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들 앞에서 쩔쩔매는 크리스천 대통령 
 

요즘 미국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라 안의 여론 분위기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끄럽기만  

하다. 특히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번 2010년은 자신의 임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지 
도 모른다. 불황에 빠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보지만 번번이 죽을 쑤기 
마련이다. 멕시코 만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안일한 사고 대응 태도 때문에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 
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이슬람 모스크 사원을 9.11 테러 사고 추모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인근에 세우자는 발언 때문에 이번에는 미국 국민들이 발끈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
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생뚱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령의 의중은 9.11 테러에 희생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신자들도 함께 추모하자는 뜻 

서 사원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 간의 불신의 기억을 지우고 평화 

위한 화합을 모색하자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 여론의 뜨거운 감자 

가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서 모스크 사원 

세우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많고 많은 다른 주도 아닌 하필이면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뉴욕 한
복판에, 그리고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한 곳에서 이슬람 사원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참혹한 테러를 일으켰던 주범인 이슬람에 대한 앙금
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스크 사원 건립 발언 이후 미국의 다른 주에 계획되
어 있던 모스크 사원 건립에도 반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예전 여론 조사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슬람 교 신자로 생각
된다는 국민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지도가 이제 곧 다가올 
11월 중간 선거에 변수가 될 우려를 민주당은 눈치를 챘던 것일까?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종교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확실한 크리스천
임을 주장하였다. 
 


※ 기사 인용 출처 및 링크
[모스크 건립 갈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 중앙일보 8월 21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99464   

 

 

 

 ‘종교’라는 이름에 포장된 순교자들 
 

‘순교(殉敎)’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뜻하
며 사상(思想)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반미주의 경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미국 중심부에 있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무너뜨리게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알라 신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신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를 빌딩 건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 그 짧은 시 

간동안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알라 신의 영광과 모든 이슬람 형제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곧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종교적 믿음이 강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다. 눈앞에 곧 일어날 건물과의 충돌에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되자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믿었던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중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
   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140 -

죽음이 코앞에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공포는 단지 테러리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빌딩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죽기 직전
에는 예수께 구원을 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불행한 테러 사고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
해서 천국으로 간 순교자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무너진 빌딩 지역은 테러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숭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킨 죄인이며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세우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모스크 건립이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
이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을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75 -

<순교자> 속에 등장하는 장 대령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공산당에 의해서 
희생당한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려고 한다. 작품 속 배경이 6.25 전쟁임을 감안하
면 장 대령의 순교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남한 내의 반공 헤게모니를 위한 초석인 것이다. 죽은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그들을 희생하게 한 공산당을 반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동시에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이라는 반공 사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과 우월성을 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란을 내세우는 자들은 테러리스트 

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테러의 희생자들은 알라 신이 내려주신 벌의 댓가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성경을 내세우는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반 기독교적인 범죄 집단이라 

고 비난하는 있으며 오히려 희생자들을 주님의 은덕 아래 천국에 간 순교자라고 말한다. 서로 엇 

리는 두 종교 간의 주장은 웃지 못할 난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종교 앞에 선 인간의 고통   

 

장 대령의 반공 프로파간다는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 

의 속내는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쇼비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반 이슬람주의 사상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을 평화를 음해 

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 

독교 사상를 전파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 종교를 위해서  

쩔 수 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테러리스트들을 위대한 알라 신의 영광으로 기록될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순교자>의 번역가인 도정일 경희대학교 문학교수는 작품의 핵심을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의 

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한 층 더 심화시켜면 종교 앞에서는 
인간이 당하고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과 공포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대위가 신을
믿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신의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양대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죽은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죽은 자들의 

고통만 외면하고 있는가? 심지어 어느 사이비 종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외면하고 있다.  

