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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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70] 영원(蠑蚖)과의 전쟁

 

 

   
 

「왜요?」
「거기 악마들이 있어요. 선장님. 바다 악마들이죠.」
「바다 악마가 뭐요? 물고기?」
「물고기는 아니고요.....
혼혈은 잠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악마에요. 심해의 악마. 바티크 사람들은 <타파>라고 부릅니다. 타파.
그 악마들이 모여서 자기네 마을을 이루고 산답니다. 잔 채워드릴까요?」

- 『도롱뇽과의 전쟁』p 24 -

 

 

 

 국내에서는 생소한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

체코에서 이름 있는 작가를 꼽으라면 대부분은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를 언급할 것이다. 체코라는 나라는 예전에 '체코슬로바키아'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그래서 예전의 국명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1993년에 정식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었음에도 2001년까지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 라고 불렀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사실은 알게 된 것은 2001년에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가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했던 당시 체코와의 평가전을 치뤘을 때 알게 되었다. 그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5:0으로 대패하여 거스 히딩크는 그 이후로 '오대빵' 감독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갖게 되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체코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체코라고 하면 앞에서 언급한 두 명의 문학가와 한 때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활약을 했던 축구선수 네드베드 밖에 생각이 안난다.   

이번에 읽은 <도롱뇽과의 전쟁> 덕분에 카렐 차페크라는 체코의 걸출한 문학가를 알게 되었다. 이 작가 역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문학가이지만 체코 국민들에게는 카렐 차페크에 대한 애정이 무척 각별할 정도로 '국민작가'급의 대우를 받았으며 지금도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생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로봇>이라는 희곡이 있다. 그의 동생이며 역시 작가인 요제프 카페크와 공동으로 집필하였는데 그 동생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용어 '로봇(Robot)' 를 처음 만들고 사용한 인물이다. 로봇은 robota라는 '일한다' 라는 뜻의 체코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형인 카렐이 동생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인지라 지금까지도 '로봇' 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카렐 차페크라고 알고 있다. 지금도 네이버 백과사전에 '로봇' 을 검색하면 카렐 차페크가 만들었다고 정의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생전에 카렐 차페크는 백과사전 편찬자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검토할 것을 종용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카렐 차페크가 쓴 작품들이 번역되긴 하였으나,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서 그런지 절판된 책이 많다. 그는 짤막한 동화 작품집으로도 유명한데 절판 상태이다. (<어느 의사의 길고 긴 이야기><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가 있는데, <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에도 '어느 의사의 길고 긴 이야기' 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나마 절판된 작품들은 최근에 지만지고전천줄에서 철학소설 3부작 시리즈 중 두 작품이 번역되기도 했으며 사실 <도롱뇽과의 전쟁> 은 2001년에 두산동아에서 출판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SF소설이 아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을 어느 장르라고 쉽게 말하기 힘든 작품이다. 카렐 차페크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는 '로봇' 용어 창조 이외에도 이 작품을 SF소설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SF소설이 아니다. SF소설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과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미래의 과학 수준을 예상하여 전개되는 장르이다. 물론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어보면 SF소설의 특징이 드러나 있다.  도롱뇽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도 인간처럼 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족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내용 중간에 도롱뇽에 대한 연구논문과 학술적인 자료를 발췌한 기록들을 삽입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게 되면 과학소설이면서도 SF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SF소설에는 과학의 미래, 과학의 진보에 수반되는 사회생활의 변화에 대한 문제점들을 다루는데 <도롱뇽과의 전쟁>은 인간처럼 행동하는 도롱뇽을 작품에 등장시키켜 단순히 과학이 진보된 미래를 비판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에서 드러나고 있는 과학이 지배된 사회 비판은 미시적인 내용일 뿐이다. 이 작품은 과학, SF소설이라기보다는 진지하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사회비판적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제2의 종족, 도롱뇽 

이 작품 줄거리는 '자본주의' 라는 하나의 거대한 틀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반 토흐 라는 선장은 바닷가에서 우연히 진주조개를 잡는 도롱뇽들을 발견하게 된다. 도롱뇽들에게는 자신들이 잡은 진주조개로 아름다운 빛깔로 둘러싸인 진주들을 채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본 반 토흐 선장은 도롱뇽들의 능력을 이용하여 한 몫 잡아보기 위한 사업 계획을 구상하게 된다. 그 후로 인간처럼 행동하는 도롱뇽들의 정체는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롱뇽들은 인간들에게 직접 접근하여 말을 걸기도 한다. 단순히 아름다운 진주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상된 반 토흐 선장의 사업 계획은 점차적으로 영역이 확대되어 간다. 기업가들은 노동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도롱뇽들을 노동자원으로 투입시킨다. 노동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수중 건설사업에 도롱뇽들이 사람 대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도롱뇽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서 전쟁터에도 동원하기도 한다.

한 때 깊은 수심속에서 살았던 미지의 동물에서 인간 덕분에 문명의 사다리에 타고 올라간 도롱뇽들은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제2의 종족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인간들에게 불평등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도롱뇽들은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을 전복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언론 매체를 장악, 통제하였으며 인간에게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만든 폭탄으로 의도적으로 대홍수를 일으켜서 인간들을 도발하기도 한다. 이 때부터 인간 대 도롱뇽이라는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작품 시작부터 등장하는 아름다운 진주 하나가 인류과 도롱뇽은 서로 피를 보게 되었다. 진주는 아주 값비싼 귀금속 중의 하나이다. 도롱뇽들이 진주를 많이 캐내기 위해서, 그리고 힘든 노동에 도롱뇽들을 투입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반 토흐 선장이나 기업가들의 모습은 과거 식민지 국가가 많았던 때에 성행했던 플랜테이션(Plantation)을 연상시키게 한다. 플랜테이션은 사업가들이 자본과 기술을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했던 농업방식이다. 식민지 나라를 다스리던 유럽 열강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업 방식이었는데 훗날 유럽 대륙을 지배하게 된 자본주의 열풍의 도화선이 되었다. 18세기 중반에 영국에 산업혁명이 불기 시작하면서도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된다. 공장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특히 값싼 노동력인 동시에 그 당시에 인권이라고는 가지지 못한 상태였던 빈곤층들을 자신들을 위한 일꾼으로 써먹기에는 딱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빈곤층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으로 기업가들에게 착취당하였다. 이 때부터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빈곤층 노동자들은 공장 내의 기계 보급이 두려웠다. 자신들이 기계의 등장으로 고용되지 않을까봐 그들은 게릴라로 공장에 급습하여 기계를 부수는 난동을 펼치기도 했었는데 이를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한다.  

<도롱뇽과의 전쟁>에도 도롱뇽들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계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자 인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자리가 빼앗길까봐 총파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롱뇽들을 살해하는 등 극단적인 일도 발생하게 된다. 기계를 파괴하려던 18세기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만능 노동자였던 도롱뇽들을 죽이려고 했던 작품 속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등장하게 된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사상 뒤에 가려진 인간들의 끝이 없는 물질적 탐욕이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만들게 된 원인이 되었다. 작품 초기에 배에 타고 있던 진주잡이들이 봤던 시커먼 바다의 악마들은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인류가 만들어낸 골칫덩어리 악마인 것이다.  

 

 

 

  첫 번째가 비극, 두 번째는 코미디, 그러면 세 번째는...?  



