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6 ~(メディアワ-クス文庫) (文庫)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文庫) 6
미카미 엔 지음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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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 시오리코 씨와 돌고 도는 운명

미카미 엔

 

 

 

우리나라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지금 우리말로 옮기고 있을지도), 일본에서는 이 책 6권이 지난해(2014) 성탄절에 나왔다. 성탄절에 책이 나온다는 것은 지난해 십일월, 아니 시월쯤 알았다. 지지난해 5권이 나온다고 말한 것보다 늦게 나와서 6권도 그러는 거 아닌가 했는데 책이 나오는 날짜는 바뀌지 않았다. 책이 나오는 날은 바로 그 책을 팔기 시작하는 날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거 전에는 생각 안 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 건 CD를 샀을 때다(지금은 안 사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나라도 그렇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책 나오기 전에 언제 나온다고 알리는데, 그런 책을 아주 안 산 건 아니지만 그냥 그때 나오는구나 했다. 어쩌면 이건 책이 나오는 것을 한달 전보다 한두 주 전에 알아서일지도 모르겠다(한두 주도 짧은 시간은 아니구나). 관심을 가지면 더 빨리 알았을 텐데 내가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인가. 그건 그렇구나. 거의 우연히 알았을 때가 많았다. 일본에서 나오는 책은 출판사 홈페이지나 거기에서 따로 만든 그 책 홈페이지에서 다음 책이 언제 나오는지 알았다(바로 이 책). 만화는 몇 달 지나면 나오는지 아는 것도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니어서 다음 책이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홈페이지를 보기도 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책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내가 찾아보지 않은 것뿐이구나. 기다리는 책이 없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아쉬운 것 같기도. 책이 나왔으면 하는 작가가 없다는 뜻이니까.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맞다고 할 수도 없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책이 나온 다음에 알았는데 지금은 더 빨리 알기도 한다. 다른 블로그에서 새 책이 나온다는 것을 가끔 봐서다. 그리고 책이 나올지도 모르는 작가 블로그도 본다. 출판사나 거기와 관계있는 곳에서 알기보다 개인 블로그에서 아는구나(많은 건 아니고 한 사람이다).

 

성탄절에 책이 나오다니,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성탄절에 쉬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성탄절이어서 쉬는 가게는 없구나(책방도). 그때 사람이 더 올 테니 다른 때보다 늦게까지 문을 열지도. 일본, 성탄절에 쉬지 않아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있다. 아니 이날보다 성탄절 전날일까. 어떤 책에는 그날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사귀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성탄절과 이 책이 무슨 상관인가 하겠다. 상관없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조금 아는 척해보았다. 책을 남보다 먼저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나중에 그 책을 알게 되고 보는 게 나을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어떤 책을 본 사람은 앞으로 그 책을 볼 사람을 부러워한다. 반대로 나중에 알게 된 사람은 먼저 알고 본 사람을 부러워한다. 나는 왜 더 빨리 그 책을 알지 못했을까 하고. 앞에서 말한 것과 내가 일본에서 나온 책을 몇달 먼저 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구나. 몇달 늦게 본다고 아쉬워하지 않기 바란다. 이 책(6권)을 만나는 게 몇달 늦든 빠르든 우리가 이 책을 알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이 책을 아주 모르고 있다가 6권을 보고 알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당신은 그런 사람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 책을 볼 사람을. 내 마음속에 나는 먼저 이 책을 보았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그런 게 아니고 예전에 그랬다는 거다. 만화책을 보면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책이 먼저 나온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것보다 먼저 보는 것이지만, 그 책을 보고 나면 다음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거나 일본에서 나오는 거나 그냥 책을 본다는 생각밖에 없다. 일본말을 읽는 거나 우리말을 읽는 거나 다르지 않다. 이것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책을 잘 아는 시오리코를 보고 나이도 어린데 이것저것 많이 아는구나 했다. 그다음에 생각한 건 그런 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였다. 집이 헌책방이니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둘레에 책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책이 자기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모두 거기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지만. 실제 시오리코 동생 아야카는 시오리코와 다르게 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시오리코가 책을 많이 아는 건 시오리코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은 것도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시오리코한테 가르쳐준 사람이 있어서다. 그 사람은 십년 전에 갑자기 집을 나간 시오리코 엄마 시노카와 지에코다. 이 일은 앞에 몇권을 보면 알 수 있다. 언젠가도 이 말 썼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그것은 시오리코가 엄마만 닮은 건 아니다는 거다. ‘비블리아 고서당’을 처음 한 사람은 시오리코 할아버지 시노카와 세이지다. 시오리코는 할아버지를 잘 몰랐다. 할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으로 말걸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 할아버지와 시오리코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오리코가 초등학생일 때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보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가 자신도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뒤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는가보다. 할아버지와 다자이 오사무 이야기를 한 것도 놀랍지만, 시오리코가 초등학생 때 다자이 오사무를 본 게 더 놀랍다. 다자이 오사무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했구나.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일제강점기 때 작가 책을 본다고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 그때 일본과 우리나라는 처지가 달라서 소설이 좀 달랐을 테지만.

 

비블리아(biblia)라는 말은 책인가보다 하고 적당히 알았는데, 이것은 라틴말이고 책이라는 뜻도 있고 성서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 이름에 성(聖 세이)이 들어간다. 다자이 오사무도 성서에 나온 것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우리나라에는 《유다의 고백》으로 나왔나보다). 그래서 책방 이름을 ‘비블리아’라고 한 거다. 할아버지는 신부가 되려고도 했다고. 시오리코가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이번에는 어떤 작가와 책이 나오는지 눈치챘을 듯하다. 바로 다자이 오사무다. 다자이 오사무 책 《만년》 때문에 큰일이 있었는데. 책 속에 다자이 오사무가 쓴 글이 있고 책장이 잘리지 않은 《만년》 초판본을 시오리코 할아버지는 아버지한테 아버지는 시오리코한테 물려주었다. 그 책을 엄청 가지고 싶어한 다나카 도시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책을 손에 넣으려고 시오리코를 다치게 해서 경찰에 잡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좀 자세한가). 5권 마지막에는 이 다나카 도시오 이름이 적힌 편지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왔다. 이번에 다나카 도시오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다이스케는 다나카 도시오를 만났다. 다나카 도시오는 시오리코와 다이스케 두사람한테 할아버지 다나카 요시오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만년》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것은 다자이 오사무가 가지고 있던 걸로 돈이 없을 때 싸게 팔았다고 한다.

