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랜드니까"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에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제목이 '아내를 존경하게 된 순간'이라는 글이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아내를 존경하게 된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SNS를 캡처한 사진이 공개한 것인데 일본인이 트위터에 올린글을 캡처한 뒤 번역하여 소개되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인의 트위터 글에는 "어떤 술자리에서의 일. 명품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물어봐서, 아내가 했던 한 마디. ‘내가 브랜드니까’ 마음으로부터 아내를 존경한 순간이었습니다"라고 쓰여있다.

 짧은 말이지만 긴 여운이 감도는 글이다. 남편이 기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명품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재치있게 말한 아내의 임기응변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멋진 아내를 둔 남편이 부럽기도 하다.

 여성들은 남성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선물이 '명품 브랜드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선호하고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그동안 원했던 고가의 브랜드메이커가 있는 명품 백이나 구두를 사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성 176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고 싶은 설문조사에서 1위로 명품가방(38%, 67명)이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커플링, 향수, 귀고리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명품 가방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값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상대방이 어떠한 브랜드, 어떠한 디자인을 좋아할지에 대해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둔 남성 입장에서는 특별한 기념날이나 여자친구의 생일날이 다가올수록 두려워질 법하다. 오죽하면 선물을 사주는 것도 싫어하는 못된 마음도 가지게 된다.

 한 달 전 쯤에 SBS 라디오 '컬투쇼'에서 소개된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의류 및 액세서리 매장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직접 겪은 실화를 담은 사연이 많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어느 날 매장에 한 커플이 방문했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신용카드로 액세서리를 구입하게 된다. 사연을 보낸 아르바이트생이 남자에게 서명을 해줄 것을 요구하자 남자는 또박 또박한 글씨체로 '사주기 싫다'라고 적은 후 "영수증은 버려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남성들마다 입장에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와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이 남자친구로부터 고가의 명품 백을 선물 받기를 원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경제적 여건이 어느 정도 되며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값비싼 명품 백 하나는 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사준 값비싼 선물을 통해 자신 주변에 있는 여성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전형적인 심리다.  

 다만 남자친구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허영심만 채우기 위해서 값비싼 명품을 선물로 받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점이다. 그것은 진심어린 애정이 담긴 선물이 아니다. 선물이란 남자친구가 자신을 향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가늠할 수 있지만 단지 자신외면적인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한 물질적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품 백 하나 못 사주는 남자친구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직설적으로 무시를 한다거나 일방적인 이별통보 사유가 되기도 한다.  

 

 

 

 

 

 "내 브랜드는 내 아이들입니다"

 

 최근에 소개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아는 배려심이 강하고 똑똑한 현모양처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는 고대 로마의 전설에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일명 '대(大) 스키피오'라고 불리우며 포에니 전쟁을 통해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무찌른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인 코르넬리아다.

 세계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더욱이 그녀가 로마 공화정 때 농지개혁을 추진하다가 보수파 원로원들에게 살해당한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파도바니노 (추정)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 17세기경

 

 

 

 코르넬리아는 고귀한 성품을 지닌 여성으로서 고대 로마 여성의 완벽한 표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현모양처'라고 보면 될 듯하다.

 자신의 남편이 죽은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집안을 지켰으며 자녀의 교육에 헌신하였기에 그라쿠스 형제는 뛰어난 자질과 개혁적인 정열을 지닌 형제 정치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와 관련하여 그녀가 위대한 여성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지금도 전해내려 오고 있다.

 

  코르넬리아는 어린 그라쿠스 형제와 함께 친분이 있었던 귀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 귀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보석들을 과시하면서 손님인 코르넬리아도 가진 것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과시를 하게 된다. 그러자 코르넬리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아들들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보석은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

 

 

 코르넬리아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평생을 살다 갔지만 위대한 로마의 영웅을 배출한 가문에 시집을 왔다고 해서 남들에게 과시를 하지 않았으면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보석이란 훗날 로마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하게 되는 아들들이었다. 코르넬리아에게 아들들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보석보다 더 오래토록 빛날 수 있으며 남들에게 그 위대함을 자랑할 수 있는 그녀만의 가치 있는 브랜드였던 것이다.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도 곱다

 

 지금까지 소개된 일본 트위터의 문구와 코르넬리아의 일화를 통해서 여자친구 혹은 아내를 두고 있는 남성분이라면 공감을 한다거나 그동안 여자친구와 아내에 대한 무심한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성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지금까지 여자친구라고는 한 번도 사귀지 못한 미혼남이지만 지금도 글을 쓰면서도 남녀 간의 사랑이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만약에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상도 남자가 자신의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일본인 아내가 처한 상황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고~~ 지X하고 자빠졌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입장을 이해해주고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크는 법이다. 하지만 애정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될수록 그런 입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볼 것도 다 본(?) 연인 관계라면 한창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의 느낌을 유지한다는 게 어렵다.

