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쉽지 않겠어.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문학]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을유문화사, 2009)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절반 정도 읽다가 갑자기 뇌에서 탄식의 한 줄 평이 삐져나왔다개인적인 체험》은 오에의 대표작이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024년 11월의 세계문학]

*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문학동네, 2006)

 




내가 기억하기로는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약칭 세속’) 독자이자 개인적인 체험을 추천한 정현정 님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년 11월의 세계문학 도서였던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힘겹게 읽었다고 했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을 선정한 나도 어려웠다.


개인적인 체험에 종종 비현실적인 묘사들이 나온다무엇보다도 소설 속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주인공 버드(bird)’뇌에 혹이 달린 첫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 도피형 인간이다괴로운 버드는 옛 여자 친구 히미코(火見子)를 만나고그녀와 섹스를 한다개인적인 체험을 먼저 읽은 대다수 독자는 버드와 히미코의 성관계 묘사가 장황하다고 지적했다그리고 과거에 히미코를 강간한 자신의 야만적인’ 행동을 반성하면서도 히미코에게 찾아가 정욕(情慾)을 채우는 유부남 버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의 반응도 있었다.




















* 오에 겐자부로, 박승애 옮김 오에 겐자부로: 사육 외 22(현대문학, 2016)

 

*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옮김 변신: 단편 전집(솔출판사, 2017)

 

*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변신. 시골 의사(민음사, 1998)

 




오에의 단편 소설 공중 괴물 아구이(단편 선집 오에 겐자부로: 사육 외 22에 수록되어 있다)개인적인 체험과 비슷한 설정의 작품이다실제로 이 두 작품은 1964년에 발표되었다. 아구이(アグイー)머리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영혼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D’라는 이름의 음악가. 소설에 묘사된 아구이의 모습이 특이하다. 아구이는 캥거루만 한 크기의 커다란 아기의 모습이고, 면으로 된 속옷만 입고 있다. D는 공중에 있던 아구이의 영혼이 가끔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구이가 보이지 않는다. 공중 괴물 아구이카프카스러운(Kafkaesque)’ 소설이다. ‘카프카스러운은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작품에서 유래된 용어. 카프카의 소설들에서도 황당무계하고, 불쾌한 묘사들이 나오는데, ‘Kafkaesque’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뜻한다.


















* 볼프강 카이저, 이지혜 옮김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아모르문디, 2023)




‘Kafkaesque’의 의미와 유사한 문학 용어가 그로테스크(grotesque). 그로테스크는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럽고, 괴이한 것을 뜻한다. 카프카의 소설들 역시 그로테스크하다고 할 수 있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 아주 유명한 그로테스크한 소설이다.





















* 오에 겐자부로 & 오자키 마리코

윤상인 & 박이진 함께 옮김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문학과지성사, 2012)



* 린즐리 캐머런, 정주연 옮김 빛의 음악: 장애 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이제이북스, 2007)





카프카(Kafka)’갈까마귀를 뜻하는 체코어 단어이기도 하다. 오에는 처음에 첫 아이의 이름을 가라스(からす: 까마귀)’로 정했다. 그러나 작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작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오에는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오에 히카리(ひかり: ). 까매질 뻔한 아이의 이름은 다행히 빛을 받으면서 환해질 수 있었다.


















오에는 도쿄대학 불문학과 출신이다. 그를 가르친 스승은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를 일본에 소개한 와타나베 가즈오(渡辺一夫)라는 불문학자다.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가득하다. 문학청년 오에는 스승이 번역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를 읽고,자유 검토의 정신을 처음으로 이해했다고 회상한다. 자유 검토의 정신은 학교에서 배운 상식을 자유롭게 조사하고 검토하는 태도이다. 자유 검토의 정신을 문학으로 습득한 덕분에 오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을 억압하는 일본 사회제도와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 오에 겐자부로, 이민희 옮김, 남휘정 해설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론의 결정판!(오에 컬렉션 1, 21세기문화원, 2024)


* 오에 겐자부로, 남휘정 옮김

읽는 행위: 부서지는 인간, 활자 너머의 어둠(오에 컬렉션 2, 21세기문화원, 2024)


* 오에 겐자부로, 정상민 옮김 쓰는 행위: 문학 노트(오에 컬렉션 3, 21세기문화원, 2024)





