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

 


EP. 1


202115일 화요일, 날씨는 맑았지만 추웠음.






서재를 탐하다(·)’담담 책방(담담)’은 화요일에 첫 주를 시작한다. 나는 어느 책방에 먼저 갈까 고민했다. 화요일은 집에서 가까운 담담에 먼저 가고, 수요일에 서·탐에 가려고 했다. 담담은 오후 1시에 일어난다. 1시가 조금 지난 뒤에 담담에 도착했다. 책방 입구는 3층에 있다. 투명한 미닫이문이 있는 책방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발길을 멈췄다. 책방 안에 네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책방지기였고, 그 분은 탁자에 앉아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세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세 사람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책방에 들어가면 책방 안의 평화가 깨진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인터뷰 진행이 끊기게 되며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방역 조치까지 어기게 된다. 결국 나는 입구에 있는 손 소독제를 사용하고 내려와야만 했다.


나는 울면서 건물 밖으로 나왔고, 지나가는 이별 택시를 잡았다. 택시 운전사에게 물었다. 저는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그러자 택시 운전사가 대답했다. ·탐에 가면 되죠.” 나는 울음을 그치고 ·탐에 가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택시비가 아까워서 그냥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을 뚫으면서 걸어갈 때 제일 힘든 것은 추위가 아니다. 안경 렌즈에 서린 김 때문에 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다. 걸을 때마다 손수건으로 안경 렌즈를 여러 번 닦아줘야 한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무렵에 서·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내가 쉴 자리는 없었다.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조치를 잘못 이해했다. 5인 이상의 사람이 모이지 않고, 음료도 마시지 않으면 착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음료를 마시지 않아도 착석할 수 없다. ·탐은 카페를 겸업하는 책방이라서 방역 조치를 따라야 한다. 책방지기가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책상에 앉을 수 없다면, 서 있으면 된다! 나는 책방지기에 선 채로 책을 읽으면 됩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걸어오느라 이미 체력이 소모된 상태여서 오래 서 있기 힘들었다. 10분 동안 책장에 꽂힌 책 몇 권을 훑어 봤다. 나는 책 한 권을 구입하면서 책방지기에게 읽다 익다 책방의 근황을 물어봤다. ‘읽다 익다 책방이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해서(원래 책방이 있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이사했다) 111일에 열 예정이었다. ·탐 책방지기의 말에 따르면 읽다 익다 책방지기가 더 나은 책방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이번 달에 읽다 익다 책방을 열기가 힘들다고 한다


나는 111일에 담담 책방지기와 함께 읽다 익다 책방에 가기로 약속했다. 담담 책방지기도 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담담 책방지기에게 읽다 익다 책방 여는 날이 연기된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 때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고, 아직 담담이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담담에 가보기로 했다. ·탐 책방지기가 책방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원래는 책방에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추운 날씨 속에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따뜻한 커피를 포장하여 주셨다. 이번에는 걸어서 가지 않았고, 두 대의 버스를 환승해서 갔다. ·탐 책방지기가 준 커피는 내게 소중한 손난로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가 담긴 컵을 쥔 두 손은 얼지 않았다. 커피 잘 마셨어요. ·탐 책방지기님.


담담에 가보니 마침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다. 담담 책방지기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책방지기는 오후에 월간지 <목회와 신학>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다음 달에 나올 <목회와 신학>에 담담 책방을 소개한 인터뷰 내용이 실릴 것이다. , 이 글에 처음으로 밝히는 건데(사실은 오늘 정오에 공개한 서평에 담담 책방지기의 정체를 이미 언급했다), 담담 책방지기는 교회를 운영하는 개신교 목사님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이분을 목사님이라고 부르겠다. 본인은 책방을 운영할 땐 목사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는 책방지기보다 목사호칭이 더 부르기 편하다. 그래도 책방지기’ 호칭도 자주 쓸 것이다.  


