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대사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히가시 마사오 지음, 전홍식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3점  ★★★  B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이다러브크래프트의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Supernatural Horror in Literature, 1927)은 기성 문학에 가려진 공포문학 작품들을 양지로 드러나게 한 글이다이 글의 시작을 알린 첫 문장은 공포문학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



*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중에서, 9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다.



러브크래프트가 선호한 공포소설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는 초자연적인 미지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하고, 정신이 처참히 무너지는 무력한 인물들이 나온다그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다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 1928)은 그의 작품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이다크툴루는 인류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지구에 지배했던 신적 존재이다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이외에 다양한 고대의 신들을 묘사했다. 후대의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고대의 신들을 모티프로 한 창작물을 썼고러브크래트프의 작품 세계관이 반영된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완성시켰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일찍 소개된 나라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감명받은 일본 작가들이 많았고, 크툴루 신화는 일본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다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이 책은 1995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현재까지 개정 5판이 나왔다. 국내에 번역된 크툴루 신화 대사전2018년에 나온 개정 5판이다.


이 사전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 나온 고대의 신들, 등장인물 이름, 지명, 기타 용어들을 소개하고 집대성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공포문학의 매혹에 언급된 작가들)와 그에게 영향받은 후대의 작가들도 나온다이 책의 뒤표지에 크툴루 신화 체계와 러브크래프트 문학에 입문하는 최고의 안내서라는 문구가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크툴루 신화 대사전은 입문용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최고의 안내서도 아니다


국내에 생소한 서구권 작가들이 많다. 공포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과 작품명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전 항목의 구성 방식 아쉽다. 러브크래트트의 작품에 등장한 가상 인물과 작품에 언급된 실존 인물을 명확히 구분해서 소개해야 하는데, 가상 인물과 실존 인물이 용어라는 범주(category)로 분류되어 있다스페인의 화가 고야(Goya, 사전 14~15쪽)와 이탈리아의 화가 살바토르 로자(로사, Salvator Rosa, 사전 152쪽)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잠깐 언급된 실존인물이다그런데 이 두 사람은 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소설을 쓴 실존 인물은 작가라는 범주에 들어있다. 흔히 작가를 글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작가의 의미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사전의 항목 분류가 세밀하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국내에 출간된 작품명을 번역본 제목으로 소개했으며 출판사 이름까지 밝혔다사전을 보는 독자가 번역본을 읽을 수 있도록 역자가 꼼꼼하게 번역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엄청 많은 사전 항목의 내용(항목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으나 대략 500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을 한 사람이 전부 옮기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오역도 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이름과 오자가 많이 보인다(사전에 있는 모든 오자와 오류를 정리한 글은 다음에 공개하겠다. 그 글의 제목은 크툴루 신화 오식 대사전’이). 오류가 많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전은 최고의 안내서’라고 할 수 없.


그래도 크툴루 신화 대사전최악의 안내서’는 아니다사전의 완성도는 높지 않지만, 부록은 읽어볼 만하다.그 후의 크툴루 신화는 크툴루 신화의 탄생 배경과 신화 창작에 기여한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러브크래프트가 있는 일본 문학사는 러브크래프트가 일본 문학에 영향을 끼친 장면들을 정리한 글이다. 독자는 이 글에서 일본 문학사를 정리한 책에서 보기 힘든 일본 장르 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부록은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다내 눈에는 이 사전의 배꼽이 배보다 더 크게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묻는다. “이보시오, 지금 뭐 하고 있소?” 디오게네스는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의 얼굴에 등불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나는 사람을 찾고 있소.” 디오게네스가 찾고 싶은 사람은 정직한 인간이었다.  


가난의 문법의 저자 소준철은 4년 동안 등불을 켜고 거리를 걸어 다닌 도시 사회학자다. 사회학자의 등불은 빈곤 노인의 노동 문제를 환기시킨다. 저자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불철주야 거리를 걸으면서 노인의 ‘보이지 않은 노동을 찾으려고 했다. 노인이 길거리에 있는 재활용품을 주워 리어카에 싣고 이동하는 일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 노동이다. 길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실상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노동이다.


