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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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이냐, 인간이냐 

   
 

" 지금 여러분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무언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게 환경에 달려 있고 환경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우연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    

 -  [무도회가 끝난 뒤]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187 -  

 
   

 

톨스토이가 쓴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단편소설에서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대화부터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17쪽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소설 속 인물인 이반 바실리예비치로 투영하여 환경이 무조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환경결정론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이 논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반은 자신의 인생은 절대로 환경에 지배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경결정론을 부인하게 된 계기를 그린 이반의 경험담이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인데 실제로 톨스토이의 형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단 하루 만에 썼다고 한다. 역시 러시아의 대문호답다.  

  

 

  대령의 두 얼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반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이 시작된다.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대학생의 이반은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여자 바렌카 B를 만나게 된다. 이반은 그 여자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곳에서 여자와 같이 무도회에 참석한 그녀의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바렌카 B의 아버지는 전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대령이었다.  이반은 첫만남에서부터 두 부녀의 자상한 마음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반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도망가는 타타르 인(톨스토이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서 러시아 변방에 살고 있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잦았는데, 그 부족들 중에는 터키계 민족인 타타르 인들도 있었다) 사나이를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는 병사들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 병사들 사이에는 전날 밤, 무도회장에서 호감을 가졌던 바렌카 B의 아버지인 대령도 있었다. 그리고 대령 역시 그 타타르 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이었다. 대령의 폭력은 병사들보다 심했다. 자신의 부하인 병사들에게 새 곤봉을 가져오라고 시키면서 풀리지 않은 분을 폭력으로 해소하고 있었고, 심지어 타타르 인을 세게 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 없는 병사 한 명에게도 손찌검을 가하였다.   

대령의 잔혹한 면을 보게 된 이반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군 입대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바렌카 B에 대한 애정도 식어져갔다. 자신은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 이유는 단지, 세상의 우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이반 바실리예비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이 다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환경결정론을 부정하기에는 이반의 인식 과정은 잘못 되었으며 이치에 맞지 않다.  

그 당시로서는 이반은 이제 막 세상을 알려고하는 대학생이었다.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기에는 그는 세상이 일부분만을 봤을 뿐이다.  그는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우물 벽을 보고 세상은 어두컴컴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무엇보다도 이반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중년이 되어도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왜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그 해답을 알아내지 못한 채 결론은 자신은 세상에서 쓸모 없는 '잉여인간'이라고 단정짓고 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포기하기에는 성격이 너무 나약하기만 했다.  아니,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에는 자신 스스로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보려는 일말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대령의 잔인한 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처사이다.

 

  

  당신이 어리석다오,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이반이 생각하고 있는 '잉여인간' 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연성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는 것인가?  작품의 결말에 보면 이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반의 생각을 반박하고 있다.  

   
 

 " 하지만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반 바실리예비치) 같은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는 건가요? " 

- [무도회가 끝난 뒤] p 202 -

 
   

그러나 이반은 반박자의 말이 어리석다면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대화를 얼버무리고 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이반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말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세상에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처럼 세상 앞에서 그리 쉽게 어리석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시끄러운 속세에 아직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이상,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옳은건지, 나쁜건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분별하는 능력 뒤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환경의 영향을 외면할 수 도 없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나쁘고 부당한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선을 긋는다. 그것은 악한 환경에 물들이게 되면 자신의 본성도 악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을 이반이 알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잉여인간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그는 세상의 이면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리기 위해서 세상의 우연성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상이 단순히 우연적으로 돌아가고, 인간이 이반처럼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바보' 잉여인간이었다면 이 지구에는 악한 사람들만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P.S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는 동명 단편소설 이외에도 또 다른 단편소설인 [벌목][폴리쿠시카][위조 쿠폰]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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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나 스탕달보단 톨스토이가 나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요즘 기준으로 좀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근데 환경일까요,인간일까요?

cyrus 2010-10-29 14:0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기는 하지만,
인간들도 스스로 환경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 , 봅니다.
어쨌든, 작품 속 대령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격이 바뀔줄 아는 사람처럼요.
(제가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번 글은 좀 내용이 부실하구요-_-)

maribell 2011-03-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이러스님이네요~ 말테의 수기를 구매할지 고민하더 보게 됨~ ^^;

cyrus 2011-03-21 0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리벨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신거죠? ^^
 
백야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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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 읽기의 어려움

지금까지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의 수는 『백야 외』를 포함해서 세 권이다. 도스또예프스끼라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거봉(巨峰)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백치, 악령,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주 애용하는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의 신판이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10년 전에 나왔던 구판은 소장되어 있지만 먼지가 풀풀 날리는 보존서고에 있는 터라 대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 대출횟수가 적은 책들이 보존서고로 향하기 마련인데 며칠 전에 읽었던 1993년에 출간된『마야꼬프스끼 전집』(최근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No. 64『마야꼬프스끼 선집』으로 출간) 세 권이 자료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저 썩소만 날 뿐이었다.

