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 - 무엇이 남자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황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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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부 동반 분만  

만삭의 배우자가 이제 막 출산이 임박하려고 한다.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크게 걱정하기 시작한다. 산부인과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침대에 눕히어 분만실로 향한다. 아내가 무척 걱정이 된 남편 역시, 아내가 향하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싶어 하였다. 진통으로 힘들어 하지 않게 아내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남편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만실에 입장할 수 없다면서 막아섰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분만실 밖에서 혼자서 대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부부들은 이런 경우 공감하실 것이다. 배우자가 초산이라면 남편 분들이 크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분만실에 입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TV 드라마에서의 출산 장면에서도 분만실에는 임산부와 몇 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오고, 그 임산부의 남편은 대기실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부들도 젊은 층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임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출산 경험이 있는 부부들을 중심으로 임신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분만실과 부부가 동반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부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남편도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출산의 기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산부인과도 있다. 또,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남편이 직접 갓 세상에 나온 신생아의 탯줄도 자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신생아의 배꼽에 달려 있는 탯줄을 남편이 직접 자름으로써 이제는 ‘남자’가 아닌 ‘아버지’가 되었음을 알리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출산 풍경은 극히 일부분이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산부인과도 있고, 초보 부부들 사이에서는 가족 동반 분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를 움직이는 9가지 호르몬 

뇌 연구가이자 『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의 저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임신한 아내와 사는 남편의 심리 상태를 뇌의 특정 호르몬 발현 작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남자의 뇌에 작용하는 중요 호르몬 9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뇌과학에 대해서 전무하다거나, 나름 뇌에 관해서 좀 안다는 남자와 여자 독자들은 저자가 설명하는 9가지 호르몬에 관한 내용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의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여자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을 말해보라고 하면 테스토스테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잘못돤 상식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이전에 여자의 뇌에 관한 대중과학 도서를 쓴 적이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남자의 뇌에 대해서 책을 쓴다고 하자,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재미있다. "남자의 뇌는 단순해서 이번 책은 쓸 분량이 적겠네요."  

그러나 저자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남자의 뇌 역시 여자의 뇌 구조처럼 복잡하고 여러가지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뇌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뮬러관억제물질(MIS),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에스트로겐, 도파민, 코르티솔, 안드로스테네리온, 프로락틴이라는 것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많은 사람이 다 알다시피 목표지향적이며, 권위적인 남성적 특징을 발현하도록 한다. 뮬러관억제물질(MIS)는 여성적 해동과 감정을 발현하기 위한 회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은 공감과 애정 회로를 형성하게 하는데,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 관계 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제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가족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나게 해준다. 에소트로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많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특징르 발현하게 하는 여성적인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이고, 역할은 적지만 남성에게도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으며 그 적은 역할은 남성 성격 형성에 중요한 임무이다. 옥시토신을 자극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이 있어야 옥시토신을 자극하여 남성들도 공감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도파민은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며 다른 호르몬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어른들이 도박에 쉽께 빠지는 것도 이유가 있다. 코르티솔은 쉽게 화를 내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래서 남성이 이성적인 여성보다 순간적으로 화를 쉽게, 잘 내는 편이다. 안드로스테네리온은 성적 매력을 풍기게 한다. 여성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게 되고, 결혼을 성립하게 만드는 나름 큰 역할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프로락틴 

마지막 호르몬 프로락틴은 앞에서 언급한 부부 동반 분만과 관련이 깊다.  

배우자가 출산을 앞두게 되면 남편의 뇌에는 프로락틴이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의 출산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고, 그 임신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를 '쿠바드(Couvade) 증후군' 이라고 한다. 원래 '쿠바드'는 남편이 아내의 출산 전후에 출산에 부수되는 일을 행하거나 흉내내는 원시 사회의 풍속을 뜻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만(擬娩)' 이다. 그래서 프로락틴이 한창 생성되는 시기에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에 대해서 각별하게 신경을 쓰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내의 출산에 대한 걱정이 다른 가족들보다 많은 것도 뇌에 프로락틴이 작용되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남성들은 심리적인 변화만 겪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도 겪게 된다. 출산 경험이 있는 저자는 출산 임박 당시, 남편의 몸무게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락틴은 단순히 아내의 임신을 공감하게하는 심리적 역할을 넘어서 성적 욕구를 감소하게 만들어 아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해준다. 즉, 남자는 스스로 '아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나 다름없는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빠가 되는 것이 아니라,아기가 아내의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남성은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에 모든 남녀들이 읽어야 할 책 

