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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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책을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다가 어떤 책을 보고 조금 쓰면 어떨까 생각한 일이. 그때 본 책은 박범신의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다. 그 책이 나온 해에 본 것은 아니고 몇해 지난 뒤에 보았다. 책을 보고 무엇인가 쓴 것은 학교 다닐 때뿐이다. 그것도 몇번 안 했다. 이것을 글이라고 하기 어렵겠지만, 학교 다닐 때는 달리 글이라는 것을 쓰지 않고 써야 하는 것만 썼다. 그래도 일기와 편지는 썼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무것도 안 쓴 게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그때는 책도 거의 안 읽었는데. 책을 읽고 쓰기 어려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를 보고 쓰려고 한 것은 처음이어서 더 몰랐다. 단편집이어서 단편 하나하나에 대해 짧게 적었다. 그래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적는 버릇을 들였다면 지금 좀더 잘 쓸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책만 읽었다.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속에 있는 단편 <내 기타는 죄가 많아요, 어머니>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적혀 있다. 그 말은 “가짜에 감동 받는다.”다. 이 말 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박범신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하기 어렵다(이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나마스테》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다. 정말 몇권 안 된다. 책을 보면 한 작가 책을 찾아서 보기도 하는데 박범신 소설은 그러지 않았구나. 어쩌면 한두권 더 봤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이 책 《소소한 풍경》을 보기 전에 인터넷 책방에서 책소개를 조금 보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책을 잘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ㄱ, ㄴ, ㄷ이라는 세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소설에 나온 것과는 다르지만. 여기에 나온 것은 세 사람이 덩어리가 되는 거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세 사람이 아닌 두 사람, 두 사람인데 이것이 더 이상한가. 보통 삼각관계하고는 다른데. 사실 나는 삼각관계 안 좋아한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런 것은 거의 안 보기도 한다(그러고 보니 ‘은교’도 삼각관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구나. 아니 그것도 좀 다른 삼각관계가 아닐까. 어쩌면 둘보다는 셋일 때 긴장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것일지도). 여기에 나온 것은 삼각관계하고는 별로 상관없다. 세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책을 보고 나도 이 소설처럼 어떤 낱말을 쓰고 쓸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잘 못 쓸 것 같아서. 해설 맨 앞에는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그 말은 ‘시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다. ‘소소한 풍경’은 소설이지만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ㄱ은 대학교 때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한다. 선생님은 그 말에 관심을 가지고 ㄱ이 사는 소소(昭昭)에 찾아간다. 소소 시가 정말 있던가(실제로는 없는 곳이다). 선생님은 소설을 쓰는 작가다. 책을 다 보면(다 안 봐도) 이 선생님이 작가의 분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선생님뿐 아니라 ㄱ도 조금 그런 것 같다. ㄱ도 예전에 글을 쓰려고 했고, <우물>이라는 소설도 썼다(이 우물을 봤을 때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생님은 ㄱ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이 말은 ㄱ이 했다. 소설은 ㄱ이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쓴 글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 이런 것은 누구나 알겠구나. 선생님이 플롯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말을 하려다가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플롯을 마음 쓰지 않고 글을 쓰려고 한 사람은 박범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플롯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ㄱ, ㄴ, ㄷ 저마다의 이야기는 조금 알 수 있으니까. 세 사람은 다 른 사람 이야기를 모르겠지만. 아니 나중에 알게 되는구나. 세 사람한테는 저마다 아픔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슬픔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은 사람한테 큰 상처가 된다. ㄱ 오빠, 어머니, 아버지는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ㄱ은 오빠가 죽은 게 자기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ㄱ은 식구들의 죽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대학교 때 만난 남자1과 결혼하지만 헤어진다. ㄴ 아버지와 형은 1980년 광주에서 죽임 당했다. 어머니는 실어증과 치매가 와서 요양소에 들어갔다. 그 뒤 ㄴ은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ㄷ은 조선족 처녀라고 했지만, 실제는 북한에서 빠져나온 거였다. 그때 아버지가 죽었다. 어머니는 ㄷ과 어머니를 짓밟은 남자와 살았다. ㄷ은 거기에 돈을 부쳤다. ㄱ, ㄴ, ㄷ은 식구의 죽음이 자신 탓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지만 죽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가장 죽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ㄴ인가. ㄴ이 파는 우물을 ㄷ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 같다고 했다. 세 사람이 덩어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가까웠고 언젠가 끝날 사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큰눈도 한몫했다). 그것도 사랑일까, 일지도.

