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사이언스 토크토크 - 세상 모든 유혹에 대처하는 명쾌한 과학 사용법
이덕환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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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을 위해서 좋은 식품 먹는 것은 좋다지만 , , ,

우리 엄마는 우리 가족 건강 전도사이다. 올해 들어서 알라딘을 통해서 건강 관련 도서를 구입한 권수는 10권이 넘는다. 나랑 내 동생이 읽을 책를 구입한 권수만 합해도 아마도 20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건강에 무엇보다도 관심이 많은만큼 돋보기 안경을 쓰면서까지 열심히 책을 들춰보고 노트에 기록도 하신다. 그리고 노트 기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 위주의 식생활로 바꾸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이미 짠 맛에 길들여져버린 아버지와 동생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끔 밥상머리 투정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가족들에게 올바른 건강 정보 한 마디 날려주신다.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이 있어서 시력에 좋고,  현미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 , , 

  효소 식품을 많이 먹어야 한다.  유산균이 가득한 요구르트를 먹어줘야 한다 등등.   

이런 어머니의 따끔한 일침에 아버지와 동생은 궁색한 변명 한 마디 못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줘도 잘 안 챙겨 먹는다. 반면에 나는 이미 이른 나이에(?) 건강 관리를 우선시하는 마인드가 갖춰져있다보니(아마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알려주는 건강 정보는 항상 귀담아 듣고, 맛이 없어도 건강에 좋은 식품이면 꼭 챙겨 먹는다. 금쪽같은 아들의 호응이 좋아서그런지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건강에 대한 좋은 내용이 있는 책이 <동의보감> 이라던데, 알라딘에도 그런 책 파냐 ? " 

아이쿠, 대중적인 건강 도서를 넘어서 이번에는 허준의 <동의보감> 까지 섭렵하시려고 한다. <동의보감>이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적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렇다고 그 책에 담긴 모든 내용들이 지금의 생활 방식과 비추어보면 대부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현대의학의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학서적이 될 수 없다. 그 책에는 단지 조선 시대에서만 통용된 의학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설명해주자 어머니는 내 말에 수긍을 하셨다.  사실 알라딘에서 시간에 출판되고 있는 <동의보감>이 있는지 검색해봤는데, 두꺼운 책 값이 무려 10만원(!)에 가까웠다. 만약에 내가 충고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돈이 비싸든지 간에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구입을 했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항상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은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 음식은 어디에 어디에 좋더라' 식의 정보는 귀동냥으로 얻은 것이라 잘못된 건강 지식들도 쉽게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자신과 가족 구성원의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건강에 좋다고 하는 음식들을 섭취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가 있다.  

 

  

  <동의보감>에 대한 대중들의 지나친 믿음

이덕환 서강대 화학 교수의 신간인 <사이언스 토크토크>에서는 TV과 언론에서 주장하는 잘못된 과학 지식에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오해와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책 제목에는 '사이언스' 라고 떡하니 표시하고 있어서 과학 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에게는 벌써부터 겁을 먹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전문적인 과학 지식에 대한 언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디지털타임스>에서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모은 책인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짤막한 칼럼들은 우리나라 사회적 이슈를 통해서 살펴본 실용적인 과학 지식에 대한 내용으로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서도 허준의 <동의보감>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시작하면서 <동의보감>에 대한 평가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저자는 <동의보감>의 의학적 가치의 실효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동의보감>을 무조건 신비화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며 <동의보감>은 조선 시대에 편찬된 전통의학 서적일뿐이라고 딱 선을 긋고 있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TV나 언론에서 소개한 건강 식품 정보를 보게 되면 꼭 이 말이 빠지지 않는다.  

 " 400여 년 전에 쓰여진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이 식품의 효과가 증명되었다 "  

<동의보감>이라는 문구만 들어가 있으면 보는 이들에게는 이 식품에 대해서 무조건 신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한의학적으로 이미 <동의보감>에서 증명된 의학 지식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 엉터리 의학 식품이 판매되는 세상이다보니 <동의보감>이 언급된 문구를 보고 무조건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들을 현혹하고 있는 TV 속 잘못된 과학 정보들

지금까지 TV, 언론, 그리고 수많은 건강서적에 알려주고 있는 의학과 과학 정보들은 대부분 과장되어 있다거나 잘못된 부분이 많다. 그리고 대중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정보들을 무비판 없이 수용한다.  

요즘에는 친환경 제품이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환경과 건강이라는 화두를 마케팅에 내세워 대중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샴푸, 린스 등이 모발과 피부에 좋지 않은 인공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 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제품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친환경 샴푸나 인공 화학물질 샴푸냐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릿결을 한층 더 부드럽고 빛나게 보이기 위해서 친환경 샴푸에도 인공 화합 성분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환경 샴푸가 무조건 피지와 비듬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TV 속 샴푸 제품 광고를 보게 되면 자사가 소개하고 있는 신상 샴푸를 쓰고 난 뒤의 모발 상태와 다른 샴푸를 사용하고 난 뒤의 모발 상태를 서로 비교하는 장면을 삽입하곤 하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제품의 상품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광고 수단일 뿐이다.   

