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물리학 -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존 그리빈 지음, 김상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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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시간여행SF의 단골 소재다. 시간을 거슬러 여기저기 넘나드는 여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SF는 종종 오해받는다. 일단 SF라는 이름부터 모순이다. SF‘science fiction’의 약자. ‘fiction’소설 또는 허구라는 의미를 아울러서 품은 단어다. 과학을 매끈하게 정의하자면 실험과 관찰을 거쳐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학문이다. 과학은 결국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는 학문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실험으로 증명하려면 타임머신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만들 수가 없다. 여기서 사람들은 바로 결론을 내린다시간여행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어서 과학으로 볼 수 없다.’ ‘시간여행은 허구이며 공상에 불과하다.’


‘S’를 선호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 T?”라고 비꼬지 말자. 정확한 과학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도 SF를 좋아한다. SF를 즐겨 읽는 과학자들이 많다SF를 쓰는 과학자도 있다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그리빈(John Gribbin)SF 전문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이력이 있다그는 ‘S‘F의 만남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SF를 쓰는 과학자의 눈에는 ‘S’‘F’아주 오래된 짝꿍으로 보인다SF를 좋아하는 과학자는 오래 만난 짝꿍을 억지로 떼어내지 않는다.


존 그리빈은 과학소설에 진짜 과학(real science)’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어린 시절에 만난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와 같은 SF 거장이 쓴 과학 이야기(science fiction) 덕분에 글 쓰는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SF에 허구 맹랑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비록 상상으로 쓰였다고 해도 이야기 속에 분명히 흥미로운 과학이 살고 있다.


대부분 물리학자는 이론상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존 그리빈도 과학적으로 성립되는 시간여행을 생각하면서 즐기는 과학자다.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그가 쓴 시간의 물리학: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시간여행을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이 책을 잠깐 소개하자면, 역자는 SF 평론가 김상훈이다. 강수백이라는 필명으로 SF를 번역하기도 했다. 시간의 물리학은 역자가 처음으로 번역한 과학 도서다책의 마무리 글은 존 그리빈이 쓴 단편 SF. 소설 제목은 뒤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1990).


시간여행을 소설에서만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상상력과 과학을 결합해서 만든 타임머신이 있으면 된다머릿속에 타임머신 설계도를 그려라. , 설계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타임머신 부품에 과학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지 않으면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과학자들도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인슈타인을 존중하면서도 타임머신을 만들려고 한다. 과학 법칙에 어긋나더라도 일단 만들어라허점투성이 타임머신을 상상하면서 탑승해도 죽지 않는다타임머신을 만들었으면 우주 지도를 그려야 한다. 여기서부터 과학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타임머신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권위자인 S. (Kip S. Thorne)은 두 개의 시공간(또는 우주)을 연결하는 통로인 웜홀(Wormhole)이 있으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웜홀은 SF에서 유래된 개념이 아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는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이용해서 웜홀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이용해서 웜홀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네이선 로젠(Nathan Rosen)이라는 물리학자와 함께 웜홀과 비슷한 우주의 지름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고 부른다


SF 작가들은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블랙홀 연구에 영감을 얻어 시간여행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계를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SF를 읽으면서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이론을 도출해 냈다시간의 물리학 ‘S(과학)’와 ‘F(소설)’의 만남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루었는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SF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은 과학소설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둘의 만남을 이해하지 못해서 과학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 과학을 모르는 소설가소설을 안 읽는 과학자가 살고 있다. 사실과 완전히 다른 두 사람 때문에 한때 SF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공상과학 소설이 촌스러운 옛말이 되면서 사라졌지만, ‘과학을 모르는 소설가소설을 안 읽는 과학자는 살아 있다. 너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가상의 존재들이 죽여야 SF의 매력이 살아 숨 쉰다. ‘S‘F’가 서로 알고 지낸 지 백년이나 넘었다. 둘은 절대로 헤어질 일이 없다. ‘과학을 좋아하는 소설가소설을 즐겨 읽는 과학자SF를 만들었으니까.






