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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작년 여름부터 대구의 책방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가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 등록 당시에 출판사 이름은 도서출판 서탐이었고, 올해 1월에 사명을 ‘tampress(탐프레스)’로 변경되었다책방지기는 겸손하게도 ‘tampress’출판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tampress’책방 안에서 나온 창작 활동의 산물을 출판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출판사다.


책방에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책방지기의 든든한 벗이다. 책방지기는 재주가 많은 두 명의 벗과 함께 여성을 위한 소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소셜 커뮤니티 이름은 ‘W.살롱이다(나는 처음에 ‘W.살롱우먼살롱으로 읽었다. 정확한 호칭은 더블유살롱이다). ‘W.살롱프로젝트에 참여한 책방지기의 동료들 모두 글 쓰는 일을 한다. 권지현 작가는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이기도 하다(본인을 프리랜서 글꾼이라고 소개했다). 이도현 작가이도라는 필명으로 단편소설 보름달을 펴냈다.책샘(책이 샘솟다)’이라는 독서 모임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W.살롱여성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화 공동체이다‘tampress’의 첫 번째 출판물인 <W.살롱 에디션>‘W.살롱’ 정기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의 글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이 책에 책방지기, 권 작가, 이 작가가 쓴 글도 실려 있다세 사람이 함께 표지 디자인 제작, 편집, 교정 작업을 했다현재 총 네 권의 <W.살롱 에디션>이 출간되었다(책 한 권의 정가는 8,000원이다)네 권의 책 모두 이 글에 전부 소개할 수 없어서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만 언급하겠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주제는 이다. 주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부분 사람은 밥을 한국인의 주식(主食)’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W.살롱의 작가들은 밥을 차리는 주체에 주목한다여성은 결혼하면 밥을 차리는 아내가 된다. 사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주변 사람들한테 아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다. “여자는 자고로 음식을 잘 만들어야 좋은 아내가 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오랫동안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살아봤거나 이런 아내를 만나 살고 싶은 남자들은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을 모른다책방지기 겸 편집자인 김정희 작가는 나 또는 누군가의 끼니를 위해 육체를 움직여 보지 않은 사람은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사월의책, 2015)



 

우리는 정떨어진 사람에게 밥맛없다라고 말한다. 권지현 작가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인 밥맛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밥맛에 밥을 차리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이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밥을 차리는 노동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이도 작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 소비되는 돈과 시간을 직접 재보기 위해 요리 마일(cook miles)’이라는 계산식을 만들었다. ‘요리 마일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적 수치에 반영되지 못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가사노동, 특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림자 노동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임금 노동에 가려진 가사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일리치는 남성 중심의 생산노동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했다하지만 빛이 너무 밝으면 공해가 된다. 밥 만드는 일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여성의 모성과 희생에만 초점을 맞춘 신화밥 차리는 주체의 수고로움을 가리는 공해이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부제는 신화를 걷어내다이다. 그들이 걷어낸 신화밥을 차리는 주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관념적인 식탁보다. W.살롱의 작가들은 식탁보가 된 신화를 걷어낸다. 만약 당신이 <W.살롱 에디션>을 다 읽고나서 식탁보를 걷어내면 식탁 위에 밥이 아닌 ‘밥을 차리는 주체의 이 있음을 알게 된다.


<W.살롱 에디션>을 문고본 형태의 문집이라고 얕보지 마시라.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있는 단행본이다. 서평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위원인 송지우 교수는 책을 내는 가치가 있다면 서평은 그 가치를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는 송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책방에 모인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서평을 썼다. 내가 책방지기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평을 쓴 건 절대로 아니다(<W.살롱 에디션첫 번째 책은 책방에서 샀다). 지인이 쓴 책도 쓴소리와 악평을 피할 수 없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독자는 잘 만든 책 속에 부족한 점, 아쉬운 점, 문제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반드시 언급한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에 몇 개의 오자가 보였다. 나는 이 사실을 책방지기에게 알렸다. 내 의견을 그분에게 직접 전달했으므로 이 글에 책의 오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 책 감별사모여 국내 최강 서평지 만든다(동아일보,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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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3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끝내 주는 리뷰입니다.

