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

 

EP. 23







환상 문학

마르틴 베크 시리즈 완간 기념 굿바이 북토크

2024128일 일요일 오후 2시~4시





일하다가 작업복 안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몰래 꺼냈다. 집중력은 단 1초 만에 내 엄지손가락을 지나서 인스타그램 앱을 가리켰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장르 소설 서점 <환상 문학> 계정의 게시글이었다. 그 글은 <환상 문학>에서 진행되는 북토크 홍보물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 하고 봤다. 엄지손가락에 머무르던 내 집중력이 홍보물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김명남. 김명남? 김명남! 아니, 이분이 <환상 문학>에 오신다고! OMG!


김명남 님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했다. 과학 도서, 에세이,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번역했다. 이분이 번역한 책들의 저자는 다음과 같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진화론에 관해서 도킨스와 치열하게 논쟁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여덟 마리 새끼 돼지), 글 잘 쓰는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고맙습니다), 미셸 오바마(비커밍),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역자님은 마이 버자이너, 질의응답 등 여성 의학 관련 책들도 번역했다





[내가 읽고 서평을 쓴 김명남 역자의 책들]

















*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창비, 2018)

 

* [절판] 에릭 셰리 일곱 원소 이야기: 주기율표의 마지막 빈칸을 둘러싼 인간의 과학사(궁리, 2018)

 

* 옐토 드렌스 마이 버자이너: 세상의 기원, 내 몸 안의 우주(동아시아, 2018)

 
















*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열린책들, 2016)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외 지구의 속삭임(사이언스북스, 2016)

 

* 조 슈워츠 똑똑한 음식책: 귀 얇은 사람을 위한(바다출판사, 2016)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2016)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 [절판] 베른트 하인리히 생명에서 생명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 존재의 순환을 관찰한 생물학자의 기록(궁리, 2015)










 








* 리처드 C. 프랜시스 쉽게 쓴 후성유전학: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시공사, 2013)

 

* 닐 슈빈 내 안의 물고기: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김영사, 2009)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김영사, 2007)

 




역자님의 책들을 읽었고, 서평과 에세이를 썼다. 서평을 쓰지 않았지만, 완독했거나 읽다가 만 역자님의 책들도 가지고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함께 씀, 김명남 옮김 테러리스트(엘릭시르, 2023)




그런데 역자님이 범죄소설을 번역한 사실을 <환상 문학> 공지글을 보고 알았다. 더 놀라운 건 범죄소설 한 권이 아니라 시리즈로 된 열 권을 전부 번역했다! 스웨덴 출신의 마이 셰발(Maj Sjowall)페르 발뢰(Per Wahlöö)라는 두 작가가 쓴 <마르틴 베크>(Martin Beck) 시리즈







마르틴 베크는 범죄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인 형사 이름이다. 셰발과 발뢰는 연인 관계다. 두 사람을 이어준 건 글쓰기와 마르크스주의였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회파 범죄소설이다작년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 마지막 작품 테러리스트가 출간되었다.

     

사회파로 분류되는 범죄소설과 추리소설 주인공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명탐정이 아닌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에 나오는 범인 역시 주인공이다.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범인이 죄를 저지르는 동기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무조건 욕하면서 손가락질해야만 하는가?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은 독자들의 분노를 유도하기 위해 범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드는 사회 문제를 제대로 보라고 가리킨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함께 씀김명남 옮김 《웃는 경관》 (엘릭시르, 2017)




<환상 문학> 책방 주인장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웃는 경관을 내게 추천했다. 그러면서 북토크에 오라고 권유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랑해지는 나는 북토크에 참석하기로 했다.



















* [절판] 장경현, 김봉석, 윤영천 탐정 사전: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프로파간다, 2014)




솔직히 말하자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웃는 경관을 읽는 것보다 역자 님의 친필 사인을 받고 싶었다. 비록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했다







전 세계 범죄 · 추리소설에 등장했던 탐정과 형사들을 소개한 탐정 사전을 참고했다. 이 책에 마르틴 베크를 소개한 항목이 있다.








