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삼재(三災) 논쟁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올해 삼수에 도전하는 녀석이 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삼수생에게 시험 합격을 위한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 작은 동네 호프집에서 친구 여러 명과 모임을 갖게 되었다.
술과 안주를 벗삼아 즐거운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에 삼수생 친구가 갑자기 '삼재'(三災) 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작년부터 삼재라서 과연 올해 수능시험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든다고 하였다. 작년에는 홀로 독서실을 다니면서 EBS 문제집을 열심히 풀면서까지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성적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수생 친구는 작년 수능시험의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난 원인이 다 삼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하는 일마다 꼬인다거나 좋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였다. 예전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증세가 더욱 심각해지셨고 올해 모의고사 성적들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등 삼수생으로서의 말 못한 고통을 토로하였다.
그러자 한 친구가 삼재는 1년을 주기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삼수생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작년의 기억은 잊어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성격의 나는 이를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위로를 그 친구에게 삼재는 1년 주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삼재는 3년 주기라고 하였다. 사실 나 역시 용띠 삼재이기 때문에 삼재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때부터 올해까지 삼재가 끼어있기 때문에 삼재를 3년 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술기운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임의 대화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은 삼재의 주기가 몇 년인지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몇 몇 친구는 자꾸 1년 주기라고 우겼고 나와 삼수생 친구는 3년 주기라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 지갑 안에 있는 삼재를 예방하는 작은 부적까지 내밀면서까지 '삼재 논쟁'(?)은 약 20분 정도 이어졌다.
결국 술기운으로 인한 시간을 낭비하는 논쟁답게 마무리는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논쟁의 결말은 삼재는 완전히 믿을게 못된다는 속설에 불과하다는 공통의 의견으로 싱겁게 마무리지었다.
나에게 삼재란..?
집에 돌와오면서 포털 사이트에 '삼재' 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삼재' 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삼재의 뜻을 알고나니 술자리에 했던 삼재 논쟁은 무의미한 허무한 대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삼재의 '삼'(三)은 3'년 주기' 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명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재의 정확한 의미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삼재는 1년 주기도, 3년 주기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소개하고 있는 삼재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던 '삼재' 의 의미와 다르면서도 복잡하였다. 그리고 삼재의 재앙에도 각기 다른 종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종류를 보면 ① 도병재(刀兵災):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 ② 역려재(疫癘災):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③ 기근재(飢饉災):굶주리는 재난이 있다. 또 대삼재(大三災)라 하여 ① 불의 재난(火災), ② 바람의 재난(風災), ③ 물의 재난(水災)을 말하기도 한다. 9년 주기로 들어온 이 삼재는 3년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 첫해가 들삼재, 둘째 해가 묵삼재(또는 눌삼재), 셋째 해가 날삼재가 되어 그 재난의 정도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첫번째 해인 들삼재를 매우 겁내고 조심하는 풍습이 있다.
그 대책을 살펴보면 첫째가 매사를 조심하는 방법이요, 두 번째는 부적(符籍)이나 양법(良法)을 행하여 예방하는 방법을 썼다.
① 부적:삼재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출입문의 위쪽에 붙여 둔다. 부적은 머리가 셋, 발이 하나인 매(三頭一足鷹)를 붉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 이때 물감은 한약재인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② 양법:삼재가 들 사람의 옷을 태워서 그 재를 삼거리에 묻거나 그해 첫번째 인일(寅日)이나 오일(午日)에 세 그릇 밥과 3색 과일을 차리고 빈다. 또 종이로 만든 버선본을 대나무에 끼워 정월 대보름에 집의 용마루에 꽂고 동쪽을 향하여 일곱 번 절하고 축원한다.
③ 나이와 삼재:사·유·축(巳·酉·丑)생은 삼재가 해(亥)년에 들어와 축(丑)년에 나가고 신·자·진(申·子·辰)생은 인(寅)년에 들어와 진(辰)년에 나가고 해·묘·미(亥·卯·未)생은 사(巳)년에 들어와 미(未)년에 나가며 인·오·술(寅·午·戌)생은 신(申)년에 들어와서 술(戌)년에 나간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사실... 백과사전 속 내용이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3번의 '나이와 삼재' 같은 경우에는 십이지신을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무척 헷갈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용띠 삼재다. 올해가 삼재 마지막 년이다. 나는 삼재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그냥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다른 편이다. 유독 나에게 삼재를 강조하셨기에 지금까지 내가 삼재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나에게 삼재가 끼어 있는 시기에는 절대로 집 밖으로 멀리 나가지 말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셨다. 어머니가 가끔씩 다니시던 절의 큰 스님 말씀으로는 삼재가 끼여 있는 시기에 내가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안 좋을 일이 생긴다나... 그리고 삼재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부적까지 구입하면서 지금 내 지갑 안에 모셔두고 있다.
