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알라딘에 로그인하여 이웃님들의 서재를 방문하면서 글 읽고 댓글을 남기고 있던 중이었다. 한창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 복학하게 되는 녀석인데 수업 시간표 편성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통화하는데 만 30여 분 족히 걸렸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네이트에 접속하여 시간표 편성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항상 매 학기 전에 수업 시간표를 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기간만 되면 신경이 예민하다. 어떤 과목을 들어야할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 시간과 공강 시간의 정도까지 따져봐야 한다.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이 있다면 하루에 두 과목 수업을 듣는 건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운 없으면 하루에 세 과목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루에 세 과목 듣는 데 있어서 공강 시간만 적절히 남아 돈다면 별로 어려운 점은 없지만 문제는 하루에 세 과목을 한꺼번에 시험을 친다는 것은 시간적, 정신적 여건상 부담스러운 스케줄이다.  

 

 이번에도 시간표를 짜다보니 하루에 세 과목을 들어야 할 꼴이 되었다.  대부분은 그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는 과목을 선택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순전히 내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목적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이랑 그 친구가 제안한 과목 한 과목의 시간이 중복되었다. 나름 고심 끝에 공간 시간이 적절히 나올 수 있게 편성했지만 하루에 세 과목을 들으어야하는 스케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듣고 싶어했던 과목은 학과와 관련된 전공이 아니라 교양과목이다. 과목 이름이 'DU 문화지대'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 내에서 시행되는 일종의 문화체험 강의라고 보면 된다. (과목 이름에서 'DU'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니셜이다)  일반적인 강의실 수업이 아닌 문화에 종사하는 외부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하는 교양 수업이다.

 

 내가 알기로는 DU 문화지대 강연에 참여한 명사만 해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많다.

 

 작년 학기에는 문화평론가 김갑수김용택 시인의 강연이 있었고 이 밖에도 도종환 시인, 가수 안치환, 칼럼니스트 김규항 등이 우리 학교에 강연 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강연뿐만 아니라 클래식, 국악, 재즈, 무용, 연극도 공연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화적인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유익한 과목이면서도 공부할 필요 없이 점수 따기 쉬운 인기 있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목은 딱히 교재도 없다. 그냥 강연을 듣거나 공연을 감상하고 난 뒤에 정기적으로 감상문을 작성하면 된다. 그리고 이 과목은 학점이 아닌 'T/F'식으로 평가를 한다. 강의 시간에 결석이 많다거나 감상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바로 'F(False)', 즉 '불합격'으로 판정받으며 감상문을 제 시간에 제출하고 오픈 테스트로 이루어진 정기고사 때 어느 정도 준비만 잘 하게 된다면 'T(True)', '합격'을 받을 수 있다.  

 

 이 수업이 4학년 학생들은 신청할 수 없게 되어서 3학년이 시작되는 이번 학기만큼은 'DU 문화지대' 과목을 꼭 듣고 싶었다. 아직 본격적인 수강 신청하는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수강 신청하는 것도 학부생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얼른 수강 신청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학교에는 'DU 문화지대' 외에도 'DU 영화지대'라는 이름의 과목도 있다. 전자의 방식과 유사하다. '영화지대' 과목에서는 매주 영화 한 편씩 감상한다. 영화만 보는 과목이라... 영화를 좋아하는 학부생들에게는 매력적인 과목이다. 하지만 이 과목 역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감상문을 작성하고 제출해야 한다. 사실 이 과목도 같이 듣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음 학기에 수강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온 걸로 봐서는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을 뿐이지만, 1개월이라는 시간 역시 금방 지나가는 법이다.

 

 나름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취업 스펙을 위한 공부보다는 교양에 대한 열의가 무척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2주 전부터 읽고 있었던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하는 '지적생활'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겸해서 '지(知)의 거인'이라고 불리우는 다치바다 다카시의 <두뇌를 단련하다>를 읽고 있으니 젋었을 때라도 교양 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교양'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변화되고 있고 새로운 현상과 방식들이 등장하는 과학, 컴퓨터 기술 관련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옛 지식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들도 무시해서는 안 되며 특히 문과와 이과 간의 교양적, 문화적 격차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른 영역 지식에 대한 배타적인 경향은 편협된 교양의 안목을 가질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사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접했다.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저자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만든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였다. 한창 독서를 좋아했떤 시기라 책 속에 소개된 저자의 고양이 빌딩 속 서재가 부러우면서도 그의 독서법을 마음 속에 새겨넣기도 했다.

 

 

1.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 도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 도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주제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시간은 금리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가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 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곡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신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 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율이 아주 높다.

 

 

12. 웬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안 좋은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안 좋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보다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중에서, 청어람미디어 -

 

 

 

 특히 마지막 14번의 내용은 가슴 속에 지적 호기심의 열의가 들끊였던 사춘기의 심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대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전공과목을 공부하더라도 여러가지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 영역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책 읽는 생활은 꼭 유지하리라 다짐했었다.

 

 이제 대학생의 일부 능선을 넘은 지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서 교양의 안목을 키우는 독서를 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다 정작 살아가는 데 유익한 교양을 위한 스펙마저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예전의 대학 생활을 반성할 수 있었다. 

 

 도쿄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을 토대로 구성된 <뇌를 단련하다>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학생들에게 교양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1년 정도 유급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카시의 제안은 올바른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업에 대한 열망이 강렬한 젋은이들로 가득한 우리나라 사회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교육 현장에서는 다카시의 1년 유급은 차라리 토익이나 자격증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써야할 판이다. 요즘에는 토익, 공무원 시험 준비와 같은 스펙 준비 때문에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미리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서 사회 생활을 하고 싶은 게 모든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마음이다. 준비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취업에 대한 주위 시선들의 압박이 부담스러워지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경제적 형편도 만들지 못하게 되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취업 준비생이 처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러할 일은 없겠다만) 취업이 강조되는 사회 구조가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다카시의 제안처럼 유급은 아니더라도 일부러 교양 실력을 쌓기 위해서 휴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니면 올바른 교양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이나마 그러한 시간적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고 스스로 준비할 수 밖에 없다. 다카시의 독서법 14번처럼 말이다. 젋었을 때라도 책 읽는 시간은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독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 단, 만날 친구들이랑 극장에서 영화만 보는 게 진정한 문화생활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극화된 것을 본다거나 클래식 공연에 가서 감각을 전율케하는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드는 것도 좋다. 아니면 한적한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한다거나...