 남편이 아내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가 무능한 경제적 능력을 자신을 친구남편과 비교를 한다거나 '돈 적게 번다'고 잔소리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야!, 너!'와 같이 반말로 대화를 시작해서  "~해라"는 식의 명령조로 대화를 끝내는 것 그리고 '뚱뚱하다, 못생겼다'라는 식으로 외모를 핀잔줄 때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지속될수록 식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한 방법은 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담겨 있는 애정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연인,  자기만 가질 수 있는 브랜드로 보일 수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연인의 감정과 입장을 조금만 더 존중해주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다면 당연히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도 고와지게 된다.. 아내, 여자친구를 존경하게 되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녀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멋진 남편, 남자친구라는 아내, 여자친구만의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기사

 

[여자친구 선물로는…스테디셀러 `가방`]  한국경제 201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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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1-0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좋은 부모,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자녀' 과연 '좋은~ '이라는 말을 붙인 부모, 남편, 아내, 자녀 외에도 좋은 남자 친구와 좋은 여자 친구를 추가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좋은'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는 '훌륭한'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인데...이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위에 보이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마치 공중부양 중인 누군가의 뒷모습 같아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cyrus 2012-01-04 21: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좋은'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도 차이가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 유지할 수 있다고 봐요 ^^

노이에자이트 2012-01-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품백을 선물받고 싶은 여자는 많으나 명품백을 사 줄 능력이 있는 남자는 적다는 것...그게 비극이죠.

cyrus 2012-01-04 21:15   좋아요 0 | URL
수요는 많은 반면에 공급이 안 된다는거죠 ^^;;
 

 

 

 흑룡의 진실

 

 

 

 

 

 

 

 2012년을 여는 첫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올해 같은 경우는 유독 부산스러운 느낌이 든다. 임진년(壬辰年), 그것도 그냥 단순한 용이 아닌 60년 만에 온 흑룡의 해라고 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길하면서도 특별한 해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용이라는 동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십이지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구름과 비를 만들고 물과 바다를 다스리며 자유자제로 자신을 숨기고 또 변신할 줄 아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나 최상의 비상을 염원하는 고시 준비생들에게 “용꿈 꾸었지?”라며 용기와 희망이 담긴 격려의 메세지를 던져준다. 처지가 어렵다거나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크게 성공하여 걸출한 인물이 되었을 경우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용꿈 그리고 용의 상징은 진정 좋은 의미의 상스러운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하도 '흑룡의 해'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흑룡'이라는 게 정말 좋은 줄 알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기업들은 흑룡을 이용한 마케팅을 펼쳐 고객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용은 '흑룡'뿐만 아니라 백룡, 청룡, 황룡, 적룡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황룡, 청룡과 백룡이야말로 길한 의미를 지닌 반면에 흑룡과 적룡은 불운을 몰고 올 수 있는 '폭룡'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적룡은 반란을 주도하는 역신(逆臣)이라면 흑룡은 백룡도 이기지 못하는 반란을 도모하는 역장(逆將)이라고 한다.

 흑룡의 길한 상징만 부각되는 각종 언론과 기업 마케팅의 홍보 때문에 임진년 흑룡의 무서운(?) 진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다.

 흑룡은 우리 말로 하면 검은 용이다. 검정색에서 발하는 어두움은 부정, 불행과 연관되는 색이다. 그래서 언론과 기업 광고에서 홍보하고 있는 길운을 불러일으키는 흑룡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흑룡이 반란을 일으키는 역장을 의미한다고 했으니 길한 상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임진년에 일어난 역사적 변고

 

 실제로 과거에 흑룡의 임진년에는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다고 한다. 1232년에는 몽골의 제1차 침입으로 인해 고려의 도읍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고려는 또 한 번 몽골의 침입을 받게 되어 몽골와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2012년 종말설까지 다시한 번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2011년 말, 북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남북 관계 그리고 전쟁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어서 2012년의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1898년

 

 

 

 

 그런데 임진년은 과연 우리나라에만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던 것일까?  필자는 그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세계사 연표를 통해 임진년에 일어난 세계사적인 변고가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봤다.

 사실 오랜 세계사에 임진년에 일어난 변고가 일어난 해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임진년의 불운과 관련해서 눈길이 가는 흥미로운 연도가 있다면 바로 135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760년 전인 1351년에는 전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한 해이기도 하다.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의 사회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약 2천 5백만 명 정도의 유럽 인구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실제로는 흑사병 기간동안 일어난 학살들은 마녀사냥처럼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었다.

 흑사병은 유럽인들의 종교적인 사고에도 영향을 주어,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흑사병으로 심판하니 고행을 함으로써 죄를 씻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당시만해도 흑사병은 세계를 멸망하게 이를 수 있는 '신이 내려주신 무서운 형벌'이었다.

 

 

 

 

 새해 새희망 용솟음치는 해가 되기를... 

