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서재 이웃 한 분이 어느새 몰래 블로그 방명록에

마지막 인사를 남긴 것을...

 

그 분은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셨다.

 

그가 쓴 차분한 글을 더 열심히 느껴보고 

그가 그린 부드러운 데생들을 더 열심히 바라보고

그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기억 속에 까마득히 잊혀질 즈음에

잠깐이라도 안부 인사 한 마디라도 남길 걸...

 

나의 메마른 오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 그를

나는 우두커니 보내야만 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후회한다, 너무나도 후회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2-05-2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는 터라 더욱 공감이 가네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저도 주위에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들이 언젠가 내게 먼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네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랜만에 뵈는군요, 시루스님! 요새 알라딘에 저 혼자 있는 느낌이에요... 심심해요 ㅠ

cyrus 2012-05-20 22:58   좋아요 0 | URL
심심하면 가끔 카스토리에 오십시요 ㅎㅎㅎㅎ
근데 저도 요즘 카스토리에 글 쓸만한 소재가 고갈 중이에요.
뭔가 쓸게 많은데 가끔 영양가 없는 내용을 쓸까봐 항상
고민하고 글 써요, 그렇다고 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쓸게 없다보니
딱히 쓸만한데 시 밖에 없네요 ^^;;
어느새 카스토리도 알라딘 블로그처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차라리 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뭐 그 때도 저도
공부에 매진해야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한가로워서 좋아요 ^_^

마녀고양이 2012-05-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처럼 날아가셨더군요.
서재 홀랑 삭제하고,, 정말 바람결만 남았더라구요.

인연이란게, 머 그런거지 하다가도, 살짝 스산해지기도 하네요. ^^

cyrus 2012-05-21 14: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네요..

조선인 2012-05-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이 왜 갑자기 떠난 건지, 그 단호함이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cyrus 2012-05-21 14:31   좋아요 0 | URL
정든 장소를 단번에 떠난다고 인사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죠.

카스피 2012-05-2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만사 공수레 공수거죠...
 

 

 

 

 

 

 

에스메랄다 (Rose. Esmeralda)

 

 

 

 

 

 

 

빅토르 휴고 (Rose. Victor Hugo)

 

 

 

 

 

 장미 한 송이

 

                                                          용혜원


 장미 한 송이 드릴
 님이 있으면 행복하겠습니다.

 

 화원에 가득한 꽃
 수많은 사람이 무심코 오가지만


 내 마음은 꽃 가까이
 그리운 사람을 찾습니다.

 

 무심한 사람들 속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장미 한다발이 아닐지라도
 장미 한 송이 사들고
 찾아갈 사람이 있는 이느 행복한
 사람입니다.

 

 꽃을 받는 이는
 사랑하는 님이 있어 더욱 행복하겠습니다.

 

 

 

오늘은 로즈데이(Rose). 연인들 간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장미꽃을 주고 받는 날이다. 아직까지도 모태솔로 부대를 전역하지 못한 혹자들은 5월 14일의 로즈데이를 장미꽃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한 상업주의가 만들어 낸 기념일이라고 '열폭'(열등감 폭발)하고 있다. 하지만 로즈데이의 유래가 어떻든 간에 연인 간의 사랑을 꽃 선물로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요즘에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선물들이 점점 물질화되어 간다지만 가끔은 이런 아름다운 꽃도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아 선물해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오늘 같이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첫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아름다운 장미 사진을 찾기 위해서 검색해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품종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웠다. 꽃잎 색깔도 다양해서 그 중에 이쁜 장미 한 송이 고르느라 나름 고심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장미 이미지 두 장을 골랐으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디 용서해주시길. 서재 이웃님들.  하필 내가 고른 장미 품종 이름이 '에스메랄다'와 '빅토르 위고'다. '에스메랄다'는 위고의 대표작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참고로 붉은색 장미의 꽃말은 '욕망, 열정,기쁨, 아름다움'이다.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던 꼽추 콰지모도와의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버렸지만 추한 외모보다는 내면의 감정에 매료된 집시 여인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품었던 에스메랄다와 잘 어울린다.