북토크는 추리소설가 김세화 님이 진행했다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분답게 <마르틴 베크시리즈의 작품성이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마르틴 베크시리즈는 북유럽 범죄소설의 시초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지자헨닝 만켈(<쿠르트 발란데르 경감시리즈)과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시리즈)이 나올 수 있었다
















김세화 기억의 저편》 (몽실북스, 2021)




방송 기자로 일한 적이 있는 작가님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들의 성격 및 말투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사회파로 분류할 수 있는 장편 기억의 저편을 썼으며, 올해 여름에 새 장편소설을 발표할 거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역자님도 추리소설 마니아다. 그래서 역자님은 중년 형사가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사건과 인물을 냉정하게 묘사한 소설.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문학 유파이며 가장 유명한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레이먼드 챈들러)을 좋아한다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작가님과 역자님의 대화를 가까이서 듣고 나니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 권을 다 안 사도 되겠‥…. 다 살 수 없어도 시리즈 첫 번째 책부터 읽어봐야지. Hej, Martin Beck! 

     



‘Hej’는 스웨덴어로 안녕하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2-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좋았겠구만. 번역작이 꽤 많네. 열심히 사시는 분이시네. 그럼 영어는 기본이고 스웨덴어 전공이신가? 난 김봉석 님 보니까 반갑네. 이분 책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탐정사전 절판이라니 품절의뢰하면 알라딘이 찾아 줄랑가 모르겠구만.
근데 OMG는 무슨 뜻이니?

cyrus 2024-02-03 05:55   좋아요 1 | URL
역자님이 영어 전공이라서 영어로 번역된 마르틴 베크 시리즈로 번역을 시작했대요. 그런데 영어 번역본이 스웨덴 원서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은 거라서 결국 원서를 대조하면서 번역했다고 해요. OMG는 ‘Oh, My God’의 줄임말이에요. 유행한 지 꽤 오래된 신조어에요. ㅎㅎㅎ

blanca 2024-02-0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역자 번역서 중 <면역에 관하여>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기회가 되면 헨닝 만켈 책 읽어보고 싶어요. 유익한 시간 보내셨네요.

cyrus 2024-02-03 06:00   좋아요 0 | URL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 헨닝 만켈의 발란데르 경감 시리즈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작가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 소설에 묘사된 주인공의 성격과 태도가 비슷한 걸 확인할 수 있대요. ^^
 




사실 오늘 고전 읽기 모임에 안 오려고 했었다. 한 주에 한 번 플라톤(Plato)의 대화편을 읽고 있다. 오늘이 플라톤 대화편 읽기 마지막이다. 1월 고전 읽기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화편은 향연이다. 글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도서출판 숲, 2012)

 

* 플라톤, 강철웅 옮김 향연(아카넷, 2020)




향연을 다 읽긴 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해 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향연의 주제는 사랑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오늘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플라톤 특유의 긴 문장을 눈으로 따라가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한 향연 참석자들의 견해 일부에 공감한다고 했다. 나도 이 향연에 껴서 사랑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또한 지혜라고 했다(소크라테스의 변명/변론).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서로 다른 내 삶과 연인의 삶이 포개진 채 살아보면 사랑이라는 감정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연애관이 정립된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이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인을 만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지 않았으면서 사랑은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태도는 솔직하지 못하다. 난 아직 사랑을 모른다. 나의 무지함을 알고 있어서 오늘 모임에 참석해야 말지 고민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랑꾼이다. 그는 자신과 성격이 정반대이자 정념에 쉽게 사로잡히는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랑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다친 알키비아데스를 구출했다. 동료 장군들은 전쟁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알키비아데스가 상을 받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용기에 감탄한 알키비아데스는 장군들에게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소크라테스라고 건의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상을 양보한다(향연220e, : 368).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연인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사랑꾼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 아몬드 단거, 장미성 옮김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철학자의 탄생(글항아리, 2022)




플라톤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한 사람의 생애를 정확하게 기술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소크라테스는 수수께끼에 가려진 철학자다. 비록 가설이지만,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사랑 앞에서 진지한 소크라테스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외모육체적 욕망을 경계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년기에 들어선 소크라테스의 모습만 보고 있다.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과 기타 문헌들을 근거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소크라테스를 새롭게 복원한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행동이 민첩한 군인이었고, 레슬링 선수였고,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했고, 연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 플라톤, 이기백 옮김 《크리톤(아카넷, 2020)

* 플라톤, 전헌상 옮김 《파이돈(아카넷, 2020)




