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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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의 세계에 처음 마주치다  

 

 

  

민화(民畵)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조선 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민화라는 뜻 자체에서도 '백성 민' 자가 들어가니깐 민화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민화의 정의를 알고 있다.  그러나, 민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뒤에는 잘못된 선입견도 가지고 있다.     

   민화는 이름 없는 서민들이 그린 그림이다,  

   유명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하면 민화의 그림 수준은 낮고 작품성은 떨어진다.  

   민화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기만 하다.  

   미술품 경매에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가격을 매기지 못할 것이다.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 탓인지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한국미술 관련 도서들에도 대중들을 위해서 민화를 소개한 책들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미술에 어느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민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 있는 이도 보기 드물다. 간송미술관 같은 대형 박물관 및 미술관에 전시되는 풍속화나 서예 작품들에 사람들은 많이 몰리지만, 한국 민화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두 번째 선입견처럼 민화는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대중들은 민화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민화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대중들의 취향처럼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예전에 E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라임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김준근 편을 보면서 민화라는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김준근의 풍속화을 보게 되면 민화와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이 방송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준근이라는 원산의 화가를 알게 된 나는 그의 풍속화에서 우러나오는 색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전에 나온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속 사람들과 비교하면 

  김준근이 그린 사람들은 생기가 살아있다." 

비록 TV 속 브라운관에 흘러나오는 영상이었지만, 그린 지 수백 년이 지난 김준근의 풍속화에는 여전히 색이 살아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김준근은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왕실에서 활동하는 궁정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18세기 때 외국 문물의 유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김준근은 원산, 부산과 같은 항구 도시를 넘나드면서 조선에 건너온 외국인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팔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외국인에게 건낸 그림에는 조선 시대의 일상 생활을 담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려 외국인에게 판 것이라면 어쩌면 김준근은 민화를 최초로 외국에 소개하였고, 거래를 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 박물관에는 김준근의 풍속화집이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나는 조선 시대에는 민화도 어느 정도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때마침 올해에 출간된 이기영 씨의 <민화에 홀리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준근의 그림 덕분에 민화의 세계에 처음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 모자란 민화에 대한 소개

조선 민화에 대한 책이라서 읽기 전에는 무척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미술 비 전공자인데다가, 개인적으로 민화를 연구하고 있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것일까?  내용 구성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민화라는 민중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조선 근대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두 번째 챕터인 [시대정신을 담은 민화]라는 부분에서는 35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조선 근대사를 서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만 소개하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이 챕터에는 민화 그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민화의 발전 과정에는 조선 근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하필 이 내용이 책 중간에 배치되어 있어서 읽고 있는 내내 맥이 풀린 감이 있었다. 차라리 역사적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맨 앞에 배치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뭐 어느 정도 조선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겠지만, 이제 막 민화라는 미술에 대해 입문을 하는 독자들에게 도리어 독이 되는 독서가 될 우려가 있다. 민화 이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 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된다면 민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더욱 더 민화라는 그림에 대해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민화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  

사실, 무턱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민화를 알아야겠다' 라고 하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지루한 책일 수도 있겠다. 정말 민화의 아름다움을 눈여겨 본 독자들은 이 책을 수월하게 읽혀질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내용 구성의 단점 때문에 민화 매니아들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양미술의 특징과 민화에 대해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나니, 민화의 특징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에두아르트 콜리어 <바니타스> 1650년경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 1640년


17~18세기 조선과 서양에는 독특한 양식의 미술이 유행하였다. 조선은 민화라고 하면, 서양에는 '바니타스(Vanitas)' 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Vanitas라는 용어에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는데, '바니타스'라고 붙여진 모든 작품들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과 해골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며 허무하다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책에 대해 깊게 어려워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다. 책도 결국에는 허무한 인생을 상징하고 있으니깐. 아무리 파우스트 박사처럼 평생 학문에 몰두하더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라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학문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책가도 冊架圖>  

 

이 그림은 조선 시대에 유행한 <책가도>라는 민화이다. 순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 한다. 책가도는 책 이외에도 부채, 도자기 등을 문방(文房)에 볼 수 있는 도구들이 그려진 우리나라만의 정물화이다. 대부분 <책가도>는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 내부를 장식하는데 그려졌는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대부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뿐만 아니라 왕족들도 <책가도>를 선호하였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자신의 방 안에 <책가도>를 걸었으며 신하들에게 <책가도>를 늘 곁에 두어서 학문과 독서에 충실히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책이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했더라면, 조선 사람들은 학문 추구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으로 여겨졌다.  



얀 판 하위쉼 <벽감에 놓인 화병> 1720~1740년경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수록
  

바니타스 정물화 중에는 을 주제로 그림도 많이 있는데, 잠깐 활찍 피우다가 지고 마는 꽃의 인생처럼 인간의 부귀영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시든 꽃은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서공임, 현대민화 <재화만발> 2010년 

나름 이쁜 그림인데 크기가 크지 않다 보니 사진상으로 좋은 화질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꽃은 서양과는 반대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의 사진 속 민화에 그려진 위의 꽃은 모란인데, 부귀를 의미하는 꽃이다. 그 아래의 꽃은 목련이다. 목련은 옥란화(玉蘭花)라고 부를 정도로, 공명을 의미하고 있다. 그만큼 선비들은 이 민화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민화를 통해서 자신이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와 공명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민화에는 서양의 바니타스와는 반대로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잉어가 그려진 그림은 벼슬 시험의 합격 성취를 바라는 의미, 석류 그림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원앙새와 연꽃이 그려진 그림은 부부 간의 화목을 나타내고 있다.      

