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rus의 주석이 달린 장미의 이름》 #2


중세인들의 목욕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은 베네딕트회 수도사인 멜크의 아드소가 쓴 수기(手記)를 바탕으로 쓰였다. 에코는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라는 제사(題詞)를 썼다. 서문에 등장한 화자(움베르토 에코)는 아드소가 실존 인물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드소는 소설을 위해 에코가 만든 허구적인 인물이다. 아드소의 수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문헌이다.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아드소는 바스커빌의 윌리엄과 함께 장서관이 있는 수도원에서 7일 동안 머무른다. 그는 7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례 시간에 맞추어 썼다. 아드소가 기록한 23시과(오전 9시 전후)’ 편의 묘미웃음의 기능을 놓고 윌리엄과 호르헤가 설전하는 장면이다. 호르헤는 웃음을 허용하면 신의 절대적인 권위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신의 뜻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인간이라면 웃음과 우스갯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반면에 윌리엄은 웃음이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웃음을 목욕으로 비유하면서 웃음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나는 웃음이라는 것은 좋은 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웃음은 목욕과 같은 것이지요. 웃음은 사람의 기분을 바꾸어 주고, 육체에 낀 안개를 걷어 줍니다.” 


(장미의 이름: 디 에센셜 1, 양장 합본》 227)

 


호르헤도 목욕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목욕은 흐트러진 기분을 올바르게 세워 준다. 그러면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비탄을 사라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목욕을 권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믿는 대다수 사람은 중세인들이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중세인들은 목욕하지 않았다고 단정한다.
















 

* 캐서린 애쉔버그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써네스트, 2019)


* [절판] 캐서린 애셴버그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예지, 2010)

 



목욕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많지 않다. ‘목욕역사’, 이 두 개의 단어가 포함된 제목이 붙은 책이 단 두 권뿐이다.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가 있는데,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같은 사람이다. 두 권의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온 목욕과 청결의 정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별로 유행했던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목욕법도 소개한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목욕을 좋게 보고 있지만, 실제로 성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씻지 않았다. 성 히에로니무스(St. Jerome, 성 제롬)는 목욕하면 신에 관한 관심을 잃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인들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기독교인들은 더러움을 성스러움의 징표로 여겼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i)는 때를 찬양했다고 한다. 우리는 피부에 묻은 더러운 때를 없애기 위해 씻고 있지만, 중세 성인들은 때를 소중하게 여겨서 일부러 씻지 않았다.

 














 

* 자크 르 고프, 니콜라스 트뤼옹 공저 중세 몸의 역사(이카루스미디어, 2009)

 

* [품절] 쥘 미슐레, 정진국 옮김 마녀: 마녀의 탄생, 마녀축제, 마녀재판과 화형의 역사 또는 슬픈 추방자들을 위한 자유의 이야기(봄아필, 2012)

 


 

이렇듯 중세가 경건한 기독교적 삶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보니 중세를 오해하는 우리는 중세인들은 목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마녀에서 중세 천 년 동안 목욕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썼다. 하지만 중세사 연구의 권위자인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미슐레의 주장에 반박한다. 중세인들은 목욕했다. 중세에도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튀르키예식 목욕을 전파하여 발전시켰다. 그래서 중세의 공중목욕탕에는 한증탕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중세인들은 씻기 전에 먼저 몸에 증기를 쐬었고, 나무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중세의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었는데 중세의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공중목욕탕 안에서 매춘이 성행했다.


호르헤는 기독교적 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을 이교도적이라고 규정하면서 배격한다. 그런 보수적인 수도사가 목욕을 긍정적인 행위로 보고 있는 점은 의외다. 호르헤는 신의 권위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성인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런데 호르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퀴나스가 웃음을 권장했다는 사실을. 아퀴나스의 스승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그 역시 웃음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신학자다. 장서관에 보관된 모든 책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호르헤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만약에 윌리엄이 웃음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마그누스와 아퀴나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호르헤를 논박했다면, 호르헤는 자신이 너무 늙어서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갔을 것이다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무너질 수 있는 다른 견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무시한다. 이런 얍삽한 인간을 실제로 만나서 대화하면 답이 안 나온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시시콜콜 목욕의 역사》 중에서, 58


 사람들은 흑사병이 쥐를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왔고 쥐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 때문에 인간에게까지 전염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흑사병은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고[주] 한다.