이 책도 어느 포스팅인가에서 보고는
일단 쟁여 두기는 했는데 어디에 두
었는 질 모르겠네요...

cyrus 2021-02-24 10:57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이 언급한 ‘이 책’이 <그림자 노동>을 말하는 겁니까? ㅎㅎㅎㅎ
<그림자 노동>을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구입했는데, 작년에 제가 방을 도배했을 때 이 책을 종이 상자에 넣었어요. ^^;;

페넬로페 2021-02-23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밥하고 밥차리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cyrus님의 리뷰는 저를 한 번 돌아보게 하네요^^
근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예요^^
그게 참 문제인것 같아요**
항상 고맙다, 잘 먹겠다는 말이 나에게 마약처럼 작용해 또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거죠^^
저 위의 사진이 참 좋아요.
평화로워요**

cyrus 2021-02-24 11:0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어머니나 아내에게 말로만 감사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서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부엌에 자주 갈려고 하는데, 그럴 때 식기와 음식 재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고 기억해두려고 해요. 그러면 나중에 제가 혼자 음식 만들 때 편해요. ^^

stella.K 2021-02-2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방지기님 좋은 일 하시네.
잘 됐으면 좋겠다.
<W.살롱 에디션>도 잘 됐으면 좋겠다.
너도 이쯤해서 책 한 번 내보는 건 어때?
좋은 글들이 많은데.

cyrus 2021-02-26 12:39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잘 썼다고 보기 어렵고, 사람들이 제 글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 글을 보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책보다는 블로그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

kuki 2021-03-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 <밥>을 읽어주시고 애정어린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책방에 모인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서평을 썼다‘

W살롱의 앞길에 뜨거운 에너지 듬뿍 받습니다^^ 이 글을 서탐 블로그에 고이 모시고 갈께요.

cyrus 2021-03-14 23:34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서탐’ 블로그에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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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호기심 많은 소년은 훨훨 나는 나비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비의 날갯짓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년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솟았다. 살아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일까? 생명이란 무엇일까?’ 소년은 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되었고, 2001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에 나비를 보면서 생긴 궁금증을 잊지 않았고,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이 바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책을 쓴 소년의 이름은 폴 너스(Paul M. Nurse). 책 제목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쓴 저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폴은 1949년에 태어났다. 폴이 태어나기 5년 전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나왔다. 이 책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의 핵심이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은 생명의 핵심이 하나만 꼭 집어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고 본다그는 생물학의 다섯 가지 개념을 제시하면서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한다폴이 생각한 생물학의 다섯 가지 개념세포, 유전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화학으로서의 생명, 정보로서의 생명이다.


저자는 세포 연구의 권위자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세포이다.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이듯이 생물학의 원자는 세포이다. 세포는 생명의 기본 단위다. 세포는 살아 있는 모든 실체 중에서 가장 작고 단순하다세포 안에 유전자가 있고, 유전자 속에 염색체가 있고, 염색체 속에 DNA가 있다. DNA는 세포와 그 세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생물이 성장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진화는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 단선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주 기본적인 진화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은 종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다양한 생물들을 나오게 하는 창조적인 과정이다지금도 생명체 속의 세포는 쉴 새 없이 화학 반응을 수행한다. 세포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명체는 살지 못한다. 저자가 언급한 생물학의 기본 개념들은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꼭 알아야 할 정보이다. 저자는 생명의 핵심을 세포나 유전자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세포와 유전자 너머로 확장해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인류는 멸망할 때까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안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권의 책으로 써서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이 답변이 무수히 많아지려면 인류만이 지구의 생명체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폴 너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의 정의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크고 작든 간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생태계의 상호의존성을 잘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우리는 자연을 쉽게 이용하고, 동식물(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포함해서)을 인간보다 한 단계 낮은 존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야 당연히 인간이지!’라고 대답하지 말자.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면 그런 유치한 대답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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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2-23 0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고 당연하게 ‘인간 종‘만을 위해 나머지 생명들을 이용해야(혹은 할 수 있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여요.