 


작자 미상, 1880년대 추정,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 일부 

 현대 민속화가 서공임 씨가 복원함.
                                                            

그리고, 민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은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진료를 담당하던 식약청의 관원들이 그린 것이다. 여섯 살 때, 순종이 천연두에 걸려 몹시 고생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병은 나아지게 되었고, 이에 기쁜 마음에 고종 황제는 어린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지사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아닌 의료를 담당하는 식약청 소속 신하들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리고 (비록 그림의 일부만 찍었지만) 이 민화에는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들이 그려져 있는데 단순히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부의 백년해로를 염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져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 민화

방대한 서양 화풍 중에서 바니타스 정물과 우리나라 민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협소한 범위의 비교이겠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동, 서양의 대표적 화풍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용 한계상 왕실 내에서 유행하던 민화들을 소개하였지만, 이 책에는 그 유명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얼굴을 그린 민화도 있고, 여러 마리 새들을 그려 넣은 민화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화는 단순히 서민적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유한 양반들과 왕족들도 민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화는 궁정의 화원들도 그리곤 하였으며 왕들은 과거 시험에 참가한 선비들에게 특정 주제를 내세워 문장을 짓게 한 것처럼 화원들에게도 어떤 특정 주제로 민화를 그리게 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렇듯, 민화는 이름 없는 환쟁이만 그렸던 그림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환쟁이에서부터 궁정의 화원까지 민화를 즐겨 그렸으며, 서민에서부터 양반, 왕족까지,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의 백성들은 민화를 감상하면서 즐겼다. 조선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민화를 즐겼으니,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외국인들도 민화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18세기 때 김준근이 우리나라 민화를 서방에 알리게 한 것으로 필두로 하여 외국의 미술 연구가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치와 먹걸리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인 김치와 막걸리를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와 막걸리는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나라 민화도 외국에서도 조금씩 인정을 받고 추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색을 입힌 '한국적인' 그림인만큼 민화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활발히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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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TV쇼 진품명품'인가 그 프로그램 하나 모르겠어요.
저 그거 보면서 감상하고 가격 매기고 하는 거 재밌게 봤었는데...^^

cyrus 2010-10-26 14:02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합니다.
저와 어머니가 골동품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 보곤 하거든요^^
 
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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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다 상은 왜 벗었는가?   

 


종합격투기 대회 프라이드FC <남제 2006> 오프닝 당시의 모습.   

일본 전통 속옷 훈도시를 입은 채 큰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이  

다카다 노부히코 프라이드 총괄본부장이다.  

당시, 이 장면을 TV로 목격한 나는 그의 세리머니,

아니, 브라운관에 비치는 그의 엉덩이가 민망하였다.   

큰 북 뒤에 높은 단에 서 있는 5명의 남자는 이 대회 때 참가하는  

격투기 선수들이다. 그 중에 비 일본인 선수들도 있는데, 

코 앞에 있는 훈도시를 입은 다카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4년 전이다. 지금은 미국의 UFC의 흥행과 일본 진출에 밀려 사라진, 그 때는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프라이드 FC의 경기를 자주 보곤 하였다.  

최근에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그 당시에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던 '60억분의 1의 유전자'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하이킥의 달인 미르코 크로캅, 주짓수 최강자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등등...  화끈한 플레이와 스타성을 고루 갖춘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들이 일본에 모여 한바탕 Fight를 치루고 있는 것이 프라이드 FC였다. 

그리고, 이들의 화끈한 싸움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진행되는 대회 오프닝도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런 오프닝의 중심에는 항상 이 남자가 있었으니. . .      

 


다카다 노부히코.  

실제 사생활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평소에 TV에 비친 모습이나 세리머니를 보게 되면  

약간의 마초 기질이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이름은 다카다 노부히코.  예전에 일본 내에서 레슬링 선수 겸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다가 프라이드 FC 총괄본부장(쉽게 말하면, 대회 전체를 여는데 지휘를 하는 사장)이 된 나름 일본 국민들에게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나이다. 프라이드 FC 단체의 흥행에는 일본 관중들의 구매력에 있다고 판단했던 그는 항상 큰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관중들이 생각치도 못한 거대한 오프닝 행사를 준비하였다.  다카다 본부장이 양복을 입은 채 직접 탭댄스를 추기도 하고, 100명의 오케스트라가 대회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음악을 연주하는 등 항상 볼거리가 많은 퍼포먼스를 제공하였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일본 관중들이 프라이드 FC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만드는 프라이드 FC만의 오락적인 요소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6년에 열린 <남제男祭>라는 흥행 이벤트에서 다카다 본부장은 파격적인 오프닝 세리머니를 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처럼 일본의 전통 속옷인 훈도시 한 장만 입은 채, 커다란 북을 치는 반 누드 세리머니를 한 것이었다. 이벤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자들만의 격투 축제' 라는 뜻을 잘 표현해주었으며 덤으로 수 만 명이 모인 관중들에게 자신의 '남자다움' 을 과시하게 되었다.  과거 현역 선수 시절에 다져진 근육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그에게는 남제 2006 오프닝 행사는 평생 기억이 남을 아주 뜻깊은(?) 세리머니였다.  

하지만, 생방송으로 TV 중계로 보고 있던 한국 태생인 나는 민망하기만 하였다. 대형 격투기 단체의 사장이라는 명함을 가진 다카다인데 어떻게 저런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기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저런 반 누드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의 용기가 가상하면서도 (이제 곧 50이 되는 나이에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남성 기질을 너무 지나치게 과시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 볼만한 장면을 눈 앞에 본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런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감추는 것이 먼저냐?, 부끄러움이 먼저냐? 