 

 지금까지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나 웃어른한테 이런 말을 수십번 넘게 들은거 같다.

 

 "대학생활이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 시절동안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놀아라. 대학생활 제대로 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대학생활을 학점으로 스스로 평가하자면 학업은 A+, 노는 거는 A0에서 B+ 정도 그리고 연애는 정말 최악인 F학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학부 생활이 남아 있어서 대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못 하고 있다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정말 남은 대학생활, 후회하지 않는 좋은 기억과 경험들로 가득한 시절로 만들고 싶다.

 

    

 

 

 

 * 뱀꼬리

 

 

 

 

 

 

 우연히 번화가에서 놀다가 대구에서 '노르트담 드 파리' 내한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광고를 보는 순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마저도 두 눈으로 못 본다면 남은 생에 과연 뮤지컬이라는 걸 볼 기회가 있을까나...

 

 이번 설 연휴에는 세뱃돈을 많이 받게 되어서 어디에 쓸까 고민중이었는데 그 돈으로 뮤지컬 공연이라도 봐야겠다.

 

 그런데 이런 건 여자친구랑 같이 보면 참 좋을텐데...   일단 뮤지컬 보자고 (친)동생을 꼬셔봐야 겠다. (참고로 동생은 여자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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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01-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수강신청하느라 눈이 벌게졌던 생각이 나요. 저도 전공 세 과목 하루에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험치느라 거의 울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힘들고 보람도 있던 시간들이었어요. 대학교 때 교양으로 심리 강의를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해 주셨는데 너희들 지금 행복하냐고, 아니라고들(ㅋㅋ) 하니까 그럼 앞으로 별로 행복할 일 없다고 했던 얘기가 지금도 가끔 기억납니다. 연애는 1년이나 남았잖아요. 희망을 가지세요. ^^

cyrus 2012-01-27 19:08   좋아요 0 | URL
영화평론가의 심리 강의라..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었을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영화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을거 같네요 ^^

이번에는 나름 시간표를 잘 짰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하루에 세 과목
시험치는 건 부담스럽네요 ㅎㅎ

stella.K 2012-01-2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오리지널팀이 5년만에 내한해서 공연한다더군.
그쪽에서도 하나? 서울은 곧 공연임박인데. 아, 서울 원정 오나?
공연비 만만찮을텐데 그렇다면 세뱃돈 역시 만만찮게 받았다는 말이네.
동생을 꼬실 정도면.ㅋ 혹시 동생 실패하면 나는 어떤가?
나이 많아 싫겠지?ㅜ 농담이야.ㅋㅋ
그건 정말 볼만할 것 같아. 한국팀 공연 봤는데 정말 잘하더군. 꼭 봐.^^


cyrus 2012-01-27 19:13   좋아요 0 | URL
3월달에 대구에서도 공연한데요. 그런데 누님도 한사람님도
잘못 알고 계시네요ㅋㅋㅋㅋ 여기서 동생은 친동생에요 ^^
그런데 서울에 직접 가서 공연을 보고 싶네요. 비용이 많이 드는 것만
아니면요ㅠㅠ 아무래도 3월달에 개학 시즌이라 공연 볼 수 있는 시간이
될지 모르겠고요.


stella.K 2012-01-28 12:24   좋아요 0 | URL
헉, 친동생이라는 거 알고 있었는뎅.
네가 동생 꼬신다고 했고.ㅋ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동의보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한국인치고 '동의보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무수한 건강보조식품 광고와 수많은 한의학적 처방에는 꼭 '동의보감에 의하면...'이라는 식으로 단서가 붙여져 있다. 그만큼 <동의보감>은 건강한 삶을 위한 비결이 담겨져 있는 책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그런데 정작 동의보감이 다루고 있는 게 무엇인지 혹은 그 책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가장 대중적인 의학서이면서도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도 자리잡은 동의보감이 한국인의 일상과 동떨어진 의학서로 전락한 셈이다. 이는 곧 귀에 쏙 들어오도록 동의보감을 쉽게 풀어 쓴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동의보감>에 나온 치료법이라는 말에 쉽게 믿어버린다. 
 필자의 어머니는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 식생활, 약초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요즘은 일 하시느라 많이 덜해졌는데 작년처럼 가사 생활을 하셨을 때만 해도 건강 관련 책 두 세 권을 구입해서 읽고 그 내용을 따로 메모하곤 했다. 이렇게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어머니는 책에서 언급되는 '동의보감'에 대해서 지적 호기심(?)을 가지셨나 보다. 
 한 번은 필자에게 시중에 구할 수 있는 <동의보감>을 책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알라딘 서지검색으로 '동의보감'을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의학 관련 책이 꽤 많았다. 그런 책들 대부분은 실제 '동의보감' 속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동의보감' 속 내용을 국역한 책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기에는 조금은 망설였다. <동의보감>의 구성은 내과에 관한 내경편, 외과에 관한 외경편, 각종 질병을 소개하는 잡병편 등으로 세부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국역한 내경편만 해도 페이지 수가 1000페이지를 넘기 때문이다. (가격은 6만 원 정도인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 속에서 과연 생활하는 데 있어서 적합한 건강을 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런지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도 했다. 결국 필자의 설득 끝에 어머니는 그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동의보감>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몰랐고 <동의보감>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기에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리라이팅'한 <동의보감>에 눈길이 갔다. 우리 어머니 아니었으면 이런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동의보감>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필자의 어머니처럼 건강하기 위한 비결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골랐다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6만원 상당의 <동의보감> 내경편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저자의 이력을 알고 있다면 이 책에 대해서 적잖이 실망하지 않으며 오해하지 않을테지만 단순히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건강 비결 방법의 핵심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동의보감> 텍스트를 통해서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유의 방식을 찾고자 한다.  

