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에 나오는 호프밀러는 군인이다. 그는 걷지 못하는 에디트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호프밀러는 자신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기분 좋아진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잘 배려해주고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에디트는 호프밀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호프밀러는 에디트의 감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

 

    

 

 몸이 아픈 그녀가, 만신창이인 그녀가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이것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어린 아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힘없는 소녀가(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감히 진정한 여인의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사랑을 갈망한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예상했어도 운명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몸조차 가눌 힘이 없는 소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 단순히 연민 때문에 이곳에 오는 나를 그토록 끔찍하게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이 단순무식하고 멍청한 나라는 놈은 에디트를 그저 고통 받는 환자로, 어린아이로 여겼을 뿐 결코 여자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나는 저 이불 속에 벌거벗은 여인의 육체가, 다른 여인들처럼 숨 쉬고 느끼고 기다리며 사랑을 갈망하는 육체가 숨겨져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몸이 아프거나 불구인 여자, 미성년자나 나이가 많은 여자, 버려지거나 낙인찍힌 여자들도 감히 사랑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272~273)

 

 

호프밀러는 그동안 에디트를 여성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환자(장애인)로 대한 자신의 연민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성한다. 그는 에디트를 위해 그녀와 약혼한다. 하지만 약혼한 지 세 시간 만에 동료 군인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정한다. 군인들은 에디트와 그녀의 가문을 조롱한다. 그들의 역겨운 대화는 호프밀러를 힘들게 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와의 약속을 깨버린 발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약혼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부대 전체에 알려질까 봐 불안해한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 [절판] 조지 L. 모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작년 말에 초조한 마음을 읽다가 호프밀러와 군인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싶어서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를 같이 읽었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서구 사회의 예절 문화와 엄숙한 도덕주의와 관련된 개념인 고결함(respectability)이 민족주의와 함께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18세기에 민족주의가 출현하면서 점잖은 고결함이라는 가치가 확립하게 되었고, 이 개념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이 책의 주요 연구 대상은 독일 남성()이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이름으로 독일인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민족사회주의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국민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가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이명은 나치즘(Nazism)이다.

 

초조한 마음이 발표된 1939년은 나치즘이 득세하던 시기다. 나치즘은 남성의 우정과 유대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고, ‘고결한 명예와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권위를 정당화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출현과 함께 형성된 독일 남성성은 단지 독일 남성을 정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결하지 않은여성과 장애인을 사회의 주변 구성원으로 규정되게 했다.

 

나치즘 시대에 가장 칭송받은 존재는 군인이다. 독일 군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열정을 통제하는 이성을 갖춘 남성성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초조한 마음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러나 소설에 묘사된 독일 군인들은 나치즘 시대에 활동한 독일 군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성 장애인 에디트와 그녀의 가족을 조롱하면서 유대감과 결속력을 다진다.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어서 나치즘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고결한 남성성은 만들어졌다. 민족주의는 남성성을 강화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은 민족주의의 전성기다. 민족주의는 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되면서 피를 부르는 파시즘과 인종주의로 변질한다.

 

호프밀러는 군인이지만, ‘고결한 남성성을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에디트의 약혼 사실을 부정한 호프밀러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자살을 생각했다. 허울뿐인 자신의 고결한 명예말이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여러 번 손상된 에디트의 명예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Trivia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정말 좋은 책이지만, 고쳐야 할 오식과 오류가 몇 개 보인다.

 

 

* 20쪽 역주에 영국의 역사가 해롤드 니콜슨(Harold Nicolson)의 생몰 연도가 ‘1886~?’으로 표기되어 있다. 니콜슨은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 21쪽 역주    

포드 마도스 포드 포드 매덕스 포드(Ford Madox Ford)

 

 

* 68

  윌리엄 2의 궁정에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했던 독일의 오일렌부르크(Philipp Count zu Eulenburg) [생략]

 

독일의 황제 빌헬름 2(Wilhelm II)로 써야 한다. 윌리엄 2(William )는 영국 노르만 왕조의 왕이다.