칼 마르크스는 "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가 비극이라면 두 번째는 코미디이다. " 라고 말하였다.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희극적인 행적이 담겨져 있다. 인류 간의 대립과 갈등이 있었던 자본주의의 역사가 비극이라면, 아마도 역사에 대한 코미디는 이 작품일 것이다. 인류 대 도롱뇽으로 점철되는 자본주의의 비극을 차페크는 코미디로 희화화시키고 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굉장히 슬픈 사람이라고 하였다. 작품 속 마지막에는 에필로그 형식으로 차페크가 작가로 직접 등장하여 작품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이 있는데 차페크는 자신의 작품을 극단적으로 구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미래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흥분과 분노를 억누른 채 종이에 이 글을 꾹꾹 눌러가면서 썼을 것이다. 그는 인류의 비극을 코미디로 승화시킬줄 아는 문학적 광대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래에 대한 차페크의 생각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는 다음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즉 세 번째 경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과거와는 별반 다를게 없다. 지금도 자본이라는 수단 하나가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 하늘 위에서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을 차페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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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쿤테라에 이어 보흐밀 흐라발을 추가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덕분에 차페크도 추가합니다.

cyrus 2010-11-10 13:39   좋아요 0 | URL
보흐밀 흐라발이라,, 반딧불이님 덕분에 또 한 명의 체코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제가 읽은 작품 말고도 <호르두발><별똥별>이라는
소설이랑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에세이가 출판되었는데,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대부분 나머지 작품은 절판 상태입니다)
저도 아직 안 읽었지만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읽어보려고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11-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SF로 분류되어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님의 리뷰를 보니 얼른 읽고 싶어져요.
4대강과 김탁환만 읽고 바로 봐야겠어요.

리뷰 좋아요.
그리고 오늘은 리뷰랑 댓글 박스 사이의 간격이 얼마 안떨어져 있어서 좋아요~^^(속닥)

cyrus 2010-11-10 17:03   좋아요 0 | URL
사회비판적인 소설이면서 그렇게 내용이 우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장하신 책이 두산동아에 출판된 것이라면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도 읽어보세요. 이번에 나온 작품이
완역판이라네요. 그리고 나무꾼님이 언급하신 김탁환이
이번에 나온 소설 작품을 말씀하신거지요? 저도 그 책 급땡기던데,,
즐거운 독서 하세요. 나무꾼님^^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코 출신 유명인은 그래도 몇 명 알겠는데 슬로바키아 출신은 정말 얼른 생각이 안 나는게 현실이지요.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자유화운동과 반스탈린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슬로바키아 지식인들이었고, 그 시절 서기장도 슬로바키아 출신인 두브체크였는데...하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진 지금 슬로바키아는 체코에 가려져 인지도가 낮은 나라가 되어버렸지요.

cyrus 2010-11-11 16:40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체코슬로바키아라고 알고 있었고, 저처럼 아직도 많은 사람들도
체코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겠군요. 이런 사례와 유사한 것이
유고슬라비아도 몇 년전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고 개명된 것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리된 것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조금씩 국외 정세들도
알아야할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8:23   좋아요 0 | URL
아...그렇던가요? 제 주변엔 슬로바키아는 몰라도 체코는 거의 다 알더라구요.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나 밀란 쿤데라 덕이지요.여행사에서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동유럽 중에선 체코를 제일 많이 간다고 하네요.하지만 슬로바키아는 모르던데 그건 아마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줄여서 체코라고 했던 버릇때문일 겁니다.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어를 쓰더군요.

슬로바키아 출신들이 자유화 운동의 선두에 섰는데 정작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후로 외국인들은 체코는 알아도 슬로바키아는 모르게 되었으니 묘하게 되어버렸지요.



유고슬라비아는 내전 이후 몇개로 갈라졌는지 어지러울 정도라서...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저번 월드컵 땐 슬로베니아 선수단을 계속해서 아나운서가 슬로바키아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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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대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장정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결 수 있다면-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우리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라디오는 기계에 달린 단추를 눌러 작동되고, 전파를 통해서 우리에게 방송을 들려 주는 물건이다. 그래서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라디오는 그냥 기계 덩어리일뿐이다. 이 시 속의 화자는 자산이 라디오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군가가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 주기를 바란다. 버튼을 누르면 자신도 그 누군가에게로 가는 전파가 될 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전파는 화자와 그 누군가 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뜻한다. 서로의 단추를 눌러 주면 서로가 서로에게 전파가 되어 사랑으로 변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라디오는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기계이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라디오를 켜는 것이고, 음악을 듣고 싶지 않으면 라디오를 끈다. 즉 사람들의 편의나 실용성에 의해 라디오는 작동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의 사랑이 라디오와 같은 것이라면 그 사랑은 편의적이다. 결국, 편의적 사랑은 오래 갈 수 없으며 그저 가볍게만 여기는 사랑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 시는 장정일의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이 발표된 시기는 1988년이다. 1988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해이다.  서울 올림픽의 개최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해에는 좋은 기억도 있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1987년에 발생한 KAL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의 대남공작원 김현희가 매스컴에 알려지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행사 이후 한국은 반세기만에 급격한 경제 성장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한국은 전쟁 때문에 가난한 국가가 아닌 세계적 경제 중심지의 아시아 국가였다. 그리고 서구의 문화들이 유입하기 시작되었으며 그 유입 뒤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아닌 시장의 기능을 자유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의 민영화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리고 시장개방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예가 바로 '세계화' 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는 1993년에 우루과이 라운드에 타결 합의하였으며 그 후로 세계무역기구(WTO)가 등장하였다. WTO 설립은 산업과 무역 간의 장벽을 무너뜨렸으나 세계의 모든 나라가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보다 많은 자본을 창출하고 얻기 위해서 금융업, 부동산업의 강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 강조되고 있는 '재테크' 도 그 강세가 만들어낸 우리나라 특유의 신드롬이다.  사람들은 돈을 단순히 저축하고 모으기보다는 돈으로 이보다 더 많은 돈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요즘 세상에 주식이나 펀드, 그리고 땅 투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저축으로만으로 1억을 모을 수 없고, 자신만의 집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프리카리어트

이렇다보니, 신자유주의 사회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불황과 실업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한경쟁 시스템 속에서 나 한 몸 잘 살기 위해서 상대방을 짓밝고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쟁 체제 속에 살아남은 자만이 어마어마한 자본들을 손에 쥘 수 있는 승자가 되었다. 무조건 이기는 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IMF 한파 이후 무너져버린 중산층들은 오직 잘 살아야한다는 신념 하나로 발버둥을 처야만 했다. 그러나 발버둥을 쳐봐도 가난한 생활은 이어졌다. 자신들의 노동력을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고, 그나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주는 쥐꼬리만한 보수만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행복하고 안정된 삶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머리속에는 자신의 직업이 언제 짤리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이 가난한 삶이 이어진다는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고달픈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잃어버린 10년' 이후로 경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과 같은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자못 심각하다.  우리들이 많이 알고 있는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일본 사회의 병리적 문제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는 일하는 빈곤층을 가리키고 있다. 일을 해도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프리카리어트'(Precariate)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는데 '불안정한' 이라는 뜻의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e)를 합성한 것이다. 미래가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 계급을 뜻한다. 

프리카리어트의 등장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는 통용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프리카리어트는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프리카리어트는 아르바이트에 의존하려는 88만원 세대 그리고 정규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신자유주의 인류의 사랑