 

선인장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ㄱ은 선인장을 길렀다. 선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시라고 한다. 이런 말도 했구나, 아픈 기억은 가시가 된다는. 세 사람은 다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소설에 나온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있는 것이겠다. 그게 누군가를 찌르지 않게 해야겠지. 언젠가 끝날 사이라는 말을 생각했을 때, 인터넷 안의 사람관계가 떠올랐다. 나는 끝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내 마음과는 다르다. 아니 어떤 관계든 언젠가는 끝이 찾아오겠지, 그게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는 것뿐일지도. ㄴ이 일한 곳에서 일어난 사고(건물 기계실에서 냉매가스로 대학생이 질식해 죽은 사고,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쇳물통에 빠져 죽은 사고)는 실제 있었던 일일 것이다(1980년 광주 일도 그렇구나). 그런 일을 왜 집어넣었을까 잠깐 생각했다. 잊지 않게 하려고,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한사람과 한사람의 관계는 숨막힐까. ㄱ 아버지는 밀짚모자에 숨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ㄴ은 죽었지만, ㄱ과 ㄷ은 살아간다. 어쩌면 ㄴ이 두 사람의 죽음까지 가지고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살라고. ㄱ, ㄴ, ㄷ의 모습은 풍경이다. 풍경은 그저 바라보면 된다. 책을 다 보았을 때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꿈처럼 이야기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옮겨간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

 

 

 

*더하는 말

 

글을 쓰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게 자기 일일지 다른 사람 일이지 아니면 세상 일일지. 책을 많이 보다보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렴풋이 아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생각했을 때 그 사람 소식을 들을 때나, 생각한 작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조금 다른가. 그래도 누구나 그런 경험 있을 것 같다. 나도 ‘우물’을 한순간 ‘우울’이라 보기도 했다.

 

 

 

 

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리를 덮었다

겨울 아침 멈추어버린

경은

건하다

 

 

 

소한 나날이

리 없이 흘러가는

편에선

랑이

고한다

 

 

 

희선

 

 

 

 

☆―

 

“아침노을은 오전 내내 이어지지 않고

 폭우도 하루 종일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 사랑도 예고 없이 당신을 떠나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죽게 마련입니다.

 저녁노을은 저녁 내내 이어지지 않고

 마음만이 저 먹구름을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 비틀즈, All Things Must Pass, 1970  (125쪽)

(책 속에는 비틀스라고 적혀 있지만 비틀즈라고 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나는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천연스럽게 상대편을 장난감처럼 자주 다루면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부서지지 않는 장난감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므로 사랑은, 두려워요.  (179쪽)

 

 

“…… 내 귓속에 곰팡이가 살아.”

.

.

.

 

“너를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구나. 얘들이, 내 몸속 가시라는 것. 소설이라는 게, 사람들 몸뚱어리 속에 박인 가시들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와 진배없다는 것.”  (316~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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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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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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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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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 오월까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군요. 그 안에서는 아니고 올해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두권 보았습니다. 《비정근》 《질풍론도》예요(《한여름의 방정식》은 곧 볼 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알게 된 작가입니다. 글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같이 알다니 신기하군요. 아니 저는 두 사람이 쓰는 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게 우리말로 나오기도 하고 좀 오래전 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번에 본 《몽환화》는 우리나라에 빨리 나온 편이군요. 일본과 많이 차이 나지 않게 나온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습니다. 더 빨리 나온 것도 있을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찾아보니 ‘질풍론도’는 일본과 한달 조금 넘게 차이 나더군요. 처음부터 문고로 나와서 그런 건지). 그런데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 책 가운에서 무엇을 가장 처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런 말을 하는데 몇 해 전에는 추리소설을 거의 안 봤거든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것 같아요(상도 받은 건데 그랬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본 게 이것만은 아니군요(이 말 자주 하는군요). 추리소설을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누가 사람을 죽였을까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사람이 맞으면 어쩐지 기분 좋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거기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여전히 생각하기도 하고, 왜 죽였을까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보다보니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여전히 제대로 못 보지만 이제는 여러가지를 보려고 합니다.

 

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팔꽃이 나온 것을 보니 오래전에 본 《충현이의 나팔꽃 일기》(이충현)가 생각나더군요. 나팔꽃 씨 심어서 싹틔우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콩을 심어본 적은 있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는 관찰일기라는 것을 쓰기도 하잖아요. 지금은 그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군요. 그 책이 생각나서 한번 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습니다. 다행하게도 그때 제가 그 책을 보고 써둔 게 있어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짧더군요. 글 쓰는 게 늘지 않아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오래전에 쓴 것을 보고,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보다 길게 쓰는 것을 늘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글쓰기도 재능이 있는 걸까요. 누군가는 시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쓰지만, 소설은 애쓰면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솔직하게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쓰고 기뻐하는 걸로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은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하기도 하죠. 저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팔꽃에서 이상한 곳으로 흘렀습니다.