 

 

* 161

델라크루아 들라크루아(Delacroix)

 

 

* 183

디데로 디드로(Diderot)

 

 

* 191

이반 블로취 이반 블로흐(Iwan Bloch)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03-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엔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눈에 불을 켜고 오탈자를 찾곤 했으나
수년 전부터 관두었습니다. 귀찮아서요...

뭐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응당
출판사가 해야할 일을 굳이 내가...

개인적으로 보면 특히 연도에 참 신
경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20-03-12 2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리뷰에서 오탈자 지적하는 내용 쓸 때가 정말 귀찮아요. 오탈자를 열심히 찾아봤자 출판사의 반응은 없고, 피드백도 느린 편이에요.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심심해 죽겠어요.”

 

아는 동생이 매일 나한테 전화한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서평의 서두에 언급된 그 동생이다.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면서 나와 동생은 3주째 집에서 지내고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동생은 혼자 산다. 동생이 사는 곳은 번화가 근처다. 그러나 지난 달 말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된 이후부터 동생은 외출을 못 하고 집안에만 있다. 이 녀석은 커피를 좋아하고 애연가다. 커피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빼고는 바깥 공기를 오래 마신 적이 없다. 그는 햇볕을 쬐러 밖에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밖에 있어도 허전할 것이다.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분위기라서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나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한숨 푹푹 쉬거나 심심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이제는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녀석의 이름이 뜨면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전화를 자주 하는 그 녀석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혼자서 살고 있는 데다가 3주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 동생이 , 나올래요? 같이 밥 먹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장 만나서 녀석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지만, 내가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이 녀석에게는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그는 분명 친구가 많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대구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동생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매일 외로움에 시달린다.

 

외로움의 철학이라는 책에 보면 혼자 있음(aloneness)외로움의 정의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있음외로움을 별개의 현상으로 본다. ‘혼자 있음은 말 그대로 사람이 혼자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선호하면서도 때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타인과의 연결 욕구, 즉 타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때론 괴롭게 한다. 주변에 친구가 많은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내 동생처럼 부득이하게 외출하지 못해 타인과의 연결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외로움을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또는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생활하는 혼족들이 있다. 혼자 살아온 그 사람들의 생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외로움 참는 일을 힘들어할 것이다. 혼족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혼족들이 외로움을 참으면서 생활하는 것은 사회적 고통에 가깝다. 코로나19 전파력이 장기적으로 높아질수록 혼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통도 더욱 커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고통이라고 해서 이 감정 상태를 마음의 병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따라서 외로움 자체는 병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사실 외로운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면서도 타인과의 애착을 갈망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고통을 줄이려면, 타인을 신뢰하는 법과 타인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인간에게 외로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에는 외부 원인과 내부 원인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의존하는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지만 친밀도가 높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맺어준 인간관계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한 가닥의 실과 같다. 우리는 이런 실들이 무수히 엉켜 있는 것을 인맥이라고 부르며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쓴다. 이럴수록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심의 세상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외부 원인이다. 하지만 저자는 외로움의 원인을 무조건 외부에서만 찾는 관점을 옹호하지 않는다. 내부 원인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를 제일로 아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와 타인에 대한 불신이 너무 강한 사람은 외로움을 잘 느낀다. 그런 사람은 외로움을 일으킨 내부 원인을 파악하여 스스로 고쳐 나가야 한다. 또 자신이 만나는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아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친구가 많아도 매번 외롭다면서 투덜거린다. 외로움이라는 이 부정적 감정도 불편해도 결국 내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감정에 책임 있는 우리는 외로움을 덜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또 외로움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가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나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토지라면, 적당한 외로움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비료다. 외로움의 철학은 건강한 고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런 고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예찬하지 않는다. 타인과 만나는 외향적 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Trivia

 

 

* 10

사회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유대가 없는 사회적 공간에 서식하기를 심히 외로워한다.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일찍이 1930년대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면서 같은 지적을 했다.