 

 


 사람의 몸이 곧 '자연'이다 

 

 

 

 

 

 

<동의보감> 첫 장 '내경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신형장부도] (pp 15)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한르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중략) 하늘엑 이십사기(二十四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중략)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듯 사람에게는 모발이 생겨나고, 땅속에 금석이 묻혀 있듯이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바탕으로 잠시 형(形)을 빚어 놓은 것이다.

('내경편' pp 10, 고미숙 pp 20 재인용)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의 몸에 대해 설명하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을 넣었다. 그림의 제목은 ‘신형장부도’이다. 신형에 오장육부를 함께 그려 넣은 것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사람의 옆모습이다. 옆으로 그려야 오장육부가 잘 보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머리에서 꼬리뼈 쪽으로 이어진 구조물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몸 안을 들여다보면 횡격막을 중심으로 오장육부가 배치되어 있다. 물론 각 장기의 모양이나 위치는 근대 서양의학에서 볼 수 있는 해부도와 다르다. 이는 실제의 장기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함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각 장기가 행하는 기능과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배 부분이다. 배는 마치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는 호흡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또한 배꼽도 실제보다 과장되게 크게 그렸다. 이는 배꼽이 우리 몸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배꼽은 단전이 위치하는 곳이어서 호흡에 중요한 부위가 된다.
 허준은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은 것이고 발이 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팔다리와 장부 등 모든 몸의 모습도 자연의 그것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신체를 단지 질병과 치료를 위한 대상이 아니라 몸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활동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과 자연의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자연을 본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몸과 삶의 참주인이 되라


편작이 병에는 6가지 치료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다. 교만하고 방자하여 이치에 따르지 않는 것이 첫번째 경우다.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재물을 중시하는 것이 두번째 경우다. 먹고 입는 것을 챙기지 않는 것이 치료할 수 없는 세번째 경우이며, 음양과 장기(藏氣)가 다 인정되지 않는 것이 네번재 경우다. 몸이 마르고 약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다섯번째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며,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 여섯번째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고 하였다.

- 동의보감 [잡병편], '변증' 중에서, 고미숙 pp 62 재인용 - 



 고대 중국의 유명한 명의(名醫)로 알려진 편작이 말한 불치의 이유는 질병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새겨들을만한 충언이다.
 지금도 의학 기술이 발달하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신약이 탄생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하기가 수쉽지 않은 질병들은 약의 내성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될 것이라는 미래의 전망도 있지만 지극히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치료와 약이 많다고 해도 제 몸 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고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신체와 정신을 위협하는 질병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질병을 마주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습관과 생활패턴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히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느 병원 무슨 과에 가서 진찰받을 것인가만 생각한 뒤 이후의 과정은 전문가에게 맡겨 버린다. 자신의 병이 뭔지 알기 귀찮고, 무섭고, 짜증난다. 그저 후딱 처방받으면 고쳐지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이 책의 저자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주하는 질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안의 치유본능을 깨울 수 있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체에 대한 서양의 담폰을 짚어가며 동양의학 담론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부각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의학에선 질병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과 인생, 그리고 우주로 연결되는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는 데 반해 서양의학에선 삶에 필수적인 질병과 죽음을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해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의사들을 위한 어려운 의학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직결돼 있으며, 모두가 의학적 지식을 누리게 하자는 뜻이 담겨져 있는 우리나라 의서의 '종결자'라고 볼 수 있다. 선조는 허준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하면서 우리나라 백성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약재들의 명칭과 분류를 널리 보급할 것을 당부했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이 의술의 힘에 기댈 수 있기를 바라는 선조의 민본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동의보감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치유본능을 일깨우며, 나아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자 연구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동양의학의 우수함만을 고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같은 의술 전문가들에게 의학의 영역을 넘겨주어 자기 몸과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없는 것이 서양의 의학 담론이라면 동양의 의학 담론에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무지의 늪'과 질병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공포에서 벗어난다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불치병을 극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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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1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경편에 있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네요.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좋은 책 소개감사!

cyrus 2012-01-25 20:37   좋아요 0 | URL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답니다. ^^

굿바이 2012-01-1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씨가 공부를 하면서도 몸을 쓰는 일(요가)에 참 열심이다 싶었는데
이 책을 쓰셨군요. 정말 <동의보감>이야말로 저자의 삶의 방식(정신이든 육체든 스스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책 소개 잘 봤어요~!

cyrus 2012-01-25 20:42   좋아요 0 | URL
동의보감은 단순히 신체 건강을 위한 책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강조하는
책이라는 것을 고미숙 씨의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이 책으로
동의보감의 진면목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좋겠어요. ^^

saint236 2012-01-1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잘못봤나요? 어제 밤에만 해도 동의고감이라고 적으셨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 심오한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고민을...

cyrus 2012-01-25 20:43   좋아요 0 | URL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목에 오타가 있길래 바로 스마트폰으로
고쳤답니다 ㅎㅎ

잘잘라 2012-01-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료할 수 없는 병 여섯가지,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동의보감>의 의의에 대해서도,
정말이지 추천 추천 백만번 추천합니다.

cyrus 2012-01-25 20:44   좋아요 0 | URL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포핀스님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에요.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된 책이라 좋아요 ^^

차트랑 2012-01-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님의 글발은 대책이 없을 정도로 좋더군요 ㅠ.ㅠ
동의보감에서는 또 그 어떤 언어의 마술을 보여줄런지...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몸을 따로 분리하지 않은 동양의 생각을
많이 이해하고 있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강검진의 결과에는 이상이 없는데
몸은 엉망으로 아픕니다.