'무한경쟁' , '승자독식사회' 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아무도 안 믿는 세상' 이 되어 간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부추기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본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인간 사이의 친밀감, 연대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에 혈안이 된 88만원 세대들에게는 사랑과 연애는 사치일 뿐이다. 자신이 경제적인 자립이 안 되어있는 이상, 이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것도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10대들의 섹스를 '슬픈 섹스' 라고 표현하였다.  이들에게는 그나마 이성 간의 사랑을 해갈해줄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는 동거뿐이다.  하지만 동거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이다. 동거를 한다해도 부부로 연결되는 커플은 드물다.  이 시대에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88만원 세대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여성들 대다수는 결혼보다는 싱글을 택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서 혼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병든 사회에서 경제적 자립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이다. 치열한 경쟁다툼 속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은 고액 연봉의 직장에서 일하는, 앞으로의 삶이 보장되는 신랑감을 찾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사랑의 감정으로 만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오직 '돈' 을 가져야한다는 감정으로 이성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장정일의 시가 신자유주의 사회에 지배당한 사회를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서울 올림픽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우리 사회에도 불기 시작하면서 이 시 속 내용처럼 '아무도 안 믿는 세상' 으로 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인간들은 누군가 자신의 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버튼이 눌러짐과 동시에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전파는 사랑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살기 바쁜 마당에 무일푼이며 보잘것없는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그는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으며 사랑을 가볍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나마 새 것처럼 보이던 라디오에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가, 점차 헌 것으로 변하게 되면 버튼을 끄고 헌신짝처럼 버리게 된다.  '돈' 으로 사람을 만났다가, '돈' 이 궁하면 쉽게 헤어지는 요즘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단순히 책 제목이라고 보기에는 우리 사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 관심 가져줄 여유가 없다. 일을 해야만 앞으로 남은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이제 시대의 화석이 되었다.  지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가 대세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인류에게는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려 정열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랑은 이제 없는 것일까?  88만원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 이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더욱 더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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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번에 나온 그 책도 좀 관심이 가던데 말이죠~
이런 책이었군요?^^

리뷰가 좋은데요...라고 쓸려고 보니,
맨마지막 단락 씁쓸함에 눈길이 머무네요~

뭐 그래도 좋은건 좋다고 해야죠~^^

cyrus 2010-11-09 20:02   좋아요 0 | URL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읽었건만 내용이 그리 밝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런 세상, 눈 감고 외면할수도 없는거고요.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 조선의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명문장가들의 뜨겁고도 매혹적인 인생예찬
이종묵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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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내 서재 이름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이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한다' 라는 뜻이다.  독서에 관한 좌우명 한 줄 적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일곱 글자를 쓸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실천하려는 독서에 대한 포부를 잘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겠다마는 서재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남성은 무조건 책을 읽어야 하고, 여성은 그 정도의 양으로 독서를 못 한다는 식으로 여성 차별적인 생각을 강조하는 뜻은 전혀 없다.  조선 시대 때에는 남자들로 구성된 선비, 양반들의 기세가 강했고 벼슬자리도 남자들이 차지했기에 책은 남성들이 소유할 수 있었고,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남아수독오거서' 라는 말이 남존여비가 강했던 유교 사회의 유언(流言)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알라딘 서재 블로그을 시작하면서 서재 이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블로그라는 것을 알라딘을 통해서 처음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서재 블로그가 나에게는 유일한 공적이며 사적인 인터넷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cyrus의 서재' 라고 정하기에는 무언가 평범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고심 끝에 결국에는 '남아수독오거서' 로 정하기로 했다.  딱, 내가 생각하는 독서관과 맞아떨어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올바른 독서를 하고 있는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제 매버릭꾸랑님이 예전에 쓴 글에 댓글을 달았을 때 다시 한 번 그 글들을 읽게 되었다.   

어이쿠, 이런, , , , ,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채 막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 많이 보였다. 다시 읽어보니 문맥이 맞지 않은 부분도 수두룩하였다.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질보다는 양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러 모로 나의 독서에 대해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P.S 감사합니다. 매버릭꾸랑님   

 

   

Scene #1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는 독서, 자연, 술, 등 자신들이 좋아했던 취향을 즐기면서 세상을 재미있게 살다 간 조선 선비들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글에 대해서 책의 저자인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글에 대한 설명과 짤막한 단상들을 덧붙였다. 우리나라 옛 문장들을 소개하는 이 책 역시 정민 교수가 쓰고 있는 글 스타일과 비슷하다.  책 말미에는 이종묵 교수가 엄선한 문장들의 원문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정민 교수의 글 스타일을 그래도 답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의 명문만 수록된 것이 아니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지금은 잊혀진 인물들, 생전에 벼슬자리 문턱에 가보지 못했다거나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구축하면서 은둔 생활을 한 선비들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나마 소개하는 유명한 인물이라면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 영조 시대 때 망나니나 다름 없었던 사도세자에 대한 처벌을 반대했던 채제공(많은 이들에게는 체제공이 생소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에 많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이산]에서 조정의 양대 당파 세력으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등장했었다) 그리고 율곡 이이, 단 네 사람뿐이다.   

  

 

Scene #2  

이 책에는 장혼(1759~1828)이라는 선비가 독서에 대한 쓴 글이 소개되어 있다. 장혼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글와 독서를 좋아했던 가난한 선비였고 아마추어 문장가로 활동했다. 그는 규장각에서 문서를 정리하는 하급 관리로 일하면서 자신들과 취향이 비슷한 선비들과 사귀어 함께 시를 짓곤 하였다.  비록 세상은 자신의 문장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후세에 '시인' 장혼이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시 쓰기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가 시만 좋아해서 평생 시만 쓴 것이 아니었다. 책을 좋아해서 문학과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책을 쓰고 스스로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벗에게는 시보다는 책을 더욱 사랑하라는 충고를 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된 편지에서 말해주고 있다. 시 쓰는 것은 잠깐이나마 마음을 즐겁게 해줄 뿐이며 독서의 즐거움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이 편지에서 독서의 장점을 아주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저 금과 옥은 보배고,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지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속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쓰면 조화에 참여하고, 우주에 충만하게 되겠지요.  

 - <김용재에게 주는 편지> 중에서, 장혼, 책 p 180 재인용 - 

 

 
   

 

장혼에게 독서는 다섯 수레에 담은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슴속안에 간직할 수 있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은 사유의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책을 가슴속안에 간직한다 , , , , ,   문장이 멋지면서도 한편으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한 독서가 내 머릿속, 그리고 내 가슴속에 제대로 간직하면서 읽었는지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 아무리 다섯 수레 안을 꽉 채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도 머리와 마음 속에 하나라도 사유에 대한 응집물이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빈 수레나 다름 없는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라는 속담처럼 결국에는 글만 읽은 실속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Epilogue  

한 달하고도 3주 정도 지나면 2011년이 다가온다. 내년이 되면 나는 다시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때도 독서를 즐겨 하겠지만 지금만큼의 정도는 못 할 것이다. 하루하루 수많은 과제와 취업 준비 때문에 이리저리 활동하는 양이 많아지고, 학점관리도 잘 해야 한다.  

12월달이 되면 지금까지의 독서들을 결산해봐야겠다. 2010년, 7개월동안의 독서의 기록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도 또 읽어보려고 한다. 예전에 남긴 과거의 기록물들을 본다고 해서 장혼의 말처럼 가슴속에 간직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은 다 내가 읽고 싶었고, 내가 책을 무척 좋아해서 읽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장혼의 독서처럼 가슴속에 나에게 유익한 책들을 담을 수 있는, 그런 독서를 해야겠다. 그럴러면 내년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서재 블로그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데,  

'남아수독심저서' (男兒須讀心貯書) 라고 해야 되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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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듣고 먹고 하는 것들이 모두 '나'를 이룬다고 합니다. 확인할 수 없지만 사이러스님의 몸에 다 저장되어있으리라 믿습니다. 복학하시기까지 읽고싶은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시길...

cyrus 2010-11-07 22:28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의 댓글이 멋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딧불이님^^

다이조부 2010-11-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는 얼마전에 어떤 알라딘 유저한테 밀도있는 글 좀 쓰라고 쿠사리 먹었는데요.

근데 저는 앞으로 살면서 다섯 수레의 책은 불가능한 작전같군요.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야심이 별로 없어요. 책 을 많이 보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책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책 속에

빠져서 현실감각을 잃을수도 있다고 봐요.


stella.K 2010-11-08 18:51   좋아요 0 | URL
ㅎㅎ 매버님~~~! 이거 원...제가 그랬다고 할 수도 없고.ㅋㅋ
암튼 분명 그뜻은 아닐 것이고, 다 응원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매버님 밀도있게 쓸 수 있도록 도와드릴까요?ㅋ

cyrus 2010-11-08 20:23   좋아요 0 | URL
꾸랑님 말이 맞습니다. 너무 책 속의 길을 찾게 되면,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의 길에는 헤멜 수 있게 되겠죠.
저도 가끔 그러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답니다.
뼈 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stella.K 2010-11-08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를 이렇게도 쓰는군요. 멋지내요!^^
근데 사이러스 뜻이 뭐죠?
저는 그냥 세례명에 영구를 쓰고 있습니다.


cyrus 2010-11-08 20: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tella09님^^
댓글상에서 닉네임의 유래에 적기 제한이 되지만, stella09님을 위해서
댓글로 남깁니다.