[] 흑사병, 즉 페스트의 가장 주된 감염 경로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한 벼룩이다. 이 벼룩에게 물린 사람은 패혈증성 페스트에 걸린다. 폐렴형 페스트페스트 환자가 배출한 침과 콧물이 호흡기에 전파될 때 발생한다따라서 좀 더 정확하게 써야 한다. 폐렴형 페스트는 페트스 환자의 몸에서 나온 비말(침방울과 콧물)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면서 일어나는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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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
    from blog 2024-02-03 08:30 
    [개썅마이리딩-천의 얼글] : 알라딘
 
 
 




최근에 개정판으로 나온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뒤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모파상, 러브크래프트, 스토커 등 대작가 10인의 숨은 명작

국내 최초 공개


 


국내 최초 공개라는 표현을 누가 썼는지 궁금하다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처음 소개한 것처럼 뻔뻔스레 쓰다니.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외, 정진영 옮김,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책세상, 2023)

 

* [구판 절판]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1(책세상, 2004)




윌리엄 W. 제이콥스(William W. Jacobs)부적,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부르시면 갈게요,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오를라,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2004년에 출간된 구판 세계 호러 걸작선 1에 수록되어 국내 최초로 공개된 것은 맞다. 하지만 2004년 이전에 한 번 번역된 사실이 확인되면 내 견해는 틀리게 된다.











* [절판, No Image] 정태원 엮음 공포특급 5 : 세계 편(한뜻, 1996)




부적의 원제는 <The Monkey’s Paw>. 가장 많이 알려진 소설 제목이 원숭이 손 또는 원숭이 발이다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부적이다부적1996년에 출간된 공포특급 5 : 세계 편에 수록된 적이 있다. 제목은 원숭이 손’이다. 1990년대에 장르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정태원(1954~2011)이 이 책의 엮은이로 참여했다. 그 이후로 부적은 1997년과 1998년에 나온 단편소설 선집에 수록되었다.


모파상은 매독으로 인해 생긴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 정신 착란증(섬망증)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게 만든 원인일지도 모른다. 오를라』(The Horla)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두려워한다. 그는 오를라라는 이름의 괴이한 존재에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지만 끝내 미쳐버리고 만다. 모파상은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 [절판] 기 드 모파상, 한용택 옮김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장원, 1996)

 



1996년에 출간된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에 오를라』가 수록되었다. 이 책에 총 25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여기에 모파상이 쓴 최초의 단편소설과 죽기 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모파상은 오를라를 두 가지 버전으로 썼다. 1886년에 발표된 오를라1판의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환각 증세를 설명한다. 이듬해에 나온 오를라2판은 주인공 자신이 겪은 기이한 체험을 일기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전개된다.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은 두 가지 버전의 오를라가 실린 단편 선집이다.
















기 드 모파상한용택 옮김 《박제된 손: 기 드 모파상의 판타스틱 스토리》 (우물이있는집, 2007)




2007년에 출간된 모파상 단편 선집 박제된 손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의 역자가 번역한 책이라서 어떻게 보면 1996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라 할 수 있다. 박제된 손도 두 가지 버전의 오를라를 만날 수 있는 책이지만,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에 소개된 25편의 작품 모두 수록된 건 아니다. 박제된 손에 수록된 모파상의 단편소설은 총 19편이다.
















* 몬터규 로즈 제임스, 조호근 옮김 몬터규 로즈 제임스: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현대문학, 2014)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명문당, 2000)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부르시면 갈게요』(Oh, Whistle, and I’ll Come to You, My Lad)는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고대에 만들어진 청동 호각(호루라기)을 불면 유령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2000년에 출간된 영국의 괴담에 처음 소개되었다. 제목은 <피리를 불면 내가 가지>영국의 괴담괴담은 익명의 작가가 만든 도시 괴담이 아니다. 영국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영국의 괴담을 펴낸 출판사는 동양 고전을 주로 펴내는 곳이다. 아무래도 한문에 제일 관심이 많은 출판사가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문장에 한문으로 된 단어가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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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도 깜놀할 듯,ㅎㅎ

cyrus 2023-05-16 06:38   좋아요 0 | URL
출판사는 제 글에 관심이 없어서 그 정도 반응은 보이지 않을 거예요. 이런 글이 있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어요... ㅎㅎㅎ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패닉룸
H. P. 러브크래프트 외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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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첫 번째2004년에 나온 세계 호러 걸작선 1의 개정판이다. 세계 호러 걸작선 1서양 작가들의 단편 공포소설 선집이다. 구판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총 열네 편이다이 중에서 네 편의 단편은 개정판에 실려 있지 않다. 개정판에 빠진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숨 막힘(Loss of Breath)


* 아서 매첸(Arthur Machen) - 악마의 뇌(The Immost Light)


*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Chambers) 옐로 사인(The Yellow Sigh)


* 사키(Saki) - 스레드니 바쉬타르(Sredni Vashtar)




그뿐만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삽화와 작가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도 삭제되었다. 그런데 작가 소개 글이 삭제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르문학,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작가들의 공포 문학 작품을 주로 번역한 정진영 씨의 해설에 작가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윌리엄 W. 체임버스(William W. Jacobs)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구판에 있는 오탈자나 문장의 오역을 고치지 않고, 책값을 올려서 개정판이라고 펴내는 비양심적인 출판사들이 종종 있다. 개정판인 척하는 구판은 잘못 만든 책이다. 이런 책도 절대로 독자들에게 팔면 안 되는 파본이다. 출판사는 독자들을 속인 책을 펴낸 것에 사과해야 하며 그 책을 구매한 독자들에게 책값을 돌려줘야 한다.