샴푸 광고뿐만 아니라 우리가 TV를 통해 접하고 있는 제품 광고들에도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를 흘러 건강을 중요시하는 심리를 맞물리게 하여 대중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에 천연치클껌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 제품과 관련된 TV 광고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광고 속 남녀는 멋진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때마침 이들은 오붓한 식사를 마쳤다. 식후에는 껌을 씹기 위해서 남자는 자신이 씹고 있는 껌을 여자에게 내미는데 , , ,  갑자기 여자는 남자에게 귀싸대기 한 방 날려준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뺨이 기습 공격을 당한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는 여자에게 뺨 맞을 짓을 하긴 했다.  그가 내민 껌은 인공 화합물인 '초산비닐수지' 로 만든 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고 마지막에는 이번에 새로 출시된 천연치클껌의 성분에 대해서 1초 정도 자막으로 소개한다.  이 광고를 통해서 식품 회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천연치클껌이 건강에 좋은 친환경 껌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 광고에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합성된 화학 물질로 만든 껌이 무조건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광고 속 남자는 여자로부터 억울하게 따귀를 맞은 셈이다. 그리고 천연 성분의 껌이 좋은 것이기는하나 천연치클껌 소비가 너무 늘어나게 되면 또 다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치클을 얻기 위해서는 중앙아메리카에서만 서식하는 고무나무의 일종인 '사포딜라(Sapodila)' 의 수액이 필요하다. 껌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인 수액을 얻기 위해서는 칼로 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포딜라 나무의 보존이 보장되기 어려워진다. 지나치게 천연 껌을 공급하게 되면 사포딜라 나무가 절멸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씹을 수 있는 껌도 사라지는 제품이 될 수도 있다.    

  

 

  과학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필요한 것

이 책에는 친환경 샴푸, 천연치클껌뿐 아니라 미네랄 워터, 유산균 요구르트, 식용화된 숯 등 대중들을 알고 있는 건강에 좋은 식품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저자는 여러 가지 과학 이론을 근거로 오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엉터리 광고에 등장하는 과학용어는 대부분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넘쳐나는 광고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건강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절대 남에게 맡길 수가 없다. 과학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이덕환의 사이언스 토크토크> 이덕환, 프로네시스, p 126 -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주장이 인용된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과학자들과 이공계 전공자들만을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체험하고, 볼 수 있는 학문이다. 과학을 외면함으로써 생기게 된 과학에 대한 무지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접근할 수 있는 사고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싫어하면서도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리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들만 귀담아 듣는 것이 아니다. 더욱 문제가 있는 것은 비 과학자들의 엉터리 정보에도 쉽게 현혹당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은 남들에게 알아라고 지적 허영심을 뽐내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오류와 과장이 가득한 세상에서 속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세상 앞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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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1-1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고전이라면 예를 들어 퇴계나 이이의 사상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들이 노비제도를 용인한 것까지 본받자는 말은 안 할 겁니다.그런데 동의보감 같은 책은 그 시대적인 한계는 고려치 않고 만능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고 방식이 강해서 문제지요.거기다가 한국특유의 민족정서까지 결합하니까요.

cyrus 2010-11-17 13:2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
된 이후, 한의학계에서는 이 책을 세계 최고의 의학서적인마냥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하네요. 자이트님 말씀대로
이런 한의학계의 홍보 뒤에는 민족정서 강조가 더욱 큰 거 같습니다.

2010-11-17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융의 지배 - 세계 금융사 이야기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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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화가 나는가?  갑부 자본가와 10억 단위 보너스를 받는 은행가들 때문에 분노가 치미는가?  아니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 개인 요트까지 소유한 자 사이의 엄청난 격차에 좌절감을 느끼는가?  이는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서구 문명사 전반에 걸쳐 금융과 금융업자에 대한 적대심은 꾸준히 있었는데, 이는 돈놀이로 생활하는 자들이 농업이나 제조업 등 '실물' 경제 활동에 어느 정도 기생하고 있다는 사고 때문이었다.  

 - <금융의 지배> 들어가는 글, 니얼 퍼거슨, 민음사, p 8 -

 
   

어떤 이는 돈 펑펑 쓰면서 살고, 한편 또 다른 이는 돈 없어서 못 살고 있는 세상.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말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 돈 있는 자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에 대해서 불평만 떨면서 속을 앓는 심정.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도 그럴거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돈 때문에 생기는 속앓이는 우리만 그런게 아니었는가 보다.   

니얼 퍼거슨이 쓴 <금융의 지배>에는 고대 문명에서부터 지금까지 서양의 금융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의 펜으로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진 금융업자들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돈에 대한 인류의 생각은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류는 높은 자본의 수익을 얻게 되면 여기서는 만족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한 푼 더 끌어 모으려고 하는 속물 근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남의 속물 근성에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남이 돈 잘 보는 꼴을 못 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인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그 당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에나 지금이나 욕 보이는 이유도 돈에 대한 인류의 습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저 인간은 돈에 눈 멀었어.'   

 ' 예전에는 일자무식했던 저 인간이 어떻게 많은 돈을 벌었지?  분명, 온갖 편법을 썼을거야. '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남이 자신보다 돈을 잘 벌고 잘 살면 썩 좋게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매스컴이나 언론에는 '돈세탁' 이니 '뇌물', '비리' 등 돈에 관련된 부정적인 어감들과 그 행태와 관련된 기업가들이나 정치인들이 이 자주 언급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돈 잘 버는 사람들, 특히 부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우니나라에 워렌 버핏이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주식에 손을 댔다면 주위 시선들이 어떠했을까?  아마도 국내에서는 성공한 주식투자가로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중들은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어준 그의 타고난 세상을 인지하는 감각과 꾸준한 노력으로 완성된 투자 방법들을 선호와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 유사한 인물이 나오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여준다. 자수성가형으로 갑부가 된 사람들도 부당한 방법으로 갑부가 된 사람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과 동률이 되는 것이 부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은 인류가 자본주의 사회에 불공평하는 이유는 채무자들에 대한 인류의 호의가 드물었다는 점, 그리고 역사 속에서 등장한 수많은 금융 위기와 금융 스캔들은 인류에게 '빈곤, 불평등' 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제공해준 점, 또 앞에서도 언급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처럼 세계의 금융을 주름 잡았던 특정 인종과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옹호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부당거래를 포함한 역사 속의 수많은 금융거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상과 같은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책 표지과 제목만 봐도 저자가 금융을 지배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눈과 입에 달려 있는 달러, 파운드, 엔화 단위의 얼굴은 금융에 지배당한 사회를 비꼬는 의도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가 금융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아마도 금융이라는 자본 거래 행위가 사회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는 뜻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에 무지한 대중들이야말로 금융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인, 중앙은행가, 사업가들은 돈에 대한 대중의 무지에 한숨을 쉬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가 지출과 세후 소득 관리를 개인에게 맡기고, 성인들이 저마다 주택을 소유한다고 가정하며, 은퇴 대비 저축액 산정이나 보험 가입 여부도 개인에게 일임해 버리면, 결국 역량 부족한 시민이 금융과 관련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장차 불거질 문제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 <금융의 지배> 들어가는 글, p 17 -