예전에 초등학생 때 <말하는 백과사전 시루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그 책에 나오는 똑똑한 박사처럼 똑똑하고 인텔리(?)하게 보이기 위해서
cyrus이라고 했는데, 제가 영어 실력이 딸린(?) 편이라, , ,
알고보니 cyrus을 시루스라고 발음하는 것이 아니었더라고요.
뭐, 온라인상에서는 발음이 중요치 않아서, stella09님처럼
사이러스라고 부르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이러스라고 부르는게 듣기 좋습니다. ^^

stella.K 2010-11-09 12:1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글치 않아도 한글로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나
약간 난감했어요. 시루스. 그게 맞는 표현 같기도 해요. 시루스님.^^


다이조부 2010-11-0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은 세례명이었군요. 저는 어렸을때 좋아하는 차종이 스텔라였나 했는데,

전 초딩때 어른이 되면 프라이드를 몰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주인장이 이야기하는 말하는 백과사전 시루스 라는 책은 처음 들어보네요. ㅋ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제 닉네임은 매버릭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괴짜 이 정도로

알고 있어요. 꾸랑은 인도네시아어 입니다 ㅎㅎㅎ

cyrus 2010-11-08 23:40   좋아요 0 | URL
ㅎㅎ 꾸랑님은 참 독특하신 분 같네요^^

stella.K 2010-11-09 12:10   좋아요 0 | URL
ㅎㅎ 매버님 전 차도 차지만 여드름 치료제를 생각해요.
지금은 없어진 것 같긴 합니다만.
매버릭꾸랑이 그런 뜻이었군요. 글치 않아도 궁금했는데...^^


양철나무꾼 2010-11-09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는 사람은,책만 읽지는 않을거예요.
수레를 어떻게든 구워먹던지 삶아 먹던지 할테니까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09 15:09   좋아요 0 | URL


아~ 댓글이 무슨 말인지 왜 감을 잡을수가 없는거죠..나만 이해 못하는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지식을 습득해서 유용하게 쓴다는 그런거는 아닐테고....

여드름 치료제 중에 스텔라 라는게 있었군요. 여드름 따위로 한 번도 고심

해 본적이 없어서요 ^^ 몰랐네요. 한 분쯤은 꾸랑은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볼 줄 알았는데 다들 무심하네요 ㅋ 아무도 묻지 않으니 대답을 하면

인기연예인 노홍철의 별명이 뜻이랍니다 헐

cyrus 2010-11-09 20:15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말씀은 책을 읽어서 유용하게 쓴다는 뜻으로 말한걸겁니다.^^
저도 여드름 고민한 적도 없답니다.ㅎㅎ
죄송해요. 매버릭 뜻만 봐서 꾸랑은 못 물어봤네요^^;;

stella.K 2010-11-10 11:24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묻고 싶었습니다.
근데 꾸랑님이 귀찮아 하실 것 같아 못 물어 봤다능...
그럼 꾸랑님은 괴짜 노홍철 같은 분이신가 봅니다.^^

꽃도둑 2010-11-1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그래도 하루에 한 번 꼴로 올리는 리뷰가 어떻게 가능한지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다섯 수레를 채우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었군요...^^
그런데 책의 무게로 봐서 얼마 안가서 채우겠는데요?...(흠,,부러벙..)

cyrus 2010-11-12 21:14   좋아요 0 | URL
다섯수레를 채우기보다는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은 자유의 시간에
필사적으로 독서를 하는거랍니다.^^;; 내년에 복학하면
이렇게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내년에는 이보다 많이 읽을 수는
없지만, 한 달에 5권 정도는 읽으려고 합니다.

꽃도둑 2010-11-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 년에 100권을 목표로 세워두지만 매번 참패 당하죠...
한 달에 5권 정도 읽을 때도 읽고 아닐 때도 있고 하니.. 그래서 하루에 한 번 꼴로 올라오는 리뷰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요...^^
아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ㅎㅎㅎ 근데 복학해도 열심히 할 것 같아요.

cyrus 2010-11-17 13:19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네요. ^^
내년에 장학금을 위해서 열공하고, 알바도 계속 해야되니
올해보다는 못하지만 한 달에 5권 정도 읽는 생활방식로 전환해야겠습니다.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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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

신문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이름만 들어면 알만한 K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회장이 학교 단과대에서 운영하고 있는는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며칠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학생 시위라고 하면 대부분 등록금 제도 인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본 이 기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학생 시위 내용이었다.  

K 대학교 정경대에서는 소속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학과별 필독도서와 추천도서 그리고 학생이 결정한 도서들을 종합하여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총 12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경대 소속 학생회장이 이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1인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시위 중인데 횟수로는 17일째라고 한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를 이수하지 못하면 장학금 신청이나 해외 연수 프로그램 등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있다"  "책을 읽기 싫다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독서를 강제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학생회장의 주장에 대해서 정경대학 측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소양에 필요한 책을 읽자는 교육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강제성은 피할 수 없다"며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추천도서를 4권으로 줄이고 우수이수자는 장학금 신청 때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면서 독서 권장 프로그램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장했다.  

신문상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서 크게 중점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기사 내용이 흥미로웠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닌데도 이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을 자유>를 쓴 '로쟈' 이현우 씨가 말했듯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어떤 주제이든지 간에 '조사' 하고 '탐구' 하는 싶은 고질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신문 기사자체로만 보는 것을 떠나서, 직접 K 대학교 정경대 게시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학생회장, 그 학장의 사정

학교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에 대한 내용으로 시끌벅적하고 있었으며 학생회장의 시위에 대해서 찬반 논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학생회장이 쓴 장문의 글도 올려져 있었다.    

학생총회에서는 수 차례나 정경대 학장과의 면담을 시도했고, 250명의 학생의 서명이 있는 독후감 제출 거부 서명서를 제출을 해도 학장의 답변은 냉담했으며 학생들의 태도가 독서가 싫어서 투정부리고 있다면서 면담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이번 시위의 목적은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고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1학년 학생대표들이 학과실로 불러들이는 것이 마음 아프며 독단적인 선택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단식투쟁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 학교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학생회장의 글 http://community.khu.ac.kr/forum
 

K 대학교 사이트의 정경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대한 학장, 학과장의 입장에 대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공지사항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 소개해본다.  