신자가 온 몸이 아플 정도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보호 아래  

을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일체 거부하고 무조건 신의 신성한 능력 

으로만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말이다.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고뇌에는 인간의 고통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들을 고백하여 해결하려 한다. 결국 고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내적 생활이 종교임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종교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눈 감고 외면하
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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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나서 - 한국인의 삶과 죽음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1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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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강좌는 없다

노인들이 뿔났다. 화난 이유는 국립중앙박물관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관련 시민강좌의 수강자격 

을 63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노인들은 박물관회의 제한 규정은 ‘노인차 

별’이라고 반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였다. 박물관회 측은 노인 수강자 

 격 제한은 노인들의 건강상 문제를 고려해서 30년 전부터 있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60대 이상, 이하로 나누어 운영한다거나 70대 미만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관련기사를 쭉 읽고나니 박물관회 측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인을 위한 강좌가 마련되었다면 63세 이상  

노인들은 노인 대상으로 한 강좌에 수강하면 되었을 것이고 굳이 노인차별을 언급하면서까지  

화를  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회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회 홈페이지 

를 확인하였다. 노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그 문제의 강좌는 ‘특설강좌’이다. 특설강좌 모집대상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63세 미만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좌 모집 안내에 분명히 노인 제한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국립중앙 

박물관에 찾아가서 현장 접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이  

제한을 언급하면서 강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63세 이상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특설강좌 이외에 다른 강좌들의 모집 요강에도 나이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박물관회 측에 서 있다고 말한 순수 노인들을 위한 강좌는 단 한 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강신청을 원하는 노인들이 홈페이지 속 모집 안내를 믿고 신청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늙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노인 차별에다가 강좌 모집 안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박물관회의 처사에 노인들이 뿔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회의 노인에 대한 인식 

옛날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에 의해서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였다.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 

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덕목이 있는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 공경이었다. 지금까지도 유교적 사상이 짙은 노인 공경에 대한 전통이 이어져 오 

고 있다. 항상 식사할 때는 나이가 높은 윗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밥상머리 교육과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버스의 경로석이 있다. 이렇듯,  

리 생활 곳곳에 노인 공경과 관련된 사회적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예법과 예의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에서도 노인 차별이 있었던 듯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노인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옛날 양대녕이 약관일 때 주한과 주앙 두 사람과 함께 한림원에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매사를 논할 때마다 양대녕은 그들을 업신여겨서 “두
  노인
은 어떻게 생각합니까.”하면 주한은 매우 불쾌하여 “그대는 늙은이를 그리 깔보지 

  마소. 필경은 이 백발을 남겨서 그대에게 선사할 것이네.”했다. 이에 주앙은 “백발을
  남겨서 그에게 주지 마오. 다른 사람이 또 그를 깔보는 것을 못하게 해야죠”했다. 그  

  뒤 양대녕은 과연 나이 오십도 못 살았다. 

  - 박지원『열하일기』구태이문 편, 송기호『이 땅에 태어나서』‘태어나서 살고지고 1’  

     p 135 재인용 -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났고 오래 살았기에 젊은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의 진리 

가 축적,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은 성숙되더라도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이전과 다른 신체적 

변화를 갖게 된다. 젊었을 때 혈기왕성했던 힘은 노인이 되면서 무거운 것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 

리고, 탱탱했던 피부에는 주름이 생겨온다.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 돋보기안경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농사일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노인들이 삶의 스승으로서 대우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 

는 약자였다.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하는 정년제처럼 조선 시대 관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문종 시대에는 70세가 되면 스스로 벼슬자리에 물러나 

야 하는 치사(致仕)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자리에 물러나게 되면 해당 고을에서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왔다고 한다. 퇴직 이후에 받게 되는 오늘날의 퇴직연금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일 

을 계속 하고 싶어도 정년제에 따라 스스로 퇴직하는 것이 상례인 반면에 조선의 치사제도는 지금 

 정년제와 비교하면 효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른다. 70세가 넘어서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 퇴관  

하지 못한 자에게는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70세의 사대부의 입장에 

 은퇴는 활동력이 상실된 노인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이며 오랜 세월 어렵게 키 

워 온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령이지만 건강에만 이상이 없다면 사대부들에 

게는 지금까지 올라온 높은 벼슬자리를 스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노인을 공경해야한다는 유교적 이념이 내세운 사회를 지향하는 조선 사회에서도 은근히 노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인’이 되고 싶어 했다. 즉, 늙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평균 인구 수명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의학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은 간단히 치료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병에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국에 전염병이 휩쓸었다하면 엄청난 인명 피 

해를 입었다. 그리고 사회적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먹는 것도 부실하다보니 굶어 죽는 사람 

도 많았다. 다양한 문제로 인해서『열하일기』속 양대녕처럼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오죽했으면  

