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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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2013)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가 일본에서 나온 해와 같은 해에 한국에도 나왔다. 조금 차이 날지 모르겠지만 거의 같은 때 나왔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말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난 기사는 못 봤는데 돈을 많이 주고 한국말로 옮겼다고 들었다. 인센가. 이 책도 일본에서 나오고 한해가 지나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구나. 다른 일은 별로 잘되지 않지만, 책을 만나는 건 가끔 뜻대로 된다. 이것도 가끔이고 우연이다. 이런 일은 나만 겪는 게 아니다. 누구나 우연히 자신이 바라는 일 일어나기도 할 거다. 하루키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길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주웠다. 신기하게도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과 같았다. 그 말 다른 데서 본 것 같다. 그것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이야기도 한번쯤 본 것 같았다. 이걸 읽고 느낀 건, 그동안 내가 하루키 산문을 많이 만났나보다다. 하루키 글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자주 만난 건 좋아하는 쪽에 가까운 건가, 그럴지도.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일본 작가가 하루키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지도.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하루키는 대학에 다니다 결혼하고 회사에 다니는 건 싫어서 재즈 카페를 했다. 이런 걸 보면 하루키는 마음먹으면 잘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좋아하는 걸 해선가. 재즈 카페를 한 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그곳에 오는 사람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별로 안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하루키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겠다. 학교 다닐 때 큰일을 겪거나 부모한테 문제도 없었다. 하루키가 공부하는 걸 즐기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자랐다. 부모는 하루키한테 공부 잘해라 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은 듯하다. 하루키는 그런 말 들었겠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쓴다고 해서 뭔가 남다를 일을 겪는 건 아니다. 어떤 아픔을 가진 사람이 그걸 말하려 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자기 둘레를 잘 보고 거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건 자신만 아는 것이기도 하고 남이 마음 쓰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 다 알지만 잊은 것도 말하겠다.

 

스물아홉에 하루키는 야구 경기장에서 소설을 써 봐야겠다 생각하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샀다. 만년필이랑 원고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데. 거의 좋은 연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는데, 하루키는 여섯달 동안 썼다. 처음 쓴 건 재미없었다고 한다. 난 안 되나, 하고 그만두지 않고 타자기를 꺼내서 영어로 조금씩 썼다.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도 자기 문체를 만들려고 영시나 영어 소설을 읽었다던데. 또 영어구나, 영어라는 것일 뿐이지 자신이 늘 쓰는 말이 아닌 것으로 썼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하루키 소설은 영어로 옮기기 쉽게 쓴다는 말은 일본 사람이 한 말이었다. 하루키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건 아니었다. 이건 새롭게 알았다고 해야겠다. 하루키가 영어로 쓴 것을 일본말로 옮기고 고쳐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군조》 신인상을 받았다. 그때 하루키는 앞으로 자신이 잘되리라 생각했다. 이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거다. 신인상 받고 저런 말 했다면 욕 먹었겠지. 어쩌면 저렇게 생각해서 지금 하루키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면 그렇게 되려고 애쓰기도 한다. 《군조》 신인상을 받아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는 거다. 상을 못 받았다면 소설가로 살지 않았을 거다 했다. 그때가 하루키한테 나타난 갈림길일지도. 다음은 외국에서 살고 소설 쓴 거겠다. 그전에도 있었다.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쓰려 한 때.

 