 
   

사실, 니얼 퍼거슨의 금융 예찬론은 어떻게 보면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은근히 수긍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반발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의 금융 사회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약간은 문제가 있다. 빈곤이 탐욕스러운 금융업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니라 금융적 무지에 대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리는 점도 합당한 의견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또 그는 부유한 선진국과 가난한 개도국으로의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부의 정도로 세계 지도를 구분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풍부한 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자본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개도국으로서는 금융적 기회가 보장되지 못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이 되다보니 세계의 빈곤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금융업이 세계의 부의 이동과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미 금융업이 국가의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얼 퍼거슨이 소개하는 금융사를 통해서 앞으로의 부의 흐름에 대한 전망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선견지명의 안목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뱀다리 P.S  

<금융의 지배>을 쓴 저자의 이름과 표지 속 인물을 보면서 제일 먼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이 생각났다. 이 영감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적인 축구 클럽으로 만드는 공로가 큰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항상 경기가 있으면 껌을 씹는 습관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이 영감님이 24년동안(세상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질겅대며 씹었을 수많은 껌들을 값으로 환산하면 얼마 정도 나올지 궁금하다. 표지 속 인물의 입에 달린 (비록 엔화이지만) 화폐 단위처럼 그가 씹고 버렸던 껌값들이 꽤 두둑하게 나올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돈으로 빈곤국가들을 지원하면 참 좋을 거 같다는 희망적인 바람이 담긴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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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1-1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이 금융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이번에 서울 왔을 때도 그 특유의 경제관 선전에 여념이 없더군요.아무래도 사람이란 자기가 아는 분야를 남들은 모를 때 답답한 느낌이 나는 모양입니다.

cyrus 2010-11-17 13:28   좋아요 0 | URL
세계지식포럼에 폴 크루그먼과의 논쟁으로 유명했다던데,,
알고보니 지식포럼에서도 중국과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더군요. 이 책에서도 그렇게 자신의 입장을 그렇게 밝히고 있고요.
제가 아직 경제학 지식이 전무해서 폴 크루그먼이 쓴 책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7 15:48   좋아요 0 | URL
지식포럼의 퍼거슨-크루그먼 논쟁은 저도 관심이 있어서 관련기사를 오려놓았습니다.우리나라 감세정책 논쟁과 비슷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이번 미국중간선거도 그렇고 경제정책 논쟁은 어디나 다 비슷하더군요.

마녀고양이 2010-11-1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다시 유동성 자금을 푼 시점에서
화폐 전쟁이 재점화될 듯 합니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런 책을
읽어봐야 하는데, 짬이 없다는 이유로 요즘 거의 읽어보지 못 하네요.

읽으면서 틀림없이 위화감을 느낄 듯 하지만,
그렇다해도 현실적으로 세계 경제의 돈놀음에 휘말린 우리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인거 같습니다. 폴 크루그먼의 책두 그렇구요.
아직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나 쑹흉빙의 화폐전쟁도 사놓고 못 읽었으니..
사이러스 님의 리뷰를 보고 제가 한심해져서.. 이런 저런 한탄 늘어놓고 갑니다. ^^

cyrus 2010-11-17 17:01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제가 한심한거 같은데요^^;;
고양이님 언급하신 책들도 읽어봐야할텐데 제가 경제에 많이
무지한 편이라서 선뜻 읽기가 엄두가 나지 않네요ㅎㅎ

2010-11-17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8 0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정 교육 1 펭귄클래식 8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윤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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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39] 감정 교육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에서 -  

 
   

 

  플로베르에게 살짝 굴복당한 뻔하다 

   " 이 책에 굴복한다. "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 대해서 이런 평을 남겼다. 카프카의 문학은 플로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카프카는 플로베로의 세밀한 묘사를 모방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플로베르의 문학은 사실주의에 속하는데 단순히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사실감 있게 묘사하려는 필체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는 정말 작품 속 단어 하나하나에도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그가 얼마나 꼼꼼했는가 하면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플로베르의 친구들이 작가에게 주말에 놀러가자고 권하자 플로베르는 새 작품을 쓰느라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을 하였다. 할 수 없이 친구들은 자신들끼리 유흥을 즐겼고 일요일에 플로베르의 작품 집필 정도 확인 차 집으로 찾아갔다. 플로베르는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작품이 완성되었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두툼한 원고를 읽어본 친구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전에 읽어본 내용과 별반 달라진게 없음을 느낀 것이었다. 한 친구는 플로베르에게 며칠 전에 읽어봤던 그 내용과 똑같다고 지적하였으며 주말동안 뭘 했는지 물었다. 플로베르의 친구들은 주말에 작품 집필하는데 바쁘다고 그러더니 내용이 고치지 않은 사실에 실망했던 것이다. 그런 친구의 반응에 오히려 본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플로베르가 하는 말,   