환경운동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제일 웃긴 말이 ‘유해조수‘였어요. 생태계에서 각 생명체는 서로 얽히고 얽혀 그물망 같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인간에게 조금 해를 끼친다고 유해조수로 지정해 없애려 한다는 것 너무나도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지금도 매순간 수많은 생명 종들이 멸종되어가고 있어요. 그 결과가 코로나19라는 역사상 유래없는 팬데믹으로 나타나고 있구요.

사람들은 단지 언제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지, 혹은 코로나가 소멸할지만을 생각할 뿐, 인간의 삶을 바꿔 더 이상 다른 생명 종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참 바보같고 무서운 일이예요.

cyrus 2021-02-23 10:49   좋아요 0 | URL
우리 몸속에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대부분 사람은 몸속의 미생물을 ‘바이러스’나 ‘병균’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미생물이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디톡스 관리를 하거나 약을 먹는데, 오히려 그런 삶이 이로운 미생물을 살지 못하게 만들어요. 정말 어리석은 일이에요. ^^;;
 






2021219일 금요일 

오후 8~ 오후 945






올해 두 번째 독서 모임의 필독서는 지난번 모임(2021122)과 마찬가지로 에코페미니즘입니다. 책의 분량이 많은 만큼 이야깃거리가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1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을 다시 읽었어요

















[레드스타킹 2021년 첫 번째 필독서]

*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창비, 2020)




4장과 10장을 다시 읽은 분이 있었어요. 4장에 따라잡기식 개발(catching up development)의 문제점과 한계를 다룬 내용이 나옵니다우리나라는 단기간 내에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산업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고, 이를 개량해서 생산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전 세계 농민과 여성들은 좋은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 선진국처럼 기술 개발과 자본 축적의 길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따라잡기식 개발이 실패하면서 선진국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변했고,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가 급부상하게 됩니다. 4장을 집필한 마리아 미스(Maria Mies)는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가 남성의 군사화 현상을 일으켰다고 지적합니다내전에 참전한 남성들은 기관총을 쥐면서 남성성을 과시했습니다이로 인해 자연환경은 더 파괴되었고, 여성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따라잡기식 개발의 한계에 직면한 사람들은 자급자족 경제와 협동조합에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급자족하는 삶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러한 현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자본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데, 자본의 힘으로 작동하는 도시에 자급자족 사회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분의 의견이 있었습니다독서 모임에 참석한 대학생 멤버는 대학교의 경제적 지원이 없어서 활성화되지 못한 대학협동조합을 언급하면서 협동조합이 마주치는 현실적인 벽을 상기했습니다.


기부 문화는 자본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환경 파괴를 일으킨 주범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순간, 그 사람은 구원자가 되니까요. 따라서 시혜적인 성격이 짙은 기부 문화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선진국은 식민국과 개발도상국에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각종 시혜 정책을 내세워 국력을 과시했습니다. 자본의 힘을 이용해 식민지 통치와 반인륜적 행위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어요.


최근에 친환경 경영을 내건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린뉴딜 정책을 내세운 정부(또는 야당을 포함한 정당)의 행보에 발맞춰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기업은 친환경 경영의 경영에 더 초점을 맞추듯이 정부와 야당은 그린뉴딜의 뉴딜(new deal)’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이러면 그린뉴딜 정책은 미래지향적인 장기 정책이 아니라 민심을 확보하기 위한 국책 사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각종 정당이 내세운 친환경 정책을 꼼꼼하게 살핀 분의 의견에 따르면 그린뉴딜 정책에 세부적인 계획이 부족한 편이에요. 그린뉴딜의 그린(green)’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정책 내용에 만족하지 못할뿐더러 정부와 여러 정당이 공약으로 내건 친환경 정책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합니다.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나왔습니다. 10장을 쓴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재생산기술을 비판적으로 봤는데요, 과학을 무조건 적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코페미니즘238쪽에 나온 매춘 관광이라는 번역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분도 있었어요.


