소설가는 오랫동안 소설을 써야 소설 쓰기를 말할 수 있을까, 몇번 써 보고도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마음먹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면, 자신이 그렇게 썼구나 하는 걸 알겠지. 그건 좀 써 봐야 뒤돌아볼 수 있겠다. 하루키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런 글을 썼다.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정리했다고 해서 이게 끝은 아니다. 하루키는 지금도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을 써서 그런 걸까. 많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제와서 뭐 하나’ 한다. 이런 생각은 어릴 때도 할지도. 나이를 먹으면 많은 게 예전과 다를지 몰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난 아직도 철없는데). 난 하루키가 소설을 쓰려고 달리기를 한 거 잘했다 생각한다. 달리기를 할 때 기분은 앞으로도 모를 테지만. 난 걷기 쪽이다. 날마다 걷는 건 아니지만. 학교 다닐 때도 지금도 어디 가려고 걷는다. 단지 걸으려고 걸은 적은 별로 없다. 달리기는 못해도 날마다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걷는다고 이런저런 게 생각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으면 가끔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은 예전보다 많은 것 같다. 소설 쓰기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거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수 없어서 괴로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고 싶을 때만 썼다. 다른 때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거나 산문을 썼다. 언젠가도 산문을 보고 하루키 산문 재미있네 한 적 있는데, 이 책 볼 때도 그랬다. 하루키가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닐 테지만, 웃음이 좀 낫다. 내가 이상한가. 하루키는 친한 사람한테는 재미있는 면을 조금 보여줄지도. 글로만 그럴까. 난 글로만 말한다. 글 재미있게 못 쓰지만 실제 만나도 재미없다. 말 자체를 안 한다. 소설 쓰는 사람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 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보다 자신이 쓰는 소설 속 사람 만나기를 좋아할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아도 그것대로 쓰는 건 어렵다. 글쓰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걸 찾은 사람은 작가(소설가)가 되는 건지도. 하루키는 그걸 찾고 지금도 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도 한다. 하루키는 그런 게 있어서 좋겠다. 난 늘 자신없는데. 하루키 말하다 ‘난 어떤데’ 하는 말을 하다니. 책을 보면 자기 생각도 하지 않는가. 그런 건 자기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일지도. 사람은 다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될 수 없다. 남을 보면 자신을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을 보는 것도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에설까. 하루키 소설 조금 읽기는 했지만 잘 못 읽었다. 그런 거 다시 보기도 해야 할 텐데. 이 책을 봐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난 언제나 우연이 찾아오기를 바라니까. 이런 거 별로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조금 애쓰고 우연이 찾아오길. 나는 나다. 하루키가 아프지 않고 소설 오래 쓰기를 바란다.

 

 

 

희선

 

 

 

 

☆―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 ‘자, 이제부터 뭘 써 볼까’ 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괴로움이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소설을 쓸 수 없어 고생했다는 경험도(고맙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제 생각에는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 쓰는 뜻은 없습니다. 고역으로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7쪽)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125쪽)

 

 

외로운 일, 이라 하면 무척 범속한 말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욱이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실제로 꽤 외로운 일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이고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한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일 그 자체를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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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콩꽃이겠지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이름이 있었다. 내가 찾아본 말은 자주색콩이다. 이 말로 찾아보니 바로 자주제비울타리콩이 나왔다. 콩꽃보다 자주제비울타리콩이라 하는 게 낫겠지. 다음은 수세미다. 설거지 할 때 쓰는 수세미로 보이지 않지만 껍질을 벗기고 삶으면 수세미로 쓸 수 있다고 한다. 먹을 수도 있겠지. 오이랑 비슷할 것 같았는데 껍질을 벗긴 수세미는 오이하고 아주 달랐다.

 

