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奇書)내용이 기이한 책이다.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 힘든 책을 뜻하기도 한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잘 아는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있다. 오구리 무시타로(小栗虫太郎)흑사관 살인 사건(1934), 유메노 큐사쿠(夢野久作)도구라 마구라(1935), 나카이 히데오(中井英夫)허무에의 제물(1964)이다.

















* 오구리 무시타로, 강원주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이상미디어, 2019)

 

* [절판] 오구리 무시타로, 김선영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북로드, 2011)




올해가 《흑사관 살인 사건》이 발표된 지 90주년이 된 해다흑사관 살인 사건후리야기(降矢木) 가문의 성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성이 중세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 건물과 비슷해서 흑사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이 작품에 오구리 무시타로의 탐정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노리미즈 린타로(法水麟太郎)가 등장한다. 노리미즈는 박식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설명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을 추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리미즈가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장광설이 되고 만다. 노미리즈는 종교, 점성술, 과학, 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헌과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한다. 흑사관 살인 사건이 기서로 평가받는 이유가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현학적인 내용이다. 독자는 인내심 하나만으로 방대하면서도 난해한 내용을 뚫으면서 읽어야 한다.

 



















* [절판] 유메노 큐사쿠, 이동민 옮김 도구라 마구라(크롭써클, 2008년, 전 2권)





도구라 마구라유메노 큐사쿠의 유작이다. 유메노는 이 소설을 써서 탈고하는 데까지 십 년을 바쳤다. 소설이 발표된 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독특하게도 뇌와 기억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설을 SF로 보기도 한다. 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 나카이 히데오, 허문순 옮김 허무에의 제물(동서문화사, 2009)

 



허무에의 제물반 미스터리(anti mystery)’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동서문화사. 허무에의 제물의 역자는 해설에서 ‘600쪽이 넘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라며 운을 뗀다. 읽기 까다로운 작품을 완독한 것을 자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한 거짓말일까?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책을 출판하고, 유령 역자(익명의 역자가 번역한 책에 고인이 된 역자의 이름을 쓴 것)’를 내세워 책을 펴낸 출판사의 전력을 생각하면 역자의 말이 미덥지 않다.

















* 윤영천 미스터리 가이드북: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한스미디어, 2021)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펴낸 미스터리 전문가 윤영천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3대 기서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단순히 기서라는 단어에 혹해서 도전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읽으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서를 더 읽고 싶어진다.


















* 백휴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나비클럽, 2024)




철학을 전공한 추리소설 작가 백휴는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에서 추리소설은 오락소설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추리소설을 철학적으로 읽기를 시도한다나는 이 책을 프롤로그-12순으로 읽었다. 12장은 프롤로그의 심화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을 철학적 관점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본격적으로 나온다그런데 12장에 인용된 철학자가 너무 많다. 철학 용어를 인용하면서 추리소설을 철학으로 독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독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근거를 설명할 땐 단순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 필요해 보인다.


고전 추리소설에 묘사된 탐정은 추리력과 논리력이 뛰어나다. 가장 대표적인 탐정이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다. 추리력과 논리력은 어떤 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게끔 해주는 이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서구 지식인들이 찬양했던 이성의 입지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니체(Nietzsche)로 시작해서 몇몇 철학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추리소설 역시 이성과 반이성이 충돌하는 철학의 흐름에 맞춰 유행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나온 추리소설 속 탐정은 똑똑하지 않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대 기서 중 흑사관 살인 사건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했는데,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를 읽고 난 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추리소설 3대 기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읽기 어렵기로 악명높은 책들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탐정소설 속에 지혜의 알갱이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지혜의 알갱이 한 톨이라고 찾지 못해도 좋다. 일단 흑사관 살인 사건을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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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5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인데 내용이 어렵고 그것도 철학적인 접근~~
그럼에도 어쩐지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cyrus 2024-02-23 07:00   좋아요 1 | URL
내용이 어렵거나 특이한 책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거든요. ^^

stella.K 2024-02-15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는다면 흑사관부터 도전할까 했는데 네 글 읽어보니 미스터리 가이드 북이랑 철학하기부터 읽어야지 싶네. 미스터리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치겠군.
근데 허무에의 제물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 저 제목도 사실은 문법상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에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들었거든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던데. 손 좀 보면 좋을텐데ᆢ

