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나치의 토끼
애덤 하트데이비스 지음, 임송이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평점

 

2점    ★★    C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이과 계열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용어이지만, 그들은 수학 혁명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수학 혁명은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가 아니며 학계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용어도 아니다. 피보나치의 토끼(Fibonacci’s Rabbits)의 부제는 수학 혁명을 일으킨 50가지 발견이다. 이 책은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획기적인 수학자들의 업적을 알려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수학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만난 공식과 기호들이 나온다. 이 녀석들이(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식과 기호를 가리켜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수학을 싫어하지 않는다) 독자의 눈앞에 들이대면서 문제를 어서 풀라고 요구하지 않으니 걱정 마시라. 수학 문제가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으므로 수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라도 이 책을 문제없이 읽을 수 있다. 책의 저자는 시대별로 (수포자를 괴롭힌) 수학 공식과 기호들이 탄생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그는 과거의 수학적 발견이 없었다면, 그 다음에 나온 수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어째서 책 제목을 피보나치의 토끼라고 정했을까? 피타고라스(Pythagoras), 유클리드(Euclid), 뉴턴(Newton), 오일러(Euler), 가우스(Gauss)와 같은 쟁쟁한 수학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책 제목의 일부가 된 피보나치는 누구일까? 피보나치는 1202년에 산술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책의 인지도는 수학책 하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기하학 원론수학의 정석보다 매우 낮다. 하지만 산술에 관한 책덕분에 우리는 매우 쉽고 간편한 숫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피보나치는 이 책을 통해 인도에서 전해져 온 아랍의 숫자 체계를 유럽에 소개했다. 그가 아랍의 숫자 체계를 배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헷갈리기 쉬운 로마식 숫자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술에 관한 책에서 가장 유명한 내용이 피보나치의 토끼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문제. ‘피보나치의 토끼문제는 다음과 같다. 한 농장에서 갓 태어난 한 쌍의 새끼 토끼가 사육되기 시작했다고 하자. 한 쌍의 토끼는 생후 1개월 뒤 번식하며 한 달 후에 다시 한 쌍의 토끼가 태어난다. 그렇다면 태어난 토끼가 죽지 않고 계속 산다면 일 년 동안 태어난 토끼는 몇 쌍이 될까. 피보나치는 한 쌍의 토끼가 계속 새끼를 낳을 경우 몇 마리로 불어나는지 알아보다가 수열을 발견했다. 수열은 피보나치 이후에 등장한 수학자들을 흥분시킨 수학적 패턴이었다. 수열을 연구하는 데 푹 빠진 수학자들은 자연과 우주가 수열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피보나치의 토끼수학사를 50개의 파일(file)로 압축한 책이다. 소제목을 먼저 확인한 뒤에 관심 있는 파일 몇 개 골라서 읽어도 된다. 과거의 수학적 발견을 먼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수학 개념과 공식이 있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과거의 수학적 발견에 대한 내용이 몇 쪽에 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책에 이런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이 너무 많다. 글자 크기가 작은 게 흠이다. 글자 크기가 작으면 오자나 오류를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글자가 작아도 다 보인다.

 

다음에 나올 내용은 저자 또는 역자가 고쳐야 할 문장과 신중하게 읽을 필요가 있는 문장들이다. 내용이 많아서 관심 없는 독자는 안 봐도 된다. 그 대신 이 책은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고, 문과 계열에 속한 독자들에게 추천할 수 없다는 점만 알아두시라.

 

    

 

 

* 12

  드물게 뼈 화석에서 초기 형태의 수학적 증거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뼈에는 초기 인류가 남긴 V 모양 새겨져 있다.

 

 

‘이’ 하나가 빠졌다.

     

    

 

* 29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Zenon)은 유명한 몇 가지 역설에서 무한이라는 개념을 다루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역설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다.

 

 

제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총 다섯 명이다. 역설을 고안한 제논은 현재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지역인 엘레아(Elea) 출신이라서 엘레아의 제논(Zeno of Elea)이라고 부른다. 꼼꼼한 저자나 역자는 어느 출신의 제논이라고 쓴다.