자주 다니던 길인데 그동안 못 본 게 많다. 왜 그렇게 못 봤을까. 얼마전부터 그 길을 지나가고 올 때 나뭇가지를 보았다. 어느 날 나뭇가지 끝에 열매처럼 보이는 게 열려서 그건 뭔가 했다. 며칠 지나고 그 길을 가니 꽃이 피어서 깜짝 놀랐다. 그건 열매가 아니고 꽃봉오리였다. 처음에는 무슨 꽃인지 몰랐다. 모르는 꽃이 아니었는데, 하긴 다른 건 나무에 핀 것을 봐서 그랬겠지. 그러다 배롱나무꽃이 아닐까 하고 다른 곳에서 배롱나무를 자세히 보았다. 그랬더니 나뭇잎이 같았다. 저것은 나뭇가지만 있지만 나무겠지. 커다란 나무로 자랄 수 있을지. 어쩐지 어려워 보인다. 어디선가 날아온 배롱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 걸 텐데. 누군가 아직 작은 배롱나무가 더 커다랗게 자라도록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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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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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도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이런저런 것이 떠올랐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중간이 지나고부터예요. 곧 고등학생이 되는 오가키 신이 엄마 심부름으로 간 은행에서 본 오래된 성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건, 며칠 전에 제가 생각한 것과 비슷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건 그림이 아니고 CD예요. 사람이 그림이나 책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아주 없지 않습니다.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는 건 저만이 아니예요. 며칠전에 어딘가에 갔다 오다 길에 떨어진 CD를 봤어요. 멀어도 CD는 보였지만 그 안에 있는 건 뭔지 알 수 없었어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서 보니 영어공부하는 거더군요. 다시 가던 길을 가다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했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주운 CD를 컴퓨터에 넣고 봤더니 그 세계속으로 들어간다는. CD에는 글이 있는 설정이고 그 글속 세계에 가는 걸로. 이 생각만으로 더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그건 제가 그런 거고 잘 쓰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여러가지 상상을 하고 끝까지 갈지도 모르겠네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영화 <시월애>와 <동감>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 이야기는 아니예요. 그런 것하고는 상관없습니다(넓은 사랑에 들어가겠네요). 앞에서 말한 영화 본 것 같기는 한데 다 생각나지는 않아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그리고 제목을 잊어버린 여러가지 것도. 미야베 미유키 책도 생각났어요. 《가모우 저택 사건》 《드림버스터》 《이코》(여기에서 《이코》는 그렇게 재미있게 못 봤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다른 게 생각났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이건 당연한 거네요. 신이 은행에서 본 그림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지만 그림 잘 그리는 시로타 다마미한테 부탁하고 그림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했습니다. 왜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나올까 하겠네요. 그림속에 들어가는 방법은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거로 축적에 맞아야 합니다. 혼이 그림에 들어가는 거네요. 시로타는 그림은 작가의 영혼을 비추는 거고, 그림속에 들어가는 건 작가의 영혼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해요. 이건 그림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성과 숲이 있는 그림속 세계는 누구 영혼속일까요.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걸 조금 무섭게 여기던 시로타는 신과 함께 갑니다. 그곳에서 둘은 파쿠 씨를 만나요. 그림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니. 파쿠 씨는 만화가 어시스턴트로 신이 간 은행에서 성 그림을 봤답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카메라로 찍고,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았더니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신기한 일이지요. 세사람한테 공통점은 없군요. 아니 시로타와 파쿠 씨는 좀 다를지도. 신은 남들 눈에 띄지 않지만 별 문제 없이 살았어요. 다른 행동은 거의 안 했는데 성 그림을 봤을 때는 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말해 본 적 없는 시로타한테 말했네요. 신은 시로타가 자기 반에서 여왕처럼 구는 아이와 여러 아이한테 괴롭힘 당해서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괴롭힘 당하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자신까지 그런 일을 당할지도 모르니까요.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거네요. 다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라고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쉽게 도울 수 있을지. 시로타가 힘들어한 건 그 일은 아니예요. 엄마가 사고로 죽고 아빠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아빠는 그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어요. 시로타는 그 집 사람과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것보다 새엄마가 시로타한테 마음을 쓰지 않은 걸지도. 시로타는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좋았어요. 어느 때는 자신이 그린 그림속에 들어간 것 같았답니다. 파쿠 씨는 만화가 어시스턴트로 잘됐지만 본래 꿈은 만화가였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한테 자기 이름으로 나온 만화책을 드리지 못한 걸 미안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부모는 자식이 돈을 많이 벌거나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좋아하는 거 하고 사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생각 들지만 파쿠 씨 마음 아주 모르지 않습니다.

 

세사람이 들어간 그림속 성에는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그 여자아이는 십년 전에 자기 집에서 사라진 아이라고 파쿠 씨가 말했어요.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믿게 하지요.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건 우리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더군요. 미야베 미유키 책 《영웅의 서》도 있군요. 그 책은 제가 아직 못 봤습니다. 시로타와 파쿠 씨는 십년 전 여자아이를 구하면 지금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르지만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좀 있네요. 또 다른 것도 말하네요.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다 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떨까요. 시로타와 파쿠 씨 자신의 현실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힘든 여자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도 컸을 거예요. 제 생각대로 됐습니다. 어떤 거냐 하면 여자아이는 바뀌고, 다른 일은 그대로겠지 했어요. 그것을 확인하니 놀랍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로타와 파쿠 씨는 앞으로 나아가겠지요. 지난일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을 잘 살아야죠.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닐지라도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누군가를 돕기도 있네요.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닐지도. 시로타를 괴롭힌 아이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로타가 부러워서였다는 거 하나는 알겠지만. 그 아이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어요. 가진 게 아주 없지 않은데 그것보다 더 갖기를 바란 건지. 그 아이 집에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밖에 못하다니.