6년 전에 나는 구판 세계 호러 걸작선 1에서 발견된 문장의 오역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문제의 구절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사냥개에 있다.



* 세계 호러 걸작선 1228


 그 무슨 사악한 숙명이었기에, 우리는 그 오싹한 폴란드의 교회 묘지로 이끌렸던가? 그것은 오백 년 전 그 자신이 구울로서 권력자의 무덤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와 관련된 음산한 풍문이며 전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문]


 By what malign fatality were we lured to that terrible Holland churchyard? I think it was the dark rumor and legendry, the tales of one buried for five centuries, who had himself been a ghoul in his time and had stolen a potent thing from a mighty sepulchre.

 


‘Holland’네덜란드의 영어식 표기. 그런데 역자는 폴란드라고 썼다. 개정판에서는 네덜란드로 고쳐졌다.



*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287~288


 무슨 사악한 숙명이었기에, 우리는 그 오싹한 네덜란드의 교회 묘지로 이끌렸던가? 그것은 오백 년 전 그 자신이 구울로서 권력자의 무덤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와 관련된 음산한 풍문이며 전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세계 호러 걸작선 1종이책은 절판되었지만, 전자책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문제는 절판되지 않은 세계 호러 걸작선 2.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첫 번째책날개에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두 번째출간을 예고하는 글이 없다. 하지만 세계 호러 걸작선 2도 언젠가는 절판될 수 있다. 구판의 형태가 남아 있는 2권이 절판되기 전까지는 새 옷을 갈아입으면서 판형이 줄어든 1권과의 어색하고 기묘한동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네덜란드 구울> 2017115일에 썼음.

https://blog.aladin.co.kr/haesung/905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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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의 주석이 달린 장미의 이름》 #1


생 빅토르의 후고






이번 달부터 장미의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10분씩 읽는다. 5년 전에 완독한 책인데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재미있다. 처음 읽었을 때 무심코 쓱 스쳐 지나갔던 문장과 단어들이 눈에 띈다. 장미의 이름양장 합본(교보문고 한정판) 146에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5년 전에 보지 못했던 이름이다.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1(열린책들, 2009)

 


 호르헤의 말에 윌리엄 수도사가 겸손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아페오파기타가 가르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가장 왜곡된 것을 통해서만 명명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 빅토르의 위고가 일렀듯이, 직유법이 상이한 것을 유사한 것으로 묶을수록, 진리가 끔찍하고 상식을 벗어난 모습으로 드러날수록 인간의 상상력은 세속적인 재미를 누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괴한 형상에 깃든 비밀은 체득이 빠른 법입니다.

 


생 빅토르의 위고(Hugh of St. Victor, 라틴어: Hugues de St-Victor). 이 이름을 보자마자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프랑스 작가 이름을 따온 가상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 빅토르의 위고는 실존 인물이다. 중세에 살았던 위고는 후고로 표기해야 한다. ‘() 빅토르의 후고로 표기하는 저자도 있다.

 

생 빅토르의 후고는 12세기의 수도사다. 신학, 성경, 신비주의 등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남겼으나 그에 관한 자세한 삶은 알려지지 않았다. 후고는 독일에 태어났지만, 프랑스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성 빅토르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다. 그는 평생 그곳에서 살았으며 말년에 수도원장이 되었다.

 

호르헤 수도사는 우스꽝스러운 묘사로 가득한 채색 사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자 윌리엄 수도사는 후고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속적인 웃음을 부정하는 호르헤의 견해에 맞선다.

















