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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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 데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것


 

- 여행스케치 '산다는 건 그렇게 아니겠니' 중에서 -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5년에 미래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 측면은 디지털 세상이 갖는 강력한 특징 때문에 부각되지 못할 것이라며 디지털 낙관론을 펼쳤다. 아날로그가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하는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느낀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가 활약하던 1920년대를 '황금시대'를 동경한다. 길이 꿈꾸는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고갱과 드가가 살았던 1890년대를 '황금시대'로 꼽는다. 고갱과 드가는 한술 더 떠 르네상스 시대를 '황금시대'로 부르며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상상력이 죽은 시대'라고 한탄한다. 저마다 동경하는 '황금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든 '황금시대'는 과거를 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에 등장하는 세스는 과거의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는 직업 만화가이면서도 과거에 발행되었던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는 만화를 수집하는 외골수다. 그는 우연히 잡지 '뉴요커'에 실린 '캘로'라는 필명이 그린 만화를 알게 된다. 세스는 만화가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어렸을 때 살았던 스트라스로이로 향하게 된다. 시간이 멈춘듯한 스트라스로이에서 세스는 잊고 있었던 과거 일상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만화 속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서 독자들마다 호불호가 엇갈릴 것이다. 과거가 현재보다 낫고 현재는 좋았던 과거를 파괴하고 있는 슬픈 현실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비관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황금시대'를 추억하는 심리를 한 꺼풀 벗겨보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경향이 강하면 '무드셀라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다. 디지털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복고 열풍을 빠진 현대인이나 만화 속 세스의 모습은 각박하고 치열한 현실에 기댈 곳 없는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감의 표상이다. 불안정성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황금시대'에 열광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조금은 슬프다. 우리의 감성과 정서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데 주변은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과거의 즐거웠던 일상을 담은 추억의 스냅사진은 언젠가 희미해질 기록이지만 추억은 더 진하게 남지 않겠는가.

 

약간의 소음이 음악의 일부인양 느껴지는 LP판과 소통이 있었던 아날로그 TV가 더 정겹고, 문자나 카톡보다는 학창시절 연애편지처럼 기다림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던 편지의 애절함도 그립다. 그렇다고 아날로그 생활만을 고집하며 살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을 불어넣어,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행복과 동행할 수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세스의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인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당신의 인생이면서 또 나의 인생이기도 한 이야기. 어쩌면 무심하고 소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빛나는 이야기들. 아주 미국적인 것도 같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사들이 들어 있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인생은 정해진 순서대로 예측가능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예측가능한 대로만 된다면, 인생 살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만들어 내고, 이 불안감은 때로는 현재를 괴롭힌다. 인간은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아왔고, 이러한 뿌리 깊은 불안감으로 인해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찾고자 애써왔다.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찾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과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확실성을 찾지 못하면 현실의 삶이 고달프면 과거를 동경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라는 과거 지향형의 향수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담긴다. 옛 향수를 안주 삼아 일상의 지친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자 하는 데는 현실이 고단하기 때문일 게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부정은 지금보다 별반 좋을 것도 없는 과거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경향을 커지게 한다.

 

사실 잘 산다는 것은 상대성이 있다. 세대에 따라 계층에 따라 행복의 가치도 다르고 만족의 크기도 저 마다 다르다. 결과가 과정을 대신해준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하고, 무엇보다도 인생이란 본디 불확실한 일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으로 인해 오늘의 행복을 놓치는 우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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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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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N양.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조금은 힘들지만요.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이렇게 인사해도 당신인 줄 모르겠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어 당신에게 써봅니다. 닿을 수는 없겠지만. 당신을 처음 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요. 왜 우린 그렇게 만났을까. 아니, 왜 제가 N양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는지요. 처음 봤던 날 그날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보인 채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나요. N양은 꾸미지 않아도 제 눈에는 빛나고 있었어요. “친구가 있으면 더 예쁘게 꾸미고 나올걸.” 이라는 당신의 말에 저는 무척 설레었어요. 꾸미면 얼마나 더 예뻐질지 상상했거든요. 그래서 그 만남 이후부터 당신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연락처를 알아내고, 당신의 눈에 최대한 띌 수 있도록 말 걸어보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와 N양 사이엔 제 친구도 함께였어요. N양은 늘 어색하다는 핑계로 제 친구와 함께 등장했죠. 저는 솔직히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설마 N양이 내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저는 다짐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N양에게 고백해야겠다. 제 마음, 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고요. 그런데 참 쉽지가 않군요. 하필 당신은 인턴 일을 하게 되어 당분간 서울로 지낸다고 하고 떠나버렸네요.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면 다시 대구로 돌아오겠지만, 거리를 지나는 커플들을 보면 문득 N양의 얼굴이 생각나요. 그리워요.