 "고쳐진게 없다니. 이 친구야. 어제 이 문장 부분의 쉼표를 마침표로 바꾸었다가 다시 쉼표로 바꾸었다네. "       

문장의 부호 하나 넣는데에도 사실적 표현을 위한 그의 몰입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주말동안 문장 부호 하나를 넣는데 집에 틀어박혀 고심을 한 작품이 아마도 <감정 교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플로베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명작 <마담 보바리>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나는 두 권짜리 <감정 교육>을 읽는 내내 그의 세밀한 묘사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플로베르의 작품 한 편이라도 읽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플로베르의 장편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음을.) 1권을 읽는 도중에 여러 번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카프카가 왜 플로베르의 작품에 굴복했는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리오 영감> 발자크의 파리  vs <감정 교육> 플로베르의 파리 

<감정 교육>은 파리 상류사회에 진출하려는 어느 청년이 욕망과 허영의 도시인 파리에서 겪는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장관이 되기를 꿈꾸는 청년 프레데릭 모로는 자신보다 연상이며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아르누 부인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파리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신도 그들과 같은 소속원이 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명성에 집착하고 권태에 빠진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된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 자신이 겪은 일들은 부질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아르누 부인에 대한 사랑도 점차 식어만 갔다. 결국,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은 과거의 사랑에 대한 확인만 한 채 헤어지고 600여 페이지 소설도 마무리짓게 된다. 

플로베르는 이 길고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통해서 1840년대 파리의 어두운 사회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발표 시기는 다르지만 프랑스사에서 빠질 수 없는 굵직한 대혁명 뒤의 프랑스 사회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다.  발자크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19세기 초반의 파리를 묘사하고 있다면 플로베르는 1848년 2월 혁명 이후를 포함한 19세기 중반까지의 파리를 그려내고 있다. 시기와 배경은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 파리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사회진출을 꾀하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이다.  

발자크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플로베르는 그의 사실주의적 문학을 영향 받지는 않았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서 묘사하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는 무미건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플로베르의 묘사는 그의 대단한 집중력과 관찰력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필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 속 주인공 프레데릭의 삶은 작가의 젊은 시절을 토대로 구상한 것이다. 그러니 플로베르의 파리는 정말 사실적이면서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예술의 목적은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라고 본인이 말할 정도로 자신이 소설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파리의 사회는 순전히 그가 창조한 파리이다. 즉, '발자크의 파리' 인 것이다. 발자크가 묘사한 파리는 무미건조한 파리와는 다르게 생동감 있어 보이며 <고리오 영감>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플로베르의 작품보다는 쉽게 읽혀진다. (발자크의 작품을 읽어본 다른 이들에게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리오 영감>을 읽었을 때 술술 읽혀져나갔다) 

서로 다른 사실주의 문학을 구축해서인지, 두 작품의 결말도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고리오 영감>의 라스띠냑크는 부에 대한 욕망을 가득한 '진흙투성이' 파리 사회를 혐오하지만 그렇다고 낙심과 절망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 

결말에서는 파리라는 거대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힘찬 포부를 드러나고 있다. 발자크는 라스띠냑크의 긍정적인 모습을 통해서 어둡고 칙칙한 파리의 기성사회에 대항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라스띠냑끄의 도전은 발자크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당시 파리의 열악한 현실을 비추어 보면 허무맹랑하다.  그래서 플로베르의 파리와 작품의 결말은 발자크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프레데릭은 부조리한 파리 사회를 목도하고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개선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이 제일 좋았다고 중얼거리면서 소설은 결말을 짓는다. 이런 프레데릭의 모습은 혁명 이후의 세대들의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사회체제를 뒤집고 바꾸기 위해서 가슴 속에 뜨거운 혁명의 열정을 뿜어내지만 혁명를 지나간 이후에는 이들 역시 혁명 이전의 기성 세대들처럼 순응적이고 나약한 삶을 살게 되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만약 이 작품을 보들레르가 읽었더라면 

혁명 발발 이후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의 재회 장면은 혁명의 열정이 식어가는 혁명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재회를 하면서 서로 간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지만 아르누 부인에 대한 프레데릭의 사랑은 1권 속 모습과 대조적이다.  아르누 부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보면서 속으로는 실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누 부인은 예전과 다른 프레데릭의 변화된 감정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부산 떨면서까지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재차 확인하려고 하고 있다. 프레데릭이 자신 말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거 아닌지 괜한 걱정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프레데릭은 마지막으로 그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불꽃을 피워보려고 하지만 이전처럼 뜨겁지가 않으며 금방 사그라진다. 식어버린 부인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당혹스러웠는지 담배 한 개피를 물어본다.  

   
 

  프레데릭은 아르누 부인이 몸을 내맡기고자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자 그 어는 때보다도 더 강하며 격렬하고 미칠 듯한 욕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것, 반감이랄까 근친상간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제지했다. 하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신중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끌어내리지 않으려는 마음에 그는 몸을 돌려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 <감정 교육> 2권,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윤진 역, 펭귄클래식, p 338 -

 
   

작품에서는 사소한 장면이지만 당혹스러움에 담배를 피우는 프레데릭과 아직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아르누 부인의 대조적인 모습은 지나가는 시간과 세월에 쉽게 변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인간과 그런 인간의 습성에 두려워하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예전과 달라진 프레데릭의 감정을 뒤늦게 알아차린 아르누 부인이 떠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에게 전해주는 모습은 딱하기만 하다. 젊음의 상징인 까만 머리카락을 전해줘도 프레데릭의 감정은 이제는 원래대로 되돌아오지 않는데도 말이다.