그래도 몇몇 독자들은 비판적인 지식인이 소설에 야한 묘사를 많이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에는 자신의 소설 속에 성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우리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때로는 애써 숨기거나 부정하는) 성적인 것에 대한 기괴한 열정을 소설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위가 성적인 열정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일상에 일어난 어두운 균열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에의 소설과 문학론을 주제로 한 글을 읽으면 세계문학 지도를 여러 장 만들 수 있다이 세계문학 지도만 있으면 오에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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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4-0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독서 모임의 멤버는 정해져 있지 않나요?
누구나 참여 가능?

stella.K 2025-04-0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쉽지 않겠어.’ ㅎㅎ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안 읽고 있다. ㅠ
그런데 오에 되게 좋은가 보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약칭 세속’) 도서 선정 투표에 총 20명이 참여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책을 고민 없이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문학]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을유문화사, 2009)




가장 많은 득표수는 9였습니다. 9표를 받은 책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의 장편소설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개인적인 체험를 추천한 세속 독자는 정현정 님입니다. 현정 님은 작년에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를 추천했던 분입니다. 9월 말에 진행된 <세계문학 속으로>의 표제는 당신의 에르노였습니다.[주] 각자가 읽은 에르노의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속이 읽는 일본 문학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20247월의 세계문학)에 이어서 두 번째입니다.











올해는 오에 겐자부로가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개인적인 체험1964년에 발표된 오에의 장편소설입니다. 장편, 중편, 단편소설들을 아우른 오에의 초기작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1963년에 오에의 아들 히카리(大江光)가 태어났습니다. 히카리는 발달장애가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히카리를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종용했지만, 오에는 수술을 통해서 히카리를 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듬해에 나온 개인적인 체험장애인의 아버지로서 살아가게 되는 작가 본인의 모습이 스며든 자전적 소설입니다.

 

현정 님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보여서는 안 되는) 문제로 취급되는 장애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어서 개인적인 체험을 추천했습니다.

















* 장 폴 사르트르, 임호경 옮김 구토(문예출판사, 2020)

* 장 폴 사르트르, 방곤 옮김 구토(문예출판사, 1999)




지난주 토요일에 개인적인 체험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 소설은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라기보다는 유럽 작가의 소설처럼 느껴졌어요. 오에는 어렸을 때부터 서양 문학 작품들을 즐겨 읽었습니다. 대학 시절 불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논문 주제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였어요. 개인적인 체험에 주인공인 버드(Bird)가 구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연상시킵니다.



















* [절판]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 윌리엄 블레이크, 서강목 옮김 블레이크 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 [절판]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옮김 천국과 지옥의 결혼(민음사, 1990)




버드의 옛 여자 친구 히미코(火見子)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집 천국과 지옥의 노래지옥의 잠언에 있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오에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블레이크의 시를 원문으로 자주 읽었다고 합니다. 블레이크는 오에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작가입니다. 오에의 소설을 읽기 전에 오에의 문학 강연을 모은 읽는 인간을 먼저 읽는다면 서양 문학이 녹아든 오에의 문학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책에 오에와 블레이크의 문학적 연관성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오에가 199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자,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오에의 작품들이 우후죽순 국내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반일 정서가 지금보다 심했음에도 국내 작가와 지식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핵무기 개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오에를 민주주의자로 평가했습니다. 90년대 출판계를 주름잡았던 출판사 고려원24권으로 구성된 오에 겐자부로 소설 문학 전집을 기획하여 출간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포함한 몇몇 작품은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 외 나머지 작품들은 절판되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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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3-2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가 됐구만. 좀 어렸잖나? 난 노벨문학상 알러지가 있는지 무조건 다 어려운 줄 알아. ㅋㅋ 지난번 채식주의자도 겨우 읽었다. 😂

cyrus 2025-03-31 22:29   좋아요 0 | URL
역시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은 어렵네요.. ㅎㅎㅎ 그래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흥미로워요. ^^

카스피 2025-03-2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에 겐자부로 전집중 몇권이 있는데 SF경향이 있는 작품만 수집하다보니 다 모우지 못한 것이 좀 아쉽더군요.

cyrus 2025-03-31 22:30   좋아요 0 | URL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에 고려원 오에 겐자부로 전집 3권이 있어요. 두 권은 타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고, 나머지 한 권은 재출간되지 않은 작품인데, 이 한 권이 가격이 제일 비쌉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5-03-2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 체험, 좋았던 작품요!

cyrus 2025-03-31 22:33   좋아요 1 | URL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계속 읽고 싶어져요. 오에의 문학 취향을 알고 나니까 소설 내용을 조금 이해가 되더라고요. ^^
 




이번 달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모임 일정이 한 주 앞당겨졌습니다. 금요일인 내일이 바로 모임 날인데요. 원래대로라면 모임 날은 다음 주 금요일입니다. 그런데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3월의 세계문학 도서 책상은 책상이다를 추천한 조약돌 님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날짜가 변경되었어요.