 

비록 나는 장미 한 다발 줄 수 있는 '님'은 없지만 로즈데이라고 해서 꼭 연인들끼리 장미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장미 꽃 한 송이가 주는 아름다움과 고혹적인 향기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그림과 작년 나가수 1기 때 김범수가 불렀던 민해경의 '그대 모습은 장미' 동영상으로 마무리하겠다.

 

서재 이웃분들 모두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가득하기를... ^_^  

 

 

 

 

 

 

 

르네 마그리트  「레슬러의 무덤」 1960년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5-1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맞다, 오늘 로즈데이구나..(기념일과 좀 동떨어져 살거든요)
예쁘다, 이름이 <파리의 노트르담>.. 오, 제가 좋아하는 건데..저는 몰랐..

꽃한 송이 택배로 부탁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5-17 16:24   좋아요 0 | URL
이제야 댓글 확인했어요 ㅜㅜ
제가 학생 신분이 아니라 돈 버는 사회인이었다면
정말 장미 한 다발 정도는 택배로 전해드리고 싶어요 ^^;;

잘잘라 2012-05-1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메랄다, 예뻐요^^
김범수의 장미도 좋네요^^

cyrus 2012-05-17 16:25   좋아요 0 | URL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메리포핀스님도 예쁘고 좋아요 ^^

카스피 2012-05-1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즈데이란 날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cyrus 2012-05-17 16:26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저도 이런 날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데,,
무슨 특별한 날, 기념일 같은 거 한 번 보게 되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마녀고양이 2012-05-1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장미 선물 기쁘게 접수합니다~
사이러스님께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기를!

cyrus 2012-05-20 22:12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요. 그리고 팬더님과 코알라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맥거핀 2012-05-18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데이에 장미'만' 주면 안되는 거 아시죠? ㅋ

그래도 장미 사진이 너무 이쁘네요.^^

cyrus 2012-05-20 22:13   좋아요 0 | URL
에이~~~!! 잘 알죠 ㅋㅋㅋㅋ
 
청춘인문학 -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진실한 대답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 여가수의 눈물

 

 

 

 

 

요즘 주말에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중에 '이야기 쇼 두드림'을 꼬박 챙겨 보고 있다. 대중들이 추앙하고 있는 멘토들이 출연하여 젊은 시청자에게 인생의 참된 화법을 전하는 '교양 반 버라이어티 반' 프로그램이다. 어제 '이야기 쇼 두드림'에서는 영화배우 배두나와 가수 포미닛의 현아, 소현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은 자신이 그동안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지난 날 삶의 이력들 그리고 수많은 인생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 가수 현아의 눈물 어린 고백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현아는 젋은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기 아아돌 그룹에 소속된 가수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내가 알기로는 20세도 채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어른 못지 않게 성숙미가 우러나오는 춤 실력으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본인에게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향하는 인기와 끝없는 관심이 심적으로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며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15살 때부터 가수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또래 친구들이 누리지 못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어린 소녀는 또래 친구에 비해 너무 이를 정도로 '어른의 사회'에 발을 내딛었고 치열하게 달리기만 했던 자신의 삶이 마주하게 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웠던 것이다.

 

 

 

 방황하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주소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는 '청춘 담론'이 끊임없이 화두되고