저 말고도 아와 같은 경험을 하시고 계신분들 계실듯 합니다.
동의보감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리뷰들을 정말 잘써주셔서 장바구니에 허리 휩니다요 ㅠ.ㅠ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cyrus 2012-01-25 20:47   좋아요 0 | URL
고미숙 씨의 글은 어려운 고전의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좋아요. 벌써부터 다음에 나올 책이 기대되네요 ^^

꽃도둑 2012-01-2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부산 인디고서원을 아시는지요?
전에 고미숙 샘께서 강의차 오셨는데 저는 그 분을 가까이게서 뵈었답니다.
유연하신 분이었어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신 게 눈에 보였지요.
몸과 삶의 참주인이 되어라! 는 말은 아주 감각적으로 들리는데요?..^^
고미숙 샘께서는 아무래도...몸의 철학에 깊이 경도된 듯 하네요...ㅎㅎ(농담 반,진담 반)
서양의학은 부분부분을 면밀히 관찰하고 치료하는 반면, 동양의학은 전체를 유기적 관계로 본다는 관점에서 어떤 의도로 책을 쓰셨는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사람의 몸이 곧 자연이다 라는 말에 수긍이 가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2-01-26 21:16   좋아요 0 | URL
부산 인디고 이름은 들어봤어요. 고미숙 씨의 강연을 직접 보셨다니
아주 유익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그 분의 강연을 TV로나마 봤어요.
참으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시더라고요 ^^
 

 

 

 

 

 

 

 

 

 

 

 

 

 

 

 

 

 

 

 

 

 영어 표현 중에 '지적정직(知的正直, Intellectual Honesty)'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진리에 충실한 마음'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은 솔직함을 뜻한다. 배움에 임할 때 지적정직의 원칙을 세운다면 적당히 짐작해서 답안을 작성하는 일을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틀렸다고 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짐작으로 어설프게 아는 것이나 아는 척하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고치고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pp 17)

 

 

 

 

 

 처음에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오늘은 이 책 속 문장이 내 머리를 후려치는구나.

 

 지적정직의 원칙, 앞으로 공부하고 독서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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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기를 주저하지 마시라...
물으면 그 순간만 쪽팔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묻지 않으면 계속 쪽팔리는겨~!!! ㅋ"

저 역시 묻는 순간에만 쪽팔리려고 노력 중 입니다 ㅠ.ㅠ

cyrus 2012-01-16 19:04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혹시 직업이 교사이신가요?
랑공님이 학생들에게 해주시는 말도 머릿속에 새겨두어야 할 거 같은데요.
좋은 내용의 댓글 감사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2-01-1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머리도 후려치네요... ^^

처음 알라딘 서재 시작할 때, 모르는 용어나 개념, 문장이 너무 많아서
정말 창피하고 말도 못 하곤 했던 기억이 문득나네요. 아는척하지 않는 솔직함,
기억하겠습니다.....

cyrus 2012-01-16 19: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도 저는 마고님 서재에 들리면 심리학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는데요. 심리학에 관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여
쓰신 페이퍼가 좋아요 ^^

차트랑 2012-01-1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생들과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로부터
외딴 섬의 낙도에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어떠시냐는 제안을 자주 받고요 ㅠ.ㅠ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ㅠ.ㅠ
 

 

 

 일진곰, 왕따곰, 선생님곰

 

 지난 주 일요일, 새해 첫 날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사마귀 유치원' 15회에서 학교 폭력 문제를 풍자하는 소재의 개그를 선보였다. 거기서 동요 '아기 곰 세 마리'를 패러디한 노래가 불러졌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곰 세 마리가 학교에 있어 / 일진곰, 왕따곰, 선생님곰

 

 일진곰은 괴롭혀, 왕따곰은 괴로워, 선생님곰은 나는 모른다

 

 으쓱으쓱 자란다

 

 

 

 TV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비록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든 패러디 가사라고 하지만 그 짧은 가사 안에는 현재 학교 안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진들은 자신보다 약한 왕따를 괴롭히고, 그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왕따들은 학교 생활이 괴롭기만 하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 왕따 문제를 직접 발 벗고 나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모른 척 할 뿐이다.

 

 

 

 

 침묵과 은폐가 만들어 낸 학교 폭력의 카르텔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폭력, 왕따 문제에 무조건 눈 감고 쉬쉬한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을 뿐이지 오래 전부터 학교 폭력, 왕따 문제를 근절하는 데 앞장 섰던 분들이 많았으며 필자가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때까지만해도 학교 내부 안에서는 학교 폭력, 왕따 문제를 방지하자는 홍보용 벽보 및 스티커를 볼 수 있었으며 1년 한 번씩은 각 학급 내에 학교 폭력 및 왕따 관련 실태를 조사하기도 했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학교 폭력 및 왕따 문제를 근절하려는 각종 훈육 프로그램과 홍보는 시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 폭력 및 왕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피해자 및 가해자 학생들 중심의 사후 처리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학교 폭력 및 왕따 실태를 조사하고 난 뒤에 간단하게 훈육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었지만 학교 폭력의 심각성만 부각시켜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를 당했더라면 학생부장 선생님이나 상담실에 찾아오라거나 학교폭력 피해 관련 상담전화 번호만 알려줬다.

 

 정기적으로 학교 폭력 실태 조사를 하고 폭력, 왕따 방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도 일진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왕따는 자칫 자신의 처지를 선생님들에게 신고하면 피해가 커질까봐 신고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을 돌봐주고 보살펴야 하는 선생님들은 '나 몰라라' 한다. 성적과 대입을 중요시하는 교육 시스템 때문에 선생님들은 학교 폭력, 왕따 문제보다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 반에 3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을 돌봐야하는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 번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학교 폭력, 왕따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벅차기만 하다.

 

 그러나 학교 폭력 문제를 선생님들이 직접 나서서 발본색원(拔本塞原)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학교 내 폭력과 왕따 문제는 완전히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진다.

 일진들은 더욱 기가 세져 약한 학생들만 골라 괴롭힌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으쓱한 곳에서 폭행을 가하며 그것을 목격한 동급생들마저도 자신들도 되려 피해받을까봐 모른척 한다. 그럴수록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폭력에 대한 상처가 깊을수록 온전한 학교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의 처한 상황을 알리고 싶어도 일진들의 보복이 더욱 두려울 뿐이다. 그들의 주먹질과 빌길질이 두려워도 가족과 선생님들에게 알리지 못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직접 말 하지 않은 잘못된 관계를 모른 채 교실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관계의 진실을 눈치 챘어도 수수방관(袖手傍觀)한다.