 

책상은 책상이다가 아주 얇은 책이라서 금방 다 읽었지만, 문제는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문학 도서를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정말 책 한 권 고르기가 정말 어렵군요.

 

그래서 저는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독자님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다음 달 책은 투표로 해서 결정하자고요. 우리뿐만 아니라 모임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도 참여하는 투표로요.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독자님들 각자가 책 한 권을 고릅니다. 투표 이벤트를 준비하는 저를 제외한 독자들은 다른 분의 추천 도서를 모릅니다.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저는 독자분들의 추천 도서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투표 창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의 알라딘 블로그와 저의 인스타그램 계정

 

2. 오프라인 모임 앱 소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모임에 가입된 분들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제가 참석하는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수레바퀴와 불꽃> 카톡 단톡방 투표

 

이 세 가지 투표 창구의 투표수를 합산해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책이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문학 도서로 선정됩니다.


 

총 여섯 권의 후보 도서를 소개하겠습니다.

 




[후보 도서 1]






토머스 드 퀸시

김석희 옮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시공사, 2010년)





[후보 도서 2]





아사이 료

민경욱 옮김 

정욕: 바른 욕망

(리드비, 2024)





[후보 도서 3]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을유문화사, 2009)





[후보 도서 4]





아서 C. 클라크

김승욱 옮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황금가지, 2017)






[후보 도서 5]





실라 헤티

구원 옮김

마더후드

(코호북스, 2024)





[후보 도서 6]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박세연 옮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어크로스, 2024)






알라딘 블로그에는 투표 기능이 없어요. 그래서 댓글(비공개 댓글 포함)로 한 권 또는 두 권 이상의 책 제목을 남기면 됩니다. 여섯 권 모두 고르셔도 됩니다.

 

댓글 투표 기한은 3월 21일 금요일 자정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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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3-20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흥미롭고 좋은 것 같긴한데 난 읽는다면 정욕과 마더 후드를 읽을 것 같고, 하나만 고르라면 정욕을 먼저 읽을 것 같다. 그 정욕이 그 정욕이 아니었구만. 그래서. ㅋ
난 요즘 그믐이란 곳에 가고 있는데 거기엔 벽돌책 깨기 모임이 있더라고. 이번 달엔 권보드래의 3월 1일의 밤을 읽고 있는데 700페이지 내외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나마 이 책은 얉아서 첨 참여해봤어. 내가 이 나이에 백돌책 깰건 아니잖아. 근데 그냥 할만해. 다음 달엔 무슨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데 중고책 있으면 참여해보려고. ㅋㅋ

cyrus 2025-03-20 21:58   좋아요 0 | URL
댓글이 많아야 5개 달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사람들 투표 참여가 저조하네요.. ^^;; 책 소개를 안 해서 그런 걸까요?

<정욕>과 <마더후드>에 투표한 것으로 할게요. 그런데 <정욕>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을 선택한 분들이 많아요. ㅎㅎㅎ

그믐이라는 독서 모임, 인스타그램에서 본 것 같은데, 어떤 모임인지 궁금하네요. ^^

2025-03-2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5-03-23 23:13   좋아요 1 | URL
복수 투표하기를 정말 잘했어요. 복수 투표 방식 없었으면 득표수가 더 적었을 거예요.. ^^;;
 




훌쩍 지나가버린 토요일의 날씨는 차갑지 않았다. 서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무튀튀한 잔설(殘雪)이 다 녹을 정도로 그날은 미온(微溫)했다. 그러나 세상은 미온(未穩)하다. 용산의 대역죄인이 풀려났다. 탄핵을 열심히 외친 광장이 한풀 꺾였다탄핵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새긴 독자들의 마음도 광장이다. 대역죄인의 석방 소식에 격분한 독자들의 눈에 ()가 맺혀 있다. 활활 타오르는 독자들의 눈을 마주친 책은 소심해진다. 뜨거워진 독자들의 눈에 책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화를 삭인 독자들은 평소처럼 책을 읽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어지러운 마당에 한가하게 책 읽을 때냐고 째려보면서 말한다. 그들은 모른다. 점점 혼탁해지는 세상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독자들이 왜 책을 읽는지를.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찬쉐, 강영희 옮김 

