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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 - 온 세상을 뒤흔들어온 가장 미세한 존재들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헬무트 융비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김성건 감수 / 갈매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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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쓴 유일한 소설 《콘택트》(Contact, 1985)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앨리 애로웨이(Ellie Arroway)는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천문학자다. 그녀는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인간 이외에 또 다른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세이건은 SETI(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올해 9월 2일에 작고한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는 1961년에 열린 SETI 프로젝트 회의에서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외계 지적 생명체 문명의 수를 계산하는 일명 ‘드레이크 방정식’을 제안했다. 이 방정식을 이용해 계산해 보면 우주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문명의 수는 수십 개에서 최대 수천만 개까지다. 드레이크 방정식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과학자들은 우주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가설과 계산법을 제시했다. 인류와 비슷한 수준의 외계 지적 생명체는 당연히 존재한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학계에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데?”
57년간 SETI 프로젝트의 선봉대 역할을 했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2020년에 해체되었다. 그래도 세계 각국 기관과 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전파 신호를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실제로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보낸 전파 신호를 확인하고 우리에게 회답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페르미가 던진 질문에 제대로 한 방 먹어서 얼얼할 텐데 그래도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대답하지 않는 이유를 나름 그럴싸하게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동물원 가설’이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우리를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원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인간들이 자신들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지구와 우주의 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침묵하는 이유가 못마땅하다. “우주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 이 XX들이 생까고 있는 거라면 우리는 쪽팔려서 어떡하나?”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지구와 인간의 존재를 알리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존중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인간 중심주의를 다 벗어버리지 못했다. 인간이 보기에 지구는 우리의 ‘집’이다. 인간은 집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살기 시작한 동식물을 학살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자연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인간은 우주도 개발하려고 한다. 우주 개발에 성공하면 우리의 집은 더 넓어진다. 그런데 우주에 정말 우리 인간만 있을까? 우리만 있다고 해서 공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와 우주는 인간을 위한 터전이 아니다. 우주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우주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우주는 혼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있는 미생물의 수는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계산해서 나온 외계 지적 생명체 문명의 수보다 많다. 우리 몸 안에 1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미생물은 지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생물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지구의 집주인이다. 미생물보다 한참 늦게 나타난 인간은 미생물이 만든 지구에 염치없이 얹혀살고 있다.
《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는 천문학 관련 팟 캐스트를 진행하는 과학 저술가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Florian Freistetter)와 생물학자 헬무트 융비르트(Helmut Jungwirth)가 함께 쓴 책이다. 두 사람은 과학 대중화를 위해 만들어진 모임인 ‘사이언스 버스터즈(Science Busters)’ 소속 회원이다. 이 책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주거나 악영향을 주는 100개의 미생물을 소개한다. 우리는 수많은 미생물과 접촉(contact)하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아주 작은 고마운 존재를 모른다. 그저 미생물을 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미생물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빵과 맥주는 미생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방사성 폐기물은 우리가 만든 쓰레기인데도 버리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하 암염층에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암염층에 물이 들어가면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물이 흘러나올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려면 암염층에 사는 ‘할로박테리움 노리센스(Halobacterium noricence)’라는 미생물이 필요한데, 이 미생물은 방사성 폐기물의 확산을 막아준다. 인간이 우주에 정착하려면 미생물과의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우주 온실에 사용되는 비료는 소변이다. 그런데 소변에 있는 암모니아는 해롭다. ‘연두벌레’라고도 불리는 유글레나 그라실라스(Euglena gracilis)는 암모니아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낸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 린 마굴리스는 칼 세이건의 전처다.