 

N양이 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울적할 때, 마침 <하버드 사랑학 수업>이랑

 

아! N양,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시중에 나오고 있는 연애지침서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일 감명 깊게 읽었다는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책 제목대로 실제로 하버드 대학에 '사랑학'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그리고 이 수업이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는군요. 그리고 기존의 연애지침서처럼 '연애를 위해 이성을 꾀는 방법' 같은 내용이 없어요. 이 책의 저자가 하버드 대학의 사랑학 수업을 맡은 교수인데요, 연애지침서를 통렬히 비난하고 있어요. 오히려 연애지침서식 사랑은 남녀 간의 애정을 방해하는 나쁜 책이라네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업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만약에 이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꼭 N양과 같이 듣고 싶어요. 아니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N양도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N양을 위해서 책에서 본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려고 해요. 편지글이 길어도 이해해주세요. 먼저 여기 그림을 봐 주세요. N양에게 이 그림은 생소할거에요. 그래도 그림 속 남녀가 누구인지 짐작했으리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의 여류 화가 수잔 발라동이 그린 아담과 이브에요. 발라동은 르누아르, 로트레크, 드가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어요.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해요. 발라동의 아들도 위트릴로라는 유명한 화가인데요, 그녀는 20년 연하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게 돼요. 첫눈에 아들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발라동은 제가 소개한 '아담과 이브' 그림을 완성하고 결혼했어요. 화가의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림에 대해서 설명할게요.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이브가 웃는 얼굴로 금지된 열매를 따려는 순간, 아담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것이 이브를 말리려는 것인지, 사과 따는 것을 도와주려는 것인지 모호하게 그려져 있죠? 지금까지도 아담의 동작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해요. 누군가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브의 유혹에 굴복당하면서도 창조주에게 항변할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담이 고심에 빠졌다고 말해요. 이주향 교수는 <그림 너머 그대에게>라는 책에 아담과 이브를 '두려움 없는 여자, 두려움으로 비겁해진 남자'라고 표현했더군요. 네, 이주향 교수의 표현이 맞아요. 남자가 이 그림을 봤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였을 거에요.

 

일반적으로 남자는 자신보다 능력이 있는 여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요. 즉, 남자의 성격은 자신이 상대를 주도할 수 있는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연약하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를 좋아한대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주변 친구 녀석들도 그렇고, 연애지침서에서도 남자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남자는 여자를 일종의 먹잇감 또는 정복하고 싶은 대상으로 본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성격을 맞춰 아무 힘도 없는 척 내숭 부리는 '여우'가 되라고 연애지침서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N양, 저는 N양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여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N양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당당하게 보여주세요. 제가 N양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글을 쓸 때였어요. 저는 페이스북에 남긴 N양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생각이 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남들이 그 모습에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더 저는 N양의 지적인 면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못 믿겠다고요?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마리 루티 교수가 제일 친한 이성 친구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이 책의 저자는 여자입니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전구 가는 모습을 본다면 매력이 떨어질 것 같으냐고 질문을 했대요. 그러자 그들에게서 온 답변이 어떤지 아십니까? 오히려 전구를 스스로 갈 줄 아는 여자의 모습이 매력 있대요. 비록 저자의 설문조사 결과가 실증적이지 않은데다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예쁜 외모의 여자와 N양 중에서 사귀고 싶은 사람을 고른다면 후자를 택할 겁니다. 저는 N양이 독서를 좋아하고 글 쓰는 모습이 정말 좋아요. 본인 그대로 모습을 나에게만 보여주세요. 제 말을 못 미더우실까봐 제가 책 속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인용해서 소개합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틀에 사랑을 끼워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사랑은 색깔 맞추기 큐브가 아닙니다. 사랑의 수수께끼는 색색의 조각을 제자리에 끼워맞춰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봐야 손가락에 물집만 잡힐 뿐이죠. (p 248~249)