나는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다. 담담은 음료를 팔지 않는 책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목사님께 읽다 익다 책방의 근황을 알려줬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 방역 조치 이후에 책방이 나아가야 할 방향, 코로나 방역 조치를 어긴 일부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실망감, 비건(vegan)으로서 삶의 어려움(목사님은 한때 비건으로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인이 이야기까지. 나와 목사님은 서로 알게 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나는 무교이고, 무신론자다. 그렇지만 종교 자체를 해악이라고 보지 않는다. 어느 종교든 간에 그 속에 배울 점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여서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다. 물론 교세 확장을 위해 신자를 이용하고, 재물을 탐하고, 개인의 신념을 포용하지 않고, 자유의 가치와 진리를 짓밟는 종교라는 탈을 쓴 집단은 상종하고 싶지 않다.


두 시간 동안 목사님과 대화를 나눴고, 나는 담담이 잠드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글을 썼다. 집에 가려고 하니까 목사님이 다음에 또 책방에 오라고 말씀하신다. 매일 연속으로 오지는 못하더라도 자주 책방에 올게요, 목사님. 이번 주 토요일에 특별한 지인과 함께 책방에 갈 생각이다. 특별한 지인은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한다. 거의 일년 동안 뵙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사진기를 든 그분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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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1-01-06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연우 불러야 되나요? 아저씨ㅠㅠ
이번주부터 강화된 거리두기 아직 모르시는 분들 많더라구요.

cyrus 2021-01-07 10:10   좋아요 1 | URL
거리두기 방역 조치를 아예 모르는 사람과 아는 데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

청아 2021-01-0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하던 일상들이 참 그립네요.
(=´∇`=)눈이 옵니다!

cyrus 2021-01-07 10: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책방에 오고 싶은데, 책방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어요... ㅠㅠ

대구에도 눈이 내렸어요. 아침에 나와 보니 눈이 조금 쌓였어요. 외출할 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syo 2021-01-0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책방 잡지 기사 같아요 ㅎㅎㅎㅎ 재미지다.

cyrus 2021-01-07 10:13   좋아요 1 | URL
조금은 과장된 내용이 있어서 잡지에 실리기에는 부적합한 글입니다... ^^;;

stella.K 2021-01-0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우는 모습 보고 싶구만.
못 보는 사이 능청만 늘었군.ㅋㅋ
아니 음료수 안 된다면 커피는 어떻게 마셨구만.
책방에 앉아 있을 수 없다니. 정말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
언제나 옛날 얘기하며 살아보나.ㅠ