 

 요즘 흑룡의 해라고 떠들석하길래 '한 때'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용띠라고 여겨졌던 '88년 용띠'인 필자가 임진년의 흑룡에 대해서 글을 써보게 되었다.

 새해가 시작하는 마당에 2012년 첫 해의 글을 흑룡에 대한 불길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글을 보는 분들에게는 내용에 대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은 용기와 희망을 상징하며 힘차게 비상하는 동물로 믿어왔다. 용은 십이지신의 동물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활기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흑룡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들만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례들은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는 호사가들이 좋아할 법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용띠의 해에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의미있고 좋은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1952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고 해서 흑룡 임진년과 관련된 역사적 재난으로 보고 있는데, 1952년이 아니라 1950년에 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6.25 전쟁 발발 연도를 모르거나 착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내용과는 반대로 1952년에는 비록 휴전선이지만 2년동안 진행된 6.25 전쟁이 휴전할 수 있는 물꼬를 텄으며 필자가 태어난 1988년에는 6.29 민주화선언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렸으며 동시에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이다. 그리고 2000년에는 15년 만에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으며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글에 다룬 내용만 가지고 벌써부터 2012년에 대한 쓸데없는 기우(杞憂)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진년 올 한해는 모든 사람들이 잦은 용꿈으로 건강하고 늘 행운이 함께하는 다복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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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년이 용띠해였군요^^
전 그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ㅎㅎㅎㅎ
cyrus님의 해인만큼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랄께요!!

cyrus 2012-01-03 23:51   좋아요 0 | URL
현맘님도 건강하시고 좋을 일만 가득하길 바라요 ^^

이진 2012-01-0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룡이 그냥 이름만으로도 멋있고, 또 이미지화 하면 포스가 장난아니라서 그러는게 아닐까요 ㅎㅎㅎ 그런데 페스트라... 무섭습니다. 페스트 무척 흥미있어하는 사람인데 저 그 림은 무척 마음에 들어요

cyrus 2012-01-03 23:5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도 맨처음에 흑룡이 길한 상징이라고 해서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답니다. ^^;;

검색창에 '뵈클린'이라고 쳐보시면 제가 소개한 것 이외에도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화가는 '죽음', '환상'을 주제로 한
어두운 표현이 강한 그림을 그려서 유명합니다.

비로그인 2012-01-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밤에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을 보게 되는군요.
어떤 음반 표지에 나와 있던 그림이 생각납니다.

얘기하신 것처럼 흑룡하니, 좀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좋은 일이 좀 많았음 좋겠네요~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뵈클린의 그림을 표지로 쓴 음반이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레퀴엠 혹은 미사곡의 표지로
사용했을거 같아요 ^^;;

차트랑 2012-01-0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입니다. 더불어 추천도 한 방^^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

stella.K 2012-01-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내 큰 조카하고 나이가 같은 것 같아.
조카의 정확한 나이도 가물가물 하지만.ㅠ
그렇지 않아도 임진왜란을 생각했는데
올해가 참 의미가 많아 보이네.
잘 살게 되려나? 뿌잉뿌잉~ㅋㅋ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올해는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도 있고 올림픽도 있고요ㅎㅎ
벌써부터 2012년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요 ^^;;

맥거핀 2012-01-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상이 불순해서 흑룡 하니까 조폭만 연상되는데..흑룡파..;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ㅎㅎ 흑룡파라... 이름만 들어도 포스가 무시무시한데요 ^^
 
울지마, 톤즈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람의 눈물은 그저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눈물의 성분은 과학적으로 98%가 수분이고 약간의 염분, 단백질, 지방화합물이 함유되어 있다지만, 순수하고 맑은 눈물 한 방울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감정의 순간들, 북받치는 서러움과 기쁨뿐만 아니라 잊지 못할 추억과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것이 참된 눈물이다.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그 마을 사람들이 쫄리 신부님이라고 불렀던 한 남자. 마흔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님의 죽음을 접하고 흘린 눈물에는 그런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눈물샘이 말라버린 마을부족, 원래 강인하고 용맹했던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먼 타국 한국에서 온 한 사람의 따뜻한 사랑 앞에 울고 말았다.