4년 전의 궁금중은 이번에 출간된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훈도시는 일본 전통 사회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는 '남자다움'을 표현하는 속옷인 것이다. 그래서 다카다가 저런 민망한 속옷만 입었던 것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티'로 대표하는 속옷을 통해서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특히 반짝이는 생각으로 무장하여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마리 여사는 속옷만 입고 있다거나 벌거벗은 상태에서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역발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속옷 한 장만 걸쳐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벌거벗은 신체의 부위를 가리는 것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간이 취하는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리 여사는 인간이 이에 대해 부끄러워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만약에 옷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사람옷을 입은 사람이 단 둘이 있다고 하자.처음에 벌거벗은 사람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옷을 입은 사람의 눈에는 옆에 벌거벗은 사람에 대해서 민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벌거벗은 사람이야말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이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인식은 서로 달라지는 것이다. 벌거벗은 사람은 옷을 입은 상대방이 느낀 감정과 태도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상태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벌거벗은 부위를 가리고나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에서 형성되는 수치감

그러나, 모든 인간이 자신과 다른 타인의 모습과 감정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인간은 쉽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마리 여사는 다양한 문헌들과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수치심 형성의 과정에 대한 색다른 관점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일본 특유의 생활 방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 수치심에 생겨나게 한 근본적 원인은 그 나라의 생활 방식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특징과 차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책 속에 소개된 문화적 사례는 옛 우리나라 생활 모습을 비추어보면 낯설지가 않다.  

   
 

  저는 가고시마 현의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 무렵 시골에서 속옷이라고 하면 여자들을 속치마, 남자들은 훈도시였습니다. 밭에서 몸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니 남녀 모두 옷자락을 접어 올려 끈으로 묶었습니다. 남자들은 흥이 나면 훈도시도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냥 성기까지 전부 드러내고 일에 열중했지요. 이런 광경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는 물론이고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언제든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보여주는 사람도 모두 수치심을 못 느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자면 여자들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전혀 거리낌 없이 사람들 앞에서 유방을 드러냈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광경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당시 새로운 군대가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 마을에서는 몇 번이나 주의사항을 교육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하반신이나 유방을 드러내지 않아, 그런 광경을 보면 기분 나빠할 것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결코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 실레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끄럽다'는 인식은 훨씬 나중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 <팬티 인문학> 'M.H.라는 여성이 쓴 편지 내용의 일부' , 요네하라 마리, p 107~108 -(* 본문에 있는 밑줄은 저자가 표시한 부분)

 
   

          김홍도 <들밥>

조선 시대의 농촌 사회에서는 농촌 공동체의 일원들이 자급자족하며 생활을 하였다.  농촌 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 품앗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적 유대감이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힘든 밭일을 하는데에도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윗도리를 벗게 되고, 여자들 역시 김홍도의 풍속화 속 아낙네처럼 저고리를 풀어 가슴을 드러냈을 것이다. 벗고 다니는 생활이 일상화된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팬티 인문학>의 본문 속 일본의 모습처럼 우리나라도 외국 문화의 물결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물결의 영향으로 19세기 말부터 근대화의 싹이 틔우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의 변방국가인 조선에도 외국인들이 오게 되었다. 외국인들은 조선이라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남녀 모두 가리지 않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벗고 다니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채로웠을 것이다. 반면에 벽안의 서양인들을 처음 본 조선 사람들도 그들을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입고 있는 얕은 한복이 아닌, 서양인들이 입고 있는 양복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서양문화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작은 호기심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서양 문물 수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화론자들은 서양인들처럼 남성들은 하이 칼라의 양복을, 여성은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을 것을 권장하였다.  대한제국이 서양 열강과 같은 강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서양인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고수하던 전통 문화들은 자연스럽게 배격하게 이르게 된다.  

일본 가고시마 현의 마을 사람들이나, 근대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외국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강한 문화적 충격을 받는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 중국, 유럽 열강들에게 동네북이 된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개화론자들에게는 추락한 조국의 위상을 눈 앞에 목격하면서, 미개한 조선 사회의 문화에 대해서 자괴감에 빠지기 쉬웠다.  서양문화 숭배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신들 스스로 문화적 수치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ごめんなさい (미안합니다) 마리 여사, 당신의 말이 꼭 옳은게 아니에요.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부끄러움'이 인간이 신체를 감추기 때문에 생긴다고 참신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워낙에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그녀의 주장에 대해서 재고를 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패션 유행을 보게 되면, 수치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신체를 감추기보다는 남들이 볼 수 있게 드러나게 하는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룩에서부터, 여성의 각선미를 강조하게 하는 핫 팬츠까지 이런 복장들은 신체를 감추지 않는 개방적인 패션이다.  

그래서,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에게는 이런 복장들을 거리낌없이 입게 된다. 이들은 이것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 않다. 신체 부위의 과한 노출은 상대방에게 수치감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리 여사의 말과는 반대로 신체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감추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하고 있다.  그리고 속옷과 각선미를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이런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일말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야한 복장을 입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노출시켜서 상대방의 시선을 즐기는 '노출녀'라고 부르는 여성들도 있다.   