<cyrus의 주석>




* 29

 

 시간팽창 효과는 수많은 SF의 기반이 되었고, 미래를 향한 일방통행식 시간여행의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 책 중에서도 이 개념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파고든 폴 앤더슨(Poul Anderson)타우 제로(Tau Zero)[1]를 제일 좋아한다.


 

[1] 번역본(천승세 옮김, 나경문화, 1992)이 있다. 절판되었으며 도서관에서도 보기 힘든 책이다.





* 41

 

 (열역학) 2 법칙에 의하면 열은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흘러들 수 없다. 19세기 열역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던 켈빈 경(Lord Kelvin)은 좀 더 기술적인 용어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2]

 

[2] 열역학을 설명할 때는 엔트로피(entropy)를 처음으로 언급했고, 열역학 제1 법칙과 열역학 제2 법칙을 정립한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Julius Emanuel Clausius, 1822~1884)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 58, [그림 4] 설명문

   




 2차원에 시간 차원을 더한 광추(light cone) 모형. 시공간상의 국소 지점에서 찰나의 시간에 발생한 어떤 사건의 결과로 방출된 빛이 시공간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의 경로를 나타냈다. 3차원 공간에 이 모형을 적용하면 빛은 구형으로 퍼져나가고, 빛 원뿔도 일반적인 원뿔이 아닌 4차원 초 원뿔이 된다. [3]

 

[3] 빛 원뿔 모형은 ‘4차원 개념을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에 도입한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가 제시했다. 빛 원뿔 모형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민코프스키 시공간(Minkowski spacetime)’이라고도 부른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표현한 그림은 167쪽(그림 14)에 다시 나온다. 처음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 수학적 개념이 적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중에 수학의 도움 없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민코프스키의 업적이 없었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인 휘어진 시공간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62



 


 제임스 블리시(James Blish)가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삐익>(Beep)에서는 거리와 상관없이 순간적인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디랙 라디오[4]라는 장치가 등장한다. 그러나 디랙 라디오는 음성 메시지를 수신할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삐익 하는 소리를 낸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이 삐익 소리는 과거에 보내졌고 미리[5]에 보내질 모든 디랙 메시지를 압축한 복사본이었다.

 

[4]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의 이름에서 따온 소설 속 장치다. ‘디랙 라디오의 원문은 Dirac communicator’.

 

[5] 미래의 오자.





* 109


 



S. (Kip S. Thorne), 인터스텔라의 물리학(The Science of Interstellar) [6]

 

[6] 번역본: 인터스텔라의 과학, 전대호 옮김, 까치, 2015.





* 115, [그림 12] 설명문

 




 M87 블랙홀 상상도. 처녀자리에 있는 타원은하이자 강한 전파은하다. 2017년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관측한 인류 사상 최초의 블랙홀이다. [7]

 


[7] 20174월에 M87 블랙홀을 관측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년 뒤인 2019410일에 최초로 블랙홀을 화상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 125

 




폴 데이비스(Paul Davies), 타임머신을 제작하는 방법(How to Build Time Machine) [8]

 

[8] 번역본: 폴 데이비스의 타임머신, 강주상 옮김, 한승, 2002(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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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존재들 -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텔모 피에바니 지음,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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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노자(老子)도덕경41에 속담을 인용하면서()를 설명한다.



 “크게 모가 난 것은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잘 돌봐주고 잘 이루게 할 수 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김원중 옮김, 노자, 글항아리, 2013, 170~171)

 


모서리 없는 네모, 들리지 않는 큰 소리(이 표현은 유치환의 시 깃발의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시킨다), 형상은 있으나 형체가 없는 것이 모든 것은 현실에 없다노자의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지만, 이름과 형체가 없어서 신비스럽.