평소에 뇌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의 수준이 초, 중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누구나 알만한 남성의 뇌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종의 '남성 뇌 탐구생활'이라고 해야되나. 저자의 전작 베스트셀러인『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과 겸하여 읽으면 '남녀 뇌 탐구생활'이 된다.

그러나, 남자 아이를 키우는데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 남성들은 섹스에만 밝히는 본능적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왜 그런지 모르는 여성들은 꼭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왜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 프로락틴의 작용과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내용에 염두하여 이제 막 아빠가 되려는 남성들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아내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부부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이 되었고, 갓 태어난 아이가 이제부터 가정의 일원이 되었으면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남성을 보여줘야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겉으로만 남자다움을 강조하여 남자라고 만날 백번 부르짖기는 보다는 왜 남자다워야 하는지, 남자답게 만드는 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실이 있는 남자가 진짜 남자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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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haring #4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마감)
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001-240]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누가복음 13장 24절

 ↳ Re: 굳이, 그 힘든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할까?

- cyrus  

 

 
   

 도대체 나는 누구랑 결혼한 거야?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발전을 위해서 한평생 동안 헌신하는 대신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본인 자신도 한번쯤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여성이었으니 몰래 남자 귀족들과 연분을 나누었고, 그들과의 스캔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애는 했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며 마음속으로는 권력 쌓기에 혈안이 되어 여왕에게 달콤한 말로 추파를 던지는 귀족 남정네들의 꿍꿍이를 그녀 스스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하느님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될까?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성립된 관계라면?  이런 일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일어난 사례이다.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이 있으며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철이와 순이. 철이의 부인 순이는 교회에 자주 찾아가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 순이가 계속 다니던 A 교회를 가지 않고, 이번에는 다른 B 교회를 가게 되었다. 철이는 순이가 다른 교회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눈 여겨 보지는 않았다. 순이가 새로 다니는 교회도 기독교 교회였으니까. 그러나 그 후로부터 순이의 일상 습관이 예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집안 관리도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오전 내내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니 자식들 양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철이는 이런 순이의 변한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 B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순이에게 그 문제의 교회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철이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러버렸다. 심지어 순이는 좀 더 교회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이 다니던 일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잠자리에까지 커지게 되었다. 순이는 ‘하나님과 결혼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철이와의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순이의 태도와 엉망이 된 가정생활에 진저리가 난 철이는 결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법정 판결은 종교생활에 심취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은 순이가 이혼에 큰 책임이 있다며 이혼 청구소송에서 철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순이는 종교 문제를 제기하는 철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가정 생활 안정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점과 단지 교리의 덕목을 가지고 성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가정파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지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 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여자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앙드레 지드『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과 알리사 커플의 경우는 사랑과 종교의 갈등에 얽매여 두 사람 다 헛물켠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알리사는 마음속으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런 세속적인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반면 제롬은 알리사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종교를 향한 알리사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고 여러 번 설득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알리사와 결혼하는 것. 제롬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신 인생의 첫 관문이 알리사와의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위해서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비좁다. 하지만 제롬은 성경 속에 있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구절을 듣고 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알리사를 사랑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구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알리사를 위해서 3년이나 되는 군 생활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알리사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 알리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둘의 마음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제롬의 마음에는 이미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예전의 알리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와의 잦은 편지 왕래하는 것도 지쳐만 갔다. 아무리 설득해도 알리사는 종교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사랑에 대해 강경한 입장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오히려 설득이라기보다는 종교적 논쟁으로 확대되어 서로 다투기 일쑤이니 결국에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지상의 사랑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만다.  

