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의 앨리스 증후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 드라마 <시크릿가든> 12회, 주원의 독백 -

  

 

작년 12월,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그 겨울,  주말 밤 10시만 되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워주던(?)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한번쯤 '주원앓이' 를 일으키게 만들든 [시크릿가든]이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주원'으로 분한 현빈을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우뚝 서게 만들 정도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회가 TV에 방영되고난 뒤에도 드라마 속 대사와 장면들이 시청자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장면 중간에 삽입된 OST뿐만 아니라 주원으로 분한 현빈이 읽은 책들까지도 때아닌 인기 열풍을 얻게 되었다.   드라마 덕분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책이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수백년 전에 쓰여진 고전 동화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앨리스' 는 드라마 내용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원이 읽은 책으로만 그치지 않고 드라마 대사에 인용될 정도로 '깨알 같이' 등장하였다. 

드라마 12회분에서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은 '다모'가 되어 액션 장면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이 있다.  혼자 속으로 라임에 대한 연정을 키워 나가고 있었던 주원(현빈 분)은 스턴트 촬영하는 장소까지 따라오게 되는데 라임의 액션 장면을 넋을 놓으면서까지 바라보다 속마음으로 되뇌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라임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앨리스'로 비유하여 낭만적으로 표현한 이 대사 덕분에 라임의 스턴트 액션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현빈의 모습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으며 동시에 '앨리스 증후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앨리스 증후군' 의 증상은 아주 신기한 시각적 환영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편두통을 가지고 있는데 물체가 작아보이거나 커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거나 하는 증상을 호소한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동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환상적인 현상들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나도 주원처럼 <앨리스>를 읽어봤지만... 

  

 

최근에 <앨리스>를 읽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는  

내심 은근히 이런 모습을 바래왔건만... 

 주위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모습은커녕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조차 

그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ㅠ_ㅠ (크흑..) 

 

 

 

 

 

 

  

 

 

 

 

 

 

 

 

지난 달에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틈틈이 독서를 하곤 했었다.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앨리스>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독서를 하고 있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이 책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학교 교과서 이외에는 책과는 아예 담 쌓은 남정네들이라 그런지 내가 책 읽는 모습에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도 단 한 명도 물어보지 않았다.    비록 무의미한 상상이지만 공부를 같이 하는 동료들 중에 단 한 명의 이성이라고 있었으면 어떤 반응이 찾아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왠만한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현빈이 나온 [시크릿가든] 정도는 분.명.히 시청했을 터이고 드라마에 나왔던, 주원이 열심히 읽었던 <앨리스> 역시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실 <앨리스>를 이름만 들어왔을 뿐이지 온전한 이야기를 접해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에 드라마로 인한 앨리스 열풍이 일어났을 때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앨리스>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재미난 책을 읽기 위해서 고른 것이 바로 <앨리스>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장르가 분명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읽혀지지 않는 작품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뒤죽박죽되어 전개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묘사나 대사 속에서는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풍자와 넌센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수수께끼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틴 가드너 (1914~2010) 

   
  가드너는 대중들을 위한 과학을 널리 알리는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독자들을 위한 유희 수학 게임을 컬럼 형식으로 연재할 정도로 수학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유희 수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 덕분에 가드너는 수학적 유희가 가득한 <앨리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앨리스'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앨리스>는 위대한 영문학 작품이 되는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 연구되고 해석되어지는 텍스트로 남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 과학 저술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 가 광범위한 주석을 단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출간하게 됨으로써 그동안 <앨리스> 속에 오랫동안 숨겨져왔던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이 봉인 해제되듯이 독자들에게 공개되었다. 

나는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국내에 번역된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에 수록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같이 읽었다.  한 페이지마다 박혀 있는 어마어마한 주석 때문에 <앨리스> 텍스트만 온전히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오리혀 가독성 떨어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된 <앨리스> 텍스트를 다 읽고 난 뒤에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처음에 읽었던 텍스트에서 알지 못했던 넌센스와 언어 유희의 의미를 <주석 달린 앨리스>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의 탄생과 관련된 뒷이야기

 

 

(左)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右) 캐럴이 직접 촬영한 7살의 앨리스 리델 (1860년)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된 <앨리스>에 수록된 역자 해설를 읽었다면 <앨리스>라는 소설이 작가 캐럴이 친분이 있었던 리델 가(家)의 자매들 중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지금까지도 그의 생애와 관련된 수많은 추측과 의문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루이스 캐럴' 은 필명이며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다.  그는 원래 수학자로 활동했으며 수학과 관련한 논문 몇 편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내향적이었으면서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말을 더듬지 않은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 앞에서뿐이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자신보다 많이 어린 예쁘고 가냘픈 몸에 영리하고 활발한 소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 아이들은 유독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수학 교수를 지내던 학교의 학장인 딸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훗날 <앨리스>라는 명작을 탄생케 한 캐럴의 인생에 유일한 '뮤즈' 앨리스 리델이었다.  

캐럴은 앨리스가 동행한 리델 가의 딸들과 함께 템즈 강을 따라 보트를 타면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고, 소녀의 호의적 반응에 신이 난 캐럴은 앨리스 리델을 위해 직접 글을 쓰고 손수 삽화를 그린 이야기 책을 크리스마스 기념일에 맞춰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땅 속 나라의 앨리스' 이다.   이듬해, 이야기 책은 내용을 좀 더 손질한 끝에 '루이스 캐럴' 이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 때, 당시 영국의 유명한 삽화가인 존 테니얼이 그린 삽화가 추가되었다.  

   

 

[존 테니얼이 그린 <앨리스>의 삽화 일부] 

 

 

 

 

 * 앨리스가 전면으로 나오는 삽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아기 돼지를 껴안은 앨리스의 모습이 귀엽다. 

 

 

*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의 만남

 

 

하지만 스무살 남짓 차이가 나는 내성적인 숫총각과 귀여운 소녀와의 교류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질 수가 없었다.  캐럴은 사진 촬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여자아이들의 사진을 즐겨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캐럴이 직접 찍은 앨리스 리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 몇 장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이유는 캐럴의 독특한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어린 소녀를 찍은 사진들 중 일부는 누드 사진이었다.  어린 소녀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들은 캐럴이 죽고 난 뒤에 불에 태워져 사라졌지만 일부 몇 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며 벌거벗은 리델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델의 부모는 앨리스에 대한 캐럴의 기이한 집착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가 앨리스에게 보낸 편지도 모두 파기시켰다.  심지어 앨리스 리델의 후손들마저도 캐럴와 앨리스와의 친분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의도적으로 파기시키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캐럴과 앨리스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단절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또다른 배경으로는 캐럴이 11살이 된 앨리스에게 청혼했기 때문이라는 원인도 있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 대한 그의 유별난 관심은 캐럴이 소아성애자였을 가능성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앨리스>, 알고 보면 사랑의 순애보?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한창 어린 소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상적인 사랑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앨리스> 속에는 귀여운 소녀 앨리스 리델을 향하는 내성적이면서 상상력과 동화적 감수성이 충만한 캐럴의 애틋하고 각별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앨리스>가 처음에는 앨리스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비추어 본다면 <앨리스>는 내성적인 말더듬이 수학자가 사랑하는 앨리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면서도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일종의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앨리스와의 행복한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캐럴의 순정적인 마음 역시 엿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앨리스를 동행한 자매와 함께 한 템스 강에서의 소풍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아름다운 내용의 서시(序詩)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황금빛 오후 내내
우린 한가로이 배를 저었네.
솜씨는 없었지만
작은 팔로 부지런히 노를 저었지.
작은 손은 헤매는 우리를
이끌어주는 척 손직했다네.

