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의미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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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 산울림 <너의 의미>(1984) 노랫말 -





<직립보행>대구 삼덕동에 있는 인문학 헌책방이다. 주말에만 여는 곳이다. 책을 매우 좋아하는 부부가 책방을 함께 지킨다. 내 집 드나들 듯이 <직립보행>을 찾아간다. <직립보행> 부부와 대화할 때가 무척 즐겁다. 한 번은 내가 부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두 분은 책 한 권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을 잘하시던데 왜 서평을 안 쓰시는 거죠?” 그러자 부부는 말없이 서로 마주 보면서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그땐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부부는 집이든 책방이든 늘 붙어 다니면서 각자 읽은 책이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한다. 책 읽고 느낀 생각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부부의 독서 취향은 다르지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각자만의 읽는 경험을 공유한다. 부부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한다. 매일 머리와 마음에 책을 품고 사는 부부의 애정 온도는 늘 따뜻하기만 하다. 부부는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읽는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있었다.


혼자서 책을 읽기, 혼자서 책이 많은 곳에 가기, 혼자서 책 속에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기.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기록하기.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주로 하는 일들이다. 내게 서평과 독후감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삶의 흔적이다. 내 글은 특별하지 않다. 내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써야 한다. ‘읽고 기록하는 나로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책에 대한 기억을 혼자만 알고 있다면 기록해야 한다기억이 또렷한 형체로 남으면 기록이 된다기록하지 않으면 읽는 경험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삶의 의미도 희미해져 버린다.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임주혜읽기의 의미는 책을 읽은 후에 기록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어디선가 책 읽고 글을 쓰고 있을 무명의 존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비타민 영양제. 저자에게 문학 읽기쓰는 일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읽기의 의미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이렇게 읽어볼 것을 제안한다. 당연히 독서의 시작점은 서문(즐거운 발견)이다. 그다음은 1부 제일 마지막 글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는다. 이 두 편의 글은 저자가 글로 쓴 자화상이다. 글로 쓴 자화상은 읽고 기록하는 인간으로서 살아온 작가 자신 모습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무조건 글을 쓰라는 건 아니다. <직립보행> 부부처럼 읽는 경험을 말로 표현해서 (책을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일 또한 희미해져서 잃어버리기 쉬운 내 삶을 알록달록 빛나게 해준다. 독서 모임은 읽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저자의 글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하지만 글이 서평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워서 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은 글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언제나 위대하다라는 글은 저자가 C. S. 루이스(C.S. Lewis)책 읽는 삶: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두란노, 2021)을 읽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글에 언급된 책은 책 읽는 삶이 아니라 루이스의 다른 책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2018)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2018). 책 읽는 삶은 루이스가 남긴 수많은 책과 편지 속에 있는 책과 독서와 관련된 문장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편집 상태가 엉망진창이다. 띄어쓰기가 안 지켜진 여러 개의 문장은 눈 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오자가 너무 많다. 오자 발견은 읽는 이에겐 썩 즐겁지 않다. 교정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오자가 책에 몰입한 눈동자를 멈추게 하는 건 화가 나는 일[]이다. 게다가 각주로 달린 책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다.




* 43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아마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녀의 글(세월, 진정한 장소, 사건 등)은 다 읽었을 거다.


* 88


염상섭의 삼대, 윤흥길의 장마도 읽지 않았다.



책 제목임을 알 수 있는 기호(‘《》’, ‘<>’)를 표시해야 한다.





* 59





 얼마 후 김화영 선생님이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을 읽게 됐는데, 다시 카뮈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읽었다는 장 지오노(Jean Giono)의 글 제목이 언급되지 않았다. 김화영 선생이 유일하게 번역한 장 지오노의 글은 나무를 심은 사람(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민음사, 2009)이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하루해는 어둠의 혼란된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난다~)은 김화영 선생의 책 행복의 충격: 지중해, 내 푸른 영혼》(문학동네, 2021)에 있는 구절이다.