알리사는 이보다 더 심하다. 제롬과의 만남 자체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며 몸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알리사가 죽기 전에 쓴 일기에서 기독교적인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투병의 삶 역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만족하기에 이른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지드의 해석

『좁은 문』이 출간된 지 101년이 지난 지금도 알리사의 태도에 대해서 엇갈린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의 사랑을 위해서 지상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헛되이 죽어가는 알리사를 통해,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교리의 허무함을 강조한다는 평가와, 반대로 알리사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한 ‘성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제롬의 경험을 실제로 겪어봤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 앙드레 지드의 중립적인 해석이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교리를 강조하는 개신교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알리사의 행동에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드의 중립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해석에 대해서 독자들은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종교적 교리에 따르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허구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한 알리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는 종교의 추구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의 양식

유년 시절의 지드는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그 시절에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과 자신에게 강요하는 종교적 분위기는 지드를 심신 적으로 병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처럼 그도 외사촌 누이 마들렌을 사랑하게 된다. 마들렌 역시 알리사처럼 지드의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방황을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드는『지상의 양식』이라는 한 편의 산문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들렌과의 결혼한 지 2년 뒤인 1897년에 정식 출간하게 된다.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그가 1947년에 노벨 문학상 받은 이후, 그의 처녀작은 뒤늦게 서야 문학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지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1927년판 서문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간략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이것이 바로 그대가『지상의 

  양식』의 머리말과 마지막 문장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1927년판에 붙이는 서문,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14 - 

 

그리고 1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자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을 찾게  

 될 때까지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신은  

 도처에, 아무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분,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무턱대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20~21 - 

 

 

만약에 제롬이 알리사에게 이런 문장을 편지로 썼다면 알리사의 태도에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 이 문장을 읽었다고 해서 알리사의 마음 깊이 박힌 신의 사랑을 한순간에 바뀔리는 없지만, 제롬을 향한 지상의 사랑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신의 사랑으로 포장하여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알리사에게는 이에 대해 스스로 재고해봤을 것이다.  

 

『좁은 문』은『지상의 양식』이 발표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 이 때는 마들렌과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자신의 처녀작에는 지나친 신앙을 경계하는 생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발표한 소설에 등장하는 알리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의 아이러니한 종교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제롬과 알리사.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에 다투던 그들의 사랑싸움은 결국에는 종교적 차이에 의한 대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알리사의 지나친 종교적 금욕주의로 말미암아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반면, 제롬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부정하면서도 알리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좁은 문을 목사의 설교만으로 단정적으로 짓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알리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가 죽은 뒤에도 알리사를 향한 희망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좁은 문을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들어갈 수 없는 그 좁은 문을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찾고자 했던 ‘사랑’은 결국에는 ‘공감’이었다. 사랑과 공감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드는『지상의 양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꼈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공감일 뿐이며 순간적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랑을 추구한 제롬과 알리사가 빠른 시일 내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의 지향점에 대란 공감만 있었던 것뿐이다. 알리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유화적으로 다가온 제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알리사보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알리사처럼 종교적 영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알리사는 제롬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더욱 더 공감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었으며 이들의 결혼 성립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생 텍쥐페리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제롬과 알리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처럼 종교라는 하나의 관점을 마주 보다가 마지막에는 파멸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종교 이외에도 경제적 요건, 성격 차이 등으로 마주 보다가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도 오게 된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고정된 채 마주 볼 수는 없다. 가끔 위나 아래, 옆이든 주위의 시선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말처럼 사랑이 오래 가기 위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연애 미경험자로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관점을 수용하고 조화시키려고 각자가 노력한다면 마주 보던 관점들이 점점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면서 사랑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혹시 자신과 배우자의 관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공감이면서도 억지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지,『좁은 문』을 읽은 연인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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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멋진 말을 생 텍쥐베리가 했단 말이죠?^^
저도 고전을 좀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앙드레지드는 중학교 때 필독서로 읽고 독후감 써서 무슨 상까지 받았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님의 리뷰를 읽으니,기억이 너무 새로워 안 읽은 책 같아요~

cyrus 2010-10-17 14:01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살면서 처음 읽은거랍니다. 진짜에요ㅎㅎ
이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읽은 고전이나 문학작품들도
올해 들어 처음 읽은거랍니다.
예전에는 고전에 관심도 없었는데,,,
올해 군 전역 이후에 고전과 문학에 대해서 슬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읽게 되는거 같습니다.