 

시오리코가 할아버지 피도 이어받았다는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말만 늘어놓았다. 다자이 오사무가 가지고 있다가 판 《만년》을 찾으면서 알게 된 건 할아버지 시노카와 세이지도 시노카와 지에코(엄마) 그리고 시오리코가 하는 일을 했다는 거다. 책을 찾거나 책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 일 말이다. 이럴 때 유전이 떠오르는구나(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시오리코가 좀더 빨리 그걸 알았다면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를 텐데. 책 이야기만 잘하는 건 할아버지를 닮은 건가보다. 그것을 알았을 때 시오리코는 조금 마음 놓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엄마만 닮지 않았다고. 이것은 당연한 일인가. 하지만 우리는 부모는 조금 알아도 같이 살거나 자주 만나지 않으면 그 위(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모른다.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더 위는 더 모르겠다. 그러니 자신이 엄마나 아빠가 가진 안 좋은 점을 닮은 것인가 한다. 한 세대 건너 뛰어서 닮기도 하는구나(격세유전). 물려받는 것도 있지만, 부모하고는 함께 살아서 저도 모르게 닮기도 한다. 말이 다른 데로 흘렀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이 세상에 오기까지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구나.

 

사람 인연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 일어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같은 지역에 산다 해도 좋아하는 게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이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우리나라에도 있겠구나). 무엇인지 보기를 들 수 없지만, 한번쯤 본 것 같기도 하다. 사람 사이에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래된 책이 있었다. 그게 할아버지 할머니에서 손자한테 이르렀다. 처음에는 세사람이 다자이 오사무 연구회를 만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떤 일 때문에 세 사람 사이는 멀어졌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 욕심을 부려서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다자이 오사무가 다른 이름으로 탐정소설을 썼다는 것이 더 빨리 세상에 알려졌을 텐데. 아, 이것은 역사에 맞추느라고 그렇게 한건가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다자이 오사무 연구회 사람 가운데서 두 사람은 죽었다. 선생님과 제자 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만 남았다. 마흔일곱해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건 한 사람 뿐이구나.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스승과 제자는 서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다시 만났다.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일지도.

 

우리나라는 책방 하는 사람이 서로 도울까. 여기 나온 건 헌책방(오래된 비싼 책도 다룬다)이지만 조합을 만들어서 서로 돕는다고 한다. 전에 이런 말을 본 적이 있구나. 같은 책도 있겠지만 전문으로 다루는 책은 책방마다 다르다고. 그래서 서로 돕고 지금도 일본에는 그런 책방이 있는 건지도. 나는 희귀하고 비싼 책보다 그냥 그 책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런 책을 갖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 마음을 나는 잘 모르겠다. 여기 나온 사람들은 책이 비싸기 때문에 그것을 갖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얼마 없는 좋아하는 작가 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책과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이겠지. 한 사람은 생각을 좀 잘못했다. 오래된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좋아한다는 것을 누군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 마음 조금 알 것 같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어서 아는 거다. 사람한테는 그런 어두운 면이 있는 거겠지. 그 사람은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나도 아직 잘 못하는데. 자신이 끝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것도 자꾸 생각하면 부담스러울까. 그냥 있는 그대로 사는 게 편하겠다.

 

책을 끝까지 보면 또 다른 비밀이 밝혀진다. 다른 사람도 알게 밝혀진 건 아니구나. 다이스케가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대체 누굴까 했는데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니, 등잔밑이 어둡구나. 그 일을 알아서 예전에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그 사람은 어떻게 책을 많이 알았을까, 다). 거기에서 다시 사람 인연이 놀랍다는 것을 느낄 거다. 그것은 작가가 이 책을 쓸 때부터 생각하고 지금까지 이야기를 이어온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미카미 엔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책을 많이 보았다. 무엇인가 쓰기 위해 자료를 찾고 이렇게 썼다는 게 부럽다. 전에는 에도가와 란포 책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다자이 오사무 책이 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 읽어보면 좋을 텐데. 이 책을 보면 누구나 여기 나온 책이 보고 싶어질거다.

 

 

 

희선

 

 

 

 

☆―

 

“왜 할아버지한테 의뢰하셨습니까.”

 

시오리코 씨가 물어보았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야. 말은 없지만 고서 일이 되면 갑자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셔서……. 게다가 무척 정의로운 분이라 생각했어. ‘고서는 사람 손을 거쳐갑니다. 사람과 고서의 인연을 지키는 게 제 정의입니다.’ 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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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地裏のあやかしたち (3) 綾櫛橫丁加納表具店 (メディアワ-クス文庫) (文庫)
行田尙希 / KADOKAWA/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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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요괴들 3 - 아야쿠시요코초 가노 표구점

유키타 나오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아니 다시 생각하니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실제 만난 건 아니고 글을 보고 나도 잘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어느새 두해가 지났다. 생각하고 잘 써 보려고 했지만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 글을 보게 된 것도 그쯤 지났구나. 그전에 아주 안 본 건 아니지만 집중해서 끝까지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많이 보는 건 아니다. 두해쯤 전에 내가 다른 사람 글을 안 봤다면 그 뒤로 책은 많이 봤을 테지만, 쓰는 건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줄거리를 더 길게 썼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것을 빼고 쓸 때는 거의 없다. 한두번 안 쓴 적도 있지만(만화는 줄거리를 더 많이 쓰는구나. 그것도 좀 바꿔야 할 텐데). 두해쯤 그전보다 책을 많이 못 보았다. 책을 천천히 보고 내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늘 잘 쓰고 싶지만 정말 떠오르는 게 없을 때는 줄거리 정리를 한다. 그거라도 하면 다행이다 생각한다. 그러면 별로 늘지 않을 텐데. 이런 거 잘 써서 뭐할 건데,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못 쓰는 것보다 잘 쓰는 게 기분 좋지 않은가.