* 67





또렸하게 → 또렷하게





* 69

 

 나는 기억한다. 매일 밤 8,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흐트러짐을 허용하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던 그의 모습을.



69쪽 문장은 남아있는 장면들이라는 제목의 글 속에 있다. 손석희장면들: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창비, 2021)에 대한 글이다. 손석희 앵커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한 JTBC 뉴스 프로그램 <JTBC news 9> 오후 2055, 즉 밤 9시에 시작했다. 손석희 앵커는 매일 밤 뉴스를 진행하지 않았다. 평일 방송은 손석희가, 주말 방송은 박성태 앵커가 진행했다.





* 149






<일리야스> <일리아스>

경계 → 경계가





* 157





문학?이라고 하면 너무 고고하게 느껴지려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물음표가 엉뚱한 곳에 있다.





* 164






포터에벗 → 포터 애벗





* 165쪽 각주






우찬 우찬





* 175






추긍하기 시작한다 추궁하기 시작한다.





* 193쪽 각주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임종성 옮김, 홍성사



C. S 루이스 C. S. 루이스


역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역자는 두 명이며 장경철과 이종태다.





* 195






굴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굵직한 절망들을 경험하고 견뎠다.





* 200~201





내 주변 사람들의 언어에는 진심 어린 격려와 사랑이 늘 베어있다.


* 201


 <대성당>이라는 장편으로 유명한 레이번드 카버. 그의 단편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카버가 세상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베다는 날이 있는 물건으로 끊거나 자르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동사다정확한 표현은 스며 있음을 뜻하는 배다(배어있다).


레이번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카버의 대성당(문학동네, 2014)은 장편이 아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 220





 <멋진 신세계>는 다양한 철학적 의미가 담긴 글로 유명하지만 사실 나는 헉슬리의 문체가 좋아서 책을 다시 펼친다. 소설의 차가운 배경과 달리 문제는 한없이 따뜻하다.


 

문제‘(헉슬리의)문체의 오자다. 멋진 신세계번역본은 여러 권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본인이 읽은 멋진 신세계의 역자와 출판사 정보를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는 어떤 번역본을 읽었길래 헉슬리의 문체가 좋다고 하신 걸까? 번역본이 아니라면 멋진 신세계원서의 문체일 수 있다.





* 238






위플 위플래쉬





* 252쪽






제레미 리프킨 → 제러미 리프킨

 




사실 발견된 오자가 몇 개 더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배꼽(정오표와 주석)이 배보다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 2부에 있는 글 제목이다. 저자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난다, 2022)를 읽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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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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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내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서평을 이러쿵저러쿵 줄거리 소개하면서 마무리로 ‘애서가는 꼭 읽어보십쇼로 쓴다면 시간 낭비다. 왜냐하면 책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만화인지 애서가들은 다 안다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기둥이자 알라딘 파워블로거 레샥매냐는 이미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대구 책방 <일글책> 주인장‘서울의 최해성(cyrus)서한용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엄청 재미있다고 추천했으면 끝난 거지. 두 책쟁이 사이에 낀 내가 가세해서 글로 추임새를 넣고 싶지 않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등장인물들의 얼굴에서 본인 모습이 보인다면 당신은 독서 중독자. 나만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그러면 내가 아는 독서 중독자들에게 책을 보라고 권하게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실제 독서 중독자들끼리 서로 돌려 가면서 보는 거울이다. 거울이 말한다. 너두 독서 중독자야.

 

인물들의 대화나 장면 곳곳에 실제로 출간된 책뿐만 아니라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잡다한 상식들이 나온다. 그래서 서평 대신에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속 대사나 장면에 대한 주석을 모은 글을 쓰려고 했건만, 책 뒤편에 작가가 직접 쓴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주석이 있다. 젠장!


하지만 그냥 조용히 넘어갈 최해성이 아니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초판 발행 연도는 2018년이다. 내가 읽은 책은 3쇄다. 비록 쓸데없는 정보이지만, 다음 쇄가 나오기 전에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옥에 티도 있다.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cyrus의 주석>

 


* 145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총 1,058쪽의 양장본이다. 닉네임이 경찰인 남자 인물은 한 손으로 벽돌 책을 들면서 읽는다. 실제로 저렇게 읽으면 손목이‥….