 

무엇이든 하면 보통사람보다 잘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더군요. 그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찾아서 잘하려고 애쓰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죠. 하다보면 언젠가 벽에 부딪치니까요.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벽은 뛰어넘는 게 아니고 옆으로 지나가는 거다 하는 말도 있더군요. 그런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좋아할까요, 그 사람한테는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처음 할 때는 자신이 그것을 잘해서 좋아했지만, 둘레 사람들 기대 때문에 그것을 못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마음의 문제 때문에 수영을 못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키야마 리노예요. 리노의 고종사촌 도리이 나오토는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무엇이든 보통사람보다 잘했는데, 나오토는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고 음악을 하려고 했습니다. 얼마 뒤에는 리노 할아버지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합니다. 경찰은 그냥 돈 때문에 죽임 당한 것으로 보았지만 리노는 할아버지가 꽃을 피운 ‘이름 모르는 노란 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키야마 리노와 함께 노란 꽃, 그러니까 환상의 꽃 노란 나팔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가모 소타예요. 리노가 먼저 만난 것은 소타 형인 요스케지만요. 소타는 형하고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형은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어 관료가 되었는데 리노한테는 식물학과 관계있는 일을 한다고 했거든요. 소타는 형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기 위해 리노와 함께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책 내용을 거의 쓰지 않으면 어떨까 하고 두번째 문단을 쓰고 생각했는데(다른 것은 생각나지도 않는데 이런 생각을), 세번째 문단에서 바로 쓰고 말았군요. 그것도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소타 이야기를 더 한다면, 소타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두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안 좋았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와 나이 차이 많은 형이 소타한테 숨기는 게 있어서 소타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중학생 때 만난 여자친구하고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그때 저는 그 여자아이 집안에 큰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는가 했습니다. 소타는 집에서 멀어지려고 대학을 도쿄가 아닌 오사카에서 다녔습니다. 소타가 공부한 것은 원자력공학이에요.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큰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이렇게 설정했겠지요. 지금 말하면 잘 모르겠지만, 노란 나팔꽃과 원자력발전소 비슷한 거군요. 주요인물에 한사람 더 있습니다. 리노 할아버지 사건을 맡은 형사 하야세 료스케예요. 하야세는 죽임 당한 리노 할아버지한테 신세를 졌습니다. 정확하게는 아들 유타가 도움을 받았군요. 하야세는 바람을 피워서 부인과 아들하고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리노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잡아서 은혜도 갚고 유타한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모르게 하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일 수도 있겠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떤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 세상이 끝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타는 진로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노란 나팔꽃 일 때문에 원자력공학을 앞으로도 하기로 합니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에는 원자력공학이 앞날이 있어 보였지만 큰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뒤에는 아주 안 좋아졌습니다. 그게 없어진다고 해도 뒤처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리노도 소타와 비슷했습니다. 수영을 하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리노는 사촌 나오토가 리노가 가진 재능을 부러워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고, 다시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이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더 잘 볼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더 잘하기 위해 안 좋은 방법을 쓰는 건 안 좋은 듯합니다. 그런 것은 언젠가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지. 그러고 보니 무엇인가를 잘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군요. 어쩌면 악마가 약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을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일, 일본과 중국하고 일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일도 일본 사람이 물려받아야 하는 빚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보다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비트는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는군요(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도). 저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역사를 생각했군요. 일본사람도 이 책을 보고 여러가지를 생각하면 좋을 텐데요.

 

 

 

*미처하지못한말

 

어떤 게 생각났을 때 썼다면 좀더 나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 나중에 썼더니 이상하게 됐습니다.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은 한 것 같고, 해야 할 말은 안 한 것 같습니다. 소타 집안에는 삼대째 이어져온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장남만이 물려받는군요. 꼭 장남한테만 잇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형은 어렸을 때 그런 일을 알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소타 엄마가 아버지 두번째 부인이어도 별일 없었다고 했는데, 어쩌면 소타는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형한테 따돌림 받는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소타를 위해 그 일을 말하지 않기로 했지만 소타는 그것을 섭섭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것은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반대로 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게 좋을까요,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좋을까요.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어서 그 힘으로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관심을 부담으로 여겨서 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람은 참 어렵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 있든 없든 그 사람을 대하면 좋겠군요.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앞에서는 잘하는 게 있는 사람을 말하고 뒤에서는 다르게 말했군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좋은 걸까요, 안 좋은 걸까요. 이것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없으면 만든다 하는 말이 좋은 것 같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일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좀더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요. 늘 조심하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파란 장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씨 없는 수박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지만. 갑자기 씨 없는 수박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모든 생물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이 있잖아요. 씨 없는 수박은 자손을 남길 수 없어서 슬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박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그것도 씨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씨 없는 수박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잠깐 생각했는데 수박을 키우는 곳에는 수박만 있어서 다른 식물한테 말하기 어려워서 이야기가 안 될 듯하더군요. 수박 둘레에 무엇인가 있다고 한다면, 수박은 둘레에 있는 식물한테 자신한테 씨가 없는 것을 자랑합니다. 얼마 뒤 씨 없는 수박은 자신이 자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하다가 어느 순간 씨를 하나 갖게 됩니다, 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조개가 아픔을 참고 진주를 만드는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그냥 잠깐 해본 생각입니다.