cyrus 2021-01-07 16:41   좋아요 0 | URL
사실은 너무 추워서 눈물이 찔끔 났어요.. ㅎㅎㅎㅎ
제가 어제 마신 커피는 테이크아웃이에요. 원래 테이크아웃 커피를 잘 안 마시는데, 어제는 따뜻한 커피가 제겐 정말 소중했어요. ^^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북클럽 운영자의 기쁨과 슬픔
김민영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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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전국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방역 조치가 시행되면서 117일까지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다. 책 모임이 진행되는 장소인 책방도 예외가 아니다. 카페를 겸업하는 책방 안에서 음료를 마실 수 없다. 포장 주문만 가능하다. 책상에 앉아서 책도 읽을 수 없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잖은가. 책방이 잠시 문을 닫아도 좋은 책을 읽으면서 좋은 인간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책 모임에 꾸준히 참여한 회원들이다. 책 모임 회원들은 비대면 책 모임(화상 회의)을 꾸리면서 코로나로 인해 식을 뻔한 관계의 온기를 유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책 모임에 참석하려면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안 읽고 오면 대화의 장에 합류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사람은 책 모임이 마칠 때까지 입을 잘 열지 않는다. 간혹 책 이야기 대신에 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뜬금없어 보이지만, 계속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쩌다가 책과 관련된 이야기와 연결된다. 비록 우연히 얻어걸린 거겠지만. 그래도 절묘하게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흐트러짐 없이 대화 분위기를 잘 이어가게 만드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그렇지만 책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은 회원은 책 밖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 모임 회원들은 책 모임이 있는 날이 항상 즐겁고 행복한 날로 기억되길 바란다. 하지만 관계의 온기가 한순간에 식어버리는 날도 온다. 책은 안 읽었으면서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회원이 얄밉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걸 뽐내는 사람은 꼴 보기 싫다. 내 의견에 토를 다는 사람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책 모임은 예측 불가능한 자리다. 그래서 책 모임을 하고 싶어도 하겠다고 차마 말을 못 꺼내는 사람이 있다. 모임에서 만난 특정 인물을 미워하거나 모임 분위기에 실망하면 다음 모임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15년 동안 책 모임을 꾸려온 김민영 작가는 한때 책 안 읽고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을 미워했다고 실토했다. 김 씨는 과거에 자신이 독선에 빠진 독서광이었다고 밝혔다. 김 씨가 쓴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는 책 모임의 민낯을 솔직하게 보여준 책이다. 김 씨는 그동안 책 모임을 꾸리면서 실수했던 자신의 행동을 먼저 되돌아본다저자는 지금까지 책 모임 운영자의 위치에 서면서 책 모임을 진행해왔다. 그래서 모임 도중에 의견들이 충돌하여 아찔했던 순간과 책 밖의 이야기가 넘쳐서 모임 회원들이 삼천포로 빠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저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또는 아예 잊고 싶은) 최악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책 모임 진행 방침들을 정했다자기 생각과 일치한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맞장구치지 말 것. 한쪽의 견해에만 치우치는 모임 분위기를 만들지 말 것. 책 모임 운영자는 덜 놓치는 사람이자 더 듣는 사람이다(101). 저자는 책 모임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관계의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 한 권의 책보다 중요하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책 모임이 즐거워진다저자의 책 모임 진행 방침은 즐거운 책 모임을 원하는 회원들도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는 책 모임이 있는 책방에 반드시 있어야 할 책이다. 이 책만 있으면 책 모임의 분위기를 잘 몰라서 참석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책 모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책방지기에게 도움을 준다. 나는 담담책방을 지키고 있는 책방지기에게 이 책을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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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6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궁 모임도 지난 1년간 못하고
있네요. 삶의 유일한 낙 중의
하나였는데 말이죠.

어서 속히 코로나가 물러 가고
책모임이 재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보다
닝겡이 중요하다, 공감합니다.

cyrus 2021-01-06 19:36   좋아요 2 | URL
최근에 인스타를 통해서 달궁의 근황을 확인했어요. 비대면 모임이 있었던데, 그 모임에 무당광대님도 있더라고요. 정말 반가웠어요. 달궁에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요. 제가 얼른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는 데 어느 적응이 되면 서울에 가볼 생각이에요. 그때는 코로나가 잠잠해지겠죠? ^^

붕붕툐툐 2021-01-07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월 도서관이 문을 닫은 이후로 갖지 못했던 독서모임을 10월부터 온라인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사람도 책도 온기도 축소된 느낌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제가 적응해야 하는 거겠죠? 책 읽고 대화를 나눈다는 건 늘 좋아요~ 여기 북플을 포함해서요!!^^

cyrus 2021-01-08 10:5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런데 저는 책 모임이 북플보다 좋아요. 제가 꾸준히 참석하는 책 모임의 멤버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잘 경청하는 편이에요. 그분들은 좋은 사람이고, 그분들을 만난 저는 운이 좋은 거죠. 북플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폐쇄적인 성향을 지울 수 없어요. 친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성향. 비판을 부담스러워하는 성향.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와 친한 사람이 비판을 받으면 그 사람을 보호해주려고 하고, 반대로 친한 사람이 타인을 비판하면, 친한 사람의 편이 되어주는 상황. 저는 알라딘 서재로 시작해서 지금의 북플을 이용하기까지 그런 상황을 많이 봤고, 겪었어요. 그래서 작년 후반기에 북플의 한계를 느꼈고, 저 또한 북플의 폐쇄적인 분위기에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걸 인식했어요. 그런 이유로 작년 몇 달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았어요. 책 모임 활동에 매진했어요. 물론 책 모임도 멤버 구성에 따라 폐쇄적인 성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책 모임을 통해 만난 분들은 확실히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해주고, 피드백도 잘 해줍니다. ^^