[레드스타킹 2021년 두 번째 필독서]

* 안영주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안그라픽스, 2019)





에코페미니즘읽기 모임을 35일에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비대면 모임 참석을 원하는 분은 11장부터 마지막 20장까지 읽으면 됩니다. 레드스타킹은 새로운 책을 읽은 뒤에 3월 19일에 모입니다. 새로운 책은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입니다. 다음 달에 레드스타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건축가들을 만나러 갑니다. 비대면 독서 모임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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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2-23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이름이 독특하네요. 사인 훔치기로 유명해진 미국의 모 야구팀이 생각나는 이름이네요. ㅎㅎ

이 책 읽다가 내던져놓고 많은 시간이 지났네요.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21-02-23 10:50   좋아요 0 | URL
모임명이 긴 편이라, 줄여서 ‘레스’라고 부릅니다... ㅎㅎㅎ
 



2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다. 이날이 되면 안중근 의사와 함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은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문송면이다. 그는 1971214일 충남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호적에 1973년생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정확한 출생연도는 1971년이다만약 문송면 씨가 지금 살아있었으면 50살 생일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참고도서]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돌베개, 2021)


* 한국환경교육학회, 국립환경과학원 환경권 시대의 시작과 환경사(진한M&B, 2014)

 



198712월 5일에 문 씨는 서울로 상경하여 온도계 제작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 씨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문 씨가 한 일은 온도계에 수은을 넣는 일이었다. 기체로 변한 수은이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면 신경계 질환이 생긴다. 1988년 1, 2월에 문 씨에게 손발이 마비되는 증상이 왔다. 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병가를 냈으며 19883월 말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은 중독 진단을 받았다. 198872일 새벽에 문 씨는 심한 전신마비와 구토 증세에 시달렸고, 토사물이 기도에 막혀 세상을 떠났다


공장은 문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인 원진레이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은 산업재해의 심각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원진레이온은 인조견사 생산 공장이다. 그곳에서 천여 명의 노동자들은 매월 300시간 넘게 일했다. 그들은 인조견사를 생산하는 과정에 나오는 이황화탄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원진레이온 소속 노동자들은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각종 질병과 신체장애를 겪었고, 그중 38명이 사망했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둔 노동자들이 있었고, 어떤 노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는 원진레이온의 비윤리적인 조치와 노태우 정부 노동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산업재해의 희생자를 더 늘어나게 했.


문송면 수은 중독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결성한 노동운동가와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추방 운동을 펼쳤다. 그들의 노력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의 중요성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쉬지도 못하면서 일하고 있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방조한 기업과 공장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사법부의 기업 및 공장 처벌이나 제재는 너무 가벼운 솜방망이다. 문 씨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태 이후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노동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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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1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달 만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다니.. 16살이라는 꽃같은 나이에. 스크린 도어 사고 때도 그렇고 이런 일들은 언론의 지속적인 주목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 안타깝네요. 고발프로가 정치 소비를 벗어나 이런 사건들에 집중해주면 좋겠어요.

cyrus 2021-02-15 19:09   좋아요 2 | URL
언론이 너무 많아도 문제에요. 대부분 기자들은 산업재해의 참상만을 보도해요. 이 사람들과 달리 진보 성향의 언론이나 대안 언론 기자들은 산업재해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보도해요. 이러면 짧은 분량의 자극적인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많이 노출되고, 산업재해 이슈는 묻혀버립니다.