격정세계》 (은행나무, 2024년)



2025년 3월 8일 토요일, 오후 2시~4시

장소: 투썸플레이스 을지로입구역점



<달궁>을 만든 독자들

삽하나, 헤르메스, 마욤, 레삭매냐, 시진,

습습, 숨, 대장물방울, Jarrett, 최해성(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서 모임 <달의 궁전>(달궁) 올해 첫 번째 책은 중국의 작가 찬쉐(殘雪)의 장편소설 격정 세계. 격정 세계에 나오는 인물들은 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독자들이다. 이들에게 책은 공기요, 밥이요, 사랑이다격정 세계에 나오는 독자들은 비둘기라는 이름의 북클럽의 정규 회원이다. ‘비둘기모임에 한 번 참석하게 되면 문학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소설 속 독자들은 유독 문학을 좋아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한마(寒馬). 한마는 자신보다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샤오쌍(小桑)을 만나면서부터 소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샤오쌍의 소개로 비둘기모임에 참석한 이후부터 한마는 읽는 인간에서 글 쓰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한마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격정 세계독서와 글쓰기를 예찬하는 소설이다. 진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글쓰기도 좋아한다글을 쓰는 모든 독자는 작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천쉐는 이 세상에 글 쓰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샤오쌍과 한마는 작가 찬쉐의 분신이다. 책을 잘 읽는 샤오쌍도 글쓰기의 장점을 강조한다. 



 “우린 진심으로 사랑에 휩쓸리고자 하지. 우리가 읽기와 쓰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사랑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읽기와 쓰기는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게 다른 점이지. 바로 이 때문에 인류는 문학을 발명했어.”


 (326)




격정 세계를 추천한 헤르메스 님은 살기 팍팍한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고, 또 문학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헤르메스 님을 제외한 달궁 독자들은 격정 세계를 비판하는 견해를 쏟아냈다(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도 비판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레샥매냐 님(알라딘 서재 마을에 북 리뷰를 쓰고, 독서 모임 전날에 격정 세계》 리뷰[주]를 남긴 그 레삭매냐 님이다)은 소설 속 나오는 사람들 모두 문학에 미친 자들이라고 평가했다. 문학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발전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달궁> 독자들은 비둘기북클럽 모임 회원들이 커다란 갈등 없이 화목하게 지내고, 결국 서로 사랑해서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단조롭다고 지적했다. <달궁> 모임장 삽하나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격정 세계는 그야말로 없는 세계(utopia)’개인의 삶을 구원하는 문학을 지나치게 예찬하는 인물들이 부담스럽고, 오히려 기괴하다. 소설에 나오는 동물들은(검은 고양이, 표범, 새 등)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격정 세계를 비판하는 <달궁독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질수록 헤르메스 님은 차분하게 격정 세계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책의 매력을 지키려고 했다독서 모임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머리를 굴리던 나는 <달궁독자들이 치고받는’ 대화를 정말 흥미롭게 관전했다이래서 내가 <달궁>을 안 나올 수 없다니까.



















[(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

* [절판] 안토니오 그람시, 린 로너 엮음, 양희정 옮김, 감옥에서 보낸 편지(민음사, 2000)


[ROUTLEDGE Critical THINKERS 26]

* 스티브 존스, 최영석 옮김, 안토니오 그람시 비범한 헤게모니(앨피, 2022)

 

* 마이크 곤살레스 & 이언 버철 외, 이수현 옮김,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마르크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책갈피, 2015)





헤르메스 님은 비둘기북클럽의 성격을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내세운 개념인 진지전(War of position)’으로 설명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세운 사회주의 정치인이다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탄압을 받아 옥중 생활을 한 그람시는 감옥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편지를 남겼다.