 

내가 일본말로 쓰인 소설을 보는 게 이걸로 몇번째일까, 열번째다. 지난해에 한달에 한권씩 못 보아서 이제야 열권째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시리즈보다 한권으로 끝나는 것을 보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시리즈를 또 보게 생겼다. 내가 그런 것을 보든 말든 관심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누군가한테 말하면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는가. 어쩌면 나도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그 책을 재미있게 올해 안에 다 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듯하다. 그 이상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목숨 걸고 지금 할 일을 한다’고. 그것을 보고 나는 목숨 걸고 무엇을 해 본 적 한번도 없구나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정말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열심히 하지도 않고, 그것보다 생각이 안 나서 못한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니.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꿈을 말한다. 그러니 아주 관계없는 건 아니다. 2권을 보고 마지막에 다음에는 어떤 요괴가 나올까 했는데 새로 나온 요괴는 둘이다. 누에(鵺 전설에 나오는 괴물)와 아마노자쿠(天邪鬼 심술꾸러기)다. 누에는 들어본 적 있지만 어떤 요괸지 잘 모르고 아마노자쿠는 나도 처음 들었다. 뽕잎을 먹는 그 누에는 아니다. 전설의 괴물로 여러가지 동물이 섞여있는가보다. 누에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사람을 겁주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소리가 나오니 조금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누에 카나데(奏 이 말은 연주하다다)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게 얼마나 되었느냐 하면 벌써 50년이다. 고등학교를 그렇게 여러번 다니다니,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공부는 거의 안 해서 그런가. 카나데는 학교에서 밴드를 했다. 문화제 때 공연한다면서 가노 표구점에 와서 그곳에 모인 요괴들한테 보러 오라고 한다. 이츠키와 아게하는 가기 싫어했는데, 카나데가 다마키한테 자기 반에서 햄버거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표를 주어서 가기로 한다. 앞에서 카나데가 공부를 거의 안 한다고 했는데, 그 학교에는 카나데한테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문화제 때도 학년주임 마사키는 카나데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 일 때문에 학년주임 마사키와 코노스케, 다마키들이 만났다. 마사키한테는 걱정거리가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카나데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가 남겨준 그림첩이 문제였다. 카나데가 일을 부탁하는 게 아니고 우연히 일이 찾아왔다. 그림첩 그림이 밤마다 움직여서 마사키는 잠을 못 자고 걱정했는데 다마키가 그림첩을 고치면 괜찮다고 했다. 카나데한테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것도 해결됐다. 마사키가 카나데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조건으로 카나데는 앞으로 학교가 끝나면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갑자기 선생님이 기타를 치는 게 되는 거지 하겠다. 마사키는 음악하는 게 꿈이었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알고 선생님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집에서 기타는 쳤다. 카나데를 보면 자신이 생각나서 공부하기를 바란 거겠지. 카나데는 아쉽게도 음치다. 노래를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코노스케는 카나데가 노래하고 마사키가 기타 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꿈을 가진 모습이 빛나 보여서. 마사키 할아버지가 남겨준 그림첩 속 그림도 화가가 꿈인 사람들이 그린 거다. 지금은 이름이 잘 알려진 화가가 되었다.

 

아마노자쿠는 심술꾸러기로 사람 마음을 잘 알지만 그것을 반대로 말해서 놀린다고 한다. 그런 아마노자쿠 와카쓰키 나기사는 변호사다. 사람과 함께 사니 사람처럼 공부해서 자격도 갖추었다. 변호사가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나기사는 다마키한테 다도 교실 선생님 병풍을 고쳐달라고 했다. 그곳에는 코노스케도 함께 갔다. 표구와 차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나기사는 코노스케한테 표구를 배우니 다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코노스케는 앞으로 표구사가 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말했지만 코노스케는 표구를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도 교실 선생님 병풍 고치는 것은 문제 없었는데 거기에 다니는 학생이 족자 표구를 새로 하고 싶다고 해서 그 일을 맡았다. 그 사람은 보는 눈이 없었다. 잘된 표구를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에 들게 바꿔달라고 했다. 그것도 한주 안에. 코노스케는 표구는 그렇게 빨리 하는 게 아니다 했는데, 다마키는 그 일을 한다. 화나서 그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게 하려고. 사나에는 나름대로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안 좋게 본 사람도 있었던가보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변호사를 하기로 한 게 잘못한 건가 했는데 다시 생각했다. 제대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다음은 눈여자(雪女) 렌게 이야기다. 렌게는 눈여자여서 차갑다. 손을 오래 잡고 있으면 얼어버린다고. 이것 때문에 사람 모습이어도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자신을 알면 떠나갈까봐. 그런 렌게가 십년 전에 먼저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렌게를 찾았다. 이 이야기를 보니 예전에 <나츠메 우인장>에서 본 게 하나 생각났다. 그때는 목소리를 흉내내서 요괴가 여자가 만나던 사람인 척하고 만났는데. 실제 만난 건 아니고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만 나누었다. 시간이 흐르고 요괴는 자신이 누군지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여자가 자신을 싫어할까봐. 렌게도 사람이 자신이 사람이 아닌 것을 알면 싫어할까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요괴와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람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 알겠다.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 생각하면서도 나도 뭔가 잘 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좀 덜 생각하고 싶은데. 렌게는 십년 전에 만난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요괴를 알게 되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 사람은 아주 적겠지만.