 

자신의 강인함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주문처럼 외우고 다녀도 좋습니다. 내가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자란 사실 때문에 괜히 미안해하지 마세요. 괜찮은 남자라면 억지로 꾸며낸 여성스러움이나 의존적 태도보다는 이런 자질을 더 원할 수 있습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받는 남자만큼 한심한 인간도 없습니다. 누가 이런 남자를 필요로 하겠어요? (p 249~250)

 

그러니까 그저 여성을 소유하려는 '늑대'를 조심하세요. 그런 남자 잘못 만나서 N양의 마음에 큰 상처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리학 용어에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어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가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이에요. 즉,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여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다음에 소개하는 그림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입니다.

 

고대 키프로스 출신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의 사랑이 이뤄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조각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조각상을 좋아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소원을 빌고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대답 없는 사랑을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이 만든 여인의 조각상을 사랑하는 연인처럼 꼭 끌어안았어요. 그때 차디찬 조각상이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에는 심장 고동까지 그의 가슴에 느껴졌어요. 아프로디테가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조각상을 피그말리온의 연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그림처럼요.

 

N양은 본인의 글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페이스북에서 글 남기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N양의 그런 모습을 볼수록 당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N양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유지하고 N양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본연 그대로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를 만나세요. 아니, 용기있게 말하자면 N양의 그런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는 바로 접니다. 저는 책에서 이 구절을 보면서 N양에 대한 특별한 감정에 대해 더욱 더 확신을 가졌어요.

 

이상화하는 '좋은'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연인의 매력을 찾아 그 점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남자의 팔 근육에만 집착하지만 말고 그가 가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장점에 진정으로 감탄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개성, 가령 성(性)이나 친절, 유머 등을 강조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 모르게 꽁꽁 숨겨온 그의 어떤 면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억압되거나 간과되거나 개발되지 못한 장점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죠. (p 158~159)

 

저는 N양이 지금보다 더 예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외모가 여성 연예인처럼 되기 바란다는 건 지나친 이상화입니다. 자신이 정한 이상형을 기준으로 이성을 찾는다면 실망감만 안겨주는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오히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 자신에 대해서 무척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N양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외모가 그렇게 잘 생긴 편도 아니고, 건장한 체구도 아닙니다. 마른 체형입니다. 살면서 소개팅 한 번도 못했고 또래에 비해 집안은 그렇게 잘 사는 편도 아닙니다. '나'의 모습에 대해서 크게 위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모태 솔로'라고 할 수 있죠.

 

마리 루티 교수는 내면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내 어깨 위의 원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어깨 위에는 오랫동안 그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깨 위의 원숭이를 내쫓으려고 합니다. 어깨 위의 나쁜 원숭이의 속삭임에만 빠진다면 저는 평생 나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채 더 소극적인 성격으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N양이 어떤 남성을 선호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본연의 모습 그래도 N양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고, N양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평생동안.

 

오늘 처음으로 이성에게 편지를 처음 써보네요. 어버이날이나 제가 군대 훈련병 시절에 어머니에게 편지 쓴 걸 제외하면요. 막 쓰다 보니 편지가 길어졌네요. 지루하더라도 제발 이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N양이 선호하는 남자가 제가 아니더라도 여기 편지에 소개한 책을 꼭 기억해주세요. 내가 싫다면 N양의 머릿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 그리고 짧았지만, 우리 단 둘이 함께 했던 사소한 일상의 기억들, 잊어도 좋아요. 이 편지와 함께 제가 읽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전합니다. N양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모든 감정, 이 편지로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감정을 받아주신다면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저처럼 편지를 안 써도 좋으니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세요. 이제 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N양이 선택한 사람이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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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1-1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사랑은 색깔맞추기 큐브가 아닙니다. ->큐브도 짱 어려운데.