그람시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장악한 이탈리아에 혁명이 성공하려면 부르주아 기득권과 부르주아 문화에 장기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러시아 혁명처럼 정면으로 맞서서 신속하게 기동전(war of maneuver)’을 수행하면 혁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1905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지켜본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의 위력을 습득하면서 그들의 투쟁 전략을 예상한다. 따라서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은 참호 속에 숨어서 싸우듯이 진지전을 펼쳐야 하며, 자본주의에 맞서서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비록 혁명이 달성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자본주의의 참호들을 하나하나씩 점령하면 부르주아 기득권의 헤게모니(hegemony, 지배권)는 무너진다. 이때 사회주의자들이 기동전을 펼칠 기회가 생긴다.


비둘기북클럽은 문학과 독서를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의 검열 방식에 정면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이다비둘기’ 북클럽의 일차 목표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둘기북클럽 회원이자 샤오쌍의 직장 동료인 샤오마(小麻)문학 읽기가 인간을 각성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을 감염으로 비유한다.



 “문학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난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변화도 이끌어냈어요. 이것이 바로 문학의 감염력이죠.”

 

(464)



비둘기’ 북클럽 회원들의 문학 예찬은 책 밖에 있는 독자들에게도 계속 강조한다. 비둘기’ 북클럽 회원들의 신조는 문학에 등 돌린 (소설 속 허구의 세계와 현실의)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건전한 구호독서와 문학에 제대로 미친 독자들이 많으면 독서와 문학의 강점을 무시하는 냉소주의에 맞설 수 있다.




















[바벨의 도서관 24]

* 포송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해제), 김혜경 옮김, 요재지이(바다출판사, 201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픽션들(민음사, 201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알레프(민음사, 2012)

 



 






























[보르헤스 선집 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불한당들의 세계사(민음사, 1994)

 

[보르헤스 선집 2]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민음사, 1994)

 

[보르헤스 선집 3]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알렙(민음사, 1996)

 

[보르헤스 선집 4]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 송병선 옮김, 칼잡이들의 세계사(민음사, 1997)

 

[보르헤스 선집 5]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셰익스피어의 기억(민음사, 1997)




찬쉐는 중국보다는 서구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문학 세계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Borges) 견줄 만하다고 평가받는다. 보르헤스는 허구와 현실을 철저히 구분 짓는 경계를 허문 이야기꾼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에 나오는 세계와 인물들은 비현실적이다. 헤르메스 님은 찬쉐의 문학 세계에 한 축을 담당하는 환상성 포송령(蒲松齡)의 기담 소설집 요재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보르헤스는 요재지이에 실린 기담을 ‘사실주의(realism) 소설이라고 했다. 그는 왜 환상 소설을 실제와 같은 이야기라고 말한 것일까? 보르헤스에 따르면 중국 독자들은 미신을 믿기 때문에 환상적인 이야기를 실제의 사건으로 이해하면서 읽는다. 나를 포함한 <달궁> 독자들은 격정 세계비현실적이야기로 느꼈지만, 반대로 중국 독자들은 현실적인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허구적인 이야기가 그렇게도 재미있냐면서 비아냥거린다심지어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현실 도피자로 규정한다.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눈동자와 머릿속에 유튜브만 있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유튜브가 전부인 그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그래서 현실을 똑바로 보려는 의지력, 즉 생각하는 힘이 책을 읽는 독자보다 부족하다. 유튜브는 알기 쉽게 세상물정을 알려준다. 유튜브는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싶지 않은 현실 도피자들의 낙원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을 때가 있다. 유튜브에 중독된 사람은 유튜브의 거짓말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유튜브가 말하지 않는 진짜 현실을 ‘소설’이라면서 무시한다유튜브에 갇힌 사람이 생각하는 소설은 가짜’ 또는 ‘거짓’이이렇게 소설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으니 문학을 좋아할 리가 없다.



책을 즐겨 읽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멀리하면서 유튜브에 매달린 삶은 불행하다.






[] <문학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레삭매냐 (202537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723405103/16284512




레삭매냐 님은 <달궁> 모임에 오실 때마다 책에 대한 정보를 간략히 설명한 글A4 용지에 정리해서 <달궁> 독자들에게 나눠 준다. 격정 세계모임에 참석한 독자들을 위해 레삭매냐 님은 소설 속 등장인물을 소개한 글(마욤 님이 찍은 첫 번째 사진에 나온 A4 용지)을 작성했다독서 모임 후기를 쓰는 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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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 2025-03-10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즐거웠던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읽을 때는 답답했는데 같이 모여 얘기하니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다음에도 또 책얘기 같이 나눠요ㅎ

cyrus 2025-03-17 06:57   좋아요 0 | URL
시진님이 사주신 케이크 맛있었고, 잘 먹었어요. 다음 모임 후기를 쓸 때는 간식도 언급하겠습니다. ^^;;