 

이제야 맨 앞에서 하던 말을 이어서 할 수 있겠다. 코노스케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다. 코노스케는 아버지 없이 엄마하고만 살아서 빨리 돈을 벌어서 엄마를 편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들어가서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코노스케는 아버지 그림 때문에 전설의 표구사 다마키를 만나서 표구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누군가 표구사 할 거지, 하면 그건 아니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표구를 더 알고 싶어한다. 이것을 엄마가 눈치챈 듯했다. 모든 부모가 다 그런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부모는 자식이 좋아하는 일 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엄마는 코노스케가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코노스케가 마음을 정하고 말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바로 표구사가 된다고 한 건 아니다. 코노스케가 배우는 것은 미술 보존과학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오래된 그림을 고치는 것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코노스케는 그것을 안 지 얼마 안 되었다. 다마키가 깨끗하게 고칠 수 없는 족자가 있다고 하자 코노스케는 놀랐다. 다마키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할 수 없는 게 있다고 해서. 코노스케는 다마키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코노스케가 다른 일 하면서 다마키와 요괴를 만나고 취미로 표구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거기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표구를 생각하는 코노스케 모습은 즐거워 보인다. 여기에서 누구보다 삶이 많이 바뀐 사람은 코노스케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기로 했으니까.

 

 

 

희선

 

 

 

 

☆―

 

내 앞에 뻗어 있는 레일. 내가 나아가려고 한 거기에는 갈림길 같은 건 없고 오로지 쭉 곧은 외길뿐이었다. 하지만 그 레일에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는 새로운 레일이 나타났다. 새로운 레일은 쭉 곧은 길인지, 굽은 길이 이어졌는지, 산과 골짜기가 있는지, 순조로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세계가 보고 싶다.  (269~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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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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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은 우리한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모임은 한달에 한번이고,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읽어오라는 것.  (15쪽)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 넷은 한해동안 수요 북클럽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했다. 그것을 ‘수북형’이라고 하다니. 학교를 쉬라거나 봉사활동이 아닌 책 읽기 모임에 다니라고 하는 건 아주 좋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자고 한 사람은 누굴까. 책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겨우 넷밖에 없을까 하는.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하니 학교 틀에서 빠져 나가려고 한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어쩐지 넷은 적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대표라고 생각하자. 정영주는 1학년이 끝나갈 때쯤 2학년과 싸우고 다쳤다. 1학년에서는 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학년한테 지고 나서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하다. 정영주는 왜 짱이 된 걸까. 김의영은 화가 나서 식판을 엎었다고 한다.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한테. 김의영은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잘 보이려고 꾸미고 다녔다. 예쁜 언니들 때문에 그런 콤플렉스가 생긴 건 아닐까. 전교 2등인 윤정환은 스트레스 때문에 2학기 기말시험 답안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축구 천재였던 박민석은 다치고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어 지금 학교로 옮겼는데, 그런 것을 비웃는 듯한 아이 배로 축구공을 날렸다.

 

넷 가운데서 가장 큰일은 싸움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모두 1학년이 끝날 때쯤 문제를 일으켜서 2학년이 되고도 그대로 학교에 다니는 조건으로 수요 책 읽기 모임 나가야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좋은 벌이 아닌가 싶다. 벌도 아니구나. 하지만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하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책 별로 읽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책은 한달에 한권 읽고 감상문 같은 건 쓰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고 해야 하는 건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 쳐 오기다. 이 말을 그냥 썼는데, 나는 책에 밑줄 치는 거 안 좋아한다(교과서에 밑줄 치는 건 괜찮다). 카페 숨ː 주인장은 책에 밑줄 치는 거 좋아하는가보다. 네 아이 가운데는 책에 밑줄 치기 싫어하는 사람 없었다.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마음에 드는 구절 따로 쓰거나 쪽수를 썼겠다. 책을 어떻게 보건 다 자기 마음 아닌가. 책에 밑줄 치고 이것저것 적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정영주는 카페 숨ː을 창고 같다고 했다. 카페는 크지 않고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했다. 주인은 짧은 머리에 안경 낀 여자였다. 아이들 이름은 나오지만 주인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 아이들이 주체기 때문이겠지. 거의 끝날 때쯤에야 주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자신이 가진 상처를 아이들한테 조금 보여준다.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마음은 알기 어려울 거다. 이제는 영영 알 수 없는 사람 마음 때문에 주인은 책을 보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알 수 없을 텐데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을지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없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저 사는 게 힘들었던가보다 생각하는 것밖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막을 수 있기를, 곁에 있을 때 서로 마음쓰기, 이것밖에 없다. 지나간 일을 잊어야 하는 건 아니다. 생각할 만큼 생각하고 슬퍼할 만큼 슬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서 놔주기. 상대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어떤 큰일을 겪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듯하다. 그때는 멈추어 있어야겠지.

 

책을 보는 건 자신을 보기 위해서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서기도 한 듯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겠다. 아이들은 책을 보고 나서 카페 숨ː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가 느낀 것을 말한다. 함께 책을 보는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한권은 그 책을 본 사람 수만큼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네 아이는 서로 달라서 학교에서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카페 숨ː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처음부터 마음이 맞고 이야기를 잘 한 건 아니다. 본래 그렇기는 하구나. 사람은 여러번 만나다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아니 모든 만남이 그런 건 아니다. 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건 왜일까. 이상하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어색한 사람 있지 않은가. 그건 자신 때문일까. 아니 어느 한쪽 때문은 아닌 듯하다. 네 아이는 처음에는 서로를 잘 몰랐지만 한달 한달 지나고 서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저 아이한테 저런 면이 있구나 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좋은 점을 잘 못 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래, 아이들은 서로가 가진 좋은 점을 솔직하게 말한다.