재활용품 수집은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이 생계를 위한 자구책으로 선택하는 일이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것도 노동이다. 노인들은 거리에서 주워 모은 재활용품과 폐품을 고물상에 팔아 돈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비공식노동으로 취급받는다재활용품 수집 노인 중에 여성이 많은 편이다. 60대 중반(우리나라 노인 기준 연령은 만 65세다), 70대 노년 여성은 학업을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을 했다. 결혼하면 가사노동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그래서 노년 여성은 동년배 남성보다 노동 경력이 짧다저자는 가난한 노년 여성의 삶과 노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가상 인물의 일상을 재구성한다이 책의 주인공 윤영자는 저자가 조사하면서 만난 노년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형상화한 가상 인물이다.


코로나 대유행 시대에 접어들면서 배달과 온라인 주문량은 증가했다. 그러면서 종이 포장지와 종이 상자의 생산량과 사용량도 덩달아 늘어났다. 사람들은 쓸모없는 종이 포장지와 종이 상자를 집 앞에 놔둔다. 집 앞을 지나가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그것을 줍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폐품을 집 앞에 배출하는 것을 돈 벌고 싶은 노인들에게 도움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노인의 일을 천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폐지 줍는 노인을 무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말년에 저런 고생을 하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인의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지적한다. 개인의 잘못 때문에 가난해지는 걸까저자의 등불은 우리나라 노인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비친다노인은 계속 일하는데도 빈곤하다.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이러면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기반이 부족해진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사회보호안전망은 취약하다. 노인은 삼중고 속에 빈곤을 버티면서 살아간다.


저자는 이전 세대보다 부유한 삶을 사는 젊은 세대가 가난한 노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126~127)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이 폐품을 배출하고 처리하는 일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91~92). 젊고 부유한 사람만이 가난한 노인을 천대하는 성향이 강하고, 노인의 빈곤 문제에 무관심할까? 경제적으로 잘 사는 노인이 있을 수 있는데, 과연 그 사람들은 폐지 줍는 동년배를 어떻게 생각할까? 연민 아니면 경멸?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폐지를 줍는 노년 장애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저자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가 많다노인 빈곤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가난의 문법보이지 않은 노동이 잘 보이도록 초고령화 사회를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책이다저자의 등불이 오늘도 켜져 있을 거로 믿는다. 여전히 보이지 않은 노동과 빈곤 문제를 계속 밝혀주길 바란다.






교정 보이 cyrusMini 미주알고주알

 

 

* 49쪽 (4쇄)

 

 우리는 현재의 노인이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기 전에 이미 노령기에 접어든 이들이라 노후생활의 안정 위한 도구가[]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한 인구집단이라는 특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 노후생활의 안정 위한 도구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그만 메모수첩 2021-03-1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에서, 일체의 생산이 모두 멈춘 도시에서 사람들은 폐기된 물품들을 주워서 연명하는데 어르신들에겐 이 도시가 바로 그 소설 속 폐허가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남 일 아니고 제 일이라 생각하고 읽었어요.

cyrus 2021-03-19 10:19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잘 사는 국가에도 쓰레기를 주우면서 사는 빈곤층이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계속 고령 인구가 많아지는 사회가 지속되면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들도 폐지 줍는 가난한 노인이 될 수 있어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들이 보고 싶어졌다그 화가가 세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비슷하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




* 어린이라는 세계, 한 명은 작아도 한 명중에서, 200

 


 만일 어린이가 보는 방식으로 보고 싶다면 내가 작아지는 것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커진다고 상상하는 쪽이 낫다




어린이는 주변 사물을 실제보다 크게 보는 성향이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무시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24). 앞서 내가 언급한 화가는 사물과 모델을 크게 그렸는데, 상당히 어설퍼 보여도 그 그림에도 나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이 화가의 정체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



























[e-Book, 밀리의 서재]

* 김정일 엮음 내 손 안의 미술관, 앙리 루소(피치플럼, 2020)