아, 잔혹한 세 사람이여!  그런 시간에
꿈을 꾸는 듯한 날씨에,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다니.
깃털 하나도 살랑일 수도 없을 만큼 숨이 약한 이에게!
하지만 불쌍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말하는 세 명의 목소리를 어찌 당해 내겠는가!

(후략)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106 -

 

시 속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템스 강 위에 띄운 보트를 타면서 캐럴이 들려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리델 가의 세 자매를 가리킨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캐럴은 직접적으로 앨리스에 대한 연정을 드러내고 있다.   <앨리스>가 원래 앨리스 리델, 단 한 명의 소녀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정이 담긴 일종의 헌정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헌정사 속에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다.  '먼 나라에서 온 꽃들로 만든 화관' 은 오랜 세월이 지난 시들어지듯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잊혀질까봐 걱정하는 캐럴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앨리스!  이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를 가지렴.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이 이야기를 놓아두렴.
어린 시절의 꿈이
신비로운 기억의 띠로 얽혀 자라는 그곳에.
저 먼 나라에서 꺾은 꽃들로 만든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3장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편에는 인간처럼 대화를 하는 각종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널리 알려진 동물이 바로 도도새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 중에서 앨리스를 가장 호의적으로 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코커스 경주의 우승자로서 앨리스에게 상으로 골무를 수여하는 도도 (pp 137)   

   
 

재미있게도 테니얼의 삽화 속 도도의 날개 밑에는 인간의 손이 달려 있다. 아무래도 골무를 집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인간의 손을 그려넣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도도의 양 날개는 퇴화되어서 날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도도는 일반 새와는 다르게 날아다니지 못하는 '바보, 얼간이  새'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되었고 인간의 지나친 수렵으로 인해서 17세기 말에 멸종되고 말았다.

 
   

 

자신이 제안한 코커스 경주에서 모든 동물들 그리고 앨리스가 우승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상을 수여하게 되는데 도도는 엉뚱하게도 앨리스의 주머니에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것처럼 전달한다.  

<이상한 나라>에 등장한 도도는 루이스 캐럴, 작가 자기 자신을 희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자기 이름을 '도-도-도지슨(Do-Do-Dodgson)'이라고 발음한 것에서 차용하여 '바보, 얼간이 새'로 상징되는 '도도(Dodo)'로 소설 속에서 분장한 것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부상(副賞) 중에 왜 하필이면 '골무'를 수여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마틴 가드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앨리스>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해석의 대상이 되어지듯이 도도가 앨리스에게 수여하는 '골무'에 대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직접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골무'는 영어로는 Thimble이다.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 찾아보게 되면 골무라는 뜻 이외에도 '고리'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골무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헝겊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플라스틱, 금속제품으로 된 것도 있으며 손가락 끝에 끼우는 캡 모양과 가운데 손가락에 끼는 링 모양,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포털사이트에 '영국 골무'로 검색하게 되면...  예쁜 무늬가 그려진 영국 골무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과연 사진 속 고급(?) 골무가 진짜로 영국산인지 제대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

캐럴이 활동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후반) 때 부유한 사람들이라면 도자기 형태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고급 골무를 사용했을 것이다.  특히, 리델의 아버지은 유명한 영국의 명문대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처지 학장이기 때문에 고급 골무를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을 것이다.

 
   

   

영국산 골무는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조그만한 도자기를 연상케 한다.  바느질할 때 주로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이면서도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소중히 보관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앨리스 수준의 연령의 소녀라면 작고 아름다운 물건에 한창 관심을 가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앨리스 수준에 딱 어울리는 작고 아름다운 선물로도 알맞다.   

캐럴이 이런 의도를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지 않았을테지만...  ^^;;  

앨리스가 가지고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품으로 수여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오히려 앨리스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캐럴의 조크(Joke)로도 볼 수 있다. 

 

 

 한 소녀를 향한 사랑이 만들어낸 판타지  

'앨리스 증후군'에 시달렸던 주원은 끝내 길라임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라는 작품 하나만으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되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주원은 '라임앓이'로 인한 앨리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소심한 루이스 캐럴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앨리스 앓이'를 하는 독신으로 살아야만했다.    

지금까지도 캐럴이 실제로 앨리스 리델과 사랑에 빠졌는지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말로 자녀뻘인 앨리스 리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려고 했는지 확증할만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캐럴은 어린 소녀들에 대한 순수하면서도 각별한 애정을 자신만의 이성애로서 표출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소녀에 대한 캐럴의 애정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에 등장하는 험버트 험버트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캐럴이 그저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기 위해서 어린 소녀들의 모습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은 아니었다.   

 " 불쌍하고 가엾은 꼬마 앨리스! "

1932년, 루이스 캐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K. 체스터턴은 <앨리스>가 학자들에 의한 텍스트의 무분별한 해석으로 인해 '오래된 비석처럼 차갑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한탄하였다.  그는 <앨리스>가 재미있는 동화로서 읽혀지기보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듯이 텍스트 해석에 치중하는 독서를 문제 삼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농담과 많은 생각이 요구되는 수학적 유희 그리고 터무니없는 의미를 가진 넌센스 때문에 오히려 <앨리스> 읽기를 기피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캐럴은 독자들로 하여금 곤란하게 만드는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가 아니다.  그리고 독자들을 골탕 먹이려는 괴퍅한 의도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저 복잡하고 머리를 아프게 만들만한 언어적.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은 오직 자신이 사랑했던 앨리스를 위한 캐럴의 은밀한 밀어(蜜語)다.  앨리스를 향한 사랑이 흥미롭고 독특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은 바로 루이스 캐럴이다. 