cyrus 2024-02-23 07:03   좋아요 0 | URL
저도 ‘~에의’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렸어요. 동서미스터리문고 개정판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서 제목이 고쳐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로베르타 J. M. 올슨.제이 M. 파사쇼프 지음, 곽영직 옮김 / 북스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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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엄밀히 말해그대도 엄밀히 말하기를 고집하시기에 말인데전문가는 아무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요. 누군가 실수를 하는 이유는 지식이 달리기 때문인데, 지식이 달리는 한 그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따라서 어떤 전문가도 어떤 현인도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어떤 치자도 치자인 한 실수를 범하지 않아요.”


(플라톤, 천병희 옮김, 국가1341a, 55)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Cosmigraphics, 마이클 벤슨 저, 지웅배 옮김, 롤러코스터, 2024년)는 예술이 된 매혹적인 우주를 모은 화보. 이 책의 생김새는 우량아와 비슷하다판형이 크다. 게다가 양장본이라서 두께는 얇은데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그런데 눈에 확 띄는 책의 몸집과는 달리 내실은 좋지 않다책 속에 고쳐야 할 것이 많다.[주1] 책에 화려한 도판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 잡고 있어서 가 나지 않는다. 


사실 코스미그래픽이 나오기 전에 이미 우주 그림들을 한가득 모은 책이 출간된 적이 있다. 그 책은 바로 코스모스(Comsos). 코스모스?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그 유명한 과학책? 제목과 주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아주 유명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급판(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벽돌 책이다.[주2] 제목만 같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의 생김새와 비슷한 널빤지 책이다. 널빤지 코스모스의 부제는 우주에 깃든 예술이다.


코스미그래픽의 저자는 널빤지 코스모스의 존재를 알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널빤지 코스모스의 저자 이름을 언급했다.



코스미그래픽》 314쪽


 미술사학자 로베르타 올슨과 천문학자 제이 파사코프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 속 앉아 있는 노아의 왼쪽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은 므두셀라이며 그의 아버지 에녹이 점성술적 징조에 관한 내용을 써놓은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베르타 올슨(Roberta J. M. Olsen)제이 파사쇼프(Jay M. Pasachoff)1985년부터 예술과 천문학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천문학적 현상이 주는 영감이라는 이름의 학술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이듬해에 핼리 혜성(1P/Halley)76년 만에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밤하늘에 나타난 혜성을 묘사했다. 널빤지 코스모스에도 혜성을 묘사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301년에 혜성을 목격했고, 프레스코화 <동방박사의 경배>(1305년)에 혜성을 그려 넣었다조토는 세 명의 동방박사를 위해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으로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Star of Bethlehem)을 혜성처럼 묘사했다전문가들은 조토가 본 혜성이 핼리혜성이라고 주장한다.


예술가들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빛나는 영감을 건졌다.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일식(日蝕)에 매료됐다. 그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함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일식을 관측했다고 한다독일의 판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는 자택에 천문관측소를 설치했다. 그는 연작 목판화 묵시록(1511)에 혼돈을 상징하는 유성을 그렸다.


플라톤(Plato)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는 정의에 대해 소크라테스(Socrates)와 대화를 나눈다. 트라시마코스는 전문가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그의 주장은 틀렸다. (삼단 논법으로 반박하자면) 전문가는 사람이다. 사람은 실수한다. 전문가는 실수한다. 지식이 부족해서도 실수하고, 지식이 많이 있어도 실수한다.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 모두 과학 전문가. 코스미그래픽의 역자 지웅배는 천문학자 겸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 널빤지 코스모스의 역자는 곽영직 교수. 곽 교수는 다작하는 과학 전문 저술가. 그가 직접 쓴 과학책, 번역서, 감수한 책들이 상당히 많다.[주3]


공교롭게도 코스미그래픽과 널빤지 코스모스, 두 책 모두 겉은 보기 좋으나 속에 흠이 많다. 널빤지 코스모스코스미그래픽못지않게 오자와 오류가 있다책 제목은 코스모스인데 책을 펼쳐 보면 카오스(Chaos, 혼돈)’역자들만 실수하는가? 이 책의 편집과 교정을 맡은 출판사 직원도 실수한다.