 

[품절]

* 앙겔라 벤첼 앙리 루소: 붓으로 꿈의 세계를 그린 화가(RHK, 2006)

 

* 코르넬리아 슈타베노프 앙리 루소(마로니에북스, 2006)

 

* 재원 편집부 엮음 앙리 루소(재원, 2005)

 

* 오승우 엮음 루소(서문당, 1994)

 



루소는 1844년에 가난한 양철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에 데생과 성악으로 상 받은 일을 제외하면 딱히 특출한 학생이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루소는 처가의 소개로 세관 공무원이 되어 일했다. 비록 하급 관리직이었지만, 한가한 시간이 많았다루소는 쉬는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그가 주로 그림을 그린 날은 일요일이다. 그래서 루소를 일요일의 화가라고 불린다전업 화가가 되려면 미술학교에 입학하거나 미술관 출입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미술관 출입 허가증이 있으면 미술관에 전시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 화가 루소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술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미뤘다. 25년 동안 세관원에 근무한 루소는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가 되기 위해 49세에 일을 그만두었다. 미술관 출입 허가증을 받았지만, 매달 나오는 연금만으로는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생활할 수 없었다. 루소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되었고, 화실에서 어린이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학자들은 파리의 온실 속에 있는 열대 식물이 루소의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루소는 온실을 자주 방문했으며 상상력을 가미해서 실제로 가보지 않은 열대우림을 그렸다. 그렇지만 나는 화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도 루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루소는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묘사하는지 관찰했을 것이다.















원근법을 모르는 어린이는 자기가 보는 그대로 대상을 그린다. 또 대상을 보면서 느낀 것을 꾸밈없이 그린다. 따라서 어린이의 그림에 있는 대상은 실제와 거리가 먼, 단순한 형상이다. 어린이의 그림에는 어린이 특유의 부풀리기단순함이 공존한다. 이 두 가지 특징은 루소의 그림에도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모델을 실제보다 크게 또는 작게 그린 루소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루소의 그림 솜씨가 서투르다고 무시하지 마시라. 루소는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 화가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인정한 화가이다. 피카소는 자신의 화실에서 루소를 위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연회의 이름은 루소의 밤이다. 이 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루소와 피카소가 친하게 지낸 젊은 문인과 예술가들이다.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등이 루소를 찬양하기 위해 연회에 참석했. ‘루소의 밤은 루소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열렸다. 그날 밤은 루소가 화가로서 긍지를 제대로 느낀 최고의 순간이었다.


서양미술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화가는 앙리 루소다. 루소의 그림은 단순해서 좋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왜 저렇게 그렸는지 해석할 필요가 없다. 어린이가 보는 방식으로 루소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 세상이 유치하다기보다 색다르게 느껴진다.






교열 보이 cyrusMini 미주알고주알

 


* 루소(서문당), 28: 도로네

* 루소(서문당), 35: 로벨로 도로네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 루소(서문당), 46: 막스 자곱 

막스 자코브(Max Jacob)


* 루소(서문당), 46: 도루드, 스타인 

거트루드 스타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3-18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보는 방식‘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지식 습득~! 감사합니다^^

cyrus 2021-03-18 14:0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굉장한 것들의 세계 - 가장 크고, 가장 빠르고, 가장 치명적인 생물의 진화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하윤숙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다 자란 골든 리트리버만한 고양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전 세계 애묘인과 고양이 집사들이 새로운 종()의 등장에 열광할 것이다하지만 거대 고양이의 습성과 생태를 모른다면 그것이 미지의 생물(Cryptid)’ 또는 괴물로 보일 수 있다. 인간은 거대한 생물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호기심과 막연한 두려움에 그친다는 점이다. 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과학이 특이한 생명체의 정체를 밝혀 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특이한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학계에 보고할 뿐이지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구에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우리보다 몸집이 큰 생물이 있으며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 아주 작은 생물도 있다. 수명이 아주 긴 생물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 엄청 뜨겁고, 엄청 추운 곳에도 생물이 있다. 극단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대부분 사람에게 낯설다. 극단의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실례가 된다. 극단의 생명체들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나타난 존재이기 때문이다극단의 생명체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지구라는 좁은 행성 위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연약한 존재다. 극단의 생명체는 온갖 열악한 환경을 개척하고 적응하는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을 가지고 있다. 굉장한 것들의 세계(Superlative: The Biology of Extremes)는 가혹한 환경에 적응해온 존재들의 생존기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몸집이 크다.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임신 기간이 길고,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한다. 거대한 몸집은 아프리카코끼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코끼리가 진화론적 약점을 극복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암 억제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암 억제 유전자는 변이 분열을 일으키는 세포(암세포)가 자살하도록 유도한다. 몸집이 큰 대형 동물은 인간보다 유전자 수가 많다. 아프리카코끼리의 암 억제 유전자는 인간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