청춘, 즉 불안정한 미래에 시달려아하는 사회적으로 불행한 '88만원 세대'들이 좀 더 나은 삶을 모색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이야기 쇼 두드림'과 같이 젊은 세대들의 아픔과 고민를 들어주고 이를 치유해주고 그에 대한 삶의 해답을 제공해주는 대중적인 '멘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청춘들의 불안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대중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청춘들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은 인생 선배를 붙잡고 이런 질문들을 쏟아낸다.
안철수, 김제동, 이외수, 박경철 등 우리 사회에는 젊은 세대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어만져 줄 수 있는'멘토'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해답을 제공해주고 있다. 대중적 멘토들이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내적 고민을 감성적으로 공감해주고 두둔해주는 것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확실하게 올바른 삶으로 이끌어 나 갈 수 있는 실질적인 구제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젋은 세대들이 멘토들이 제시한 삶의 해답을 적용하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있다.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하는 삶의 해답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의 진로 설정에 커다란 혼란을 주게 된다. 삶의 여유마저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혹자의 멘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지금의 삶을 즐겨라'고 말하는 반면에 또 다른 멘토는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젋은 세대들은 어느 멘토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잉여는 단순히 아무것도 할 일 없는 팔자 좋은 백수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와 불안이 있다. 분명 남부럽지 않은 청춘을 보내고 싶은 열정이 한편으로 있지만, 무엇을 하든 간에 취직이나 현실적인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모두 '쓸모없는 짓' 취급을 받는다.  (pp 19)

 

 

현실 속에 방황하는 청춘들(여기서부터는 우리나라 '젋은 88만원 세대'를 총칭하는 말로 사용하겠다)은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진퇴양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춘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음악을 한다거나 세계 곳곳에 여행을 하는 등 다양한 문화로부터 누릴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을 맛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성세대들은 자식들이 빨리 취직을 해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사회는 성공하는 삶의 기준으로 대학교, 그것도 명문대라고 불리우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대학은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학문의 장소라기보다는 취업을 준비하기 위한 취업 양성 기관으로 되어버렸다. 대학에서 동아리 생활을 하기보다는 도서관에 눌러 앉아 토익 및 각종 자격증, 수험서를 보는 청춘들이 많아졌다. 어쩔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하는 길만이 성공하는 삶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은 무슨... 공부나 해!' , '해외 여행은 네가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어'  

 