   
 

 

 학장과 학과장 일동은 학생회장과 몇몇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들에 현재 본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내용들이 심히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어, 우리 정경대 학생들이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프로그램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많은 회의와 토의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일자별 회의 주제와 내용 요약

 9월 15일 : 정경대 학생회 주관 학생총회 실시

 9월 17일 : 각 학과 1학년 대표 행정실에 건의사항 전달
- 프로그램 취지 동의하지만, 장학금 신청금지 조항 폐지, 다양한 수준의 책 선정, 독후감의 분량(띄어쓰기 포함 1,500자) 조정, 프로그램 이행 기간 연장 

 10월 4일 : 학장 주재 학과장 회의
- 1학년 대표 건의사항 논의 : 자기추천도서를 1권에서 4권으로 늘려 학생의 도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독후감 분량을 띄어쓰기 포함 1,800자로 축소

 10월 5일 : 정경대학장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과장회의에서 논의된 수정안 전달

 10월 11일 : 정경대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단식 시작
- 교양교육프로그램 미이수시 적용되는 불이익 폐지 요구

 10월 14일 : 학과장 및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장주재 학과장 회의   
- 2차 수정안 협의 및 협의 결과 전달, 중간고사 이후 각 학과 1학년 총회 개최 후 재논의 하기로 결정
 

 출처: http://khsma.khu.ac.kr/contents/bbs/bbs_content.html?bbs_cls_cd=001001008&cid=10102911465733 

 

 
   

학생회장이 게시판에 올린 글은 10월 21일에 작성되었으며 정경대 사이트에 있는 공지사항은 10월 29일에 작성되었다.  아마도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자, 정경대 측에서는 식을 줄 모르는 논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정경대 1학년 학생대표들과 논의하기로 결정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환경이 낳은 '독서' 논쟁

정경대가 도입한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서 대학생으로써 교양을 쌓는 동시에 이에 대한 참여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며 1학년 학생들에게 독서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K대 학생회장의 글이나 정경대 공지사항으로나마 이 논쟁이 누구 말이 맞다고는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단지 독서에 대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며칠 동안이나 단식투쟁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추운 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게 하여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동정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왜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반대하는지 정경대 학생들, 그리고 정경대 교수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도 교육 제도를 도입하지 말라고 반대하기보다는 독서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여 좀 더 나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되도록 개선하는 쪽으로 진행하면 지금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다 함께 토론을 하는 것이 학생회장이 바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는 일, 그리고 플라톤이 자신의 저서 <향연 Symposion>에서 말하고자 한 생활 또는 학술상의 중요한 문제를 공동의 장소에서 철저하게 토론하고 해결하는 것이 심포지엄의 정신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정경대 학장이 학생회장의 면담을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은 처사이다. 단식투쟁 시위가 계속되자 1학년 학생대표들만 불러 모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다.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1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하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의 티를 벗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이 이 회의에 진자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전 학년 학생대표들, 독서 교육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방위적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해프닝은 '독서' 라는 것을 강제로 해야될 것이냐, 안 해야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교육 환경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독서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환경

<책을 읽을 자유>의 '독서 강국으로의 길' 이라는 글에서 이현우 씨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우리나라 사회적 제도와 여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독서' 와 '공부' 는 분리된 상태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을 읽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하는 독서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는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책 속 문장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올바른 독서 방법은 아니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펴게 되면 평소에 책을 읽는 것처럼 정독하고 스스로 글을 쓴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는다고해서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을 통해서 학생들이 직접 이데올로기가 낳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그대로 주입하여 앞으로 그들이 치게 될 학력고사나 수능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 내용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중. 고등학생 통틀어 6년이라는 청소년 시기에는 독서를 읽을 시간이 없다. 이들을 유혹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기에 독서를 멀리하는 것도 있지만,  정작 정신적으로 유익한 활동인 독서를 배움의 장소인 학교가 외면한 것은 큰 문제이다.  학생들에게는 오직 학교 시험과 수능 시험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그리 마땅치가 않다.  멋드러진 교내 도서관에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가 있을까?  수능시험 걱정이 눈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독서하는 능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책을 읽지 않게 된다. 학생들의 독서하는 습관을 유도하기 위해서 대학교 내에서 권장도서 100권 목록을 만든다고 해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읽을 리 만무하다.  대학교에 와서도 학생들에게는 책을 읽을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입시 전쟁터에서 탈출한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에 오자마자 향하는 것은 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취업 전쟁터이다.  고등학생 때 수없이 끼적거리던 수학의 정석, 맨투맨 영어문제집을 뒤로 한 채 이제는 TOEIC 문제집과 공무원 시험 교재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K 대학교 정경대와 같은 경우네는 학생들의 독서 향상을 위해서 단순히 권장도서 목록만 들이내미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실질적인 방법이랍시고 독후감 쓰기까지 권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지금 취업이 중요할 판에 여유롭게 책 읽고 독후감이라니?  장학금 인센티브 때문에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책을 읽게 되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독후감 활동이 추가된 독서 권장 프로그램 역시 학생들에게 독서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데 그 장기적인 효과를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책을 읽을 자유가 없는 우리나라 국민  

이현우 씨는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책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말을 빌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도 독서력을 묻고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제도를 통해서 학생들이 멀리하고 있던 책을 가까이 하겠지만 이들이 평생동안 책을 읽게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능력평가가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특목고 입학 목적 및 특별활동 기록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형적인 사회 환경 때문에 영영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불행한 민족인 것일까?   정부와 교육 기관에서는 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국민들이 독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 수준은 선진국의 독서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낮은 상태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유치원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영어 공부한다고, 책을 외면하고,  

초.중,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싶어도 학교 시험 그리고 수능시험에 집중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 준비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그나마 생활이 보장된 직장을 구했지만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살기 위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해서 일을 하다보면, 책을 또 외면하고. 

정년 은퇴하여 이제 좀 편안해진 여생에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려고 해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시력 때문에 책의 문자를 읽지 못한 상황이라면. . . . .   너무 분하고 억울할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잘 읽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 특유의 독서 기피증,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독서 권장 프로그램과 권장도서 목록의 양산으로만 원인으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땅인지 그 근본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기념관 벽면에는 'Freedom is not free' 라는 글귀가 새져겨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책을 읽기에는 척박한 지대이지만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우리 스스로 책을 읽을 자유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역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 기사 출처  [조선일보]  2010년 10월 23일자  

http://blog.naver.com/ndolphin?Redirect=Log&logNo=20060149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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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1-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참...착잡한 소식이군요.소설가 이호철 씨가 어떤 강연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시절 오로지 교과서 참고서만 읽고 독서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뒤처짐을 나중에 메울 방법이 없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특별히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고졸학력자와 대졸학력자의 교양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cyrus 2010-11-06 22:2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도 비록 저희 학교는 아니지만,
잘못된 교육 제도와 환경 때문에 '독서' 라는 좋은 활동 가지고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큰 논쟁은 아닐텐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고려대학 이야기 인줄 알았어요. 요즘 들어 고려대학 활동이 참 다양하다

싶어서 혀를 찼는데, 졸업생도 모교의 행태에 관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을 들은적이.....

근데 검색해보니까 경희대 이야기 이네요.


cyrus 2010-11-06 23:28   좋아요 0 | URL
신문에서는 크게 떠들지는 않지만, 학교내에서는 시끄러운거 같더군요,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의 시위에 부정적으로 보는 쪽이 많더라고요,
하긴, 단식투쟁은 좀 오바인 것도 있긴합니다.

반딧불이 2010-11-0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책을 읽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로 바꿔읽으니까 저는 찔리는 구석이 많네요. 늦잠자고 일어나 아점겸 한끼먹고 저물녘에 피자한판으로 때우고 청소도 안하고 책으로 벽을 쌓고 있는 제 꼴이 보여서요.

cyrus 2010-11-07 13:54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말은 저렇게 했지, 실상은 독서보다는 TV 보고, 주말 저녁에는
친구 만나러 가고, 이리저리 읽어야 할 책이 미뤄질 때가 많답니다.
바쁜 일상에 치이고, 주위에 각종 해야될 일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기하기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1-07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저희 아들의 경우,초등학교 때는 화려한 독서와 독후감 쓰기를 자랑했는데,
중학교 들어가더니 한달에 책 두권을 겨우 읽어요.
그중 한권은 필독서.

저 때는 넘쳐나는 책을 다 읽을 시간은 없고,독서평설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다이조부 2010-11-07 09:23   좋아요 0 | URL


ㅋ 저도 학창시절에 독서평설을 용돈으로 구입해서 사 봤던 기억이

나네요. 주전머리 할 돈도 마땅치 않았을텐데 말이죠 ㅎㅎ

cyrus 2010-11-07 13:57   좋아요 0 | URL
그나마 초등학생 때는 책을 읽게 되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 전쟁에 입문하는 레벨(?)이니깐
독서가 멀어지는 거 같네요. 제가 중학생 때는
그렇게 고등학교 입시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라
어느 정도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학원 다니느라, 공부하다보니 책을 멀리하는거 같네요.