심해에 가장 오래 사는 생명체가 있다. 유리해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모노라피스 쿠니(Monorhaphis chuni)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온도계. 심해 연구가들은 유리해면을 관찰해서 심해의 기후를 관측한다. 영화 <짝패>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오래 가는 놈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이 나무늘보. 사람들은 느림보의 대명사인 나무늘보가 생태계의 최약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무늘보는 느릿느릿한 습성 덕분에 다른 포유류에 비해 신체활동을 위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 않는 체질이다. 나무늘보는 주변에 있는 풀이나 나뭇잎을 먹으면서 생활한다. 그들은 잘 먹고, 새끼를 잘 낳는방식으로 진화했다. 먹이를 구하러 이동하지 않는 나무늘보는 자손을 퍼뜨리는 일에 집중한다.


극단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은 인간이 보기에 소소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존기는 소소하지만 굉장하다. 극단의 생명체는 우리가 적응하지 못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의 생명체는 인간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에 살려고 한다면 극단의 생명체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먼저 배우기 전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인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극단의 존재에게 미지라는 수식어를 계속 붙여줄 수 없지 않은가.






교열 보이 cyrusMini 미주알고주알



* 14

 

 중국 고대 신화에서 우주 창조자로 등장하는 뿔 달린 거대한 신 반고(盤古)에서부터 현대 미국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엄청나게 큰 고릴라 킹콩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례가 있다.


[] 반고의 몸에 커다란 뿔이 달려 있지 않다. 반고가 죽으면서 남겨진 육신과 체액은 산, , 바람, 해와 달 등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위앤커, 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1999)





* 244





티라노사우르스 티라노사우루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21-03-17 14: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교열보이 cyrus 님! ㅎㅎ 수수하지만 굉장해!는, 드라마군요! 검색해봤더니 줄여서 ‘수수굉‘이라고, 돈가스 음식점(부산)도 3개나 나오구요. ㅎㅎ

cyrus 2021-03-17 15:24   좋아요 2 | URL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는 누군지 알겠는데, 드라마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제목만 아는 드라마에요. 앞으로 ‘교열 보이’라는 닉네임을 자주 써야겠어요. ^^

얄라알라 2021-03-17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uperlative
요 단어를 ˝굉장한 것들˝로 옮겼네요^^
소개해주신 굉장한 생명들과 딱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코끼리 상아가, 밀렵꾼 피해 점점 사라지는 쪽으로 간다는 글을 (사실 여부 확인 안하고) 읽었지만 암 억제 유전자라니! 이거 또 새롭네요^^

cyrus 2021-03-18 08:23   좋아요 1 | URL
코끼리가 친숙한 동물인데도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이 꽤 많아요. 코끼리가 점잖은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코끼리는 초음파로 대화를 하는 동물이래요.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아서 그렇지, 코끼리는 말 많은 동물이에요. ^^

2021-03-1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공개한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sborne Wilson)창의성의 기원에 대한 서평의 분량이 많아져서 그 글에 언급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윌슨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통합(통섭)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나 활기를 잃은 인문학이 부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에드워드 윌슨 창의성의 기원: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사이언스북스, 2020)