2010-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 37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을 위한 소네트     

내가 태어난 이래로 아홉 번이나 태양이 자전에 의해 거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을 때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바로 그녀가 말이다. (중략)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박우수 역, 민음사, p 19~20 - 
 

이제 막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던 9살짜리 소년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어여쁜 소녀를 본 순간 느꼈던 감정의 엑스터시(Ecstasy)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9년 후, 어엿한 청년이 된 소년은 길을 가다가 사랑의 신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축복을 내리는 여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청년에게는 사랑의 신과의 재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사랑의 신이 먼저 따뜻한 미소가 머금은 인사를 건네자 청년은 9년 전에 느꼈던 황홀했던 감정을 또렷이 떠올렸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청년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베아트리체라는 숭고한 여성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수줍은 성격의 청년은 베아트리체에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꿀벌들이 모여들듯이 그녀 주위에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기에 너무나 벅찼던 것일까?  청년은 마음 속 감정들을 마구 토해내듯이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로 표현하였다.  

축복의 재회 이후 7년 뒤, 베아트리체는 예고 한 마디 없이 신들이 살고 있는 천상계로 떠나고 말았다. 9살 때의 첫 만남부터 16년 동안 사랑의 신 앞에서 고백 한 마디도 못 해본 체 소네트를 쓰면서 사랑앓이를 해야 했던 청년은 망연자실하였다. 메마른 청년의 영혼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사랑의 신이 떠나다니. 베아트리체가 죽은 이후에도 청년은 자신의 심장 밖으로 그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틴 어 고전들을 읽어도,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서도 청년은 베아트리체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 속에 살고 있는 환상의 여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소네트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청년은 지금까지 써온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들을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완성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훗날 『신곡』이라는 르네상스 문화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를 완성시킨 단테 알리기에리의 처녀작으로 남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인『남방 우편기』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어느 비행사의 삶과 애상(哀傷)의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남방 우편기』의 주인공인 비행사 자크 베르니스는 9살의 단테처럼 어린 나이에 평생 연정을 품게 될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보자마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 당시 자크의 나이는 13살이었고, 주느비에브는 이보다 두 살 위인 15살이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만남을 13살의 자크도 9살의 단테 못지 않게 순간의 감정을 생명의 약동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도 역사 단테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신적 존재로 부여하고 있다.    

당신은 요정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난다. (중략) 여전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조종 소리 
 를 덮으면서 부엉이들이 사랑을 찾아 서로서로를 불렀다. 떠돌이 개들은 동그랗게 모여 달을  
 향해 짖어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갈대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났다. 계속해서 달이 떠오르 
 고 있었다. 그러면 그대는 우리의 손을 잡고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했다. 우리를 안심시키는  
 좋은 소리는 바로 대지의 소리니까 말이다.》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160~161 - 

베아트리체와 주느비에브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두 남자들은 그녀들을 사랑의 신과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아트리체가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라면 주느비에브는 요정이 아니라 모든 자연물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연상된다. 자크는 단테보다 한 술 더 떠서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사랑의 기운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식물들을 열거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테의 표현과 비교하면 자크의 표현에는 사랑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테의 멋들어진 표현은 상투적으로 느끼게 된다.

   
  

 

 

 슬픈 베아트리체, 주느비에브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고백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16년간의 짝사랑은 슬프게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으며 오래 가지도 못했다.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서 죽었다는 죄책감은 마음이 연약한 주느비에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주느비에브 자신도 물론 자크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는 자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활짝 피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크가 자신을 냉담하게 외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망상에도 시달리게 된다.