    

 

 

 

 

본 책 31쪽에 코크 눈송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나 역주가 없다. ‘코크 눈송이라고 해서 하얀 코카인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광고에서 북극곰이 즐겨 마시는 코카콜라도 코크 눈송이와 관련이 없다. ‘코크 눈송이의 코크는 코카인의 속어(coke)와 코카콜라의 별칭(Coke)이 아닌 사람 이름이다. 코크의 정체는 스웨덴의 수학자 헬게 폰 코흐(Helge von Koch)이다. 많이 알려진 명칭은 코흐 눈송이또는 코흐 곡선이다. 코흐 눈송이는 고전적인 프랙털(fractal, 자기유사성) 모형이다. 프랙털에 대한 설명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정재승, 동아시아, 2020, 개정증보 2)를 참조.

 

    

 

* 41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엄청난 일화 중 하나는, 자신이 개발한 독창적인 도르래 장치를 이용해서 한 손으로 작은 손잡이를 밀어 4000톤이나 나가는 배 시라쿠사(Syrakusa)를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시라쿠사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도시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태어난 곳이다. 아르키메데스가 활동했던 당시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였다. 커다란 배를 움직였다는 도르래에 관한 일화는 오랜 세월동안 전승하는 과정 중에 윤색될 가능성이 있다. 아르키메데스 도르래의 실제 모습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아르키메데스 도르래의 용도는 추측에 가깝다. 도르래는 시라쿠사를 노린 로마 군함들을 침몰시키는 데 사용한 무기(거대한 갈고리)의 부속품이었을 수도 있다(참조: 유식의 즐거움 8: 유쾌한 과학사, 아셔 셧클리프, 휘닉스드림, 2006).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생긴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시라쿠사라는 이름의 배가 실제로 존재했을까? 원서를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시라쿠사는 배 이름이 아니라 시라쿠사 군인들이 전시에 사용한 배 아니면 무역선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 59

  피보나치 수열은 예술과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보나치 수열에 등장하는 숫자가 황금 비율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아무 숫자나 뽑아서 그 앞 숫자로 나누면, ‘황금 비율1.168과 비슷하다. [중략]

  황금 비율은 심미적인 만족감을 준다고 여겨졌고,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까지 널리 사용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부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이용했다.

 

 

황금비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고대인의 비술또는 심미적인 만족감을 주는 비율로 알려졌으나, 이러한 통설을 반박한 견해들이 있다. 앵무조개 껍데기는 황금비가 적용된 자연물로 유명한데,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EBS 다큐프라임> ‘황금 비율의 비밀편 참조)

    

 

 

* 63

  존 네이피어(John Napier)1550년 스코틀랜드의 머치스톤 성에서 태어났다. 현재 그곳은 에딘버그 네이피어 대학교 머치스톤 캠퍼스의 일부다.

 

 

에딘버그의 정확한 표기는 에든버러(Edinburgh).

 

    

 

* 80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호이헨스     

    

 

과거에 사용된 표기명은 호이겐스호이헨스. 현재 외래어표기법에 맞춰 하위헌스(Huygens)라고 써야 한다.

    

 

 

* 89

  베르누이의 원리, 혹은 베르누이의 방정식은 1730년경 스위스의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가 발견했으며, 현재까지 유체의 흐름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통찰력을 보인 방정식 중 하나다. [중략]

  처음 이 원리를 발견했을 때 베르누이는 갓 30세가 되었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 예카테리나 1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니엘 베르누이는 1700년에 태어났다. 그가 서른 살이 된 해는 1730년인데, 이 시기에 예카테리나 1(Ekaterina I)는 살아 있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1세는 1727년에 사망했다. 물론 예카테리나 1세의 짧은 재위 기간(1725~1727)에 베르누이는 그녀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르누이는 1725년부터 차르(tsar)의 지원을 받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 수학 교수로 일했다. 이 과학 아카데미는 예카테리나 1세의 남편이자 전임 차르였던 표트르 대제(Peter I)가 세웠다. 1730년에 왕위에 오른 차르는 두 명이다. 예카테리나 1세의 뒤를 이은 표트르 2(Peter II, 1727~1730. 1)안나 이바노브나(Anna Ivanovna, 1730. 1~1740).