삼재의 시기 때 있었던 일들
1) 2008년, 삼재 이전
그런데 2009년, 2010년 그리고 올해까지 삼재가 끼여있던 시기들을 회상해보면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수생 친구처럼 갑자기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 일상이 꼬이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일들은 가장 재앙이 심하다는 들삼재가 있는 2009년이 아니라 삼재와 관련이 없는 2008년에 일어났다.
일단 2008년, 나에게 가장 안 좋은 일은 바로.... 군 복무이다. 이건 뭐,,, 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기억하기 싫은게 군인이 되어 훈련소로 향하는 것일게다. ^^;;
그 다음으로 안 좋은 일이 그 해 이병이었을 때 유격훈련 행군 도중에 오른발에 골절상을 입었던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골절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인생에서 가장 큰 부상이었다. 군 생활 잘 하다가 한순간에 발을 다치게 되어 3개월동안 군 병원에서 생활을 했으며 그 곳에서 일병 계급을 달게 되었다.
이제 막 자대 생활에 정착하려는 이등병에게 오랜 기간동안 군 병원 생활을 하게 되면 퇴원 이후에도 제대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다. 군인들에게 군 병원 생활은 마음껏 편하게 먹고 놀고 잘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그래서 편한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퇴원 이후 군 생활이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는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배우기 시작한 병기본, 훈련 내용과 같은 군사적 지식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대신에 어여쁜 간호장교님의 얼굴만 남게 될 뿐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군 병원에서의 생활을 그저 침대에서 누워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배우고 있었던 병기본 공부는 물론이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격증 공부도 틈틈이 하였다. (내가 군 복무하고 있었던 당시 이등병들은 자대에서 자격증 공부는 아직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다. 부대 내무반 생활 환경마다 다르지만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상병 때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이 때만큼 독서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군 병원 안에는 환자 장병들을 위한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덕분에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때 한창 밖에서 베스트셀러라고 읽혀지던 책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병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읽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병원에 면회오시면서 사오신 책이 바로 <신> 1, 2권이었다. (그 당시에는 1, 2권만 출간되었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편안히 읽기도 했었는데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같은 병실에 만난 다른 부대 장병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 병원에 복무 중인 친한 의무병까지 이 책을 읽고 싶을 정도로 나름 책이 인기가 있었다.
2) 2009년, 들삼재의 시작
2009년, 삼재의 시작을 들삼재라고 하는데 재난의 정도가 가장 강한 해이기도 하다.
사실 이 때가 일명 '군 생활이 꼬였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몇 개월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2009년 2월에 군 병원에서 퇴원하고 드디어 자대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이등병 생활의 반을 병원에서 보낸 일병에 대한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필 복귀하던 시기가 소속 소대가 다른 지방으로 파견 중이라서 나는 어느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전투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잉여 병력이었다.
내가 자대에 배치되면서 주어진 주특기가 특성상 많이 뛰어야하고 걷어야하기 때문에 당시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들 그리고 소대 간부님들 사이에서 나의 향후 소속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갈 정도였다. 나는 꼭 에전 소대에 소속되고 싶다고 강력하게 의사를 피력하였으나 당시 부대 일정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한 2개월동안 본부 소대와 함께 지내면서 무소속 소대 일병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본부 소대 사람들이 성격이 착하고 입원 전에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서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발을 다치기 전과 군 병원 생활 이후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과 반응이 너무나도 달랐다.
한 때 '소대를 짊어나갈 수 있는 유망한 이등병' 에서 한 순간에 '아무짝도 쓸모 없는, 어중간한 일병' 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몇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병원 생활을 은근히 시샘하였다. 이등병 주제에 상, 병장도 하지 못한 편한 생활 다 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병원 생황을 어떻게 했는지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단순히 '병원 생활' 을 '놀고 먹고 자는 생활' 로만 알고 있었다.