17~18세기 유럽 사상가들이 이성의 힘으로 구습을 타파하는 계몽 운동을 일으켰다면 새로운 계몽 운동은 과학의 힘으로 인문학의 한계(윌슨의 견해에 따르면 현재 인문학은 극심한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다)를 보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레드스타킹 2021년 첫 번째 필독서]

*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창비, 2020)

 

[절판]

* 캐롤린 머천트 자연의 죽음(미토, 2005)




오래전부터 계몽주의 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를 넘어서려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리아 미스(Maria Mies), 캐럴린 머천트(Carolyn Merchant)와 같은 생태주의 여성학자들이 바라보는 17~18세기 계몽 운동은 극심한 백인 남성중심주의가 지배한 사조다계몽 운동의 등장에 탄력을 받은 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체제는 자연과 여성을 식민화 대상으로 취급하여 착취한다. 에코페미니즘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마리아 미스가 그 책에 실린 자신의 글에 여러 차례 인용한 문헌이 캐럴린 머천트의 저서 자연의 죽음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시시콜콜한 것까지 의심하고 따져본다. 다음 문장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인용했는데 책을 보는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창의성의 기원》 106~107

 

 실험적인 미술과 비평이라는 온실 기후에서 별난 하위문화가 갑작스럽게 제멋대로 싹트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잘 가꾼 잔디밭에서 대담하게 버섯과 민들레가 자라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들 자체는 일관적인 설명을 거부한다. 다다이즘, 극사실주의 토마토 수프 깡통, 포스트모던 철학과 문학, 헤비메탈과 무조 음악이 그렇다.


[원문]

 

 In the hothouse climate of experimental arts and criticism, it is not  surprising that bizarre subcultures sprout abruptly and randomly, like courageous mushrooms and dandelions on an otherwise well-tended lawn. They defy coherent explanation itself: Dadaism, hyper-realistic cans of tomato soup, postmodernist philosophy and literature, heavy metal and atonal music.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토마토 수프 깡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으리라. ‘토마토 수프 깡통팝 아트(pop art)의 대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캠벨(Campbell) 수프 통조림시리즈를 말한다.







워홀은 미국의 대중문화에 미술을 슬쩍 걸침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다. 자신이 즐겨 먹은 캠벨 수프 통조림부터 시작해서 인기 연예인의 얼굴기성품, 심지어 자신의 모습까지 실크스크린(silk screen) 기법으로 종이 또는 캔버스에 옮겼다. 실크스크린은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판화 기법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워홀의 제작 방식은 그가 예찬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흡사하다팝 아트가 태동하기 시작한 미국은 날이 갈수록 비대해지는 자본주의 제국이었다. 공장을 짓고, 제품을 대량 생산했다. 여기에 맞춰 대중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소비했다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가 되면서 고고한 상류층만 즐기던 고급문화는 철 지난 문화로 전락한다. 상업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팝 아트는 기존 예술의 엄숙주의를 거부한다.
















* 강홍구 앤디 워홀: 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재원, 1995)



평점

3점  ★★★  B




워홀과 관련해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얇은 분량으로 된 앤디 워홀 뿐이다. 이 책을 쓴 강홍구는 서양화를 전공한 중견 사진작가다. 그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사실주의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앤디 워홀》 73

 

 워홀의 사진 이미지 실크스크린 작품들은 리얼리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리얼리즘이 아니며 심지어 리얼리즘의 한 단면도 아니다. 왜냐하면 워홀의 작품이 갖는 리얼리즘은 일어난 사건 자체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이미지로 옮긴다는 점에서 획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워홀의 예술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워홀의 토마토 수프 깡통은 극사실주의로 볼 수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17 1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앤디 워홀이 극사실주의라뇨. 저도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앤티 워홀은 자연을 그대로 표현할려고 한 작가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상위/하위 문화의 경계의식 같은 인간의 통념이나 경계를 파괴하고자 한거지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할려고 작품을 만든게 아니잖아요. ^^

cyrus 2021-03-17 11:01   좋아요 1 | URL
제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내용을 바람돌이님이 잘 말씀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