<cyrus의 주석>

 




[1] 코스미그래픽서평, <안녕하세요, 지구인.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2024년 1월 23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244507



[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번역본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책은 판형이 큰 널빤지 책이다. 정가는 5만 원이다. ‘벽돌 책으로 알려진 코스모스보급판이다.



[3] 곽 교수가 쓴 책 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읽기(세창출판사, 2021)가 있다.





* 16, 19





보르기아 보르지아(Borgia)

 



* 33





단테의 낙원 단테의 천국(paradiso)




* 75





1851년 프랑스 쿠테타 1851년 프랑스 쿠데타





* 84

 

 리베라는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4]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4]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 리베라는 프리다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붕으로 달려가 일식을 관측했다.” 리베라의 역겨운 여성 편력을 생각하면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 88, 91





알렉산드르 브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왕자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Borodin)의 

오페라 <이고르 공(, Prince Igor)>


오페라 제목을 이고르 왕자라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써도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이고르 공이다.

 




* 98, 133, 199, 275







고대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가 쓴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

[주5]



[주5] 국내에 알려진 플리니우스(Plinius)의 책 제목은 박물지.





* 160


드니 디드로의 스물여덟 권짜리 백과사전[주6]


[주6] 백과전서로 알려진 방대한 분량의 저작물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혼자 쓰지 않았다.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볼테르(Voltaire)가 포함된 100여 명의 지식인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했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백과전서의 공동 편집장이다.

 





* 206





우루술라 우르술라(St. Ursula)




* 133쪽






* 207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주7]



[주7] 아이네이스전원시가 아니다.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스가 긴 여정 끝에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 서사시. 전원시는 전원에서 사는 삶을 주제로 한 시다. 지금까지 알려진 베르길리우스의 또 다른 작품이 총 열 권으로 이루어진 전원시(Eclogues). 그런데 이 책 133쪽에 <Eclogues>가 한 차례 언급되는데 곽 교수는 작품 제목을 시선(詩選)’으로 오역했다.




* 217

 




 심지어 현실적이었던 사회주의 화가 -프랑수아 밀레[주8]단테의 코메디아의 큰 불Inferno[주9]5편을 나타내기 위해 상상력이 풍부한 캔버스화인 <유성>을 그렸다.

 


[주8] 저자들이 밀레(Jean-François Millet)사회주의 화가로 착각했다. 밀레1850년에 <건초를 묶는 사람들>을 살롱에 출품한다. 살롱전에 관람한 기자들은 그의 작품을 비난하면서 밀레를 사회주의자로 단정했다. 밀레는 자신에 관한 전기를 쓴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에게 보낸 편지에 기자들의 비평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밀레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도 배격했으며 비평가들이 자신을 어느 당파로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주9] 단테의 코메디아(La Divina Commedia Di Dante Alighieri)’는 단테 사후에 붙여진 신곡의 원제. <Inferno>신곡1부인 <지옥> 편이다.




* 242, 243

 




 우리은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가 상상력을 발휘해 그린 것처럼 비너스가 흘린 젖[주10]에 소용돌이치는 나선 형태를 더해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주10] 인용문은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의 그림 <은하수의 기원>을 언급한 내용이다. 틴토레토는 그리스 신화로 전해지는 우리은하의 기원을 묘사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Zeus)는 전쟁에 참전한 암피트리온(Amphitryon)으로 변신하여 그의 아내 알크메네(Alcmene)와 동침했다. 알크메네는 임신하여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아기 헤라클레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헤라(Hera)가 잠든 사이에 젖을 물리게 했는데, 잠에서 깬 헤라는 아기를 밀쳐냈다. 이때 헤라의 가슴에 흘러나온 모유는 밤하늘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가 되었다고 한다. 틴토레토의 그림에 묘사된 여신은 비너스(Venus)가 아니라 헤라다. 그림 오른쪽에 헤라를 상징하는 공작새가 있다.