* 알아 둬도 쓸 덴 없는 작가 주석, 381

 




브릴 엠볼로2022년에 프랑스 리그앙(Ligue 1, 1부 리그)에 속한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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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26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난 이 책 아직 안 봤다. 만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 글고보면 난 아직 중독자는 아닌게벼. 근데 그리 재밌다며 별점은 만점이 아니구만. 역시 깐깐해. 쵝오!👍

cyrus 2023-07-29 04:53   좋아요 2 | URL
책 좋아하는 독자 중에 만화 속 대사나 장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만점을 줄 수 없었어요.. ㅎㅎㅎ

은오 2023-07-26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서재에 계속 올라와서 나만 안 읽었나.. 근데 딱히 땡기진 않았는데 사이러스님 이 리뷰 읽으니까 궁금해집니다. 좀 재밌을 것 같다.....!!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이 있어요. 만화 속에 실제로 나온 책들이 언급돼요. 그 책들 중 몇 권은 읽고 싶거나 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독서 욕구와 구매욕을 부르는, 무서운 책입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3-07-28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긴 한데 사서 보기는 좀 망설여집니다 ㅋ

cyrus 2023-07-29 04:55   좋아요 1 | URL
저는 <일글책> 책방지기님 책을 빌려 읽었어요. 그분이 만화가 재미있다고 부추겨서 저도 보게 됐습니다. ^^
 
예술의 이유 -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 옮김 / 서광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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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난 이렇게 널 바라보는데

넌 날 보며 웃지도 않아.

알 수 없는 널 사랑하기는

어려 어려워 정말 어려 어려워.

 

닥터레게(Dr. Reggae), 어려워 정말(Who Are You?)노랫말

1993






“Ninety percent of science fiction is crud, 

but then, ninety percent of everything is crud.”

 

공상과학소설의 90%가 쓰레기라면,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미국의 SF 소설가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이 남긴 말이다.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SF90%를 쓰레기라고 혹평했다. 그러자 스터전은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라고 응수했다


대다수 사람에게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지 싶다. 요즘 예술의 90%는 쓰레기라고. 과격한 표현이지,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올해 초 제프 쿤스(Jeff Koons)풍선 개가 관람객의 실수로 훼손되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풍선 개의 감정가는 훼손되기 전까지만 해도 42,000달러(5,500만 원)였다. 풍선 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을 때 당시 현장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관람객 중에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처음에 풍선 개가 부서지는 상황이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미술품 수집가는 풍선 개의 파편을 구매했다. 비싼 작품 일부를 가질 수 있어서 흡족했다고 한다.


반면 ‘예술90%는 쓰레기’ 설을 믿는 사람들은 어이없어한다. “요즘 예술가들도 쓰레기군.” 그 사람들의 눈에는 요즘 예술 작품들은 아름답지 않고,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졌는지 도통 알 수 없고,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들이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전혀 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들이 너무 많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있는 미술이 죽은 단어(死語)라고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다그래서인지 미술가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현대 예술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 같다그래도 미술이든 예술이든 어려워서 머리가 아픈 건 매한가지다.


‘예술의 90%는 쓰레기설을 반박할 수 있는 스터전과 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미술가가 아닌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현대미술 옹호를 자처한다그의 책 예술의 이유: 예술 입문, 라스코에서 쿤스까지현대미술을 위한 변명(apologia)’이다옹프레는 자신을 현대 예술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라고 겸손하게 소개하지만, 이 책을 쓰게 된 의도는 자못 진지하다. 예술의 이유는 옹프레가 예술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사람들’과 투쟁하기 위해 쓴 책이다.


현대미술 앞에만 서면 기가 죽어서 작아지는 사람들은 미술(, 아름다울 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 예술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보면 볼수록 예쁘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그들이 미술 작품 또는 예술 작품의 기준은 단순하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한다.