 

 

 

희선

 

 

 

 

☆―

 

“답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론을 빨리 내려고 하지 마라. 어떤 길을 가든 나는 네 편이란다. 언제나 응원할게.”  (38쪽)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어울리기가 힘들어. 그런데 꽃은 거짓말을 안 하지. 마음을 담아 기르면 꼭 거기에 응해주거든.”  (43쪽)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고 하고 싶은 공부를 아직 못 찾은 것뿐이다.”

 

“그럴까요. 저한테도 그런 게 있을까요.”

 

“없는 사람이 없단다. 다만 찾아내는 게 좀 어려울 뿐.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단다.”  (46쪽)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420쪽)

 

 

 

 

 

      

       메꽃(나팔꽃은 메꽃과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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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힘겨운 싸움

 

  또 하나의 약속

  이상민 글   김태균 각본

  가연  2014년 02월 03일

 

 

 

 

 

 

 

 

 

 

 

 

봄이 슬픈 건지

이 이야기가 슬픈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슬픈 건지

 

이거 봄 타는 거?

 

 

 

요즘은 영화와 함께 책도 나오는 듯하다. 이런 책을 처음 보아서 이렇게 말했다. 원작이 있어서 그것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도 함께 준비하는가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만 모아둔 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영화에는 영화만의 것이 있고 소설에는 소설만의 것이 있다. 어쩐지 지금은 영상과 글이 서로 보조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을 나쁘게 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둘 다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나한테는 이런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책을 모두 보는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영화를 가끔 보았지만(그것도 텔레비전 방송으로 해주는) 지금은 거의 안 본다. 그러니 영화와 책이 함께 나오는 것은 나같은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으로나마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으니까(드라마도 책으로 나오기도 하는구나).

 

한때는 텔레비전을 보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안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뿐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서 그런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텔레비전 방송이 다 나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것을 안 보기 시작하면 괜찮은 것도 챙겨서 보기 어렵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로 볼 수 있지만. 내가 텔레비전을 보던 때 사회고발 방송도 가끔 보았다. 생각나는 것은 <PD 수첩>뿐이다. 그런 방송이라도 보았다면 이 책에 나온 일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도 몰랐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는 석면을 쓰던 때가 있었다(지금도 쓰고 있을지도). 그게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였던가. 이럴 때 역사를 잘 알면 멋지게 말할 텐데. 아무튼 이 석면 때문에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왜 아픈지 잘 몰랐을 것이다. 언제 석면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병(암)에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고 병에 걸린 사람이 보상을 받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석면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어떤 회사(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그게 어떤 회사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 싸운 사람이 있다.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공부를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재대로 다니지 못했다. 먹고 살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을 했는데 일하는 곳 환경이 아주 나빴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를 알게 되고 노동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서 노동법을 공부한다. 노동법을 공부한 전태일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많이 걸린 병은 결핵이다. 이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그것 또한 산업재해다.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 환경이 70년대보다는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벌러 온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나온 곳은 우리나라 경제를 좋게 해준다고 여기는 반도체 공장이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거다. 조금 넓게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뒤에 있는 말을 보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사회고발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미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다. 하지만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고 한해 넉달 만에 건강이 나빠져서 속초 집으로 돌아온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이었다. 한해가 지나고 회사 사람이 윤미네 집에 와서는 윤미한테 사표를 쓰라고 하고 돈을 건네주면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마라 한다. 속초에서 오랫동안 택시운전을 해온 윤미 아빠 한상구는 사람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지 알았다. 한상구는 회사 사람이 무엇인가 속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윤미 병원비 때문에 돈을 받는다. 한상구는 나중에야 윤미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해서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미가 죽고 한상구는 윤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싸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니까. 그래도 한상구는 윤미 아빠로서 해낸다. 한상구 혼자였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무사, 변호사, 제보자 그리고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함께 싸워서 이루어냈다. 윤미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소설에서는 윤미가 일한 곳을 진성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삼성반도체다. 이상한 일은 윤미가 그곳에서 일하기 전에도 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이 알려지지 않았을까다. 윤미 아빠 한상구처럼 용기를 내서 싸운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상구는 윤미 같은 아이가 더는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전태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였다. 한사람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한사람이 한사람이라도 구한다면 그것은 널리 퍼지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의사(형사)를 보았다. 자기 아이도 구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구할까 하는. 그렇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사람한테 그것을 써야 하니까.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까지 생각난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이야기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다고 본다. 아직도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보고 힘을 내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

 

“법이란 게 본래 그래요. 힘 없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었겠어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보호하려고 만든 거지.”  (228쪽)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다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오는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조금 다른 추리소설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メルカトルかく語りき (2011)

  마야 유타카   김은모 옮김

  문학동네  2014년 02월 17일

 

 

 

 

 

 

 

 

 

 

 

 