재미있게도 이런 인간의 모습에 대한 알레고리는 <감정 교육>이 발표된 해인 1869년에 나온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산문시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쭈글쭈글한 노파는 누구나 좋아하고 환심을 사려 하는 이 귀여운 어린애를 보자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노파처럼 그렇게 연약하고, 그녀처럼 이도 머리털도 없는 귀여운 것을. 
 그래서 노파는 아이에게 다가가 웃어주면 좋은 얼굴 표정을 해 보이려 했다. 그러나 아니는 이 늙어빠진 착한 여인이 어루만져 주는 데 겁이 나 발버둥치며 집 안이 떠들썩하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착한 노파는 다시 그녀의 영원한 고독 속으로 물러나, 한쪽 구석에서 울며 중얼거렸다.  "아! 우리 불행한 노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것들조차 좋아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구나. 우리가 사랑하고 싶어도, 어린것들을 무서워하는구나! "  

 - <파리의 우울> [노파의 절망]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역, 민음사, p 27 -

 
   

<감정 교육> 그리고 <파리의 우울>은 1869년, 같은 해에 암울하기만한 파리를 예리하게 묘사한 글을 발표했지만, 보들레르는 이 유명한 플로베르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이미 보들레르는 <파리의 우울>이 세상에 나오기 2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에 보들레르가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플로베르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파리의 모습을 플로베르라는 동시대의 작가가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높게 평가한 유일한 문학가일 수도 있다. <감정 교육> 발표 당시 문단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은 사실을 감안하면 보들레르가 이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낡아빠지고 고리타분한 기성 세대가 되어버린 아르누 부인은 보들레르의 글에 나오는 노파처럼 영원한 고독 속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순진무구했던 프레데릭은 저 꼬마처럼 늙어버린 아누르 부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  프레데릭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 드러난 프레데릭의 감정들은 다양한 삶의 체험들을 통해서 기성 세대로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이 되어서 사회에 대한 환멸과 안주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프레데릭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세대들에게도 드러나는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다. 프랑스 문단이 플로베르의 날카롭게 파리의 실상을 새긴 <감정 교육>을 외면했던 것은 혁명 이후 보다 나은 세상이 도래되지 않았다는 환멸감과 자신들도 모르게 삶에 순응하고 안주하는 습성에 물들어 있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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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기전에 적어도 플로베르정도는 읽어줘야 할텐데...
보들레르는 고사하고 김광규만 읽었다나 어쨌다나~~~

근데,플로베르에서 보들레르를 떠올리시다니...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상상력도 대단하십니다여~^^

다이조부 2010-11-14 08:18   좋아요 0 | URL

딴지걸자는 건 아니지만 ^^

저는 세상에 죽기 전에 뭔가 해야 할일, 20대에 꼭 해야 할 일 이런

규정이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는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ㅋ

아무튼 그래서 플로베르 와 보들레르 를 남은 생에서 읽지 않는다고 해서

뭐 그닥 후회는 안할듯~ 한동안 김광규 시집을 틈틈히 읽었던 시기가

있었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아니다 그렇지 않다, 좀팽이처럼....

언급한 두 명의 외국유명시인의 시를 접하지 못한건 몰라서 모르겠는데

생전에 김광규의 시를 읽지 않았다면, 인생이 더 시시했을것 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하하하

cyrus 2010-11-14 20:29   좋아요 0 | URL
저도 시집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말로만 죽기 전에 읽자고 그러지, 그렇다고 너무 연연하게
두지 않습니다. 예전에 문학 작품 읽기를 소홀히 해서
삶도 바빠지는만큼 조금이라도 열심히 읽자는 차원에서 정한 것이랍니다.
뭐 죽기 전에 다 못 읽는 것이 세상에 널려 있는 책들이고,
안 읽었다고 그렇게 후회하는 점도 없고요^^


비로그인 2010-11-1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기 구석에 있는데,, 오늘밤 다시 끌어 안아 봐야겠습니다. 물론 Cyrus님의 글도 생각해보면서 말이지욥 ^^

cyrus 2010-11-14 20:29   좋아요 0 | URL
읽는데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름 생각거리가 많았던 플로베르의
작품인거 같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감정교육>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학생시절의 정의감을 잃고 속세에 물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90년대부터 우리나라 소설에 나오는 후일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프랑스 고유무술 사바트의 고수가 나오는 것이죠.

cyrus 2010-11-14 20:32   좋아요 0 | URL
자이트님은 격투기를 해보신 적이 있어서 그 장면이 기억이 남았군요^^
이 작품 읽으면서 1840년대 파리가 크게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1권에는 부패한 왕정에 대해서 젋은 학생들이 데모하는 장면이 간혹
있기도 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4 23:36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문학사는 연변에서 나온 것이라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적인 관점이 강한데, 1848년 혁명을 그린 가장 사실적인 작품으로 <감정교육>을 꼽더라구요.

아...그런데 사바트는 발차기 전문이라 저는 못합니다.저는 오른쪽 골반을 다쳐서 오른쪽 무릎을 많이 올리거나 비트는 동작을 못해요.

cyrus 2010-11-14 23:4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격투기는 남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스포츠이지만,
무엇보다도 몸 관리가 중요한거 같습니다.

blanca 2010-11-1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과 정말 비슷한 구도군요.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플로베르는 예전에 보봐리 부인을 참으로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망설여졌어요. 감정교육은 꼬옥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cyrus님 말씀 들으니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0-11-14 23: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다음 플로베르의 작품으로 <성 앙투안느의 유혹>과
<마담 보바리>를 읽으려고 하는데, 망설여지네요ㅎㅎ
그래도 blanca님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고 예전에
그의 작품을 읽어보셨다면 두 권짜리 작품들도 완독하실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무턱대고 덤벼든 감이 있었답니다.^^;;

starover 2010-12-1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이러스 님은 짱임.

cyrus 2010-12-11 16:16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으하님^^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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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계의 논란의 중심, 스티븐 호킹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또 한 번 학계와 독서계에 논란을 일으킬만한 책을 발표했다.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 이번 신작에는 이전과 다르게 무신론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로 랭크되었고,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이 창조론자들에 대한 '결정적 한방' 이라고 말하면서 책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이 있는 석학이다보니 그가 책 한 권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말한 발언과 가십은 항상 언론에 기사화되어 이슈가 된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이 발표한 블랙홀 이론이 틀렸음을 스스로 밝히면서 이론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호킹 박사가 부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결국은 루머로 판명되었다. 일반적으로 헐리우드 연예인들에게 생길법한 소식을 물리학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이채롭기만 하다.  