<앨리스>가 동명의 소녀를 위해서 말더듬이 수학자가 손수 제작한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평생동안 한 소녀를 향한 사랑앓이를 하다가 독신으로 지내야만했던 '왕소심' 말더듬이 수학자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와 행복했던 템즈 강에서의 추억은 이제는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 으로만 남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조관우의 <늪>에는 이런 가사 구절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 

노랫말처럼 캐럴은 <앨리스> 속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나마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고 싶어했으며 자신의 감정을 앨리스 리델에게 표출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말 더듬는 자신을 어리석은 도도새로 둔갑할 정도로 말이다.   상상력이 충만했던 캐럴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상상 속으 동화로마나 가능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지금도 <앨리스>를 읽게 되면 앨리스가 체험하게 되는 황당한 사건들이 재미있고 유쾌하다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야했던 어느 말더듬이 수학자의 슬픈 사연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루이스 캐럴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저 간직한 어느 사내의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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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0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 이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당!!! ^^

cyrus 2011-11-08 14:57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읽다보면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있답니다. ^^

아이리시스 2011-11-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석달린 앨리스 맨날 두 페이지 넘기다가 다시 덮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ㅠㅠ 주석이 나를 잡아먹고, 내가 주석에게 잡아먹히는 느낌이 든다니까요.ㅋㅋㅋ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만 먼저 읽고난 후에 다시 읽을 때 주석을 읽었어요.
그 중에 정말로 궁금한 내용과 관련된 주석을 중심으로요. ^^

노이에자이트 2011-11-0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에서도 어린 소녀가 육체적 쾌락의 대상은 아닌데,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 때문에 음란한 작품인줄 아는 이들이 많죠.정작 읽어보고 "뭐 이래~야한 소설이 아니네~" 한다는...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앨리스를 읽어본 김에 이번 기회에 롤리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yamoo 2011-11-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틴 가드너의 책들은 정말 멋지죠~ 저두 번역본은 한 권 빼놓고 모두 갖고 있습니다. 윌리엄 파운드스톤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과학 저술가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만만한 책이 아닌 거 같아요. 논리와 수학적 사고의 핵심이 담겨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랄까요~

cyrus 2011-11-08 15:00   좋아요 0 | URL
마틴 가드너가 쓴 이야기 패러독스라는 책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도 참 좋았어요. ^^

논리적, 수학적 사고가 요구되는 요소들을 이야기에 넣다보니 읽을 때
간혹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도 주석을 읽다보면 작가의 창작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카스피 2011-1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마틴 가드너 주석달린 앨리스와 펭귄 클래식 앨리스 세트를 가지고 있어요.위 사진에 있는 합본으로 된 앨리스도 살려고 했지만 솔직히 읽기 불편해 아직 안사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분권된 앨리스가 읽기 편하서지요.하지만 약간 주석이 다르다고 하니 살까 말까 고민되기도 하네요^^
 

 

   

 Scene #1  10월의 마지막 밤에 나는...  

 

어제, 인터넷 접속을 하면서 유명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잊혀진 계절' 이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봤다.   

좀 웃긴(?) 사실이지만 나는 이 노래를 잘 안다.   

참고로 이 노래는 내가 태어나기 6년 전에 나온 걸로 알고 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7080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가요를 섭렵하게(?) 되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가사 내용대로 가을, 특히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떠올리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이다.   애상적인 가사와 멜로디에 걸맞은 가을만 되면 유독 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가을이 아니더라도 종종 이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계절'의 가사처럼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딱 맞은 노래인 것이다.  

  

비록 가사 내용처럼 10월의 마지막 밤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슬픈 일은 아니었지만...  어제 같은 경우에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잊혀질 수 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기억되었다.  

 

  

 Scene #2  야심차게 준비한 발표 수업, 그러나... 

 

지난 주에 중간고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토론 수업 준비 때문에 제대로 쉴 여유가 없었다.  물론 시험 마지막 날에 모든 시험을 다 치뤄진 후에 친구들과 함깨 시원한 맥주와 치킨으로 그동안의 시험 준비에 대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했지만..  기쁨의 여유를 즐기기에는 2학기 일정은 너무나 촉박했다.  

지난 주말에는 이번 주 월요일, 즉 10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 진행된 수업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 발표 때문에 장기간 시험공부로 인해 지친 두뇌의 가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고사가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시험을 치는 학생들을 위해서 독서실을 24시간 개방한다.  그 때부터 시작해서 시험 마지막 날까지 공부하느라 잠을 제대로 잔 날이 없었다.   

시험치기 전부터 미리 틈틈이 복습을 해놓았다면 굳이 잠을 안 자면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복습을 제대로 안 해놓으면 수많은 시험 범위 내용을 단기간에 학습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특히 2학기는 1학기보다는 학사일정이 짧은 편이라 시험범위는 1학기 때보다 적지만 단기간 벼락치기 공부하기에는 힘들다.  내 친구중에는 시험을 치기 3일 전부터 이제서야 공부를 하는 녀석도 있는데..    좋은 성적 받을리가 없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공부하지 못한 분량을 잠을 미뤄면서까지 끝내야 하는 성격이다.   

앞에서도 단기간동안 잠을 안 자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좋지 않는 공부 습관이라고 했지만, 다행이 내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      대체적으로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제일 못 나온 성적이 B+ 정도...       

그냥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단기간 안에 시험에 나올만한 핵심내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나만의 학습방식이 있어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거 같다.

 

어쨌든, 주말이었던 이틀만에 먼저 발표해야 할 내용을 조사, 정리하고 난 뒤에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하였다.   지난 달에 수업 발표를 해 본 적이 있어서 자신감이 100% 충만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준비를 한 덕분에 수업 당일날에 굳이 준비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내가 먼저 발표 준비가 100% 완료되었기에 먼저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교수님이 사용하시는 컴퓨터에는 내가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달 수업 때는 프리젠테이션에 에러가 없었는데,,,  주말 내내 수많은 효과를 넣으면서까지 프리젠테이션을 야심차게 준비했었는데..     

교수님 컴퓨터에는 내가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자표에는 화려한 사진이 곁들어진 바탕화면마저 없는,,,   완전 텍스트만 남아 있는 '하다 만 듯한' 허접한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파워포인트 기능이 작동되지 않으면 당황스럽기 마련인데..   그 날은 당황스럽기보다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적잖이 화가 나기도 했다.     주말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프리젠테이션 때문에 나의 능력을 100%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프리젠테이션으로 인한 불만 탓일까...? 

나 다음으로 발표한 사람들이 내가 준비한 내용을 조금씩 모방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발표를 했으며 발표하기 전에 수업 홈페이지에 발표 자료를 먼저 게시했으니 충분히 도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음 발표자를 위해서 최대한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5~6분 정도 발표를 했는데 나의 선의적인 의도 덕분에 내 다음에 시작한 발표자들은 15~20분 정도 자신들이 준비한 내용들을 마음껏 설명하였다.     

이 수업을 계기로 발표를 먼저 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발표 당일날에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Scene #3  수업시간 몰래 야구 중계 보기 

 

발표 수업에 대한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수업 시간 내내 몰래 스마트폰으로 야구 중계를 봤다. ^^;;   

어제가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대 SK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삼성이 우승하게 되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전이었다.   