비단 어른들의 끊임없는 눈치만 그런 게 아니다. 너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다가는 정작 취업이라는 성공적인 미래의 목표에 뒤늦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청춘들 역시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거나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게 떠올려도 현실적 제약상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방황의 시간 속에서 청춘들은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디에 나가서도 쓸모 없는 '잉여 청춘'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성세대들의 냉담한 반응은 청춘들의 말 못하는 고민과 고독을 심화시켜주었다. 이러한 고민과 고독에서 비롯된 심적 고통, 즉 청춘이라면 겪게 되는 삼중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과 SNS였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네트워크적 관계망이 형성되어 이제는 가상 공간에서도 인맥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가상 공간에서 맺어지고 만나는 인간 관계를 통해 청춘들은 서로 간의 아품을 공유하고 치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해줄 뿐이다. 청춘들은 그 곳에서도 공허한 고독감을 채워보려고 해보지만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한 회피의 행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청춘들이 고독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가상 세계에서의 탐닉으로만 빠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 이성을 만나 '연애'를 경험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으로 외로움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연애'는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으로 엮어지는 참된 인적 관계가 아닌 그저 고독과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쾌락을 추구하는 피상적인 관계가 되어버렸다. 특히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태솔로'는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갖게 되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들에게 우리 사회는 짝을 찾아 연해하도록 권하고 있다. 청춘들에게 현실 속에서의 연애 또한 결국 실현 불가능한 '환상'인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원자화된 청춘 그리고 자아적 분열감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방황하는 청춘들의 현주소는 현실감을 상실한 채 자신 스스로 '원자화'(Atomization)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청춘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를 거부하는 대신에 그저 자신만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 자기만족을 얻고자 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얼핏 들어보면 '개성적인 삶'을 추구할 줄 아는 청춘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자화된 청춘'들이 믿고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 열정, 욕망 그리고 자기만족에는 '타자'(The other)가 개입해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삶에 '타자' 그리고 '타자'가 만들어 낸 주입된 욕망을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구조의식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소수만이 타자와 구별되는 개성이 뚜렷한 삶을 살아갈 뿐 청춘들 그 누구도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는 이가 많지 않다. 청춘들이 과감하게 '개성적인 삶'을 선택한다면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낮아지게 되며 길거리에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고유한 개인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하고 있는 '획일화'된 삶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자의식의 착각은 자신을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개별자'가 되어 스스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자'아 구별되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타자'로부터의 시선과 의식을 받기를 내심 갈망하게 되는, 혼란스럽고도 분열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삶에 염두하는 인생'이 아닌 '삶을 우위하는 인생'을 살자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지우의 『청춘인문학』은 현대사회 속에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해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제목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곁들여 인용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나 같은 청춘의 독자들에게는 '인문학'이라고 해서 읽기 전부터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청춘을 위한 인문서적보다는 청춘을 위한 자기계발서에 익숙한 젋은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에서 비롯된 사유적 과정이 만들어 낸 문장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만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올바른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인도하는 사유적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그러한 과정 끝에 도달하게 된 해답의 귀착점이 자신의 삶과 적합한 지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저자가 청춘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삶'에 염두하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삶을 우위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지나치게 삶을 염두하는 인생은 사회가 만들어 낸 주입된 욕망을 고집할 뿐이며 오직 '성공의 목표'에 집착하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이다. '삶을 우위하는 인생'은 삶의 행위를 스스로 선택할 줄 알며 선택에 대한 삶의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통해 청춘은 외부로부터 침범한 욕망의 환상들이 만들어 낸 '삶의 거품'들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것 또흔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세상이 대체 어떤 세상인가를 알고 있어야 하며 주체적으로 삶 자체를 탐구하고, 고민하고, 느껴보려는 자신만의 공부가 필요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2-05-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난도 씨보다 좀 더 어린,이제 40에 접어든 이들은 야! 우리도 괴롭다! 하고 소리를 빽 지르는 책을 내세우는군요.제목은 그래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확실히 40대 후반인 김난도 연배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김난도 씨는 어찌되었든 젊은이를 위로하려고 하는데 이제 40이 된 이들은 청춘들과 서로 손가락질하며 싸우려 드니 이거야 원...

cyrus 2012-05-17 16:28   좋아요 0 | URL
최근에 책 검색하다가 노자님이 언급하신 책 봤어요.
요즘 사회는 젋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 세대들도 힘들고 슬프게(술푸게)
할 정도로 힘들어진 거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젋은 세대들에게 무조건 가르칠려고 하거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40을 맞게 된 기성세대들도 나름의 고충, 고민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
 
목계장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신경림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야, FTA가 뭐고?"

 

최근에 중간고사 끝난 뒤에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 나들이 할 겸 팔공산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팔공산까지 차로 운전해서 가는데만 1시간 이상 족히 걸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날이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이틀 전인 주말이었고 나들이하기에는 엄청나게 좋은 날씨였다. 수많은 차량 행렬들이 팔공산 쪽으로 몰려 있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한증막 같은 차 안에 있었던 친구 일행들은 여행길의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수다의 재미로는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뒷좌석에 자리잡은 친구들은 벌써 잠에 빠져들었고 재수없게 운전석을 앉아야하는 이 불행한 친구는 계속 운전만 열심히 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간만에 여유롭게 창 밖의 풍경을 빤히 쳐다봤다. 차 밖 풍경은 똑같았다. 넓은 밭, 산 그리고 시골 마을이 보였을 뿐이었다.

 

팔공산으로 향하는 내내 20분 동안 침묵의 시간이 이어져오다가 갑자기 운전하던 친구 녀셕이 뜬금없이 침묵을 깨뜨리는 질문 한 마디 했다. "야, FTA가 뭐길래 농민들이 왜 반대를 하노?"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운전하고 있는 친구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에 몇 초 간 당황했다. 갑자기 웬 'FTA'?  