  

 

  진짜로 부끄러워 해야할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과 다른 문화적 차이에 의해 생기게 된 수치감은 마리 여사의 주장과는 반대로 전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치감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인식도 가지게 된다. 핫 팬츠나 시스루 룩이 하나의 패션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도 지나친 신체 부위 노출에도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어머니들의 모유 수유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젖가슴을 대놓고 아기에게 젖을 주는 모습에 대해 주위의 시선이 곱지가 않아서 그런지, 아기를 키우는 여성들에게는 마음 놓고 모유 수유를 해줄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아서 불편함을 느끼고, 대부분의 육아 여성들 스스로 공공 장소에서의 모유 수유는 금기된 행동이며 한다는 자체를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한 쪽 가슴을 드러내야 하는 여성. 

이 둘 중에서 진짜로 부끄러워 해야할 사람은 누구일까? 모유는 아기들의 성장 발달에 아주 좋은 천연적인 식품이다.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여성들의 불치병인 유방암 등을 예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모유 수유는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이, 서로에게 좋은 모유 수유를 우리는 부끄러워 해야될까?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김홍도의 풍속화 속 아낙네처럼 어머니들이 편안하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지 의문이 된다.

이런 수치감에 대한 이중성을 가진 우리 사회를 보면서 마리 여사의 말의 실효성이 떨어져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리 여사의 말처럼 원래 인간은 자신의 노출된 신체 부위를 감추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지극히 정상적인데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주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체 부위를 노출하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거나, 의도치않게 신체 부위를 노출해야 하는 상대방들을 보면서 오히려 수치감을 형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대한 사회집단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문화적 수치감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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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꿩이 숨을 때 머리만 들이밀고 숨는다죠~
불난 목욕탕에서 탈출할 때,얼굴만 가린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구요.

전 일본과 우리나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버거워하는 1人이라서 말이죠~^^

cyrus 2010-10-25 11:02   좋아요 0 | URL
뭐 마리 여사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일본과 구 소련 문화를 소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책은 일본 문화와 전통 복장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일부는 우리나라 문화와
비슷한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도 일본 문화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카다 노부히코 이야기를 하면서 요네하라 책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글의 전개가 참 좋습니다.

90년대 초 이후 공공장소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여자의 유방 하면 예전엔 아기 젖먹이는 것을 연상했는데 요즘 세태는 완전히 섹스를 연상케 되었습니다.그러니 공공장소에서 아기에게 젖을 못 물리는 것이지요.

cyrus 2010-10-26 23:5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공공장소에 지나친 노출을 자제하고 금기시하여할 판에
오히려 모유 수유를 금기적 행동으로 보면,, 정말 여성의 유방에 대한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시선이 문제가 있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도 혹시 예전의 프라이드나 이종 격투기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오늘도 자이트님의 서재에 올리신 글을 읽었지만,
정말 저도 자이트님의 연령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7 16:0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인터넷에 투기종목 경기가 많이 올라 있어서 구경도 하고 또 관심있는 주먹타법은 직접 모방해서 연습도 하고 그럽니다.정통복싱,입식타격,종합격투기에서 쓰는 주먹타법의 차이점을 연구해서 연습하는 편이지요.요즘은 종합격투기의 주먹연타에 관심을 가지고 연습하고 있습니다.운동 특성상 연습상대가 없이 혼자 하니 문제지요.작년 내내 왼손잡이 자세 연습을 했더니 이젠 길이 들었습니다.

10대에서 80대까지의 모든 연령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당연히 그들 연령대에 맞는 대중연예인 이야기에 거의 통달하고 있지요.

cyrus 2010-10-27 16:56   좋아요 0 | URL
와~~ 사실 자이트님의 글과 서재 이미지 사진을 보면서
대략 자이트님이 중년을 바라보는 분인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격투기의 주먹연타 언급까지 하시면 나이가 젋으신거 같은데요.

그래도 다양한 연령분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서재에 들리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참 좋아하거든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10-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그런데 동양권에서도 필리핀 같은 데는 40넘어서도 링에 서는 복서들이 꽤 있어요.북미나 중남미는 말할 것도 없구요.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일찍 은퇴하는 편이죠.

그런데 노년이 아니라면 10대도 중년은 바라봐야지 뒤돌아볼 순 없지요? 80노인에겐 10대 부터 60대까지 다 요즘 젊은 것들이니까요.

제가 오래된 책도 좋아하고 집에 70년대~2000년 초반까지의 시사주간지나 월간지가 있어서 종종 읽지요.물론 최신 연예뉴스도 좋아합니다.오늘 보니 신세경 누나와 종현군이 연애를 한다네요.이쁜 여자는 누나라고 부르는 최신유행을 제가 선도하고 있습니다.이 유행을 알라딘에 퍼뜨리고 싶은데...

cyrus 2010-10-27 21:20   좋아요 0 | URL
음,, 댓글이 달면 달수록 자이트님의 연령을 추정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자이트님의 취향이 저랑 비슷하다나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저도 오래된 책과 헌책방 가는 거 좋아합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너무 조숙해도 좋지 않은 것도 있어서
당연히 연예 뉴스도 주위 사람들과 어느 정도 대화할 수 있는 정도만
알려고 합니다.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이쁜 여자 연예인 이름 뒤에는 '~님','여신님'이라고
붙이면서 불렀던 적이 생각나네요. 그게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이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한 두살 가지고도 네가 형이네 내가 형이네 하고 다투는 게 신물나서 호칭파괴를 위해 나이 어린 여자에게도 누나라고 부르는 게 재밌습니다. 해보십시오.재밌습니다.

지금 아이돌 스타에 대해 모아놓은 자료가 나중엔 귀중한 역사자료가 될 겁니다.
 