 

책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다고 무엇인가 많이 바뀌는 건 아니다. 겉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이 바뀐다. 정영주는 싸움에서 늘 이기려고 하지 않고, 김의영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윤정환은 공부만 생각하지 않고, 박민석은 축구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 정리하고 나니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네 아이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넷 다 친구가 없었는데 이제는 친구가 생겼다. 책 모임은 한해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은 앞으로도 만나기로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 해도 한달에 책 한권 보기 어렵지 않겠지. 현실에도 네 아이처럼 함께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가 많으면 좋을 텐데. 아주 없는 건 아닐 거다. 나도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 이런 말을 했구나.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책 별로 못 봤다. 어쩌면 예전에도 책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 들은 기억이 없다(국어 시간에 들은 건 봐야 하는 소설, 그런 거였다). 그때 내가 텔레비전을 못 봐서 그런가(지금은 아예 안 본다). 예전보다 지금 더 책을 보라고 하는 듯하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 주인은 별 말 안 한다. 나중에 아이들한테 메일을 보낸다. 전체 정리를 해주는 듯하다. 그것을 보면서 책을 보고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했다. 나는 그런 거나 생각하다니. 아이들은 읽은 책 가운데서 내가 만난 것은 얼마 안 된다. 나는 책을 보고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하구나, 하고 느낀 적 별로 없다. 아주 조금 비슷한 것은 있지만 똑같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것은 내가 몸소 느낀 게 얼마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니 그것을 잘 느껴야겠다. 친구와 함께 같은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으니 책을 친구로 만나야겠다.

 

 

 

희선

 

 

 

 

☆―

 

책이 진짜 완성되는 순간은 어쩌면 누군가 그 책을 읽을 때가 아닐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낱말과 문장은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어쩌면 이야기도 서로 다르게 다가가겠지. 나와 박민석 책 읽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러니까 책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몇천몇만 가지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그때마다 새롭게 완성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읽음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저마다 세계속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153쪽)

 

 

책 읽기의 즐거움은 그것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 책을 읽는 게 진짜 매력입니다.  (158쪽)

 

 

우리는 모두 외롭다. 어떤 이는 외로움을 외면할 것이고, 어떤 이는 외로움을 다른 방식으로 이겨낼 것이다. 주인장은 우리한테 외로움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방법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책은 늘 우리 곁에 있고, 우리를 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테니까. 그게 우리한테 먹혔던 것은 주인장도 사무친 외로움을 책으로 달래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297쪽)

 

 

우리는 우리를 패배시킨 적이 누군지 이야기 나누었다. 사연은 달라도, 결국 우린 서로 비슷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정영주도, 공부를 못하면 끝장이라 믿었던 윤정환도, 뚱뚱하고 못생겼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겁을 먹었던 김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우리를 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놈이라고.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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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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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국민 작가다. 이 말은 몇 해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다. 그 뒤 나쓰메 소세키 책을 많이 읽었느냐 하면 그러지 않았다. 일본 국민 작가라는 말 듣기 전에 책을 몇권 보았는데 제대로 못 보고 본 지 오래되어서 거의 잊어버렸다. 좀 더 관심을 가졌다면 좋았을까. 국민 작가라고 할 정도라면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게 있다는 거니까. 나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앞으로 더 보면 알 수 있을까. 예전에 이 《산시로》가 교양 소설이라고 한 말을 보았다. 이런저런 책을 말하는 것을 보고 그것 때문인가 했다. 아니 책 여러 권을 늘어놓은 건 교양과 상관없겠다. 1900년대 일본 대학교육, 문학이 하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런 말이 길게 나오는 건 아니다. 대학에서 외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꼭 외국 사람이어야 하는가 하고, “문학의 새로운 기운은 일본 사회 활동 모두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안 되지. 또한 실제로 미치고 있네. 그들이 낮잠을 자고 꿈을 꾸는 동안 어느새 영향을 미치고 있지.” (162쪽)한다. 내가 이것을 쓰고 이 글에서 말하는 ‘그들’은 대체 누구지 했다. 문단 사람인 듯하다. 잘 모르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게 나을 텐데. 저 말은 산시로가 도쿄로 와서 만난 친구 사사키 요지로가 했다. 사사키 요지로는 십년 넘게 고등학교 선생인 히로타를 대학 교수가 되게 하려고 애쓰지만 잘 안 된다. 그때는 대학 교수를 어떻게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대학 교수가 되고 싶어해야 하지 둘레에서 무언가 한다고 해서 될 것 같지 않다.

 

산시로는 스물셋이다.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도쿄제국대학에 다니게 되어서 도쿄로 온다. 신슈에서 도쿄 대학에 다니게 된 사람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다. 요시다 슈이치 소설 《요노스케 이야기》다. ‘요노스케 이야기’를 볼 때 ‘산시로’를 떠올려야 했는데 나는 반대구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면 기대가 클거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경험은 못해봤다. 산시로는 도쿄로 가는 기차에서 어떤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남편도 아이도 있다. 여자는 무슨 마음으로 산시로한테 나고야에서 잘 곳을 안내해달라고 한 걸까. 한 방에서 아무 일 없이 밤을 보낸 다음 날 여자는 산시로한테 ‘당신은 배짱이 없는 사람이군요.’ 한다. 그 말에 산시로는 충격을 받고 기차에서 책을 펴들고 생각한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했나 하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산시로는 대학에 다니면 학자를 만나고 취미와 품성을 갖춘 학생들과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그 여자가 이상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것을 여기에서 처음 본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그런 마음 잘 모르겠다. 산시로는 기차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고등학교 선생인 히로타다. 기차에서 만났을 때는 산시로가 히로타를 중학교 선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쩐지 좀 낮잡아 본 듯하다.

 

사람은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우연이 여러 번 일어난다. 산시로가 히로타를 만난 일도 그렇고, 산시로가 관심을 가진 사토미 미네코와도 우연히 만난다. 노노미야 소하치를 만난 날 산시로는 대학 연못가에서 미네코를 처음 본다. 노노미야 여동생이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산시로는 노노미야 여동생이 연못가에서 본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다음 날 산시로는 노노미야 여동생 요시코를 만나고 병원에서 돌아가는 길에 연못가에서 본 미네코를 만난다. 미네코는 요시코 병문안을 왔다. 산시로는 미네코 머리에서 노노미야가 산 리본을 본다. 산시로가 미네코 이름을 아는 건 히로타가 이사하는 집에서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어보기 어렵겠다. 미네코가 노노미야나 히로타와 아는 사람이어서 이름을 물어볼 기회가 생긴 거구나. 우연히 한번 본 사람을 이렇게 여러 번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일 일어나기 어려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산시로가 만난 사람이 다 아는 사이라는 건 소설이니까 그렇다고 봐야겠다. 이런 일도 아주 없는 건 아니겠다. 어떤 세계에 한 사람이 들어간 것이니까.