 

주느비에브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사그라지고 있었던 사랑의 불씨를 다시 한 번 지피기 위해서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다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느비에브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고, 육체마저도 쇠약하게 된다. 결국, 슬픈 베아트리체는 자크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께요.....  

 

자크는 자신의 애마인 우편기를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주느비에브를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공중 위로 날려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비행기 아래에 보이는 광활한 자연의 대지 앞에서 잊어야 할 감정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만다. 대지 위의 자연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의 요정인 주느비에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에도 우편물을 목적지에 전달하기 위해서 홀로 비행해야만 하는 자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들 사이에서의 비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기 주위에 있는 하늘과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을 죽은 주느비에브의 분신의 일부처럼 여기기도 한다. 특히 그에게는 달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훤히 비쳐주는 주느비에브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보군.’  

   손을 뻗자 세찬 빗방울이 느껴졌다. 
   ‘이십 분 후면 다시 해안으로 돌아갈 거야. 거기는 평지니까 덜 위험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지는 거지!  구름 걷힌 하늘에 별들이 물로 씻긴 듯 말갛게  

   반짝였다. 달은.....  아, 달은 모든 전등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전등이다!  

   아가디르 착륙장이 전기 광고판처럼 세 번 반짝였다.
    “저런 불빛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내겐 달이 있는 걸.....!”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235 -

주느비에브가 죽고 나서도 위험한 야간 비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주느비에브에 대한 그리운 기억과 오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잠시나마 자연의 광경을 통해서 스스로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자연물로 상징되는 주느비에브를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위험한 비행을 자처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를 먼저 떠나보내 생기게 된 공허감과 그리움을 잊기 위해서 틈만 나면 소네트를 썼던 청년 단테처럼 말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내게 불어오는 바람아 / 너는 내 얘기를 어서 그녀에게 전해주렴
    내 몸을 적시는 빗방울아 / 너는 그녀 향길 어서 내 몸에서 씻어주렴
    내게 내리쬐는 태양아 / 너는 여길 떠나 어서 그녀에게 비춰주렴
    뭐든지 볼 수 있는 하늘아 / 그녈 볼 수 있게 어서 너의 눈을 빌려주렴.

    - 김진표(Feat. BMK) 「아직 못 다한 이야기」중 일부 -   

 

 

생텍쥐페리의『남방 우편기』중 자크의 비행 장면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하늘, 태양, 바람, 빗방울.....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구름 위의 세상은 비행사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별천지다. 하지만 이 미지의 세계가 주고 있는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을 하면서 하늘과 대지의 아름다움만 느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움을 통해 주느비에브를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하늘의 자연들은 위험 요소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느비에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는 새벽 찬 이슬 맞아가면서 비행한 끝에 결국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하늘의 보물'이며 '베아트리체'인 주느비에브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주느비에브를 만난 곳은 인적이 드문 모래만 가득한 사라하 사막 한가운데에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늘 위에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본 채.....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는『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애틋한 사랑은 700여 년이 지난 옛 이야기로 남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가 남겼던 소네트 속에는 이제 막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있는 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불멸의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크 베르니스의 죽음으로써 『남방 우편기』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위험천만한 일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행복한 휴식을 찾는다

 

  -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서문] 앙드레 지드, p 9 -
 

자크는 주느비에브를 찾기 위해서 위험한 비행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우편 배달 임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일에 열중한 한 남자를 위해 신이 주신 행복한 휴식인 것이다. 그리고 단테가 죽어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처럼 죽어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는 별로 간 자크에게도 이제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그리고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의 조종사는 무사히 천국으로 도착했다고 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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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10-10-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생떽쥐베리...
정성 어린 서평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0-13 22:55   좋아요 0 | URL
정리가 안 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 텍쥐페리의 이 작품뿐만 아니라 같이 수록된
<야간비행>도 이야기가 좋답니다. 이 작품 역시
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든요.

2010-10-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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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429] 그리스인 조르바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몇 점입니까?