 필자도 그 영화를 보고 그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도 이 영화를 학교 수업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여학생들을 포함한 20명 남짓 밖에 없었지 필자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부끄러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참아야 했다. 그러다가 오늘 그 우연히도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모 영화채널에서 생중계를 방영한 이종격투기 경기를 다 보고나서 리모컨을 돌리다가 다른 영화채널에서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영화를 본 것이다. 이미 본 영화 속 장면들이었지만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암 선고를 받은 직후 평온한 얼굴로 노래하는 신부님의 모습,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오열하는 톤즈 아이들의 인터뷰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딩카족의 노인이 신부님의 얼굴이 있는 사진에 입맞춤을 하면서 고인을 추억하는 장면 등은 언제나 봐도 가슴 찡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신부님의 헌신적인 삶은 객석에 눈물의 자기장을 형성시키고 자기 반성과 새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의과대학 인턴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제대한 이 신부님는 의사로서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뒤늦게 사제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장 가난한 땅 수단의 톤즈로 달려간다. 톤즈에서 그가 한 일은 한 사람이 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경이롭다. 적도의 태양아래 손수 모래를 퍼 나르며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운 사람,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내전의 상처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물한 사람, 아무도 찾지 않는 나병촌을 방문하고 병원을 제 발로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 사람, 이 모두가 수단의 슈바이처, 그곳에서는 ‘쫄리’라 불리는 이태석 신부님 한사람이었다.

 신부님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줬다. 그의 손에 톤즈 사람들의 상처는 치유되고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톤즈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톤즈에 한 움큼 사랑을 퍼나른 신부님은 올해 1월 14일 마흔 여덟의 불꽃 같은 생애를 마감했다. 2008년 10월 휴가차 한국에 들른 그는 덜컥 말기 대장암 판정을 받고 다시 톤즈 땅을 밟지 못했다.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과 같이 있겠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신부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감동의 울림을 주는 까닭은 그가 베푼 사랑과 헌신이 크고 숭고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세속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부끄러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를 뛰어넘어 인간이 아무 조건 없이 다른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람답게 더불어 산다는 것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가치가 많다는 평범한 진실을 조용하게 그러나 천둥처럼 큰 울림으로 일깨워주었다.

 그가 일찍이 작곡한 ‘묵상’이라는 성가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묻고 있다. 그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에서 응답을 얻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헐벗고 병든 사람들의 곁으로 갔다.

 

 

 

 

 

 

 

 신부님은 그들을 도우러 간 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갔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사랑이 되었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의사로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불편하고 좁은 길을 선택했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수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꿈을 이루어나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병에 걸렸을 때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그 병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톤즈 마을의 가난과 고통은 병의 증상일 뿐, 고질적 원인은 수단과 주변 나라들에 팽배했던 증오와 폭력과 이기심이었다. 故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후, 톤즈 마을이 다시 절망과 눈물 가운데 방치된 것처럼, 단지 구제 활동을 통해 병의 증상을 고치는 일만으로는 근원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이태석 신부가 톤즈 마을에서 정말 고귀하고 멋진 씨앗을 뿌렸구나 싶었던 것은, 톤즈 마을의 어린이들에게서, 절망과 눈물 가운데 한 줄기 사랑이 싹터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톤즈의 어린이들은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로써, 서툰 한국말로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곡을 흐느끼며 노래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그들의 맑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것은 절망이 아닌 사랑의 눈물이다. 톤즈의 어린이들은 원래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故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서 그들 마음에 따뜻한 눈물과 함께 사랑이 싹튼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 신부가 몸소 보여준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람과 사람들 마음속에 묻어나면서 더 진한 향기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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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01 18:07   좋아요 0 | URL
cyrus님 2011년 서재의 달인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cyrus 2012-01-02 22:03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학교 생활하느라 서재 활동을 소홀히
했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는 의미에서 준거 같아요, 올해도
학교 생활하느라 더 바쁠거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카스피님이 보내주신 흑룡 한 마리 선물 받았으니
올해도 후회 없이 열심히 하는 2012년 됄 수 있도록 해야겠네요.
선물 감사합니다. ^^

2012-01-01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2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2-01-01 13:42   좋아요 0 | URL
봤구나. 난 TV 녹화된 거 봤어.
너무 감동이어서 책도 사 봤는데 영상필름만 못한 것 같더라.
급조됐다는 느낌이야.
그 노래 참 그렇지?ㅠ

cyrus 2012-01-02 22:06   좋아요 0 | URL
누님, 저 진짜 영화 보면서 눈물 나올뻔한게 <울지마 톤즈>인거 같아요.
물론 TV로 다시 보니깐 그 때 받은 감동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 들을 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맥거핀 2012-01-01 15:37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TV에서 이 영화를 본 것 같아요.
2011년의 마지막을 참 따뜻한 영화를 보면서 끝내셨네요.
새해 첫 날부터 좋은 글을 보니 마음이 좋네요.
새해에는 저도 이렇게 좋은 것만 봤으면 싶었는데, cyrus님 덕분에 시작이 좋네요.

cyrus 2012-01-02 22:07   좋아요 0 | URL
올해에도 맥거핀님에게 좋은 일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

루쉰P 2012-01-02 20:46   좋아요 0 | URL
아! 서재의 달인 정말 축하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사람의 눈을 피해 서재의 숲에 숨어 버린 저를 찾아와 새해 인사도 해 주시고 정말 시루스님은 너무 착해서 대학생 간지 작살!!
항상 쉴 샐 틈 없이 그리고 자신의 삶에 철저한 시루스님을 뵐 때마다 왜이리 뿌뜻한지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 올 한 해 시루스님의 인생에도 제 인생에도 뭔가 광명이 비추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을 합니다. ㅋㅋㅋ 대구의 얼짱으로 거듭나실 수도 있어요. 인생은 모르니까요. ㅋㅋㅋ

cyrus 2012-01-02 22:10   좋아요 0 | URL
ㅎㅎ 루쉰님을 포함해서 서재 이웃분들 덕분에 2011년은 정말
좋은 일,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어요. 오히려 제가 루쉰님께
고마워해야 될거 같은데요 ^^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테헤란에서의 죽음

 

 

 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을 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pp 106)

 

 

 

 위의 우화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중에서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내용이다.