이 세상에 나온 추리소설 가운데서 내가 만나본 것은 아주 조금이다. 몇 해 전에는 이런 게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시간이 조금 흘렀으니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야 할 텐데).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이런저런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여러가지를 본 것은 아니다. 거의 소설만 만나보았다.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랬는데, 내가 본 책을 모두 다 알고 본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조금이라도 쓰려고 한다는 거다(잘 쓰면 좋겠지만 여전히 못 써서, 그게 조금 아쉽다). 그저 읽기만 했을 때와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본다. 그리고 책을 본다고 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조금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내 경우는 마음이 조금 바뀐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것은 그대로고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책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책을 보았을 때 잠깐이고 시간이 흐르면 잊고 만다. 사람은 쉽게 잊는다. 잊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덜 잊는다면 좋겠다(잊지 않기 위해 쓴다고 하지만 반대로 잊기 위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떤 말은 한번이 아니고 몇 번이고 보기도 한다. 그럴 때 예전에 그런 생각했지 한다. 어쩌면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책일지라도 보고 또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좋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같은 성경 말씀도 있다. 비슷한 주제라 해도 작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잠시 다른 길로 샜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보면서 지금까지 쓴 것과는 다르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본 다음에 나는 언제나 어떻게 쓸 것인가 얼개를 짜지는 않는다. 거의 그냥 쓴다(가끔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그리고 읽으면서 어떤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도 쓸 때는 잊어버리고 못 쓰기도 한다. 쓸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잘 짜맞추면 좋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버릇은 없어서.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도 했다. 이제부터는 짧아도 내용보다는 생각이나 느낌을 더 쓰면 어떨까 하는. 다른 것(구성이나 글이 어떻다 인물이 어떻다 하는 것은 잘 모르니 내버려두고)은 어렵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아니어서 말이지. 내가 자주 쓰는 말은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만 하는 건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면 괜찮지만 안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해야지 생각하고 바로 한다. 생각만 하고 안 하는 게 더 많지만. 그런 것은 생각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대체 책 이야기는 언제 할거야’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앞은 그냥 넘어갔을지도.

 

마야 유타카 책은 두번째다. 그리고 메르카토르 아유를 만나는 것도. 첫번째는 아주 잠깐밖에 못 보아서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많이 보아도 모르지만). 그때는 메르카토르라고만 하고 아유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다른 책 《날개달린 어둠》을 먼저 만난 사람은 메르카토르를 알고 메르카토르 친구면서 조수인 미나기 산조도 알겠지. 나는 이 책을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미나기 산조는 미스터리 작가다. 미스터리를 쓰면서 탐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나기는 조수라니. 처음 보았을 때 메르카토르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겉모습(턱시도에 실크해트를 쓴)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것은 아주 남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만 그렇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메르카토르는 제멋대로다. 자신은 천재 탐정으로 못 푸는 수수께끼(사건)가 없다고 여기고 자신을 굳게 믿는다(나는 나도 믿지 못한다, 이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적도 있다). 메르카토르는 다른 탐정하고는 조금 다르다. 내가 탐정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그 탐정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단 한사람만 말한다면 코난이다. 코난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탐정이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이어서 이런 식으로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코난을 좋게 생각한다. 메르카토르는 어떤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보기 위해 바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사람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거의 모든 탐정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탐정은 그 점을 아주 안타깝게 여긴다. 하지만 메르카토르는 그런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말하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피도 눈물도) 없는 탐정 같다. 실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메르카토르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휘둘릴 것 같아서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지만.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메르카토르가 해결한 사건도 많다고 한다.

 

이 책은 다른 추리소설과 조금 다르다. 다른 형식을 가진 책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을 찾아낸다. 그 뒤 범인이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지만.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같지만 확실하게 누가 범인이다 하지 않는다. 한해전 죽은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때는 범인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조금 웃겼던 것은 미나기한테 추리소설가로 범인과 맞닥뜨리는 일을 해보라고 한 거다. 미나기는 메르카토르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마지막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지 미나기는 언제나 메르카토르와 함께 다닌다. 어쩌면 소설 재료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메르카토르한테 괴롭힘 당해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으려나. 그것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러고 보니 메르카토르를 사디스트라고 했구나. 그러니 두 사람은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홈즈와 왓슨을 잘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아 뒤끝이 조금 안 좋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친구들이 서로 의심했으니까. 메르카토르가 친구들의 의심을 거두어주었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무엇인가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열린 결말이라고 하던가. 어떤 이야기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니까.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나오지만 그속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한다.

 

 

 

희선

 

 

 

 

☆―

 

“네 추리, 그거 정말이야?”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메르카토르는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듯이 웃었다.