그동안 나는 크리톤파이돈에 묘사된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따져가면서 읽었다크리톤에서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가 나약해 보였다파이돈의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변하다고 주장하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그렇지만 향연을 읽었을 땐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만약 플라톤이 향연에 부제를 달았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향연에 들어오지 마라.’ [] 운이 좋게도 사랑을 진지하게 논하는 자리인 향연에 나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짧든 길든 연애를 하고 난 후에 다시 향연에 참석하고 싶다. 과연 그날이 올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 플라톤이 세운 학교인 아카데미아(academia)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의 출처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가 훨씬 지나고 나온 거라서 실제로 있었던 문구인지 불분명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24-01-27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해서 아기도 있지만, 아직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하는거지 알수 있는건 아닌 모양입니다...

cyrus 2024-02-01 05:57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사랑을 잘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SNS에 연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짧은 영상들이 많이 나와요.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사랑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거든요.

페크pek0501 2024-01-28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가(체홉이었는지...) 소설에서 그랬어요. 사랑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고요. 사람에 따라 달라 여러 경우가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로 이해했어요.
사랑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작가로 알랭 드 보통을 꼽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소설을 읽으니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 후로 발표된 작품들 중에도 사랑에 대한 소설이 많은데 소설이면서 사랑에 대한 에세이로 읽혔어요.^^

cyrus 2024-02-01 05:59   좋아요 1 | URL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정말 유명한 책인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알랭 드 보통이 쓴 다른 책들 몇 권은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유독 이 책은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네요. ^^;;
 




지난주 목요일에 비가 조금 내렸다. 쉬는 날이면 책방이든 카페든 책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편안한 장소를 찾으러 나간다. 비가 내린 목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플라톤, 이기백 옮김 파이돈》 (아카넷, 2020)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플라톤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 (도서출판 숲, 2012)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장소이자 책방인 <일글책>에서 읽으려고 한 책들을 가방에 담았다. 내가 읽고 있는 책과 독서 모임 참석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을 챙겼다. 플라톤(Plato) 파이돈이 독서 모임 선정 도서다. 그런데 토요일이 거의 코앞에 왔는데도 정작 <일글책>에 오면서 읽은 책은 파이돈이 아니었다.


책방 주인장이 작년에 직장인이 되면서 평일 <일글책>은 책방 주인장을 대신해 일일 책방지기 두 분이 지키고 있다. 책방지기 한 분은 책방 근처 연극 극단에 소속된 배우다. 또 다른 책방지기는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회원이며 별칭은 조약돌이다


목요일은 약돌 님이 책방에 출근한 날이었는데 파이돈을 읽었다. 이미 파이돈을 읽기 시작한 회원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약돌 님은 파이돈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를 상당히 어려워했다. 고전 독서 회원들의 불만을 듣고 있으니 얼른 파이돈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고, 파이돈를 읽기 시작했다.


아테네 법정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명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린다. 소크라테스는 재판 결과를 받아들인다. 독약을 마시기 전에 자신을 따르는 두 명의 추종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다. 그래서 철학자인 파이돈(Phaedo)과 피타고라스학파에 소속된 에케크라테스(Echecrates)의 증언을 토대로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한 대화를 복원한다. 이 대화편이 파이돈이다.


대화편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병에 걸려서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플라톤이다. 사실 파이돈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에 가깝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 개념어 이데아(idea)’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아는 모든 존재의 순수한 원형(原型) 또는 참된 실재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데아는 하늘 어딘가에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고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몸과 철저히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 이 순수한 영혼은 몸과 결합하기 전에 이미 이데아를 알고 있다. 플라톤이 된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데아를 상기한다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영혼은 자신이 체득한 이데아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나 역시 파이돈을 힘겹게 읽었다. 이미 이 책의 주제를 잘 알고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찬찬히 살펴보는 게 지루했다.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영혼 불멸을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돌 님은 소크라테스가 박코스 신도를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해 온 사람이고, 자신이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했다는 발언(69d~69e)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박코스 또는 바쿠스는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와 비슷하게 묘사된 로마의 신이다. 바쿠스 축제는 떠들썩하고 무질서하기로 유명하다. 바쿠스 신도들은 축제가 되면 미쳐 날뛴다(웃자고 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성을 중시하는 소크라테스는 욕망에 몸을 맡기는 바쿠스 신도들을 왜 긍정적으로 평가했을까정말로 궁금하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성을 근거로 내세워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며 초연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회원인 소소은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인식에 거리를 두었다. 소소 님은 살려고 하는 의지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을 힘들지만, 그대로 어떻게든 견디면서 살아가는 태도. 살아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소소 님의 생각은 마치 니체(Nietzsche)() 철학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니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을 비판했다. 니체는 관념적인 이성과 영혼을 도덕적으로 유지하는 고대 철학보다는 몸에서 우러나오는 욕망을 발현하는 철학을 선호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김남우 옮김 비극의 탄생(열린책들, 2014)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