* 253

 




 태양계의 주요한 행성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로마 올림픽 신들[주11]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주11] 올림픽이 아니라 올림포스(Olympos)’. 올림포스는 열두 명의 신이 모여 있다고 전해지는 산의 이름이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유래된 단어다.





* 254




 

 갈릴레이는 지역의 유력 인사들에게 자신의 페르스피실룸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마르크스 바실리카[12]의 종탑을 보여 주고, 이 도구로 바다 멀리에 있는 배를 얼마나 더 잘 볼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 이것이 상업적이나 군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2] 마르코 바실리카(Basilica San Marco)





* 271





이탈리아의 미래학자 겸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 [주13]



[주13]이탈리아의 미래주의(Futurism, 미래파, 미래주의자) 화가였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유행한 근대 예술 유파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과거와 전통 예술을 거부하고, 기계의 역동성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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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갑니다
미리엄 엘리아.에즈라 엘리아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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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나는 미술을 무지[1]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무지 어려워요. 그래서 나는 현대미술에 무지[2]해요.










현대미술이 어려워도 괴롭혀도 나는 안 울어요.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요? 울면 바보예요. 나는 웃으면서 미술관에 갑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미술관에 갑니다5살 미만 유아를 위해 쇠똥구리 출판사가 펴낸 배움 책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쇠똥구리 출판사는 영국의 조그만 마을 똥골(Dunging)’[3]에 있는 교육 전문 출판사입니다출판사의 신조는 배움은 똥에서 온다입니다


본문 밑에 새로운 낱말이 있어요. 책에 나온 모든 낱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하세요. 아이가 단어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쓰도록 하세요. 교육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자녀에게 조기 교육을 해주고 싶은 현명한 부모라면 배움 책시리즈를 선택하세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현대미술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요즘 나오는 작품들의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미술품 하나 사들이세요. 당신이 소유한 미술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매력적인 상품이 되거든요. 당장 미술품을 살 돈이 없으면 아이에게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현대미술을 알아야 해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현대미술의 모든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책을 읽은 자녀는 미술품을 가지고 노는 벤처 자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길 원하는 부모는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미술관을 죽도록 즐기는[4] 방법을 알 수 있어요.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자녀에게 죽도[5]로 때리면서 가르치지 마세요. 자녀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미술관에 같이 가도 늦지 않습니다. , 자녀가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자녀가 미술관을 좋아하도록 세뇌[6]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수전(Susan)(John)은 엄마와 함께 미술관에 갑니다. 엄마는 술은 싫어해도 예술은 좋아해요. 미술관에 간 엄마는 예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상태예요. 하지만 수전과 존은 미술품을 볼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쓰러질 지경입니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이 책을 보자마자 당혹스러워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자녀에게 이렇게 얘기하세요. 이해 안 되는 게 좋아.”







만약에 자녀와 미술관에 같이 가게 되면 부모인 여러분이 직접 도슨트가 되십시오. 호기심 반 의문 반을 품은 자녀가 부모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겁니다. 당신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세요. 되도록 어려운 용어를 섞으면서 말하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대답을 잘하면 아이들은 현대미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서 질문을 계속하는 아이가 있을 거예요. 더 이상 대답하기가 곤란하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직접 검색해 보라고 말하세요요즘 아이들은 책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거든요. 


미술관에 갑니다를 구매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자녀가 이 책을 수백 번 지겹도록 읽었는데도 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어요. 책값과 자녀가 이 책을 읽는 데 허비한 시간이 아까울 거예요. 그렇지만 쇠똥구리 출판사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꾸짖지 마세요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한 아이는 지혜롭답니다. 본인이 무지하다는 것을 잘 아는 자녀는 미래에 소크라테스(Socrates) 뺨치는 철학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에게 현대미술 대신에 철학을 공부하도록 권장해 보세요. 쇠똥구리 출판사는 올해에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리즈 이름은 개똥철학 배움 책입니다. 쇠똥구리 출판사는 신조를 철저히 지킵니다비록 중소 출판사이지만, 직원들은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지탱할 정도로 똥이 단단합니다.