 

‘1830년대로 고쳐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Tocqueville)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18315월에서 18322월까지 아홉 달 동안 미국을 여행했고, 프랑스로 돌아와서 미국 사회의 모든 면을 분석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표했다.

 

 

 

* 14

이런 유의 외로움을 영화에서 찾아보자면, 마틴 스코세이스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이 떠오른다.

 

오식인가, 아니면 번역자가 나름 생각이 있어서 저렇게 표기한 것인가? 예전에는 마틴 스콜세지로 표기했는데, 요즘은 마틴 스코세이지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 164

  크리스티안 가르베는 두 권짜리 저작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1979~1800)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하려 했지만 실상은 사회의 중요성에 좀 더 치우치는 감이 있다.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크리스티안 가르베(Christian Garve, 1742~1798)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Über Gesellschaft und Einsamkeit)1797에 처음 나왔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0-03-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안타깝네요. 지금은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 시점이라 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랑 만나고 얘기하고 함께 밥먹고 이게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이 사는 데에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cyrus 2020-03-12 11:37   좋아요 0 | URL
나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코로나19에 전염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괴로워도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해요.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2020-03-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2 11:40   좋아요 0 | URL
집에 책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아요. 책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책 보면 되잖아요. 요즘 저는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집에서 운동을 해요. 제 입으로 운동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살찌지 않으려고 자주 움직여요.

프레이야 2020-03-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 할 일이 많아 심심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많이 먹고 살은 확 찌고 있어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구나라기보다 사회적 동물이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요즘 기저질환자,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신조어도 있어 처음 듣는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도 봐요. 왜 꼭 어려운 말로 쓰나고 흥분하더군요 ㅎㅎ 이와중에도 유머 잃지 않는 사람들로 한번씩 웃고 넘어갑니다. 힘든 분들 많은 이 재난상황에 그런 외로움 정도는 좀 견뎌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20-03-12 19:53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저질환자’라는 말을 최근에 알았어요.. ㅎㅎㅎㅎ
사람 만나는 일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외롭지 않게 혼자서 지내는 법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취미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stella.K 2020-03-1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에서 너를 볼 수가 없어 너야말로 알라딘과 거리두기를 한건가
했는데 봇물이 터졌나? 그동안 글 안 쓰고 어떻게 살았니?ㅋ
남자도 외롭다고 하는구나. 나 같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도
요즘엔 좀 답답한데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오죽할까 싶어.
근데 웃긴 건 답답한데 하루는 너무 빨리 가고 있다는 거야.
나는 이러다 코로나19가 소멸됐다는 소식은 언제 어떻게 전해질지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좀 궁금해진다.ㅋ

cyrus 2020-03-12 20:00   좋아요 0 | URL
그냥 책만 읽으면서 지냈어요. 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서 크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삼일 지나면 한 달의 반이에요. 정말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네요.. ㅎㅎㅎ

저는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난 후가 걱정 되요. 대구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두려워요. 대구에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대구를 떠나 타 지역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도 타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신천지’인지 아닌지 확인할 걸요. 좀 과장된 우스갯소리지만, 대구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타 지역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stella.K 2020-03-13 13: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불행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
그런 일 있을까봐 코로나19가 다른 지역까지
퍼뜨리고 돌아다녀 주시잖니. 특히 서울.
전염병은 정말 연대하지 않으면 물리치기 어려울 거야.
요즘처럼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 나는 때도 없지.ㅠ
 

 

 

초조한 마음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생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에디트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면서 말을 건다. 그런데 그 말이 문제가 될 줄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에디트는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장애인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을 느껴 계속해서 그녀를 만난다. 에디트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호프밀러에게 호감을 느낀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

201912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선정 도서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면서 지속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에디트는 그의 감정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한다. 에디트로부터 사랑 고백을 들은 호프밀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츠바이크는 작품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의 정의를 말한다. 이 연민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 자신의 연민을 오해한 에디트 때문에 초조해진 호프밀러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는 에디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감상적인 연민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호프밀러는 약혼한 지 몇 시간 후에 군인 동료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인한다. 그는 재산 때문에 장애인과 결혼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호프밀러와 에디트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를 오해하게 만든 호프밀러의 감상적인 연민이다. 그는 에디트를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긴다. 성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애인이 이성의 장애인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 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부부가 되는 일을 특별한 만남으로 인식한다. 비장애인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시혜와 연민의 대상으로 봤을 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보지 못했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의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언급한다.

