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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 민들레 / 2025년 6월
평점 :

4점 ★★★★ A-
자유주의, 그 녀석은 이미 죽었다.
지금 이 땅에 서 있는 자유주의는 살아있는 시체다.
좀비(zombie)가 된 자유주의의 모습은 기괴하다. 볼품 사나운 커다란 날개가 오른쪽 어깻죽지에만 달려 있다(right wing). 자유주의 좀비는 공격성이 높다. 그들은 시민들의 머리를 힘껏 물어뜯는다. 자유주의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감염된다. 자유주의 좀비는 국가권력과 재벌 기업의 하수인이다. 그들이 주로 공격하는 대상은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민주 시민들과 노동권을 무시하는 기업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이다.
자유주의 좀비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수호하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자유주의 좀비들이 선호하는 장신구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차단하는 색안경이다. 색안경을 너무 오래 착용한 좀비의 눈은 빨갛게 독이 오른 상태다. 그들의 눈에는 바른말과 정직한 생각들이 빨갛게 보인다. 색안경이 자칭 파수꾼에게 지령을 내린다. 적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적이다. 자유주의 좀비는 빨강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은 빨강이 북한에서 왔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좀비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다. 자유주의 좀비는 자유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자유’는 튼튼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에 감염된 자유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흐물흐물하다. 죽은 자의 자유에서 쿠린내가 난다. 자유를 썩게 만들어서 자유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자유 병’이다. 자유 병에 걸린 자유주의자는 금융 위기와 대공황을 일으킨 주범인 시장경제를 옹호한다. 시장경제에 문제가 많은데도 이 자유 병 환자들은 정신을 못 차린다.
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과도한 복지 정책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의 원인이다. 복지 정책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이 꺾이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복지병’이 발생한다.[주1] 자유주의자들은 병든 경제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떠벌렸다. 그 치료제의 이름은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 치료제의 진짜 용도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재벌 기업들의 몸집을 키워주는 영양제였다. 자유주의자들의 공세에 완전히 밀린 좌파 또는 중도 좌파 정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제3의 길)’를 받아들인다. 자유주의자들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이미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병에 걸린 상태였다.
누렇게 병색이 짙은 자유주의자는 여전히 자유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손에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자유주의 치료제가 들려 있다.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건강한 자유의 모습이 완전히 지워져 있다. 건강한 자유는 자기 절제와 학습을 통해 개인의 덕성(德性)을 기르고, 공공선(common good)을 따른다. 자유 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자유주의자는 자유의 진짜 의미를 모른다. 자유를 모르는 자유주의 좀비는 ‘리버럴(liberal)’이 아니라, ‘러버럴(rubberal)’이다. ‘자유’를 스스로 지워서(rubber)[주2] 없애버린 살아있는 시체다.
죽은 자유주의는 완전히 실패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패트릭 J. 드닌(Patrick J. Deneen)은 자유주의가 항상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도 결국 실패에 이르게 된다고 진단한다. 그의 저서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는 자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유주의자들에게 보내는 사망진단서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유는 건강하고 싱싱했다. 전근대의 자유는 꾸준히 공부해야만 습득할 수 있는 교양이었다. 그 시절에 자유주의자는 없었다. ‘자유민(自由民)’이 있었다. 자유민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간을 뜻하는 ‘자유인’과 다른 개념이다. 자유민은 기독교 전통을 따르고, 고대(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속에 있는 지식과 문화를 존중하는 인간이다. 자유민이 습득하는 전통과 지식은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공동체가 존속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 되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자유민이 되기 위해서 자유 학예(liberal arts)를 배웠다. 자유 학예는 자유민이 배워야 할 학문과 예술이다. 이때가 자유주의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가장 찬란한 호시절에도 거뭇한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법. 자유 학예는 엘리트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었다. 노예는 자유를 거머쥘 자격이 없었다. 자유민은 돈벌이와 단순 반복 노동을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에 대한 정의와 자유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이 달라졌다. 근대에 이르면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아는 ‘자유주의자’가 등장했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민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민이 소중히 여긴 기독교 전통과 공동체 윤리를 거부했다. 자유주의자는 스스로 ‘자유인’이라고 선언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자유로운 존재이다.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몇십 년을 소모하면서 공부해야 해? 전통과 도덕은 자유를 방해한다. 자유인은 오로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저자는 전근대와 근대로 분류된 자유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자유와 자유주의자는 근대의 자유관을 닮았다.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득세할수록 교양에 속한 자유는 완전히 잊혔다. 자유주의의 역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유주의자들이 경험한 수많은 성공과 실패들의 집합체다. 자유 병에 걸린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로 성장하는 찬란한 여정만 본다. 지금도 여전히 자유주의자들은 화려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싶은 것들은 그동안 자유주의가 걸어온 평탄한 신 자유로가 아니다. 자유주의의 자멸을 재촉하는 ‘가시밭길’이다. 반민주적 국가권력, 재벌 기업,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의 후원을 제대로 받은 자유주의자들은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졌고, 자신들이 먼저 키워놓고선 오랫동안 방치한 문제점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유 병에 걸려 좀비가 되었다.