어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 사이트를 눈팅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한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결과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란다. 하긴 여자들에게 수다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먹는 즐거움은 남녀노소 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하게 드는 요소인가 보다. 그런데 직업과 나이별대로 행복 지수를 측정하기도 했는데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40대 여성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에 40대 남성들은 행복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40대 남성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유로는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를 꼽았다. 40대 여성의 행복지수가 5점대인 반면에 남성의 행복 지수는 3점대에 불과하다.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대체로 50점을 넘는다. 그리고 이 인터넷 기사에는 기사문을 읽고 있는 네티즌들을 위해서 행복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있다.  

 

(사족: 참고로 나의 행복지수는 4.44점이다. 건 뭐 숫자 자체부터 꺼림칙하다. 비록 평균 행복지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측정된 행복지수를 가지고 내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좀 애매한 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 우리나라 행복지수 측정 결과 관련 기사 및 행복지수 측정 테스트  

(그냥 재미로 한 번 하셔도 좋을 듯)
http://news.joins.com/article/292/4391292.html?ctg=1200&cloc=home|showcase|main

  

 

 

 조르바식 행복론

 

만약에 조르바가 행복 지수를 측정하게 된다면 과연 얼마 정도 나오려는지 궁금하다. 조르바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런 허접한질문들과 숫자 놀이를 가지고 행복을 측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색을 낼 것이다. 만약에 측정을 하게 된다면 평균 행복지수를 거뜬히 넘을 것이다. 기사문을 계속 읽다보면 ‘행복 십계명’이라는 글이 있다. 재미있게도 십계명 속의 일부 내용들이 조르바가 지향 했던 삶의 방식과 비슷하다.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8~39 -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에 정열을 쏟기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얻기 위한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가 말한 ‘자유’의 정의대로 물질주의가 만든 고상한 정열을 버리게 된다면 자본주의적인 삶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있으며, 더불어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중략)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33 -

조르바는 복잡하게 세상을 사는 것을 거부했다. 한 번 생각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본능을 따르는 자유로운 ‘짐승’이 되려 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실천하였고, 자신의 집게손가락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고민 없이 잘라내고 마는 행동파이다. 남이 뭐라고 하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남의 일에도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의 방식이 쾌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불경스럽기도 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지나친 낙천주의에 빠진 인간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걷어낸 진정한 삶의 승리자였다.   

 

 

  

 모든 대한민국 40대 아버지, 아저씨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조르바는 60대의 노인이지만 세상 앞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혈기왕성한 젊음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젊었을 때의 호기는 사라지게 되고 일상적인 세태에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그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조르바는 자신에게 다가올 정신적 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인생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스스로 대처하고 있었다. 조르바는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가 가족과의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잖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무엇이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 돼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22 -

조르바가 원하지 않는 삶이 지금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의 모습을 보는 거 같다. 이 소설이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웠던가 보다. 특히 대한민국 40대 남성을 대변하는 아버지들은 오늘도 가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의 짐을 짊어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열심히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급여는 부족하기만 하고, 집에 있는 마누라는 돈 많이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를 긁어대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 사달라고 조르기만 한다. 그렇다보니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조르바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비결이 옳다고는 볼 수가 없다. 조르바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삶의 방식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불만, 근심,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사고에 지배당하면 정작 우리 눈 앞에 가까이 있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남성들의 성격상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나약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 줄까봐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이 스스로 찾아올까?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고민을 가족들과 함께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하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고민을 공감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야 말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최선의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혼과 자유를 예찬하는 이 책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특히 인생의 참 맛을 느끼고 있을 대한민국 40대 아저씨들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단, 앞에서 언급했던 자유를 찾기 위한 가정생활에서의 도피나 조르바마초 기질은 소설 속 내용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넘어가시길. 괜히 실천에 옮겼다가는 가정 파탄(?)이 생길 우려가 있다.