도덕경41장의 전체 문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네 글자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도덕경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도덕경에 주석을 단 왕필(王弼)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라고 해석했다. 국내에 출간된 도덕경대부분은 왕필의 주석을 참고한다. ‘비단에 적힌 도덕경이라 해서 백서본(帛書本)’으로 불리는 판본이 있다백서본에 대기만성’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에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표기되어 있다대기면성은 대기만성과 다르게 비관적이다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큰 그릇이 되기는 어렵다로 해석한다. 최진석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은 대기면성대기만성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원중 교수대기면성대기만성모두 옳은 해석으로 여긴다. 그는 노자가 해석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면서 도덕경을 썼다고 주장한다.


좀 늦더라도 노력만 하면 큰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기만성을 선호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도의 특성상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큰 그릇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 없다. 도덕경40장의 핵심유생어무(有生於無)’. 천하의 만물은 살아 있다(有生). 살아 있음의 시작은 없음()’이다. 도는 영원히 순환한다. 노자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 했다(反者道之動, 도덕경40). 결국 살아 있는 것은 없음으로 되돌아간다. 큰 그릇을 빨리 만들어서 완성하든, 천천히 만들어서 완성하든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색깔이 사라지며 형태가 점점 변한다.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언젠가는 깨진다그릇 색깔이 사라지면 다시 덧칠하면 된다. 깨진 그릇은 다시 붙이면 된다. 변형되고 파손된 그릇을 땜질하면 다시 살아난다. 도덕경40장의 유생어무41장의 대기면성완전한 형태의 도’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은 겉으로 봐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불완전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유생어무대기면성의 교훈을 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와 함께 나무 위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두 발로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은 인류 진화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진화한 종()으로 인식됐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 빠진 인간은 조상들의 고향인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간다. 


진화의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진보를 진화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진보와 진화를 모두 경험한 인간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라고 단정 짓는다하지만 진화는 인간이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 아니다우리는 완벽함과 완전한 존재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오류와 결점, 불안정성, 불완전한 존재는 발전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자 개선해해서 제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한다한때 돌연변이는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괴물로 낙인찍혔다. 우생학자들은 완벽한 인간이 아닌 장애인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진화 과정과 자연사는 완벽함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탄탄대로가 아니다결함과 우연’이 마주치는 가시밭길이다갑작스럽게 변한 자연환경은 대멸종을 초래했다. 여기서 소수의 종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시밭길을 무사히 걸어갔다. 몇몇 동물은 생존을 위해 자기 신체 일부를 변형하거나 퇴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타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다리를 발달하는 대신에 날개를 포기했다. 원래 잡식성 동물인 판다는 대나무 줄기를 손에 쥔 채 먹기 위해 손목뼈를 가짜 엄지로 진화시켰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프랑수아 자콥(Francois Jacob)이 말한 대로,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땜질하는과정이다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단순히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진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잘 살고 싶어서 진화한다. 불완전한 결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한다. 오류와 결함은 진화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완벽함을 이루기 위한 노력만 강조하는 대기만성은 이제 더 이상 위로의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위로의 말은 대기면성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에 나온 이 문장은 대기면성의 뜻을 담고 있다.



 인류는 생명체의 정수라기보다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


(223)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큰 그릇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 만들어라완벽한 도()를 담은 그릇보다 볼품없어도 용도(用途, 쓸모) 있는 그릇이 더 좋다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완성이 덜 된 그릇도 제 눈에는 만족스러워 보인다완성형 존재가 아닌 우리는 삶을 땜질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cyrus의 주석>



* 194

 




 인간의 남성은 여성이 임신할 준비가 된 순간을 감지하지 못한다. 개코원숭이, 맨드릴개코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노[주]와는 확실히 다르다.


[]보노보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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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4-05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노보노‘도 감지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ㅎㅎ

cyrus 2024-04-08 06:40   좋아요 1 | URL
나름 재미있는 오자였어요. ^^
 
우주의 수학 -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스토 야스시 지음, 전종훈 옮김, 강성주 감수 / 플루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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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천체물리학자 우주에 관심이 많은 물리학자. 천체(天體)우주에 살고 있는 행성, 항성, 성단, 성운 등을 아우르는 용어. 사실 천체물리학자를 천문학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천문학자 심채경이 쓴 책 제목처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보는 것은 별이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는 우주를 보지 않는다. 그는 우주에 깊이 스며든 수학을 본다. 야스시는 우주가 수식과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그가 쓴 우주의 수학오랫동안 우주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수학 법칙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과 수학이 있다고 믿는 파에 속한다. 기호로만 이루어진 수식이 저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빛난다