 

 

 나는 당신이 나병 환자나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나에게서 도망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초조한 마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버릇없어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남들을 괴롭히게 되었는지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나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 같은 괴물이 덮치려 하면 다들 움찔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295)

 

 

여성 장애인은 결혼할 수 있겠어?”, “장애인이 무슨 애를 키워이와 같은 비장애인의 생각은 여성 장애인을 사랑의 주체로 보지 않는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다. 1930년대 말의 독일과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디트가 했던 말처럼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은 여성 장애인을 누군가 사랑할 수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무성(無性)의 괴물로 바라본다.

    

 

 

 

 

 

 

 

 

 

 

 

 

 

    

 

* 천자오루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 2020)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20202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선정 도서, 그러나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모임이 취소되었다. 이 책, 내가 추천한 건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은 비장애인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멸시가 장애인들이 소름 끼쳐 하는 이라고 말한다. 에디트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다. 그녀를 약자로 대하면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 호프밀러도 에 포함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연민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본 것이다. 호프밀러는 무심코 차별을 저지르고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을 빌려서 쓰자면 호프밀러는 선량한 적이다. 한때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호프밀러의 배려를 거부했던 에디트가 자신을 피하려는 호프밀러의 반응과 태도를 이해한다고 했을 정도면 그녀는 그를 너무 사랑했다.

    

 

 

 

 

 

 

 

 

 

 

 

 

 

 

 

* 김기흥 죽음의 가스실(집문당, 2019)

* 김기흥 히틀러와 장애인(집문당, 2018)

 

 

 

츠바이크가 초조한 마음을 쓰고 있었던 기간에 독일의 총통 히틀러(Hitler)유럽 정복을 위해 슬슬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Nazi)는 아리아인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위험한 명제를 내세워 수많은 장애인과 정신병 이력이 있는 사람을 학살했다. 독일 나치가 첫 번째로 저지른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계획적인 장애인 학살이다. 나치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Aktion T4(T4 작전)를 실시했다. 이 기간에 나치는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여해 장애인들을 안락사시켰으며 장애인 불임시술까지 강행했다. 교회의 반발로 작전은 중단했지만, 우생학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라서 장애인 학살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초조한 마음이 나온 그해에 독일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태어나지 못한 장애 태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향하게 만든 홀로코스트가 너무나 악명 높아서 나치가 저지른 장애인 학살과 T4 작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히틀러와 장애인(집문당)죽음의 가스실(집문당)은 나치의 장애인 학살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히틀러와 장애인T4 작전과 같은 나치의 장애인 정책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정책에 거부한 저항 운동을 보여준다. 죽음의 가스실은 나치가 장애인과 환자들을 학살하면서 사용했던 안락사 시설들을 소개한 책이다.

 

 

     

 

Trivia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초조한 마음236)

 

안 돼죠’라고 쓰면 안 되죠!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0-03-1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자 찾아내기 천재!!!

cyrus 2020-03-11 23:32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책 속에 있는 오자를 며칠 연속으로 찾을 수 있는지 도전하고 있는 중이에요. 3월 1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오늘까지 포함해서 11일 연속 오자를 찾았어요. ^^

진주 2020-03-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는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라고 쓰고 싶었나 봐요 ㅎ

cyrus 2020-03-11 23:33   좋아요 0 | URL
소설의 교훈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어요. ^^

레삭매냐 2020-03-1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 책을 하비에르 마리아스
의 <새하얀 마음>으로 착각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걸까요 ㅋㅋ

표지가 비슷해서였을까요 과연.