붕붕툐툐 2021-01-08 21:56   좋아요 1 | URL
오홍~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용~ 저도 제일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했을 땐 북플에 뜸했었어요. 실제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경험은 정말 강력한 거 같아요~ 특히나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셨다니 정말 축하할 일이지요~
저는 지금은 폐쇄적인 분위기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중이라.. 언젠가 사이러스님이 느끼셨던 걸 느끼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싶네요~하핫^^
 
헨리 6세 2부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2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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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2점   ★★   C





셰익스피어(Shakespeare) 하면 당연히 4대 비극과 희극을 떠올린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군주와 주변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극도 썼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역시 종종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작품들은 집필 시기와 초연 시기에 따라 총 4기(또는 3기)로 분류된다. 이 글은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역사극 헨리 6세 제2에 대한 서평이다. 여기서는 셰익스피어가 본격적으로 극작품을 쓰기 시작한 1기에 해당하는 초기(1589~1594)[]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1580년대 말에 시골뜨기 청년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 정착했다.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연도를 1590년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세네카(Seneca)오늘날에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Nero)의 스승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알려졌지만,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와 같은 고대 작가의 극작품에 영향을 받아 희곡을 썼다. 그리고 자신과 동시대에 활동한 극작가들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벤 존슨(Ben Jonson), 존 릴리(John Lyly)의 작품도 참고했다.

 

1592년과 1594년 사이에 런던에서 흑사병이 유행했다. 이 시기에 런던의 모든 극장이 문을 닫는다. 셰익스피어는 극작을 잠시 중단하고, 시집 비너스와 아도니스루크리스의 능욕을 발표했다. 이 두 권의 시집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셰익스피어는 전도유망한 시인으로 알려졌다. 1593년에 셰익스피어에게는 기라성 같은 존재였던 말로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다른 선배 작가들의 명성이 주춤해지자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헨리 6세 제2》는 1590년에 발표되었으나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극작품들의 발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5막으로 구성된 헨리 6세 제2헨리 63부작중에서 제일 먼저 집필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는 2부를 1부보다 먼저 썼다. 2부의 초연 시기는 1591년이다. 2부는 하얀 장미의 요크 가문(House of York)과 빨간 장미의 랭커스터 가문(House of Lancaster)이 충돌한 장미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헨리 6세는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왕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야심 많은 왕비 마거릿(Margaret)에 고분고분 따르는 연약한 심성의 인물로 묘사된다. 요크의 리처드(Richard of York) 공작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린다. 2부에 등장한 왕족과 귀족들 모두 실존 인물이다. 요크 공의 계략에 넘어가 농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잭 케이드(Jack Cade)도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실제로 1381년에 농민 반란을 주도한 와트 타일러(Wat Tyler, 워트 타일러)를 모티프로 한 가공인물이다. 궁핍한 생활고와 장기간 지속된 장미전쟁에 지친 영국의 백성들은 무능한 왕권에 불만을 가졌다. 잭 케이드는 영국 백성들의 민심을 대변하고 있지만, 그도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아침이슬 출판사의 헨리 6세 제2는 시인 김정환 씨가 번역했다. 시인은 자신의 번역본을 한 권의 시집을 대하듯 읽으면 적당하다고 밝혔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를 읽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읊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역자가 직역한 탓인지 어떤 대사는 매끄럽지 않게 읽힌다. 다음에 나올 인용문은 마거릿 왕비의 애인 서포크(Suffolk, 서퍽) 공작의 대사 중 일부이다. 3막에서 서포크는 헨리 6세를 대신하여 섭정한 글로스터(Gloucester)를 암살한 죄로 추방당한다. 내가 인용한 문장을 보면 이 번역본이 연극 공연용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병할 놈들! 왜 내가 저놈들을 저주해야 하오?

저주로 죽일 수 있다면, 흰독말풀 비명 소리가 그렇거니와,

내가 뱉어 낼 저주는 못지않게 신랄하고 사무치는 투,

못지않게 저주스럽고, 못지않게 거칠고, 끔찍하게 들릴 터,

악물은 이빨 새로 강렬하게 퍼부어지고,

가득 찬 치명적인 증오의 내색들이 숱하기,

역겨운 동굴에 사는 여윈 여인 시샘과 같을 터.