조르바의 삶의 방식은 자유과 행복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그의 삶을 찬양만할 뿐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제시할 뿐이지 무조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생의 자습서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숙제로 낸 수학 문제들을 풀기 싫어서 참고서에 베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행복이라는 답을 찾기 위한 삶의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나가지 않고 타인의 삶이나 책에 의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일생을 번뇌에 시달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자신보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에서 행복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행복은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눈높이에 맞추게 되면 숨어 있었던 행복이라는 존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그리스인 조르바』가 대한민국 40대 모든 분들에게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그만 도움이 되는 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모든 40대 아버지들, 아저씨들이 행복해하는 희망찬 뉴스가 날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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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1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에 얽매어 살아야 하는 남자들에게 책을 통해서나마 거침없는 자유인(사실상 난봉꾼)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보라고 카잔차키스가 선물을 마련했구나 하고 생각해야죠.실제로 조르바 같이 산다면...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을 겁니다.

cyrus 2010-10-12 16:28   좋아요 0 | URL
저도 조르바를 읽으면서 이 사람의 행동과 쿨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간혹 배워서는 안 되는 것(?)도 있더라구요ㅎㅎ^^;;
그래도 이 책을 젊은 시절에 읽었다는 사실에 뿌듯하답니다.
물론 나이가 지나서도 읽어도 되는 고전이지만
대한민국 많은 중년 남성분들이 젊은 시절에 많이 조르바를
많이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리뷰에도 40대 남성 기사 내용과
연관시켰습니다.

2010-10-12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0-10-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마디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영혼을 가진 남자죠. 저도 조르바의 무모함에 기가 질리긴 했지만 그가 삶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막힘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는 점은 카찬차키스처럼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선입견,편견 없이 사물을 대하고 노래하고 행동하는.잊었던 한 남자를 키로스 님 글에서 보고 갑니다.
저는 행복지수 59.3 나오네요...^^ 감사~~

cyrus 2010-10-12 16:3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이런 그리스에 이런 걸출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에 저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카잔차키스가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데,
생전에 받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151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동안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들을 남겼다. 그가 종이에 기록된 내용들은 한 사람이 알기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 동물학, 식물학에서부터 토목공학과 기계 등 그의 관심 영역이 광범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다 빈치 자신의 왼손잡이임을 이용하여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뒤집혀진 문자, 일명 '거울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노트들은 현재 6000여 장, 총 10권이 현존하고 있으며 각각 노트에 붙여진 이름명이 다르다. 다 빈치가 활동하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이들을 묶어 책으로 만든 필사본을 코덱스(Codex)라고 불렀는데 다 빈치가 남긴 코덱스들은 전 세계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1995년, MS 회장 빌 게이츠‘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 원본을 3500만 달러(한화 약 350억 원)에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하기도 하였다. 빌 게이츠 본인 스스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가 남긴 노트의 보존 가치가 높다. 
 

빌 게이츠가 사들인 코덱스 레스터에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 잠수함, 낙하산 등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시대로서는 앞서가는 훌륭한 아이디어들이다. 하지만 다 빈치는 무수히 쏟아낸 아이디어들을 종이에만 기록할 뿐, 직접 설계를 하지 않았다. 왜 설계 하지 않은 것일까? 그 당시로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기계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시대가 15세기이다보니 다 빈치 본인이 직접 만들기에는 약간은 실현이 불가능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다 빈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다 빈치는 노트에 그렸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그의 제자가 시범으로 비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날지 못해 땅으로 추락하여 비행을 시도한 제자는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만약에 다 빈치의 비행기가 성공했더라면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500여 년 정도 앞선 최초의 비행자로 기록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다 빈치는 자신이 만든 발명품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히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 다 빈치에게 무한 총애를 주고 있던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 공은 다 빈치의 발명 노트를 보고 크게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이 발명품으로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데 이용할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다 빈치의 발명품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명 노트 하나 가지고 다 빈치와 스포르차 공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다 빈치는 스포르차 공의 계획이 영 탐탁치 않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죄 없는 시민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는 것이 뻔하였으며 그는 이런 무서운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다 빈치의 노트의 발명품들은 지금까지도 코덱스 레스터 안에서 남게 되었다. 다 빈치가 실제로 발명품을 만들었다면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평가를 받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 구조도 달라졌을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s 코덱스 퍼블릭(Codex Public)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후 500여 년 뒤. 일본의 어느 여성 에세이스트가 다 빈치의 코덱스와 비슷한 형식의 노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발명마니아』이다.  