* 이반 일리치, 정영목 옮김, 텍스트의 포도밭: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현암사, 2016)

 

* 정지인 엮음, 공부의 고전: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하여 (유유, 2020)

 



생 빅토르의 후고는 성경 읽기를 위한 지침서인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이라는 책을 썼다. 부제는 읽기 공부에 관하여라고 되어 있다. 성경, 신학, 수사학 등을 공부하는 성 빅토르 수도원 학생들을 위해 쓴 글이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디다스칼리콘>읽기 기술을 소개한 최초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쇄술이 보급되기 전에 이미 책 중심 읽기행위가 시작되었으며, <디다스칼리콘>의 등장으로 읽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서구 지식인들의 글을 선별한 공부의 고전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글이 <디다스칼리콘>. 이 책에서는 <디다스칼리콘> 서문, 1, 3권의 일부만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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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11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넌 이제 독서가 경지에 이르렀구나.
그렇지 않아도 장미에 이름 번역이 좀 아쉽다고 하던데
이참에 번역에도 도전해 보면 어떨까?^^

cyrus 2023-05-15 06:29   좋아요 2 | URL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에요. 번역을 지적하려면 이탈리아어를 공부해야 해요... ㅋㅋㅋㅋ
 



어제 책방 <직립보행>이 있는 삼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우연히 보도에 있는 공익광고를 발견했다. 광고는 경북 사대 부설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보도 위에 있다. 가까이 보지 않아서 무슨 광고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눈길이 간 곳은 광고 속의 그림이었다







림을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 반 레인이며 이름 바로 밑에 ‘coffee(커피)’라는 단어가 있다. 아마도 그림 제목일 것이다. ‘coffee’ 옆에 있는 문구는 크기가 작아서 사진상 확인이 어렵다.






























* 크리스토퍼 화이트 렘브란트: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시공아트, 2011)

* 스테파노 추피 렘브란트: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마로니에북스, 2008)

* 미하엘 보케뮐 렘브란트 반 레인(마로니에북스, 2006)

* 마리에트 베스테르만 렘브란트(한길아트, 2003)

* [절판] 파스칼 보나푸렘브란트: 빛과 혼의 화가(시공사, 1996)

   



그런데 저 광고를 보자마자 의문이 들었다. 저 그림을 렘브란트가 그렸다고?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치고는 색상이 너무 밝은데‥….”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효과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커피라는 그림에는 렘브란트 그림 특유의 어두운 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구글에 ‘Rembrandt coffee(렘브란트 커피)’로 입력해서 검색해봤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은 나오지 않고, 미국에 있는 <Rembrandt’s Coffee House>라는 카페 사진만 수두룩이 나온다. 일단 나는 ‘<Coffee>라는 제목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창비, 2016)


* 이일 엮음 와토(서문당, 1989)



 

밝고 화려한 분위기에다가 정원에서 사치스러운 연회를 즐기는 귀족들을 묘사한 그림은 18세기 프랑스에 유행한 로코코(Rococo) 양식에 가깝다. 서양미술사에 자주 언급될 정도로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화가는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나는 두 번째 가설을 세웠다. <Coffee>를 그린 화가는 로코코 미술의 대가다. 유력한 후보는 와토와 프라고나르다.








이번에 구글 검색창에 ‘Watteau coffee(와토 커피)’를 입력했다. 와토의 작품뿐만 아니라 커피잔 사진도 꽤 많이 나왔다. 사진들을 쭉 훑어보다가 드디어 내가 찾으려고 했던 <Coffee>를 발견했다! <Coffee>를 소개한 글의 제목은 ‘The Age of Watteau, Chardin, and Fragonard: Masterpieces of French Genre Painting previous slide’. 우리말로 번역하면 와토, 샤르댕, 프라고나르의 시대: 프랑스 장르 회화의 걸작이다. 글은 워싱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공식 홈페이지에 있다.

 

<Coffee>의 원제는 ‘A Lady in a Garden Taking Coffee with Some Children’, 1742년에 제작되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니콜라 랑크레(Nicolas Lancret). 와토와 동시대에 살았던 랑크레는 와토처럼 화려하게 그리는 솜씨가 있어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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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9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ㅋ cyrus님 대박이네요~! 저런 짧은 순간에 저걸 발견하고 의문을 가지시다니~!!
일단 저 광고를 만드신 분은 잘 확인안하고 만드신게 맞군.

램브란트는 빛과 어둠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cyrus 2023-05-10 22:19   좋아요 1 | URL
이때는 책이 아닌 구글에 의존했어요.. ㅎㅎㅎ

yamoo 2023-05-1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서양미술가들 보단 한국미술가들이 더 관심이 갑니다. 몰라서 그렇지 이름 모르는 나름 유명 작가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서양미술가는 대체로 명작을 남긴 화가들이고 대부분 유명화가들이죠. 이젠 서양미술사 책 보단 한국미술가들 책에 더 많은 관심이 가요. 김환기, 장욱진, 하인두..등등..ㅎ

cyrus 2023-05-10 22:22   좋아요 0 | URL
제가 서양미술을 편애해서 우리나라를 물론 동양미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아요. 알라딘 서점이나 헌책방에서 읽어볼 만한 동양미술 관련 책을 발견하면 일단 구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사놓고 읽진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