 

(32105)



이 번역본에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 빠졌다. 기본적인 사항이란 몇 행인지 알 수 있는 숫자시인이 번역하면서 참고했을 원작 텍스트의 출처이다. 그리고 오자와 오역일 가능성이 있는 단어도 보인다.


내가 인용한 서포크의 대사 중에 흰독말풀이라는 식물 이름이 나온다. 흰독말풀에 해당하는 원어는 맨드레이크(mandrake)’. 이 식물은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뿌리가 둘로 나뉜 형테인데 사람의 하반신 모습처럼 생겼다. 이런 뿌리의 모양 때문에 맨드레이크와 관련된 불길한 미신과 전설이 많다. 옛 사람들은 만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작은 악령이 맨드레이크에 산다고 믿었다. 그래서 맨드레이크의 이명이 만드라고라이며 학명은 ‘Atropa mandragora’다. 교수대 밑에서 자라는 식물로 알려져 그 뿌리에 교수형을 당한 죄수의 영혼이 숨어 있다고 전해졌다. 흰독말풀(학명: Datura stramonium)은 가지과의 한해살이풀에 속한 식물이다. 만다라화(滿茶邏花)라고 부른다. 꽃과 이파리, 씨앗에 독성 물질이 있어서 악마의 나팔(devil’s trumpet)’이라는 별명이 있다. 일본에서는 흰독말풀과 맨드레이크를 같은 식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두 종의 풀은 서로 다른 식물이다. 따라서 맨드레이크’로 번역해야 한다.



오 내가 신이라면, 벼락을 내릴 텐데

이 지질한, 비굴한, 비천한 장일 종놈들한테.

사소한 걸로 교만해지지 천한 것들은. 여기 이 악당은,

고작 쌍돛대 작은 배 우두머리 주제에 불호령이

바르굴루스, 그 강력한 고대 일리아의 해적보다 더하구나.

딱정벌레들은 독수리 피를 빨지 않지, 벌집을 약탈할 뿐.

불가능하다 내가 죽게 된다는 것은

네놈처럼 비천한 신분의 종자한테 말이다.

네놈 말은 내게 분노를 일으켜, 후회가 아니라.

 

(41, 119)




두 번째로 인용한 문장 역시 서포크의 대사이다. 딱정벌레들은 독수리 피를 빨지 않지, 벌집을 약탈할 뿐”이라는 대사의 원문은 이렇다.

 


Drones suck not eagles’ blood but rob bee-hives.

 


‘drone’수벌을 뜻하는 단어다. 딱정벌레들은 오역이다.





난 왕비의 전령으로 프랑스 가는 중이다

내 네게 명하노니, 이 해협 너머로 날 무사히 실어 가거라.

 

(41, 119)

 

 

이 인용문도 서포크의 대사이다. ‘프랑스엘’을 프랑스에로 고쳐야 한다.




시저가 쓴 언급에서 [생략]

 

(47, 142)

 



언급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쓴 책 갈리아 전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를 말한다. 이 구절도 오역이다. ‘시저가 쓴 언급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 스탠리 웰스 외 셰익스피어의 책(지식갤러리,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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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5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김정환.... 전 90년대 초에 이이를 손절했습니다. 소설 <그 후>, 산문집 <내 영혼의 음악>을 읽고,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이를 위해 지갑을 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고, 아직 다짐을 지키고 있습니다. 80년대 초 무크지 실천문학을 통해 읽은 황색예수가 얼마나 그럴 듯했는지, 마치 배신당한 기분이었습니다.

cyrus 2021-01-06 12:01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저는 처음 듣는 얘깁니다. 시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요.

Redman 2021-01-05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었네요 확실히 이 역본은 연극용으로는 적합치 않아 보이네요. cyrus님의 서평 덕분에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1-01-06 12:0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1-01-06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글 보면서 항상 많이 배웁니다.