보존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사서 입장에서는 도서관 지하에 있는 보존서고에 내려가는 것이 여간 귀찮을뿐더러 대출하려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사서가 그 한 권의 책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 10~15분 정도 대출. 반납 데스크 앞에서 뻘쭘하게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보존서고에서 책을 대출한다는 것은 양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존서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도스또예프스끼를 간절히 읽고 싶어 하는 열망을 이길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백야 외』의 서지번호를 적은 쪽지를 사서에게 건넸다. 다행히 사서가 인상도 좋은 분이라서 쉽게 대출할 수가 있었다. 어두운 보존서고 속에서 도스또예프스끼를 구원해줬다는 기쁨(?)이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보존서고에 있는 다음 시리즈들을 대출해야한다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두, 세 권 대출했어야 하는 뒤늦은 후회감도 밀려왔다. 올해 안에 도스또예프스끼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나의 코끝 찡하게 만든 정직한 도둑   

 

그 전까지 읽었던 작품들이 장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아직까지도 도스또예프스끼를 제대로 음미하지 않은 채 독서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읽은 단편 모음집인 『백야 외』는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기 시작한 지 고작 3권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각각의 8편의 줄거리들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정직한 도둑」의 아스따피 이바노비치와 같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배려를 가진 마음씨 좋은 캐릭터를 보니,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도스또예프스끼가 색다르게 보였다. 이전에 발표한『가난한 사람들』(열린책들 세계문학 No.117)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난한 생활을 하는 러시아 시민들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제부쉬낀-알렉세예브나 커플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정직한 도둑」에 나오는 두 주인공 이바노비치와 에멜리얀 일리치도 가난한 사람들이며 일리치는 가난 때문에 도둑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정직한 도둑」의 결말은 비극적이지가 않다.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팔라는 일리치의 유언은 자신을 돌봐주고, 바로잡아 줄려고 했던 은인 이바노비치에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이었다. 도둑질을 일삼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여 이바노비치의 품 안에 숨을 거두는 장면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읽으면서도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초식남의 슬픔 대처법,「백야」  

 

「백야」는 우연한 기회에 네프스끼 거리에서 아름다운 여인 나스젠까를 알게 된 ‘나’라는 인물이 은근하고 격한 사랑을 품었으나, 나스쩬까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말없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뚜르게네프의 시를 인용한「백야」의 제사(題辭)의 문장처럼 나스쩬까는 ‘나’의 가슴에 단 한순간 가까이 있다간 일몽(一夢)의 여인이었다. 소설의 제목의 백야(白夜)는 밤에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이다. 서로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뜨겁게 무르익지 못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스쩬까와 함께한 나흘 동안 시간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스쩬까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빈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나'는 초식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뭐 본인은 나스쩬까와의 만남을 만족한다지만, 가슴 속에 품어 왔었던 나스쩬까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그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쉽기만 하다. 제 2의 나스쩬까를 찾을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 백야의 네프스끼 거리를 방황할지도 모를 일이다.

   

 


 뚜르게네프 데자부 

 

「꼬마 영웅」은 11살 소년인 화자가 연상의 M 부인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나이 차이도 많거니와 화자가 사랑하는 여자도 기혼녀라서 어린 화자의 짝사랑은 유년 시대의 추억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플롯과 줄거리 전개가 전에 어디서 읽어본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데자부라고 한다는데... 뚜르게네프의 중편소설『첫사랑』과 흡사했다.  

 

『첫사랑』의 남녀 주인공은 블라지미르와 지나이다인데, 여주인공 지나이다가 블라지미르보다 5살 연상인 21살이다. 두 작품의 주된 내용도 청춘기의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을 그리고 있다. (11살이 사랑을 알 성숙한 나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사춘기가 빨라지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11살도 충분히 그런 감정을 느낄 법하다) 「꼬마 영웅」의 M 부인에게는 M이라는 남편도 있으나, 사교계에서는 그녀에게 관심 있는 남자들이 많다. 그 중에 그녀를 짝사랑하는 N 청년이 등장한다. 『첫사랑』의 지나이다 역시 아름다운 외모로 그녀 주위에 남자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블라지미르의 아버지가 그녀를 사랑하기도 한다. 두 여주인공은 주위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작 마음속에는 폭풍우와 같은 사랑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두 작품 속 여주인공의 인물 설정과 복잡한 인물 관계가 유사하다. 11살 화자와 블라지미르는 자신들이 좋아하고 있는 여주인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마초 기질을 발휘한다. 11살 화자는 M 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아무도 타지 않으려는 사나운 말 딴끄레드를 타고 달림으로써 주위로부터 남성다운 ‘영웅’으로 칭찬받는다. 반면에 블라지미르는 11살 화자보다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이다가 보는 앞에서 4m 담장(!) 위에서 뛰어내린다.   