<위대한 설계>가 발표되기 전에는 호킹 박사는 외계인의 존재를 확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우주에 1000억개의 은하계가 존재하는 만큼 다른 별에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였고, 외계인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좋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유가 특이하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만나면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후 원주민들이 탐험대들에게 몰살당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하였다. 평생 4차원에 대한 물리학 연구에 몰두해서 그런 것일까?  그가 말하는 이유 역시 참 4차원적이다. 나는 그의 주장을 신문에 접하면서 물리학자다운 근거를 밝혔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단순히 은하계가 광대하니 외계인 존재는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그이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아서 무척 실망했다. 원래 호킹의 발언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하였는데 이 다큐멘터리에는 호킹의 입장에 대한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우주를 만들지 않았다

이번 책은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와 함께 썼다.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 역시 대중적인 과학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그의 저작이 소개되기도 했다. 믈로디노프보다 호킹이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언론은 책에 대한 소개에 '스티븐 호킹' 이라는 이름을 자주 언급한다. 그래서 학계뿐만 아니라 독자들 사이에서도 과학의 무신론에 대해서 찬반 논란을 낳고 있다. 사실, 나도 종교를 믿지 않으며 무신론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호킹과 믈로디노프의 주장이 무조건 맞다고 보기보다는 과연 이 책에 자신들이 밝히고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지금까지 밝혀온 과학 이론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든 과학의 법칙들이 성립하기에 지금 돌아가고 있는 우주의 메커니즘이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 책 소개에서는 호킹이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과 전공이 아닌 나는 그가 설명하는 이론들을 여러 번 읽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과학의 법칙에 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으며 지금까지 증명된 법칙과 이론들만으로 우주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우주는 무(無)에서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지 인간에게는 행운인 위대한 설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약간의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 접했던 외계인 존재에 대한 호킹의 주장이 자꾸 떠올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호킹과 믈로디노프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책의 7장 [가시적인 기적]에서 이심률에 대한 설명에는 자신들의 무신론에 대한 근거를 얼버무리는 경향이 보인다.  이심률이란  행성의 공전궤도를 형성하고 있는 수치를 말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궤도를 형성하고 있는 타원형이 얼마나 찌그려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치가 이심률인 것이다. 이심률의 수치는 최소는 0, 최대는 1까지 정하고 있다. 이심률이 0에 가까우면 궤도의 타원형이 원과 유사하다는 뜻이며 1에 가깝다는 것은 반대로 타원처럼 찌그러진 모양이라는 것이다. 행성 궤도는 거의 원에 가까운 것으로 증명되고 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서 호킹와 믈로디노프는 '대단한 행운'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태양계는 다른 "다행스러운" 속성들로 지녔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발전된 생명 형태들은 절대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지구의 궤도는 이심률이 약 2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지구의 궤도는 거의 원이다. 이 사실은 알고 보면 대단한 행운이다.  

 - <위대한 설계> p 188~189 -  

 
   

이심률에 1에 가까운 궤도가 타원형이라면 지구 내 온도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이심률의 수치가 크면 클수록 그 행성에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이심률이 0에 가까운데 두 저자는 이 현상 역시 행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7장에서는 유난히 '행운'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 태양의 질량과 우리가 태양에서 떨어진 거리 사이의 관계도 우리에게 행운이다. 왜냐하면 별의 질량은 별이 내뿜는 에너지의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지금과 동일하고 태양의 질량은 지금보다 20퍼센트 많거나 적다면, 지구는 현재의 화성보다 더 차거나 현재의 금성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 p 190~ 191 -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게 만드는, 아주 최적의 위치인 우주 공간을 '골디락스 구역' 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인 골디락스가 좋아한 수프가 차갑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는 아주 적당한 온도의 수프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도 '행운' 예찬이 등장한다. 

   
 

  지구가 그 좁은 구역 안(골디락스 구역 안)에 있다는 것은 지적인 생물인 우리에게 참 행운이다!  

 - p 192 -    

 
   

호킹와 믈로디노프는 우주 내 지적인 생물인 인간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최적의 환경조건으로 만들어진, 정말 '행운' 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이 우주의 메커니즘이 위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내용의 부분에 대해서 종교계가 이들의 주장을 반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두 과학자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행운적인' 우주의 설계 원리에는 신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우주는 단순히 인간이라는 생물이 존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중첩된 법칙의 결과물이며 인간 스스로 중첩된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대문이다.  