태종도 50대에 이른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했으며 10년 뒤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태종은 자신의 예언대로 하지 못했다. 60세를 넘기지도 못한 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50세가 되어도 특별한 잔치는 하지 않는다. 60세가 되어서야 환갑잔치를  

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50세가 되면 잔치를 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영조는 오순 어연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평균 인구 수명이 50세임을 감안하면 50세가 된  

영조는 어느 정도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순잔치는 영조가 단순히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조가 장수하여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도  

겨져 있다. 그런 화려한 잔치를 열어서인지 영조는 82세의 나이로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유령 노인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수하는 사람들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조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조선 인구의 수명을 조사하여 장수한 사람이 있으면 포상으로 많은 곡식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8월에는 전국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대하여 양로연(養老宴)이 치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는 포상과 국가적인 연회에 눈이 멀어 나이를 속여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 이웃나라 일본이 장수 인구 통계 결과가 허위라는 것이 밝혀져서 장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일본 최고령자로 알려진 111세의 노인이 실제로 30여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 

졌으며 100세 이상 고령자 노인 가운데 25명은 소재 불명자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고령 인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의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지만  

‘장수’에 대한 열망이 낳은 인간의 욕심도 배제할 수 없다. 사망한 111세 노인의 가족은 생전에  

노인이 받았던 연금을 받기 위해서 30여 년 동안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며 인구 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면 노인이 살아있다고 허위 신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에는 호적상 

에서는 존재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된 노인들을 이른바 ‘유령 노인’이라고  

한다. 조선과 일본의 이런 모습은 불행하게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장수를 향한 열망과 돈에 집착 

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특수적 사회 문제이다.  

 

 

 장수국가가 된다고 해서 좋기만 할까?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T.S. 엘리엇 <황무지> 황동규 역, 민음사, p 44 -  

 

시의 구절에 등장하는 무녀는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손안에 든 먼지만큼의 많은 햇수의 수명을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그는 아폴로로부터 어마어마한 수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녀는 늙어만가고 거의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메마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수명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녀는 죽음보다 

도 못한 죽은 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우리 인간도 무녀와 같이 장수의 꿈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바라기만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 내 계층 분포의 격차가 심해질  

뿐이고 사회적 자본도 노년층 복지에 편향될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도한 집중 투자로  

인해서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의 표상(表象) 

으로 결부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학 기술도 발달된 만큼 인간의  수명도  

연장된다. 이제는 노년층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만큼 오래 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일본과 같은 경우처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부모가  자신이 받은  

연금으로 자식을 부양하고 먹여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소식이 남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먼 훗날, 초고령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의 진입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 기사 출처 및 링크, 관련 홈페이지   

  

[박물관 시민강좌, 노인은 오지 말라?] 한국일보 8월 10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8/h2010081002304721950.htm  

 

국립중앙박물관회 
http://www.mu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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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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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5]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계속 되는 일본 극우파의 망언 
  

오늘은 65주년을 맞은 광복절이다. 며칠 전에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 과거사를 사죄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여 이번 광복절은 우리에게는 의미가 깊다. 한일 과거사의 민감한 화두인 한일 

합방 조약의 무효와 종군위안부에 대한 문제를 담화 내용에 반영하지 않았지만 어두웠던 한일  

과거사의 터널을 벗어나 양 나라의 동반자 관계를 새로이 구축하는 긍정적인 첫걸음이었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듯이 한일 과거사는 한 번에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사를 

 직시하려는 일본 정부의 실천 노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 담화문을 통해서 한일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앞으로 한일 과거사 해결에 진전이 보일 것으로 예상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부 일본 극우파들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빗댄 어록이
있을 정도로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로 유명한 구로다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이 이번에도 

우리나라 광복절에 맞춰 망언 한 마디 남겨주셨다. 우리나라의 광복은 자주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일본의 세계대전의 패망 따른 역사적 결과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예전에 어느 일본의 보수 

정치인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철도와 공장을 세워 한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 

해줬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극우파들의 망언들은 하나같이 과거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필연적인 

역사라고 정당화 하고 있다.  