 

예전에 읽었던『분신』(열린책들 세계문학 No. 116)에서 고골의 단편소설『코』와 유사한 점을 느꼈는데, 과도기를 겪고 있었던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좀 더 나은 창작을 위해서 당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고 있던 고골의 작품을 모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뚜르게네프는 문학관이 서로 다른 앙숙이었으면서 러시아 문단의 라이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표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꼬마 영웅」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옥중에 있을 때 창작했으며, M이라는 익명으로 1857년에 발표되었다. 뒤이어, 1860년에 뚜르게네프의『첫사랑』이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뚜르게네프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표절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자신의 본명이 아닌 익명으로 발표했기에, 뚜르게네프가 이 작품을 읽었어도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이라고는 생각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백 년 전, 명작을 가지고 표절했다, 안 했다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만 할 뿐이다.

8개의 단편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 작품들을 쓰고 있었던 시기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가 문학적 성장통을 겪고 있을 무렵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다음 작품을 위해 구상하고 있었던 모든 문학적 재료들을 볼 수 있는 소품들이라는 점에서 과도기적 단편소설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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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 속의 '나'가 초식남이라는 거죠?cyrus님이 아니고...^^

책을 도서관을 통해서도 읽으시는군요.
전 도서관 갈 시간이 없어요.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늦게까지 했음 좋겠어요~
아웅,도서관 관계자들에게 돌 맞으려나?

전 도스또예프스끼,읽기는 읽었나 모르겠어요~

cyrus 2010-10-27 21:14   좋아요 0 | URL
네, <백야>라는 단편의 남자 주인공이 '나'로 등장합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저도 약간 초식남 기질이..^^;;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어느 잡지에서 초식남 테스트 해봤는데..
그렇게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답니다.

주5일제 도입 이후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월요일에 휴관하는 것은
이해한다지만, 저도 시간 좀 연장을 해줬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7시까지지만,, 이제 겨울이 되면 한 시간 일찍
문 닫는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0-10-2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를 투르게네프와 비교해 놓으니까 투르게네프는 읽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안읽은 제게 선명하게 와닿네요.

저희동네 도서관 도서대출은 8시까지로 연장이 되었고,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도서관에 건의를 해보시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cyrus 2010-10-28 17:1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이 살고 계시는 동네가 어딘가요??
제가 그 쪽으로 이사를 해야겠네요ㅎㅎ

예전에도 도서관 홈피에 연장 건의에 대해서 게시판에
말이 많았던데,,, 제가 군생활 2년 하고나서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괜찮은 도서관장이 새로 부임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지금 체제로 유지할 것만 같네요.


2010-10-2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투르게네프를 되게 싫어했지요.성질이 괴팍한 사람이라서 투르게네프 같이 교양있는 점잖은 사람을 견디지 못했나봐요.<악령>에 나오는 등장인물(갑자기 이름 생각이 안 나네요)중에 투르게네프를 희화화한 게 있죠.

cyrus 2010-10-28 17:1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악령> 이야기는 처음 안 사실입니다.
요즘 초창기 작품부터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대망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완독하는게 저의 목표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30 16:53   좋아요 0 | URL
성공하시길 빕니다.
 
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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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학당에 모여든 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 

 


그림에 담긴 목록 - 라파엘로 <아테네의 학당>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학당에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 그림에는 학당의 문 정중앙에 서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글이 삼천포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간략하게 이름만 소개하자면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기하학의 창시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재미있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알기 전에는 이 그림 속에 학당에 모여든 학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였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학당에 모여든 것일까? 어떤 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피 학문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추상적인 철학 문제 때문인지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이 최근에 와서야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라는 것을 밝혀졌지만, 모든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 없는 학자 또는 학자의 강의를 듣으려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 그림 한 폭이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불리어지는 이상,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은 라파엘이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폭에 담겨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서 감상자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일뿐, 그림 속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그림 속 학자들 하나하나 확인하며 알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상자들이 그림의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안다고 해도, 나머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학자들은 감상자의 시선 밖에 있게 된다.   

그러면, 라파엘로는 20명 정도의 학자와 학생들만 그려 넣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보다 더 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렸을까?  아무리 이렇게 한 사람씩 세세하게 노가닥으로 그린다고 해도 감상자들은 그림 속 인물 전부 알려고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아예, 이 그림 제목을 <아테네의 학당>이 아닌,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수학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 , , 와 그 밖의 나머지 학생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감상자들은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그런 긴 제목을 붙이기보다는(진짜로 그림에 긴 제목을 붙였다면 감상자 입장에서는 그림 볼 맛이 떨어질 것이다) 스스로 수고를 하면서 화폭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는 쪽으로 택했다.