 

“내 논리는 틀림없어. 난 정답률 백 퍼센트의 탐정이거든.”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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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까마귀 1
마야 유타카 지음, 하성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보기전에 여기 나오는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카인과 아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카인과 아벨은 성경(구약)에 나오는 사람이죠. 제가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고, 둘은 형제로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샘하고 미워하고 죽였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인류가 가장 처음 저지른 살인이랍니다. 남도 아닌 형제를 죽인 일이군요. 그 일과 관계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소개를 보니, 카인은 석달 전에 죽임 당한 아벨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지도에 없는 마을’ 노도에 간다고 쓰여 있더군요. 그때는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하고는 상관없는가보다 했습니다. 바로 생각을 바꾸다니, 이런 이름을 쉽게 쓰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서장’에 있는 어떤 낱말을 보고 그게 맞구나 했습니다. 이런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요.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좀더 잘 읽어볼걸 그랬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대충 보았거든요. 아벨을 죽인 카인은 어떻게 되었을지. 이 이야기를 생각하니, 어쩌면 형제(남자 형제뿐 아니고)는 오랜 옛날부터 샘하고 미워하는 숙명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형제가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사이 좋은 사람도 많이 있지요. 형제 사이가 좋으려면 부모가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이니까’ ‘동생이니까’ 하는 말은 할 수 있는 한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부모는 별 생각없이 한 말이고 둘을 차별한다고 느끼지 않을지라도 그런 말을 듣는 아이는 또 다를 듯합니다. 공평한 부모 노릇이 쉬운 게 아니겠습니다.

 

여섯달 전까지 아벨이 있었던 노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도에 없는 마을입니다. 노도라고 한 것도 옛날이고 지금은 마을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이 마을은 산으로 둘려싸여 있고 산을 넘어 바깥 세상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 이곳에서 믿는 신 오카가미가 산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먼저 이 오카가미에서 ‘오’는 길게 읽으세요. 본래 글자를 보니 커다란 거울大鏡이라는 뜻이더군요. 글자를 몰랐을 때는 오카, 가미라고 읽었습니다. 오카가미에서 가미(神)가 신인지 알았습니다. (책을 보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썼는데, 시간이 흐르고 문득 이 글자 신神(가미)이 다른 글자 뒤에 오면 ‘가미’가 아닌 ‘카미’라고 읽는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가미’라고 할 때도 있는지 이것은 잘 모르겠군요. 있다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닐 텐데요. 두 줄을 빼면 이런 말 안 해도 됐을 텐데.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다 이렇게 됐으니 그냥 둘까 합니다. 앞으로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아주 없지 않……) 이 마을에는 가가미가와, 가가미야마 곧 거울강과 거울산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 ‘거울’은 대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생각해보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카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말을 해서, 저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났습니다. 둘 다 읽었지만 잘 모릅니다. 가끔 거울은 다른 세계로 가는 길(장치)이 되기도 하잖아요. 오카가미가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것과 관계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여기에서는 피안이라고 했군요, 피안은 저세상이기도 한데, 색 때문일지도). 하지만 오카가미가 바깥 세상에 가지는 않습니다. 오카가미는 사람 모습을 하고 나타난 신, 현신인입니다. 마을에서 사람이 나가지도 않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을이 지금 세상에도 있을까요. 그 마을에 간 바깥 사람은 카인이 세번째였어요.

 

세상과 이어져 있지 않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바깥 세상 사람과 다른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마을에 사는 사람 거의 모두가 빨간색과 풀색 둘을 따로따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모두가 그러니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여기에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색을 보는 사람이 태어났어요(빨간색 풀색을 따로따로 볼 수 있는). 처음 그런 사람을 알았을 때는 깜짝 놀라고 다르게 여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신으로 만든 거죠. 오카가미라는. 사람들은 바깥 세상을 모르니 이곳이 다인 것처럼 살아가겠지요.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여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여기에서도 힘싸움이 있었습니다. 힘싸움이라기보다 땅싸움이군요. 지금은 동촌과 서촌으로 나뉘어 있지만 예전에는 남촌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오카가미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을 귀태라 하고 산채로 땅에 묻었다고 하더군요. 남촌에 귀태가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오카가미 자리라도 비어 있었다면 그 사람이 신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신은 둘일 수 없으니 하나는 사라져야 했지요. 사람은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키려고 합니다. 귀태가 그 세계를 부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겠지요. 오카가미가 사람을 죽이면 팔에 암녹색 반점이 나타나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귀태는 사람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폐쇄된 곳에는 광기 같은 게 있잖아요. 그 광기를 귀태가 나타난 집안에 푼 것은 아닐지.

 

다시 카인과 아벨로 돌아가서, 카인이 마을에 왔을 때는 해질 무렵으로 그때 갑자기 까마귀떼가 나타나 카인을 공격했습니다. 까마귀는 반년 사이에 열흘에 한번 저녁에 몰려와서 사람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까마귀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을 공격했는지(제가 놓친 건지도). 저는 까마귀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했거든요. 까마귀떼한테 공격받아 다친 카인을 구해준 사람은 서촌에서 큰 집안에 들어가는 센본 집안의 센본 가시라기였습니다. 가시라기가 카인한테 눈이 좋다는 말을 했을 때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끝나갈 때쯤 알게 되었습니다. 카인은 바깥 세상에서 왔으니 마을 사람과는 달랐던 거죠. 집중해서 보자고 했지만 많이 놓쳤습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지 어떤지 몰랐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받는 것은 아벨이었다고. 이 마을에도 오카와 깃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카인과 아벨처럼 나이는 한살 차이였어요. 아버지가 없어서 형 오카는 어머니를 도우려고 밭일을 했지만, 동생 깃카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오카는 오카대로 깃카는 깃카대로 어머니가 하는 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카는 어떤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오카와 깃카는 정말 이 마을 아이들이었을까요. 2권에 나오는 어떤 일을 오카가 하는 것 같았는데 옛날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했네요.