어떻게 보면 두 저자의 주장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이 모든 세상의 메커니즘을 증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장 [존재의 수수께끼] 에서도 우주의 창조에 대한 질문을 담당하고 있는 철학 영역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에 대한 지식을 좀 더 확장하고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과학자들이라고 말한다.  호킹과 믈로디노프가 인간은 '지적인 생물' 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만 현실은 그렇지만 않은게 사실이다.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알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너무 부족하기만 하다. 우주의 본질은 양파껍질과도 같다. 얇은 껍질 한꺼풀 벗기면 또 얇은 껍질들이 남는다. 이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우주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론과 법칙을 발견, 증명을 거듭해도 거대한 우주가 탄생할 수 있게 하는 그 근본의 씨앗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존재 기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 스티븐 호킹의 외계인 존재 관련 기사          

http://www.cocanews.com/doc=news/read.htm&ns_id=4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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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의 가장 끝자리에 '행운'이라는 단어가 놓여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남편이 요즘 들여다보고 있는 책인데 여기서 읽은걸로 다 아는 척~ 해야할 듯 싶군요.

cyrus 2010-11-12 12:57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거 같습니다. 과학자들이라도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에는
어려운거 같네요. 그리고 분량이 얇은데도 제가 물리학 전공이 아니라서
좀 읽는데 어려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이라는 매체에 관심이 많아요. 한때 취미로 생각했던게 신문읽기 라고 여길정도로...

주인장이 스티븐 호킹의 주장에 근거 없음에 실망했다고 했는데, 확률이 높은 가설 중에

하나는 신문제작 여건상 지면제약의 한계 때문에, 책에 대한 리뷰가 소홀할 가능성과

핵심 주장도 옮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이야기 하고 싶네요.

스티븐 호킹은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게으른 독서로 아직 접해 보지 못했어요.

리처드 도킨슨은 만들어진 신 을 구입했는데, 책 내용을 접하기 전부터 그 사람의

주장에 공감했던 상황이라 책읽기 가 시시하더군요.


cyrus 2010-11-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려고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많은 언론에서 이 책에 대해서 소개한 것을 미리 봐서 그냥 skip할려고요,
스티븐 호킹의 외계인 발언이 있는 다큐를 보고 싶었으나,,,
영어 실력이 안습이네요 ㅠ_ㅠ 그 다큐를 보면 호킹이 외계인에 대한 발언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을텐데 말이죠. 부족한 글에 대해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3 21:53   좋아요 0 | URL


저도 영어 실력 캐안습 ㅋㅋㅋ

근데 말이죠~ 시간 날때 비비시 에서 제작한 리처드도킨슨이 참여한

다큐가 있어요. 2부작인데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철철 넘쳐

흐르는 영상인데, 책 보다 저는 더 좋더군요.


cyrus 2010-11-13 23: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딱딱한 전문적인 책보다는 영상이 보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철나무꾼 2010-11-1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런 종류의 책들 중에선 스티븐 호킹이 가장 흥미롭고 쉽게 쓰지 않나요?
골디락스 구역도 흥미롭구요.

저도 이 책은 가지고만 있지 아직 못 읽었는데...'만들어진 신'이후 크게 비껴가진 않았네요~^^

cyrus 2010-11-14 20:34   좋아요 0 | URL
네, 책 분량도 생각보다 두껍지 않고, 역시 호킹의 책인만큼
과학 이론에 대한 화보도 곁들어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0-11-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첨 뵙습니다, 사이러스님(이렇게 불러드리는게 맞나요?)..

뒤늦은 댓글이기는 하나,
제가 관심있는 책이라 주의깊게 리뷰 읽었습니다. 일단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지구 생성 및 생명체 생성이 행운이라 하는 점은
이미 리처드 도킨스의 초기 저서부터 나온 이야기들인지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거기다.. 과학 메커니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할거라는,
스티븐 호킹의 말은.. 흠.. 저희 뇌 작동에서 작은 인간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뇌의 여러 기능을 총괄하는 자는 누굴까? 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구요.

그러나 사이러스님의 리뷰를 읽으니, 꼭 제가 읽고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날 되셔요~

그리고.. 궁극의 리스트 책 소개를 통해
이달의 당선작인 리뷰 읽었습니다. 역시 멋진 리뷰였습니다. ^^

cyrus 2010-11-17 17:0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녀고양님^^ 나무꾼님이랑 다른 분들 서재 댓글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당선작 칭찬해주신거 감사합니다.
저도 고양이님 서재 자주 들릴께요^^

저도 약간 이번 책에서 밝힌 호킹의 주장이 실망스러웠지만, 위에
매버릭꾸랑님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나의 언론과 책으로 주장이
옳다 나쁘다 정하기에는 위험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이 책 말고도
다른 과학자들의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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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이 책, 너무나 읽고 싶었다.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아서 다른 도서관에 찾아가서 대출하였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고 대중들을 위해 서양사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 주경철 교수도 내가 선호하는 지식인들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얇은 분량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쉬웠지만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친숙한 작품에다가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저자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대항해 시대>를 읽다가 포기했던 적을 감안하면(책 분량이 600페이지를 넘는다)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으로 감지덕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 무척 난감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차례를 먼저 확인하고 읽어봤어야 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대부분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략한 줄거리 정도는 기본으로 습득하고 있지만, 원전의 내용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의 분석을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원전으로 읽어본 작품이라면 최근에 읽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예전, 어렸을 때 읽어본 작품에는 고작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이솝 우화집>이었다. 과거 평소에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문제적 독서 습관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었다.  

결국에는 모든 책의 내용들을 읽고 말았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의 줄거리를 미리 알게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왠지 대놓고 스포일러에게 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책을 쓰기만 한 저자를 스포일러라고마냥 비판할 수도 없고, , ,  이번 독서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듯 쿨하게 읽고 넘어가야만 했다.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순

사실, 이 책의 내용들 중에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내용에 더 눈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 것도 있었으며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물섬>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자 후기 내용과 비슷한 것도 있었다.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며칠 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작품과 관련된 내용에는 서양사적 키워드인 '해적' , '제국주의' 가 언급되어 예전에 읽었던 역시 주경철 교수가 쓴 <문명과 바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진작에 같이 읽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을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서로 연관성 있는 책들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보다 입체적인 독서를 할 수 있고,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티븐슨이 <보물섬>을 집필하면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작품 전개가 서로 모순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물섬>에는 재화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물섬>에서 선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주인공 짐 호킨스와 리브지 선생, 그리고 히스파니올라 호에 승선하는 인물들도 악한 캐릭터로 대비되는 롱 존 실버와 그 밖의 해적들처럼 플린트 선장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물을 획득한 호킨스 일행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였던 해적들에게는 한 푼 어치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의 행동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와 동떨어지게 된 셈이다. 짐 호킨스가 보물을 찾아나선 것도 본질적으로는 재화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대부분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보물을 찾기 위해서 히스파니올라 호에 위장잠입하여 반란을 일으킨 롱 존 실버는 나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짐 호킨스는 악의 간계에서 벗어난 의로운 소년이라고 인식한다.  