  

    

  예술가들의 무한성 극복하기   

 


무한성 극복하기 - M.C. 에셔 <천사와 악마>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이번 신작인 <궁극의 리스트>에서 고대애서 현재까지의 문학과 예술 속에서 등장하는 목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코는 대부분 문학가와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목록을 삽입한다고 말한다.  문학가는 소설이나 시에서 수많은 사물이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언어적 목록,  화가는 붓으로 캔버스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넣는 시각적 목록을 취한다는 것이다.  작가나 화가들은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한성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와 같은 '현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무한성이라는 속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성의 존재들을 목록화하여 열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엄청나게 크거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것에 마주하게 된 호메로스는 

하나의 표본, 예, 또는 지시로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버린다.  

- <궁극의 리스트> p 49 -

 
   

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서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린 이유도 에코의 주장을 비추어 보면 그의 본의를 짐작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성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함축하여 말하고자 하였으며, 비록 이름 없는 학자와 학생들일지라도 라파엘로는 학당 내부에는 많은 인물이 가득히 있다는 점과 저 수많은 인물들 틈에서도 학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자와 학생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감상자들은 이 그림 하나로 아네테 학당 속 인물들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그 이상의 존재들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목록(List)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수집물 그리고 호기심의 창고 - 프란스 프랑켄 2세 <예술과 호기심의 컬렉션>
 

시대가 변화갈수록, 목록의 용도도 변화하였다. 15~16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가 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지리와 자연에 대한 학문으로 쏠리게 되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서 신대륙의 문물들이 서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학자들과 상류층 귀족들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수집한 희귀한 자연물과 고고학적 유물들을 목록화시키게 된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박물관, 동물원 등이 만들어졌으며 스웨덴의 린네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여 분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다양한 학자들이 이 모여 여러 학문을 집대성하기 위해서 <백과전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런 학문적 결과물이 있기에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여 나열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이런 목록화의 습성은 현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목록과 같은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난해한 작품으로 정통이 나있다. 이들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떠나서 단지 수많은 개념들을 분류, 나열할 수 있는 목록에 대한 과잉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용적 목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


실용적인 목록 - 대형마트 할인용품 광고 전단지
 

하지만, 역사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들에게만 목록에 향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목록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스스로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목록들을 즐기고 있다.  

에코는 목록에도 중요한 차이의 구분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용적인 목록과 시적 목록으로 나누고 있다. 실용적인 목록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식당 메뉴표, 국어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할인품목 광고 전단지 등이다. 반대로 시적 목록은 앞에서 언급한 라파엘로나 라블레, 조이스처럼 예술 형태를 통해서 탄생된 목록을 말한다.   

마르크스<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엄청난 상품들의 축적으로 그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실용적인 목록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있는 근대에서는 백화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 자본주의가 만든 실용적 목록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려는 소비 의사가 반영된 자신만의 실용적 목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에서 볼 수 있는 장바구니 기능이다.  소비자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상품들을 자신의 장바구니 기능에 입력함으로써 자신만의 목록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장바구니 목록에서도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심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바로 살 수는 없지만, 그 물건을 찜하여 장바구니 목록에 입력하게 되면서 소비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고 싶은 상품만 있으면 무조건 장바구니 목록에 담으려는 특성이 있는 인터넷 쇼핑 중독자의 모습은 실용적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집착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조금이나가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실용적 목록에 향한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등장은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욕망을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통해서 앱스토어에서 관심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러가지 신의 이름들이 나열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인류는 공통적으로 '목록 만들기'를 추구하였고 List-holic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목록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발전,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있기까지에는 어쩌면 목록이라는 특수적 용도의 기록물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은 목록화되고 있다. 그 목록화의 발전에 의해서 생긴 사회적, 문화적 산물들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록화되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우리 인간이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List-holic이면서도 Cataloger(목록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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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로도 유명한데,그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기호학자라는 프로필이 왜 필요한가 갸우뚱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님의 리뷰랑 페이퍼를 읽으니,이 책 꼭 읽어주고 싶어요~^^

cyrus 2010-10-27 00:01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사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기호학적 지식의 어려움에 좌절한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다양한 그림들과
문학 작품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 글에 사용한 그림 중에서 프랑켄 2세의 그림만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 속 내용과
관련된 그림들을 골랐고요.

saint236 2010-10-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에코는 정말...걸물인것 같아요.

cyrus 2010-10-27 12: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aint236님^^

가격은 좀 착하지 않은게 흠이지만,,,
이전에 출간된 <미의 역사><추의 역사>의 가격과 비교하면
조금 착해진 편입니다. 그리고 구입하고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고
책 속에 수록된 그림들도 볼만하고요.