어제는 야간 수업이 두 과목이다.  프리젠테이션 발표가 있었던 '한국정부론'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 바로 '인사행정론' 수업으로 이어져 있다.   수업이 쭉 이어져 있다보니 학교 시간표 상에는 쉬는 시간이 단 5분뿐이다.   

당연히 그 날은 수업보다는 야구 중계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점수는 1:0,   삼성이 한 점차로 앞선 상태에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다가 3위의 성적으로 대망의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승승장구의 SK라서 경기의 분위기기 한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그야말로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막강 불펜진의 호투로 한 점차로 5차전을 삼성이 이김으로 써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가 5년 만에 우승하게 되었다.   그것도 10월의 마지막 밤에...

삼성이 우승하는 장면을 보니 전에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만약에 5차전에서 역전패당했으면 2011년 10월의 마지막 밤은 좋지 않은 일들만 기억되는 날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와서 글을 남겨보는데 깨알같은(?) 책 소개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집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 때 사용하는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의 버전이 2007이다.   

이번 학기만 해도 해야 될 프리젠테이션 발표 수업이...  3번이나 있다.  -_-;;

좀 더 멋진 프리젠테이션을 완성하기 위해서 시간 날 때마다 파워포인트 기능을 배우려고 한다.    독학이라서 어느 교재가 좋은지는 잘 모르지만,,   백과사전 형식으로 된 책으로 공부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백과사전'이니깐 일단 이 책을 구입하고.. 

 

이외에도 프리젠테이션 기능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컴퓨터 관련 교재를 알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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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1-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애늙이 같이 그런 노래를...!
하긴 10월의 마지막을 기리는데 아직 그 노래에 필적할만한
노래는 없지.
요즘 젊은애들 노래는 낭만이 없어서 말야.
요즘 같이 야구가 뜨겁기는 80년대 이후 처음인 것 같아.
나 같은 문외한도 야구는 알고 싶더라.
특히 9회말까지 가 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말이 왤케 유혹적으로 들리던지.

비록 수업은 그렇게 됐어도 야심이 있다는 게 어디야?
그런데 또 뭐야, 수업시간에 야구를 보다닛!
나 때는 결코 있을 수 없는...거의 반역이라고 봐야지.ㅋㅋ

cyrus 2011-11-07 14: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젋음에는 낭만이 있어야 하죠 ^^
그리고 가끔 대학 생활에 한두번쯤은(?) 비뚤어진 생활도 필요해요ㅋㅋ

아이리시스 2011-11-0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이건 자랑질(?)로 시작해서 야구 그리고 책으로 끝나는 페이퍼군요!
행정학이 벼락치기로 된다니, 나도 막 힘이 나는중.ㅋㅋㅋ
근데 저는 공부하다가 잘 시간 되면 언제나 자기 때문에, 푸하하.
스텔라님이 요즘 젊은애들이라고 하시면........................ㅜㅜ

stella.K 2011-11-01 19: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대는 나를 너무 젊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에헴~ㅋㅋ

cyrus 2011-11-07 14:27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공무원 시험 같은 경우에는 절대로 벼락치기 성공 못해요^^;;
학교 시험은 머리만 좋다면 벼락치기는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해요.

잘잘라 2011-11-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흐흐흐흐흣 그저 한참 웃고 갑니다.

혹시 이 노래도 아시려나요?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아하~
아- 아- 태양같이 젊은 그대
젊은 그으대에~

cyrus 2011-11-07 14:28   좋아요 0 | URL
김수철의 젋은 그대 아니에요? 지금도 대학가 내 응원가로
많이 불리우고 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11-0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김수철 이 용이라니~ 아마 이런 분들은 티아라 씨스타 시크릿 레인보우 멤버 이름은 모를 걸요~

cyrus 2011-11-08 15:00   좋아요 0 | URL
(^^)
 

 

  

* 관련강의: 한국정부론 5주차 강의 (2011년 10월 10일)  

   관련동영상: EBS 지식채널 '직선과 곡선' , '1.3cm의 권력' 편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입니다. 이 어린아이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십시오.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 뿐입니다.    

- 찰스 디킨스 -

 

 


  지구는 둥글지 않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물의 단면만을 보고 그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갖는다. 어떠한 현상이 객관적인 사실로 확인되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예측불가능, 불확정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지금, 현상의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확인은 직관력과 통찰력에 의해서 출발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진리의 지속성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에는 오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만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즉 객관적 진실로의 접근은 그에 반하는 현상이 존재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확인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그에 반하는 논리나 설명에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검증 작업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다양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렵다.

객관적 진실 접근의 어려움은 인간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구가 평평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시대가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인식은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고착화되었다.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등장했던 대항해 시대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구의 끝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감히 먼 바다를 향해 항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지구는 ‘둥글다’ 라는 진리를 알 수 있었다.    

 

 

 

 유럽우주국(ESA)에서 공개한 지오이드 사진 속 지구의 형태  

(사진출처: 한국경제)

   
 

지구 중력장 지도 '지오이드'는 파란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지구의 중력 차이를 나타낸다. 밝아질수록 중력이 강함을 의미하며 밝은 노란색이 가장 강한 중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모양은 단순한 회전 타원체인데 '지오이드'는 실제의 지구 모습에 가깝게 지구의 모양을 나타낸다.

 
   

 

하지만 진리는 절대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또한번 증명해주는 사례가 등장했다.  

유럽우주국(ESA)에서 지구의 중력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한 장의 지오이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속 지구의 형태는 둥글다기보다는 상당히 찌그러진 모습이다. 사진 속 지구는 찌그러진 모양으로 평소에 생각하던 '지구는 둥글다' 는 고정관념을 한순간에 깬 것이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무명의 학자가 이미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확고부동하게 지켜온 지식이 한순간에 폐기되고 바꾸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진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웃사이더’ 라는 단어가 있듯이 기존 사회에서 벗어난 진리를 배반한 소수의 의견은 열렬히 환영받기보다는 오히려 배척당하는 편이다.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옹호하다가 화형에 당할 뻔했던 것처럼 객관적 진실이라도 소수의 의견이라거나 혹은 기존의 다수의 의견이 이미 확고한 진리로 자리 잡고 있는 환경 속에서는 그저 ‘허튼 소리’ 에만 불과했다.  