 인생은 덧없다. 발버둥 쳐봐야 우리는 모두 테헤란으로 도망간 하인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무하게 막을 내릴 세상살이 또한 매정하기 그지없다. 계급 같이 굳어져 가는 빈부 격차. 뒤쳐진 사람들은 아득바득 살아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절망한다. 경쟁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일수록 우울증 환자가 많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이제는 미국까지도 알아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자살 동기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그 원인으로는 경제적 형편, 애정, 과도한 스트레스 및 열등감에서 비롯된 우울증까지 실로 다양하다.

 요즘에는 정서적으로 심약한 청소년들이 왕따로 인한 집단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는 비보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안 그래도 청소년들은 쉴 틈 없는 경쟁체제의 입시교육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학교 생활 내 왕따 역시 청소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수용소 생활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빅터 프랭클은 현대문명의 고질병인 우울, 중독, 막연한 공격성향, 자살 등은 모두 똑같은 원인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삶에서 별 기대할 게 없다는 절망감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아줌으로써 건강함을 되돌리려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3년간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그 곳에서의 체험을 로고테라피의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순간, 죄수들의 인생은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죄수번호 매겨진 살아있는 시체로서 살아갈 뿐이다. 미래도 과거도 없고 고통만 있는 생활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프랭클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뺐길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자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다. 닥친 고난을 자신을 강하게 하고 가치를 만드는 계기라고 확신한다면, 시련은 오히려 축복이 된다. 

 인간은 이상과 가치를 위해서 죽을 수도 혹은 살고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 찾기를 포기한 사람은 며칠 못가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증언한다. 자신에게 처한 불행한 환경에 감당하지 못한 인간은 본능적인 생의 의지를 잃고 죽음에의 의지로 달려가게 된다. 반면,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지 않는다. 인생은 시련과 죽음 없이 완성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의미를 놓아버리는 순간, 내 모든 시련은 감내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절대 고통으로 변해 버린다.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이후 3년에 걸쳐 암흑 속에 생활하면서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마침내 동물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고, 동물 이하로까지 전락하는 인간의 벗겨진 실상과 대면했다. 그러나 그런 극한 상황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 일수는 없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런 통찰 속에서 프랭클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요법의 뼈대를 형성한다. 즉, 인간에게는 그 재능이나 체험에 관계없이 인생에서 겪게 되는 어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공허한 '희망고문'이 아닌 어려운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현실고문'도 필요하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고통은 좌절된 욕망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랭클에 따르면 긴장과 갈등 없는 상태는 최선이 아니다. 인간은 힘든 상황에서 처하게 되면 오직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만을 생각한 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프랭클처럼 최악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이런 사고방식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올가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소개된 '스톡데일 패러독스' 사례야말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지나친 낙관주의에 사로잡힌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20여 차례의 모진 고문을 당했고 언제 풀려날 수 있을지,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안정한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고 무사히 생존할 수 있다.

 반면, 낙관주의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한 채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희망을 가졌던 낙관주의자들이 크리스마스를 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면 이번에는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한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음에는 또 크리스마스를 고대한다.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을 춥고 어두운 수용소에서 보낸 그들은 깊은 상심에 빠져 결국에는 수용소를 탈출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낙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희망고문'으로 인해서 원하지도 않게 수용소 안에서 불행하게도 죽음의 신을 마주해야 했다. 될 수 없는 일에 자꾸 되는 것처럼 희망을 주지만 결국 결과는 될 수 없는 것으로 끝남으로써 낙관적인 희망을 갖는 사람에겐 몸과 마음을 옥죄는 고문이 될 수밖에 없다.

 스톡데일 장군은 포로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가 단절된 독방생활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방법을 만들어내고 고문에 견디는 방법도 개발한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체력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장군은 그 힘든 포로시기를 동료들과 함께 견뎌내었다.