비로그인 2010-11-07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책을 몇 권 읽는 것도, 어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해보고 그 책에 대해 비판할 점이나, 더 발전적으로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받아온 학교 교육에서는 그런 건 아예 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대학을 가서도 막상 그런 자리가 있어도 입을 다물게 되고, 사회에 나오면 바쁘고 힘들어서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다 보니 깊이 생각해야 할만한 책들이 점점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스스로 정리를 더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20대때 무조건 많이 읽어라" 하는 말을 그 나이에 들은 것이 꽤나 다행스러워지네요~

cyrus 2010-11-07 22:3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한 권 다 읽고 덮는것보다는 다시 한 번 내용을 곱씹어보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독서 토론 모임을 하고 있는 현상이 있긴 하지만. 바람결님 말씀대로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게 흠이죠.

교고쿠 2010-11-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저는 고등학교때 몰래(?) 대여점에서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나 그 외의 순문학 계열의 책들을 빌려 읽었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시절이었기 때문에(공부는 안하고 이상한 책만 읽는다고), 저런 식으로 몰래 읽었지만 아무래도 책읽기는 제 숙명인듯 합니다. ^^

cyrus 2010-11-08 15:48   좋아요 0 | URL
ㅎㅎ 대여점이나 대형서점에서 몰래 읽기 스킬..^^
독서하는데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거죠.
저도 몰래 읽어보려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주로 읽다보니, 적응이 쉽게 안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교고쿠도님은 독서가 숙명이다보니 그런 스킬이
자연스러운거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0-11-1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책을 많이 읽지 않지만 교과부에서 강제로 책을 읽게 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이 글은 제가 우리아이들이라는 잡지에 쓴 글입니다.


꼴통과학기술부

글쓰기 강연을 하러 경남 창원시를 갔다. 강연을 듣는 분들은 모두 어린이책시민연대라는 단체 회원이다. 창원에 사는 분들도 있었지만 진해, 부산, 울산, 남해, 멀리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대단한 정성이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학교, 시설 같은 곳에서 책 읽어주기 활동과 좋은 책 보내기 사업, 학교도서관사서도우미 활동, 어린이독서관련 초청강연회도 여는 활동을 하면서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어린이 독서 환경과 관련해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단체다. 최근에는 일제고사반대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요즘에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반대하는 운동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지라 독서인증제가 궁금했다. 도대체 독서인증제가 무얼까? 책을 읽은 것을 인증한다? 우리나라는 ‘기가막히고코가막히는’ 발상을 하는 허접한 귀신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처음에 이런 희귀한 발상을 한 단체는 누구였을까? 그 단체는 듣보잡(듣도보도못한잡놈)이었던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다. 이 단체는 2000년 2월 결성됐고, 2002년 7월에 교육인적자원부(현재 교과부)에서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2001년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주관 전국 단위 교과교육연구회 활동에서 최우수 연구회로 선정됐고, 2003학년부터 지금까지 우수교과연구회로 선정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들을 쫓아 낼 정도로 희안한 짓을 많이 하는 교과부에서 뽑은 우수교과연구회니 어떤 단체인지는 뻔할 뻔 자다.

2004년 4월 17일, 그 전국독서새물결모임에서 ‘학생들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여, 자율적으로 독서하는 태도를 기르고 입시나 입사 과정의 독서능력 검정자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독서 능력을 인증하는 시험을 치렀다. 주관은 한국독서능력평가원, 후원은 〈중앙일보〉와 ‘홍선생교육’이었다. 응시료가 1만5천 원에서 5만 원이다. 아이들의 책읽기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속셈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주식회사 홍선생교육’은 신바람이 나서 홈쇼핑 광고를 하면서 지점 모집을 했다. 이 독서능력인증제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너무 뻔했다. 조선일보와 결탁한 한자능력검정시험의 응시자가 처음에 4천 명에서 현재 연 6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부산시교육청은 2004년 3월에 강원대와 연계해 독서인증시스템 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국가경쟁력 전망이 어둡다나 뭐라나? 내가 보기엔 교과부 때문에 전망이 어둡다. 아이들에게 언제 책 읽을 시간을 주기나 했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004년 10월 교육혁신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공표했다. 그리고 이 개선안에는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기록하는 ‘독서이력철’을 작성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교육혁신위원회는 지난 2005년 8월 7일 독서이력철 도입과 관련한 최종보고서를 심의, 의결하였으며, 이와 나란히 교육부는 '독서이력철'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고등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을 위한 제안과 공청회를 8월 28일 개최함으로써 '독서이력철'의 제도화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척시켜 가고 있다.

2009년에는 부산, 경남, 울산이 19개 대학과 독서활동을 대입에 반영하겠다는 협약식을 체결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를 비롯한 학부모ㆍ시민단체들은 “학생들의 독서마저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올해 6월 발표한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독서인증제의 종합판으로 부산시교육청이 만든 독서지원시스템과 학교도서관프로그램(DLS)의 통합, 학생생활기록부(NEIS)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과 기술적인 문제도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아니나 달라. 지난 9월 28일, 정부가 만든 학교전자도서관 지원시스템(DLS) 서버를 해킹해 전국 초·중·고생 636만6309명의 도서 대여 이력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사람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ㄱ·ㄴ업체는 2008년 초 전국 전자도서관 서버 50여개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일선 학교에 도입되는 독서 통장 사업자에게 개인정보를 팔아 2억 원을 챙겼다. ㄷ업체 들은 서버관리 업체로부터 학교당 30만 원을 주고 개인정보를 사들였다. 이들 업체는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전국 652개교에 학교당 500만 원가량을 받고 독서통장 시스템을 판매해 30억 원을 챙겼다. 독서통장은 학생 개개인이 언제 어떤 책을 빌려 읽었는지 은행 통장처럼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DLS 서버에 불법 접근해야만 가동이 가능한 일이었다. 교과부가 10억 원을 들여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놨다고 자랑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5년 6월 13일 중앙일보가 부산시교육청의 독서인증제를 '교육혁명'이라 보도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독서인증제를 교육계획의 주요 방안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끼리끼리 잘 놀고 있었다. 그러고 혁명을(?) 주도하신 강원대 팀, 부산시교육청에서 만든 게 다음과 같다. 이른바 컴퓨터 기반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라는 것. 컴퓨터에 초중고 학년별 권장도서목록을 탑재해서 검증을 한다. 1단계는 초등 10개 문항, 중고등 30개 문항을 출제해서 그중 60%인 6개, 18개를 맞추면 통과. 2단계는 감상문 쓰기, 개요 짜기, 인터뷰 등 독후활동인데 초등 250자, 중등 400자, 고등 500자 이상 쓰는 건데 핵심 단어 채점 방식으로 평가한다. 핵심 단어 채점이란, 학생들이 쓴 글을 컴퓨터가 채점하는 거다. 키워드가 몇 개 들어가면 통과! 학부모들이 물었다. “그거 하면 뭐가 좋은데요?” “학교장상 수상하면 경시대회 실적처럼 수행에 점수 보태져요.” 너 잘났다.

대전시교육청은 채점방식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책 수준점수’와 ‘득점점수’ 합한 ‘합계 포인트’ 산출. 책 수준 점수를 넣는다는 거다. 책에다 등급 매겨서, 등급 높은 거 읽고 인증 받으면 높은 점수를 주겠단다. 그러면 아래 등급 책부터 착실히 읽은 학생과 어쩌다 한번 읽으면서 높은 등급 책만 골라 읽는 학생과, 어느 쪽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말일까. 어이 상실.