반딧불이 2010-10-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블레나 조이스의 목록이 대체 어떤 리스트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인간이 모두 리스트홀릭이라면 저도 이참에 실용적인 리스트든 시적 리스트든 하나 만들어야할까봐요.

cyrus 2010-10-27 12: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있는 마이리스트가 실용적인 리스트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실용적
도움이 되는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라블레와 조이스의 텍스트를 읽어보시면..
감당하지 못할겁니다. 비록 2페이지 정도 소개하고 있지만
정독하기가 부담스러울겁니다. 참고로 텍스트 출처는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조이스는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입니다. 특히 조이스는 난해한 문학성으로
유명하죠^^
 

 

 

내가 독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은 이 곳 나의 서재와 공식 출판사 카페 두 곳, 총 세 곳이다. 다양한 책들을 읽고, 그 독서를 통해서 느낀 감정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소이다.  

비록 서로 얼굴은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글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지향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삶의 가치관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 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어두운 골방 속에서 독서를 해서 생긴 내 마음 속의 고정관념들을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기 위해서 그 골방을 부수기도 하고 말이다. 또, 가끔은 메마른 나의 감정에 단비 내리듯 즐겁게 해주는 글도 있기도 하다. 이렇듯, 이런 만남은 참으로 좋기만 하다.  

   

 

 Scene #1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해도 무조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 괜스레 신경이 쓰이고, 약간의 우울함도 느껴지기도 할 때가 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름만 알면 다 아는 유명 출판사 카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 '활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렇지만, 내 서재에 글을 올리듯이 카페에서도 책 읽고 쓴 글을 올리는게 나의 카페에서 활동이다.   

그 중에서 B 출판사라는 곳이 있는데, 내가 이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출판사 자체에서 주최한 리뷰 이벤트 때문이었다.  그 때는 이제 막 알라딘 서재를 만든지 얼마 안 되었고, 아직 온라인 상 공간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가고 있지 않은 터라 그냥 글 몇 편 올리고 운 좋게 상품이 걸리면 상품만 받고, 탈퇴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우습게 표현하면 그냥 상품만 받고 냅다 튈려고 하는 격(?)이라고 해야되나, , ,  

그러다가, 이벤트 참여 리뷰를 카페에 올리면서 우연히 이벤트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일게 되었다. 이 이벤트는 여려 편 글을 올려 응모할 수 있어서 두 세 편씩 올린 회원분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리뷰를 무려 10편 정도 올린 J라는 회원이 있었다.(!)  나는 그 분의 글을 세보니 총 14편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카페 창설했을 즈음에 가입하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다.

  "뭐야... 양으로 승부해서 이번 이벤트에서 상품 받으려고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마나 잘 썼는지 글 한 편을 읽었다. 그 글은 헤르만 브로흐의 소설 <몽유병자들> 리뷰였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가나 시인들은 글 한 편 쓰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감정들을 거기에다가 다 쏟아부어 표현할 줄 아는, 아주 특수한 능력인 줄 알았는데.. 

J 씨의 글, 아니 리뷰의 문장은 예사 글이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하나의 글에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더구나 J씨의 표현력에 감탄했던 이유는, 자신이 겪고 있는 병환을 자신의 독서와 결부시켜 정말 기가 막히게 표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 분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사실 카페에서 그 분과의 대화를 좀체 해보지 못한 터라 허락도 구하지 못해 함부로 인용할 수가 없었지만, 그 분이 쓴 문장이 너무 잘 써서 조심스레 공개하고자 한다.) 

   
 

"때로는 벽에 머리를 박아가며, 때로는 불면증 치료약으로 써가며, 아는 단어인데도 ' 내가 정말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걸까' 하고 수백번 단어 사전을 검색해가며, 한 장 한 장 뜯어먹듯이 읽어 해치우고 만 것이다. 

 (…) 독자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고독에서 구명해내기 위해서라도 이런 예술 작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뿐더러 늘 생각하는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주의, 타자를 존중하고 배려함으로 획득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헤르만 브로흐의 작품은 '박물 소설'이라는 특수 장르인데, 그의 길고 긴 내용의 작품을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J씨는 그런 독서의 어려움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김으로써 어떻게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자신이 먹고 있는 불면증 치료약을 먹으면서까지,,,  도저히 안 되다보니 이번에는 사전까지 찾아보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독서 읽기의 고통으로 승화시키다니. . .

J씨의 긴 글을 다 읽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J씨의 사연이 안스러워지기도 하였다. J씨는 매일 찾아오는 신체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어렵다던 브로흐의 작품을, 미친듯이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년에 돌아가신 故 장영희 교수님도 떠올랐다. 교수님의 글에도 자신의 몸 속에서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주는 고통을 에세이에서 거침없이 토로를 했었는데. . .   