 

그래도 친구의 질문에 나름 내가 알고 있는 FTA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질문했던 친구가 시사상식에 많이 약한 녀석이라 어렵지 않은 용어로 설명하려고 했다. 무역을 통해 거래하는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모든 상품들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무역협정이며 이 협정 체결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업종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이 있다고 간략하게 설명해서 대답해주었다. 거기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으로 농업 및 축산업으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친구는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렇구나, 알았다'라고 간단하게 이해했다는 의미로 대답해버렸다. 20분 만에 침묵을 깨뜨린 대화는 단 3분 만에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우리 모르게 잊혀져가고 있는 농민들의 삶 그리고 울분

 

지금 다시 그 때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과연 그 친구가 'FTA'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FTA'는 그 협정 자체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해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아주 중요한 경제협정이며 정부의 체결 추진에 대해서 반대적 여론이 많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FTA'에 대해서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FTA' 협정 자체의 내용만을 순전히 이해했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DTA' 협정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건 그 협정 'FTA'로 인해서 경제적 손실을 받아야하는 수많은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있으며  또한 그들이 내는 절망의 목소리를 들어봤냐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3월 5일, FTA가 정식적으로 발효된 이후로는 하늘을 찌를듯한 FTA 반대 여론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게다가 중요한 총선이 진행되었고 국민들이 내린 결과를 받아들인 여야는 총선이 끝난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적 파행이 이어져나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FTA 문제 현안은 점점 뒤로 밀려나간 듯 하다. 비단 FTA 문제뿐만이 아니다. FTA 때문에 울어야했던 농민들 역시 잊혀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신경림처럼 고단한 민중의 삶에서 시재(詩材)를 찾으며, 농민의 피로와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이 없을 것이다. 특히 급속도로 변해나가는 도시화 및 경제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신경림처럼 농촌 현실을 그려내는 젋은 시인이 등단하는 모습을 이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경림의 시는 문학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특히 1971년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이면서도 대표작이 된「농무(農舞)」속 농촌의 비극적 현실과 오늘날 농촌의 현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1960~1970년대 산업 사회에서 한국 사회는 큰 변화에 직면했다. 근대화를 주도하였던 정부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채택했고, 이에 따라 농업은 한국 사회의 주변부로 밀러나기 시작했다. 저곡가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그들의 피와 땀이 바쳐진 농작물을 싼값에 내다 팔아야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나섰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그들은 도시의 주변부에서 빈민층을 형성하거나 싼값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농촌 현실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FTA 협정으로 인해 외국 농작물들의 수입이 늘어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땅에서 자라난 국내 농작물들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농민들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농민들은 오랫동안 해온 농사일에 대한 보람이 사라질 것이다, 농촌 현실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만이 남을 뿐이다.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pp 12~15)

 

 

「농무」에서는 농민의 한(恨)은 신명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신명은 분노를 삭이면서 형설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흥겨워야 할 춤사위는 슬프고 처절하다. 그것은 농민이 온몸으로 겪은 농촌의 현실이었다.

 

 

 겨울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명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뱃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헤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pp 8~11)

 

 

「겨울밤」은 「농무」처럼 현실에 대한 절망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그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오히려 암울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고뇌와 분노를 새하얀 '눈'으로 덮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서 분노에 차더라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은 농민 본인들 밖에 없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일수록 겨울 밤을 보내는 농민들의 고뇌는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가 깊어져만 갈 뿐이다.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밝혀 줄 '작은 불꽃'마저 사그라진다면...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고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pp 16)

 

 

옛날에는 현실에 대해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농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마음놓고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도 없는 일처럼 꾹꾹 덮어두는 게 제대로 세상을 사는 방식임을 가르치고 또 익히던 시절. 그야말로 가난이 죄라서 문학예술마저 그 가난을 드러내기를 주저했고, 오히려 외면했던 시절이었다.