 

    

 

* 91

1737 유체역학(Hydrodynamics)

 

 

다니엘 베르누이가 쓴 책인데, 정확한 출판 연도는 1738이다.

 

 

 

* 94

  1772년 라그랑주는 L4L5라는 점을 더 발견했고, 이 점은 태양과 지구를 잇는 축과 각도를 이루어 삼각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 점은 아주 안정적이어서 그리스 소행성과 트로이안 소행성을 포함한 우주의 먼지나 소행성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리스 소행성’, ‘트로이 소행성이라는 명칭이 무엇인지 설명한 내용이 없다(과학 비전공 독자들을 위해 세심하게 알려주지 않는 저자와 역자의 무성의한 번역은 이 책의 장점을 깎아내리고 있다). 세부 설명이 없으면 독자들은 그리스트로이를 소행성의 이름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리스트로이소행성군()의 이름이다. 서로 비슷한 궤도를 도는 소행성들이 모여 있는 것을 소행성군(asteroid group)이라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그리스와 트로이(Troy). 라그랑주 점(태양과 지구 또는 지구와 달 같은 두 천체의 중력이 더 작은 천체에 작용하는 원심력과 정확히 균형을 이루는 한 지점, 총 다섯 개의 라그랑주 점이 발견되었다. 본 책 93쪽 참조) L4L5에 있는 소행성군을 목성 트로이(소행성)이라 한다. L4에 있는 소행성들은 목성 트로이군 그리스 측(camp)’, L5에 있는 소행성들은 목성 트로이군 트로이 측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측에 있는 소행성들의 이름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군인들의 이름이다. 당연히 트로이 측의 소행성들은 트로이 군인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예외가 있는데, 트로이 총사령관의 이름을 딴 소행성 ‘624 헥토르L4 그리스 측 소행성군에 있다. 이에 맞춰 L5 트로이 측 소행성군에 소행성 ‘617 파트로클로스가 있다. 파트로클로스(Patroklos)아킬레우스(Achilleus)의 절친한 친구이며, 헥토르(Hektor)의 창에 찔려 전사한다.

 

 

  

 

* 104쪽 일러스트

 

 

 

 

 

프랑스의 수학자 마리 소피 제르맹(Marie-Sophie Germain)에 대한 내용 옆에 있는 일러스트다. 이 일러스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중심의 학문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제르맹의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러스트에 나온 남자 두 명은 수학자가 아니다. 일러스트 왼쪽 두 번째 인물은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도 미국 대통령인데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이다. 나머지 세 명은 누군지 모르겠다. 다섯 명의 남자들 사이에 살짝 보이는 여성(붉은색 화살표로 가리켜져 있다)은 제르맹이 아니라 러시아의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Sofia Vasilyevna Kovalevskaya).

 

인터넷 검색창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소피야 코발렙스카야를 입력하면 이 세 사람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나온다. 많은 사진들 중에 이 책의 일러스트로 사용된 것이 있다.

 

    

 

* 118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마우리츠라고 써야 한다. ‘모리츠로 표기되는 이름 또는 성의 철자는 ‘Moritz’.

 

    

 

 

* 130

아일랜드 수학자 조지 불(George Boole)

 

 

조지 불은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 주 링컨에서 태어났다. 그의 국적은 영국이지만, 수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아일랜드에 있는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의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 135쪽 일러스트

 

 

    

 

독일의 수학자 에미 뇌터(Emmy Noether) 뒤에 있는 남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앞에 내가 언급한 104쪽 일러스트를 다시 살펴보시라. 좌우로 반전이 된 사진을 사용했다. 왜 자꾸 수학자가 아닌 사람을 일러스트로 사용하는 것일까?