 

세상에는 바로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한테도 마음을 써야 할 텐데 싶습니다. 생각만 그렇군요. 부모나 학교 선생님이 아이 마음을 알려 하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지 않고. 먼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보고 인정해주면 더 기쁘잖아요. 가까운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더 잘 볼 때도 있군요. 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도 떠오르고 마무리하기 힘들군요. 사람은 저마다 아픔이 있고 그것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야겠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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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 0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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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3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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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척 덥다.

 

얼마전까지 장마였는데, 비는 많이 오지 않았다. 비가 별로 오지 않는 장마라니. 한국에는 2016년 여름에 비가 얼마 오지 않았지만, 어떤 나라에는 엄청 내려서 비 피해를 입었다. 하늘은 왜 그렇게 제멋대론지. 비가 오기를 바라는 곳에 적당히 뿌려주면 좋을 텐데. 여름이면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비가 많이 올 것을 걱정한다.

 

더울 때는 에어컨을 틀어둔 건물 안에 있는게 낫지만, 지금은 점심을 먹고 잠시 바깥에 나왔다. 가끔은 더위도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덥지만 나무 그늘밑 의자에 앉아 있어서 좀 낫다. 바람이라도 불면 더 시원할 텐데.

 

이렇게 더운 날이면 몇해 전 여름이 생각난다. 그해 여름도 무척 더웠다. 그해 여름에 난 집보다 도서관에서 지낼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집보다 도서관이 시원하다 생각했는지 도서관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래도 난 일찍 가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기보다 그냥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가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책을 보다 잠시 쉬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서관 안은 시원했지만 바깥은 무척 더울 것 같았다. 그때가 마침 한낮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창밖을 보면 바로 작은 공원이다. 우연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밑을 보니 그곳 그림자만이 다른 곳보다 진했다. 자꾸 보니 그게 아주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정말 움직였나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조금 움직였다. 그 그림자 쪽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는 게 보였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고양이한테 그걸 알릴 수 없었다. 고양이가 검은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니 고양이 몸이 조금씩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양이가 소리를 냈을 텐데, 어쩐지 그 소리가 다른 사람한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곳은 시간이 멈추고 그곳만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곧 고양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본 검은 그림자는 뭐 였을까. 아직도 그걸 모르겠다.

 

조금 전에 눈 끝에서 검은 게 움직였다. 몇해 전에 본 검은 그림자일까.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검은 그림자가 내 발밑으로 온 건 순식간이었다. 내 몸이 조금씩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대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죽는 건지.

 

“세경 씨, 여기서 뭐 해.”

 

내 몸이 검은 그림자 속으로 반쯤 들어갔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눈 끝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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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

 

  앨리스 죽이기   アリス殺し (2013)

  고바야시 야스미   김은모 옮김

  검은숲  2015년 12월 21일

 

 

 

 

 

 

 

 

 

 

 

 

 

몇해 전에 루이스 캐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 보았다. 소설이 아닌 동화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는 잘 몰라도 만화영화가 하면 보기도 했는데, 만화영화로 본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가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했다. 나타났다 조금씩 사라지는 체셔고양이, 작은 애벌레, (사람이 아닌) 아기를 돌보는 여자는 누군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 공작 부인이라는 걸 알았다. 시계를 보고 달려가는 흰토끼.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에 이끈 게 흰토끼다. 책으로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은 앨리스를 보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지, 이것을 모티브로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런 걸 많이 보지는 못했다. 앨리스 잘 모르는데, 이 책 봐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앨리스와 거기에 나오는 인물을 잘 알면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잘 몰라도 괜찮다. 여럿이 정신없이 이야기 나누는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다.

 