2009년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 남은 책이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었다. 처음으로 강상중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책을 읽었던 당시 그 어떤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잉여 전투병에게는 한국인도 아닌, 그리고 일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재일교포 2세의 입장이 가슴 속 깊이 와닿았다. 비록 정신적으로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경험 그리고 강상중 교수의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로서의 고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 2009년, 시련의 군생활 속에 피운 긍정의 꽃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전 소대로 복귀하게 되었지만 상병 마크를 군복과 군모에 오버로크를 해도 여전히 '군 병원 생활' 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 역시 나의 이미지에 오버로크 되어 있었다. 말과 생각은 '후임병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선임병' 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소대 생활을 빠르게 적응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평소에 나를 좋게 봐주던 소대장님이 다른 부대로 전임하시게 됨으로써 군 생활은 그야말로 '꼬이게' 되었다. 새로 온 부임한 소대장님은 평소에 나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간부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나를 '소대 내에서 열등한 장병' 으로만 생각했다.
한 번 찍힌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못하는게 군대의 현실이다. 결국 간부의 눈 밖에 난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해 8월, 나는 다른 부대로 파견으로 복무하게 되는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부대의 파견 복무는 맞은 편 북한 부대와 대치할 수 있는 압록강 주변에 근무하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야간 근무 시 춥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파견 근무 소대로 옮긴다는 사실에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생활을 제대로 꼬인 대표적인 케이스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도 파견 근무 소대원들과 친분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완전 친하지도 않은 소대였다면 정말 군 생활이 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친숙한 소대였다고 하더라도 그 쪽 소대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하는 것이 내가 먼저 해야할 첫번째 일이었다. 그 곳에서도 안 좋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소대 생활에 적극절으로 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겼다고해서 풀 죽은 모습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최대한 웃으려고 하였고 훈련 때에는 최대한 뛸 수 있을만큼 뛰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좋은 일들도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파견 근무에 임한 노고가 소대 간부님과 소대원들에게 인정되어 부대장 표창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군 생활 처음으로 포상 휴가라는 것을 받게 된 순간이었다. 좋은 일은 계속 찾아왔다. 부대에서 시행 중인 한자 자격증을 따게 되어 또 포상 휴가를 이어서 받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소대원들은 드디어 내 군생활에 '꽃이 피었다' 라고 할 정도로 나를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4) 2010년 묵삼재, 알라딘과의 만남
삼재의 두 번째 시기인 2010년에는 머리 아플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다. 오히려 2010년은 나에게 좋은 일이 많았다.
그 해 5월에 전역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였다. 군 입대 전에는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갑자기 해보고 싶은 경험들 중에 하나가 바로 블로그 활동이었다. 사실 알라딘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땡스투 적립금이었다. 군 입대 전에도 간간이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했었지만 땡스투 적립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남기면 적립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제도 자체가 평소 책을 많이 구입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획기적인(?) 제도였다. (지금은 땡스투 적림금의 폐해를 알고 있지만.. ^^;;)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서재 블로그 활동이었다. 적립금을 모으되 리뷰나 페이퍼만큼은 정성껏 쓰려고 노력했다.
역시 노력한만큼 그에 따른 좋은 결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비록 처음으로 7기 신청할 때는 탈락되었지만 운 좋게도 8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라딘이나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알라딘 덕분에 나의 독서를 위한 재정적(?) 지원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좋은 서재 이웃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서재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을 다셨던 분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에 그 분이 아니었다면 서재 블로그는 무척 썰렁했었을 것이다. 그 분의 댓글 덕분에 나도 다른 이웃분들의 서재 블로그에 가게 되면 댓글을 남기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5) 올 해, 날삼재
삼재의 마지막 시기인 날삼재는 재앙의 정도가 가장 희박하다. 아직 2011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재앙' 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겪지 않았다.
올 해가 3년 만에 복학하게 되어서 성적장학금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비록 2등이지만 그동안의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동안 2009년부터 올해까지 쭉 삼재의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의 앨범에 꺼내보니 그저 불행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때가 좋지 않을 일들이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독서모임으로 한 달에 두 번 서울을 왕래했던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나는 정말로 이번 삼재를 억세게 운 좋게 보낸 것이다. 이게 다 부적의 효험 탓인지 모르겠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 알렉산드르 뿌쉬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연 -
'긍정의 힘' 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참고 견딘다면 즐거운 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경험마저도 언젠가는 미래, 곧 나에게 다가올게 될 긍정적인 현실의 '열매' 로 이루어지는 소중한 씨앗이 될 수 있다. 저 유명한 뿌쉬낀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P.S>
'삼재' 를 검색하게 되면서 우연히 '액년'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액년이란 '운수 사나운 해' 를 뜻하는데 속설상 보통 남자는 25, 42 , 61세, 여자는 19, 33, 37세를 액년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이런,,, 내년이면 나 25인데... 심지어 2012년은 전세계적으로 지구 종말의 해로 운운하고 있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심 걱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