* 프리드리히 니체,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이 사람을 보라(아카넷,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이동용 옮김 이 사람을 보라(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2)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적 예술(이성, 질서)’디오니소스적 예술(감정, 무질서)’의 합일을 강조한다. 두 가지 개념이 합쳐진 것이 바로 고대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데, 이성을 중시한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면서부터 비극의 본질이 변색되었다고 주장한다니체는 자신이 쓴 책들을 소개한 이 사람을 보라에서 비극의 탄생》이 그리스(예술)을 와해시킨 소크라테스를 최초로 비판한 책이라고 자평했다.


플라톤의 글이 나만 지루하게 느꼈던 것은 아니다. 니체 역시 도덕과 최고선을 설파하는 플라톤에 반감을 느꼈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우상의 황혼》 (아카넷, 2015)



 플라톤은 지루하다. 결국 플라톤에 대한 나의 불신은 깊은 곳에까지 이르고 있다.

 

(우상의 황혼중에서, 박찬국 옮김, 169~170)




몸과 정신을 철저히 구분하려는 소크라테스식 이분법을 비판한 회원들도 있었다. 나도 별로였다. 사실 난 플라톤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이분법은 상당히 오랫동안 서양철학의 기본 뼈대가 되었다. 이분법은 또 다른 이분법을 낳는다. 이성, 정신, 영혼을 중시한 철학자들은 남성이었다. 이것과 반대되는 감정, , 욕망은 모두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혔다.


고전 독서를 즐기는 분들 대부분은 텍스트를 눈으로 읽고, 그걸 머릿속에 입력한다. 고전 한 권을 다 읽으면 입에서 텍스트가 줄줄 나온다. 그들은 스스로 기뻐한다. ‘내가 어려운 고전을 다 읽었고, 제대로 이해했어.’ 이런 분들은 고전(사상)과 한 몸이 된 상태다. 고전을 너무 좋아하면 거리를 두지 못한다. 고전을 적당한 간격으로 거리를 두면서 읽는 일은 비판적 읽기를 뜻한다. 고전에 애착을 느끼면서 읽는 건 좋지 않다. 현재 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읽는 중이다. 위대한 두 철학자와 저 사이 중간에 니체가 서 있다니체 이외에 또 생각나는 철학자들을 부를 생각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4-01-2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씩 읽는 중이지만 니체나 쇼펜하우어에게 거리두기는 더 힘들게 느껴져요. 뭔가 압도적이기도 하고 와닿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요.ㅎㅎ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습니다.^^

cyrus 2024-01-27 20:39   좋아요 1 | URL
저는 쇼펜하우어를 읽어보고 싶어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요. 제목만 봐도 지루함이 느껴지는 책이지요.. ㅋㅋㅋㅋ 요즘 쇼펜하우어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던데, 정작 이 철학자의 대표작을 심도 있게 언급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알아가도록 노력해볼께요. ^^;;

blanca 2024-01-2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열심히 읽고 토론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영혼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저도 생각해 보니 믿는지...잘 모르겠어요.

cyrus 2024-01-27 20:40   좋아요 0 | URL
살다 보면 영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겠죠? ㅎㅎㅎ 일단 지금은 영혼을 믿지 않습니다.
 