 

카인이 마을에 나타나고는 두 사람과 어린이가 죽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바깥 사람인 카인을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카인을 도와준 센본 집안에는 귀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는 센본 집안을 질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가지가 겹쳐서 마을 사람들은 센본 집안에 몰려가서 그 집 사람들을 죽였어요. 이때 마을 사람들은 사람을 죽인 카인을 센본 집안에서 숨겨주고 있다는 말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카가미는 왜 사람들을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갈까요. 신을 의심한 사람이 없어서는 아닐까요. 오카가미를 의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카가미가 절대신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 뜻은 다른 사람한테 전해지지 않고 오카가미는 그대로 있었죠. 처음에는 오카가미라는 사람 모습을 한 신이 나타난 일을 좋게 여겼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좀 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카가미가 독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고, 마을 사람을 통제하려면 이것은 꼭 있어야 한다가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이어져온다 해도 지금과 맞지 않으면 바꾸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말 미쓰다 신조의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보았을 때도 했군요. ‘붉은 까마귀’가 소설이 아닌 만화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만화에서는 좋은 쪽으로 흘러갈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담은 소설은 만화와는 다르군요. 어떻게 하는 게 나을지 생각해보라는 것일지도.

 

탐정 메르카토르는 왜 이 마을에 온 걸까요(탐정이라는 말은 안 했군요). 카인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마을에 와 보았는데 우연히 카인을 만난 걸까요. 메르카토르라는 이름은 옛날 지리학자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카토르 모습은 남다릅니다. 턱시도에 실크해트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어요. 저는 여기에서 처음 메르카토르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벌써 알고 있어서 메르카토르가 나타났을 때 어쩐지 반가웠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메르카토르는 카인이 잊어버렸거나 그런 척한 일을 말합니다. 카인은 자신이 아닌 아벨이 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늘 그 뒤만 좇았습니다. 어쩌면 카인은 이제 그 일을 끝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카인은 자기 자신을 찾았을까요.

 

 

 

*더하는 말

 

이것을 썼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서 보니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네요.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마을에서 믿는 신 오카가미와 그곳에 간 카인은 비슷한 운명이기도 하네요. 안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는 바깥에서 누군가 나타나서 바뀌게 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카인인지 메르카토르인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마지막에는 조금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죽다니 하는. 갑자기 이 마을에서 세 사람을 죽인 게 누구였더라 했습니다. 다행히 생각났지만 나중에는 잊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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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이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고, 본 다음에는 정리라도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리는 어렵겠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소설은 읽고 그것에 대해 쓰려고 하면 줄거리가 어느 정도 떠오르지만 이런 책은 조금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해 지구에서 사라져가는 말에 대한 책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보면서는 ‘응, 그래, 그렇구나’ 했지만, 막상 쓰려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사실 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말로나 시작했다면 조금이라도 썼을지도 모르는데 아쉽기도 하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는 재미있게 본 부분도 있다. 지난해에 본 그 책 각주가 뒤에 있어서 그것까지 안 보았던가. 지금 생각하니 그 책 각주는 한 꼭지가 끝난 다음에 있었다. 다른 것보다 그것을 떠올리다니. 그 책도 그렇고 이 책도 아주 많은 자료를 찾고 여기저기 다닌 다음에 썼을 것이다. 그냥 편하게 읽기만 한 내가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덜 들려면 잘 보아야 했는데.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이것만 알고 있었다. 그때 처음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어느새 100년이 넘었다. 인류가 커피와 함께 해온 시간은 1200년이라고 한다(1200년 조금 넘었을지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인스턴트지만 나도 커피를 마신다. 한때는 꽤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석잔만 마시려고 한다. 인스턴트를 마셔서 다른 커피는 잘 모른다. 커피전문점에도 거의 안 간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도 커피를 많이 마시는데 모든 사람이 커피를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카페인이 몸에 안 맞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카페인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잘 마시지 못해도 콜라를 마시는 사람 본 적 있으니까(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카페인을 먹지 않는 사람 없을지도). 나한테는 맞지 않는 차가 있다. 카모마일과 감잎차다. 그런데 녹차나 홍차는 괜찮다. 왜 카모마일과 감잎차가 맞지 않는다고 여기느냐 하면 그것을 마시면 어지럽기 때문이다. 녹차와 홍차는 괜찮은데 무슨 차이일까. 어쩌면 나한테 맞지 않는 차 더 있을지도. 그래도 커피는 잘 맞아서 다행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커피를 좋아해서 그것을 팔게 되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그것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겠지. 바리스타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인 지는 얼마나 됐을까. 이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미국도 좋은 커피를 마시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20세기 말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왜 미국일까.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를 만든 사람도 미국사람이다. 커피를 마시면 사람이 조금 달라질까. 약이나 술도 아닌데. 어쩌면 커피가 기분에 조금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커피를 가장 좋은 마약이라고 한 사람도 있다. 진짜 마약하고는 다르게 많이 위험하지 않으니 커피 마시는 거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오래전에 술에 빠져있던 유럽사람을 커피가 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술이 깨게 하려고 커피를 마시고 또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커피가 건강에 좋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안 좋다고 했다. 지금도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커피에는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으리라고 본다.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다면 괜찮겠지.