옹프레는 미술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주장하길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의미. 라스코 동굴 벽화는 항상 미술사의 시작점으로 거론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이다. 벽화를 그린 익명의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름답게 동물들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사냥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동물들을 그렸을 뿐이다아름답지 않은 예술 작품이 쓰레기라면 동굴 벽화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쓰레기.


옹프레는 동굴 벽화에서 제프 쿤스에 이르는 미술사를 개괄하면서 보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발전해온 예술을 주목한다. 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예술가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다양한 형태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예술가의 생각 또한 작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재료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언어로 비유한다예술가는 무뚝뚝하지 않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특수 언어로 관객들에게 말 건다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거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예술가 이미지는 대중의 상상과 편견이 만든 것이다. 예술가는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술가는 철학, 음악, 문학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예술가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한다. 동료 예술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다가도 때로는 생각의 차이(예술의 정의, 표현 방식, 정치적 이념 등)로 인해 서로 죽일 듯이 다투기도 한다


예술가의 생각이 담긴 예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변한다. 그 대신에 관객이 늘 원하던 아름다움은 점점 투명해진다. 이제 관객은 예술가의 생각을 찾아야 하고, 예술가의 요청에 응답해줘야 한다. 예술가가 죽고 없어도 예술 작품은 우리를 향해 계속 말 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가 사라질 뿐이다. 영원히 남아 있는 건 예술 작품이라는 형체가 되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의미가 눈에 보이려면 눈으로만 예술 작품을 감상해선 안 된다. 머리로 감상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 작품을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예술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는 행위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옹프레는 예술 작품의 의미에 부합하는 열쇠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그의 말이 맞긴 하는데 열쇠 찾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감상법이 아니다. 열쇠가 필요 없는 예술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들은 오로지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 작품 속 의미를 이해하자고 강조하는 옹프레의 견해는 진부하고 한계가 있다. 열쇠를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예술 작품에 잘 들어맞던 열쇠는 시간이 지나면 녹슨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열쇠는 없다.


예술은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예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오래전 헤겔(Hegel)이 주장한 이후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예술 종말론은 인제 그만! 예술 다양한 목소리로 채워지면서 항상 변하는 유기체’ 같은 개념이다. 예술가와 예술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예술이 뭔지 열심히 떠들고 있다. 예술이 어려운 걸 잘 알면서도. 예술은 어려워, 정말!






※ cyrus의 주석



* 127

 




 <>(1917)은 보통 벽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다. 갤러리, 박물관 또는 수집가의 집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에서 <>은 아랫부분에 ‘R. Mut’[]라는 서명과 함께 받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 정확한 철자는 ‘R. Mutt’.





* 역자 주, 198





 


귀도 디 피에로(Guido di Piero→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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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한 탕녀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조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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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콜레트(Colette)<클로딘 시리즈>를 써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남편의 필명으로 <클로딘 시리즈>를 발표한 것이 그녀의 작가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 남편은 콜레트에게 <클로딘 시리즈>를 뛰어넘을 작품을 써내라고 강요했고, 콜레트가 쓴 글을 자주 고치곤 했다. 콜레트는 자신이 고생해서 재주 부리고, 명성이 남편에게만 쏠리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콜레트는 1906년에 남편과 이혼한다. 콜레트는 자신의 이름으로 천진난만한 탕녀(L’ingenue libertine)를 발표한다. 1904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민느>(Minne)와 이듬해에 나온 <민느의 방황>을 합쳐서 장편 분량의 글로 다시 쓴 것이다(‘민느라는 번역본 표기 대신에 가독성을 위해 으로 표기하겠다).