  

  

 팡글로스 박사의 망언  

 

볼테르의 철학소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소설 제목의 동명의 주인공의 모험을 통해서  

모든 세상은 최선의 세계이며 필연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스 박사는 라이프니츠를 대변하는 인물 

이다. 그의 대화에는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올 정도로 열렬한  

낙관주의자이다. 그의 제자인 캉디드는 이름 글자 그대로 팡글로스 교수의 주장을 믿으며 현재의 

상태는 가장 옳다고 믿게 된다. (그의 이름 Candide는 프랑스 어로 ‘순박하다’라는 뜻이다)  

우리의 순진한 사내 캉디드는 사촌 퀴네콩드를 사랑지만 숙부에 의해서 쫓겨나고 만다.  

그때부터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가는 곳마다 전쟁, 지진, 종교재판, 고문을 겪는다.  

캉디드가 불행에 처한 상황에 몰릴 때마다 팡글로스 박사는 눈치 없이 깨방정을 떨면서 낙관주의 

적인 말을 하고 다닌다. 화산이 일으키고 지나간 포르투갈 리스본의 참혹한 현장에 대해서 팡글 

로스 박사는 망언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리스본에 있는 화산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물은 현재 있는 곳 이외의 곳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 볼테르『캉디드 혹은 낙관주의』p 33 -   

한술 더 떠 세상에서 일어나고 일들은 다 필연적인 현상이며 리스본에 있어난 화산과 지진도  

당연히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의 말은 정말 박사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논리적이지 않는 말이다. 팡글로스 박사의 말에는 리스본에만  

화산이 발생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리스본에만 화산이 일으킨다는 보장은 없다. 화산과 
지진과 같은 자연 재난은 리스본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 팡글로스 박사는 화산은 리스본에만 발생했을뿐, 다른 곳에는 화산이 일으지 

않는다는 식으로 논리적인 추론을 거부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나태한 귀납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팡글로스 박사처럼 지금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키고  

상대방의 생각을 무시하다보니 논리적 오류에 빠진 말을 하기도 한다. 만약에 21세기에 팡글로스 

박사가 살아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국가적인 재난 사고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네티즌들의 뭇매질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8.15와 일본의 8.15의 사정  

소설 속 팡글로스 박사의 모습은 남의 입장을 살펴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일본  

극우주의자를 떠오르게 한다. 팡글로스 박사가 생각하는 ‘최선의 세계관’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우리나라가 일본에 지배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정당화시키는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일본의 

지배가 한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식이었으며 한국의 독립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팡글로스 박사가 귀납적 추론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망언에도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광복절은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 자주 독립국으로 전환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의 8월 15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공식 선언한 날이다. 

인류의 대재앙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A급 전범들은 그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신’이다. 그래서 2006년에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우리나라 광복절에  

강행한 것은 상대국인 우리나라의 입장을 고려 하지 않은 잘못된 역사적 낙관주의가 만든  

그릇된 행동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알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수많은 고난의 여정 끝에 캉디드는 퀴네콩드와 팡글로스 박사와 재회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농장 

을 꾸려 산다는 내용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캉디드는 불행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여정을  

계기로 세상은 꼭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팡글로스 박사는 여전히 낙관주의 

를 고집하고 있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그는 캉디드에게 이전에 경험했던 불행한 일들이 아니 

었으면 지금의 행복한 시간은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자 캉디드는 스승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 볼테르『캉디드 혹은 낙관주의』p 200 -

캉디드는 온갖 비참한 체험과 사회적 불합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개선에 의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좋든 나쁘든 돌아가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생각 

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른 의지에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는 65주년 광복절뿐만 아니라 한일합방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서 

일본 총리의 과거사 사과 담화문 발표뿐만 아니라 한일 학자들이 한일합방이 무효임을 공동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일본이 이전보다 한일 간의 과거사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수탈한 한국의  

문화재 반환 등 과거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에  

대해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이번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문이 이전처럼 한국의 비위를 맞춰 

주기만 했던 립서비스였는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한일 학자의 한일합방 무효  

공동선언은 단순히 한일합방 100주년을 기념하는데 의의를 두지 말고 이번 선언을 계기로 한일  

학자들 간의 정기적인 연구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말로만 사과 

하는 것을 기다린다고 해서 과거사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의 태도가 긍정적이다고 해서  

과거사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낙관적인 전망은 금물이다. 우리나라의 식민지 시절  