대부분 물리학자와 수학자는 설명하기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한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수식이 낯설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으로 가득한 우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수학-우주론이 우주를 설명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우주가 법칙과 수학의 지배를 받을 리 없다는 파를 계속 지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솔직하다. 자신도 어려운 수식을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겸손한 태도는 수학이 싫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조차 포기할 것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랜다저자는 수식이 도출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수식만 알려준다. 물리학자는 수식으로 법칙을 표현한다. 법칙이 우주는 이렇다라는 형태로 된 문장이라면, 수식은 그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글자다글자 한두 개 빠지면 읽을 수 없는 어색한 문장이 되듯이, 수식이 없으면 법칙을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우주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법칙은 크게 세 가지다. ‘1 법칙’, ‘2 법칙’, ‘3 법칙으로 알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법칙은 행성이 움직이는 경로인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이 발견한 운동법칙(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은 그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같다)과 케플러 제3 법칙을 결합하여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다. 만유인력은 중력을 뜻한다. 사실 만유인력은 뉴턴 역학을 다룬 외국 서적을 접한 일본 학자들이 ‘universal gravity’를 한자로 번역해서 나온 단어다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 중력을 발생시켜,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곡면을 이용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영감을 얻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다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한 우주의 법칙들을 이해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천문학자들은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천문학자는 우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법칙을 보고 싶어 한다. 시력이 좋은 눈을 가진 천문학자가 매일 밤하늘을 관측해도 우주가 꼭꼭 숨긴 법칙을 찾지 못한다. 법칙을 발견하려면 눈은 밤하늘을 바라보되 머리로 생각하면서 우주에 물어봐야 한다. 우주를 향해 법칙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질문하고, 우주가 천문학자에게 알려준 법칙과 관련한 단서를 분석하려면 수학이라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우주가 수학을 잘 아는 존재라면 천문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학을 모르는 천문학자는 날 보려고 하지 마!






<cyrus의 주석>




* 69

 

 1609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당시 발명된 망원경을 처음으로 천체 관측에 사용했습니다.[1] 이전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은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해야만 했죠.

 

[1] 영국의 천문학자 토머스 해리엇(Thomas Harriot, 1560?~1621)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보다 4개월 먼저(정확한 날짜는 1609726)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고, 달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겼다. 하지만 해리엇은 달 그림을 발표하지 않았고, 갈릴레오는 1610년에 자신이 직접 그린 달 그림을 발표했다.


[참고문헌 1] 로베르타 J. M. 올슨 & 제이 M. 파사쇼프, 곽영직 옮김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북스힐, 2021

 

[참고문헌 2마이클 벤슨, 지웅배 옮김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롤러코스터, 2024






* 153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지도는 지구 표면을 평면으로 펼친 지도입니다. 하지만 지구는 실제로는 구형이어서[2] 완벽하게 평면으로 펼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차원 평면으로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죠.





[2] 지구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다. 적도 지방이 부푼 타원체다. 따라서 지구는 찌그러진 형태라서 지역마다 중력의 강도가 다르다. (출처: [‘지구는 더 이상 둥글지 않다?’ 사진 공개맞을까 틀릴까] 매일경제, 201142일 입력)





* 203

 

 2019410일 천문학 역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공통 연구팀이 타원은하 M87[3]의 중심에 위치한 초거대 블랙홀의 첫 이미지를, 전 세계에 있는 전파망원경에 연결해 촬영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다른 표현으로,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를 말합니다.


[3] M87처녀자리에 있는 타원은하. 처녀자리 A 은하라고도 부른다. ‘M’‘Messier’의 약자, 천체 목록을 만든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r)에서 따왔다.