 

산시로가 미네코만 생각한 건 아니다. 산시로는 성실하게 학교에 다녔다. 처음에는 강의를 한 주에 마흔 시간이나 들었다. 사사키 요지로를 만나고 도서관에 다니게 된다. 산시로가 빌린 책에는 누군가 한번 훑어본 흔적이 있었다. 도서관 책에 밑줄이 있거나 뭔가 쓰여 있으면 안 좋을 텐데 산시로는 괜찮았나보다. 산시로는 도서관 책을 누군가 거의 본 것을 놀라워했다. 그것은 히로타였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히로타 같은 인물 자주 나오는 듯하다. 많이 알아도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사람 말이다. 사사키 요지로는 그런 사람이 대학 교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겠지. 사사키 요지로가 쓴 논문 때문에 히로타는 안 좋은 말을 듣고, 그것을 쓴 사람이 산시로라고 알려진다. 요지로가 나서서 뭔가 해도 결과는 별로 좋지 않은 듯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겠지만 늘 끝이 안 좋으면 그것도 안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요지로가 우울하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요지로는 허풍이 좀 센 편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마음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사람은 미네코다. 미네코는 노노미야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산시로한테 마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미네코 마음을 노노미야가 잘 알아주지 않아서 산시로한테 잠시 기댄 건지도. 혹시 미네코도 자기 마음을 잘 몰랐던 걸까. 길 잃은 양은 그런 미네코 마음을 나타낸 거였을까. 미네코는 산시로를 결혼 상대로 생각도 안 했다. 결국 노노미야도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그렇게 갑자기 결혼을 하다니. 산시로가 슬퍼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조금 있었겠지. 감기에 걸리고 미네코가 결혼한다는 걸 알지만, 먼저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된 건지도. 어쩐지 뜸 들이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뒤 미네코는 잘 살았을까. 산시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요지로가 한 말 때문일지도. 산시로와 자신은 몇 해 지나면 지금보다 좋게 보일 거다, 한 말. 미네코는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보다 안정을 고른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산시로뿐 아니라 노노미야도 미네코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없었을지도. 미네코는 다른 사람하고 결혼할 수밖에 없었겠다. 미네코 마음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바로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다른 것보다 산시로와 미네코 이야기를 많이 했구나. 내가 나쓰메 소세키를 잘 알면 다른 것도 말했을 텐데 잘 모른다. 나쓰메 소세키는 똑똑한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하나 하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여자도 공부하고 이것저것 많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일지도. 산시로는 도쿄로 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조금 자랐다. 바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배짱은 있어야 할 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꼭 큰 아픔을 겪어야 자라는 건 아니다. 그럴 때 더 많이 자라겠구나. 산시로한테는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도 이 책 보기에 괜찮다. 청춘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좋아 보이겠다.

 

 

 

희선

 

 

 

 

☆―

 

“입센의 인물과 닮았다는 것은 미네코 씨만이 아니네. 지금 일반 여성들은 모두 닮았지. 여성만이 아니네. 적어도 새로운 공기를 쐰 남자는 모두 입센의 인물과 닮은 구석이 있지. 다만 남자도 여자도 모두 입센처럼 자유로운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거의 모두 물들어 있네.”

 

“나는 별로 물들지 않았네.”

 

“물들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겠지. ……어떤 사회든 잘못되고 모자라는 점이 없는 사회는 없을 걸세.”

 

“그야 그렇겠지.”

 

“없다고 하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동물은 어딘가 모자람을 느끼는 거지. 입센의 인물은 지금 사회제도의 잘못되고 모자라는 점을 가장 분명하게 느낀 사람이네.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겠지.”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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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1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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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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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0 14: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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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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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이룬 저지

 

  데가미바치 16

  (레터 비 Letter bee)

  아사다 히로유키

  슈에이샤(集英社)  2013년 06월 04일

 

 

 

 

 

 

 

폭풍의 언덕

 

 

 

이 책 15권을 언제 보았는지 모르겠다. 한해이상 넘은 것 같다. 15권 언제 보았는지 찾아보니 2012년 4월이었다. 한해가 아니고 두해 넘게 지나다니. 이 책 16권은 2013년 6월에 나왔다. 그러니까 <원피스>보다 권수 덜 나왔다. 자주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앞에 것을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다. 라그 엄마가 라그한테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를 찾으라는 말을 남긴 것밖에는(라그를 넣어서 다섯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이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 고. 그 말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그런 아이들을 찾으러 간 건 아니다. 일(편지배달)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싶다. 아니 지금은 그래도 언젠가는 그 아이들을 찾는 데 힘을 쓸지도 모르겠다. 나도 잊어버렸는데 이 세계를 대충 이야기한다면, 이곳은 밤만이 있는 앰버그라운드다. 수도 아카츠키에는 인공태양이 있고, 유사리, 요다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유사리는 좀 보통이고 요다카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계급이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보다 땅이 그렇다고 해야겠다(이곳은 아카츠키에서 요다카로 갈수록 빛이 약해진다). 보통사람은 유사리와 요다카를 쉽게 넘나들 수 없구나. 통행증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이곳에는 사람 마음을 먹는 엄청 커다란 곤충처럼 생긴 갑충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다른 곳에 잘 다니지 않는다(위험한 걸 알아도 다니는 사람도 있다). 갑충한테 마음을 먹히면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멀리에 사는 친척이나 식구와 소식을 주고받고 싶다. 그 일을 도와주는 게 비(벌)다. 비는 국가공무원으로 갑충과 싸워서 쓰러뜨릴 수 있다. 비는 위험한 곳이어도 편지를 전해준다. 어쩐지 비는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많은 것 같다. 심탄총에 넣을 마음 때문일까.