붕붕툐툐 2021-01-06 10:03   좋아요 1 | URL
저두요!!

cyrus 2021-01-06 12:05   좋아요 2 | URL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다행입니다. 저도 배우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먼저 태어나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웁니다. 그 글 속에 담긴 유익한 내용이 다음에 태어날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이 저의 역할이며 서평을 쓰는 이유에요. ^^

2021-01-06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4: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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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6 1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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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산맥을 덮은 만년설이 녹으면 꽁꽁 얼어있던 흙도 녹아서 산사태가 일어난다.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투발루는 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해수면이 계속 오르면서 이미 두 개의 섬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매년 내린 눈이 층층이 쌓이면 얼음덩어리, 즉 빙하가 된다. 빙하는 지구의 나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빙하를 시추해 다양한 화학 성분을 분석하고, 거품 속에 있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를 측정하면 수십만 년 전까지의 기후 변화와 대기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에 극지 과학자들은 그린란드의 빙하를 시추했다. 빙하에 보관된 기후 기록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주기의 기후 변화가 북대서양 일대에서 여러 번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기후 변화는 해류 순환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유빙이 생긴다. 유빙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오면 멕시코 만류가 흐르지 않게 된다. 멕시코 만류에서 시작된 따뜻한 바닷물은 유럽의 혹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해류가 정지되면 유럽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진다. 유럽이 추워지면 지구는 급격히 식게 되고 빙하기에 돌입하게 된다. 지금까지 지구는 해류 순환과 같은 내부 요인 이외에도 기후 변화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적어도 산업화 이전 수만 년 동안 인류 역사를 좌우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는 간빙기에 해당한다. 인류 문명은 홀로세의 따뜻한 기후와 함께 발달했다. 문제는 기후 순환을 볼 때 언젠가는 다시 빙하기가 온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빙하기의 도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지만, 현재 진행형인 지구 온난화가 빙하기를 앞당길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적어도 산업화 이전 수만 년 동안 인류 역사를 좌우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는 간빙기에 해당한다. 인류 문명은 따뜻한 홀로세 기후와 함께 발달했다. 문제는 기후 순환을 볼 때 언젠가는 다시 빙하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빙하기의 도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지만, 현재 진행형인 지구 온난화가 빙하기를 앞당길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기후와 환경에 미친 영향에 주목했다. 199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홀로세를 세분해 1850년대 이후를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로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인류세를 제시한 데는, 지구를 마음대로 사용한 인류의 자성이 깔려 있다.


















* 가이아 빈스 인류세의 모험: 우리가 만든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다(곰출판, 2018)


평점

4점  ★★★★  A-


 

* 사이먼 L. 루이스, 마크 A. 매슬린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인류세가 빚어낸 인간의 역사 그리고 남은 선택(세종서적, 2020)


평점

4점  ★★★★  A-





지금까지 나온 인류세에 관한 책을 세어보니 스무 권이 넘는다. 이 모든 책을 전부 다 읽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책은 인류세의 모험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이다


과학 전문기자 가이아 빈스(Gaia Vince)는 세계 곳곳을 답사한 뒤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라 달라진 지구의 모습을 보고한 인류세의 모험을 썼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에 민감한 대기, , , 바다, 사막 등의 현재 모습과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안일한 현실을 경고하면서도 현재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저자는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려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이들은 인공 빙하를 만들어 농업용수를 마련하고,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나무를 심는 등 새로운 지질시대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은 오랫동안 지구를 장악해온 인간의 역사를 보여준 책이다. 그동안 인간은 진보라는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문명 속에서 살아왔다. 이 화려한 조명은 인간을 감쌌다. 자아도취에 빠진 인간은 자신을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인간은 슬기롭게(여기에 약간의 운도 따랐다) 큰 위기들을 극복했다. 인간은 여러 차례 유행한 전염병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두 번의 거대한 살육전을 일으켰다. 그래도 인류는 깡으로 버티면서 살아남았다. 기고만장한 인간은 지구에 있는 모든 자연을 이용했다. 인간에 의해 지구의 자연이 소모되기 시작하자 지구는 기후 변화로 반격에 나섰다이 책의 공동 저자도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주범으로 인간을 지목한다.


이 두 권의 책은 독자들에게 이 시대의 주요 화두인 지구 온난화 문제와 인류세에 관한 관심을 촉발한다. 그런데 이 책들은 운이 없게도 오탈자를 잘 골라내기로 악명 높은 나를 만나고 말았다. 사실 옥에 티를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 인류세의 모험》 ?