교육과학기술부 속셈은 뻔하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의 독서 이력을 가계부나 차계부 정리하듯이 관리한다는 것, 한마디로 이젠 아이들 머리까지 지배하겠다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빼도 박도 못하게 입학 사정관제를 비롯한 대학 입시 전형에서 객관적인(?) 평가 정보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독서지도사교육 시장만 신났다. 요즘 인터넷에 ‘독서인증제’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는 낱말을 쳐 보시라. 학원부터 뜬다.

문제는 또 있다. 책을 강제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전혀 다른 이야기와 견줘 보자. 나는 요즘 한 달에 한두 번 백두대간을 구간별로 이어 타고 있다.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우리나라의 경계를 구분 짓는 산맥이다. 남쪽만 말하면 향로봉부터 지리산까지 684㎞이다. 지금 충북과 경북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백두대간 산행은 장난이 아니다. 칼바람이 부는 산에서 얼어 죽을 뻔하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를 넘는데 온몸에 땀이 흘러 진이 빠지기도 하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걷기도 한다. 날파리가 따라 붙어 짜증이 나기도 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어 지루하기도 하다. 아니 누가 그걸 하래? 글쎄 말이다. 누가 강제로 시키면 내가 이걸 하겠나? 나는 반발심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산을 타는 날을 정하고 어디서 자고 언제 올라갈까 하는 계획을 세우는 일도 재미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산을 올라가라고 정해 주면 내가 그 산을 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책은 또 어떤가. 나는 지난 달 책을 50만 원어치 넘게 샀다. 살림이 거덜 날 정도로 위태로운 수준이지만 책을 사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책에는 이 세상에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모든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평생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쿠바나, 인도, 중국, 알래스카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있다. 역사를 배워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보는 것과 사람 만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을 비꼬던 연암 박지원도 만나고, 썰 잘 푸는 소크라테스도 만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체게바라도 만나고,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현상도 만나고, 지배자들의 횡포를 못 견뎌 봉건사회를 뒤엎으려던 전봉준도 만나는 것이다. 현재 세상에 없는 그 먼 옛날 사람들이, 술 한 잔 안 먹고 멀쩡할 때 논리 정연한 말로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집에서 앉거나, 뒹굴면서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가끔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면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재미다. 그러다가 내가 고른 책이 재미있고 내가 몰랐던 것을 깨닫는 책이라면 읽으면서도 마음이 뿌듯하다. 계명대 김종성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말처럼 “어떤 면에서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 이러한 활동이 더 다양한 독서 문화를 함축하기도 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독서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자신이 읽을 책을 찾고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그런데 독서인증제 점수를 따려면 남들이 선정해 놓은 책만 읽으라고? 그것도 믿지 못할 ‘지식인’들이 선정해 놓은 책만을 읽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런 책을 강제로 읽고 시험까지 봐야 한다고? 시험 본다고 강제로 책 읽기를 시키면 아마 나는 책 읽는 걸 포기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가 강요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존재다. 그게 사람이다. 사람은 스스로 결정해서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다. 스스로 결정해서 이룬 성취감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실패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2009년 11월 12일 네이버지식인에 어떤 고등학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울산에 사는 고등학생인데요 독서인증제 하길래요. 그거 안 하면 머가 안 좋죠?”

그 밑에 누군가 답글을 달아 놨다.

“엄친아보다 대학 가기가 힘들다는 거, 엄친아보다 좀 무식하게 보인다는 거, 엄친아보다 좀 한심하게 보인다는 거, 것만 빼면 안 좋은 게 없네요.”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하고 경쟁하는 것 빼면 안 좋은 게 없다는 얘기. 독서인증제가 별로 도움 안 되는 제도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이름 하나는 참 잘 짓는다. ‘주관적인 평가’를 ‘객관적인 평가’라고 하고, ‘대입제도 개악안’을 ‘대입제도 개선안’이라 하고, ‘교육퇴보위원회’를 ‘교육혁신위원회’라 하고 ‘독서교육 죽이기 방안’을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이라 하고 ’독서교육 종합방해 시스템’을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고 한다. 남대문 앞에서 자리 깔고 작명소나 하나 차리면 나라 살림에 도움 많이 될 것 같다. 차라리 그 길로 나서지 제발 뻘짓 좀 하지 말고.

cyrus 2010-1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독서인증제에 대한 저의 생각도 가로수님과 비슷합니다.
올해 전역하고나서 신문을 통해서 독서인증제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독서를 장려한다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다고해도 과연 그 시험이
학생들에게 평생 독서를 할 수 있는, 장기적인 효과를 줄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고,
이 제도도 강제적인 독서를 장려하는 특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고요.
그리고 더욱 더 걱정 되는 것은 이 제도가 우리나라 입시 사회와 맞물려서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스팩으로 사용될 소지도 다분하다는 겁니다.
역시 독서는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의 책을 찾아서 읽고, 스스로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지 올바른 독서인거 같습니다.
 
보물섬 열린책들 세계문학 13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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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63] 보물섬

 

 

 

  추억의 애니메이션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이 만화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연휴 때만 되면 TV에서 흘러나오던 추억의 만화영화. 

그렇다. 모든 이들에게는 <보물섬>으로 알려진,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데자키 오사무(1943~   )가 그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원작보다도 유명한 만화이다.  

  
데자키 오사무 

나도 이전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만화 <보물섬>이 데즈카 오사무의 명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름만 약간 비슷할 뿐 다른 사람이다. 

 

데자키 오사무는 <보물섬> 이외에도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이라면 아는 <허리케인 죠><베르사이유의 장미>를 그린 만화가이다.  이름 때문에 간혹 <우주소년 아톰>을 그린 데즈카 오사무(1928~1989)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데즈카 오사무 역시 '신 보물섬' 이라는 만화를 제작하였는데 여기서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푸른 바다 위의 카리스마, 실버

 


데자키 오사무 <보물섬>의 짐 호킨스

 
데자키 오사무 <보물섬>의 존 실버  

원작이 나온지 오래되었어도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만화에서는 실버는 악역이면서도  

사나이다운 기질이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초등학생 때 만화 속 실버를 본 순간, 

그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 , ,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설날인지 추석인지 모르겠지만(분명한 건 학교 가지 않은 공휴일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처음 만화 <보물섬>을 TV로 보게 되었다.  만화 <보물섬>이 TV판과 극장판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만화 한 편에 소설 줄거리 전체를 담고 있으니 극장판일 것이다.  

이 만화를 보셨다거나 소설 원작을 읽어보신 분들은 줄거리를 아실 것이다. 우연히 주인공 짐 호킨스는  빌 선장으로부터 얻게 된 보물지도를 얻게 되면서 지주 트렐로니, 스몰렛 선장과 의사 리브지 선생, 그리고 요리사로 가장한  해적 존 실버 등과 함께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모험 이야기이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야기 결과는 밝히지 않겠다. 솔직히 원작 <보물섬>을 읽기 전에는 본 지 오래 되어서 나도 이야기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결말이 궁금하시면 한 번 원작을 읽어보시길. 그러면 잊혀져있었던 추억들이 오롯이 기억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인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존 실버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악역 캐릭터이지만 주인공인 짐 호킨스에게만 선의를 베푸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만화 속의 존 실버는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죽는 사나이였다. 이런 실버의 남성다움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인공 짐 호킨스도 그의 성격에 매료되어 이야기 중반에 보물을 찾기 위해서 그와 함께 동행하기도 한다.  만화 원작가 데자키 오사무는 실버를 매력 있는 악당으로 그렸는데 온갖 위험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과 남자다운 기질이 있는 용감무쌍한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인 어린 남자아이들에게는 존 실버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14년 만에 다시 가 본 <보물섬> 

만화 <보물섬>을 본 지 14년이 지난 지금,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을 읽게 되었다.  사실 만화로는 보았을 뿐, 원작으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데자키 오사무는 스티븐슨의 원작을 토대로 만화를 제작하였지만, 소설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만화에는 짐 호킨스를 따라다니는 새끼 표범 '뱀부' 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뱀부 사진을 구하려고 했었는데 저작권 문제 및 포스팅 불가 설정 사진이 많아서 못 구했다. 하지만 이 글 제일 위의 사진을 잘 보면 작은 새끼 표범이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이 바로 '뱀부' 이다)  만화를 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원작 줄거리와 만화 줄거리를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설명한 이 차이점 외에는 소설과 만화 영화는 큰 차이가 없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보물섬>에는 영국의 판타지 소설가 겸 시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활동한 머빈 피크(1911~1968)의 삽화를 볼 수 있다. 딱히 그의 삽화가 잘 그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 스티븐슨이 살고 있을 당시 발간된 초판본의 삽화를 보는 것처럼 복고풍이 물씬 느껴져서 작품과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그리고 머빈 피크 역시 실버를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과거를 숨기면서까지 음모를 꾸미는 간사한 악역으로 그려내고 있다. 