근데 N양은 누구예요??? (진심)

cyrus 2013-01-13 22:35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질문 비밀로 설정해주시지..ㅎㅎㅎ ^^;; 작년에 대외활동하다가 만난 여자애가 있는데.. 참.. 고백 한 번하는게 쉽지 않네요.. ^^;; 이 책에서 저자가 이렇게 말해요. 사랑은 완벽할 수가 없다. 그 점을 인정하고 사랑을 하라고요. ^^

아이리시스 2013-01-17 20:34   좋아요 0 | URL
응, 미안. 저는요, 가상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랬어요^^; 이제 저는 뭘해야 하나요, 으샤으샤! 아니면 사랑고백 10단계 이런 거 플랜이 필요해요?

축하해요, 사랑은 역시 좋은 거야....( '')
ㅎㅎㅎ

2013-01-13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력 없이 쓴 글은 대게 감흥 없이 읽힌다.

 

- 새뮤얼 존슨 -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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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제학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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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의 세계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할까?

 

세계화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하여 개인과 사회집단이 갈수록 하나의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국제화가 국민국가 간의 교류가 양적으로 증대되는 현상을 말한다면, 세계화는 양적 교류의 확대를 넘어서 현대 사회생활이 새롭게 재구성됨으로써 세계사회가 독자적인 차원을 획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오래된 미래』『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세계화의 역사를 3단계로 보고 있다. 초기 단계는 제국주의적 식민지화 시기에서 시작해서 두 번째 단계는 식민지 독립 이후 서구화된 신흥 국가의 등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 세계화는 경제, 정치, 문화 세 수준에서 동시적으로 그리고 상호연관을 이루면서 진행됐다. 경제적 수준에서 세계화는 교역·투자·통신 등이 확대되어 국가 간 상호의존이 증대하고 지구적으로 다자간의 협의·조정·협력 등이 강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의 세계화는 오늘날 세계화를 추동하는 기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제의 세계화 경향은 최근 더욱 두드러졌는데, 세계무역의 완전자유화를 주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초국적 기업의 활동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전후 세계화를 주도한 주체로서 초국적 기업의 활동은 생산부문을 지구적으로 재배치하는 신국제분업을 통해 기존 국경의 의미를 축소시켜 왔다.

 

근대 경제학에서 전제해온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개인이다. 국제시장에서 한 국가의 국부(國富)를 평가할 때도 경제성장률과 GDP는 핵심도구로 사용됐다. 통상적인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행복 계산법은 단순하다. 소득이 높고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그 사람은 많은 이익을 얻고 더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소득이 높으면 직장과 사회에서 더 나은 지위와 위치를 차지할 기회가 많아져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경제활동의 범위를 지역에서 세계로 확장시켰다. 자립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초국가적인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도시 빈민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강대국들은 세계화를 빌미로 자유무역협정(FTA)을 강요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세계화가 가져온 또 다른 폐해는 천연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이다. 수입과 수출,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오염물질과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환경 파괴는 가속도가 붙는다. 오염은 기후 변화를 가져오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파괴의 속도전을 벌이는 기업과 정부가 있다.

 

이처럼 그동안의 경제의 세계화는 행복의 개념과 이익의 개념을 맞바꾸면서 경제와 행복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지만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화의 한계에 대한 논의가 국제적으로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세계화의 빠른 물결은 갈수록 심해질수록 빈부격차는 곳곳에서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나의 행복을 위한 지역화 중심의 경제학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세계화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가진 양면적인 과정이다. 세계화는 전지구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위기인 동시에 경제·문화적 삶을 향상할 새로운 기회다. 중요한 것은 세계화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경쟁적으로 세계화를 외치며 정부는 개인이 당장 불행하고 힘들어도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해 생산성 향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논리를 당연하게 이해시켜 왔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성장 중심의 세계화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세계화에 대한 더욱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가 요청되며, 경제의 세계화가 낳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대응 전략 또한 모색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 외에는 다른 경제성장의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경제성장의 대안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지역화'이다.

그가 주장하는 '지역화'란 자연과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경제적 논리들을 반대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경제활동을 인간적, 생태학적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거대 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마트에서 소비하지 말고 지역의 소규모 시장에서 지역 상인에게 물건을 소비하면 상품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배기가스 같은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상품 변질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농약이나 방부제 사용도 피할 수 있어 소비자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더 싸게 얻고, 지역 생산자는 이익을 지역 발전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열과 풍력을 이용한 에너지를 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에 정부는 개발비를 더 많이 투자하고 다양한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 즉 한정된 자원을 써버리고 없애는 경제논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로 재생산되는 소비활동을 하자는 것이다.