쇠똥구리 출판사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미술관에 갑니다미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이걸 기서[7]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새로운 낱말 사전>

 


[1] 무지: 아주 대단히

[2] 무지: 無知. 아는 것이 없음

[3] Dunging: 비료를 뿌리는 행위, 배설

[4] 죽도록 즐기기: 미국의 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의 저서 제목

[5] 죽도: 대나무로 만든 칼. 한때 교사들이 선호했던 사랑의 매’였음.

[6] 세뇌: 가스라이팅

[7] 기서奇書, 내용이 기이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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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2-10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cyrus 2024-02-11 19:16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벌써 마지막 연휴 하루가 남았어요. 시간이 금방 흘러가서 아쉽지만, 마지막 날도 즐겁게 보내세요. ^^

stella.K 2024-02-1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 세뇌라고 하면 될걸 어느 때부턴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가스같이 화~악 퍼졌어. ㅋ 역시 책을 많이 읽더니 언어유희가 장난이 아니군. 죽도 가지고 널 죽도록 패 줄 수도 없고. ㅋㅋㅋ 암튼 명절 연휴 잘 보내라.^^

cyrus 2024-02-11 19:18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잘 읽어 보면 개그 포인트가 여러 개 있어요. ㅎㅎㅎ 마지막 연휴 하루 남았지만, 내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출산의 배신 -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
오지의 지음, 박한선 감수 / 에이도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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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 여행스케치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1994) 노랫말 중에서 -




Ignorance is bliss. 모르면 행복하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어 보자. 알면 불행하다. 정말 그렇다. 부정적인 상황을 직시하면 불안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모르는 게 약이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다. 그럴 때 눈 딱 감고 ‘몰라(mola)라는 약을 꿀꺽 삼키면 된다. ‘몰라는 약국에 팔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이 약을 지어서 처방한다. ‘몰라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기약보다 제일 많이 먹은 약이다꼭 알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알고 싶지 않을 때 몰라를 꺼내 먹는다미혼인 사람들이 회피하고 싶은 대화 주제가 결혼이라면 기혼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대화 주제는 출산과 육아다. 이들 모두 연휴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몰라를 먹는다. 


출산은 인간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최대 고비다. 출발선을 통과하기도 전에 죽는 아기가 있다. 출발선을 너무 빨리 넘어선 아기는 오래 살지 못한다. 의사들은 이 아기를 미숙아로 진단한다.


우리는 출발선을 무사히 통과해서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그런데 출산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불편해한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들은 국가 소멸로 이어지는 저출산 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산고(産苦). 그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거부감을 느낀다. 예전의 날씬한 몸으로 되돌리기 힘들다막연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출산을 피한다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출산을 실제로 알고 나면 더 무섭다이럴 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몰라를 남용한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그들은 행복하다. 의도적으로 무지를 복용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출산이 남의 이야기로 들린다.


남자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입 밖으로 먼저 꺼내기 쉽지 않은 대화 주제이다. 요즘 남편들도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회사 눈치 보느라 마음 놓고 활용하지 못하는 배우자들이 여전히 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 줄 안다. 그래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남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아서 신체적 · 정신적 변화를 알지 못한다.


출산의 배신: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는 출산과 양육의 세계를 덮고 있던 무지와 외면의 베일을 확 벗긴 책이다저자는 산부인과 의사다. 임신, 출산, 육아 경험이 있으며 누구보다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다. 그렇지만 저자는 산부인과 의사가 알고 있어야 할 지식과 엄마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현실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지식과 현실이 서로 어긋나면서 생긴 거대한 틈에 빠진 저자는 출산과 양육이 왜 힘든 일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임신과 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본인의 경험에 과학적 지식을 입혀서 설명한다임신, 출산, 육아 활동을 아우르는 삶을 전문 용어로 재생산이라고 한다저자는 여성의 재생산 활동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출산과 양육의 부정적인 면모만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


인구 늘리기에만 골몰한 국가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한다. 심지어 출산과 육아를 한 번 경험한 여성에게도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재촉한다. 국가의 명령에 충실한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갖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여자는 어머니가 되면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모성이다. 몸이 아프더라도 자식 건강이 우선이다.’ 아이와 함께 산전수전 겪어봤으니 다음 출산과 육아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 반면 자신들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비난하고 질책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엄마의 양육 방식을 문제 삼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넘긴다우리 사회는 여성의 재생산 활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일단 해보라는 식으로 밀어붙인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