삽하나 2025-03-10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를 통해 글을 쓴다‘던(p.317) 샤오웨의 격.정.을 떠오르게 하는 멋진 후기/감상/비평 잘 읽었습니당! 헤르메스님 말씀이 멀리서 잘 안 들려서 시진님 필기를 컨닝하려다 못 했는데 ㅋㅋㅋ 정리해 주신 내용을 보니 아! 하고 기억이 나네요. 소중한 후기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

+
뒷풀이 때 추천해 주신 책 좀 알려주십쇼... 장바구니에 넣어 뒀는데 실수로 죄다 날아갔어요 ㅠㅠ

cyrus 2025-03-17 07:02   좋아요 0 | URL
* 레삭매냐님 추천 도서: 알베르 카뮈 <계엄령> (녹색광선, 2025년)
* 헤르메스님 추천 도서: 예니 에르펜베크 <카이로스> (한길사, 2024년)
* 홍산님 추천 도서: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까치, 2014년)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

blanca 2025-03-11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의견을 펼치고 서로 주고 받는 장면, 그리고 생생한 관전기 다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

cyrus 2025-03-17 07:03   좋아요 0 | URL
모임 후기 한 편 다 쓰고 나니까 마음이 뿌듯하네요. ^^

그레이스 2025-03-25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모임 좋아보여요.
좋은 책으로
오래토록 함께 하시길!
독서의 격정세계!
레삭메냐님도 같은 동아리시군요!^^

cyrus 2025-03-17 07:05   좋아요 1 | URL
헤르메스님이라는 분도 2010년 초중반 시기에 알라딘 블로거로 활동했고, 추리소설 리뷰를 많이 쓰셨어요. ^^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 문학

차학경 《딕테

김경년 옮김, 현대문학 (2024)







2025년 2월 28일 금요일저녁 8시~10시 20분

장소: 인더가든



<세계문학>을 만든 독자들

조약돌, 향기,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카페 <small talk>의 주인장 김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김 사장님은 철학책 독서 모임(니체, 미셸 푸코, 레비나스)을 함께 했던 분입니다. 우리는 고요한 어둠이 채워진 <small talk>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말을 주고받는 중에 김 사장님은 본인이 선호하지 않는 독서 모임을 얘기했습니다. 김 사장님은 참석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확인하는 대화가 많은 독서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런 모임에 책은 뒷전입니다. 결국 모임 참석자들의 돈독한 관계를 확인하는 사교 모임이 되고 맙니다. 김 사장님의 말에 저도 이런 유형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쑥 걱정이 들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꾸리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지난 제가 다른 독서 모임을 비판할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책 딕테》는 독자들이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에요. 독서 모임을 만들기로 결정한 독자들은 딕테》를 읽는 내내 무엇을 얘기하면 좋을지 생각을 엄청 많이 했을 거예요(그리고 본인의 결정을 후회했을 겁니다)책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그 책이 어떤지 얘기할 수 없습니다. 책과 친해지지 못한 독자들은 독서 모임에 나오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로 일관합니다. 어떤 독자는 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김 사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딕테를 다시 펼쳤어요. 이틀 후에 있을 독서 모임에 겉도는 독자들이 한 분이라도 나오지 않게 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2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는 조약돌 님과 향기 님입니다. 두 분과의 인연은 2년 전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서 시작되었어요. 만나자마자 두 분은 책이 어렵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두 분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었습니다독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제가 고른 책이 어렵다,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사소한 감정이 아닙니다. 감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에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스며 들어 있어요. 저는 책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눈여겨보면서 다음 독서 모임을 위해서 함께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르려고 합니다.


딕테는 차학경 작가의 자서전적인 글입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독자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시도합니다. 역자와 작가의 친오빠가 쓴 해설은 차학경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재구성한작가의 시선으로 딕테를 읽는다고 해서 딕테에 친근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 달 전인 1<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을 마무리할 때 딕테를 읽을 때 차학경 작가를 찾기 위해서 읽지 말고, 그 글에서 드러내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읽어보라고 제안했어요. 이때 제가 했던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독자들이 있다면, 독서 모임을 능숙하게 진행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딕테를 쉽게 읽는 저만의 방식을 소개한 글 한 편 쓸 걸 그랬나 봐요.