 결국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는 일진, 왕따, 선생님들 간의 암묵과 은폐로 구성된 삼각 카르텔에 의해 만들어지고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담임·가해학생 부모 “당할만하니 당했겠지” 눈귀 닫아]

 

 한겨레 2012년 1월 12일

 

 

 

 

 

 

 

 학교라는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권력의 암묵적인 영향  

 

 

 

 

 

 

 

 

 

 

 

 

 

 

 

 

 

 

 

 

 오늘 자 한겨레에 실린 왕따 피해자 ㄱ군를 둘러싼 가해자들과 학교 당국의 모습은 학교라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왜곡된 권력 의식 구조와 거기서 잉태된 폭력 행태가 암묵적으로 횡행하는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속에서 창조한 엄석대의 교실을 연상시킨다.

 단, 최근에 불거진 학교 내 일진이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급장 엄석대는 단순히 폭력을 내세우는 억압적인 방법만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협박, 때로는 회유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의 성원을 굴복시킨다. 특히 자신에게 맞서는 인물에 대해서는 강압적인 처벌성이 짙은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그의 주변 인물들을 괴롭히거나 집단 따돌림을 유도함으로써 철처하게 고립시킨다. 

 

 

 "급장이 부르면 다야?  급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서 대령해야 하느냐고?"

 

 그래도 나는 서울내기다운 강단으로 마지막 저항을 해 보았다. 그 때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어댔다.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는 듯, 그때껏 나를 을러대던 두 녀석과 엄석대까지는 포함한 쉰 몇 명 모두가 홍소(哄笑)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내가 한 말 어디가 웃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는데 미화부장이라는 녀석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럼, 급장이 부르는데 안 가?  어디 학교야?  어디서 왔어?  너희 반에는 급장도 없었어?"

 

 그런데 그 무슨 어이없는 의식의 굴절이었을까. 나는 문득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느낌, 특히 담임 선생님이 부르시는데 뻗대고 있었던 것과 흡사한 착각이 일었다.

 

 

 -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중에서 -  

  

 

 '나'(한병태)의 상식으로서는 급장은 단지 똑같은 반 친구이지 명령에 따라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학한 반의 아이들에게 '엄석대'는 담임 선생님 같은 존재이다. 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존재는 '나'이다. 다수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반 분위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엄석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권력을 인정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담임 교사와 학교 당국은 교실 내 분위기를 잘 알고 있지만 급장인 엄석대의 편을 들어 줌으로써 엄석대의 권력을 무참히 꺾어 버리는 새 담임 교사가 부임하기 전까지 그릇된 권력 행사를 묵인하고 있다.

 

 

 

 

 

 

 

 

 

 

 

 

 

 

 

 

 

 

 

 * 영화는 1981년, 임권택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음 (원작 소설은 1980년에 발표)

 

 

 

 학급이라는 특수적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의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는 이문열의 유명한 소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속 배경과 인물이 전자의 작품과 유사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와 같은 인물로 이 소설에서는 '최기표'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반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소설과 다른 것은 <우상의 눈물>에 등장하는 담임은 폭력으로 교실을 장악하는 기표의 비행을 길들이기 위해서 정당하지 못한 과정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담임은 기표와 어울려 다니는 '재수파'들로부터 기표를 고립시킬 계획을 세우며 자신의 묵인 아래 모범생들이 기표에게 시험을 돕기 위한 컨닝 쪽지까지 전달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것이 기표의 비위를 건드려 반장인 임형우가 재수파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입원하지만 형우는 기표를 고발하지 않는 등 자신을 부각시키고 기표를 점차 소외시켜 자신은 친구를 고발하지 않는 의리의 사도가 된다. 결국 기표의 재수파는 반장 임형우를 폭행을 가한 일 이후로 와해된다.

 형우와 담임은 마지막 결정타로, 기표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밝히고 모금운동을 벌인다. 이 이야기는 퍼지고 퍼져 신문에 나가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반장과 선생의 합법적이고 계획적인 보이지 않는 계략에 두려움을 느낀 기표는 결국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짤막한 편지를 남기고 실종된다.

 결국 담임의 계획대로 기표는 선량한 학생으로 개화할 수 있었지만 치밀한 계획과 조작에 의해서 기표가 선도되는 과정은 위선적인 지도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오직 '우의와 신뢰 가득한 말'로 가장함으로써 기표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위선적인 술책이었던 것이다.

 

 

 

 

 학교 폭력의 삼각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솔직히 언급하자면 필자도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해본 적이 있으며 동급생이 왕따 당하는 것을 그냥 목도한 적이 있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폭력의 상황을 선생님에게 알리게 된다면 가해자들에게 더욱 더 심한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스스로 침묵하게 되며 피해자가 아닌 폭력의 목격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을 신고했다가는 자신에게도 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까봐 스스로 묵인하려고 한다. 그리고 학교 폭력 사건이 발각되어서도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는 양 은폐하는 진술을 할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폭력의 가해자들은 자신의 범죄가 발각되지 않는 한 졸업할 때까지 학교 내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다.

 