문제는 자유주의자들이 지나간 가시밭길에 모든 사람이 따라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좌파들까지도! 이 길을 한 번 지나간 사람들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타인을 짓밟고 지나간다. 신 자유로는 경쟁심을 부추긴다. 이 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무한경쟁에 몰두해야 한다. 신 자유로 걷기를 거부하거나 신 자유로를 빠르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쟁에 뒤처진 패배자로 취급받는다.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대학생들은 인문학으로 위장한 실용적인 학문이나 취업이 잘 되는 분야에 쫓아다닌다.
죽음에 이르는 병적인 자유주의는 재생 불가능하다. 자유 병 말기의 자유주의는 스스로 교정하는 힘이 부족하다. 저자는 자유주의를 넘어선 자유민이 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 공동체의 문화 활성화를 제안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오랫동안 갇혀버린 자유교육을 구출하자고 호소한다. 저자가 말한 자유교육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저자는 자유주의가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어도 자유 학예는 재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안하는 자유 학예는 기독교 문화 및 전통과 관련이 있다. 자유 학예가 중심이 된 자유교육의 목표는 문화를 전승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유 학예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올바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양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고 대부분 (적어도 한때는) 종교계 소속이었던 각종 기관이다. 이 기관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의 공동체와 모종의 연계를 맺으며 형성되었다. 대다수 기관이 추구한 자유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을 장소와 조상들로부터 완전히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통을 깊게 가르치고, 그들 믿음의 원천에 대한 지식을 심화하고, 그들의 신앙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공고히 하고, 그리하여 공동체의 안녕과 연속성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179~180쪽)
저자의 자유교육은 보수적이다 못해 폐쇄적이다. 지역주의가 짙은 자유교육은 비판 의식과 개방성이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학습 분위기를 조성할 수 없다. 폐쇄적인 학습 분위기 속에서 자란 사람은 생각이 경직될 수 있다. 생각이 경직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내집단) 내에 공유된 지식과 관습이 몸에 배어 있다.[주3] 결국 보수화된 사람은 외집단에서 형성된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외집단을 적대하는 감정을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면 극단주의자가 된다.[주4]
저자는 건강한 자유관을 가르쳤던 전근대의 종교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사려 깊을 정도로 건강했던 자유가 시간이 지나면서 독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변했듯이, 종교도 이데올로기로 변한다. 이데올로기가 된 기독교는 보수 우파 정치인들의 절친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까지 가세하면 국가권력을 지탱하는 완벽한 삼위일체다. 최악의 삼위일체는 이미 실현되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낮은 계속된다.

Thanks to books
[주1] ‘복지병’은 1970년대 영국의 불경기 시절에 등장한 단어로, ‘영국병’이라고 한다. 나는 자유주의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복지병’의 반대 개념과 같은 ‘자유 병’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주2] ‘rubber’는 지우개를 뜻하는 단어다.
[주3] 참고도서: 레오르 즈미그로드, 김아림 옮김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크로스, 2025년)
[주4] 참고도서: J. M. 버거, 김태한 옮김 《극단주의》 (필로소픽,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