하지만 다른 리뷰와 그 분이 남긴 댓글에는 좀처럼 병환의 고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글이 멋지다는 댓글에도 그 분은 겸손하였고, 그 불행의 고통만 없었으면 독서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는 평범한 회원이었다.  하지만 몇 몇 글에는 자신의 투병을 암시하는 문장도 있었다. J씨는 날이 갈수록 아파오는 몸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인 독서와 카페에 리뷰를 올리는 것이 버겁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카페에 본격적으로 활동한 뒤부터는 J씨의 글은 잘 볼 수도 없었고, 카페에도 자주 들어온 일도 없었다.  그나마 간혹 들어오기는 했지만, 다시는 그의 멋진 글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J씨와 댓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Scene #2 

그러다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페 이벤트 대회의 결과가 나왔다. 역시나 나나 카페 회원들의 예상대로 J씨가 이벤트에서 1등 격인 최고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수상을 카페 매니저의 쪽지로 통해 알게 된 J씨는 정말 오래만에 카페에 들어와, 수상 소감의 댓글을 남겼다.  자신의 글이 높은 상을 받을 줄은 몰랐으며, 정말 감사하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요즘 몸이 아파서 자주 카페에 들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미안함을 표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 분의 댓글을 보면서 J씨가 예전보다 카페에 좀 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그대로였다. 간혹 카페에 들릴 뿐, 글이나 댓글을 좀처럼 남기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해져만 갔다. 정말 너무 아파서 카페에서 활동을 자제하는 건 아닌지 나름 추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투병 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말 몸이 아프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봤다. 본인은 신체적 고통에 괴로울 판에 이 책 읽었다고 한껏 멋을 부린 채 리뷰을 올리고, 서로 희희낙락하면서 댓글을 나누는 사람들이 보기 싫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죽을 거 같다는 고통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나 같아서도 이런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고 있다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봄직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분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아니, 내가 책 읽고 느낀 감정들을 남들에게 보란듯이 주저리 늘어놓고, 이모티콘을 남발하면서 '좋다'라고 짤막하게 댓글을 달고 있는 나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일이지 회의하기도 하였다. 의도치 않게 J씨를 신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죄어오게 하지 않았는지 괜히 죄책감도 들기도 했다.  J씨에 대해서 사과의 표현을 담은 쪽지나 메일이라도 보내려고 생각했지만, 괜히 그 분에게 되려 누가 될까봐 차마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J씨는 카페에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Scene #3  

나에게도 J씨의 존재감과 그 분에 대한 걱정이 잊혀져갈 무렵, 오늘 그 분이 카페에 글을 올렸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자신이 받은 이벤트 대회 상품을 공개한 글이었다.  

J씨가 받은 상품은 출판사 문학전집 총 50권과 책장이었다. 그 분은 이번에 받은 50권의 책들도 있고 해서 대대적으로 자신의 대형 서재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카페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과 이번에 받은 상품의 책들을 사진으로 공개하였다. (J씨는 예전에 카페에서 자신의 서재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대형 서가를 여러 번 보유하고 있는 애독가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건강상 이유 때문에 당분간은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밝혔다. 입원 겸 요양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정말 감사하다는 말도 남겼다.  

B 출판사 카페는 이상하게도 회원들이 댓글을 잘 안 남기는 편이다. 그나마 댓글과 글을 맣많이 남기는 회원은 나와 몇 몇 분들밖에 없다. 그래서 J씨의 글에도 그렇게 많은 댓글이 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부터 J씨를 알고 있었으며 댓글로 통해 교류를 한 몇 몇 회원들은 J씨의 쾌유를 비는 댓글을 달았다.  나도 J씨와 제대로 상대 해보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그 분의 건강을 완쾌되기를 바라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간혹 어느 댓글은 J씨가 올린 사진에만 본 나머지 부럽다는 내용만 남긴 덧글도 있었다. J씨는 이런 댓글을 원하지 않았을텐데...   

또 다시 내 마음에 J씨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생겼다.  이번에는 그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평소에 카페에 자주 들어오지 못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글에서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적었을까? 

이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되지만, , ,  나는 오늘 J씨의 글이 정말 마지막 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는 이 카페에 찾아오지 못할 거 같은 느낌도 문득 들었다.  

나는 댓글에다가 건강해서 다시 카페에 활동하기를 바라는 말을 남겼다. 과연 J씨는 나의 댓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통을 겪지 못한 자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전하는 걸멋든 연민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의 사진들을 보니,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 를 전하는 것도 같았다.  