 최근에 학교 폭력,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부상됨으로써 정부와 학교 당국에서는 근절하기 위한 법적 조치와 제체를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폭력 가해 학생들을 강제 전학 조치를 내리는 법규가 시행된다고 하던데 울산의 학교폭력 가해자 2명이 학교의 강제 전학 조치를 불복하는 일이 발생하는 걸로 봐서는 강제 전학만으로는 학교 폭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없으며 그저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만든 조치로만 보일 뿐이다. 강제 전학을 한 폭력 가해자들이 새로운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폭력 가해자, 피해자 또는 폭력을 목격한 제3자의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간에 이루어지는 암묵과 은폐의 카르텔을 무너뜨려야 한다. 사건이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면 <도가니>의 장애학생 성폭행 사건처럼 지나가는 시간 속에 영영 묻혀지는 불편한 추억으로 남게 되며 학교 폭력은 다음 학년의 학생들에게 되물림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폭력 가해자들에게는 자신들이 행한 행동들이 '범죄'로 규정되는 것이며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기 위한 강력한 법적 체제가 필요하며 폭력을 당한 피해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가족까지 포함하여 폭력으로부터 야기된 정신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져야 한다.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엄석대가 다닌 학교처럼 학교 당국이 사건을 은폐하고 침묵해서는 안 되며 기표의 담임처럼 호의를 가장한 위선으로 안일하게 폭력 가해자들을 길들여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은 폭력 가해자에게는 교화에 중점을 둔 징벌을, 피해자들에게는 폭력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좋은 대학교에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 내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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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13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따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을 선생님이 져야 한다는 건 반대입니다. 아이에게 공부만 잘 하면, 대학만 가면 뭐든 것을 용서하는 부모가... 선생님은 애 공부나 시키고 애 학원 갈 시간만 보장시켜주면 된다는 부모가... 그리고 그런 괴물 부모를 만들어낸 이 사회의 그늘을 먼저 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cyrus 2012-01-13 10: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학생의 인성보다는 성적 중심의 대입을 우선시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지 비단 선생님들만 왕따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건 아니죠.
모든 부모님들의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에는 가해자 부모님들도
자녀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도록 유도하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씁쓸하더군요.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 저와 다른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차트랑 2012-01-1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의 모든 관계자들이 침묵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인사고과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교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심각한 경우 소송으로 확대되기도 하는데요
사건이 소송으로 진행될 경우
외부에 알려지게 될 가능성이 높고
학교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뿐아니라
관련 학생들의 담임선생님은 인사에서 불리해집니다.
장학사를 꿈꾸는 교장선생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교내의 불편한 진실들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교내 관계자들이 소송까지 진행되는 상황을 막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유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사건을 은폐한다거나 축소시키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뭃론 모든 선생님들과 학교가 그러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내 폭력의 원인은 다양할 것입니다.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치료를 위한 연구가 절실 한 이 때에
널리 알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좋은 페이퍼를 써주셨습니다.
한 방 말고 두 방짜리 추천 시스템은 없나요?^^
추천을 한 방만 날려드리려니 서운해서요 ㅠ.ㅠ

cyrus 2012-01-13 10:53   좋아요 0 | URL
제가 학교 내 인사 시스템에서 모르고 있었는데 차트랑공님이 쓰신
댓글이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사 간의 인사 시스템에서도 성과가 중요시하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학교 폭력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맥거핀 2012-01-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말씀도 맞지요. 침묵과 카르텔의 문제도 있습니다만, (위에 조선인님도 얘기하셨듯) 아마 궁극적으로는 현재 학교폭력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건, 이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할수도 있을 겁니다. 사회에서 어떠한 문제든지 돈이나 권력의 힘으로 해결되고, 결정되는 것을 이미 애들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결국 이 사회에서 별로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니까 그대로 그 행태들을 배우는 거겠지요. 그러니 이것을 학교폭력 처벌, 청소년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회는 그대로 엉망인데, 애들만 잡는다고 될까요..그게..

암튼 학교폭력은 현재 조직화되어 있고, 권력의 문제와 합쳐져 있다고 보여지니까요. 좀 다른 얘기겠지만, 박노자 님이 본인 블로그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박노자 님 말로는 예전 자신이 어릴때 학교를 다니던 러시아에서도 학교폭력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자녀들이 인테리 자녀들을 괴롭히는 형태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것도 좀 웃긴 얘기긴 하지만) 박노자 자신도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네 학교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도리어 부유한 애들이 가난한 애들을 괴롭혔으면 괴롭혔지, 그 반대는 아니죠.(학교폭력을 쉬쉬하고 학교에서 무마하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고..) 그러니 당하는 애들한테는 출구가 없죠. (<돼지의 왕>이라는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만요.) 법 집행마저도 현재는 경제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고, 학교폭력을 하는 아이들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 괴물같은 사회를 먼저 교정하지 않고서는 학교폭력은 해결로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2-01-16 19:08   좋아요 0 | URL
<돼지의 왕>이라면 맥거핀님 서재의 영화리뷰에 언급한 영화 맞죠?
언급하신 영화도 볼 수 있으면 봐야겠어요. 정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단면적인 부분의 문제점만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교정해야되는데 말이죠.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이 어떻게
진행될지 두고봐야될거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1-1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대법원에서도 학교폭력으로 피해입은 학생이 생기면 가해학부모와 학교(교사 포함)도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피해학생의 학부모가 학교 측과 접촉하면서 학교의 불성실한 태도에 또다른 상처를 받는 이가 많죠.그래서 그런 학부모들 거의 대부분이 분한 마음에 학교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합니다.

2012-01-14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1-16 19:12   좋아요 0 | URL
교사의 자녀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학교 폭력 문제와 관련된
언론의 소식이 자주 들려올수록 학교라는 교육의 공간이 학생들을 위한
폭력의 장으로 변하게 된다는 게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만 하네요.
그런 장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는 일 할 의욕도
떨어지게 되겠고요..

마녀고양이 2012-01-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문제는 결국 사회 문제와 직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회적 어려움이나 고통, 문제의 반영이 학교에서 재학 중인 학생 및 시스템에 그대로 반영된죠. 빈부 격차의 심화, 취업난, 그로 인한 공부 제일 주의, 챗바퀴에서 도는 현대 부모의 스트레스,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려는 학교 정책...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대야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교과서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가해자 학생들에게만 떠넘기는 것, 가해자 부모나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
과연..... 이게 모두 이분들만의 책임일지, 우리는 다들
제3자처럼 말만 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cyrus 2012-01-16 19: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근에는 폭력 가해자 학생들의 성적부에 폭력 범죄 사실을
기록하겠다는데 결국에는 또 가해자 학생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정책이 될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결국에는
눈에 보이는 단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보니 정작
그것을 야기하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과정이 씁쓸하기만 하네요/
 
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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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하기 참 힘들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일상을...

 

 어제 서울 역삼동에서 건물붕괴 현장에서 매몰됐던 인부 한 명이 끝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건물 바닥을 철거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다가 건물이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박웅현<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는 신문 읽기를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라고 말함으르써 혐오했다고 한다. 24시간 동안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 등과 같은 불행한 일들을 신문 독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오락거리'로 변형시키고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도 프루스트가 신문기사를 싫어했던 것은 특정 사건에 대해서 '모든 문맥을 빼버리고 말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있다. 사건이 발생하는 발단, 과정 그리고 결과를 단 몇 줄로 압축시켜버리는 신문 기사의 내용이 독자들을 무감정적으로 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모닝커피를 음미하면서 소파에 앉아 읽으면서 몇 만 명이 죽은 테러 사건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거나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위선적인' 독자를 프루스트는 싫어했다.