바람돌이 2021-02-14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아직도 중대재해기업 처벌법같은 당연한 법이 논란이 되는게 안타깝습니다.

cyrus 2021-02-15 19:11   좋아요 2 | URL
이상하게 우리나라에 가해자를 동정하고 편드는 사람들이 많아요. 학교 폭력 가해자, 성폭력 가해자, 부정부패 정치인과 기업인들. 처벌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mini74 2021-02-14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중학교때 일어난 사건이라 기억나요. 선생님이 그 기사 읽어주시며 슬퍼했던 기억나요. 우리에게 환경병과 열악한 근로조건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런데 그 선생님. 우리들 앞에서 전교조라고 끌려가셨어요. 그때 우리학교애들 운동장에서 울면서 선생님들 돌려보내달라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남아 있던 선생님들에게 먼지나게 맞았지요. 그 때 그 시절 끌려가셨던 선생님들이 제 기억엔 제일 좋았던 선생님들입니다. 참 징그러운 시대. 그런데 누군가는 그 시대를 그리워하네요. 그 시대를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아놓고.

청아 2021-02-15 10:27   좋아요 0 | URL
아 눈물나네요..ㅠㅠ

cyrus 2021-02-15 19:13   좋아요 0 | URL
징그러운 시대... 맞아요. 정말 과거를 적절하게 표현하셨어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야했던 시절이었죠.
 
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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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남 잘되는 상황을 볼 수 없다는 욕심, 한발 나아가 경쟁심과 시기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속담에 벼농사 문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 벼농사 문화는 농촌 특유의 연대 의식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가 구심점이 되어 발전해왔다. 서로 협력하여 함께 농사일하는 풍습으로 두레라는 조직이 있었다. 벼농사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하기 때문이다만약 이웃이나 친족이 새로운 땅을 산다면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두레가 그 땅에 농사짓는 일을 도울 것이다. 두레 구성원에 친족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촌의 밭일을 돕는 일손이 된다. 이때부터 친족은 배가 살살 아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땅 넓이와 벼 수확량을 사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이철승의 책 쌀 재난 국가를 다 읽고 나면 상부상조 정신의 벼농사 문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쌀 재난 국가는 벼농사 문화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자라게 만든 오래된 씨앗임을 증명한 책이다책 제목은 불평등의 기원과 그 구조를 함축한 핵심 단어다두레는 협업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농촌은 비단 한국인의 주식 쌀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회구성원에게 농사일과 협동 정신을 가르치는 교육적 장소이기도 했다. 농촌에 오래 살면서 농사일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아랫사람들을 가르쳤거나 그들에게 과업을 부여했다. 농촌의 위계적인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로 뻗어 나갔고, 연공제로 발전했다.


저자는 협업과 공동 노동을 중시한 벼농사 체제를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두레 일손이 친척, 친구, 이웃의 밭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수확량에 관심을 가진다. 내 수확량이 남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경쟁심이 생기면서, 농민들은 수확량 경쟁에 돌입했다.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문화는 기업이나 공장에 이식되었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가족 같은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도, 동료보다 잘살고 싶어서(동료보다 높은 직급에 오르고 싶어서) 쉬지도 않고 일했다.


벼농사는 농촌 사람들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인생 프로젝트이다. 흉년이 들면 식량이 줄어든다. 허약해진 농민들은 굶어 죽는다. 그래서 농민들은 재난에 민감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불안하고, 비가 많이 오지 않아도 불안하다. 쌀 맛에 익숙한 선조들은 벼농사가 불리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협업의 기술사회적 조율을 통해 재난을 극복했고 벼농사를 고집했다. 농촌 주민들은 재난이 닥치면 개인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고, 공동체 규약을 지키면서 각종 생활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따라서 협업의 네트워크속의 농촌 주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위계적인 협업의 네트워크와 규약에 따라 움직이는 마을 공동체 조직의 부속품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동원해서 연공 문화와 다양한 불평등 문제의 기원을 추적한다. 협업과 위계 중심의 벼농사 문화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구체제 유산이다. 이 오래된 유산은 자본주의 체제와 만나면서 도시에 정착한다. 저자는 전작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 2019)에 이어 쌀 재난 국가에서도 연공제를 비판한다. 연공제에 기반을 둔 위계적 질서가 지속할수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숨은 깊어지고,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유리 장벽은 두꺼워진다.