 

'농무'라는 시에서 조근조근 따지듯이 되새겨낸 세계는 현실의 사실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문학사적 ‘사건’이 될 만했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할 수 있었다. 얻어 쓴 조합 빚과 술집 색시의 분 냄새와 담뱃진내 나는 화투판이 소외의 장막을 활짝 걷어 젖히고 신선한 시어가 되어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은 화두를 접한 '못난 놈'들이 비로소 소줏잔을 들이키며 당당히 어깨를 흔들 수 있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에서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인식은 이렇게 신경림의 시에서 비롯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작은 불꽃'에서 피울 수 있었다. 이 '불꽃'을 통해서 우리 대중들은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노년층 농민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농촌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도시로 향하고 있다. 더 이상 농민들의 현실은 더욱 암울해질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경림의 시가 만들어 낸 '작은 불꽃'만큼은 절대로 사그라져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잊혀진다면 놈민의 감정과 의식을 대변해주고 농촌의 암울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사라지게 되리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2-05-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 구절만으로도 기억에 콱 박히는 시입니다.처음 읽을 때 이 구절이 그렇게 재밌어서 혼자 웃었어요.

cyrus 2012-05-13 23:48   좋아요 0 | URL
시구만 본다면 재밌지만 막상 그 의미를 현실을 비추어 헤아려보면
씁쓸하죠? ^^;; 이런 시가 오랫동안 읽혀지고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LE - Single Spark (2disc)
박광수 감독, 문성근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주 '노사관계론' 수업시간에는 노사관계의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한 시청 자료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 이어서 박광수 감독의 1995년 작「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게 되었다. 전태일. 그 이름 석 자는 수없이 많이 들어봤어도 짧은 인생을 자신과 함께 했던 노동법 책과 함께 화염에 온 몸을 던졌던 그 유명한 죽음 이외에는 정확히 그의 삶에 대해서 몰랐다. 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도 한 번이라도 읽은 적도 없었다.

 

지금 내가 수학하고 있는 '노사관계론' 수업은 경영학과 3학년 전공과목이다. 올해 대학교 3학년이라면 10학번, 즉 1991년에 태어났다. 영화를 시청하기에 앞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사관계론' 수업을 펼쳐지고 있는 강의실 안에 있는 10학번 중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2년 전에 전태일 사망 30주년을 맞아 그의 삶, 그리고 열악한 노동현실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으로 고발하고자 했던 뜨겁기만한 족적들을 다시 한 번 기리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는 시기라서 전태일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알리고자 했던 노동문제에 대한 현실고발은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산업화 시대가 진행됨으로써 생겨나는 물질만능주의 팽배와 빈부 격차의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쏘공』이 지금까지도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할 정도로 읽혀지는 것처럼 전태일이 고발하고자 했던 현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故 조영래 변호사의『전태일 평전』 출간, 1995년에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그리고 최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사망 30주년에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조명받게 된 2010년을 제외하고는 '전태일'의 삶과 업적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부각받은 적은 없었다. 단지 '비정규직'이나 극단적으로 파국에 치닫는 노사투쟁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면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이름을 빌어 노사관계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켜주는 데 그치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게 되었다. 정작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절규에 가까운 현실고발적인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주지 않은 채 말이다.      

 

 

 

 

 

 

 

'전태일'에 대해서도 모르더라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제일 기억 남는 장면을 꼽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이구동성 전태일이 분신하게 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온 몸에 화염에 휩싸이는 전태일을 목격했을 뿐, 전태일이 그 당시 자본가들 그리고 노동문제에 무관심한 채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무지의 관객들에게 향하는 규탄의 목소리, 더 나아가 그가 왜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는 이전의 과정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잊혀져 버리게 된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청계천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22살의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보장하라"를 외치며 시장 한가운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청년은 다음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든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노동자'는 없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는 '노예'가 있었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가 있었을 뿐이다. 전태일이 '불꽃'이 된 순간 모든 게 변했다.