 

 일반 독자들보다 문학적인 감수성이 깊었고 압축적인 내용의 신문기사를 싫어했다던 프루스트라면 송경동 시인의 '설명하기 참 힘들다' 라는 시를 읽고 찬사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설명하기 참 힘들다 - 어느 지하생활자의 보고

 

 

 지하 토목공사 때 파 들어갈 땅 주변 붕괴를 막기 위해 수직 H형 철골빔들을 박는다. 이것을 파일이라 한다. 땅을 파 들어가며 이 파일들이 주변의 지압을 견디게 하기 위해 다시 철골빔을 마주본 파일 사이사이에 수평으로 대준다. 이것을 버팀목이라고 한다. 20~30m짜리 버팀목은 없어 두 토막 내지 세 토막을 이어야 하는데, 이 연결 마디의 꺾임을 막기 위해 두 버팀목이 맞닿는 부위에 패드처럼 쇠판을 얹는다. 이것을 연결판이라고 한다. 연결판은 서른 두개의 볼트로 두 토막을 이어 휨을 방지해 준다. 이때 볼트 구멍을 꼭 드릴를 사용해 뚫어야 한다. 산소절단기를 댈 경우 열변형으로 버팀 강도 저하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꼭 산소절단기를 이요해 그 구멍을 뚫었다. 붙잡을 것 하나 없는 허공에서 폭 30cm짜리 빔을 딛고 30kg이 넘는 핸드드릴을 사용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버팀부 주위에 전등을 많이 달지 않는 것도 이곳이 안전계단으로 다니는 감리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오늘 유씨가 떨어져 죽었다.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 (pp 19)

 

 

  

 

 건축 공사 현장에서 노동 경험이 많은 시인답게 그의 시에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공사 관련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수직 H형 철골빔', '연결판', '산소절단기' 등 건축 및 토목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단어들이다. 시의 중반부까지는 토목공사의 전체적인 장면이 설명되다가 마지막에서야 단 두 문장으로 토목공사에 참여한 인부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하지만 인부는 공사 현장에서 실족사하고 만다. 그리고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라고 서술하면서 시가 마무리되고 있다. 토목공사 노동자가 아니라면 직접 목격할 수 없는 불행한 사고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기에 독자들은 토목공사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실상을 시를 통해서 생생하게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시의 부제는 '어느 지하생활자의 보고' 이다. '설명하기 참 힘들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입장에서는 토목공사 노동 경험에 전무한 독자들에게 지하생활자들의 일상을 보고한다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들은 '노동'은 신체를 고되게 하고 힘든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일상과 슬픈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연애, 폭력, 부정부패. 가십거리 등과 같은 자극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기사만 제공하는 TV와 언론은 노동자의 추락사만 짤막하게 압축, 언급할 뿐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작업환경을 나열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지상의 공간 속에 살면서도 경제적인 능력이 상실되었고 심지어 지상의 인간들에게 눈에 띄지 못하는 '지하생활자'인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노동자'는 죽어서 보험금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지하생활자'들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난 이후부터이다. 안타까운 것은 짧으면서도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노동현장에서 불귀객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문 지면을 통해서 노동현장에서 불귀객이 된 사연을 알게 된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이승에서 잠시나마.

 

 

 뒷빽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나는 깜짝 놀랐다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그 후 나 역시 자본주의를 우습게 아는
 든든한 빽을 가졌다
 김씨가 산 것은 50년이지만
 죽은 순간은 5초도 안 된다

 

 여차하면 죽어버리자
 내 삶의 짧은 5초도
 최소한 1억쯤은 된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간 내가 몇백 번의 죽음을 경혐했는지도
 말해주자

 

 (pp 90)

 

 

 

 노동자들은 죽어서 신문 지면상에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매겨진 보험금도 남겨진다. 살아 생전 쥐꼬리만한 시급을 받으면서도 일상을 연명해오던 그들이 죽고 나서야 평생 모으기도 힘든 1억의 보험금을 받는 인생의 한 장면. 수십 년동안 돈을 벌어도 1억을 만들기 어려운 시대에 단 5초라는 죽음의 과정만 거치면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얻는 보험금. 시인은 노동자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조롱하고 있다.

 

 

 

 

 처절한 노동작업 속에 발견한 희망과 연대

 

 송경동 시인의 시 속에는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핍박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일상과 남몰래 삼켜야만했던 사회에 대한 울분이 담긴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시라는 것은 프루스트가 혐오했던 압축적인 내용의 신문기사보다 시인이 바라보는 장면을 단 몇 줄로 표현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정도 절제하듯이 문장 속에 숨길 수 있는 특수한 글이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의 시는 내용이 길지 않으면서도 노동자들의 고통스로운 감정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처절한 노동작업이 이루어지는 '지하생활자'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백무산 시인이 말처럼 그의 시는 '바보스러우면서도 정직하다'

 

  하지만 시인은 노동자들의 고된 일상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힘들고 처절한 노동현장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정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쇠밥

 

 

 흙먼지에 섞어 먹는 밥 
 싱거우면 녹가루에 비벼 먹고 
 석면가루도 흩뿌려 먹는 밥

 

 체인블록으로 땡겨야 제 맛인 밥
 찰진 맛 좋으면 오함마로 떡쳐 먹고
 일 없으면 고층 빔 위에 혼자라도 서서 먹는 밥

 

 시큼한 게 좋으면 오수관 때우면 먹고 
 새콤한 게 좋으면 가스관 때우면 먹고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하는 밥


 무엇보다 나눠 먹는 밥


 1톤짜리 앵글 져다 공평하게 나눠 먹고 
 크레인 포클레인 지게차 기사도 불러 
 함께 비지땀 흘리며 먹는 밥

 

 석양에 노을이 질 때면
 아내와 아이도 모두 사이좋게 앉아 먹는
 그 쇠밥

 

  (pp 26~27) 

  

 

 

 흙먼지, 녹가루, 석면가루 등 몸에 좋지 않은 유해한 먼지가 묻은 밥이라도 노동자들에게는 힘든 노동 뒤에 먹는 밥은 꿀맛이다. 특히 3연 중에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하는 밥'이라는 구절에서는 고된 작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 특유의 굳센 근성을 볼 수 있다.