 

책에는 커피를 재배하는 곳 지도도 나온다(커피가 퍼져간 경로). 그것을 보면서 마약이 나오는 곳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커피나무도 마리화나처럼 열대지방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커피 열매가 생두가 되려면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커피를 파는 사람보다 돈을 적게 받았다. 커피 재배를 시작했을 때는 아프리카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원주민을 노예로 부렸다. 사실 이런 거 몰랐다. 아프리카 사람이 노예로 잡혀간 곳은 미국뿐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미국 노예제도는 학교에서도 배우고 영화, 책으로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커피농장 노예에 대한 말은 본 적 없다. 내가 다른 책을 좀 보았다면 더 빨리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노예제도가 없어지고는 이민자를 받아서 커피농장에서 일하게 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군인들이 모두 커피 중독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커피에 달걀 노른자를 넣어먹은 적이 있을 거다(맛 이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미국 사람도 커피를 마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커피에 여러가지를 넣었다고 한다. 그거 먹고 죽은 사람 없었을까. 커피가 모자랄 때는 커피와 치커리를 섞어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마실만 했을까. 내가 재미있게 본 것은 광고다. 한때 미국에는 커피 대용품이 나왔다. 그때 광고에서 커피를 마시면 신경쇠약에 걸린다는 말을 했다. 커피 대용품 포스텀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찰리 포스트다. 커피 대용품을 팔았지만 이 사람은 커피를 마셨다. 그게 좀 웃겼다. 얼마 뒤에는 디카페인 커피가 나와서 그게 잘 팔렸다. 처음에는 광고를 신문에만 실었을 거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커피를 말했다. 커피 회사가 방송을 후원했다. 대공황이 지난 다음에는 텔레비전으로 광고를 했다. 그런데 이때 광고에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있었다.

 

이 책 속에 나온 나라는 커피를 재배하는 곳과 커피를 많이 마시는 미국이다. 미국은 커피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도 했다(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생두가 미국을 거쳐서 다른 나라에 가기도 해서. 미국 CIA는 과테말라 쿠데타에 상관하기도 했다. 미국이 상관한 나라가 과테말라만은 아니구나. 오래전에 미국에서 나온 인스턴트커피(맥스웰하우스)가 지금도 나오고 있다니 신기하다. 그때와 지금 맛은 어떻게 다를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한테 맞게 나올 것 같다. 커피 때문에 죽은 사람도 많다. 지금도 커피 농장에서 일하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온 게 공정무역 커피인가. 이런 게 아니더라도 일하는 사람을 잘 대해주면 좋겠다.

 

 

 

식어가는 커피

식어가는 마음

식어가는 시간

 

다시 데우자

 

 

 

희선

 

 

 

 

☆―

 

커피에 섞어 넣던 것은 치커리만이 아니다. 그때 커피에 섞어 넣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놀랄 노자다. 아몬드, 벗풀, 아스파라거스 씨와 줄기, 구운 말의 간, 바베리, 보리, 너도밤나무 열매, 근대 뿌리, 회양목 씨앗, 고사리, 겨, 빵 껍질, 양조 부산물, 벽돌 가루, 태운 넝마조각, 나무 줄기의 돌기, 캐럽 열매, 당근, 병아리콩, 치커리, 국화 씨, 석탄재, 코코아 껍질, 컴프리 뿌리, 크랜베리, 건포도, 달리아 줄기, 민들레 뿌리, 대추야자 씨, 흙, 개먹이용 비스킷, 엘더베리, 무화과, 거킨, 구스베리(서양까치밥나무) 열매, 산사나무 열매, 들장미 열매, 호랑가시나무 열매, 마로니에 열매, 예루살렘 아티초크(돼지감자), 향나무 열매, 뽕나무 열매, 파스닙, 완두콩 깍지, 호박 씨, 퀘이커 그래스 뿌리, 쌀, 마가목 열매, 루타바가, 모래, 사사프라스, 톱밥, 슬로 열매, 해바라기 씨, 순무, 야생 완두, 밀, 유장, 나뭇조각 따위 다 열거할 수도 없다. 심지어 한번 우려냈던 커피 가루까지 다시 섞어 넣었을 지경이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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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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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0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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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4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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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0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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