 

    

 

* 162, 163

MC 에셔

 

 

‘MC’는 래퍼 앞에 붙는 명사(: MC 스나이퍼, MC 메타). 네덜란드의 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이름 약칭은 ‘M. C. 에셔로 쓴다. 점 두 개를 찍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쓴 두 권의 책, 파블로프의 개슈뢰딩거의 고양이친구라고 소개했다(책 앞날개 참조). 두 권의 책도 피보나치의 토끼와 같은 출판사가 펴냈다. 이 두 친구들의 상태가 좋은지 확인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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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일 금요일 오후 8~930

 

 

 

 

11월 마지막 모임은 비대면 방식(Zoom 화상 채팅)으로 진행했습니다. 비대면 모임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총 네 명이 화상 채팅에 참석했고, 저를 포함한 두 명은 각자의 집이 아닌 카페 스몰토크에서 줌을 이용했어요. 독서 범위는 첫 번째 모임(1113)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봄1~8이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은 침묵의 봄을 이 시점에서 읽어야 할 이유를 알아보고,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발전에 이바지한 침묵의 봄의 영향력을 살펴본 프롤로그(prologue)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관해서 좀 더 논의하고 싶어서 침묵의 봄1~8장을 다시 읽기로 했어요.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11)

  

평점: 4점   ★★★★   A-

  

 

 

대부분 사람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을 환경보호주의자 또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환경보호주의자’, ‘작가라는 흔한 수식어는 카슨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침묵의 봄을 제목으로만 들어본 사람들은 카슨이 과학자(해양생물학자)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카슨은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고,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침묵의 봄이전에 나온 바다 3부작(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은 해양생물학자 카슨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씨는 카슨을 위대한 메신저(messenger)라고 했습니다. 그녀를 과학적 글쓰기의 전범(典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두 번째 모임 당시에 카슨의 능력에 어울릴만한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요,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카슨은 위대한 과학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였습니다.

 

대화를 자유롭게 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대화 주제가 나옵니다. 이때 우리는 잠시 책을 제쳐둡니다. 책 얘기도 좋지만,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이슈(issue)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면서 논의하는 시간이 제일 중요합니다. 두 번째 모임 진행 중에 나온 대화 주제는 모임 멤버들의 관심사이자 항상 고민거리를 주는 환경 문제와 비건(vegan)이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쓰고 버려진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닷페이스> “플라스틱,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재활용도 안 된대요.” 을 참조하세요). 씨는 불편한 진실을 알았을 때 환경을 위해 실천했던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친환경적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수많은 개인이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 작은 실천을 지속한다면, 친환경적 사회로 전환이 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운동은 꼭 거창하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다는 목적으로 타인에게 좋은 사회가 되려면 우리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것(타인이 사회운동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제일 먼저 를 바꾸는(내가 먼저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것) 게 제일 중요하죠. 예를 들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동물권(animal rights) 보장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실천 방식이 있겠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고기 소비를 줄이고, 덜 섭취하는 식습관을 유지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소비 습관과 식습관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다급하지 않게 조금씩 실천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적인 실천이 꾸준히 유지되려면, 본인 스스로 안고 있는 마음의 짐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 여성환경연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프로젝트P, 2019)

 

평점: 3점   ★★★   B

 

 

 

 

호 씨는 지나친 죄책감과 양심이 사회운동에 제약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짐속에 죄책감과 양심이 들어 있어요.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데, 오늘 또 먹고 말았네.”,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하긴 했는데, 찝찝하네.” 살다 보면 죄책감과 양심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깨끗하게 걸러내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의 짐속을 채웁니다. 커져 버린 마음의 짐에서 생긴 무게감이 느껴지면 실천하려는 의지가 점점 사라지게 되고,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속도는 더디게 됩니다. 예전에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독서 모임을 진행했을 때도 나온 말인데, 개인에게 의미 있는 사회운동을 할 땐 할 수 있을 만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못하고 부족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고 서로에게 당부했습니다.