근대사는 어떻게 보면 기억하기 싫은 역사적 상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국사의 한 부분 

이므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두웠던 역사를 배움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며 어긋나 있는 일본 간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협력적으로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역사의 밭이 어딘지 알고  

스스로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며 일본 역시 낡은 역사적 낙관주의를 폐기시키고 한국과 함께  

역사의 밭을 가꾸는데 협력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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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코스모스』의 "밤하늘의 등뼈"(7장)라는 장에는 대중들이 과학을 기피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소개되어 있다. 칼 세이건은 고대사를 통해서 원인을 찾고 있는데  
역사 속의 지배층들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상이 유지되기를 좋아하는 지배층들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을 반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지배층의 과학에 대한 반감은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게 되었다. 대중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과학자 칼 세이건이 역사를 통해서 원인을 규명한 점은 참으로 훌륭하다.  

(『코스모스』에는 저자의 전공인 천문학뿐만 아니라 과학의 역사, 문화,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도 있다) 책 속에 소개되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 역사의 예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칼 세이건이 한국사까지 자료  

조사를 안 했을 뿐이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지배계층과 과학의 불편한 만남에 대한 사례가  

있다.  바로 그 예가 장영실과 소현세자이다.

장영실은 우리나라 최초 물시계인 자격루와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 등을 발명한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비범한 능력은 세종의 호의에  
힘입어서 관노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는 한 순간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세종은 장영실이  
제작한 가마를 타게 되었는데 그만 가마가 부서져버린 것이다. 왕을 신으로 받들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이런 사고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고의 책임으로 가마를 제작한  
장영실에게 향하게 되었는데 그 벌로 곤장형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장영실의 능력을 중히 여겨왔던 세종이 한 순간의 사고를 가지고 
왜 장영실에게 중한 벌을 내리게 하였을까? 가마 파손 사건은 사대부들의 음모라는 추측이 있다. 
그들은 관노 신분의 장영실이 자신들만의 세상에 끼어드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특히 유교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조선 사회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 라는 신분차별적인  
계층 제도였다. ‘공(工)’으로 대표되는 장영실이 사대부 사회에 계속 존재하게 되면 제2의  
장영실이 나올 수가 있다. 그들은 장영실의 존재만으로도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신분 사회  
체제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했다. 정말로 가마 파손 사건이 우발적인 사고였더라도 이를 가만히  
있을 사대부가 아닐 것이다. 장영실을 축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대부들은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장영실을 궁궐에 쫓아내서 좋았겠지만, 장영실뿐만 아니라 조선의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 과학 기술을 스스로 쫓아내버린 셈이었다. 
 

 

 

 

 

 

 

 

 

 
 

 

 

 

 

 

 

장영실이 존재한 지 200여 년이 지난 뒤, 조선은 또 한 번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병자호란의 굴욕으로 인해서 인종의 아들인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생활하게 되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타국에 있는 소현세자는 인질이 되어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않았다. 청나라에서의 생활을 통해 조선이 청나라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 당시 중국에 체류하고 있던 독일의 아담 샬 신부와 친분을 맺게  
되면서 그로부터 서양의 천문학 등 여러 가지 과학 지식들을 전수받았다. 오랜 청나라 생활  
끝에 소현세자는 습득한 서양의 과학 지식과 각종 과학 기술들을 가지고 조선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인조와 사대부들은 서양 문화의 물을 먹은 소현세자를 달갑게 여지기 않았다.  
인조는 청나라에서의 행실을 문제 삼아 세자를 홀대하였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세자가 학질에  
걸려 죽게 되었다. 갑작스런 세자의 죽음, 죽은 소현세자의 몸이 검붉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왕위를 이을 장자가 죽었는데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인조가 세자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떠돌게 되었다. 역사학계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독살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인조실록에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암살로 추정하고 있다. 나라의 발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과학이 발전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왕과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켜려다보니 눈 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만약에 장영실과 소현세자가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조선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과학이 완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2, 제3의 장영실이 탄생한다거나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는 소현세자와 같은 정치인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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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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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의 말 못하는 고민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가 하늘 위로  

솟아올라갈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전남 고흥군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로 

모여들었다.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은 작년에 있었던 1차 발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또 다시 10개월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발전을 위해서하는  

임무이지만 사실은 임무로 의한 그들만의 고충도 있기 마련이다. 기술자들에게는 연구소 안에서 

의 생활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연구소에 갇혀서 하나의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수면 시간은  

부족하고,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지게 된다. 