* 참고 문헌 237쪽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국가주의를 극복했는가?, 국내 미출간. [주4]


[주4]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했나(김영서 옮김, 브론스테인, 2020)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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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4-05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우주가 보고 싶은데, 수학실력이 부족해서 지금은 안되겟어요.ㅠㅠ

cyrus 2024-04-05 06:33   좋아요 0 | URL
저도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 수학능력시험 수리 영역 점수를 잘 받으려고 정말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문과인데도 수학 성적 올리는 데 노력했죠. 그렇게 2년 공부해서 수학능력시험 때 받은 수리 영역 점수가 27점이었어요.. ㅋㅋㅋㅋ 그때부터 제가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어요... ㅋㅋㅋ 그래도 수학을 책으로 보는 건 좋아해요. 수학 관련 도서에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
 




가까이서 보면 희곡멀리서 보면 연극


No. 3












고도를 기다리며

2023년 12월 19일 ~ 2024년 2월 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 공연 관람




대구 공연

2024년 3월 29일 ~ 3월 31일

아양아트센터 아양홀

3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공연 관람









[원작]

사무엘 베케트, 오증자 옮김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 2000)



연출 오경택

조연출/무대 감독 최현서

 

[출연진]

신구 (에스트라공/고고 역)

박근형 (블라디미르/디디 역)

박정자 (럭키 역)

김학철 (포조 역)

김리안 (소년 역)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소설 율리시스(Ulysses)를 쓰면서 수많은 수수께끼를 심었다고 공언했다.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율리시스에 묻힌 수수께끼들을 발굴해서 정답을 알아내느라 끙끙댈 것이고, 그 사이에 자신의 불멸이 보장되리라 생각했다.


















* 제임스 조이스, 이종일 옮김 율리시스(2, 문학동네, 2023)

* [4 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김종건 옮김 율리시스(어문학사, 2016)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2년 동안 영어 교사로 일했다. 타지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조이스를 만났다조이스의 문학에 매료된 베케트는 그의 비서가 되었다. 베케트는 시력이 좋지 않은 조이스를 위해 글을 읽어주거나 원고를 대신 써줬다.

















* [절판] 사무엘 베케트, 이원기 옮김 사무엘 베케트 희곡 전집(2, 예니, 1993)




40대 중후반의 베케트는 중견 작가임에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쓴 소설들이 난해한 데다가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은 성격이라서 일반 독자들은 베케트를 어려워했다이때 당시 베케트는 조이스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은 명예를 듬뿍 마시는 불멸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중년의 위기를 느낄 만한 나이에 접어든 베케트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아래 고도)를 발표한다.
















고도(Godot)’는 희곡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 하나가 되어 고도의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린다고도끝이 있는데도, 제대로 끝났다고 할 수 없는 희곡(play)이다. 왜냐하면 이제 고도는 실체가 없는 인물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되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정답 없는 수수께끼를 푸는 놀이(play)와 같다. 연극이 끝나도 관객들은 이 놀이는 끝내려고 하지 않는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자꾸만 고도가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권으로 된 사무엘 베케트 희곡 전집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장막극뿐만 아니라 단만극도 수록되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외(용경식 옮김, 하서, 1995)은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포함한 열두 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제일 밑에 있는 얇은 책은 국립극장이 발간한 고도를 기다리며프로그램 북이다. 작품 분석, 연출 정도, 배우들의 인터뷰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다. 



생전에 베케트는 고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근거를 대면서 고도가 누군지 추측했다. 그렇지만 베케트는 독자와 관객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 고도라는 수수께끼를 남겼으면서도 다양한 해석을 반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해석들이 줄줄이 나오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고, 연출가들에게 대본에 적힌 대사나 지시 사항을 충실히 지킬 것을 요구했다. 수수께끼를 만든 사람이 수수께끼를 푸는 놀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한 셈이다.

















* 그레고리 번스, 홍우진 옮김 라는 착각: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흐름출판, 2024)




고도를 두세 번 읽어도, 서울에서 한 연극 고도를 봤는데도, 고도가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십여 년 전에 고도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누군가가 먼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한 고도를 드디어 찾았다면서 우쭐거린 그때 내 모습이 부끄럽다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자신의 책 라는 착각에서 우리 뇌가 타인의 생각을 너무 쉽게 흡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생각, 내 견해가 온전히 내 머릿속에 나온 것이라고 착각한다.