 

지역화 중심의 경제학은 '파괴의 소비'를 멈추고 지역이 주체가 되는 경제활동이다. 각각의 문화에서 다양성을 찾고 그 고유한 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면 '나'로 살아가는 게 행복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의 경제학'의 핵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의 경제학’은 자연과 사람, 지역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며 목적을 상실한 채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국제적인 협력보다는 지역화 활성이 우선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세계화 위기의 시대를 탈출할 수 있는 전략으로 WTO를 뛰어넘어 WEO(세계환경기구, World Environment Organization)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안한 WEO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 환경보호를 위한 법률을 만든다.

  ◉ 환경비용을 ‘내부화’ 한다.

  ◉ 사회적 외부성을 처리한다.

  ◉ 무역 문제에서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주권 국가들이다.

  ◉ 다국적 기업이 지역에 기반을 두거나 지역화하도록 규제한다.

  ◉ 국제법을 만들어 작동시킨다.

  ◉ 갈등 해결 과정을 향상시킨다.

  ◉ 자본 흐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p 262)

 

 

세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지만, 일부 선진국의 WTO 체제 유지와 개별 국가 간의 이해관계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실현성이 그리 높지 않다. 호지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 국민총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부탄, 생태마을운동을 지지하고 있는 세네갈 등을 WEO 가입 가능성 높은 국가로 꼽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힘을 모아 주도적으로 WEO를 창설한다 해도 이들 국가의 정치 지도력으로는 WTO 체제에 익숙해진 국가들을 WEO에 가입하게 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호지의 '행복의 경제학'이 이론적 대안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보다는 지역경제 발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구를 보지 말고, 지역을 봐야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 일변도이고 국가주도적인 발전행정의 폐해를 극복하면서 지역화를 활성하는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삶의 방식을 덜 소비하고 덜 파괴하는 방법으로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해 올바른 교육이 지속해야 한다. 즉, 생산과 소비의 균형, 지방과 도시의 균형, 사람과 자연이 공존을 이루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지역 중심의 경제활동으로 하나라는 연결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행복한 경제를 만들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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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고독을 모르는 천치들의 세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아인슈타인의 예언’이라는 제목의 한 장의 사진이 누리꾼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문구가 소개되어 있다. "I fear the day that technology will surpass our human interaction. The world will have a generation of idiots."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정말 이 말을 했는지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다. 다만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 속에서 24시간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살고 있는 인류는 천치들의 세대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선보였던 1984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공놀이하거나, 흙장난, 인형놀이를 하는 등 다 같이 어울리며 뛰어놀고 있다. 18년 뒤, 애플과 삼성이 스마트폰 기술을 둘러싸고 특허전쟁을 벌였던 작년 2012년 아이들의 모습을 보라. 벤치에 모여 앉아 스마트폰 및 IT 기기들을 만지며 각자 놀고 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또래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자체가 놀이이며 일상이다. 트위터에 짧은 문구를 남기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올린다. 웬만한 남녀노소는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을 잘못 다루면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2011년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스마트폰 중독율이 성인 7.9%, 어린이(만 9세 이하) 11.3%로 나타났다. 어린이의 경우 대개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기 관리를 놓치면 쉽게 중독으로 악화될 수 있다. 과도하게 인터넷에 노출되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보고가 있다. 자극적인 화면에 익숙해지면서 학습능력 저하는 물론 폭력 충동 등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이 정말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한 천치의 세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류가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에 열중할수록 고독의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상상하라. 24시간 내 곁에 있었던 가족이나 정든 친구 한 명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외로움이 느껴지면 스마트폰을 먼저 찾게 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릴 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혼자 버스 탈 때도 눈은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혼자 있는 시간도 외롭지 않고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확인하는 데 소비할수록 우리는 인간관계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고독을 모르는 천치가 되어가고 있다.