cyrus 2020-03-11 23:34   좋아요 0 | URL
방금 <새하얀 마음> 표지를 확인했는데, 정말 비슷하네요.. ㅎㅎㅎ
 

 

 

3주째 집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보는 책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의 소설이다. 독서를 시작하게 된 발단이 된 책은 앤 브론테(Anne Brontë)아그레스 그레이. 유튜브(Yutube)에 영상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이와 연관된 추천 영상들이 줄줄이 나온다. 어떤 주제와 관련된 독서를 하는 과정은 유튜브 영상 알고리즘 방식과 유사하다. 앤 브론테의 소설을 읽었으면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소설을 읽고, 세 자매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에 관심이 가게 된다.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면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소설들 이것저것 동시에 읽는다. 어쩌다 보니 레 파누(Le Fanu)의 소설도 읽었다.

    

 

 

 

 

 

 

 

 

 

 

 

 

 

 

 

* [품절] 르 파뉴 카르밀라(초록달, 2015)

* 정진영 엮음 세계 호러 걸작선 2(책세상, 2004)

* 안길환 엮음 영국의 괴담(명문당, 2000)

 

 

 

예전에 레 파누의 대표작 카르밀라리뷰와 그의 단편소설을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레 파누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우리말로 번역된 레 파누의 단편소설 두 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두 편의 단편소설은 유언의 저주(Squire Toby’s Will, 1868)손에 대한 고찰(Narrative of the Ghost of a Hand, 1863)이다. 유언의 저주영국의 괴담(명문당), 손에 대한 고찰세계 호러 걸작선 2(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내가 이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수록된 레 파누의 소설을 확인하지 못했다.

 

유언의 저주는 재산 상속 문제로 앙숙이 된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대지주 토비 매스턴(Toby Marston)은 두 아들 중 유독 차남 찰리 매스턴(Charlie Marston)을 좋아한다. 장남 스클루프 매스턴(Scroope Marston)은 척추 장애인(꼽추)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은 일이 없다. 토비는 못생긴 장남을 매스턴 가문의 오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생긴 찰리를 재산 상속자로 정한다. 찬밥 신세가 된 그는 자신을 싫어하고 동생만 편애하는 아버지를 증오한다.

 

토비는 죽기 전에 유서를 썼다. 유서에 자신이 소유한 길린덴 저택(Gylingden Hall)과 전 재산을 장남에게 상속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스클루프는 장자가 가문의 지위와 재산을 독점하는 장자상속제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동생에 대한 스클루프의 증오심은 더욱 커져만 간다. 스클루프는 장남으로서 자신이 저택을 가질 수 있는 권한을 찾기 위해 상속 재판 소송을 신청했으나 패소한다.

 

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찰리의 눈앞에 꽃길인생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찰리는 낙마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다. 낙마 사고 이후로 찰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두려워하고, 성격이 음울해지면서 고독한 생활을 하는 신세가 된다.

 

찰리는 죽은 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찰리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예배당에 가다가 기분 나쁘게 생긴 개를 만난다. 찰리와 동행한 집사는 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찰리는 그 개를 관리인에게 맡겨 키우기로 한다. 개를 만난 이후에 찰리는 기묘한 꿈을 꾸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개가 나타난다. 기분 나쁜 꿈을 꾼 찰리는 개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헤롯왕의 방(King Herod’s chamber)이라는 곳에 내보낸다. 찰리는 그 방 내부를 살펴보다가 몇 통의 편지와 양피지 증서를 발견한다. 증서는 토비가 결혼하기 전에 작성된 것이며 글린덴 저택을 장남에게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증서가 스클루프에게 알려지면 스클루프는 찰리에게 모든 재산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는 이 증서를 당장 파기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죽은 뒤에 형에게 재산이 돌아갈 수 있도록 증서를 보관할 것인지 고민한다. 찰리는 오랜 고민 끝에 증서를 파기하지 않기로 한다.