여인형의 화학 공부 - 완전히 새로운 화학 입문
여인형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물리학, 화학, 수학. 자연과학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이공계 삼 대장이다. 자연과학대 소속 학생들은 삼 대장을 무찔러 넘어서야 한다.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성적이 날아간다. 대장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대장 두 명이 합세하면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진다.[주1] 물리학과 수학은 최강 단짝이다. 이 둘이 만날 때마다 이론과 법칙들이 태어났다. 두 대장이 과학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똑한 아인슈타인(Einstein)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물리학과 수학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애먹었다치열한 지적 결투 끝에 아인슈타인은 승리했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승전보를 남겼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특수상대성이론이다.[주2]


물리학과 수학이 너무 어려운 학문으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화학 공부의 어려움이 덜 알려진 편이다. 이공계 삼 대장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교과서 특유의 딱딱한 문체다. 교과서 문장은 눈으로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길고(만연체), 눈을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건조하다(건조체)여기에 전문 용어까지 가세하면 공부하기가 수월하지 않다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은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외운다.

 

여인형의 화학 공부(약칭 화학 공부’)교과서 같지 않은 화학 교과서. 이 책은 화학 교과서가 맞다. 저자 여인형은 화학 교과서를 집필한 이력이 있는 대학교수다. 저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용한 화학 교과서와 교재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내에 출판된 화학 교과서 대부분은 외국의 과학 교과서를 번역한 것이거나 외국 교과서의 주요 내용을 참고해서 쓴 것들이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문과 용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교과서 저자 또는 역자의 글쓰기 역량이 부족하면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단점이 많은 화학 교과서를 만난 학생들은 삼중고를 느끼면서 공부한다. 방대한 화학 이론과 생소한 전문 용어를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계속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장이 공부를 방해한다.


저자는 《화학 공부》에서 기존 화학 교과서와 차별화된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는 화학을 우리말로 설명하거나 풀어 쓰면 학생들이 시간적 · 정신적 부담을 덜어내면서 공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국어로 읽는 화학이었다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외워야 할 화학 지식이 있다. 특히 화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암기하는 것이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들이다저자는 자신만의 암기법을 알려준다화학 공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이 책을 화학 사전’처럼 읽을 수 있평소 궁금했거나 알고 싶은 화학 이론이나 용어가 색인(찾아보기)에 있는지 찾아본다.


교과서는 지식을 가르치려고 한다. 독자의 수준을 배려하지 않은 채 설명한다. 하지만 화학 공부는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그 지식이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화학 지식은 교과서나 연구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화학에 흥미가 있으면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화학 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우리 가까이에 있는 화학이라면 재미 삼아 공부해 볼 만하다.




 


[주1]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해군 대장 삼인방을 패러디했다. 가장 유명한 해군 대장 3인은 볼사리노, 사카즈키, 쿠잔이다. 이 세 사람의 높은 인지도 때문에 한때 삼 대장 관련 밈이 유행했다.

 


* 자연과학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이공계 삼 대장이다.


→ 그 눈 아래에서 처형대를 굳게 지키는 것은

해군본부 최고 전력

3인의 해군 대장’ 

(<원피스> 원작 550해군본부중에서)

 


*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성적이 날아간다.


해군 대장이든 사황이든 간에 전부 날려버리지 않으면!!!

난 해적왕이 될 수 없다고!!! (몽키 D. 루피의 대사)




[2] 필자가 쓴 B. 캐럴(Sean B. Carroll)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공간, 시간, 운동》(김영태 옮김, 바다출판사, 2024년) 서평을 참고할 것.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아인슈타인은 리만 기하학을 이용해 특수상대성이론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 56~57

 




 수소 원자에서 전자의 운동을 행성의 공전에 비유하고, 전자는 불연속적인 각운동량 값만을 가질 수 있다는 모형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였습니다. [3] 그 모형은 수소 원자의 방출 스펙트럼을 근거로 양자화 개념을 제시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와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 사이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전자가 등속 원운동을 한다고 가정해 수소 원자의 반지름(52.9m)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어 모형에는 수소 원자의 다른 특성, 그리고 수소보다 더 많은 전자를 가진 원자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존재했습니다. 더구나 양자 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원운동을 하면서 일정한 고정된 궤도를 따라서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며, 원자핵으로부터 보어의 수소 반지름만큼 떨어진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가장 크다는 식으로 서술되어야만 했습니다.


[3]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원자핵 주변에 원운동을 하는 전자 모형을 처음으로 제시한 과학자는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하지만 러더퍼드 원자 모형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운동을 하는 전자는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에너지를 잃은 전자는 원자핵과 충돌한다. 따라서 러더퍼드 원자 모델을 따르는 모든 원자는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지 못한다. 닐스 보어는 러더퍼드 원자 모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양자 개념을 도입한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보어가 네덜란드 물리학자로 잘못 소개되었다. 보어는 덴마크 출신이다.