주인공 민은 열다섯 살의 사춘기 소녀다. 몽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도발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민은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소녀지만, 풋풋한 목가적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강렬한 쾌락이 느껴지는 위험한 사랑을 꿈꾼다. 소녀의 이상형은 살인 전과가 있는 불량배 패거리의 두목. 소녀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증을 몽상으로 해소한다. 민보다 세 살 많은 사촌 앙투안은 민의 성격과 정반대다. 앙투안은 민을 짝사랑하여 조심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민은 늦은 밤에 몰래 약혼자를 만나고 다닌다고 거짓말하면서 퇴짜를 놓는다. 민은 짜릿한 쾌락을 주는 사랑을 원할수록 몽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에 빠진다. 여기까지가 책의 1부 <>의 줄거리다.


2<민의 방황>은 부부가 된 민과 앙투안의 이야기다. 2부에서도 민은 사랑의 쾌락을 누리고 싶어 한다. 앙투안과의 결혼 생활 2년 사이에 세 명의 정부를 만나고 다닌다. 정숙한 아내를 원하는 앙투안은 민의 바람기를 어느 정도인지 잘 알면서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민은 남편 몰래 자크 쿠데르크 남작이라는 정부를 만난다. 남작은 민보다 어린 스물두 살의 청년이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질투심이 많고, 애정 욕구가 강한 편이다.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민에게 구애해보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민은 아이 같은 남작을 좋아할 단순한 여자가 아니다. 남작은 민의 성적 노리개일 뿐이다.


<민의 방황><>보다 대담한 묘사가 많다. 1부가 시골에서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이라면 2부는 도시적 관능에 익숙해진 작가의 세속적인 삶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두 이야기 속에서 민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것은 성숙한 에로스(Eros). 여기서 말하는 에로스는 성적 욕망이 형성된 육체적 사랑이 아니다. 사랑받으려는 대상의 영혼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아름답게 해주는 진실한 감정을 의미한다. 성숙한 에로스가 없는 성적 대상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오로지 육체적 쾌락만 좇을 뿐이다. 성숙한 에로스의 손길을 받지 못한 민은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에로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평범한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낀다. 이를 참지 못해 자신의 이상형에 환상만 가득 부여한다. 이러한 민의 태도는 플로베르(Flaubert)가 소설에서 창조한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와 유사하다. 그러나 두 여성의 결말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마담 보바리는 진실성 없는 사랑에 집착하는 바람에 불행한 파멸에 이른다. 민은 육체적 쾌락만 좇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한 끝에 그토록 자신이 만나고픈 에로스가 어디 있는지 깨닫는다.


민이 성숙한 에로스를 만나기까지 방황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나라 정서상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주인공의 성격과 탕녀라는 단어는 잘못된 만남이다. ‘libertine’‘libertin’의 여성형 명사. ‘libertin’도덕적 규범과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사상가나 무신론자, 즉 계몽주의자를 일컫는 말이다.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libertin’난잡한 성생활을 즐기는 난봉꾼을 뜻하는 단어가 된다. 천진난만한 탕녀는 콜레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작품명이다. 천진난만한 탕녀는 음탕한 육체적 쾌락주의자를 묘사한 소설이 아니다. 여성이 진정 느끼고 싶은 욕망과 쾌락의 유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2016년에 쓴 서평을 고쳐 썼다. 글 제목도 바꿨다. 불필요한 문장을 걸러내고, 한 문장을 최대한 짧게 썼다. 번역본 제목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을 서평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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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2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고쳐쓰기 -

소설의 제목이 참 강렬하네요.
구할 수 없다는 게 맹점.

cyrus 2023-07-24 06:28   좋아요 1 | URL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혹시 이 책을 읽고 싶으면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 가져올게요. 책 빌려드릴게요. ^^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가 쓴 소설들에 나오는 여성은 통통 튀고, 명랑하고, 발랄하다. 좋게 보면 타인의 시선과 간섭에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도덕과 규범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바라볼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활발하고, 요조숙녀와 완전히 거리가 멀고, 남자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기도 한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방랑하는 여인(지만지, 2013)




콜레트가 창조한, 소위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은 작가 본인의 분신이다. 그래서 콜레트를 페미니스트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반대했다. 콜레트는 결혼제도를 거부했으면서도 세 번이나 결혼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 가지고 콜레트를 비난할 수 없다. 콜레트는 불법 낙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썼다. 그녀는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무언극 배우와 뮤직홀 댄서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콜레트는 소설 방랑하는 여인에서 화려한 무대에 가려진 가난한 배우와 댄서들의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방랑하는 여인》은 글쓰기를 중단하고, 생계를 위해 배우 일에 전념한 무대 위의 콜레트의 삶이 반영된 작품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일품이다.

