 

 

 

 자유를 얻었으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년 

 

 

지금 이 시대는 액체처럼 흐른다.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에 흐물흐물 거리는 시계처럼 말이다. 바우만은 현대사회의 역동성을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말로 개념화했다. 그는 '변덕스러움', '불안정성', '불확정성'은 우리 시대 삶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형태들이 더 이상은 제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여건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사회는 제도, 규범이 작동되는 견고한 구조로 구성되었다. 근대 들어 인간은 국가와 사회가 옭아맸던 속박의 틀을 깨고 해방됐다. 그러나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질서와 규범이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과 불확실성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지 못하므로 선택과 결정을 할 때마다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쓰레기로 전락한다. 유연성이 곧 합리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실패나 패배의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된 개인은 '영원히 폐기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은 '유동하는 공포'를 잊을 수 있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동료가 없는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감을 스마트폰 안에 설치된 카카오톡으로 말 걸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를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친구 추가' 버튼 하나 누르면 충분하다. 하루에 많으면 두세 명, 한 달 뒤에는 수십 명 넘는 '페북 친구'가 생기게 된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친구의 수가 백 명을 넘기도 한다. 트위터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 새해 인사를 수많은 친구들에게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할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카카오톡과 트위터로 단시간만에 백 명이 넘는 친구에게 새해 인사를 전할 수 있다.  2013년 새해 첫날인 1월 1일 0시로 넘어가는 순간 아시아권 이용자들(한국, 일본)의 초당 신년 축하 트윗 건수가 미국과 영국을 앞지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트위터는 인간관계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이 정도쯤이면 우리는 고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축복 받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지구상에 그런 천국이 존재할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마침내 그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인정하듯이 대화와 같이 인간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양면적인 가치, 다시 말해 편안하면서도 아주 즐거운 특성과 그럼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성가시기도 하고 온갖 위험으로 가득한 이중적인 특성이 마침내 해결된 것일까?" (p 30)

 

그러나 바우만은 오늘날 인류의 삶이 윤택해진 현대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독을 피하고 잊기 위해 온라인 세계로 향하는 '엑소더스' 행렬은 개인의 정신을 성숙하게 하는 사색과 인간관계 내에서의 소통을 형성하게 만드는 조건이 내포된 진짜 '고독'을 잊어버리게 된다.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p 31)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에 지인과 함께 외식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틈만 나면 '카톡질'을 하는 엄지족의 모습은 늘 고독과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의 눈물겨운 투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오프라인 인맥 형성에는 인색하다.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는 타인과 소통을 시작하는 행위는 항상 호기심 섞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저 사람과 친하기 위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대화의 물꼬를 트기 전에는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주저하고 고민한다. 온라인 인맥 형성은 오프라인에 비해 간편하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쓸데없이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인관관계를 재정리할 때도 온라인이 편하다. 싫어하는 동료가 있으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친구 목록에 삭제해도 된다. 애정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문자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 1888년

 

 

바우만이 유동하는 근대 세계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실존의 고독을 낭만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근대를 버리고 질서가 살아 있는 과거로 회귀하자고 주장하거나 어떤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고독의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해서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과거의 유희적 움직임을 기억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미 지나가버리고 사라진 과거에만 집착한다는 건 고독을 더 키우는 부질 없는 고집일 뿐이다.

 

이제 사회는 '구조'보다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어 간다. 유동하는 사회 앞에 인간은 어찌 해야 하는가. 국경과 공간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인맥 네트워크가 형성되더라도 진정한 소통 능력과 공동체 의식을 자리 잡지 못한다. 이방인에게 직접 말을 걸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세계에 관심을 잃고 '친구'라는 글자의 빈껍데기를 씌운 가상의 온라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독은 사회와 집단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부정의 개념으로 널리 통한다. 그러나 고독은 단순히 인간관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며 뿌리 깊은 욕구이다. 즉, 새로운 인간을 만나 소통하고 싶은 관계 형성의 욕구이다. 고독은 개개인의 행복과 창조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 사람은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는 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은 진정한 유대감을 획득하는 확실한 인생의 경로다.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친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우만의 표현처럼 '생각을 집중하게' 할 수 있는 고독을 누릴 필요가 있다. 유동하는 세상에 잊고 있었던 고독을 다시 한 번 불러보자.  "응답하라, 고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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