 

침묵의 봄두 번째 모임은 침묵의 봄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봤습니다. 비록 비대면 모임이었지만, 추운 날씨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열띤 대화의 장이었습니다. 이 열기가 내년에도 쭉 이어지길 바랍니다. 12월 모임 일정은 인스타그램에 공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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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0-12-0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멋진 독서모임이라니~시루스 박사님 넘 올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거죠~~

cyrus 2020-12-01 18:34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님은 지금도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계세요? 대구는 다른 지역보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는 건 이른 것 같아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먹고 마시는 독서 모임을 했는데, 올해는 못 해서 아쉬워요.

레삭매냐 2020-12-0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 백

cyrus 2020-12-01 18:35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꾸준한 독서와 리뷰 쓰기는 여전하십니다. ^^

stella.K 2020-12-0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일세.
비대면 화상 채팅 그거 생각 보다 쉽지 않던데...

cyrus 2020-12-01 18:36   좋아요 0 | URL
처음에 해보면 어려워요. 저는 지금도 줌 화상 채팅 여는 방법도 몰라요. 다른 사람이 가르쳐줘야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ㅎㅎㅎㅎ

수이 2020-12-0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cyrus 2020-12-02 09: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만 읽으면서 지냈는데 벌써 다섯 달이 훌쩍 지났어요... ㅎㅎㅎ

서니데이 2020-12-0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나요.^^

cyrus 2020-12-02 09:09   좋아요 1 | URL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 자유롭고 유쾌한 삶을 위한 17가지 과학적 태도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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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한때 과학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열광하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룡이다. 어린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공룡에 푹 빠진 어린 시절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과학 공부를 재미있게 하던 시기였다. 발음하기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워서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은 소박한 배움의 동기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어른이 되면 공룡에 대한 호기심만 사라지는 건 아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즐거움도 사라져버린다. 공룡 박사가 되는 꿈을 가졌던 아이는 학교에서 치른 과학 시험의 초라한 성적표에 실망하고, 그때부터 과학 공부를 포기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연현상과 사물을 관찰하는 경험과 과학실험을 하지 못한 채 시험 문제의 정답이 돼버린 과학 이론들을 달달 외운다. 좋은 습관을 갖는 것보다 나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다. 공부하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한 번 몸에 잘못 밴 습관으로 인해 공부에 대한 흥미와 성취도가 떨어진다. 과학을 기피하게 만드는 잘못된 공부 습관은 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만든다. 암기 위주로 과학 공부를 해왔거나 주입식 과학 수업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는 학문이라는 편견을 가진다. 이들은 호기심이 많았고, 과학을 좋아했던 시절을 생각하지 못한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은 그저 과학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 보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과학자를 끄집어내는 안내서라는 소개 문구가 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과학자는 과학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적 태도는 총 17가지다. 실패, 비판적 사고, 질문, 관찰, 모험심, 현실적인 목표, 측정, 개방성, 수정, 겸손, 공감, 검증, 책임, 공생, 다양성, 행동, 협력. 과학적 태도는 과학을 공부해서 습득되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과학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과학자는 실패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다. 너무 쉽게 결과가 나오는 연구 분야를 선호하는 과학자는 그 분야와 관련된 지식에 의심하거나 질문할 기회가 줄어든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연구 분야에 평생 연구해온 사람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의문을 품는다. 조금이라도 지식에 어긋난 실험 결과가 나오면 가설이 자신만의 답이 될 때까지 철저히 검증한다. ‘자신만의 답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새로운 지식이 된다. 과학자들의 꾸준한 호기심과 의심은 새로운 과학 지식을 탄생하는 씨앗이다. 그것이 새로운 지식의 나무가 되어 무럭무럭 자라면 과거에 녹음이 우거지던 지식의 나무는 시든다. 저자는 과학을 정답 없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은 시험 문제의 정답이 된 과학을 공부한다. 사실 그러한 교육 방식은 제대로 된 공부의 정의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짜 공부는 일시적인 답이 된 지식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아주 기본적인 과학적 태도인 호기심, 질문, 비판적 사고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저자는 과학 지식을 습득하는 일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해주는 과학적 태도라고 강조한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을 읽으면 과학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풀 수 있다. 과학을 모르고 살면 행복하지 않다. 과학을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힘들게 한다. 과학적 사실에 맞지 않는 허위 정보를 믿고 산 사람이 행복한 적이 있던가. 그 사람의 잘못된 믿음은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적 태도를 가지면서 자랐다. 과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과학과 친숙해질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교육 환경이 달라지고, 과학을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진다. 모든 과학 교사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교사들은 우리에게 과학적 태도가 과학 지식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교사에게 과학을 배우는 아이들의 호기심은 죽는다. 과학적 태도를 죽이지 않으려면 토머스(Thomas)처럼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호기심 많은 토머스를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로 단정한다.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이 넘치고 질문이 많은 토머스는 별난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토머스처럼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행복했던 그 시절의 모습을 잊어버렸다. 우리나라의 토머스들이 과학적 태도를 중시하는 교육을 받았으면 그들 중에 누군가는 에디슨(Edison)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Trivia