출산의 배신출산과 육아가 여성만 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이 출산을 장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출산 문화를 비판한다. 출산과 육아는 상당히 까다롭고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생산 활동이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으며 상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불편해하고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는 힘든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출산과 육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낀다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관심이 점점 줄어들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출산과 육아를 모르는 것은 절대로 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독이 된다무지함이 지속되면 우리 삶에 아주 밀접한 단어인 출산과 육아가 희미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다그뿐만 아니라 임산부와 어머니의 삶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출산에 대해서 누구나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출산이라는 인생의 첫 출발선을 넘은 다 큰 애들아닌가



출산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 cyrus의 주석

 

 


* 38

   




 재생산과 연관된 호르몬의 파고는 확실히 평소와 다른 감정 상태를 만든고[주1] 평소에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1] 만들고의 오자.





* 196~197




 

 암컷은 언제나 스스로 낳은 아기가 분명한 자기 자식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수컷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특히 우리의 유인원 친척들처럼 다부다처제나 할렘[2]을 이루고 살아간다면 더욱 확신이 떨어진다.



[2] 할렘(harlem)’은 빈민가의 대명사로 알려진 미국 뉴욕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중동 국가의 일부다처제로 잘못 알려진 용어하렘(harem)’으로 표기해야 한다. 하렘은 무슬림 여성들만 모여 있는 방을 뜻한다. 그런데 동양 문화를 과대평가한 18~19세기 유럽 지식인들, 소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빠진 그들은 하렘을 퇴폐적인 일부다처제로 왜곡해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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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가 처음으로 서점 <일글책>에서 진행되었다. ‘두루미의 의미는 예전에 쓴 <어두운 방, 밝은 방>이라는 제목의 갤러리 감상문에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첫 번째 선정 도서]

* 가와우치 아리오, 김영현 옮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다다서재, 2023)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경계선을 한 걸음씩 뛰어넘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다. 그 결과 세계를 두루두루 보는따뜻한 시선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가와우치 아리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중에서, 205)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전시회 및 갤러리 감상문을 모아놓은 카테고리 이름과 예술 책 읽기 모임을 두루미로 정했다.아름다울 미()’를 뜻하는 영어 ‘me’,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시회에 가서 예술작품을 두루두루 보는’ 개인적 경험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두루미두루미 첫 번째 모임 선정 도서는 당연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은 정오에 마무리된다. ‘두루미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빡빡한 일정이다. 오전 독서 모임이 끝나면 쉬거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도 긴 시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사이에 나는 책방 <환상 문학>에 갔다. <환상 문학>은 알라딘 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책방에 미리 주문한 책과 알라딘으로 주문한 책들을 받으러 두 곳을 들렀다.


두루미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다시 훑어보지도 않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모임을 잘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난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주말이면 책방에 가서 (책을 사고), 책방지기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일상이 올해로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은 2011년 서울 종로에 진행된 펭귄 클래식고전 읽기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때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의 인연이 이어져서 달의 궁전(달궁)’이라는 모임에 합류했다. 대구 독서 모임은 우주지감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으로 같은 해에 시작했다. 지금은 <일글책>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으며 달궁은 간간이 참여하고 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짧게, 때로는 길게 만났다. 모임에 꾸준히 나오다가 갑자기 불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모임 진행 분위기에 불만을 느꼈다. 이들은 독서 모임이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고, 끝내 불참을 결정했다. 그런 분들을 봤기에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 시작 전에 미리 말했다.

 


 “오늘 모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각자 하고 싶은 말하세요. 모임 다 끝나고 나서야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마세요.”

 


자유로운 대화 진행에 걸림돌이 될 만한 모임 발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독서 모임은 편안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한다.


