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1001-786] 향수
『향수』에 대한 기억 속의 향수(鄕愁)
오랜만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걸로 포함하면 총 네 번째이다. 최근에 읽었던 때가 군 복무 시절이다. 군 생활 다 꿰뚫고 있다는 신의 계급(?) 병장 때는 말년 휴가를 가기 전까지 주말을 포함한 하루하루가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낙은 부대에 마련한 작은 독서실에서 책 읽는 것이었다. 그 곳 책꽂이 에서 하얀 책표지가 없는 구판으로 출간된『향수』가 눈에 띄었다. 집에도 구판으로 나온 책이 있었고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책을 보게 되니깐 책 제목처럼 갑자기 집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은 향수(鄕愁)가 느껴지고 그 밖에 옛날 이 책과 관련된 사춘기 시절의 조그마한 추억들도 떠올랐다.
이 책을 처음 구입하고 읽었던 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때 샀던 구판의 겉표지는 지금과 다르다. 구판은 흰색 바탕에 아르누보 형식의 무늬가 있다. 지금의 개정판은 그르누이에게 체취를 빼앗긴 채 희생당한 여인 중의 한 명인지 아니면 향수에 취해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문학적 위상이 높아진 지금은 ‘열린책들 문학전집’ 시리즈 중의 하나로 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책 제목의 부제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주위에 친구들은 이 책을 추리소설로 오해를 하기도 했으며 몇 몇은 왜 이런 암울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오해가 다 책 표지에 ‘살인자’라는 제목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때 교실은 남녀공학이었고 짝꿍은 여자였다. 짝꿍은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잘하고 나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읽은『향수』를 그 친구가 읽을 수 있게 빌려준 기억이 있다. 그 친구에게 짝사랑한 감정은 없었지만 이성이 내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가 내 인생으로서는 처음이었기에 특별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그 애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향수』의 딱딱한 전개와 문장은 여자들이 끝까지 읽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조그만 참고 읽었더라면 이 책의 뛰어난 작품성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더 씁쓸했던 것은 그 아이가 성적 관리를 위해서 공부에 집중하다보니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입시 위주의 학교 공부에 매달려야만 하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중학생 시절의『향수』와의 첫 만남은 충격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무고한 25명의 소녀들을 살해하는 과정은 냄새에 집착하는 그르누이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고, 사형을 받기 전에 완성된 향수를 바르고 사형장에 등장하자 그 곳에 모인 시민들이 집단 성관계를 맺는 장면은 세상을 무아지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르누이 향수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결말에도 향수의 위력은 그르누이의 잔혹한 죽음으로 몰고 간다. 향기에 취한 부랑자들이 한 순간에 식인종으로 돌변하여 그르누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장면은 여태까지 읽었던 문학 작품들의 주인공의 최후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특성 없는 남자
비록 첫 만남은 소설 속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에 치중하였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이제는 그런 설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그르누이가 왜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그 끔찍했던 행동들은 잃어버리고 있었던 인간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옛날에 TV 프로그램에서 아기들은 엄마의 모유를 정확히 알아맞힌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기들의 감각 능력은 성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데 특히 후각이 발달하여 엄마의 모유 냄새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르누이는 일반적인 아기들보다 더 우월한 후각 능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아기였을 때부터 냄새를 맡기 위해서 유난히 조그마한 코를 벌름거리는 것이 그 전에 그르누이를 사랑스러워 했던 테리에 신부가 한 순간에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가슴을 품어보지도 못했고 모유도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그를 썩어가는 생선 조각 더미에 버리고 도망간다. 자궁 속에 갇혔던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품 안에 안기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애 처음 느껴보는 동시에 그 아기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그런 고귀하고 행복한 특권을 누리기 못했다. 자신의 체취를 가지지 않은 그르누이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 받지 못하는 그냥 살아 숨만 쉬는 특성 없는 인간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탐욕스럽게 유모의 젖을 빨고 심하게 코를 벌름거렸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르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는 순간이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천사와 같은 아기로 보기 보다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악마의 아기로 보았다.
‘인간’이 되지 못한 '향수의 신' 그르누이
그르누이가 추구했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향수는 자신의 잃어버린 체취. 즉,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아의 결정체이다. 결국에는 처형당하기 직전에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바른 채 등장한다. 드디어 자신을 경멸했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끔 매혹시켜버린다.
따뜻한 인간적 영혼도 없이 오로지 반항심과 역겨움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가,
작은 키에 구부정한 모습, 절름발이에 추한 얼굴로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그가, 외모와 마찬가지로 내면 세계 역시 괴물인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성공한 것이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구판, p 358 -
하지만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는 너무나 훌륭했던 나머지,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인간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향수의 신이 되고 말았다. 25명이나 되는 소녀들을 죽이면서까지 향수를 완성했건만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증오하기 보다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향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 변화에 혐오를 느낀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자신만을 위해 만들었던 향수가 25명의 소녀들에게 빼앗아 섞어 만든 조잡한 향수에 불과하다는 것과 이 향수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체취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커다란 절망감을 빠지게 된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중략)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날은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면을
쓰면 얼굴이 없는 것과 같아서 그는 완전히 무취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구판, p 360~361 -
몸에 남은 향수의 향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공기 중에 증발되고 만다. 그가 만든 위대한 향수는 일시적이나마 상실된 자아의 단점을 커버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미봉책이었다. 결국 사형장에서 보여준 그르누이의 모습은 온 몸에 잠시 겉돌고 마는 향수 냄새와 같은 영원히 유지할 수 없는 자아의 가면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아를 완성하지 못한 채 특성 없는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적인 향기를 지닌 사람
그르누이가 살았던 17~18세기 유럽에는 향수를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치장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 향수를 뿌렸다. 당시 17~18세기 유럽은 위생 관리가 취약했던지라 아무리 잘 사는 왕이나 귀족일지라도 몸에 악취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결한 냄새를 드러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향수의 성분 특성상 몸에 나오는 악취를 제거할 수가 없다. 악취와 향수의 향기가 결합되어 오히려 더 이상한 냄새만 나올 뿐이다. 지금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혹은 이성을 매혹시켜 사랑을 받기 위해서 향수를 애용한다. 그 중에도 자신의 정확한 체취를 알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남에게 드러내기 싫은 체취를 가리기 위해서 자신이 향기에 취할 정도로 남발한다. 그러다보니 그르누이처럼 자신의 진실한 체취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의 주제와 내용에 관련이 없는 결론이지만 인간적인 향기를 지닌 사람이란 바로 이 시에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따스해져 오는 사람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단순하면서 소박한 사람
- 이정하『향기로운 사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