 

* 7악장은 수족관입니다. 생상은 수족관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물고기는 소리도 내지 못하는데요. 하모니카가 등장해서 환상적인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산호초 속을 쏜살같이 달리는 물고기가 그려지지요. 다시 8악장부터는 노새, 뻐꾸기, 큰 새를 연주합니다. (공감, 155~156)

    

 

생상(Saint-Saëns)의 관현악곡 동물의 사육제에 대해서 소개한 내용 일부이다. 동물의 사육제는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표현한 총 14곡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7악장(7번째 곡)의 제목은 수족관이다. 이 곡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악기는 (입으로 부는) 하모니카가 아니라 글라스 하모니카(glass harmonica).

 

 

 

 

 

글라스 하모니카는 물이 들어 있는 통에 크기가 다른 둥근 유리컵들이 가로로 놓인 형태로 되어 있다. 페달을 밟으면 통이 회전하는데, 젖은 손으로 유리컵을 문질러 소리를 낸다. 이 악기를 발명한 사람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다. 하모니카는 관악기, 글라스 하모니카는 체명악기에 속한다.동물의 사육제8악장 제목을 귀가 긴 인물또는 귀가 긴 노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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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7-0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 썼던 글인지 기억이 가물한데 콘트라베이스 악기 이름, 대중들이 잘못알고 있다고 지적한 글 최근 읽었어요. 글라스 하모니카도 전혀 다른 생김새네요. 덕분에 처음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7-1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없는 문제가 우리의 사고력을 발달시키죠. 계속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예를 들면 답이 정해져 있는 단답형 문제는 바로 답만 말하면 되니까 기껏해야
암기력 발달 정도죠.
어느 대학원에서는 오픈북 시험을 친다고 합니다. 책을 보고 답을 쓰라는 시험인데 그만큼 암기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라는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20-08-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과 수학을 그렇게 차례로 포기한 경험이 있다 보니 말씀하신 잘못된 배움의 습관이 마음에 닿는 것 같습니다.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과학교육, 이치를 가르쳐서 하나씩 깨우침의 즐거움을 주는 수학교육은 암기와 성적위주의 교육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찍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한국이 대학-석-박사과정으로 가면서 성과가 떨어지는 건 결국 기초가 탄탄하지 못하고 깊은 배움이 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학은 나이가 들면서 교양으로 갖추려고 책을 읽고 노력하지만 수학은 여전히 대학교 1학년 이후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0-08-20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aralove99 2020-09-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블로그는 안하시나용?!?!