이것을 보니 생각난 게 있는데 그게 확실하게 뭔지 모르겠다. 보고 내 마음에 드는 건 제목을 기억하기도 하는데, 뭐지 하는 건 잊어버린다. 난 이것과 비슷한 것을 몇번 보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같다는 건 아니다. 설정이라고 해야 할까. 나만 비슷한 걸 본 건 아니구나. 중국 장자는 호접몽을 말했다.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꿈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이 현실이라 믿는 게 누군가의 꿈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욕심 내지 말고, 한바탕 꿈 잘 꾸고 가자. 덧없는 삶이니 즐겁게 살자는 게 나쁘지 않지만 이걸 잘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상한 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꿈속에서는 처벌받지 않으니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가상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과 가짜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을 가짜라 여기고 잘 안 되면 다시 시작하지 생각할지도 모르고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은 죽이려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는 지구가 꿈이고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사는 인물은 지구에서 사는 꿈을 꾼다. 그것도 오랫동안 생생하게. 많은 사람이 같은 곳에서 사는 꿈을 오래 꾸다니.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에 같은 사람(동물)이 있지만, 똑같지 않다. 그런 것을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게 보인다. 넌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냐 하면 자기 정체를 그대로 말할까. 왜 이런 말을 했느냐면 거짓말한 사람이 있어서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와 그리핀을 죽였다는 의심을 산다. 앨리스가 도마뱀 빌과 흰토끼 도움을 받고 진짜 범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빌과 흰토끼가 죽임 당하고 앨리스까지 죽임 당한다. 앨리스가 죽으면 어떡하나 했다. 여기 나오는 사람뿐 아니라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잘못 본다, 잘못 보게 한다. 앞으로 돌아가서 보면 다르게 보일까. 처음부터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지도.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범인이 잡히고 이상한 나라에서 사형 당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잔인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죽은 사람이 지구에서도 죽은 건 지구가 꿈이어서인가 했는데.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을까. 꿈속에서 죄를 지으면 벌받지 않아도 현실에서는 벌 받는다고. 붉은 왕이 깨어나서 지금 지구가 부서지는 건 책 한권을 다 읽어서 일어난 일 같다. 붉은 왕이 다시 잠드는 건 다른 책을 보는 걸 나타내는 거겠지. 이야기는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니까. 붉은 왕은 작가일지도. 이 책은 어느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작가는 SF, 호러, 추리를 쓴다고 한다.

 

 

 

 

 

 

 

피에로는 모든 걸 본다

 

  십자 저택의 피에로   十字屋敷のピエロ (1989)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8월 06일

 

 

 

 

 

 

 

 

 

 

 

 

 

책을 보기 전에 제목에 나오는 피에로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니 인형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일을 불러들이는. 피에로 인형을 사거나 갖는 사람한테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피에로 인형을 가진 사람한테 자꾸 나쁜 일이 일어나서 그런 이야기가 붙은 걸까, 피에로 인형에 저주가 걸렸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저주에 걸린 물건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한테 넘어가기도 한다. 피에로 인형을 보니 그런 게 생각났다. 정말 물건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물건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물건은 우연히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하는 일마다 아주 안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가진 것 가운데 안 좋은 물건이 있었다. 그것을 팔았더니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다는. 이 이야기는 만화에서 잠깐 본 거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실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물건은 한 곳에 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옮겨다닐까. 피에로 인형도 다르지 않았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은 피에로가 보고 생각하는 걸 모르지만, 책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잘못 알기도 한다. 피에로 인형도 사람처럼 잘못 보는 건지도. 가장 처음에 죽는 사람, 아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피에로 인형을 산 사람이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은 모르게 조용하게 할 것 같은데, 처음에 나온 모습은 어쩐지 이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죽인 건 아닐까 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뿐 아니라 나중에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누가 죽였는지 조금 짐작했지만 어떻게 한 건지는 몰랐다. 이런 책을 볼 때는 속임수(트릭)를 풀면 훨씬 재미있을까. 그렇게 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렇게 집중하지 못해설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더 그랬다.

 

여기 나오는 집은 좀 별나다. 건물을 십자 모양으로 짓기도 할까.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연극이라는 말을 보니 《가면 산장 살인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나올 때는 왜 그런 일을 할까 한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욕심과 원한 때문이다. 원한은 다른 원한을 낳기도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건 자기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설지도. 자신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겪으면 어떨지 조금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책을 보고 천천히 생각해서 그렇다는 걸 아는 거겠다. 내가 안 좋은 일을 겪는다면, 나도 그대로 갚아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큰 일이 아니면 시간이 흐르는 것과 그 일을 잊기도 한다. 잊을 수 없는 일도 있겠지. 사람을 죽이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좋지 않은 생각으로 한 일은 언젠가 들키고, 그 일이 자신한테 돌아오기도 한다.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한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은 평생 그 짐을 짊어지고 살겠지.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피에로 인형은 이제 십자모양 집을 떠난다. 피에로 인형이 나쁜 일을 생기게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한테 가지 않게 잘 가지고 있으면 좋을 텐데. 다시 어딘가로 가고 그곳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지금까지 피에로 인형은 사람이 가진 안 좋은 면을 많이 봤을 것 같다. 사람은 좋은 면도 많이 있는데. 앞으로는 피에로 인형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집보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집에 가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가 퍼지게. 피에로 인형을 사거나 가지는 사람한테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