 








수수께끼가 된 고도를 기다리는 게임도,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푸는 놀이를 지금부터 중단한다. 고도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자길 보러 오라면서 나댄다. 나는 더 이상 고도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만나고 싶은 고도가 아니라 타인이 만났던 고도. 고도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다. 대구에서 하는 연극 고도을 볼 땐 고도를 찾지 않을 것이다



잘 가라, 고도. 오늘은 배우들의 목소리, 숨소리, 몸짓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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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3-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에 고도를 기다리며, 의 연극을 보고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cyrus 2024-04-03 06:30   좋아요 1 | URL
저는 원작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인물들의 대사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

햇살과함께 2024-03-3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네요! 재밌게(?) 보세요~ 저는 몇년전에 정동환 배우로 봤네요

cyrus 2024-04-03 06:33   좋아요 1 | URL
<고도를 기다리며> 프로그램 북에 국내 <고도> 공연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햇살과함께님이 보신 공연은 2019년에 했군요. 정동환 님이 디디를, 안석환 님이 고고를 연기했어요. ^^

햇살과함께 2024-04-03 08:55   좋아요 0 | URL
아, 19년이었군요. 맞아요 안석환님~
제가 지난 주 본 연극 <욘> 커튼콜에서 구두를 무대 위에 놓고 끝나는데,
<고도를 기다리며> 오마주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페넬로페 2024-03-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연극 보고 싶었는데 놓쳤어요.

대학때 단과대 학생들이 공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보며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어요 ㅋㅋ
근데 노배우들의 공연은 깊이가 있을 듯 하네요. 즐거운 관람 되시길요^^

cyrus 2024-04-03 06:35   좋아요 0 | URL
같은 공연을 두 번 보면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다를 줄 알았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솔직히 공연을 보다가 졸음이 왔어요.. ^^;;

stella.K 2024-03-3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오래 전 이 연극 봤지.
알 수 없는 4차원의 언어를 쓰지만 그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
와, 근데 입장료가 장난 아니네.ㅠ

cyrus 2024-04-03 06:36   좋아요 0 | URL
두 번 공연 모두 맨 앞줄에 앉았어요. 서울 공연 예매할 때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모두 쏟아부었어요... ㅋㅋㅋㅋ

blanca 2024-03-3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 감상평 듣고 싶어요. 서울에서 할 때 볼걸 아쉬워요.

cyrus 2024-04-03 06:40   좋아요 0 | URL
조만간 2차 연극 감상에 대한 평을 남길게요. 사실 같은 공연을 봐서 그런지 조금은 지루했어요. ^^;;
 



최근에 사진 철학의 고전으로 유명한 책이 절판되었다. 작년 12월에 이 책이 언급된 글을 썼을 때까지만 해도 절판되지 않았다. 지난주에 사진집 서평을 쓰면서 그 책을 또다시 언급했는데, 이때 책이 절판된 사실을 확인했다.





















* [절판] 롤랑 바르트, 김웅권 옮김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동문선, 2006)

 

* [No Image, 절판] 롤랑 바르트, 조광희 옮김 카메라 루시다: 사진에 관한 노트(열화당, 1986)




절판된 책의 정체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밝은 방(La Chambre Claire)이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에세이. 바르트는 사진을 볼 때 자기 자신은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은 사진 기술이나 사진작가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는 사진 담론을 거부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진을 본다바르트는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형태를 스투디움(studium)’푼크툼(punctum)’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두 용어는 사진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절판] 롤랑 바르트 & 수전 손택, 송숙자 옮김 《사진론: 바르트와 손탁》 (현대미학사, 1994)


*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사진에 관하여》 (이후, 2005)




밝은 방번역본은 세 권이다. 출간 연도순으로 언급하면 열화당(1986), 현대미학사(1994), 동문선(2006) 판본이다. 대부분 독자가 추천하는 번역본은 열화당의 카메라 루시다. 현대미학사 판본은 수전 손택(Susan Sontag)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와 함께 실린 번역본으로, 제목은 사진론: 바르트와 손탁이다









현대미학사 판본과 동문선 판본의 번역에 만족스럽지 못한 독자들의 후기가 알려지면서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미 절판된 카메라 루시다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쏟아졌다. 카메라 루시다는 헌책방에 구하기 힘든 책이라서 중고가가 꽤 높은 편이다.