 스톡데일 장군의 수용소 생활은 프랭클이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로고테라피의 본질적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의미요법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책임감’으로 본다.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은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일러준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듯이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는 바는 첫 번째 인생에서 망쳐놓았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즉, 패배감으로 과거를 곱씹지 말고 주어진 현재에 충실해라는 뜻이다. 이럴 때 실패는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된다. 나아가 프랭클은 자신을 넘어설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비관적 처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랭클 역시 스톡데일 장군처럼 비참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삶의 기쁨을 찾는다.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나 인간이 먹기엔 너무나 열악한 멀건 국물 속에서 고기 한 조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아가 인간이 좀 더 근본적으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발견한다. 그중 하나가 사랑이었고, 나머지는 삶의 의미였다.

 '사람들을 살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지는 동아줄처럼 삶에 닻을 내릴 수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왜 그런 환경에서도 죽지 못 하는가’ 하고 프랭클은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개는 ‘아이들 때문에’, ‘내가 지켜주어야 할 사람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바로 그것이 생의 의미를 잃은 사람을 삶의 광장으로 인도하는 작은 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살아가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삶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사랑을 구현하는 길 위에서 피어나는 의미만이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하기 때문이다. 프랭클이 일러주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는 경쟁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숨을 틔워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힘들고 인간에 대한 정이 메말라버린 삭막하고 각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프랭클이 생활했던 아우슈비츠를 비교한다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축에 속한다. 아우슈비츠에서도 가능했던 프랭클의 인생 의미 찾기가 지금 우리 삶에서 불가능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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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2-3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더불어서 흑야와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형무소의 경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죠. 전 그 중에서 흑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과거 선배들에게 갈굼당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때는 억지로 읽었는제 지금은 찾아서 읽으니 많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죠.^^새해 행복하시길...

cyrus 2011-12-31 22:2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세인트님 ^^
저는 군 생활할 때 처음 읽었는데 언제나 읽어도 힘든 삶 살아갈 때 읽으면
힘이 샘솟는 좋은 책인거 같아요. 표지가 강렬한 빨간색에 수용소라는 제목
때문에 군 동기들 사이에서 이 책 읽는다고 눈치 좀 봤어요, 어떤 동기는
이 책에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는 근거 없는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세인트님이 읽으신 흑야라는 제목의 책은 처음 들어보네요 어떤 책인지 검색해서 찾아봐야겠습니다. 세인트님도 새해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요 ^^

마녀고양이 2011-12-3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랭클은 '실존적 한계'를 인정해야,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삶이란게, 작고 소소하면서도 다채로운 즐거움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견딜 수 없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고 강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루스님, 건강하고 즐거운 일 가득한 새해되셔요.
내년에도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 아자! ^^

cyrus 2011-12-31 22: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살아가면서 작고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느낄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요, 이런 기회와 시간마저 없다면
사는게 힘들겠죠? ^^;;

마고님도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고 원하시는 일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차트랑 2012-01-01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을 읽어왔지만 번번히 댓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뻘쭘해서 인건 이해를 하시겠지요^^ 2011년 통계자료를 보고 너무나 무심했던 사람이구나 자성하면서 좋은 글에 댓글도 남기고 추천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cyrus님의 글을 통해서 익숙하지만 그 반대는 익숙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해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cyrus 2012-01-02 22:1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공님 ^^
저도 처음에서 서재 활동을 시작했을 때 모르는 이웃분들에게
댓글 한 번 남기는 게 뻘줌했었답니다. 하지만 덕분에
정말 착하고 좋은 이웃분들을 많이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차트랑공님도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길 바라요 ^^

이진 2012-01-0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용수가 뭘까 하고 항상 궁금해왔어요. 그러다가 어느샌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정말 죽음의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제목이 마음에 든다지만, 저는 아직 이런 책을 읽을만큼의 지적수준이 달리기 때문에 ㅋㅋ 장바구니는 아쉽게 패스해야겠어요... 흐

시루스님,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공부도 파이팅!
저도 파이팅해야겠어요.

cyrus 2012-01-02 22:14   좋아요 0 | URL
이진님 나이라면 아직 수용소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이 없을거예요,
저도 이진님 나이 때 그랬는걸요 ^^ 지금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언젠가 제 나이 되면(?)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책이거든요 ^^

소이진님도 좋은 일 가득하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으세요 ^^
 

 

 

 베르테르의 외사랑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가슴 아픈 사랑은 겪어 봤을 법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어렵다. 10대든, 40대든 사랑은 정답이 없어 보이는 미로이다. 인간은 미로 속에 펼쳐지는 길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런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용기를 무릅쓰고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어 본다. 하지만 복잡한 미로 속에 헤매게 되면 영영 탈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위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미로를 즐긴다.

 알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싹 틔어 사랑의 감정으로 형성해보지만 자신의 반려자로 만들기에는 쉽지가 않다. 실연이라는 가슴 아픈 사랑이 낳은 결과를 경험했음에도 인간은 또 다른 상대로부터 사랑을 갈망한다. 미로 속에 갇히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로를 즐기듯이 사랑 역시 그런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했는지 측정하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겠다.