* 60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의 이해는 파동 방정식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파동 방정식은 1926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고안했고, 그것으로 1932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4]

 

[4] 슈뢰딩거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도는 1933년이다. 이 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공동 수상자가 나왔는데, 또 다른 한 명은 폴 디랙(Paul Dirac)이다.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 88

 

 그는 노벨상을 받는 행운은 없었지만, 화학 분야에 정말로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화학과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5]

 

[5] 미국의 화학자 길버트 뉴턴 루이스(Gilbert Newton Lewis)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화학과를 설립한 사람이 아니다. 화학과가 처음으로 설립된 날짜는 1872312일이다. 길버트 뉴턴 루이스는 1912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화학 대학 제2대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출처: “A brief history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chemistry.berkeley.edu)





* 559


영국 과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 [주6]

 

[주6] 로버트 보일은 아일랜드인이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보일을 Anglo-Irish natural philosopher, chemist, physicist, alchemist and inventor’로 소개한다. 앵글로 아일랜드의 조상 대부분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 출신이다.





* 561~562

 

 프랑스 과학자, 자크 샤를(Jacques Charles, 1746~1823)의 이름을 딴 샤를의 법칙(C)은 일정한 압력(P)에서 기체의 부피(V)는 절대 온도(T)에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주7]

 

[주7] 샤를-게이뤼삭의 법칙또는 게이뤼삭의 제1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샤를은 1787년에 기체의 팽창 현상을 연구했으나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은 샤를의 실험 결과를 인용해서 1802년에 기체 팽창의 법칙을 발표했다.





참고 문헌

 





* 615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이덕환 옮김, 까치, 1995) [주8]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03) [주9]

 





* 616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책갈피, 2008) [10]



[주8] 초판 발행 연도는 1996이다. 2018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주9] 202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10] 2019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1-24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1-25 07:0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 의견도 검토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거나 더 보완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다시 정리해서 쓰겠습니다.

2024-01-25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6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1-27 20:46   좋아요 0 | URL
가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삶에 단점이 있다고 느껴요. 이 책 저 책에 관심을 두면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책 좋아하는 이미지가 상대방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될 수 없거든요. 누군가는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책 밖에 몰라서 대화를 재미없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인제 와서 독서의 재미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 늦었구요.. ㅋㅋㅋ 이대로 살아가려고요.

페크pek0501 2024-01-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같습니다. 그런데 6백 쪽이 넘네요. 요즘 벽돌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을 완독하고 나면 완전 뿌듯하겠어요.^^
 
코스미그래픽 -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마이클 벤슨 지음, 지웅배 옮김 / 롤러코스터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인류가 만든 가장 멀리 떨어진 물체(Most remote man-made object). 1977년에 지구를 떠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Voyager)가 남긴 기록이다. 이것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여행자(Voyager)는 지금도 여행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의 주인공 버즈(Buzz)가 자주 외치는 말이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이 말은 모험심을 품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를 품은 외로운 여행자의 심장은 그렇지 않다. 강철처럼 튼튼해 보이는 여행자의 심장이 구슬프게 떨린다. 가장 멀리 떨어진 여행자의 고독은 우주만큼 무한하다

 