  

 

 침묵하는 마이너리티    

 

 

 

 

침묵의 나선형 이론 모델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twinklelily?Redirect=Log&logNo=70087268764

 

 

사회학에서는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대중들은 자신의 의견이 우세한 여론에 속하면 더 크게 주장하지만, 열세에 속하면 침묵하려는 경향의 현상을 비유한 이론이다. 또한 대중의 의견이 설사 소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대중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다를 때 더욱 침묵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다수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이라면 혼자 고립되는 것을 꺼려해서 계속 침묵하게 되고, 결국 다수의 의견은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소용돌이처럼 확산된다. 결국 사람들은 대세를 따르는 대중의 의견을 추종하는 경향을 나타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서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분명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숨죽일 수밖에 없는 목소리에 언론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양쪽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바라보지 않는다거나 그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론은 진실이 아닌 조작과 선동의 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든 교수든 개인이 국가의 이슈에 대해 어떤 소신을 갖고 견해를 밝혀야 할 경우 무언의 압력을 느낀다면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공유할 수 있는 건전한 대화와 토론의 장이 좁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침묵의 나선’ 이 확산되면 개인과 사회의 획일화로 민주주의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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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10-1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의 나선형,
아주 흥미로운데요... 객관적 진실은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요?
침묵 속에?...
사이러스님, 시험기간이죠?... 좋은 결과 있길요..^^

cyrus 2011-11-01 11:34   좋아요 0 | URL
시험 끝나도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서 뒤늦게서야 답변을 하게 되었네요. ^^;;
중간고사는 지난주에 끝났답니다.

잘잘라 2011-10-17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아- 지오이드 사진으로 본 지구, 왜 이렇게 웃기죠?
음..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을것 같은데, 제가 강의실에 앉아있다가 저 사진 봤으면 아마 큭큭대느라 뒷얘기는 못들었을것 같아요. ^^;

cyrus 2011-11-01 11:36   좋아요 0 | URL
한국정부론 수업이 한국정부만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관점이라고 해야되나요,,? 어쨌든 수업내용이
재미있고 토론식으로 진행되어서 참 좋아요 ^^ 그래서 수업이 자유분방한거 같기도 하고요.
 
국보순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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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수난받는 우리나라 문화유산들

  

 

  

 세계적인 암각화 유물인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에 남겨진 문제의 낙서  

(사진출처: 연합뉴스) 

 

 

최근에 한 고등학생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국보인 암각화에 장난삼아 낙서를 해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울산시 울주군이 국보 147호인 '천전리 각석' 에 낙서한 범인을 잡기 위해 최고 10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수사를 확대한 것을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 한국의 낙서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를 훼손한 혐의는 문화재 보호법 위반죄가 적용되어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해지며 이를 신고하게 되면 1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문화재 낙서 사건 이후로 국보 문화재에 대한 정부당국의 관리 소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인력의 부족과 숭례문 화재 사건 때처럼 초동 대처가 미흡한 관리 체제는 문화재를 훼손하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비단 관리 부실에 의한 문화제 훼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의 도난과 해외반출이 매년 급증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국보 문화재가 수난받아야하는 이유에는 정부당국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지만,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역시 문화재를 훼손하는데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암각화 낙서 사건 이후 문화재 관리에 대한 처벌을 성토하는 대중들이 등장했다는 점에서만 본다면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그리 야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MBC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 에 출연한 이후부터 그가 쓴 문화재 소개 관련 저작들의 판매가 급증되는 동시에 유 교수가 언급한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무릎팍 도사' 에 출연한 유 교가 자신이 답사한 문화유산 중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를 최고의 문화재로 꼽게 되자 방송이 전파된 뒤에 선암사가 때 아닌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유 교수의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동안 외면받았던 우리나라 국보 문화재의 진면목을 알릴 수 있어서 좋지만 때아닌 문화재 관심 현상의 이면에는 문화재라고 하면 낯설고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인식과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대중들의 심리도 숨겨져 있다.  

만약에 유 교수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었을까?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 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소개한 유 교수의 신작 <국보 순례>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해외 한국 문화재의 존재와 문화재 관리 보존의 중요성 역시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가치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 신라 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pp 89) 

 

흔히 삼국시대 금관 하면 신라 금관으로 대표되는 금속제 머리띠에 세움 장식을 갖춘 머리띠 형태의 관(冠)을 연상하기 쉽다.   저자의 표현대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어느 왕관보다도 화려하고 장엄한 구성미' (pp 88)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금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왕이 머리에 썼던 화려한 왕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금관의 용도는 왕의 부장용으로 만든 위세품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의 한 장면)

  

오늘날 사극에서 보면 왕의 머리 위에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금관이 씌어져 있다. 하지만 사극에서의 금관의 용도는 잘못된 사실이다.  금관은 생전에 왕이 머리에 쓰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금관의 용도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금관이 고분에서 출토된 당시에는 박물관에 소장되었던 것처럼 장식들이 뻗쳐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장용으로 만든 위세품(威勢品)이라고 하며 혹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쓰던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서양의 종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

에밀레종,  통일신라 771년,  국립경주박물관  (pp 105~106)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과 무지는 국보 문화재로써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국보 문화재들이 수두룩하지만 '에밀레종' 만틈 대중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외면당하고 있는 비운의 문화재가 또 어디 있을까? 

에밀레종의 '에밀레' 는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울음소리 '에밀레 에밀레(어머니 어머니)' 소리를 낸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종의 실제 명칭은 성덕대왕 신종이다.   통일신라 742년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경덕왕의 아들이 혜공왕이 다스리던 771년에 완성되었다.    

성덕대왕 신종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종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정식 명칭보다는 '에밀레종' 이라는 독특한 이름과 함께 종소리가 신비롭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종은 세월이 지나면 부식되거나 깨져서 더 이상 칠 수 없게 된다.  성덕대왕 신종 역시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 과거, 긴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종으로 홀대 받은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원래는 봉덕사에서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년) 영묘사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에 지금의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적지 않은 이동에다가 두 번째로 오래된 종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형태의 종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종의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2002년 타종식 이후로는 에밀레종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면 에밀레종 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pp 106)  

저자의 생각처럼 에밀레종이 울리는 소리를 마지막이라고 들어본 세대들 중에는 죽기 전까지 딱 한 번이라도 그 종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반면 에밀레종이 울리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마음 속 깊이 울리게 만드는 에밀레종의 신비로운 소리의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울리는 종을 이제는 소리마저 듣을 수 없는 그냥 박물관 앞뜰에만 걸려 있는 하나의 거대한 유물로 남아 있다. 종의 진정한 가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점은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박물관 견학 차 에밀레종을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는 그냥 '커다란 종' 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왼쪽)  목조반가사유상, 일본 아스카 7세기, 일본 고류지 (pp 143) 