이 책에 미국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언급해서 유명해진 미생물 믹소트리카 파라독사(Mixotricha paradoxa)가 나온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흰개미 몸속에 있다. 이 미생물의 몸에 있는 25만여 개의 섬모는 박테리아다. 믹소트리카 파라독사에 섬모처럼 생긴 수많은 박테리아가 기생하고 있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없으면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끈적한 소화액이 가득한 흰개미 내장 속에 살지 못한다.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은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보답으로 박테리아에게 양분을 공급해준다. 해러웨이는 이들의 공생 관계에 주목하면서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를 ‘독립적인 하나의 개체’로 분류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 생명체는 한 몸이 되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를 읽으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가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로 우주를 떠돌던 별의 물질들이 뭉쳐져 지구를 만들고, 이것을 재료 삼아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 세이건은 인간을 ‘별의 먼지’라고 했다. 《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를 읽으면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에 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병균에 맞서고, 우리 몸에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서 공급해준 미생물 덕분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인간은 미생물로 만들어졌다. 아주 오래된 우리의 친족(kind)인 미생물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을 알면 더 잘 보인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51쪽
카톨릭 → 가톨릭
* 71쪽
로버트 코흐 → 로베르트 코흐[주1]
[주1] 코흐는 독일인이므로 ‘Robert’를 독일식으로 표기하면 ‘로베르트’다. 94쪽과 222쪽에 ‘로베르트 코흐’로 표기되어 있다.
* 95쪽
페트라의 접시 → 페트리의 접시
* 106쪽
탐사선 호이겐스 → 탐사선 하위헌스 [주2]
[주2] 네덜란드어 이름인 하위헌스의 구(舊) 외래어 표기는 영어식 발음인 ‘호이겐스’였다. 토성 탐사선의 정식 명칭은 ‘카시니-하위헌스(Cassini-Huygens)’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이탈리아 우주국(ASI)이 공동으로 개발했다. 토성의 고리 사이에 있는 틈인 ‘카시니 간극’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시니와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을 발견한 하위헌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체인 우주선 카시니호와 부속 착륙선인 하위헌스호로 이루어져 있어서 ‘카시니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327쪽에 언급된 ‘우주탐사선 카시니’는 하위헌스호다.
* 167쪽
세균은 아주 미세하다. 전형적인 박테리아는 1마이크로미터 정도의 크기다. 100만분의 1미터로, 우리 머리카락 지름보다 60배 정도 작다. 이런 점에서 1999년에 발견된 티오마르가리타 나미비엔시스(Thiomargarita namibiensis)라는 박테리아는 아주 거대하다.[주3] 최대 0.75밀리미터 크기다. 이 문장의 마침표만 한 크기다. 현미경 없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주3] 세상에서 가장 큰 세균은 티오마가리타 마그니피카(Thiomargarita magnifica)다. 올해 6월 23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보고된 이 박테리아는 서인도 제도의 과들루프섬의 맹그로브 숲에서 발견되었다. 티오마가리타 마그니피카의 길이는 1cm로 일반 박테리아보다 5,000배나 크다. (사진 출처: <“에베레스트만한 사람 나온 셈”… 길이 1㎝ 초거대 박테리아 발견>, 조선일보, 2022년 6월 24일)
* 308쪽
요나트는 2009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토머스 스타이츠,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과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네 번째 여성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은 그보다 45년 전 상을 받은 도러시 호지킨(Dorothy Hodgkin)이었다.[주4]
[주4]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은 마리 퀴리(Marie Curie)다. 그녀는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 354쪽
울프사이먼 팀이 ‘GFAJ-1’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모노호에서 서식하는 할로모나다세아(Halomonadaceae)에 과의[주5] 박테리아는 유독한 비소가 보통의 생물에서 인이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5] 오자. ‘할로모나다세아과’ 또는 ‘할로모나다과’로 써야 한다.
* 377쪽
롭 던(Rod Dunn)의 《집에서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미생물에서 다지류, 꼽등이, 꿀벌에 이르기까지 – 우리 집 자연사》 [주6]
[주6] 《집에서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는 2020년에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생물학자의 집 안 탐사기》(홍주연 옮김, 까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