'바니타스(Vanitas)'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그림에는 항상 이 있다. J씨는 책을 좋아한답시고 책 읽고 글을 쓰는 회원들에게 그런 짓들은 죽음 앞에서는 부질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수 백권 모은 책들은 정말 J씨에게는 헛된 물건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서재가 부럽다고 칭찬 일색하는 회원들에게는 따끔한 인생의 진리를 암시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알아 차리지 못하지만, 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처럼 겪게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J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J씨가 진심으로 병의 고통을 훌훌 털어서 다시 한 번 우리 카페에 활동, 아니 멋진 글을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짧은 글이어도 좋으니, 나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은 글 한 편이라도, , ,   <몽유병자들>을 읽기 위해서 머리도 박고, 사전을 찢어 먹었듯이 J씨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과 고통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기약은 없지만, 꼭 나아서 예전의 활동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기록된 과거의 지나친 감정 모든 것들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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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씨는 님 같은 독자를 두어서...아프지만 좀 행복하겠는걸요~^^
저도 님의 J씨가 쾌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cyrus 2010-10-26 14:05   좋아요 0 | URL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그 분에게도 행복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반딧불이 2010-10-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간절한 마음이 J씨에게 전달되면 투병하시는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진솔한 글 겸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6 14:05   좋아요 0 | URL
사실 무척 망설였습니다. 진심 어린 메일이라도 보내고 싶었는데,,,
도리어 반응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끝내 메일을 못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분이 하루 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는 마음 밖에 없네요.

꽃도둑 2010-10-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글의 기교가 아닌 진정성이 담긴 글을 발견 할 때가 있습니다. 키로스 님의 글이 지금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그 분을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 분도 아실 겁니다. 진심은 둘러가지 않는 법이잖아요, 바로 직감적으로 꽂히잖아요.^^

cyrus 2010-10-26 19:47   좋아요 0 | URL
아무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끔 상대방이 안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거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너무 작은 일에도 예민한 탓일 수도 있고요.
 
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민화의 세계에 처음 마주치다  

 

 

  

민화(民畵)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조선 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민화라는 뜻 자체에서도 '백성 민' 자가 들어가니깐 민화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민화의 정의를 알고 있다.  그러나, 민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뒤에는 잘못된 선입견도 가지고 있다.     

   민화는 이름 없는 서민들이 그린 그림이다,  

   유명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하면 민화의 그림 수준은 낮고 작품성은 떨어진다.  

   민화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기만 하다.  

   미술품 경매에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가격을 매기지 못할 것이다.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 탓인지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한국미술 관련 도서들에도 대중들을 위해서 민화를 소개한 책들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미술에 어느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민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 있는 이도 보기 드물다. 간송미술관 같은 대형 박물관 및 미술관에 전시되는 풍속화나 서예 작품들에 사람들은 많이 몰리지만, 한국 민화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두 번째 선입견처럼 민화는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대중들은 민화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민화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대중들의 취향처럼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예전에 E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라임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김준근 편을 보면서 민화라는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김준근의 풍속화을 보게 되면 민화와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이 방송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준근이라는 원산의 화가를 알게 된 나는 그의 풍속화에서 우러나오는 색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전에 나온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속 사람들과 비교하면 

  김준근이 그린 사람들은 생기가 살아있다." 

비록 TV 속 브라운관에 흘러나오는 영상이었지만, 그린 지 수백 년이 지난 김준근의 풍속화에는 여전히 색이 살아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김준근은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왕실에서 활동하는 궁정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18세기 때 외국 문물의 유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김준근은 원산, 부산과 같은 항구 도시를 넘나드면서 조선에 건너온 외국인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팔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외국인에게 건낸 그림에는 조선 시대의 일상 생활을 담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려 외국인에게 판 것이라면 어쩌면 김준근은 민화를 최초로 외국에 소개하였고, 거래를 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 박물관에는 김준근의 풍속화집이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나는 조선 시대에는 민화도 어느 정도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때마침 올해에 출간된 이기영 씨의 <민화에 홀리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준근의 그림 덕분에 민화의 세계에 처음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 모자란 민화에 대한 소개

조선 민화에 대한 책이라서 읽기 전에는 무척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미술 비 전공자인데다가, 개인적으로 민화를 연구하고 있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것일까?  내용 구성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민화라는 민중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조선 근대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두 번째 챕터인 [시대정신을 담은 민화]라는 부분에서는 35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조선 근대사를 서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만 소개하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이 챕터에는 민화 그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민화의 발전 과정에는 조선 근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하필 이 내용이 책 중간에 배치되어 있어서 읽고 있는 내내 맥이 풀린 감이 있었다. 차라리 역사적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맨 앞에 배치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뭐 어느 정도 조선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겠지만, 이제 막 민화라는 미술에 대해 입문을 하는 독자들에게 도리어 독이 되는 독서가 될 우려가 있다. 민화 이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 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된다면 민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더욱 더 민화라는 그림에 대해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민화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  