(오른쪽)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 문화재의 멋과 예술적 가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그 빛을 발하고 있 다.    해외에 있는 몇몇 문화재들 중에는 과거 서강 열강들의 약탈로 인해 지금까지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예술 양식이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도 보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외국의 박물관이나 유명한 유적지에 가면 심심찮게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일본 국보 제1호로 불렸던 일본 교토 고류지에 보하고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비슷하다.   이것만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보낸 것인지, 혹은 목조만 일보에 들여와 만든 것인지 단정할 수가 없지만 일본의 미술사가들은 불상의 양식이 일본식의 불상과 다른 도래(渡來) 양식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불상이 보관된 고류지는 진하승이라는 신라인이 세운 절이기 때문에 목조반가사유상이 당시 신라에서 유행하던 예술양식이 일본으로까지 유행, 보급되었다는 학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일본에 있는 불상과 우리나라에 있는 구리로 만든 불상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진만으로도 목조 불상과 금동 불상의 미묘한 멋의 차이가 느껴진다.  처음 제작했을때만 해도 금박을 입힌 구리를 통해 미륵의 신성스러운 존재를 한층 부각시키고자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상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해 녹이 슬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려한 금빛만 퇴색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상의 아름다움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목조 불상은 그렇지가 않다.  목조 문화재 역시 습한 날씨, 화재, 흰개미에 취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화재를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서 오랜 세월 속에도 제작 당시 아름다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오히려 목조 불상이 금동 불상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금동 불상은 녹이 슨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미륵의 미소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반면에 목조 불상에서는 미륵의 미소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미륵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는 듯한 은은한 미륵의 미소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일본에 방문하면서 목조 불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찬사의 소감을 남기기도 하였다.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칼 야스퍼스,  <유홍준의 국보순례> pp 142 재인용 -

 

  

 

 문화유산 보존, '반짝 관심' 이 아닌 '친숙한 관심' 이 필요할 때 

 

 

경복궁 근정전의 박석 (pp 184) 

 

<국보순례>에 수록된 '궁궐의 박석' 편에서는 박석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유 교수는 경복궁관리소장에게 근정전은 어느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관리소장은 장마철 큰 비가 내릴 때 빗물이 박석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며 대답을 했다고 한다.  (박석 일화는 유 교수가 출연한 '무릎팍 도사' 방송에서도 언급되기도 했다)

사실 딱 한 번 경복궁 근정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국보순례>를 읽기 전까지는 박석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다.  그저 돌로 만든 바닥으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박석을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박석의 자연스러움을 오히려 마감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 건축의 폐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pp 183) 

하지만 유 교수는 박석은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을 꾀한 우리나라 특유의 건축 미학에 잘 맞아떨어진 건축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릎팍 도사' 출연 당시 비 온 날에 한 번 박석을 구경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박석 일화를 통해서 알 수 잇듯이 문화재라는 것은 박물관 속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는'보물' 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문화유산' 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물' 문화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국보',  또는 '값어치가 있는 물건' 이다.  문화재를 그저 재화적 가치가 높은 '보물' 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전통적 멋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대중이 문화재를 '보물' 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은 문화재를 꼭꼭 숨겨두면서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의 관리 방식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나친 신비주의는 오히려 대상에 대한 타자의 관심이 줄어들 수 있는 역효과를 낳는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도난당하지 않게 철저하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기적으로 유물 자체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어필' 할 줄 알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유홍준 교수 효과' 만으로도 우리나라 문화재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오히려 대중의 '반짝 관심'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에 힘입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보다는 문화재 낙서 사건 같은 교양적이지 못한 행태가 늘어나지 않을까 되레 염려되기도 한다.

 

천전리 각석 낙서 사건 이후로 울주군은 더 이상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인력과 예산을 늘려 첨단 감시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방안을 마련하는 지자체의 행보는 보기 좋지만 과연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과거 이전에도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와 법규가 마련되었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관련 인력과 예산이 크게 늘고,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었지만, 잊혀질 때만 되면 문화재 훼손과 관련된 유사 사례가 반복되었다.

오늘날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기후변화, 기상재해 등으로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문화재 관리 및 보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 소중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미래의 후손들까지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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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5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5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0-1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하시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정말 좋은 곳, 볼거리가 많은데 무조건 해외로만 나가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갖게 되면 그렇게 숨어있는(?), 아니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곳을 꼭 찾아 보려고요!! ㅎ

cyrus 2011-10-16 2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늘 1박 2일에서 경주 7대 보물 편을 재미나게 봤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견학으로 경주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의미 깊은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TV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했다.  

지난 주에 작성한 '진보와 보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정부사' 라는 과제였다. 과제 관련 수업은 한국정부론이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에 발표를 했었다.    

처음에 작성했을 때는 논란이 많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를 중심으로 비교, 정리를 했었는데 발표를 위해서 제1공화국부터 현 이명박 정부까지 모조리 조사하게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주 토요일, 집에서 주말을 잘 보내고 있던 중에 교수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그것도 한밤중에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다니...   처음에는 전화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던 이유는 월요일에 과제 발표를 할 터이니 내용을 좀 더 보충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요청에 너무 쉽게 동의는 했지만 주말동안 과제를 보충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주말에는 시험 공부를 할려고 했었다. 

토요일, 일요일.  단 이틀동안 내용 보충에다가 발표를 위한 프리젠테이션까지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틀동안 잠 한 번 제대로 자지 못한채 과제 발표 준비에만 몰두하였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하고 난 뒤에 발표할 때 내용을 수월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일종의 발표문을 따로 정리하였다.    발표문을 작성하고 나니 한국정부사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제대로 한국정부사를 공부한 셈인 것이다.

 

과제를 완성하고 나서 발표 준비 연습도 해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도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80명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를 해야되는데 말이다. 오히려 발표가 잘 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대감만 들었을 뿐이었다.  ^^;;   

 

그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었을까...?    

어쩌면 발표문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준비했던 발표문 그대로 읽으려고 작정했었기 때문이다.   

막상 강단에 오르고 나니 오히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교수님과 많은 학생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비록 발표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던 것 그리고 발표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해서 따로 준비한 발표문에 너무 의지한 채 발표했던 점만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나의 발표에 대해서 교수님과 학생들의 평이 좋았다.    아무래도 내가 준비한 과제의 주제와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그 날 나와 같이 발표했던 학생들과는 다르게 참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거 같다.  

 

처음으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프리젠테이션 발표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겼을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수업들 중에는 조별 발표가 많이 있는 편이다.  두 세번 정도 발표에 참여하게 될거 같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중간고사 끝나고 난 뒤에는 프리젠테이션 스킬에 대해서 따로 공부를 할 예정이다. 

프리젠테이션 스킬 공부하랴, 과제 준비하랴 그나마 한가할 것만 같았던 11월도 바빠질거 같다.   