골든 레코드는 혹시라도 만날지 모를 외계 생명체를 위해 만든 지구인의 선물이다. 금빛 선물 안에 지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들, 여러 나라의 음악과 인사말이 함께 실려 있다(‘안녕하세요도 포함되어 있다). 보이저의 역할은 성능이 우수한 기계로 이루어진 최고급 선물 포장지이자 NASA(미국항공우주국) 소속 우주 전문 배송직원이다. 십 년 전에 NASA는 보이저가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 성간우주(Interstellar Space)로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계속 멀리 날아갈수록 여행자의 수명은 닮는다. 여행자의 목소리도 희미해진다. 작년 12, 여행자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보이저, 보이저, 들리는가. 여행자는 말이 없다…‥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Cosmigraphics)는 지구인을 위한 골든 레코드. 이 책은 우주와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선물이다. 선물을 펼치면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주를 상상하고, 바라보고, 관찰한 지구인들이 기록한 시각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유심히 바라본 지구인은 고대 점성술사였다. 미래를 알고 싶은 점성술사는 밤하늘의 별이 어떻게 반짝거리는지 확인했다. 별빛이 희미하다 싶으면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별빛의 기운을 받은 하늘 바라기의 점성술은 정확하지 않다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지구인 소크라테스(Socrates)가 아테네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을 때 또 다른 지혜를 사랑한 지구인들은 자연에 관심을 쏟았다. 자연 철학자로 알려진 지구인들은 신화에 묘사된 우주를 지우려고 했다. 그들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우주를 새로 그려서 이해하려고 했다.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아닌 태양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구 중심의 우주가 지구인들의 머릿속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오랫동안 지배했다. 중세 천문학자와 종교인 모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의 천동설을 믿었고, 지구 중심의 우주를 제법 멋지게 그렸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조심스럽게 태양 중심 우주를 그렸다. 지동설은 그가 영원히 잠들어 우주로 떠난 뒤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망원경을 비롯한 관측 기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지구인들은 행성과 별을 관찰했다. 비록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눈동자에 맺힌 우주를 그렸다. 천문학자와 화가들은 여백처럼 남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붓에 묻혀서 우주를 그럴듯하게 묘사했다







과거 지구인이 생각한 우주는 지구가 중심에 있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천문학이 발전될수록 우주의 형태를 묘사한 시각 자료들이 다양해졌다. ‘천문학은 점성학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실증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고, ‘자연 철학자는 가설을 검증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우주의 형태뿐만 아니라 색감도 달라졌다. 우주 그림의 여백에 희미한 상상의 색깔 대신에 명확한 과학의 색깔이 입혔다. 과학과 천문학자의 시대에 나온 우주 그림은 과거에 비해 더 명징해졌다지금은 슈퍼컴퓨터가 지구인 대신에 우주를 그린다. 슈퍼컴퓨터는 축적되어 온 우주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서 가늠하기 어려운 광활한 우주와 셀 수 없이 많은 별, 행성, 위성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묘사할 수 있다.









코스미그래픽은 한 권의 타임캡슐이다. 이 타임캡슐을 개봉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든지 타임캡슐을 펼칠 수 있다. 거기에 담긴 수많은 우주 그림은 미래의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하늘과 우주에 호기심을 높이 쏘아 올린 고대 지구인들은 지구가 영원히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 우주를 상상했다. 망원경으로 자신의 눈빛을 쏘아 올린 근대 지구인들은 천동설의 지배를 벗어났다. 로켓과 우주 탐사선을 쏘아 올린 현재 지구인들은 우주 전문 배송직원들이 보내는 자료들을 받아서 계속 커지고 있는 우주를 조사하고 있다서로 다른 시대를 살다 간 지구인들의 그림 편지에 묘사된 우주는 제각각 다르다. 어떤 우주 그림은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면, 또 다른 우주 그림은 예술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우주를 아름답게 그린 회화 작품 중 하나다). 슈퍼컴퓨터와 우주 탐사선이 정확히 그린 우주는 그림이기보다는 기호로 가득한 지도에 가깝다. 미래에 우주를 여행하는 지구인들이 우주 지도를 참고할 수 있다.


우주 그림은 이미 지구를 떠난 사람들의 입이 되어준다. 편지에 동봉된 우주 그림은 다양하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우주의 목소리는 비슷하다. 고대인들의 지식과 예술이 버무려진 우주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지구인. 우주는 천국보다 아름답습니다

지구인,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 cyrus의 주석




* 20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활동한 트라키아의 레우키포스(Leucippus)[1]와 아르데라의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우주가 더 이상 작게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1] 레우키포스의 출신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고대 철학자들의 생애를 모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o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옮김, 나남출판, 2021, 2)에 따르면 레우키포스가 엘레아 사람인데도 누군가는 그를 압데라 사람 또는 밀레투스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번역본 2권 참조). 반면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는 레우키포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21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수석 사서였던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는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하짓날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정오가 되면 이집트 남부 도시 스웨네트(오늘날의 아스완)[2]에 있는 깊은 우물 아래로 태양 빛이 수직으로 들어오며 우물 속 물을 직접 비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 이 도시의 옛 지명은 시에네(Syene)’.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법을 설명한 대부분 책은 시에네로 표기되어 있다.





