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haring #4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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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펭귄 클래식 ㅣ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001-240]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누가복음 13장 24절
↳ Re: 굳이, 그 힘든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할까?
- cyrus
도대체 나는 누구랑 결혼한 거야?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발전을 위해서 한평생 동안 헌신하는 대신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본인 자신도 한번쯤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여성이었으니 몰래 남자 귀족들과 연분을 나누었고, 그들과의 스캔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애는 했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며 마음속으로는 권력 쌓기에 혈안이 되어 여왕에게 달콤한 말로 추파를 던지는 귀족 남정네들의 꿍꿍이를 그녀 스스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하느님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될까?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성립된 관계라면? 이런 일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일어난 사례이다.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이 있으며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철이와 순이. 철이의 부인 순이는 교회에 자주 찾아가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 순이가 계속 다니던 A 교회를 가지 않고, 이번에는 다른 B 교회를 가게 되었다. 철이는 순이가 다른 교회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눈 여겨 보지는 않았다. 순이가 새로 다니는 교회도 기독교 교회였으니까. 그러나 그 후로부터 순이의 일상 습관이 예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집안 관리도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오전 내내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니 자식들 양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철이는 이런 순이의 변한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 B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순이에게 그 문제의 교회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철이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러버렸다. 심지어 순이는 좀 더 교회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이 다니던 일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잠자리에까지 커지게 되었다. 순이는 ‘하나님과 결혼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철이와의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순이의 태도와 엉망이 된 가정생활에 진저리가 난 철이는 결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법정 판결은 종교생활에 심취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은 순이가 이혼에 큰 책임이 있다며 이혼 청구소송에서 철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순이는 종교 문제를 제기하는 철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가정 생활 안정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점과 단지 교리의 덕목을 가지고 성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가정파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지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 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여자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과 알리사 커플의 경우는 사랑과 종교의 갈등에 얽매여 두 사람 다 헛물켠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알리사는 마음속으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런 세속적인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반면 제롬은 알리사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종교를 향한 알리사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고 여러 번 설득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알리사와 결혼하는 것. 제롬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신 인생의 첫 관문이 알리사와의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위해서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비좁다. 하지만 제롬은 성경 속에 있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구절을 듣고 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알리사를 사랑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구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알리사를 위해서 3년이나 되는 군 생활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알리사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 알리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둘의 마음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제롬의 마음에는 이미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예전의 알리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와의 잦은 편지 왕래하는 것도 지쳐만 갔다. 아무리 설득해도 알리사는 종교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사랑에 대해 강경한 입장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오히려 설득이라기보다는 종교적 논쟁으로 확대되어 서로 다투기 일쑤이니 결국에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지상의 사랑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만다.
알리사는 이보다 더 심하다. 제롬과의 만남 자체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며 몸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알리사가 죽기 전에 쓴 일기에서 기독교적인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투병의 삶 역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만족하기에 이른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지드의 해석
『좁은 문』이 출간된 지 101년이 지난 지금도 알리사의 태도에 대해서 엇갈린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의 사랑을 위해서 지상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헛되이 죽어가는 알리사를 통해,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교리의 허무함을 강조한다는 평가와, 반대로 알리사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한 ‘성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제롬의 경험을 실제로 겪어봤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 앙드레 지드의 중립적인 해석이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교리를 강조하는 개신교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알리사의 행동에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드의 중립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해석에 대해서 독자들은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종교적 교리에 따르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허구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한 알리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는 종교의 추구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의 양식
유년 시절의 지드는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그 시절에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과 자신에게 강요하는 종교적 분위기는 지드를 심신 적으로 병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처럼 그도 외사촌 누이 마들렌을 사랑하게 된다. 마들렌 역시 알리사처럼 지드의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방황을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드는『지상의 양식』이라는 한 편의 산문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들렌과의 결혼한 지 2년 뒤인 1897년에 정식 출간하게 된다.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그가 1947년에 노벨 문학상 받은 이후, 그의 처녀작은 뒤늦게 서야 문학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지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1927년판 서문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간략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이것이 바로 그대가『지상의
양식』의 머리말과 마지막 문장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1927년판에 붙이는 서문,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14 -
그리고 1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자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을 찾게
될 때까지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신은
도처에, 아무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분,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무턱대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20~21 -
만약에 제롬이 알리사에게 이런 문장을 편지로 썼다면 알리사의 태도에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 이 문장을 읽었다고 해서 알리사의 마음 깊이 박힌 신의 사랑을 한순간에 바뀔리는 없지만, 제롬을 향한 지상의 사랑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신의 사랑으로 포장하여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알리사에게는 이에 대해 스스로 재고해봤을 것이다.
『좁은 문』은『지상의 양식』이 발표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 이 때는 마들렌과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자신의 처녀작에는 지나친 신앙을 경계하는 생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발표한 소설에 등장하는 알리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의 아이러니한 종교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제롬과 알리사.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에 다투던 그들의 사랑싸움은 결국에는 종교적 차이에 의한 대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알리사의 지나친 종교적 금욕주의로 말미암아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반면, 제롬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부정하면서도 알리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좁은 문을 목사의 설교만으로 단정적으로 짓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알리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가 죽은 뒤에도 알리사를 향한 희망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좁은 문을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들어갈 수 없는 그 좁은 문을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찾고자 했던 ‘사랑’은 결국에는 ‘공감’이었다. 사랑과 공감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드는『지상의 양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꼈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공감일 뿐이며 순간적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랑을 추구한 제롬과 알리사가 빠른 시일 내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의 지향점에 대란 공감만 있었던 것뿐이다. 알리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유화적으로 다가온 제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알리사보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알리사처럼 종교적 영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알리사는 제롬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더욱 더 공감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었으며 이들의 결혼 성립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생 텍쥐페리는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제롬과 알리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처럼 종교라는 하나의 관점을 마주 보다가 마지막에는 파멸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종교 이외에도 경제적 요건, 성격 차이 등으로 마주 보다가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도 오게 된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고정된 채 마주 볼 수는 없다. 가끔 위나 아래, 옆이든 주위의 시선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말처럼 사랑이 오래 가기 위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연애 미경험자로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관점을 수용하고 조화시키려고 각자가 노력한다면 마주 보던 관점들이 점점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면서 사랑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혹시 자신과 배우자의 관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공감이면서도 억지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지,『좁은 문』을 읽은 연인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