 

찰리는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짖어대는 개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꾼 악몽을 떠올린다. 그는 관리인에게 개를 사살하라고 명령한다. 개는 관리인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찰리는 악몽에 계속 시달린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한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찰리에게 얼른 저택을 떠나라. 스클루프가 너를 목매달아 죽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점점 개의 형상으로 변한다.

    

 

 

 

 

 

 

찰리는 형의 부고를 확인한다. 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형과 싸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형에게 앙금이 남아 있던 찰리는 죽은 형을 모욕하기 위해 장례식을 대충 치른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길린덴 저택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다. 집사는 검은색 망토를 입고, 모자에 상장(喪章)을 단 두 명의 신사가 저택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한다. 하인과 하녀들은 저택 안에서 발소리와 여러 사람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면서 두려워한다. 찰리는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을 애써 무시해보려고 하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불안감이 또 한 번 그를 덮친다.

 

유언의 저주에 나오는 두 형제는 모두 불행한 인물이다. 스클루프는 꼽추’, 장애인의 몸으로 태어나 장남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토비의 자식일 수 있다. 찰리는 실질적으로 상속자가 되었지만, 형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클루프는 장자상속 권리를 내세워 찰리를 압박한다. 찰리를 차남이라서 형의 존재에 큰 부담감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낙마 사고를 겪은 이후로 찰리는 말을 타지 못한다. 말을 타지 못하는 찰리가 병약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은 남성성 상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애정을 독차지할 수 있게 해준 매력인 장남으로서의 활동적인 면모까지 사라진다. 그 후로 아버지와 형은 찰리의 꿈에 나타나 그를 비난한다. 심지어 꿈속의 아버지는 장남의 재산까지 독차지한 찰리를 꾸짖는다. 찰리의 꿈에 형을 이기려고 하는 차남 콤플렉스가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찰리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개를 죽이고, 형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증서를 파기한다. 또 형을 증오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찰리는 형의 장례식을 성의 없게 치른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민음사, 2004)

 

    

 

유언의 저주와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Rochester) 형제도 재산 상속 문제로 갈등을 빚는데, 이 갈등의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는 아버지다. 차남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전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면 에드워드는 빈털터리가 된다. 친자식이 가난하게 생활하는 것을 원하지 않은 아버지는 에드워드를 부잣집 딸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아버지와 장남은 메이슨(Mason) 가의 재산에 눈독 들이고, 에드워드를 메이슨 가의 딸과 결혼하도록 추진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학을 갓 졸업한 에드워드를 자메이카로 보낸다. 에드워드는 그곳에서 만난 버사 앙투아네트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과 결혼한다.

    

 

 

 

 

 

 

 

 

 

 

 

 

 

 

 

* 백승종 상속의 역사(사우, 2018)

 

    

 

두 편의 소설에 묘사된 형제 갈등은 단순히 재산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상황으로만 볼 수 없다. 형제 갈등의 원인에는 탐욕이라는 개인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간의 불평등과 가족 해체를 야기하는 상속제의 폐단도 형제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유럽 사회의 장자상속제를 이해하려면 상속의 역사(사우)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의 다양한 상속제에 나타난 여러 가지 폐단을 보여준다. 상속제는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사회적 제도로 작용하지 않는다. 상속의 역사의 저자는 상속제를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 생존 전략으로 이해한다. 상속제 사회에 부와 권력을 얻는 사람과 반대로 부와 권력을 잃는 사람이 있다. 상속제 때문에 가족 싸움이 피 튀기는 살육전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유언의 저주의 찰리와 제인 에어의 에드워드 로체스터는 장자상속제의 폐단을 피하지 못해 불행한 일을 겪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파멸이라는 도착지에 이르는 가시밭길뿐이었다.