나호로 2차 발사 하루 전에 개발에 참여한 러시아 기술자가 자해 소동을 일으킨 것도 스트레스로
인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몇 차례의 발사 연기 발표도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2차 발사가  

시작되었다. 이번만은 한국 국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우주로 뻗어나가길 바랬건만, 발사 이후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인 사람들은 이번 발사도 실패를 하지 아쉬움  

속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실패에서 제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 사람은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기술로 구성된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연구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전에 발사 실패를 많이 겪다보니 이번 나로호 발사 2차  

실패 자체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연구 기간은 기술자들에게는
심신을 힘들게 시간이었지만 2차 발사의 성공을 위한 연구 기간치고는 충분치 않은 점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현실에도  

안타까워했다. 3차 발사 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오늘도 나로우주센터의 기술자들은 

나로호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과학의 나락(那落)호가 되어버린 나로호

나로호 개발 기술자들 입장에서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과학에 대한 우리나라 대중들의  

인식과 시선일 것이다. 하필이면 나로호 발사 다음날이 남아공 월드컵 개막이라서 나로호 열기는 

금방 식어버렸다. 그러나 만약 나로호가 2차 발사에 성공하였더라면 나로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이어졌을까? 대중들은 나로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길래 굳이 나로호우주센터로
모이는 걸까? 몇 몇 사람들은 나로호가 단순히 우주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주 연구를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즉,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나로호가 우주 어디에 날아가든 말든 대중들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냄비 근성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차례의 나로호
발사 실패 소식에 대해서 대중들은 기술자들의 실력 부족 탓으로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나로호 하나만을 위해서 고생한 기술자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말이다. 우주 개발 기술자 

들의 실력이 곧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현실이라고 결부하기 쉬운데 꼭 기술자들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자들 위에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의 과학 인식 부족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들에게도 발사 실패에 대한 잘못이 있다. 이번 나로호 개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 육성  

정책은 정부의 집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펼친 산업화 육성 정책은 우리나라 과학 기술 육성에도 기여를 했으나 단기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시키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에 대한 탐구 정신를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과학 발전은 진전되기는커녕 영영 노벨상을 탈만한 과학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기득권자인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는 과학에 무관심한 대중들을 만들게 되었으며  

지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오게 되었다. 나로호의 추락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버린 우리나라 

과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하길 바란다는  

것은 꿈도 야무진 일일 뿐이다.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엘리트 계층의 무지함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칼 세이건이 살아있을 당시 미국은 1977년부터 보이저 계획이라는 거대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이저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며 지금도  

보이저  1호와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우주 개발 사업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게 되면 미국의  

대중들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도 꼭 그렇지만  

않은 거 같다.

『코스모스』에는 칼 세이건이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다. 천문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칼 세이건은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었는데 천문학자를 바꿔달라고 하였다. 취객이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할 천문대에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밤하늘에 알 수 없는 빛이 나는 물체를 봤는데 그것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이 혜성일 것이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혜성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칼 세이건은 혜성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라고 간략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줬다. 이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취객이 다시 하는 말.  


 “거기 진짜 천문학자 좀 바꿔 봐요.”    


진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입장에서는 취객의 말에 참으로 황당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에피소드에 대한 칼 세이건의 결(結)이 의미 심장하다. 

  핼리 혜성이 1986년에 다시 나타난다면 정치인들 중에 크게 겁을 먹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질까 자못 궁금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역, p 180 -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을 때만 해도 자신들이 세계의 지배자라고  

자처한 미국과 유럽과 같은 제국의 사람들은 지구 종말의 초래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칼 세이건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우스꽝스러운 일은 다행히도 디지털 시대에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몇 몇 사람들은 혜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혜성이라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혜성이 얼음 덩어리라는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칼 세이건은  

혜성 에피소드를 통해서 과학을 모르는 대중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 앞에서  

대중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정치인들까지 꼬집고 있다.    