 

원문 http://cafe.naver.com/openbooks21/993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나는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가겠다.                  - 움베르토 에코 -

 

 

 



1. 나는 십자가를 짊어 가지고 가겠다.                  

   - 예수 그리스도 -
 


   Re: 저는 예수님의 얼굴이 찍힌 수의를 들고 가겠어요.    

  - 베로니카 - 

 


2. 나는 코란과 칼을 가지고 가겠다.                      

   - 마호메트-

  

 
3. 나는 지구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가겠다.          

   - 아르키메데스 -  

 
 


4. 나는 세에라자드를 데리고 가겠다. 그녀의 입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만    

   들어도 무인도에 사는데 지루하지 않을거야.          
                                                   

   - <천일야화> 샤리아 왕 -  

  

  


 

 

 

 


5. 나는 불로초를 가지고 가겠다. 내가 무인도에서 죽게 되면  

   나의 화려한 무덤을 만들어 줄 병사들이 없잖아.               

  - 진시황제 -                                                           
 

 

6. 나는 죽을 때까지 실컷 마실 수 있는 을 가지고 가겠다.  

    딸꾹!  아~~ 취한다.                  

    - 이태백 - 

 

7. 나는 나의 영원한 천사 베아트리체만 있으면 지옥 같은  

   무인도도 천국이오.
                             
    - 단테 알리기에리 -   

  

 
 

 

 

 

 

 


8. 나는 내가 지금까지 그린 수많은 스케치들을 가지고 가겠소.  

    빌 게이츠란 녀석이 나의 연구물 일부를 사놓고는  

    자기 것이라고 우기다니. 빌어먹을 놈!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9. 나는 지구가 종말할 때 심을 사과나무 묘목을 가지고 가겠다. 

 
   - 스피노자 -

 


10. 아니! 이미 예전에 무인도에 사느라고 고생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곳에 또 가라고! 

                                                  
     - 로빈슨 크루소 -  

      



 

  

 

 

 



11. 나는 내가 고생해서 번 을 가지고 가겠다.
     무인도에 가면 나에게 돈 달라는 놈들이 없겠지.             

    - 스크루지 -  

      

 

 
 

 

 

  

 
     

 

 

 

 

  Re: 나는 룰렛 머신을 가지고 가겠소.                   

        스크루지 선생, 만약에 무인도에서 함께 가면  

        나와 룰렛 게임 한 판 어떻소? 

        내가 쓴 소설 <쁘로하르친 씨>의 주인공처럼  

        평생 돈을 그렇게 모으면서 인색한 삶을 살다 죽으면 허무하다오.  

        구두쇠의 말로를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네끄라소프와 벨린스키 씨는 이 작품이 형편없다고 하네요. 
  

         - 도스또예프스끼 -
 

 

 12. 나는 담배 파이프만 있으면 충분하다네, 왓슨.
      하지만 런던 베이커 가의 짙은 안개는 몸에 무척 해롭다네. 

                                                   
      - 셜록 홈스 -  

    

 


  

 

13. 나는 잘려나간 내 한 쪽 귀를 가지고 가겠소.           

      지금도 내 귀를 잘랐는게 후회를 하오.  

      그 땐 고갱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그만...

                                                  
       - 반 고흐 -  
 

      
 


 
 

 

 

 

  

 

14. 나는 장미 한 송이를 가지고 가겠다. 앗! 따거!                

    - 릴케 - 


     Re: 나는 사랑하는 장미꽃을 데리고 갈거에요. 

          다음부터는 그녀를 혼자서 남기고 떠나지 않을래요.

           - 어린왕자 -  


     Re: 나는 나의 애마 전투기를 타고 가겠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걸.

          - 생 텍쥐페리 - 

 

    

 

 

 

 

 

 

15. 나는 산지기 멜라스를 데리고 가겠어요.                           

    - 채털리 부인 - 



 

 

 

 

 

 



16. 나는 바그너의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들고 가겠다.
     그의 음악에는 우리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 히틀러 -  

 



 

 

  

 

 

 

17. 나는 무인도에 가서도 무조건 대한민국의 독립이 되길 바라오.  

     - 백범 김구 - 
  

  



 

 

 

 

 

 

18. 나는 캠벨 수프 통조림을 가지고 가겠다.            - 앤디 워홀 -
    

     Re: 나는 시금치 통조림을 가지고 가겠다.           - 뽀빠이 - 

  

    

 


  

 

 

 

 

19. 나는 마이크를 가지고 가겠다.                          - MC 유 -
 

      Re: 야야야!! 예전에 무인도 특집했잖아~~~!! 우씨!     

                                                                          - 하찮은 형 -                     
      Re: 나는 무리수를 가지고 가겠다.                      - 길 - 

 

 
 

 

 

 

 

 

 


20. 나는 평생 무소유이다.                             - 법정 스님 -  

 


 

 

 

 

 

 
21. 나는 내 고양이 코코 샤넬을 데리고 가겠다.        - 낸시 랭 - 

 

 

 

 

 

 

  



22. 우리는 피자를 가지고 가겠다.                           - 닌자거북이 4총사 - 

 

23. 나는 나와 함께 맨션에 살고 있는 수많은 플레이보이 모델들을  

     데리고 가겠다.                             

                                                                        - 휴 헤프너 -  

 

24. 나는 무인도에 가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내 IQ가 430인데, 필요한 거 거기서 직접 만들어 구하면 돼.
     내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무인도에 잘 살 수 있어.
     그리고 예전에 총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UN본부 이전에 대해서 말인데,
     무인도에 옮겨 세워도 괜찮을 거 같은데...                