딕테77쪽에 프랑스어로 쓴 문장이 나옵니다.

 

 


방출하라. Ne te cache pas. Révéle toi. Sang. Encre.


 


프랑스에서 태어난 말을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감추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라. 혈액. 잉크.” 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딕테와 친해지면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발견했어요딕테》는 독자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읽는 책이라고 확신했어요.


저는 향기 님에게 <세계 문학> 2월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부추겼어요. 향기 님은 러시아어를 전공했어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외국어 원서를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차학경 작가는 어린 시절에 거대하고 낯선 땅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을 제2 고향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 보려고 했지만, 모국어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외국어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차학경 작가는 영어를 미국인처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을 입으로 흉내 내는 짓(딕테, 13)’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딕테를 읽은 향기 님이라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작가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할 거로 생각했어요. 향기 님은 중국어의 성조(聲調, tone)를 최대한 정확하게 내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서서 중국어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어요. 거울에 비친 입 모양을 확인하면서 성조를 연습했던 거죠.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2025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김재홍 옮김 · 해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그린비, 2023)




딕테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두 분의 근황과 딕테감상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해서 독서 모임을 일찍 마무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딕테를 가방에 넣고, 제가 참석하지 않은 ‘다른 독서 모임의 책을 꺼냈어요. 그 책은 바로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명상록이었어요. 이 책이 올해 첫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였어요


<일글책>이 고른 번역본은 김재홍 번역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명상록의 원제입니다. 마르쿠스는 연약한 자신의 참모습을 돌아보기 위해 잉크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어요역자 김재홍 교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단체인 정암학당의 공동 이사입니다.


지난달 <세계 문학> 모임이 끝난 후에 조약돌 님은 저에게 명상록에서 자살을 긍정하는 대목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자살에 대한 철학자 마르쿠스의 견해를 어떻게 보는지 물으셨어요그때부터 김재홍 교수의 명상록을 읽기 시작했어요마르쿠스는 스토아학파 철학자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자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정의하는 자살은 이성에 맞는 벗어남입니다. 조약돌 님은 스토아 철학적인 자살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우리는 스토아학파의 자살할 권리를 주제로 철학적인 대화를 하면서 모임을 마무리했어요.






 

 











*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마티, 2021)





딕테함께 읽어야 하는 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책이 한국계 이민자 출신의 미국 작가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마이너 필링스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학경 작가의 죽음을 이르게 한 성폭력 및 살인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미국 사회와 동료 예술가들의 미온적인 반응(차학경의 죽음을 예술적으로 미화하는 태도)을 지적하면서 미국의 유색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고발합니다


마이너 필링스210딕테의 내용 일부가 언급된 문장이 나옵니다. 차학경 작가는 딕테에 미국 하와이에서 이주 한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과 독립운동가 윤병구(1880~1949)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탄원서(편지)를 인용합니다.



 




 차(학경)딕테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번역하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의 사진에 설명 붙이기를 거부한다. 독자는 나름대로 단서를 연결해 퍼즐을 풀어가는 탐정이 된다.


(마이너 필링스중에서, 210)

 


루스벨트라는 성()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두 명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이승만과 윤병구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는 1905년에 써졌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책 속에 있는 오류와 오역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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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3-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에 독서 모임 하시는군요. 차학경 <딕테>는 소개를 읽어보고 난해할 것 같았는데, 모임도서로 읽으면 각자의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여러 책들을 구매하거나 고르다보면 늘 비슷하거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게 됩니다만, 모임으로 정해진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양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25-03-03 16:49   좋아요 1 | URL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하는 독서 모임이에요. 사실 독서 모임을 주말에 하고 싶은데, 이러면 주말에 개인적인 일(독서, 글쓰기, 서울 여행)을 할 수 없어서 금요일 저녁에 하게 됐어요. ^^

페크pek0501 2025-03-06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에서 책 얘기가 끝나고 나서 멤버들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게 좋던데요. 남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남들 얘기에 경청하는 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은 심리 상담사였는데 많은 사례를 들려 줘서 견문 넓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cyrus 2025-03-10 06:33   좋아요 1 | URL
내가 혼자 책을 읽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알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독서 모임 후기를 쓸 때 모임에 참석한 분들의 견해를 많이 써보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