모임장은 공연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연출가의 역할과 비슷하다내가 언급한 연출가는 공연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와 무대 장치 등에 꼼꼼히 보고 개입하는그런 흔한 연출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예전에 희곡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에 갔을 때책방지기이자 배우 권주영 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연출가의 역할은 뭐에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봤다주영 님은 배우들이 편하게(능동적으로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이 지향하는 연출이라고 대답했다짧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대화였지만배우에게 제대로 배우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독서 모임을 진행하게 되면 저런 연출가처럼 되어야겠다고생각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두루미모임 진행은 처음이 아니다. 생애 첫 독서 모임 진행은 펭귄 클래식모임에서 시작했다. 그때 읽은 책이 니체(Nietzsche)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그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모임 발제를 입술과 심장이 떨면서 말했던 순간은 잊지 못한다.
















* 웬다 트레바탄, 박한선 옮김 여성의 진화: ,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2019725<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 선정 도서는 여성의 진화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내가 추천한 과학책이었다. 모임 장소는 침산동에서 고성동으로 이전한 지 얼마 안 된 <서재를 탐하다>였다. 7월 모임을 위해 발제 세 개를 만들었지만, 그때도 발제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분들에게 당부했다. 완독에 쫓기지 말고, 다 못 읽더라도 각자의 관심사와 관련 있는 내용은 꼭 읽어오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기. 5년이 지났는데도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방식이 한결같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 숀 캐럴, 김영태 옮김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공간, 시간, 운동(바다출판사, 2024)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은 자신의 책 공간, 시간, 운동 서문에 자신의 꿈을 밝혔다.

 


 나의 꿈은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물리학에 관해 열정적으로 자기 의견을 알리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친구들과 선술집에 몰려가 무엇이 최적의 암흑물질 후보인지, 또는 무엇이 최상의 양자역학 해석인지를 놓고 떠들고 놉니다.

 

(서문, 9)



독서 모임에 늘 환영받지 못한 책과 주제가 있다. 과학, 정치, 종교다. 이런 주제는 어렵고, 지루하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부담스럽게 만든다. 독서 모임 선정 도서 대부분은 소설, 에세이, 또는 읽기 편안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다그리고 독서 모임을 위한 책을 추천할 때 신간보다는 이미 많이 알려진 구간 도서를 선호한다. 올해 나의 꿈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읽고, 자기 의견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다내가 좋다고 생각한 책들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에 관한 것들이다.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좋은 책을 보는 나의 안목을 증명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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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3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을 저도 몇개 하고 있는데, 저도 같은 고민입니다. 편안하게 의견을 말하게 하자니 다른 회원이 불편해 하고...^^ 시간에 쫒기고...

두루미 이름 찾아보러 갑니다.

cyrus 2024-02-09 10:09   좋아요 0 | URL
<소모임>이라는 어플에 <일상 속의 글과 책>이라는 모임명이 있어요. 제가 그곳에 소속되어 있어요. <일상 속의 글과 책>이 책방 ‘일글책’의 뜻이고 이곳이 <두루미> 모임 장소에요. <소모임>에 모임 공지를 올리면 편해요. ^^

blanca 2024-02-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쳐드리고 싶네요. cyrus님이라면 충분히 꿈을 이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24-02-09 10:11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시작해 보려고요. 모임 진행을 하게 되면 책을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읽고, 리뷰도 잘 써지겠죠? 제가 모임을 만든거니까 모임 후기도 꼭 써야겠어요. ^^;;

꼬마요정 2024-02-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멋져요!! 꼭 꿈을 이루실 거예요!!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 일단 먼저 이해를 해야 입이라도 떼볼텐데 말이죠.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힘을 내야겠습니다!!

cyrus 2024-02-09 10:14   좋아요 1 | URL
저는 생각이 많으면 실행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한 권을 다 읽은 뒤에 모임 공지글을 바로 올리려고 해요. 저를 제외한 두 명만 모였으면 좋겠어요. ^^

서니데이 2024-02-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주말에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나요. 독서모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편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책과 주제를 선택해서 같이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없다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거나 선택하지 않을 내용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잘읽었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02-09 10:18   좋아요 1 | URL
네, 평일 저녁에도 독서 모임에 참석하거나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칼퇴근 시간이 생기는 날이 잘 없는 편이라서 쉽지 않아요. 6~7시에 마치면 좋은데, 잔업을 하면 8~9시에 마치곤 해요. 그래서 주말 모임을 선호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