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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평점
4점 ★★★★ A-
코스모스(cosmos)는 여름 바람이 식어가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원래 ‘질서’ 또는 ‘조화’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꽃보다 과학’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스모스는 ‘질서정연한 우주’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덕분에 그리스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시들지 않았다(꽃 이름은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꽃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대중이 과학과 친해지길 바란 칼 세이건은 1980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출연했다. 브라운관을 채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종이 위에 피어나 한송이의 책이 되었다. 세이건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코스모스의 자녀’라고 말했다.[주1] 우리는 우주의 별에서 왔다. 유기물이 들어 있는 별 먼지들이 모여서 ‘창백한 푸른 코스모스(pale blue cosmos)’, 지구가 피어났다.[주2]
과학자들은 ‘코스모스 우주론’을 매우 좋아한다. 코스모스 우주는 완벽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가 없는 우주는 아름다운 예술과 같다. 코스모스 우주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눈여겨 본 과학자가 피타고라스(Pythagoras)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덕은 ‘조화(harmonia)’이며 좋은 것도, 신(god)도 ‘조화’라고 했다.[주3] 우주에 질서를 부여한 존재는 ‘조화로운 신’이다. 피타고라스는 수(數)를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했다. 피타고라스는 코스모스 우주가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상상했다. 피타고라스에게 수와 수학은 신이 만들어낸 우주를 듣기 위한 보청기였다.
세이건은 중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서양 과학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1,000년이나 지속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표현한다. 이 기간에 종교는 과학을 이단 학문으로 규정하여 탄압하고 학살했다. 교황과 성직자들에 의해 쫓겨난 과학은 학문에 관심이 많은 이슬람 국가로 도피했다. 무슬림 과학자들은 ‘이방의 나라’ 그리스에서 온 과학을 보듬어주었다. 세이건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특히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로마가톨릭이 장악해 버린’ 중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가 과학을 박해했다고 믿는다. 종교의 폐해를 고발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과학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다. 로마 교황청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확신한 갈릴레이를 이단 심문소로 소환했다. 처형과 종신형을 겨우 피한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 처분을 받았다. 종교를 비판한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천 년 동안 죽어 있던 코스모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피었다고 주장했다. 계몽주의자에게 과학은 코스모스의 씨앗이라면 이성은 코스모스를 활짝 피게 해주는 거름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의 관점으로 과학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중세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중세 지식인들의 서재에 고대 그리스 과학이 자취를 감춘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갈릴레이 재판 사건’은 반종교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갈릴레이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와 친분이 있는 성직자들은 과학을 배척하지 않았다. 로마가톨릭은 과학의 후원자였다. 비록 가톨릭이 선호하는 과학은 천동설(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설)이었지만, 성서의 교리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 과학 이론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두려워한 세력은 가톨릭이 아니라 대학교수가 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와 추종자들은 실험과 관측을 건너뛴 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지식과 상반되는 견해를 무시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과학의 발전을 막은 주범은 종교가 아니라 지식의 수정을 거부한 보수적인 과학자들이었다.
과학 친화적인 종교는 코스모스 우주론을 활짝 피게 해준 거름이다. 교회는 과학의 정원이 있는 경건한 온실이었다.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들은 과학의 정원에 마음껏 드나들었고, 성직자들은 코스모스를 소중히 보살피는 정원사가 되었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필 무렵에 여성은 온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과학과 종교는 합심하여 여성이 과학의 정원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했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신, 물리학, 젠더 전쟁》은 과학과 종교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란 ‘코스모스’를 보여준다. 이 책을 쓴 마거릿 워트하임(Margaret Wertheim)은 종교가 없었으면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신이 만든 코스모스 우주를 이해하고 싶어서 과학을 연구했다. ‘조화로운 신’에 지나치게 심취한 피타고라스는 훗날 ‘피타고라스학파’로 알려진 비밀스러운 공동체를 이끄는 교주가 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소멸하여 사라진 뒤에도 질서가 잡힌 자연 세계를 탐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성경을 열심히 읽은 중세 과학자들은 신을 과학자 또는 수학자로 인식했다. ‘중세의 가을’이 최고조로 무르익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자 ‘그리스도적인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피타고라스의 정신을 물려받은 과학자였다. 그의 천문학은 ‘수학적 창조주’인 신을 위한 학문이었다. 조화로운 우주를 좋아한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천체의 궤도가 완벽한 원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의 과학이 신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지식이 되기를 바랐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과 같이 종교에 협력한 과학자들을 ‘사제(司祭)’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과학의 사제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리학과 수학은 남성 과학자들의 텃세가 유독 심한 과학 분야이다. 저자는 가톨릭-기독교 남성 중심의 과학을 ‘수학적 인간(Mathematical man)’으로 의인화한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언어학자 데버라 캐머런(Deborah Cameron)은 남성 지배 사회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 남성은 정권이나 지도부를 독점하거나 지배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서 여성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지닌다.
*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거나 통제한다.