 

 

 엘리트 지배계층과 과학의 불편한 만남   
 

칼 세이건은 사람들이 과학을 기피하고 무지하게 된 원인을 고대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자연계의 질서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탈레스를 비롯한 이오니아 지역의 자연철학자 

들은 우주의 구성요소와 조화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관측과 실험이라고 주장하였다. 세계 최초로 일식(日蝕)과 피라미드의 길이를 측정한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에라토스테네스까지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체계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과학이란 신성한 지식이며 소수 집단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  

자체를 부정했다. 그의 학문은 학파로 발전하게 되면서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고대 그리스 지배 체제에까지 영역 활동을  

넓힘으로써 과학을 소수 기득권자들만의 지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부유한 재산을 가졌으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어쩌면 과학 발전이 한걸음 빨라지지 않을 것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하는 일을 좋아했을 뿐이지 몸으로 하는 일은 싫어했다.  

과학 실험과 측정은 하나의 육체노동으로 생각했으며 결국 그런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라고 알리는 셈이다. 그러니 귀족이 누가 자신보다 낮은 노예의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귀족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지 몰라도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대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과학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상황과  

유사하다. 독자적으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만든 채륜이 등장하였으며 곽수경이라는 사람은  

중국의 천문학 발전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서양의 문물이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과학사에도 잘못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마테오 리치, 아담 샬을 대표로 하는 크리스트 교  

신부와 수도자들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 

하였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양의 학문들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검열하려는 중국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사대부들은 서양의 학문으로 인해서 국가 체제가 전복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그들의 권력은  

청나라가 망할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과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그리고 강대국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과학에 무지한 지배계층들 

때문에 말이다.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과학 기술 관리자 

 

나로호 2차 개발하기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금성을 관측할 수 있는 첫 우주 범선  

‘이카로스’를 하늘에 쏘아 올렸다. 우주 범선은 태양광과 태양풍 등을 이용해 우주를 떠다니는  

미래형 우주선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번 일본의 우주 범선 발사는 세계 최초라는 점과  

일본이 자력으로 개발해 발사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카로스 발사 이전에 일본도 여러 번의 발사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 우주선 발사 실패했을 때 우주선 관련 관리자들은 이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의 의사를 표했으며 원인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은 우주선 발사 실패에 대해서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또 다시 재발사가 되어  

성공하기를 빌었다. 그들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가 있었기에 당연히 이번 우주 범선의 발사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코스모스(Cosmos)'의 뜻은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 즉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대중, 과학 기술자 그리고  

기술 책임을 담당하는 관리자. 이들의 삼각관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은 이웃나라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우주 개발의 성공 사례나 다른 나라의 잔치가  

되어버린 연말 노벨상 시상식을 보면서 시샘한다거나 우리나라 과학 산업이 미흡하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굳이 학창 시절처럼 과학 법칙을  

달달 외울 필요는 없다. 신문이나 TV에 과학 관련 기사나 소식을 통해서 우리나라 과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과학계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현상과 트렌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출간한 과학 관련 도서를 읽는 것도 좋다. 칼 세이건의 책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과학도서가 

많이 출간되어 있다. 과학 기술자들에게는 과학적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성과에 급급하다보면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 기술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있는 관리자들의 임무도 중요하다. 관리자들도 성과에 눈을 멀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의 현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관리자들의 성과주의가 밑에 있는  

기술자들을 부추기게 만든다. 결국에는 ‘개미구멍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지나치게 성과에 매달려 만든 나로호에 조그마한 결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에  

노력해야 한다. 과학 발전은 오랜 시간동안 관련 지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축적되어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과학의 수준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에  

걸맞은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대중, 과학 기술자, 담당 관리자가 코스모스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 결실로 나로호 발사 성공과 ‘과학 강대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코스모스 꽃이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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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 산문집 을 보면, 이 책을 5번이나 읽었다고 하더군요.

장하준도 영문으로 5번 한글로 6번 중딩때 읽었다고.....

저도 이 책 구입은 했는데 앞 부분은 찔금 봤는데 진도를 못 빼고 있어요. 에휴

cyrus 2010-11-06 16:07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명사들이 꼭 읽어봤던
책이었군요. 분량이 두껍고, 예전에 나온 대형판에 선보인
컬러 화보가 아니라서 중간에 지루함도 들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한 챕터씩 읽어서 완독했는데,,
시간 날 때 이렇게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