                                                                        - 헛경영 - 
  



25. 동무들,  나는 핵무기를 가지고 가겠습네다.         

     - 김정일 & 김정은 부자 - 

 

 
26. 나는 재무제표를 가지고 가겠다.                       - 워렌 버핏 - 

 

 
 

 

 

 

 

 

27. 나는 열린책들 도서목록 2010년판을 가지고 가겠다. 

  

                                                            - cyr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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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알라딘 서재를 들고 가겠다.
cyrus님과 댓글 놀이를 하려고...^^

cyrus 2010-10-24 16:27   좋아요 0 | URL
ㅎㅎ 이번 댓글은 재미있네요^^
다른 북 카페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냉무하답니다^^;;
역시 나무꾼님.. 유머 센스가 돋보이십니다.

비로그인 2010-10-2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얘기도 인상적이지만 ..

맨 마지막 27번과 28번의 양철님 댓글이 제일 재밌네요 ~^^

아 참! 소개사진은 마그리트의 그림일까요..?

cyrus 2010-10-24 21:33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 카페에 올린 글이라서,,
재미로 열린책들 도서목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마그리트의 그림 맞습니다.
그의 그림 제목들이 좀 철학적이고 낯설어저 이 그림 제목은
모르겠지만요ㅎㅎ

sslmo 2010-10-25 01:17   좋아요 0 | URL
이 그림은 교장이고,비슷한 느낌으로 데칼코마니 라는 게 있죠~
전 중절모 위의 조각달 때문에 이 그림이 더 맘에 들어요~^^

비로그인 2010-10-25 10:27   좋아요 0 | URL
옷 그렇군요.
역시 양철님이십니다.

그의 그림마다 이 사람 참 많이 등장하는데 제목은 다 제각각. 어제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마그리트 400> 에 이 그림은 없고 비슷한 사람만 있더라고요.

흠 그나저나 제목이 <교장>이라..ㅎ 좀 재밌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0-10-25 10:58   좋아요 0 | URL
아! 교장,,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나무꾼님, 그림 제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신사 위의 달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얼핏 보면 고민하는 신사를 표현하려는 물음표 같기도 하면서도,
이제 막 생각이 떠오르는 느낌표 같은,,
참 보면 보수록 끌리는 마그리트의 그림입니다.

바람결님 말씀대로 책마다 제목이 달라서 혼동하기 쉽죠.
저도 <마그리트 400> 읽었는데 화보은 많아서 좋은데
설명이 없어서 아쉽웠습니다.^^;;

반딧불이 2010-10-2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충전이 필요없는 워드프로세서와 킨들을 갖고 갈래요.

cyrus 2010-10-25 11:00   좋아요 0 | URL
ㅎㅎ 어떤 분은 mp3를 챙기겠다고 하시는데,,
반딧불이님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무인도의 특성을
잘 알고 계시네요^^ 워드프로세서와 킨들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거 같습니다.

꽃도둑 2010-10-2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끌어모은 꽃이나 가져갈까...흠 무인도에 죄다 꽃으로 뒤덮어버린다면?...ㅋㅋ
날이면 날마다 향기에 취해 홍야 홍야~ 낮이나 밤이나 비몽사몽
황홀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cyrus 2010-10-25 19:16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 반갑습니다^^
역시 별망답게 무인도에 가서도 꽃을 사랑하시네요ㅎㅎ
이쁜 꽃들이 있으면 무인도도 참 아름다운 곳이 될겁니다^^

쉽싸리 2010-10-26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로빈슨 크루소 처럼 해 볼랍니다.
철저한 자급자족, 얼마나 견딜지는,,,,

cyrus 2010-10-26 23:53   좋아요 0 | URL
역시 농업에 종사하시는 쉽싸리님만의 댓글이군요^^
쉽싸리님은 어느 정도 자급자족 생활을 할 수 있을거 같은데요,
 

 

History #1
1886년 1월 1일, 1934년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제국주의는 유럽 열강들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으로의 영역 확장을 하도록 부추겼다. 유럽 열강들은 자신들이 지배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신들의 발전과 이익에 도모하였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대영 제국은 인도의 이웃나라 버마(미얀마의 옛 명칭)까지 호시탐탐하였다. 대영 제국 입장에서는 아시아 대륙 진출을 꾀하기 위해서는 버마 지배가 필수적인 책략이었다. 60여 년 간의 버마와의 세 차례 전쟁 끝에 1886년 1월 1일 버마는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8년에 독립할 때까지 버마는 62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버마가 영국의 지배를 받은 지 48년이 지난 1934년에 조지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의 허상을 폭로한 소설『버마 시절』을 완성하였다. 

 

 


History #2
1910년 8월 29일, 9월 9일 

올해가 경술국치(한일병합 조약) 100주년이 된다. 지난 달, 8월 29일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겨버린 망국의 날이다. 당시 일본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합작하여 황제의 옥새를 날인하여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병합조약을 반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매천 황현 (1855~1910)
 

일본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반 쪼가리 대한제국이 되어버린 지 10여 일이 지난 1910년 9월 9일. 구례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비가 아편을 탄 술을 먹고 자결을 하였다. 숨을 거둔 그의 책상머리 맡에는 유서와 4수로 구성된 한시 <절명시>만 남겨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매천 황현. 그는 자결하기 전, 한일병합 조약 소식을 접하자마자 크게 통분했던 노 선비였다.