 UV'Who am I'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누군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누가 사랑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애매하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몰랐는데 정말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대방에 대한 일편단심적인 애정의 감정만 쏟아 붓다가 실패하고 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런 애정의 감정을 키워나가면서 반려자로서의 관계의 결실을 맺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봐야할지...

 필자는 살면서 전자의 입장만 경험해봤는데 이것 역시 ‘사랑’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개인적인 입장으로 봐서는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외사랑’ 쪽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지만 받아주지 않는 것이 외사랑이다. 상대방이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적인 사랑이다. 외사랑으로 인한 실연 역시 짝사랑의 실패처럼 가슴 아픈 결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극복하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십전팔기 끝에 성공하는 커플도 드물게나마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갈망하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가 쉽지 않다.

 

 

 

 

 

 

 

 

 

 

 

 

 

 

 

 

 

 

 

 

 

 외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불운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샤를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일 것이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주인공 로테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실의와 좌절 끝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비극적인 젊은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불행한 베르테르의 모습 속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 시절의 괴테뿐만 아니라 역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또 다른 인물이 투영되어 있다.

 제3의 인물이란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괴테는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다시피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예루살렘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베르테르의 모습이 젊은 괴테라면, 소설 결말부에 자살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듯이 오늘날에는 베르테르를 ‘사랑의 감정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무모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사랑도 실패해버린 인생 실패자’라는 평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테가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베르테르가 경험한 사랑은 젊은 시절 꼭 겪어야 하는 청춘의 일부분이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삶과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심지어 소설 속 베르테르가 입고 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를 모방하는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베르테르에 대한 동경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퍼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애독했으며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런 현상 덕분에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는 자살과 관련된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삽화 중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는 장면, 민음사판 pp 211)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내게 손수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pp 209~210)

 

 

 

 

 죽음의 철문을 두드리다니...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편지 속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의 갈망에 허덕이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결단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낭만주의자답게 사랑의 조건은 오직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간에 오히려 인간의 사랑을 제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합리적인 규범, 인습적인 제도 그리고 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베르테르의 자살은 결코 나약한 인생의 실패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죽음으로 승화시켜 이성에 갇혀버린 감정을 해방시킨 진정한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하이네의 낭만적 아이러니

 

 

 

 

 

 

 

 

 

 

 

 

 

 

 

 

 

 

 

 

 

 그러나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역시 독일 출신의 시인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아픈 경험을 괴테와는 다르게 좀 더 다른 입장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이네라고 하면 간결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애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쓴 서정시로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문학을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 역시 독일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문학가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낭만주의적 분위기와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낭만주의에 대해서 문학적 갈등관계를 맺었다.

 하이네의 <노래의 책>을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하이네의 문학을 ‘낭만적 아이러니’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의 전조에서부터는 환상, 감정 등이 포함된 낭만주의적 요소들로 표현하고 있지만 마지막에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파괴해버리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하이네는 아이러니를 통해 시를 구성함으로써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환상, 마술, 유령’ 등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미사여구의 허구적인 정체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매일 밤 꿈속에서 너를 본다.

다정히 인사하는 너를 본다.

그러면 난 엉엉 울면서 너의

사랑스런 발 앞에 쓰러진다.

 

 

너는 가엾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조그만 금발머리를 가로젓고,

너의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넌 살며시 내게 은밀한 말과 함께

측백나무 꽃다발을 건네준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꽃다발은 간데없고

네가 한 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 하이네 『노래의 책』‘서정적 간주곡’ 중 No. 56 , pp 150 -

 

 

 

 

 ‘서정시인’으로서의 하이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시가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낭만적 아이러니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시적 화자는 처음에는 낭만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서 슬퍼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혁 교수의 해설대로 하이네는 ‘낭만주의 세계의 허황됨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눈을 돌려 현실을 직시할 것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상과 현실 속에 갈등했던 하이네

 

 하이네가 이런 역설적인 감정으로 축약된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역시 괴테처럼 젊은 시절에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촌누이인 아말리에라는 여인을 사랑했었는데 그녀는 하이네의 애정공세를 무시하고 하이네보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하이네의 첫 번째 사랑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연이 남긴 정신적인 상처가 아물기 전에 하이네는 이번에 아말리에의 여동생인 테레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실패로 끝남으로써 다시 한 번 불행한 사랑의 실패를 겪는다. 두 번의 실연은 하이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으며 그러한 심리적 태도는 그의 시에 반영되어 있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실패한 사랑의 현실을 인식하여 일종의 환멸과 증오심으로 전환되는 결말을 택하기 위해서 아이러니를 구사했던 것이다.

 <노래의 책>은 1817년부터 1826년까지 하이네가 젊은 시절에 발표했던 시들을 모은 시집인데 여러 시 곳곳에서 젋은 시절에 겪었던 실패한 사랑가 남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밤은 고요하고, 골목엔 인적이 끊겼다.