* 44~45

 

 이 그림은 1685[3]이 되어서야 뒤늦게 출판되었던 물리학자 뉴턴(Isaac Newton)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등장한다.

 

[3] 1687년에 라틴어로 쓰인 초판이 출간되었다. 본서 152쪽에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출판 연도를 ‘1687으로 쓴 문장이 나온다.





* 139


그리스의 태양신 아폴로 [주4]


[4] 그리스 표기법은 아폴론(Apollon)’이다. 아폴로(Apollo)’는 로마 표기법이다.




* 170


조르다노 부르노 [주5]



[주5] → 조르다노 브루노





* 192

 

 1781313, 윌리엄 허셜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 행성에는 천왕성이라는 이름이 붙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망원경을 통해 행성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동안 발견해 온 행성들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후 프랑스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는 해왕성[6] 너머에 또 다른 행성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천왕성의 궤도에서 당시까지 알려진 행성들의 효과만으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궤도의 섭동을 확인하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적용하여 여덟 번째 행성의 위치를 추정했다. 해왕성[6]의 발견 이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1846923, 천문학자 요한 갈레는 실제 관측을 통해 그 미지의 행성을 발견했고 르베리에의 추정을 입증했다. 르베리에는 이 발견의 공로를 함께 인정받았다.

 

[6] 문장이 이상하다. 위르벵 르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verrier)와 요한 갈레(Johann Gottfried Galle)해왕성을 발견했다. 원문에 오자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가 착각해서 천왕성을 해왕성으로 잘못 쓴 것인지 확인이 어렵다. 아무튼 해왕성 너머해왕성 발견 이후는 틀린 표현이다. 천왕성 너머 천왕성 발견 이후라고 써야 한다.





* 233

 

 우리는 쌍둥이자리를 카스토르와 폴룩스[7]라는 두 별로 이루어진 선으로 연결된 모습만 생각하지만, 사실 별자리 지도를 보면 쌍둥이자리는 미국의 일반적인 중서부 지역 주들처럼 불규칙한 상자 모양의 경계 안에 들어오는 한 영역을 아우른다.


[7] 카스토르(Casto)와 폴룩스(Pollux)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디오스쿠로이(Dioscuri)’로 알려진 신화 속 영웅이다. ‘폴룩스는 로마 신화에 적용되는 이름이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폴리데우케스(Polydeuce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238

 






 한국에서 제작한 이 둥근 구형 별자리 지도는 1777년에 출판되었다. 원래는 1395년 돌기둥에 새겨져 있던 것을 탁본으로 옮긴 것[8]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했다. 이 지도에 그려진 별자리들은 사람이나 동물 형태가 아니다. 이 지도를 연구한 한국의 학자들은 이 그림에 담긴 밤하늘이 대략 기원전 1년에 기원후 6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그림에 담긴 정보는 수 세기에 걸쳐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계속 배턴을 넘기듯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8] 1395(조선 태조 4), 돌에 새겨 만든 천문도는 국보 228<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태조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마모 상태가 심해서 판독이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687(숙종 13)<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졌다.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보물 제837호로 지정되었다. 238쪽 도판으로 실린 별자리 지도 위에 한자로 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 249

 

 이이손과 아르고호 선원들을 태운 함선 모양의 아래쪽 별자리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창안한 48개의 별자리 가운데서 지금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별자리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만든 함선 모양의 별자리는 너무 커서 이후 18세기 말 천문학자들에 의해 여러 개의 별자리로 쪼개졌다. 이 별자리는 (각각 함선의 용골, 선미 갑판, 돛대, 돛에 해당하는) 용골자리, 선미자리[9], 나침반자리, 돛자리로 나뉘어 있다.


[9] 국제천문연맹이 공인한 별자리 목록에 제외된 아르고자리에 대한 설명이다. 선미(船尾)는 배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또 다른 명칭은 고물이다. 선미자리가 아니라 통용되고 있는 명칭인 고물자리’로 써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4-01-2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글 읽으며 이 책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책 값이 장난 아니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글을 다 읽고 책 정보를 보러 가보니,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군요. 흑흑 이런 류의 책들은 항상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요.

cyrus 2024-01-27 20:48   좋아요 0 | URL
책이 생각보다 큽니다. 전시회 도록 크기와 비슷해요. 여기에 완전 천연색 도판이 실려 있어서 책값이 비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