 

덤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문을 올려본다.  내용은 10월 1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내용을 좀 더 수정,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갑작스런 발표 일정 때문에 이틀동안 부랴부랴 자료를 찾아 정리한 것이다.   재1공화국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까지 역사순으로 배열하여 정리하였지만 발표 시간 한계상 한국정부사에 관련된 주요 내용을 제외했고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한국정부사와 관련하여 좀 더 보충해야 할 내용 또는 참고하면 좋은 자료와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역사

제가 발표하려는 내용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한국정부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한 두 개의 역사라는 것은 북한과 남한처럼 하나의 땅덩어리에 갈라진 두 나라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즉 남한에서 알려져 있는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권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현대사를 이해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사는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진보와 보수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언급한 진보와 보수는 무엇일까요?   진보와 보수를 또 다른 말로 좌파와 우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진보는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와는 반대로 보수는 새로운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분단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갈등이 치열합니다. 진영진보 좌파를 친북 인사(북한 정권 체제를 따르는 인사) 또는 속된 말로 빨갱이로 비하되기도 하며 보수 우파는 변화를 거부하기만 하는 머리가 나쁜, 즉 꼴통 보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초창기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의 ‘좌파적’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의 여당인 한나라당은 근. 현대사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산업화, 경제 발전, 민주주의 확립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진보적인 입장의 야당인 민주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 등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뉴라이트의 실체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은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교과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에서 출간된 대안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는 말 그래도 직역하면 ‘신우익, 신보수주의’ 입니다. 20세기 중후반에 나타난 새로운 성향의 보수를 뜻합니다. 뉴라이트의 기원에는 198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대처 여사나 미국이 레이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 성장을 우선적인 목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PPT 바탕화면에 있는 커다란 마크가 뉴라이트전국연합 로고입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보수 진영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사회단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뉴라이트, 즉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정부의 역사를 진보 진영의 관점을 비교해서 정부가 수립된 제1공화국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역사적 순서대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1공화국 (이승만, 1948~1960)   

 


 

며칠 전에 KBS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를 소개한 특별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덮어주거나 4.19 혁명의 의미를 왜곡된 내용을 소개해서 다큐멘터리의 공정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히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해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진보 입장에서 이승만 정권은 남북 분단의 원인을 초래했으며 경제적 빈곤에 시달린 독재정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대체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12년 간 이어진 정권 유지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고 보고 있으며 정권 인사 편성에 친일파를 등용해서 정치적으로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보수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실시한 농지분배 덕분에 남한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독 정부 수립을 통한 한미 동맹 강화 덕분에 한반도가 안정적인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특위를 해산시켰으음에도 불구하고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하기 위한 인재 부족을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이승만 정권을 변호하는 입장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 1960~1961)

  

 

윤보선 제2대 대통령(左)와 장면 국무총리(右)

 

화면에 서로 악수를 하고 있는, 왼쪽에 있는 사람이 제2대 대통령 윤보선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장면 국무총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제2공화국을 국무총리 이름을 따서 장면 내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각이란 내각책임제를 말합니다.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은 의례적으로(형식상으로는) 국가의 우두머리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무총리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권 체제입니다. 

장면 내각은 빈곤한 국가의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인해 시들어진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안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정권이 제일 먼저 계획을 구상하고 실시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계획을 추진한 것은 맞지만 계획안을 제일 먼저 구상한 것은 장면 내각부터 입니다. 장면 내각이 경제개발을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면 내각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경제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미국의 원조에 기대려고 하였지만 미국 측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면 내각은 이승만 정권 및 부정선거 처리문제 등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진보, 보수 진영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실질적인 집권자나 다름없는 장면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진영 학자들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안 추친 실패를 4.19 혁명 이후 정치적 갈등(집권당 민주당 내 신. 구파 간의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어 실현되지 못했다고 국내적인 요인만 설명하고 있을 뿐, 계획 추친하는데 실패하게 만든 외부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반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면 내각은 미숙한 국정 운영을 거듭하다가 1961년 5월 16일, 한 무리의 군인들이 총과 탱크를 앞세우고 수도 서울을 한순간에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제3공화국 (박정희, 1963~1972)

  

 

그들이 바로 당시 육군사관학교 소장이었던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5.16 군사정변을 실질적으로는 군사력을 동원한 불법적인 정권 장악, 즉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장면 내각에 대해서도 설명했듯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계발계획은 장면 내각 때 수립된 것을 그저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이후에도 빈부 격차는 여전했고, 정계 내 정격 유착 등의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파병 결정은 실제로는 전쟁에 참정하는 국제적 명분의 설득력이 없었으며 ‘미국의 용병’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은 5.16 쿠데타는 무능한 국가권력을 장악한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박정희 소장이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내세운 혁명공약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혁명공약에는 총 6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속에는 이전 정권의 부패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공을 국시로 삼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3년에 박정희 소장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면서 실시한 경제개발은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국가의 발전을 가능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파병 이후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곧 경제개발계획 추진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4공화국 (유신체제, 박정희, 1972~1979)

박정희 정권의 유지는 유신체제가 성립된 제4공화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진보 입장에서는 유신체제는 집권 능률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무려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국가정보원을 기반으로 야당과 당파 저항세력에 대해서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의 통치방식을 ‘정보정치’ 또는 ‘공작정치’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단순히 개인적 권력욕 때문에 유신체제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신체제가 단행된 1960년대 후반에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공세가 강화되었고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주한 미국군의 3분의 1를 철군할 계획을 발표했었기에 박정희 정권이 급변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주국방 체제, 즉 유신체제를 선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록 대의제적 민주주의 정치 원리는 소멸되었지만 권위주의적 통치 덕분에 냉전 시대동안 국가 안보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를 기회삼아 대한민국이 경제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동지나 다름없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함으로써 종신권력의 꿈은 사라지는 동시에 18년이라는 박정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5공화국 (전두환, 1981~1987)
 

 


10.26 사태

 

 제6공화국 (노태우, 1988~1993) 

 

  

 

하지만 전두환 정권도 시민들의 민주화 바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제5공화국 헌법을 고수하여 정권의 연장을 획책하려는 정권에 대항하여 대다수 시민들이 6월 항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이 포함된 6·29 선언을 하게 됨으로써 제5공화국 종식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5년 단임제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의해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 역시 12.12 사태에 참여한 신군부 세력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다음에 노태우라는 또 다른 신군부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총선에 맞붙게 될 야권의 3후보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풍을 인식했는지 과거 신군부의 행적 처벌과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5공청문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를 했지만, 신군부 비리의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실 보수 진영에서도 노태우 정권이 신군부 세력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인정은 하고 있습니다만,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는 5공청문회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문민의 정부 (김영삼, 1993~1998) 

 


문민의 정부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영삼 정부는 과감히 개혁정잭을 폈습니다.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와 금융실명제(금융기관에서 거래를 실명으로 해야함)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하나회 소속 군인들을 숙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광주항쟁 내란 목적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단죄하지 않았고 여전히 광주학살, 12.12 사태 관련 진상 규명도 미흡했습니다. 결국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석방되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후반기로 갈수록 실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김영삼 정권 하의 최대 비리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관련되어 있어서 정부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보철강 부도 이후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외환위기까지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형에 처해졌음에도 석방되었듯이 김영삼 정부가 군부 내의 정치 세력을 완전히 청산했을지는 몰라도 과거 행적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제대로 이루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오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에 대한 내용이 누락된 점에서는 보수 진영의 역사 기록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1998~2003)  