 

제출 마감이 임박한 상황 속에서 칼럼을 쓰고 있을 때,   

 

집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자신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밥 달라고 보챌 때도, 

 

몸 속에 점점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자신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고 있을 때에도

 

마리 여사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다 빈치처럼 거창한 발명품도 아니며 마리 여사의 수많은 아이디어 일부에는 도저히 현실 불가능하면서도 황당한 것들도 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게 되면 예전 어렸을 때 에디슨처럼 발명왕이 꿈꾸면서 생각나는 대로 그린 그림이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빈치처럼 자신이 기록한 발명품들을 실제로 만들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코덱스는 다 빈치의 코덱스보다 퍼블릭(Public)하다.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자신만의 생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본 고민과 문제들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만든 것이다. 읽다 보면 '아! 나도 살면서 이런 불편을 겪었는데.....' 라고 공감을 일으킨다.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울트라 초 변신 만능(?) 자동차,  더운 날, 길거리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에어컨, 코골이를 막는 방법, 남성들 소변기에서 오줌 눌 때 안 튀는 방법, 누워서 책 읽는 방법 등등.....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다 빈치의 코덱스가 암호 같은 거울 문자로 이루어져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지만, 마리 여사의 코덱스 퍼블릭에는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에 대해서 일말의 자랑과 과시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세부적인 도안을 곁들인 발명품 그림들을 손수 그렸는데 항상 그림 서명에는 본명이 아닌 '아라이 야요' 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마리 여사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으면서도 또 다른 인물을 탄생시킴으로써 숨어 있던 제2의 능력에 대해 겸손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녀 특유의 문체로 아이디어의 탄생 과정을 위트 있게 설명하고 있어고, 그림에서도 그녀의 유머가 묻어나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다. 

 

  

 

 자연주의자 마리 여사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인간에게 유익한 발명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핏줄이나 다름없는 자식이며서도 분신인 반려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방법, 집 안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모든 반려동물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제안하기도 하며 그의 그림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 사랑을 넘어서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독자들을 일깨워주는 글들도 있으며 대부분 그의 발명품들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큰곰자리를 향해 죽은 노라(犬)의 이름을 붙여 '노라자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마리 여사가 염려했던 천국과 지옥에서의 인구 과밀 현상만 안 일어난다면 지금쯤 천국에서 노라와 함께 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발명여왕 최후의 발명, 『발명마니아』 

 
이 책의 제일 마지막 글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밝히는 최후의 발명을 언급하는 일화가 있다.  

(꼭 읽어보시길.....)

어쩌면 마리 여사의 최후의 발명을 꼽으라면 바로 이 책, 『발명마니아』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녀가 죽고 난 뒤인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된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2006년에 난소암으로 사랑하는 노라가 있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제목만 보고 발명에 대한 과학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읽어보면 엉뚱하기만한 발명품에 대한 글만 늘어놓고 있으니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최후의 발명품인『발명마니아』는 독자들에게 휴머니즘적 유머를 제공하고 있다.  

  

마리 여사의 글을 사랑하는 마니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따분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   

불치병에 맞서서 투병 중인 독자들,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글을 원하는 독자들 그리고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우울한 사람에서부터 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자신이 웃고 있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222 

 

마리 여사의 글을 처음 접했던 책이 <대단한 책>이라는 서평 모음집이었다. 마리 여사를 처음 만난 책치고는 그 책에는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여사를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어두운 면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간혹 암 투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넣은 마리 여사의 밝고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 동물들에게 유쾌상쾌한 웃음을 전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잠시나마 투병의 고통을 잊게 해준 웃음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 발명품을 만들어 낸 토머스 에디슨에게 '발명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주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지구의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와 유쾌한 유머가 버무린 아이디어들을 남긴 요네하라 마리 여사에게 이제부터 단순히 발명만 즐길 줄 아는 발명마니아가 아닌 지구상 유일의 '발명 여왕'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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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0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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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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