저자가 지적한 불평등의 기원에 만족스럽지 못한 독자들이 있으리라.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농촌 사회의 상부상조 정신을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던 미풍양속이라고 배우면서 자라왔다. 어떤 사람은 농촌 공동체 문화가 복원되면 농촌이 자본주의 체제에 지친 도시인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농촌을 병든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인 이상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인데, 내가 보기에 순진한 발상이다. 불평등 문제를 양산하는 사회적 구조를 재구축하지 않는 이상 농촌은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시스템이 일상화된 위성 도시가 될 수 있다(그렇다면 이곳을 유감스러운 도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유감스러운 농촌이라고 해야 하나?). 농촌 주민들이 착하다는 생각은 농촌에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의 착각이다. 친척이나 이웃이 잘 살면 배 아픈 사람들은 농촌에도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협업과 조율의 문화를 벼농사 체제와 함께 공진화한 시민사회의 잠재력이라고 평가한다(170). 공진화(coevolution)는 둘 이상의 종이 서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공진화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진화의 기본적인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원숭이 사회가 경쟁을 조장하는 위계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위계 구조는 경쟁을 조장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조직이나 그룹 내부에 위계에 따른 자리를 만들고, 높은 자리일수록 더 많은 보상과 노력을 보장하면 우리 인간들은 원숭이 사회로 돌아간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죽을 때까지 치고받고 싸운다. 자연히 이 위계가 보장하는 보상과 권력의 크기가 클수록, 원숭이들은 더 극렬하게, 더 잔인하게 싸울 것이다


(23~24)



점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인간 사회가 원숭이 사회로 돌아간다고? 저자의 견해에 인간이 퇴화하면 원숭이로 돌아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공진화를 쓴 저자는 진화론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견해를 내세우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오해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원숭이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대로라면 인류는 원숭이가 진화해서 생긴 존재이다. 그러나 원숭이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는 견해는 진화론에 부합하지 않는다. 원숭이, 즉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유인원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친척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독립적인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원숭이는 무조건 동족과 치고받고 싸우면서 살지 않는다. 이 편견을 뒤집은 책이 바로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침팬지 폴리틱스(바다출판사, 2018). 저자는 동물원에서 침팬지 무리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이 정치적 권력 관계와 위계질서를 형성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는 침팬지들의 모습도 확인했다. 치고받고 싸운 침팬지들은 나중에 서로 껴안으면서 키스하거나 서로의 털을 매만졌다. 원숭이 사회는 이익을 위해서 싸울 줄 알고, 타협도 하는 인간 사회와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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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1-02-14 19:10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이 도시와 농촌 간의 불평등 문제를 다룰 줄(조금이라도 언급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싶은 내용이 나오지 않았어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좀 궁금했는데 드디어 리뷰를 보네요.
음 근데 협업과 위계 중심의 벼농사 문화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구체제 유산이다.라는 문제 제기를 보니 좀.... 이런 식으로 과거의 어떤 특정한 문화를 현재의 문제와 연결짓는 진단법들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더라구요. 지나친 도식화랄까?
책을 볼까 말까? 고민 좀 더해봐야겠습니다. ^^

cyrus 2021-02-14 19:13   좋아요 0 | URL
다른 독자의 서평을 참고하시면 좋아요. 저도 저자의 주장에 빈틈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읽어봤는데요,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 자료와 데이터에 두 손 들고 말았어요.. ㅎㅎㅎ 사회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니까 ‘벼농사 문화의 영향’은 불평등 문제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