 

 정상을 정복하는 것에는 어떤 숭고한 느낌이 있다. 해발 3,500m인 그 산은 내게는 에베레스트나 다름없고, 나는 내 보잘것없는 등반에 에드문드 힐러리(에베레스트 등정에 처음 성공한 뉴질랜드 등반가_옮긴이)[]만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가 단독으로 에베레스트(티베트어 명칭은 초모랑마) 정상을 오르지 않았다. 힐러리와 동행한 네팔의 셰르파(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티베트계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인물이다.

 

 

 

 

 

*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214

 

 가장 초기의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 중 하나는 1898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경[]이 설립한 석탄매연경감협회였다.

 

[] 원문


 One of the earliest environmental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was the Coal Smoke Abatement Society founded by artist Sir William Blake in Richmond in 1898.

 


단테(Dante)신곡삽화를 그린 영국의 시인 겸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동명이인이다. 역자는 석탄매연경감협회(Coal Smoke Abatement Society) 설립자의 이름을 윌리엄 블레이크 경이라고 썼다. 시인과 구분하기 위해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먼드 경이라고 써야 한다. 리치먼드 경의 아버지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친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리치먼드 경은 아버지의 친구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원서에 석탄매연경감협회 설립자의 이름이 ‘Sir William Blake in Richmond’로 표기되어 있다(그런데 ‘Blake’‘Richmond’ 사이에 전치사 ‘in’이 왜 들어가 있을까? 이것도 오자인가? 리치먼드 경은 영국의 도시 리치먼드와 무관하다). 윌리엄 블레이크 리치먼드 역시 화가로 활동했다.

 


 

 

*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356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 데이비드 리카도 []

 


[] 영국의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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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1-05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편집자 하면 정말 잘 하실 것 같아요.

2021-01-05 1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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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05 20:21   좋아요 0 | URL
편집자의 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제가 좀 꼼꼼한 편이에요. ^^;;

2021-01-06 0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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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날씨가 쌀쌀하다. 기상예보가 정확하다면 이번 주 후반에 한파가 오고, 눈이 내린다. 차가운 바람이 계속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질 기세다. 이상 한파의 원인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와 환경주의자 들은 지구 온난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제프리 베넷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구 온난화의 모든 것》 (사람의무늬, 2020)

 

* 앤드루 슈툴먼 사이언스 블라인드: 우리는 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바다출판사, 2020)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300년 전통경제학의 프레임을 뒤엎은 행동경제학의 바이블,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김영사, 2018)




기후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기상청이 내일 날씨도 정확하게 못 맞히는 판국인데 과학자들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지구 온난화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과연 이들의 입장이 타당한지 살펴보자.

 

그들의 입장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또는 지구 온난화 부정론자)의 견해와 같다. 날씨는 매일 변하는 기상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씨가 따뜻하다’, ‘날씨가 춥다’, ‘날씨가 흐리다식으로 표현한다. 기후는 장기간에 발생한 날씨의 평균값이다. 사막에 가끔 비가 내릴 때도 있다. 그래도 사막의 기후는 건조하다. 기상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사막의 평균 날씨를 확인했다. 그들은 날씨와 관련된 데이터를 모아서 만든 기후 모델(climate model)을 이용해 사막의 기후를 예측한다. 다음 날에 사막에서 비가 내릴 확률은 사막의 건조한 날씨가 다음 날에도 이어질 확률보다 적다. 기상청의 틀린 예보를 믿지 않는 사람도 데이터에 기반을 둔 진실에 수긍한다(그렇다고 데이터를 너무 믿어도 안 된다. 데이터가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지 회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는 사막은 건조 지역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가 매일 눈으로 확인하며 몸으로 느끼는 날씨와 차원이 다른 거시적 현상이다. 날씨와 기후,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사용하면 자칫 두 단어의 의미가 같다고 오해할 수 있다. 기상학자들은 현재 기후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탁월한 기후 모델을 이용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구 온난화가 미래의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기 위해 내세운 이유는 다양하다. 온실가스가 아닌 태양의 빛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설, 지구 온난화를 위기가 아닌 인간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기회로 보는 낙관론,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등의 견해가 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구 온난화의 모든 것에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견해들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견해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과학적 근거를 활용하여 반박한다.