이 집에 그 옛날 나의 사랑이 살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녀는 이 도시를 떠났지만,

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

 

 

거기 한 남자가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밀려드는 고통에 두 손을 비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두려움이 앞선다.

달빛에 드러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에.

 

 

이 도플갱어야! 너 창백한 친구야!

너는 무엇 때문에 그 옛날 많은 밤을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괴롭혔던

내 사랑의 고통을 흉내 내려 하느냐?

 

 

 

- 같은 책, ‘귀향’ 중 No. 20, pp 181 -

 

 

 

 

 

 

이 외로운 눈물은 무얼 바라는가?

나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나의 두 눈에

남아 있는 이 눈물은.

 

 

이 눈물에게도 한때 반짝이는

자매들이 있었지, 나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어둠과 바람으로

모두 흘러가버린 자매들이.

 

 

푸른 별들도 마치 안개처럼

흘러가버렸네, 그 옛날 내게

기쁨과 고통의 미소를 가슴에

선사해주었던 그 작은 별들도.

 

 

아, 나의 사랑마저도

덧없는 바람처럼 사라졌네!

너, 지난날의 외로운 눈물아,

너도 이제는 사라지거라!

 

 

- 같은 책, ‘귀향’ 중 No. 27, pp 186~187 -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그의 시 속에는 유독 여인 또는 자매가 등장하는데 자신에게 실연을 안겨준 아말리에와 테레제, 두 자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하이네를 ‘연애시인’, ‘사랑의 감정을 읊조릴 줄 아는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네에게 문학은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 수단이었다. 사랑 앞에서 순수한 감정을 두 번 죽어야했던 이 시인의 말 못하는 고통을 아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이네는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부터 감성으로 치우친 낭만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理想)이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하이네의 시 시계는 현실을 지향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독일의 정치, 사회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견지된 참여시의 창작으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태생이 낭만주의자였던 하이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이 내적 갈등을 겪은 듯하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는 지나간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과 동시에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서글픈 감정이 묻어나 있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대는 문학 속에서 언제나 젊게, 거의 매우 젊게 움직여온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채겠는가?  어느 한 작가가 우리의 눈앞에서, 모든 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같은 책, 머리말 중에서(1837년), pp 11 -

 

 

 

 

 

 머리숱에 흰 머리카락이 늘어날수록 하이네는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했다. 반면 자신의 문학적 대선배인 괴테는 죽을 때까지 ‘사랑은 열정’이라는 모토를 실천했다. (그는 평생 9명의 여성들과 애정 관계를 맺었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서 하이네는 괴테를 ‘영원한 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사랑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의 법칙에 순종하면서도 여전히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하이네의 역설적인(irony) 감정이 함축된 경구는 이제 막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이라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애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태양은 아직은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지만 결국에는 질 수밖에 없겠지!  (p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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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청춘의 사랑>....왜 이 구절이 맘에 콕~박히죠? ㅎㅎㅎ
잘 지내고 계세요? 공부는 시작하셨나요? 방학인데 공부를 시작하시려니...여러모로 부담이 되는건 아니신지.

뭐. 저야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곱씹고 있을 겨울이지만, cyrus님은 청춘의 사랑을 시작하셔야 하는 시절이 아닐까요? 공부도 좋지만요..^^

cyrus 2011-12-30 21:55   좋아요 0 | URL
아직 구체적은 계획은 없고요, 일단은 가볍게 컴퓨터 자격증 공부는
하고 있는 중이에요, 방학동안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해요^^
그런데 공부만 하기에는 사는게 너무 지루하고 답답할거 같아요,
현맘님 말씀대로 청춘의 사랑을 시작해봐야하는데 말이죠^^;;

stella.K 2011-12-3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천일의 약속을 다 봤는데,
남자 주인공 나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멋있긴 한데
결론은 사랑은 부서지는 거로구나 싶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겠는가 였다.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건강, 조건 뭐 이런 거 다 따지고 하는 사랑이잖아.
그거 없으면 말짱꽝이고. 그것 역시 사랑은 아닌데
부서져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ㅎ

cyrus 2011-12-30 22:00   좋아요 0 | URL
<천일의 약속>, 저는 그 드라마 보지는 않았는데 호응이 꽤 좋은가봐요.
여주인공인 수애가 불치병이라면서요, 제가 알기로는 새드엔딩이라는데
결국 김래원은 수애 죽는 날까지 사랑의 신의를 지켰는가 보군요.
그런 상황의 사랑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네요 ^^

stella.K 2011-12-31 11: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드라마 보고 말해.
처음에 그들도 뭐 어려울까 싶어 결혼했지.
그래서 사랑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겪어보지 않아도 절절히 다가와.
내가 드라마 많이 보진 않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란 생각이 들어.
김수현 작가 아무리 욕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손들었다.
뒷마무리만 잘 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뒤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도 100점 만점이 96점은 주겠다 싶어. 기회되면 함 봐. 수애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