 

    

 

 

 

Trivia

 

영국의 괴담의 번역문에 한자로 된 낱말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유언의 저주대지주 토비(Squire Toby)향사(鄕士) 토비로 번역한 것이 눈에 띈다. 향사는 시골 선비, 또는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무인(武人)이다. 대지주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다. 대지주와 향사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squire’를 향사로 번역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국의 괴담
안길환 옮겨 엮음 / 명문당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문당 출판사에서 나온 괴담 시리즈는 총 여덟 권이다. 20004월에 영국의 괴담, 중국의 괴담, 한국의 괴담이 나왔고, 그해 석 달 뒤에 프랑스의 괴담, 미국의 괴담이 나왔다. 다음 달에 러시아의 괴담이 나오고, 뒤이어 독일의 괴담, 일본의 괴담이 나왔다. 이 모든 책이 2000년 한 해에 출간되었다. 9년 뒤에 일본의 괴담이 새로 출간되었는데 2000년에 나온 구판과 다른 점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개정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영국의 괴담이다. ‘괴담시리즈 전부 절판되기 전에 사 모을 생각이다. 명문당은 동양고전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다. 이런 출판사가 괴담 시리즈를 펴냈다니 출판 의도가 궁금하다. 구전 설화나 민담을 수록한 한국의 괴담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권의 책은 동서양 작가들의 공포 단편소설 선집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제목에 있는 괴담때문에 세계의 괴담을 모아 놓은 책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알라딘에 여덟 권의 책의 목차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명만 나와 있다. 작품을 쓴 작가를 알려면 이 책을 사서 봐야 한다. 무려 20년 전에 나온 책이 공공도서관의 터주 대감으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책 뒤에 원 작품명과 작가목록이 있다. 그런데 이 목록도 문제가 있는데 작품 발표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 작품명과 작가 이름, 그리고 발표 연도가 있는 목차를 써봤다.

    

 

 

* 판사의 집(The Judge’s House, 1891)

브람 스토커(Bram Stoker)

 

* 해리와 크리스(Harry, 1955)

로즈메리 팀펄리(Rosemary Timperley)

 

* 누구의 도움일까?(Special Delivery, 1912)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 오솔길 따라서 간 여인(Ahoy, Sailor Boy!, 1933)

A. E. 코퍼드(A. E. Coppard)

 

* 지상에서 못 이룬 사랑

(The Tale of Harry & Rowena, 1928) [1]

M. P. (M. P. Shiel)

      

* 떠나 버린 에드워드(The Passing of Edward, 1912)

리처드 미들턴(Richard Middleton)

 

* 상단(上段) 침대(The Upper Berth, 1885)

프랜시스 매리언 크로퍼드(Francis Marion Crawford)

 

* 피리를 불면 내가 가지(“Oh, Whistle, and I’ll Come to you, My Lad”, 1904)

몬터규 로즈 제임스(M. R. James)

 

* 망령 난동 사건(The Story of the Spaniards, Hammersmith, 1898)

E. 헤론 & H. 헤론(E. Heron & H. Heron)

 

* 사형수의 고백(The Confession of Charles Linkworth, 1912)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Edward Frederic Benson)

 

* 저주의 붉은 방(The Red Room, 1896) [2]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 유언의 저주(Squire Toby’s Will, 1868)

조지프 토마스 세리든 레 파누(Joseph Thomas Sheridan Le Fanu)

 

* 공포 속의 빈 집(The Empty House, 1906)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번역문에 한문으로 된 단어가 너무 많다. 고전 공포 소설을 읽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동양고전의 문장 하나하나 독해하는 것처럼 읽고 있었다. 그렇게 한자어를 힘겹게 읽다가 핸섬하다라는 콩글리시가 있는 문장을 만났는데, 그거 보는 순간 실소했다. 20년 전에 나온 이 책의 번역도 핸섬하지 않다.

 

 

 동생 이상으로 떠들썩한 형 스클루프 매스튼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야외 스포츠에도, 전원생활의 즐거움에도 관심이 없었다. 스포츠맨도 아니었고 핸섬하지도 않았다.

 

(유언의 저주, 261)    

 

 

[1] 원제에 ‘Rewana’로 잘못 표기된 오식이 있.

 

[2] ‘The Empty Room’이라는 잘못된 원제가 적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