직관은 과학 비전공자뿐만 아니라 과학자들까지 바보로 만든다.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은 복잡한 특정 현상을 자세하게 보지 않는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해도,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복잡하게 생각하는 상황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이 충동적이며 직관적인 사고방식을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신중하게 추론하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을 오로지 직관에 의존해서 판단한다. 사이언스 블라인드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열두 가지 직관적 이론들을 소개한 책이다직관적 이론이 아주 그럴싸한 진리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직관적 이론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직관의 힘을 여전히 믿는 사람에게 사이언스 블라인드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추천하고 싶다. 과학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전에 반드시 직관적 이론을 마주치게 된다. 직관적 이론을 건너뛴 채 과학적 현상이라든가 과학 이론을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 지구 온난화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다. 그런데 기후변화 부정론자는 지구 온난화의 과학을 잘 모르거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 자체를 부정한다. 최악의 기후변화 부정론자는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면서 화석 연료 기업의 편에 선다. 

















* 한국 스켑틱 10: 지구 온난화의 과학(바다출판사, 2017)

 

* 닐 디그래스 타이슨 스타 토크: 천체 물리학자 닐 타이슨의 과학 토크 쇼(사이언스북스, 2019)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구 온난화의 모든 것의 저자는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사람을 가리켜 회의론자라고 부른다. 저자가 그 명칭을 쓴 것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견해를 의심하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나는 회의론자대신에 기후변화 부정론자라는 표현을 썼다2017년에 발간된 한국 스켑틱(Skeptic)10호의 표제는 지구 온난화의 과학이었다. 회의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과학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한 이 잡지에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한 글이 실려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유명한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은 회의주의자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기관 스켑틱 협회의 소속 회원이다. 스타 토크는 그가 진행하는 과학 토크 쇼 이름이자 이 방송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한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의 3장에 타이슨이 지구 온난화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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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1-04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기후협약 탈퇴한 도널드 행정부 정말 이해 못하겠더라.
바이든은 다시 들어간다고 할지 모르겠어. 하겠지?
작년엔 난동이라고 해서 정말 안 추웠는데
이번 주 북극 한파가 예상된다고 하니 좀 겁난다.
내가 추위는 좀 아니거든.
그곳 대구도 춥나?
어쨌든 이번 한파 지나고나면 그냥 소소하게 춥다 봄이 왔으면 좋겠다.ㅠ

cyrus 2021-01-05 11:48   좋아요 0 | URL
바이든이 파리 기후 협약에 재가입할 거라고 밝혔어요. 대구도 춥긴 한데, 아무래도 위쪽 지역이 제일 춥겠죠? ^^;;

바람돌이 2021-01-05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예전에 읽은 책 중에서 기후변동 주기 운운하면서 지금의 기후위기론이 근거없는 얘기라고 온갖 근거를 대며 주장하는 책을 봤었는데 그들이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맞겠네요. 실제로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화석연료사용 문제없다로 귀결되었었는데....
이런 환경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환경오염 유발 국가들이 잘 사는 나라들인데 그 피해는 가난한 나라들에 더 빨리 더 적나라하게 돌아간다는거겠죠? 오늘도 팟빵 방송 하나 들으면서 안건데 방글라데시같은 나라도 해발고도가 너무 낮아서 온나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하더라구요. 점점 파도가 들이치는 지점이 육지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눈앞에서 열심히 농사지은 땅이 파도에 쓸려가는걸 속수무책으로 봐야하는 상황들이 점점 늘고 있다죠. 미국만이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도 기후변동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국제적으로 책임의 일부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cyrus 2021-01-05 11:53   좋아요 0 | URL
이제는 ‘지구 온난화는 없다’라는 주장은 과학자들에게 씨알도 안 먹혀요. 그래서 요즘에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변형해서(?) 이렇게 말한답니다. “지구 온난화가 있다는 거 인정해, 그런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지구 온난화의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여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환경 친화적인 삶에 관심이 없어요. 무지에 의한 책임 회피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