 수요일에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도 지난 8월부터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책을 두 배로 빌려준다(세권에서 두 배니 여섯권이다). 여기에서 그런 걸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누가 만들었든 여기저기에서 써 먹는 거 나쁘지 않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달에 두번 화요일에 밤 10시까지 미술관을 열고 영화도 보여준단다. 그런 것도 관심이 있어야 가겠다. 밤에는 집에서 편하게 책 읽는 게 낫기는 하다. 나나 그럴지도.

 

 

    

 

 

 

*더하는 말

 

소설가 백가흠과 악스트 편집장 백다흠은 두 사람이었다. 백가흠 백다흠 이렇게 다른데 그동안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니. 좀 이상하긴 했다. 지난번에 백다흠으로 소설을 찾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내가 이름을 잘못 봤나보다 하고 백가흠으로 찾았다. 지난달(9월)에 백가흠과 백다흠이 형제라는 걸 알았다. 백가흠은 소설을 쓰고, 백다흠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악스트에 실린 사진을 보고 백다흠은 소설도 쓰고 사진도 잘 찍는구나 했다. 백가흠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잠깐 백가흠 소설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악스트에 실린 짧은 소설을 보니 다른 것도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백가흠 백다흠 두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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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0-20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담처럼 백나흠도...있어야하는데...그랬다는 ㅎㅎㅎ

붉은돼지 2016-10-20 11:34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검색해보니 백나흠이라는 분도 계시는 계시더군요 ㅎㅎㅎㅎ
가흠, 다흠...이름이 특이하면서도 예쁜 것 같아요 ^^

[그장소] 2016-10-20 14:47   좋아요 1 | URL
으헉~ 그...저 , 생각만 했을 뿐인데 ! 진짜 있으면 ...어쩐지 미안해지는...(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걸 ...알면서..이런!)설마 이번에도 가족입니다 ㅡ그런건 아니겠죠?!^^ㅋ

희선 2016-10-22 01:24   좋아요 1 | URL
혹시나 하고 백나흠 쳐보니 나오네요 형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백나흠보다 백라흠이 더 예쁘지 않나요 나는 라가 되기도 하니까요 발음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장소] 2016-10-22 12:24   좋아요 0 | URL
마흠 ~ 바흠 ~ 말리지 마세요! 우리 끝까지 가는고야~^^ ㅎㅎㅎ
사흠 ! 아흠 , ㅋㅋㅋ ( 백씨댁네 분들껜 송구합니다~꾸벅꾸벅~)

붉은돼지 2016-10-22 13:14   좋아요 1 | URL
송창식 노래가 떠오릅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에헤이 으헤으헤으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