 

1970년은 박정희 정권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였다. 표면적으로는 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은 많은 노동자들에 인간적 삶을 담보로 진행되었던 보이지 않는 착취에 의한 성장이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당시 암묵적으로 이루어 졌던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노동현실을 죽음이란 수단으로 고발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의 청계천에서는 닭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열서너 살의 어린 여공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14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한참 성장할 나이에 여공들이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작업장에서의 일한 대가는 고작 50원뿐이었다. 돈을 벌어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전태일의 가슴엔 어린 여공들의 현실이 언제나 남아 있었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점심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 여공들을 위해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에서 미아리까지 걸어 다녔던 청년이었다.

 

어느 날 피를 토하며 쓰러져 그냥 버려지는 여공을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뜬다. 영화 속에서는 비록 짧게 지나갔지만 전태일은 피를 토하면서 몸이 망가질 때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처지에 비탄한다. 특히 양손에 검붉은 핏덩어리를 씻어내지 못할 정도로 공장 내 수도시설마저 갖춰지지 않은 현실 앞에서 절망에 찬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러한 소녀의 절망을 몰래 훔쳐보는 전태일의 장면은 그가 노동 개선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는 중요한 극적인 장면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청계천 노동현장에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법적으로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휴일 시간, 건강 지침이 마련돼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어렵사리 구한 근로기준법 책을 밤새 읽고 또 읽었다.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 밤새 읽어도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근로기준법 조문을 해석하는 게 유일한 하루의 낙이었다. 이후 생각이 맞는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를 결성하기도 하고, 노동청에 건의를 하며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사업장 안에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며 노동청과 신문사를 찾아가지만 전태일과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분신이란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 당시 인간다운 대접도 못 받는 노동자들에 현실을 고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70년대의 노동자들은 성장의 결과에 대한 분배 및 재분배에서도 정당한 수혜를 받지 못했으며,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적 대우 또한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렇듯 전태일의 외침은 바로 산업화의 위용에 가려지고 억눌려온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으며, 현실이 참혹했던 만큼 그 절규에 담긴 아픔과 공감, 그리고 설득력 또한 결코 작지 않았다. 전태일이 외쳤던 '8시간 노동'과 '휴일 보장'은, 일하고 또 일해야 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였다. 노동운동가이기에 앞서 사람답고자 했던 한 인간의 '인간선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고 또 노동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물론 노동환경은 달라졌다. 국민소득이 오른 만큼 노동자의 임금은 올랐다. 적어도 배를 곯는 사람은 대부분 사라졌다. '보릿고개'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도 완화됐다. 근로기준법이 부분적으로 정비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허울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는 짙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한층 각박해졌다. 해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힘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더 힘든 세상이다. 전태일이 우리에게 외치고자 했던 그 목소리를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부유한한 환경에서 물질적 도구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닿지 않는 외침을 온몸으로 불태운 그의 비장한 투쟁은, 비장해야 할 순간에 더없이 온순한 우리들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남긴다. 비록 그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목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중들이 '전태일' 이름 석 자 그리고 그의 강렬했던 죽음보다는 그가 우리에게 외쳤던 그 목소리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2-05-08 15:52   좋아요 0 | URL
글을 읽다보니 소시적에 보았던 <전태일 평전>의 내용들이 생각이 납니다.(영화는 안봤지만요.) 최근에 전태일의 어머님 이소선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어머니>라는 영화도 나왔었지요. 이제는 전태일도 그 어머님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만...

cyrus 2012-05-10 01:06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난 뒤에 <전태일 평전>을 한 번 읽어보고 싶었어요,
요즘 과제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다음으로 미뤘지만요, ^^;;

꽃도둑 2012-05-10 15:03   좋아요 0 | URL
전태일 평전 읽고 진짜 많이 아주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암튼 책 내용은 너무 아팠어요..ㅡ.ㅡ

cyrus 2012-05-12 21:29   좋아요 0 | URL
전태일 평전도 꼭 읽어야겠군ㅇ. 역시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꽤 많으시네요. 사실 영화만으로 전태일의 온전한 삶을 알기에는
부족한 감이 들었거든요. 평전 꼭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