  


 

머빈 피크가 그린 소설 원작 속 실버,  

실버 팔 위에 있는 새는 실버의 영원한 동반자인 말하는 앵무새 플린트


원작에서도 실버는 짐 호킨스에 대해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짐 역시 그의 성격에 동화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도 실버는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악역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데, , ,  너무 오랜만에 '보물섬' 에 가본 탓일까?  아니면 14년 전의 동심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어쩌면 1883년에 쓰여진 영국 작가의 소설과 원작 소설이 발표된 지 95년 뒤에 만든 일본인의 만화가 주고 있는 느낌과 인상이 다를 수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때 나의 우상이었던 실버는 만화에서 봤던 성격이 호탕한 멋진 사나이가 아니었다.  

    

 

  실버는 사이코패스이다 

실버는 과거에 플린트 선장의 해적단에서 키잡이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플린트 선장이 숨겨 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 스몰렛 선장의 배인 히스파니올라 호 의 요리사로서 탐험에 참가한다. 실버는 동료 선원인 핸즈와 딕에게 자신이 꾸미고 있었던 계획들을 알려주고 자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고 제안한다.  사과를 보관하는 나무통 안에서 자고 있는 짐은 우연히 이들의 음모를 엿듣게 된다. 그리고 히스파니올라 호의 사람들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트렐로니와 스몰렛 선장. 리브지 선생은 그가 이번 모험에서 가장 믿을만한 선원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를 신뢰하고 있다.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들의 착각은 실버의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보물이 있는 해골섬에 도착한 후, 실버는 자신들의 동료 선원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실버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에는 실버와 그의 일행들은 히스파니올라 호를 점령하게 되고 스몰렛 선장 일행은 간신히 도망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통나무집으로 피신하여 실버 일행들과의 피말리는 전투를 하게 된다. 

주위에서는 신뢰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평범했던 사람이 내부에 숨기고 있었던 악한 본성을 드러낸다는 점과 주변 사람들이 그의 어두운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은 실버가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을 읽어보면 실버의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드러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스몰렛 선장이 말했다. " 여기 지도가 있는데, 여기가 그곳인지 좀 봐주게. "   

  지도를 받아 드는 키다리 존의 눈이 이글거렸지만, 종이가 새것인 걸 알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은 우리가 빌리 본즈의 궤짝에서 찾아낸 지도가 아니라 지명, 높이, 수심 등을 빠짐없이 그대고 베낀 복사본이었다. 다만 빨간 X표시들과 글귀는 없었다. 실버는 무척이나 약이 올랐을 게 분명했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자제력이 강했다.   

 (중략) 

 나는 존이 저 섬을 안다는 사실을 태연스레 털어놓는 데 놀랐으며, 존이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은근히 두려웠다. 물론 존은 내가 사과 통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그럼에도 나는 존의 잔인함, 이중성, 힘이 무서웠기 때문에 그가 내 팔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 <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최용준 역, 열린책들, p 122~123 -  

 
   

실버는 보물이 묻어 있는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지도를 보지만 아무도 표시되지 않은 복사본인 것을 알게 되자 무척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평상심을 유지한다. 그런 모습을 본 존에게는 실버라는 사람이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악당 실버는 주위 사람들이 신뢰하게 만들 정도로 선량한 선원인 척 행동을 한다. 

   
 

 키다리 존은 무리들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느라 분주했는데, 그 모습만 보면 세상에 저렇게 반듯한 사람이 또 없을 듯싶었다.  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의욕적이고 정중했고, 누구에게나 싱글벙글거렸다.  명령을 받으면 그 누구보다 힘찬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당장 목발을 짚고 일어났고,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면 선원들의 불평을 감추려는 듯 연신 노래를 불렀다.  

 - <보물섬> p 136 -

 
   

 

사이코패스 인간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에 무감각하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꾸민 반란이 수포로 돌아가 궁지에 몰리게 된 실버는 오히려 반란이 단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일으킨 필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영국으로 귀국하여 반란 죄로 처형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두렵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결말에 다다를수록 이전에 스몰렛 선장 앞에서 보여준 착하고 부지런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내뱉으면 숨기고 있었던 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실버에게는 일차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죽인다. 한편, 짐 호킨스에게는 칭찬과 존경 어린 말을 하면서 사나이다운 좋은 성격을 보여주지만, 보물을 손쉽게 찾기 위해서 짐 호킨스를 꾀기 위한 사탕발림뿐이다. 주인공 짐 호킨스는 위험한 일에도 용감한 행동을 펼치는 인물이지만 너무 착한 게 흠이다. 실버의 이중성을 알아차리고 있음에도 그는 실버의 달콤한 말에 솔깃해 실버의 일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Blue Psycopath, John Silver

사이코패스는 범죄자로만 국한되는 정신의학적 용어가 아니다. 직장 같은 사회 공동체 집단에서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사이코패스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어느 산업심리학 연구 내용에 의하면 영국의 최고경영자들의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사이코패스의 특성과 일치하였으며, 임원으로 승진하는 대상자들 가운데 3.5%가 사이코패스임을 증명하였다. 남다른 지능과 포장술 등으로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사람을 '화이트컬러 사이코패스' 라고 한다.   

<보물섬>에 등장하는 실버는 과거에 플린트 선장 밑에서 일할 때도 '위험 인물' 로 낙인 찍혔으며
히스파니올라 호의 모험에 참가하면서도 자신의 반란의 우두머리가 되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는 이제 바다 위의 사나이가 아닌 사이코패스, 즉 Blue Psycopath였다.   

어렸을 때 만화를 보던 이들에게는  '바다 위의 멋진 사나이' 로써 실버 같은 남자를 동경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 집단에 해를 끼치는 남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실버의 이런 행동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착한 짐 호킨스가 단순히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서 실버의 가면에 매료된 것만은 아니다.  호킨스의 착각은 지금, 어디선가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범행을 드러날 수 있는 사이코패스를 옆에 두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조심하도록 하자, 천사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악마가 당신 옆에 있을 수 있으니까.

 

  

*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ndolphin?Redirect=Log&logNo=20060149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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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젤 위 사진 밑에 이름만 비슷할 뿐 다른사람이라던가,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이라던가...
그래야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요?

종종 책으로 읽을땐 멋진데 영상으로 보면 별로이거나,
영상으론 멋진데 책으론 힘들거나...그런 경우가 종종있어요.

전 장르소설은 참 좋아하는데,장르소설이 시각화되면 (꿈에 나타날까 두려워)못 보는 위인이예요~

cyrus 2010-11-05 14:09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말씀대로 다시 그 문장을 봤는데,, 이상하네요^^;;
글 표현법을 더 배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먼저 접하고나서
책을 읽으려고 하니,, 별로이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11-0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데즈카 오사무와는 다른 사람이로군요.<보물섬> 같은 소설은 정말 어른이 되어 완역판을 읽어야겠어요.

cyrus 2010-11-06 21:5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완역판을 읽기 전까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 봤던 아동문학전집의 <보물섬>과 이번에
나온 완역판에서 약간은 내용에 차이가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