 



김대중 정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벨 평화상과 그리고 햇볕정책입니다. 그 중에 햇볕정책은 처음 도입된 김대중 정부 시절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호불호의 반응으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남북한 사이의 긴장관계를 완화시켰으며 화해와 포용을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남긴 잊어서는 안 될 또 다른 공적은 재정 및 금융 긴축을 통한 경제개혁을 단행한 끝에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지금까지도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실시한 대북 원조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나 연평해전 발발 그리고 북측에 5억 달러가 송금된 대북 송금 사건 논란으로 인해 정책의 목적인 북한 개혁, 개방 유도는 실패였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된 1998년에 일본이 기존의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정부는 일본의 입장을 수용한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보수 진영 학자들은 이 협정으로 인해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노무현, 2003~2008)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선거 혁명을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고,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에 있어 ‘온라인 국민 참여 포털’ 구축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뒤를 이어 햇볕 정책에 이은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 10.4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여 2012년 4월 17일에 환수받기로 했습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군사 작전 통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여 자주 국가로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온 것을 시정하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기중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행정수도 이전' 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여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유력 일간신문을 비롯한 언론과 대립하여 임기 내내 언론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등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친북 좌파라는 비난을,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보수 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권력 기반이 취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관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에 일각에서는 대북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북한 반대 운동을 탄압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 민간단체의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사과한 것에 대해서도 대북 굴종 외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한미 동맹 파기를 의미하며 북한에게 군사력으로 흡수통일 될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그러면 마지막이자 현재 두 진영이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 남았는데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충돌되고 있는 최대의 논점이라면 아무래도 4대강 사업일 겁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세금만 축내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고요... 정부의 미디어 및 언론통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 정부에서의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간의 대립이 팽팽한데요...

 
최근에 정부 부처와 보수 진영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에 ‘민주주의’ 를 ‘자유민주주의’ 로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념 논쟁 중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도 지금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는 일부 보수 진영이 쓰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단어에 지금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 만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 교과서들을 담은 꾸러미에는 임시정부 법통 무시, 독재 미화, 이명박 치적 홍보 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들이며 훗날 미래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만 소개될 수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념 대립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 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습니다.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부합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정부사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쭉 훑어보면서...

역사적으로 맞는 내용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도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는, 좀 애매모호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은 다양한 관점을 같이 비교, 소개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의 관점을 인식하고 이해하면 좋을텐데 보수, 진보 이 두 진영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신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과 다른 입장을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이 무조건 맞다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헐뜯고 욕하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는 진보에게 북한에 넘어가서 아부나 떨 줄 아는 빨갱이라고 부르고 진보는 또 보수에게 앞뒤 꽉 막힌 꼴통이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념 간의 대립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지금도 좌. 우 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나름대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고정적이면서도 자신에게는 익숙한 현상에만 주목하고 그것만 가지고 사회를 인식하려고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철수 作)

이제 한국정부사를 조사하면서 느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면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에게 한 쪽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한 쪽 날개가 없는 독수리는 제대로 하늘을 날지 못한 채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리영희 한양대 교수는 진보와 보수 이념의 틀에 갇힌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즉, 이 말 속에는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쪽 날개가 없는 새는 하늘을 제대로 날 수가 없듯이 인간 역시 한 쪽 시선에만 바라볼 줄 아는 외눈박이가 된다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역사를 둘러싼 이념 논쟁은 끝낼 수 있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야하는 역사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역사를 바라보고 공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태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론 1주차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는 것' 만이 힘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요구되고 있는 힘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하는 힘이라는 것이 이념으로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볼 줄 아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자료에다가  긴 시간의 발표임에도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얻게 되었고 그 해에 바로 정식으로 제 10대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의 권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9사단장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라는 신군부 세력이 일명 12.12 사태를 일으켜 군사력을 장악하고 맙니다. 이렇다보니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서 제대로 된 권한 한 번도 행사하지 못한 채 이듬해 1981년에 역대 가장 짧은 임기 기간(약 8개월 정도)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사임하게 됩니다. 정식으로 사임하기 전까지는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게 휘둘린 그저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군부, 즉 군인들이 주축이 된 세력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과 유사하면서도 전두환 정부는 유신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구한 점이 유사했으며 반대 정치세력을 탄압했고 저항하는 광주 시민의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5.18 광주민중항쟁은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유신체제의 연장은 전두환 정권의 원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원집정제를 시도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원집정제란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절충한 정부형태를 말합니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에 관한 권한을, 총리는 내정에 관한 권한을 나누어 가지다가 국가 비상시가 되면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 때 이루어진 시민,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들은 급진적 좌파 세력이 참여, 주도했고 이를 계기로 독자적 정치 세력으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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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1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감동.. 새 그림 퍼갑니다.

cyrus 2011-10-15 19:29   좋아요 0 | URL
네~~ ^^

마녀고양이 2011-10-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늘 해야할 부분이 산더미라 장문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금방 쉽게 읽혀지네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자체도 사실 주관적(현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fact만 보라는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fact의 짜집기는 fact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양날개로 중도를 거쳐 날아야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저는 시계추와 비슷한게 역사가 아닐까 싶어요.
역사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이론이 모두 그렇죠. 정-반-합. 그러나 합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으로 변질되고, 그러면 또다른 반이 나오겠죠...
융통성있게 흐르는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해봅니다.

아........ 시루스님이나 저나 공부 산더미인데, 털썩!

cyrus 2011-10-15 19:32   좋아요 0 | URL
ㅎㅎ 글이 길어서 그런지 발표했을 때도 시간이 길어버렸어요.
원래 20분 정도 잡았는데,,, 해보고나니 30분 걸리더군요. ^^;;

참고로 저는 다음주 목요일부터 시험 시작이랍니다. 며칠동안 공부하느라
잠 한 번 제대로 못 잤어요 ^^;;

아이리시스 2011-10-1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그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추천 받고는 사려는 중인데, 한국 근현대사 이 책도 기억해둬야겠어요. 그래서 모든 한국사책 처음 시작할 때, 절대주의,상대주의,사실로서의 역사, 기록으로서의 역사.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믿고 안믿고는 우리의 자유지만, 그 뒷배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훗날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진짜 사실과 의도를 모를까봐 걱정이 돼요.

아........ 시루스님이나 마고님이나 공부 산더미, 안녕~~~~~~~~~~~~~~

cyrus 2011-10-15 19:34   좋아요 0 | URL
참고로 한국정부에 관한 책은 강준만 씨가 쓴 한국현대사도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내용의 책이 나왔더군요.

아이리시스님도 공부 산더미에 마주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