카메라 루시다20155월에 알라딘 중고로 샀다. 운이 좋게도 책값은 15,000이었다. 이 책을 판매한 사람은 카메라 루시다‘1997년에 나온 6이며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이 때문인지 중고가가 낮게 책정된 듯하다. 판매자는 정직했다. 책에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었고, 테이프를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은 6쇄가 아니라 1986년에 나온 초판본이었다. 절판된 카메라 루시다밝은 방초판본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카메라 루시다를 추천한 독자들은 밝은 방의 번역과 책에 실린 사진의 밝기를 문제 삼는다. 원서에 실린 사진이 전부 흑백사진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오래된 책인데도 흑백사진 도판은 지금 찍은 사진 못지않게 명암이 선명하다. 하지만 밝은 방에 실린 도판은 흑백사진 특유의 명암 대비 효과가 사라졌다. 도판의 화질이 지나치게 밝아서 흑백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흐릿하게 나왔다.


밝은 방에 평점을 낮게 준 독자들은 번역문이 별로라고 혹평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분노케 한 문장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과연 이들의 견해대로카메라 루시다밝은 방보다 번역이 좋은 책일까? 사진과 문장의 질이 떨어진 밝은 방을 무시하고, 무조건 카메라 루시다를 읽어야만 할까?

 

카메라 루시다는 번역이 잘된 책이 아니다. 오자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카메라 루시다를 찬양한 독자들은 오자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그들은 오자가 한두 개가 아닌카메라 루시다》에 관대하다


카메라 루시다오역이 있다.



 1926년 케르테츠는 (외알 안경을 쓴) 젊은 러시아 황제의 인물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푼크품의 선물, 즉 은혜와도 같은 시선의 보충에 의해 내가 주시하는 것은 문틀을 짚고 있는 황제의 손, 손톱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그의 손이다.

 

(카메라 루시다중에서, 48)



러시아 황제는 오역이다. 1926년이면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이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공화국(소련)으로 완전히 들어선 해이다. 1918년 러시아 제국의 차르(Czar, Tsar, Tzar) 니콜라이 2(Nicholas II)의 로마노프 왕조 일가 모두 볼셰비키 조직원들에게 총살당하면서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1926년에 케르테스는 (외알 안경을 낀) 젊은 차라의 인물 사진을 찍었다. 푼크툼의 증여, 은총과 같은 이런 보충적 시각을 통해 내가 주목하는 것은 문틀 위에 놓인 차라의 손, 손톱이 별로 선명하지 않은 그 커다란 손이다.

 

(밝은 방중에서, 61)




바르트가 언급한 사진의 주인공은 황제가 아니라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차라는 루마니아에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시인이며 초현실주의 그룹 회원으로 활동했다카메라 루시다 역자가 트리스탄의 성() ‘Tzara’를 황제를 뜻하는 차르(Tzar)로 착각했다원서에는 안드레 케르테스(Andre Kertesz)가 찍은 젋은 차라의 모습이 실려 있지 않다. 사진이 있었다면 역자가 오역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밝은 방역자는 책을 번역할 때 카메라 루시다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 차라로 썼으며 트리스탄 차라가 누군지 주석을 달아 설명했다.


절판된 책이라고 해도 오역이 있으면 지적해야 한다그래야 절판본에 대한 몇몇 독자들이 지나치게 부풀린 평가와 절판본을 비싸게 팔려는 판매자들에 속지 않는다절판본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거나 이 책을 어떻게든 구해서 읽으려는 독자들을 위한 서평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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