사실, 무턱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민화를 알아야겠다' 라고 하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지루한 책일 수도 있겠다. 정말 민화의 아름다움을 눈여겨 본 독자들은 이 책을 수월하게 읽혀질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내용 구성의 단점 때문에 민화 매니아들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양미술의 특징과 민화에 대해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나니, 민화의 특징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에두아르트 콜리어 <바니타스> 1650년경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 1640년


17~18세기 조선과 서양에는 독특한 양식의 미술이 유행하였다. 조선은 민화라고 하면, 서양에는 '바니타스(Vanitas)' 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Vanitas라는 용어에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는데, '바니타스'라고 붙여진 모든 작품들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과 해골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며 허무하다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책에 대해 깊게 어려워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다. 책도 결국에는 허무한 인생을 상징하고 있으니깐. 아무리 파우스트 박사처럼 평생 학문에 몰두하더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라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학문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책가도 冊架圖>  

 

이 그림은 조선 시대에 유행한 <책가도>라는 민화이다. 순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 한다. 책가도는 책 이외에도 부채, 도자기 등을 문방(文房)에 볼 수 있는 도구들이 그려진 우리나라만의 정물화이다. 대부분 <책가도>는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 내부를 장식하는데 그려졌는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대부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뿐만 아니라 왕족들도 <책가도>를 선호하였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자신의 방 안에 <책가도>를 걸었으며 신하들에게 <책가도>를 늘 곁에 두어서 학문과 독서에 충실히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책이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했더라면, 조선 사람들은 학문 추구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으로 여겨졌다.  



얀 판 하위쉼 <벽감에 놓인 화병> 1720~1740년경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수록
  

바니타스 정물화 중에는 을 주제로 그림도 많이 있는데, 잠깐 활찍 피우다가 지고 마는 꽃의 인생처럼 인간의 부귀영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시든 꽃은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서공임, 현대민화 <재화만발> 2010년 

나름 이쁜 그림인데 크기가 크지 않다 보니 사진상으로 좋은 화질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꽃은 서양과는 반대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의 사진 속 민화에 그려진 위의 꽃은 모란인데, 부귀를 의미하는 꽃이다. 그 아래의 꽃은 목련이다. 목련은 옥란화(玉蘭花)라고 부를 정도로, 공명을 의미하고 있다. 그만큼 선비들은 이 민화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민화를 통해서 자신이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와 공명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민화에는 서양의 바니타스와는 반대로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잉어가 그려진 그림은 벼슬 시험의 합격 성취를 바라는 의미, 석류 그림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원앙새와 연꽃이 그려진 그림은 부부 간의 화목을 나타내고 있다.      

 


작자 미상, 1880년대 추정,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 일부 

 현대 민속화가 서공임 씨가 복원함.
                                                            

그리고, 민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은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진료를 담당하던 식약청의 관원들이 그린 것이다. 여섯 살 때, 순종이 천연두에 걸려 몹시 고생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병은 나아지게 되었고, 이에 기쁜 마음에 고종 황제는 어린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지사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아닌 의료를 담당하는 식약청 소속 신하들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리고 (비록 그림의 일부만 찍었지만) 이 민화에는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들이 그려져 있는데 단순히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부의 백년해로를 염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져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 민화

방대한 서양 화풍 중에서 바니타스 정물과 우리나라 민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협소한 범위의 비교이겠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동, 서양의 대표적 화풍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용 한계상 왕실 내에서 유행하던 민화들을 소개하였지만, 이 책에는 그 유명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얼굴을 그린 민화도 있고, 여러 마리 새들을 그려 넣은 민화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화는 단순히 서민적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유한 양반들과 왕족들도 민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화는 궁정의 화원들도 그리곤 하였으며 왕들은 과거 시험에 참가한 선비들에게 특정 주제를 내세워 문장을 짓게 한 것처럼 화원들에게도 어떤 특정 주제로 민화를 그리게 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렇듯, 민화는 이름 없는 환쟁이만 그렸던 그림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환쟁이에서부터 궁정의 화원까지 민화를 즐겨 그렸으며, 서민에서부터 양반, 왕족까지,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의 백성들은 민화를 감상하면서 즐겼다. 조선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민화를 즐겼으니,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외국인들도 민화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18세기 때 김준근이 우리나라 민화를 서방에 알리게 한 것으로 필두로 하여 외국의 미술 연구가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치와 먹걸리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인 김치와 막걸리를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와 막걸리는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나라 민화도 외국에서도 조금씩 인정을 받고 추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색을 입힌 '한국적인' 그림인만큼 민화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활발히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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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TV쇼 진품명품'인가 그 프로그램 하나 모르겠어요.
저 그거 보면서 감상하고 가격 매기고 하는 거 재밌게 봤었는데...^^

cyrus 2010-10-26 14:02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합니다.
저와 어머니가 골동품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 보곤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