2020-11-24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9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른 독자들은 안경환 교수의 , 셰익스피어를 입다에 높은 평점을 줬다. 그 독자들은 안 교수의 책에 만족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별점 네 개, 다섯 개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예전에 안 교수가 쓴 책을 보면서 느꼈지만, 안 교수의 책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한결같다. 사실에 맞지 않는 사소한 오류, 오자,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생각들. 지금부터 언급할 인용문 역시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

    

 

 

    

 

 

 

 

 

 

 

 

 

 

 

 

 

*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6월 도서] 안경환 , 셰익스피어를 입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미인은 얻기 힘들다. 갖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줄 몸은 다 하나뿐, 지극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서양격언도 있다. 일단 얻는다고 해도 지키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뭇사람의 시샘과 견제를 각오해야만 한다. 조그마한 틈새만 있으면 누군가가 파고든다. 미인은 속성상 현처가 되기 쉽지 않다.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고 살기에 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시쳇말로 미인과 별장은 웬만한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기에 일반 관리비가 너무 비싸다. 그저 범인(凡人)은 먼발치에서 바라다보고 입맛이나 다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248~249, 필자가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표시했음)

 

 

미인은 현처가 되기 어렵다는 안 교수의 개인적인 생각과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으로 비유한 말에 동의하는 독자가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표시한 문장에 드러난 안 교수의 여성관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독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독자는 어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 문장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현처가 되지 못한 미인을 만났거나 미인을 아내로 둔 남자들의 증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사례만 가지고 미인은 현처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저자는 미인을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존재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은 부정적인 면모를 지닌 미인은 현처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가부장인 남편은 아내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남편을 순종하는 아내, 즉 현처가 되려면 미모를 의식해선 안 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피해야 한다. 결혼 제도와 가부장제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삶과 욕망을 제거하고, 가부장제에 편입된 그녀에게 아내’, ‘엄마’, ‘며느리역할을 부여한다. 따라서 현처가 되지 못하는 미인이 있다고 보는 안 교수의 생각은 가부장제 문화에 익숙한 남성의 구시대적인 여성관과 유사하다.

 

안 교수는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 관리하는 일로 비유한 시쳇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언급한다. 미인을 만나고 사귀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 비용이 마치 별장 관리비와 같다는 것이다. 이 시쳇말에는 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시쳇말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특히 여성을 고깝게 보는 남성)은 미인을 경제권이 있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볼 것이고, 또 재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미인은 돈을 헤프게 쓴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도 미녀는 돈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생긴다. 개인적인 불만이 점점 쌓일수록 여성을 냉소적으로 보게 되는데, 모든 여성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불만은 여성을 교제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혐오한다.

    

 

 

 

 

 

 

 

 

 

 

 

 

 

 

 

* [절판] 안경환 남자란 무엇인가(홍익출판사, 2016)

    

 

 

여성에 대한 안 교수의 편견은 한때 논란이 되었던 남자란 무엇인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문장은 남자의 독점욕이라는 소제목이 붙여진 글에 있다.

 

 

 남자는 물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여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지만, 몇 가지에 한정된다. 보석류, 명품 가방, 옷과 구두 등등 대체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28, 단행본의 쪽수가 아닌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전자책의 쪽수이다. 문제가 많은 책이 밀리의 서재에 있다는 게 놀랍다)

 

 

안 교수가 생각하는 남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 남성 독자가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는 건 자유다. 하지만 편견이 반영된 저자의 글에 동의하는 남성 독자들이 없길 바란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 교수의 생각과 그의 글 쓰는 방식을 잘근잘근 씹기 위해서 이 글을 썼지만, 사실 이 글을 쓴 중요한 목적은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나도 안 교수처럼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서 살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글이나 말로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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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7-08 16:09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실수하거나 착각해서 잘못 언급한 내용이 있으면 몰래 수정해서 지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내가 글 쓰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개하는 일종의 반성문(?)을 써요. 내가 잘못한 점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면 이런 부끄러운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게 돼요. 반성문을 쓰면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성찰은 오래 기억에 남아요.

테레사 2020-07-0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편견은 참 고질병인가 싶네요..자기 멋에 도취된 ...엘리트의 글쓰기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cyrus 2020-07-08 16: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독서모임 참석자분들도 그렇게 느꼈어요. ^^

transient-guest 2020-08-17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그렇게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자강 2020-08-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고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 제목인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보단 이것 저것 잡다한 내용들이 모여있어서 저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지경이더군요.
 