* 남성의 활동, 직업, 문화적 산물, 사상, 지식은 여성의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데버라 캐머런, 강경아 옮김, 《페미니즘》,
신사책방, 2022년,
24~25쪽)
종교의 권위가 약해졌어도 남성 지배 사회는 건재했다. 남성 계몽주의자들도 수학적 여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권 신장에 반대한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감성’에 손쉽게 지배당하는 여성은 과학을 이해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여성에 대한 수학적 남성의 편견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되었고, 남성 과학자들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워 수학적 여성의 과학적 열망을 억눌렀다. 계몽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남성 과학자들은 영국 왕립학회를 설립했다. 그런데 왕립학회는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립학회의 초창기 회원들은 과학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독신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학적 여성은 독신녀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성은 결혼하지 않으면 경제적 자원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적 인간’은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과학의 산물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교회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 신이 만든 우주를 규명하는 일이 숙원이었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유명해진 덕분에 물리학은 과학의 꽃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을 하나로 통합해서 설명하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이다. 과학의 정원은 연구소와 천문대 그리고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발전소에 있다. 저자는 만물이론을 알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의 열망 속에도 ‘우주의 신적인 원리’를 이해하려는 종교적 기조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들은 만물이론 연구에 쓸 예산을 많이 받길 원한다. 저자는 과학이 대중의 실생활에 동떨어진 학문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결국 대중은 과학을 어렵고 지루한 학문으로 인식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익숙하지 않은 과학자들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다. 수학적 여성들이 물리학에 진입할 수 있는 문턱은 더 높아진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순결과 순정이다. 하지만 코스모스 우주를 좋아하는 과학은 순수하지 않다.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과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정의한 과학은 ‘지저분한 과학’이다. 지저분한 과학은 종교를 포함한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학문이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은 1995년에 출간된 책이다. 원서 제목은 ‘피타고라스의 바지(Pythagoras’ Trousers)’다.[주4] 저자는 종교와 과학계의 여성 차별이 불가분 관계임을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톺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과 같은 이분법이 여성의 물리학 진출을 막는 문화적 관성이라고 지적한다(352쪽). 저자가 과학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수학적 인간에는 ‘수학적 남성’과 ‘수학적 여성’이 있다. 과학 연구에 참여해야 하는 수학적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을 전제한다면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의 한계를 답습하게 된다. 저자는 수학을 연구하는 여성의 역량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보는 성차(性差)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의 생물학자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349쪽). 파우스토스털링은 남성중심주의와 이성애주의(heterosexism)를 옹호하는 생물학을 비판한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다. 이성애주의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성애주의의 문제점은 남녀 간의 성차를 강화하고, 이성애주의의 기준으로 ‘비정상’에 속한 동성애와 젠더퀴어(genderqueer)를 차별한다. 파우스토스털링은 성차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개의 성이 아닌 ‘다섯 개의 성’을 제안한다.[주5]
‘수학적 남성’과 ‘수학적 여성’만 존재하는 과학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든다. 이성애주의의 잔재가 남은 과학은 젠더 이분법에 속할 수 없는 성소수자를 희미하게 만든다. 이런 과학은 성소수자를 비정상적으로 취급하는 우파 기독교의 우군이 된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성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과학과 종교는 ‘잘못된 만남’이다.
[주1]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년, 477쪽.
[주2] 칼 세이건,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2001년.
[주3]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함께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나남출판, 2021년. 「8권 피타고라스학파」, 175쪽.
[주4]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은 1997년에 원서 이름을 그대로 옮긴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책의 부제는 ‘여성의 시각에서 본 과학의 사회사’다. 출판사는 ‘사이언스북스’이다. 번역자는 최애리다. 이번에 나온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번역을 다시 맡았다.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은 《피타고라스의 바지》의 구판인 셈인데, 번역자와 출판사는 구판이 출판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5] 티에리 오케, 변진경 옮김, 《셀 수 없는 성: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오월의봄, 2021년, 36쪽.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97쪽, 옮긴이 각주 [닐스 보어]
덴마크 물리학자. 특정 원자핵의 비대칭 모양과 그 이유를 규명하여 1975년 노벨상 수상. [주6]
[주6] 연도 오류. 닐스 보어(Niels Bohr)는 192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297쪽, 옮긴이 각주 [하이젠베르크]
1933년 노벨상 수상. [주7]
[주7] 연도 오류.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193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 337쪽
리정다오(Tsung-Dao Lee, 1926~ ) [주8]
[주8] 올해 8월 4일에 별세했다.
* 356쪽
SSC 사업은 본래 2억 달러 예산으로 시작되었으나, 1993년 중반에는 100억 달러로 확대되었으며, 일각에서는 사업 완료까지 130억 달러는 들리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 시점에 다다르자, 국회에서 플러그를 뽑았다. 이는 만물이론 학계로서는 커다란 좌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꿈은 절대로 무산되지 않았다. 유럽 공동체가 자신들의 초가속기, 즉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지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련 정부들은 재정 지원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LHC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훨씬 적어서 100억 파운드(약 150억 달러) 정도이며, SSC만큼 강력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도 통일 영역에서 새로운 전망을 보여줄 희망이 있다. [주9]
[주9] 이 책이 출간된 1995년에 LHC 건설이 승인되었다. 건설비와 실험을 위한 예산 등이 포함된 LHC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32억~64억 유로(약 4조 6천억 원)였다. 그러나 비용이 늘어나면서 건설 속도가 더뎌졌다. 우여곡절 끝에 건설이 완료되었고, 2008년 9월 10일에 가동하기 시작했다.
* 미주, 390쪽
Nicolaus Cusanus, De docta ignorantia [주10]
[주10]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조규홍 옮김, 《박학한 무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