 

라그와 코너도 나오는데 저지 이야기가 많다. 저지가 비가 된 건 부모 마음을 빼앗은 갑충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예전에는 이렇게만 알았다. 이번에 저지가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지 부모가 저지를 고아원에 버린 건 빚대신 아이를 달라고 해서다. 그렇게 팔려간 아이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부모는 저지를 고아원에 버리고 빚을 갚으면 꼭 다시 데리고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부모가 저지를 데리러 고아원에 찾아왔을 때 저지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저지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저지 부모는 갑충을 만나고 마음을 빼앗겼다. 저지 부모가 쓰러진 곳에는 저지한테 남긴 편지가 있었다. 저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이때 저지는 부모가 왜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는지 몰랐다. 빚 때문에 그랬다는 건 나중에야 안다.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고 부모가 남긴 편지를 본 다음에. 편지에 라그가 심탄을 쏘았다. 라그 심탄은 물건에 담긴 사람 기억을 보여준다. 저지라는 이름은 ‘올곧게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저지 부모는 저지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이름을 지었다. 저지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런 것을 아주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끝을 먼저 말했다. 이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저지는 라프로이그가 나타난 마을에 가서 폭풍의 언덕이라는 여관에 머물렀다. 며칠 동안 저지는 라프로이그를 찾아다녔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 소설이다. 재미있게도 여관 주인 부부 이름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었다. 저지가 폭풍의 언덕에서 만난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 에밀 브론테였다(이름을 조금 바꾸다니). 에밀도 저지처럼 고아였다. 여관 주인 부부가 에밀을 고아원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주인 부부는 마음 따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도 에밀한테 잘해주지 않았다. 에밀 마음은 어둠에 물들었다. 저지도 고아원에서 그렇게 잘 지낸 건 아니었다. 거기 원장이 별로였다. 그래도 저지는 부모를 잠깐이라도 만나서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은 건지도. 에밀은 정령호박반지로 라프로이그를 조종했다. 마을 사람과 여관 주인 마음을 라프로이그한테 먹게 했다. 저지는 좀더 빨리 에밀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건 에밀도 마찬가지였다. 에밀이 마음을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에밀과 라프로이그가 하나가 되고 에밀 마음을 모두 갑충한테 주었다. 라그, 코너가 와서 시간을 끌면서 라프로이그 약점을 찾아냈다. 그곳을 저지가 공격해서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렸다.

 

에밀을 보니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게 생각났다. 에밀은 이제 열두살인데.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나. 그동안 힘들고 괴롭게 지냈을 테니. 아이가 느끼는 시간은 길기도 하다. 에밀 기억에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나왔는데, 에밀이 깜박임의 날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한사람 찾았는데 제대로 말도 못해보다니 라그는 아쉬웠겠다. 다른 사람은 좋게 만나기를 바란다. 갑충 이름을 라프로이그라고 했는데, 어쩌면 러프로이그일지도. 저지가 찾던 갑충이 맞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라프로이그가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지는 이제 자기 할 일은 끝났다고 여겼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 산 것처럼 생각하다니. 저지는 앞으로도 라그, 코너와 함께 비로 살아가겠지.

 

어떻게 다른 사람 기억을 볼 수 있을까 할 텐데 심탄(마음탄)이 본래 그렇다. 갑충을 쓰러뜨릴 때 쏜 심탄 때문에 사람 기억이 보이기도 한다. 말로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보이면 좋을 텐데, 이건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구나.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는데, 그 마음으로 갑충을 쓰러뜨린다니 말이다. 그냥 마음은 아니구나. 정령호박과 마음을 모을 총같은 연장이 있어야 한다(총이 아닌 것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은 그냥 마음과는 다른 것이겠다. 저지가 지내던 고아원 존그리어는 진 웹스터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있던 고아원 이름이라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 내용은 아는데 소설은 아직 못 보았다. 만화도 제대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에 ebs에서 라디오 소설 시간에 읽어주는 것을 듣고 좀더 알았다.

 

 

 

 

 

 

 

본래 만화책 한권 보고 쓴 것만 올릴까 했다. 나는 읽은 지 오래된 것은 거의 못 쓴다. 아마 그 책을 오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누군가는 책 한권을 만나고 그게 아주 좋아서 읽고 또 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무언가를 쓰는 사람도 있구나.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내가 줄거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고 벌써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보고 두번 쓰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어쩌다 한번 더 쓴다).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한번 쓰고 나면 못 쓰다니.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예전에 본 게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보는 책과 비슷하거나 그냥 문득 떠오르는 거겠지. 어떤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과 같다. 내가 읽은 책에 자신을 갖지 못하는 탓도 있다. 좋으면 좋은대로 별로면 별로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책을 잘 못 봐서 그런 데 자신 없다. 좋은 건 좋다 말하지만 별로인 건 말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테니까. 잠자기 전에 어떻게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써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그 생각이 다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책을 본 기억을 쥐어짜내볼까 한다.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2014, 자음과 모음)

 