 

나는 결코 ‘비극을 부르는 피에로’가 아니다. 비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점은 고조도 알고 있을 것이다.  (379쪽)

 

 

 

 

 

 

 

달라 보이지만 어딘가 닮은 이야기

 

  괴담의 집   どこの家にも怖いものはいる (2014)

                    (어느 집에나 무서운 건 있다)

  미쓰다 신조  현정수 옮김

  북로드  2015년 07월 03일

 

 

 

 

 

 

 

 

 

 

 

 

 

 

서로 다른 일이지만 어딘가 비슷한 점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걸 보고 한번 일어난 일은 두번 세번 일어난다고 할까. 이런 것과 좀 다를지도. 보기를 들으려 해도 아는 게 없다. 여러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어난 달이나 날짜가 같았다는 어떨까. 이건 범죄소설에서 여러 사람이 죽임 당했을 때 그 사람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겠다. 여기에서는 미국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 이야기를 한다.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니 몰랐다. 두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힌 해, 링컨은 1860년이고 케네디는 1960년으로 일백년 차이가 난다. 둘 다 암살 당한 요일은 금요일이고 둘 다 머리 뒷부분에 총을 맞았다. 대통령 후계자 모두 존슨이라는 이름이고 부통령이 된다. 앤드루 부통령은 1808년, 린드 존슨 부통령은 1908년에 태어났다. 두 사람과 상관있는 일은 우연일 거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소름이 돋기는 한다. 이건 공포소설에서 쓰는 법칙일까. 그런 걸 잘 안 읽어봐서 나도 잘 모르겠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따듯하게 마무리 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무서운 이야기(일)는 전염성이 있다는 말도 있다.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링》은 비디오테이프가 이런저런 사람 사이로 떠돌고 그것을 본 사람은 이상한 일을 겪는다(죽던가). 사람과 사람은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어서 상대 마음을 조금 안다. 가끔 사람이 아닌 것과도 말을 나누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한쪽에서만 온다. 무서운 일은 그런 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무척 무섭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무서워도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건 마음놓고 싶어서겠다. 마음놓고 싶어서 확인했겠지만 더 무서워질 때도 있겠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그렇다. 전에 읽은 《노조키메》에서도 그 책을 읽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읽지 마라 하는 말을 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말을 한다. 그 말이 조금 무섭게 들렸지만 난 끝까지 다 읽었다.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부르는 체질도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난 그런 체질이 아닌가보다. 무서운 이야기 들은 적 거의 없고 친구와 무서운 이야기한 적도 없다. 무서운 이야기가 전염성이 있다는 말은 무서운 이야기 백가지를 다 마치면 무언가 찾아온다는 말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집에 얽힌 다섯 가지 이야기는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노조키메》도 비슷하다. 거기에서는 어떤 글(책으로 낸 글)을 읽은 사람이 사라졌다. 여기에서도 조금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다 읽었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리만 들었다. 빗소리가 아닌 빗소리. 다섯 가지 이야기는 다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것도 좀 다르게 보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라 한다. ‘그것’은 아이로 보이기도 하고 늙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젊은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무서운 일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읽고 왜 닮아 보이는지 추리한다. 세 가지를 읽고 그런 말을 해서 나도 무엇이 닮은 건지 생각해봤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실제로는 없는 곳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다른 건 작가가 말한 걸 보고 그렇구나 했다. 하나, 왜 그런지 말하기 어렵지만 다섯 가지 일이 한 곳에서 일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 건 왤까. 그런 이야기가 있으니까 보는 거겠지. 어떤 건 현실을 은유한다고도 하는데 난 읽어도 잘 모를 것 같다. 지금까지 본 것도 얼마 안 된다. 어떤 이야기든 현실에서 겪기 어려워서 보는 건지도.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로 나타내고 싶은 게 있는 걸까. 어쩌면 그건 그것을 읽는 사람이 멋대로 생각하는 건지도. 이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여러가지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지만, 그게 이어지지 않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곳에 가지 않는 것밖에는. 미쓰다 신조가 쓰는 무서운 이야기는 거의 이럴까. 다른 것도 보아야 좀 알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보이는 건 할 수 있을지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지만, 사람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한을 남기지 않도록. 죽을 때는 모든 일이 부질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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