  

 

  의로운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저자는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의 이 애매모호한 모순이 생기는 이유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짐 호킨스-롱 존 실버' 로 대립되는 구도로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국가' 라는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면 의로운 인물이 되고, 국가의 공적인 활동에 반하여 폭력을 행사하면 해적,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작품 속, 짐 호킨스 일행에 대한 묘사는 본 독자들에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보물을 찾으려는 선한 인물로 비춰지기 쉽도록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 선장, 이 집은 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소. 놈들이 겨냥하는 것은 저 국기임에 틀림없소. 저걸 거두는 게 낫지 않겠소? "   " 내 국기를 내리라뇨! " 선장이 소리쳤다.  " 안 됩니다. 그렇게는 못 합니다. "  

  - 스티븐슨 <보물섬> 중에서, 주경철의 책 p 147 -

 
   

반란을 일으킨 실버 일행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까지 히스파니올라 호의 스몰렛 선장은 조국의 국기를 내리는 행위는 적들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티븐슨이 주경철 교수의 분석대로 자신의 소설을 국가라는 기준으로 상반되는 구도를 착안했는지 확인할 바가 없지만, 역사적 사료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절대 해가 지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 막강한 국력을 떨치게 되었다. 영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훌륭한 통치력도 있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영국의 대표적인 해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 당시 영국과 양강 대립국인 스페인의 무역선들을 노렸다.  그래서 스페인으로서는 드레이크라는 해적 선장, 그보다 더 영국이라는 나라를 껄끄럽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두 나라는 유럽 대륙에서의 강대국을 결정지을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영국은 스페인을 대파하면서 이전에 유럽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을 밀어제치고 당당히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국가를 위한 대활약을 펼친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경' 의 칭호를 받게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된다. 지금도 드레이크는 해적 선장에서 영국의 바다 영웅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는 인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무력 

살육과 비인간적인 폭력을 일으켰을지더라도 국가에 올바른 일을 하냐 안 하냐에 따라서 그 인물의 행적이 평가되는 것이 역사의 특징이다. 비단 드레이크 선장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인류 최초 세계일주 항해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마젤란과 같은 항해가들이 활동했던 신항로 시대에는 강대국들이 자행한 살육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3월 6일은 마젤란이 괌에 상륙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마젤란의 업적을 기념하기도 하며 괌에는 마젤란 상륙 기념비가 새워져 있다. 하지만 그 기념적인 사건 뒤에는 괌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어두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맨 처음 괌에 상륙할 당시, 마젤란은 이 섬을 라드론(Ladron)이라고 명칭을 붙여줬다. Ladron은 스페인어로 '도둑' 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괌 원주민들이 마젤란이 타고 있던 배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마젤란 일행들이 낯선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마젤란 일행의 배에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젤란은 괌에서만 자란 원주민들이 도리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러니 그 곳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자행을 한 것이다.  

신항로 개척 시대의 항해가들, 그리고 해적들. 두 바다 위의 모험가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엇갈려져 있지만, 이들 활동의 근본에는 자본주의라는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이나 남의 배에 침입하여 약탈을 행하는 해적들이나, 다 돈을 벌기 위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당한지 217일 만에 석방된 삼호 드림호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와 무력의 관계는 필수불가결이다. 이번에 피랍된 시기가 역대 최장 기간이었으며 석방되는 조건으로 해적들이 요구한 가격도 역대 최고가로 기록되었다.  해적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배후에 해적들과 손을 잡은 외국 브로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을 얻기 위해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는만큼 이번 사건은 단순 해적에게 피랍당한 사례로 봐서는 안 된다. 점점 더 영악해진 자본주의 세상을 이해를 해야만 이번 일과 같은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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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경철은 자기 분야에서 제 몫을 분명히 하는 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책은 접하지 못했지만, 예전 작품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를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은 강연을 대학시절 접했는데 그 할아버지도

주경철 칭찬하던게 생각나요.

주경철 도 분명히 실력있는 학자이지만, 연세대학에 있는 김명섭 도

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한길사에 나온 <대서양 문명사>를 권합니다.

조선일보를 통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손바닥칼럼 주경철의 글을 50회 이상

스크랩 했는데,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해서 뭥미 싶더군요.

칭찬을 앞에서 쫘악 해놓고, 뒤통수 치는것 같은데 주경철이 조선일보에 기고하는게

참 거시기 하긴 해요 쩝

cyrus 2010-11-13 21:03   좋아요 0 | URL
매주 토요일마다 중앙일보에도 기고합니다. 중앙일보에는 경제와 관련된
서양사에 대한 칼럼입니다. 제가 서양사에 좀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와 관련된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는데도 저는 서양사를 몰라요 ㅋㅋ


진지하게 공부하는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심심할때 보기 좋은 만화책이

있어요. 굽시니스트 작 제2세계대전 이라고요~ 2권짜리 책인데 얼마 전에

함께 공부하던 동생들한테 그 책을 선물했는데 두 녀석 다 이건 뭥미 하더군요 ㅋ

전쟁쪽으로 관심이 있고, 만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면 추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