* 앙투안 콩파뇽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3)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매력에 끌려 호기심을 느끼는 감정 상태와 같다. 방금 전에 내가 콜레트를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 콜레트는 다작 작가인데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콜레트의 삶을 조명한 평전도 없다. 마침 콜레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 한 권이 나왔다. 그 책이 바로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이다.


새로운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 곧 나온다는 출판사의 소식을 한 달 전에 접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새로 나올 책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함께하는 여름시리즈(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를 쓴 저자는 프랑스 출신의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저자의 이력을 정리한 항목이 있다. 항목 안에 콩파뇽이 쓴 저서 목록이 있다. 저서 목록을 훑어보다가 작년에 나온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Un été avec Colette)을 확인했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여명(문학동네, 2010)


* 소피 카르캥 글 쓰는 딸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창비, 2021)

 




콜레트의 글에는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어머니 시도(Sido)의 삶과 성격도 스며들어 있다. 사물과 자연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콜레트의 성격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두 모녀의 애증 관계를 암시하는 콜레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여명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콜레트의 소설이다소피 카르캥(Sophie Carquain)글 쓰는 딸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에서 모녀 관계를 시들어서 꽃이 진 자리에 새로 피어난 꽃으로 표현한다. 시도는 딸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딸의 창작 활동만큼은 통제하지 않았다. 소피 카르캥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시도가 딸을 위해 제대로 활짝 피지 못한 시든 꽃이 되었다. ‘시도라는 꽃이 지고 난 그 자리에 글 쓰는 콜레트라는 새로운 꽃이 피어났다. 콜레트는 한때 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작가 콜레트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어머니를 사랑한다.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다 읽고 난 후 콜레트를 더 좋아졌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에 인용된 콜레트의 문장은 내 마음을 뜨겁게 했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겸허하게, 나는 또 글을 쓸 것이다. 나에게 다른 운명은 없다. 한데 글쓰기를 그만두는 때는 언제가 될까? 무엇이 그런 때를 예고해줄까? 손의 비틀거림일까? 예전에 나는 다른 일들처럼 이 일에도 글로 적힌 임무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연장을 내려놓고, “끝났어!”하고 기쁘게 외치며 손뼉을 치면, 우리가 값진 것이라고 믿었던 모래알들이 손에서 비처럼 쏟아진다. 그때 그 모래알들이 적는 형체에서, 우리는 이런 말들을 읽게 된다. 다음에 계속.”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 274~275)



며칠 전에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기둥이자 인기 알라디너 레샥매냐님에게 댓글로 이런 말을 했다. 글 쓰는 삶이 제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해도, 저는 죽을 때까지 책 읽고 글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일수록 끌린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는 콜레트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는 콜레트를 이렇게 예찬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질료의 작가, 우리는 그런 당신을 무척 사랑한다.”(269) 나도 글 쓰는 콜레트를 무척 사랑한다.





※ cyrus의 주석

















* 신유진 옮김 《가만히, 걷는다(봄날의책, 2021)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인용된 콜레트의 글 중에 <날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프랑스 작가들의 산문을 엮은 가만히, 걷는다에 콜레트의 글 두 편이 실려 있다. 그중 한 편이 <하루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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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18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콜레트와 사랑에 빠지셨구만. ㅋ 영화도 나왔던데ᆢ 여름 시리즈 왜 꼭 여름인가 싶어. 아,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ㅎ
콜레트 나도 읽어보고 싶다.^^

cyrus 2023-07-19 06:36   좋아요 1 | URL
영화는 아직 안 봤어요. 영화 한 편 보려고 왓챠를 가입할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