다른 책보다 이 책은 빨리 우리나라에 나와서 놀랐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때와 같거나 조금 차이 나게 나오는 건 이 책만은 아니다.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일본과 거의 비슷한 때 나왔다. 이런 말은 전에도 했구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어느 작가나 비슷하다. 내가 작가를 생각하고 책을 보기보다 그저 책만 보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지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도 이름이 아주 잘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에는 본격 추리를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보다 왜 죽였는지를 더 생각하게 하고,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조금 건드린다. 깊게가 아니고 조금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 책을 보고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사형제도가 아주 좋은 건 아니다고 다룬 소설은 예전에도 나왔다. 그런 것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사형을 받거나 형무소에서 형을 사는 것을 ‘공허한 십자가’라고 말한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 어떤 사람은 형무소에 잠깐 들어갔다 오면 되잖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드라마에서 들은 거지만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폭력조직은 밑에 사람이 다른 사람 죄를 대신 짊어지고 형을 살기도 한다. 형무소에서 형을 살거나 사형 선고를 받아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본래는 길었는데 형무소에서 모범수가 되면 더 일찍 사회에 나오기도 한다. 그 사람이 정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살아갈지 알 수 있을까. 모범수인 척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것은 잘 알기 어려울 거다. 그래도 잘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앞으로 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안 좋게 보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까운 곳에 잘못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다면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할 거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평생 죄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제대로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속에 나온 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테니,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범인한테 무엇을 바라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범인이 잘못했다고 말해도 용서하기 어려울 텐데, 자기 죄는 뉘우치지 않고 사형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다니.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가둬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도 모르겠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게 해야 할 텐데, 형무소에서 그런 걸 하고 있을까. 몸이야 가두어둘 수 있지만,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을 믿고 싶다, 달라질 수 있다고. 감옥에서 온갖 나쁜 짓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는 게 생각났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 나올 때는 청소년한테 성교육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일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가 되었다. 한사람은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한사람은 그 죄에 짓눌려 망가졌다. 둘레 어른(학교 선생님)이 관심을 갖지 않고 보고도 못 본 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도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내 목숨이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목숨은 당신 한사람 것이 아닙니다. 벌써 돌아가셨다고 해도 부모님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 것이기도 하지요. 아니, 이제 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슬플 테니까요.”  (312쪽)

 

 

 

 

조선직업실록, 정명섭 (2014, 북로드)

 

본 지 좀 오래된 책이다. 조선시대에 있었지만 잊힌 직업을 소개해준다. 여기 나오는 건 스물하난데 그때 일이 이것만 있지 않았을 거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 하지 않는다. 이것도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백성 이야기라고 하면 되겠다. 나는 조선시대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찾아보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겨우 하나 보고 뭔가 한 것처럼 생각했구나. 라디오 방송에서 잠깐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지나면서 들은 건데, 그때 양반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과거시험을 봐야 했다. 그게 좋은 제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문관과 무관이 차별받았다. 문관이 되어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것은 양반 이야기구나. 이 책에는 조선후기 과거시험에 부정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벼슬을 하지 못한 양반이 한 일은 전기수나 재담꾼이었다. 글을 알아야 글을 읽고 외워서 이야기해주니까. 다른 나라 때문에 생긴 일도 있었고 남편이 죽은 여자가 하는 일도 나온다. 장례식에서 곡을 하고 돈을 받기도 했다. 대신 매 맞아 주는 일도 있었구나. 이런 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할 게 없으면 그거라도 했겠다.

 

 

 

 

혼돈의 도시, 마이클 코넬리 (2014,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가 쓰는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서 하나다. 몇 번째인지 나도 잘 모른다. 이것을 차례대로 죽 본 것은 아니고 빼먹고 보기도 했다. 마이클 코넬리 책을 처음 볼 때는 이상하게 읽는 속도가 느렸다. 이 책은 보통으로 본 듯하다. 이것보다 먼저 나온 《에코 파크》는 못 보았다. 그때 어떤 일이 있어서 해리 보슈는 한달 동안 일을 쉬고 여기에서 첫일을 맡았다. 해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도 바뀌었다. 해리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해리와 나이 차이가 스무살 이상 났다. 해리가 엄청 선배라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해도 해리는 자신이 선배인 척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수사를 한다. 위에서 하지 마라 하는 것도 하고. 해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는 일 말이다. 이제야 해리 보슈는 죽은 사람을 가장 첫째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한테는 남은 식구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끔 잊는 건 아닌가 싶다.

 

큰일에 진짜 뜻을 숨겼다. 이것만 말해야겠다.

 

 

 

“난 살인범들을 찾을 테니까, 당신들은 세슘을 찾으라고.” 보슈가 큰 소리로 말했다.  (83쪽)

 

 

“국민 안녕과 사회안전은 산마루에 죽어 자빠져 있는 저 남자에서 시작되는 거야. 우리가 그를 잊으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130쪽)

 

 

 

 

 

기억을 쥐어짜내보겠다고 했는데 별로 짜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쓰려고 한 건 《천강에 비친 달》(정찬주, 작가정신)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힘을 모아 한글을 만들었다고 배운다(국어사전에서 훈민정음으로 찾으면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세종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생각하고 한글을 만들도록 한 사람은 신미 대사다. 그러니까 승려다. 조선시대 때는 유교를 따르고 불교를 없애려고 했다. 세종은 다른 왕과 다르게 불교 가르침을 따랐다. 왕이기에 신하가 그 일을 뭐라 하지 못했겠지만, 아무리 왕이라 해도 밝힐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한글을 만든 게 승려 신미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지지 않는 것도 많겠지. 신미가 범어에서 우리 글자를 만든 것은 이 소설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썼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한글이 있어서 우리가 어려운 한자나 영어를 잘 몰라도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말은 있지만 글자가 없는 나라 말은 쉽게 사라진다(이건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자가 없어서 말이 사라지기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지는 건지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라지고 있는 말이 있을 거다. 일본한테도 빼앗기지 않은 우리말과 글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말과 글을 잘 가꾸고 쓰는 거다.

 

 

 

 

편지를 떠나보내자

 

 

글이 완성되는 건 누군가 그 글을 읽을 때,

마찬가지로 편지가 편지가 되는 건 누군가한테 제대로 갈 때다

빨간 우체통을 지날 때 한번 살펴보자

우체통 속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편지가 보이면

편지가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가끔 길을 걷다 우체통 속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편지를 본다. 아니 어쩌면 그건 편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게 보이면 우체통 속으로 집어넣는다. 뒤에 다른 게 생각났다면 좋았을 텐데, 편지가 다른 곳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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