  

100년이 지난 뒤, 전국 곳곳에서는 굴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일병합 조약의 무효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010년 9월 10일에는 매천 순국 10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그러나 5개월 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념 자료집 발간, 추모 음악회, 안 의사 유해 발굴 추진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린 것과 비교하면 매천의 추모식은 그가 태어난 곳인 전남 광양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제국주의의 그늘에 가려진 대한제국 시절  


조지 오웰의『버마시절』에 등장하는 주인공 플로리는 태생이 영국인이면서도 조국의 버마 지배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조국을 비판하기에는 주위의 시선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커져 버릴 대로 커져버린 제국주의는 플로리 한 사람이 반발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념의 장벽이다. 반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두 버마 원주민인 의사 베라스와미와 치안 판사 우 포 킨은 플로리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베라스와미는 오히려 영국의 버마 지배를 옹호하고 있으며 영국이 지배하지 않는 버마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 포 킨은 영국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잡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제국주의에 길들어져 부패한 인물의 상징이다. 두 버마 사람들을 통해서 영국의 제국주의의 그늘 안에 가려져 버린 버마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소설 속 1920년대 버마 시절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대한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베라스와미와 우 포 킨의 행보는 대한제국에서 기세를 부리고 있었던 친일파들과 비슷하다.  

 

 

 당신은 사업하러 이곳에 오셨다고 말했지요? 당연합니다. 버마인들이 스스로  

 무역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계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지요. 만일 영국 사람들이 

 이곳에 없다면 버마 정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정글을
 일본에 팔아먹을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정글을 송두리째 오려낼 것이니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죠. 대신 당신들의 손에 맡기면 정글은 실제적으로  

 좋아지죠. 그리고 당신네 사업가들은 우리 국토의 자원을 개발하고, 관리들은  

 우리를 문명화시켜 당신들 수준까지 끌어올리죠. 이것은 자기희생의 빛나는  

 기록입니다. 
  

  -『버마시절』조지 오웰, 열린책들, p 55 -


1880년대부터 서양 근대 문물의 무분별한 수용은 일본이 야금야금 대한제국을 지배하려고 하던 20세기 초에 친일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개화사상을 통해서 찾으려고 했던 개화파들 중 일부는 대한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대한제국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영국과 러시아 등의 유럽 열강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은 대한제국 내의 항일 운동을 뿌리 뽑기 위해서 겉으로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행동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문화 통치를 실시함으로써 친일파들을 양성하였다. 아시아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고 있었던 제국주의 국가였다.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일본의 위력을 목도한 지식인들은 항일 민족 운동을 버리고 친일 운동으로 돌아서게 된다. 친일파 지식인들은 국민들에게 국권마저 빼앗겨버린 현실의 형편없는 나라를 차라리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건설에 동참하도록 호소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 공영권은 단지 대한제국의 주요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독립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35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친일 정치인과 경영인들은 일본이라는 든든한 빽을 둔 덕분에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반면 나라가 일본의 지배에 넘어갔음에도 끝까지 항일 운동을 고수한 애국지사들도 있었다. 노골적인 일제의 침략을 지켜봐야만 했던 노 선비 매천 선생은 망국의 치욕을 당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였다.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 황현 <절명시> 제3수 전문 - 
 


매천 선생은 책을 덮고 난 뒤, ‘글 아는 사람’의 처신이 진정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자결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붓’만으로는 일제와의 대결에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제국주의의 허상에 대해 통분하면서도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플로리처럼 매천 선생도 처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제국주의 시대 앞에서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역사적 수난기에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때로는 직접 역사를 이끄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저항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외세와 타협하여 민족을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 매천 황현과『버마시절』의 주인공 플로리. 이들이 자랐던 시대와 배경은 확연히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체제 앞에서 항거하였으나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선택한다. 죽음이 단지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어리석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살면서도 자신 스스로 시대의 분위기를 동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시류를 편승하기보다는 스스로 시대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주변인을 자처한 것이다. 시대의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데에는 항상 고충이 따르게 마련이다. 매천과 플로리는 잘못된 역사 앞에서 취해야 할 도리에 대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이를 통해 세계의 ‘양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정신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매천과 플로리처럼 잘못된 역사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올바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고매한 정신의 선구자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시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통한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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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3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1001-165]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 선 인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고 은 <문의 마을에 가서> 중에서 -  

 

넓은 호밀밭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잡아주는 일,
천국에서도 추락하려는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파수꾼이 된
J.D. 샐린저

끝까지 '무소유'의 사상을 전파하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

옷 한 벌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천국에서도 펼치고 있을 거 같은 순백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신들이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 산으로 떠난 소설가
이윤기

하나님의 부름심을 듣고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옥한흠 목사님

   

올해도 참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평안의 안식처로 떠났다. 이 지구상에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자신만의 위대한 대제국을 만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용감한 알렉산더 대왕도, 거대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리의 역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Vanitas, Vanitas