 

 

 꿀잠

 


 전남 여천군 쌍봉면 주삼리 끝자락
 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및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 있으리

 

 이삼십 분 눈 붙임이지만 그 맛
 간밤 갈대밭 우그러뜨리던 그 짓보다 찰져
 신문쪼가리 석면쪼가리 
 깔기도 전에 몰려들던 몽환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꿈자락 붙들고 늘어지다가도 
 소혀처럼 따가운 햇볕이 날름 이마를 훑으면
 비실비실 눈감은 채로 
 남은 그늘 찾아 옮기던 순한 행렬  

 

 (pp 54)

 

 

 힘든 노동작업을 하고 난 뒤에 먹는 쇠밥이 '꿀맛'이라면 이삼십 분 새우잠은 '꿀잠'이다.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기 쉽고 외면해버리는 시간들이지만 이들에게는 고된 노동을 잠시나마 잊혀지게 만드는 달콤한 시간이다. 노동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노동자들에게 '꿀잠'은 신체적, 정신적인 휴식의 과정이 아니라 가난한 일상 속에서도 그들이 소망하는 희망의 삶을 꿈꾸게 만드는 행복한 망중한이다. '꿀밥'과 '꿀잠'이 있기에 노동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더 힘든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윤과 생산을 더 많이 창출하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는 바쁜 자본주의의 일상이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긍정적 자기위안의 기회마저 사라지게끔 만들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투쟁을 하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만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꿀밥'을 먹을 수 있으며 '꿀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원한다.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야지
도중에 그만두면 영원히 찌그러진다는 것

 

 - 송경동「마음의 창살」중에서, pp 55 -

 

 

 

 시인이 쓴 저 구절처럼 노동자들은 잃어버린 생존권을 찾기 위해서 오늘도 자본가에 맞서 싸우고 있다. 경제적 자립성과 생존권은 이미 자본가들과 전경의 구둣발에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졌지만 남은 인생동안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희망의 기대감만큼은 그들에 의해 찌그러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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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정말 말은 잘했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오만하게 만들지.
신문나 뉴스 한번 본 걸 가지고 전체를 본듯 착각하게 만드는 거.
책은 도끼다. 제목이 특이한데 왜 그런 제목을 썼을지 궁금하긴 하다.
시집에 대해 얘기 안하고 엄한 책이 꽂히다니 나도 참...ㅠ

cyrus 2012-01-12 23:10   좋아요 0 | URL
한 번 읽어보세요, 책에 소개된 박웅현씨의 독서법도 좋고요..
책 속에 좋은 구절도 많이 볼 수 있답니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서
김훈과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

차트랑 2012-01-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적 가치의 최고봉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노동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동자들은 정작 그에 알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아니, 대우해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정녕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란 말인가요...
가치관과 행동관이 일치하지 않는 사회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글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몹시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2-01-12 23:14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아무 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에는 노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무척 강했어요. 요즘 저 같은 젊은 세대들도
막노동을 힘들고 더럽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식으로 인식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송경동 시인의 시를 읽고나니 노동이라는 것도 무조건 힘든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고 비록 짧지만 휴식을 통해서 행복을 얻는 모습들이
노동을 접하지 못한 저로써는 무척 새로웠습니다.
요즘 이 분의 산문집이 많이 읽혀지고 있는데 독자들이 시집들도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어요. 송경동 시인의 시 속에서는 정말
우리가 몰랐던 노동자들의 삶을 볼 수 있거든요 ^^

잘잘라 2012-01-13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과 1년도 안 된 얼마 전까지 건축 공사 현장 감리를 했고 또 봄이면 그 일을 시작할 예정이라 이건 꼭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라는 말을 공사 관리 감독관 처럼 얘기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그렇지 않거든요. 감리자가 제일 신경쓰는게 안전 관리예요. 안전모, 안전띠 착용, 안전판 설치.. 물론 공사 규모에 따라 감리자가 상주하는 현장도 있고 그렇지 않은 현장도 있지만 아무튼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조사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감리자거든요. 물론 감리자가 할 일 중에 부실공사를 막는 것도 큰 일이지만 그보다는 안전 공사를 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해야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공사현장은 항상 공기(공사기간)에 쫓기기 때문에 시공사는 안전에 소흘하기 쉬워요. 그러나 감리자는 감리자의 업무 중에 안전관리가 들어있기때문에 공사현장에서 그나마 공기보다 안전을 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감리자예요. 감리자와 별도로 감독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하는 분도 있어요. 제 느낌에는 cyrus님이 얘기하신 '공사 관리 감독관'이란 아마도 '현장 소장'을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감리자든 감독관이든 현장소장이든 아무튼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났는데 저렇게 태평스런 얘기를 하는 경우는 없어요. 소속은 달라도 모두가 피고용인이라는 입장은 같은 것이고 맡은 업무에 따라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인데 저렇게 간단히 남 일 처럼 얘기할 수는 없지요.

저도 송경동 시인의 책 읽고 있는데 많은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는 반면 너무 노동자를 별개로 격리된 존재로 부각시키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댓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리뷰 쓰면서 제 생각을 더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cyrus 2012-01-13 10:47   좋아요 0 | URL
제가 노동 경험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어요. 공사 관리 감독관이라는 것도
있고 현장 소장이라는 직책도 있었군요. 포핀스님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제 글 때문에 공사 관리 감독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비춰질 우려가 있었어요. 문제가 되는 내용을 수정해야겠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그런데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니 다치지 않도록
몸 조심하셨으면 해요 ^^

차트랑 2012-01-13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포핀스님은 모르시는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매우 해박하시다보니 감탄스러워서 건방지게 리플을 달았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