레프 톨스토이가 쓴 3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죽음><세 죽음><습격>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세 편의 이야기가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품 속 분위기도 어둡기만 하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사망선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두고 있는 평범하기만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심신이 쇠약해지다가 결국에는 극심한 투병 끝에 천상의 빛을 따라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튼을 달다가 넘어지게 됨으로써 생기게 된 어깨의 혹으로 인해서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반 일리치의 일상을 표현하는 장면은 별다른 사건 없이 흐르고 있다.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 사고계에서의 모임, 새 부임지인 시골로 내려와 화려한 장식품으로 거실 꾸미기, 동료들과 함께 한 카드놀이 등. 독자들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간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 허무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바티나스(Vanitas)' 라는 미술 양식이 유행하였다. Vanitas는 '헛되다.' 즉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바티나스 그림에는 거울, 책, 악기, 과일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보편적인 물건들과 그 물건들 사이에서 해골을 배치함으로써 모두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일리치가 점점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이전에 전개된 주인공의 행복한 삶은 독자들에게 삶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신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이 자신을 죄어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려고 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카드놀이를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잠깐이나마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죽음 앞에 선 '인간' 일리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참관 이후 자신도 일리치처럼 죽게 된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모습은 우리 삶에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방관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은 인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알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나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 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41 -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따라오면서도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막상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죽음의 신이 찾아 오지 않을거라는 모순된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카드놀이를 하듯, 인간도 즐거운 일을 통해서 우울한 마음들을 떨쳐내려고 한다. 인간은 죽기 전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불행한 인생이 일찍 마감되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직전에 과도하게 음주를 즐겼는 것처럼 말이다. 수십 병의 독한 술을 들이켜부은 포는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신과 마주쳤다.  

죽음을 잊기 위한 행동들은 부질 없는 일이다. 두렵기만한 죽음의 손길을 피할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죽음의 손길로 향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 이반 일리치가 참여한 카드놀이는 죽음의 신과 함께한 쾌락의 오락이었다. 카드놀이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일리치의 마음 속에 불현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비쳤던 것은 24시간 그의 곁에는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미학 : 삶과 죽음의 경계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세 죽음><습격>의 결말에는 독특하게도 공통적으로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 죽음>에서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사망자가 한 자리에 묻어 있는 무덤가 주위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숲은 온통, 햇살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차갑고 흐릿하게 이슬에 덮여 있었다. 옅은 구름에 가려진 둥근 하늘에 희미한 빛이 어리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땅 위의 풀잎사귀도 공중의 나뭇가지도 고요히 제자리를 지킬 뿐 작은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무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나 사락사락 땅 밟는 소리만이 이따금 숲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자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하고 낯선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숲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 <세 죽음>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176 -

 
   
  
  
<습격>의 결말 장면은 이야기 전개상 맞지 않아 보인다. 알라닌 소위가 죽어가는 장면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요새로 돌아오는 길 주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부대의 병사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을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요새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나게 음악을 부르고 있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
   
 

눈 덮인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감춘 태양이, 맑고 투명한 지평선 위로 미동도 없이 떠 있는 길고 가는 구름에, 저물어가는 장밋빛 햇살을 비추었다. 눞 덮인 산들은 보랏빛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만 빨갛게 타는 일몰 속에서 놀랍도록 또렷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풀과 나무의 녹음은 거무스름해졌고 그 위로 이슬이 내려앉았다.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군대의 무리들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풀이 무성한 초원을 따라 행진했다. 사방에서 탬버린 소리, 북소리 그리고 즐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제2테너가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풍부한 감정과 힘으로 충만한 말고 낭랑한 테너의 목소리가 투명한 저녁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 <습격>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235~236 -  

 
   

두 작품 속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법한데, 왜 마지막 장면에는 자연 풍경을 삽입하였을까?  자연 풍경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여 작가 본인의 필체를 과시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톨스토이는 오만한 작가가 아니다.  

두 작품의 결말에 그려진 '자연 세계' 는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생(生)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숙명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작품 속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곧 삶과 죽음이 가까스로 이어지는 있는 지점이다. 인적이 드문 고요한 자연 세계의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두렵게 하기보다는 죽음의 엄숙성을 잔잔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습격>의 결말에서 부대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면서도 결국에는 인간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있는 이들도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삶은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해골로 상징되는 죽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땔래야 땔 수 없는 죽음과 삶

 
톨스토이의 세 작품은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생기는 공포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문학으로 통해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얻게 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숨을 쉬면서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를 갖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에 대해 두렵다거나 무시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된다면 막상 찾아온 죽음의 신을 두렵게만 느껴지게 할 뿐이다.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의 전제하에,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용하여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http://blog.daum.net/jidam55/13864340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죽음의 무도> http://blog.daum.net/gluon/7324899 

한스 홀바인 <대사들>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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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2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하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중단편을 권하고 싶어요.위에 소개한 작품들 참 괜찮거든요.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에게 꼭 읽히고 싶어요.그리고 톨스토이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군복무한 경험을 그린 작품들도...

cyrus 2010-10-21 23: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톨스토이 작품에서 몇 년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단편집 밖에
안 읽었는데 그 책들이 청소년 독자들로 겨냥한 내용이다보니
톨스토이라는 이름의 대문호의 명성에는 약간 떨어진거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읽는데
그리 어렵지가 않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이 언급하신 작품의 제목이 <카프카스의 포로>가
맞는지요?? 알라딘에 검색해봤는데 없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2 15:39   좋아요 0 | URL
예.그것도 있고요, 또 중편으로 '하지 무라드'도 있어요.그외에도 몇 편 더 있는데 지금 기억은 안 나네요.하지 무라드는 러시아에 귀순한 체첸의 지도자였어요.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러시아를 일본으로 체첸을 조선으로 대입해 놓고 읽으면 재밌어요.

cyrus 2010-10-22 16: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서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나니까 톨스토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지네요. 정성들인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4:28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그렇게 길지도 않고, 작품 주제도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습니다.
역시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 같았습니다^^

2010-10-2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10-2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작가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6:0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작품
<크로이처르 소나타>와 <무도회가 끝난 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0-10-2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프리디히리, 그리고 바니타스.. 몇몇의 단어들이 묘하게 얽혀 뭔가 제게 전해주네요! 오늘도 뭔가 생각할 거리와 책의 느낌을 좀 얻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