 

 

 

 

 

 

 

 

202073일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쓴 글이다.

 

 

 

매주 한 번씩 동네 책방에 간다. 책방이 된 건물은 원래 노부부가 운영했던 사진관이었다. 작년에 남편이 사진 찍는 일을 그만두면서 사진관은 책방으로 변신했다. 책방 건물 바로 뒤편에 노부부가 사는 집이 있다. 책방 건물과 노부부의 집은 세워진 지 상당히 오래됐다. 그래서 집 밖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노부부와 책방에 있는 사람들(책방지기, 책방에 오는 손님들)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책방에 뒷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면 노부부가 사는 허름한 집과 화장실이 나온다. 가끔 화장실을 사용한 책방 손님들이 화장실 전등을 끄는 것을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갑자기 책방 뒷문을 확 열고 들어오면서, 화장실 전등을 끄고 가라면서 잔소리한다.

 

재래식 화장실 안은 상당히 비좁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몸집이 조금이라도 크면 용변을 보기 어려운 곤란한 상황이 펼쳐진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머리를 살짝 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틀 위쪽에 머리를 부딪쳐 다칠 수 있다. 책방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책방에 자주 방문하면서 화장실 사용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 요일이 되면 책방에서 독서 모임과 그림 그리기 모임 등이 진행된다. 그 와중에 나는 눈치 없이 책방에 와서 나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긴다. 내가 항상 앉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는 1인 또는 2인 손님이 앉을 수 있으며 화장실로 향하는 책방 뒷문 근처에 있다. 나는 자리에 한 번 앉으면 독서나 글 쓰는 일에 몰입한다. 내 일에 몰입하게 되면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을 보지 못한다. 한 번은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화장실 문을 열 뻔한 적이 있었다. 그 화장실 안에는 책방 모임에 참석한 여성이 있었고, 그분은 다급한 목소리로 안에 사람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당황해서 그분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책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화장실에 있었던 여성은 나보다 더 많이 놀랐을 것이다.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화장실 어딘가에 불법 촬영 장비가 설치되어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성별이 분리되지 않은 책방의 재래식 화장실은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문제의 화장실이 노부부 소유의 건물 안에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내가 경험했던 아찔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재래식 화장실은 여성이 안심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재래식 화장실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책방 뒷문에 누군가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표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화장실을 이용할 때 반드시 뒷문을 잠그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여성들이 안심하면서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뭐든 시도를 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본 뒤에 책방지기에게 화장실 이용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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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7-0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요즘에도 그런 화장실이 있구나
난 그런 화장실 다녀오면 꿈에 꼭 나타난다.ㅠ
재래식은 아니지만 예전에 강남역에 한 유명 제과점에서
서너 번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2층에 화장실이 딱 하나야.
것도 남녀공용. 그거 알고 다신 그곳 안 가잖아.
여성용이 하나라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남녀 통틀어 하나라니.

근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점엘 가는구나.
난 중고샵 안 간지 오래다. 교회를 못 가고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은 갔는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면서 일부러 안 가고 있어. 가면 책 사고 싶을까 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쌓아 놓기나 할 테니.ㅠ

cyrus 2020-07-04 14:29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동네에는 아직도 오래된 가옥이 있어요. 그런 집에 가면 재래식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어요. 책방에 가면 음료 한 잔 시키고 세 시간 정도 책 읽거나 글을 써요.

2020-07-07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7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0-07-0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재래식 화장실 문은 안 잠기나봐요. 화장실 문이 안 잠기면 정말 큰일이죠.

말씀처럼 책방 뒷문에 화장실 이용중과 비어있음을 표시하는 판을 잘 보이게 달고 뒷문을 밖에서 잠그도록 해야겠네요.

제가 오랜 회원으로 있는 동네 작은 도서관은 실내에 화장실이 있어요. 여성용 칸은 2개였는데, 몇 년 전부터 1칸이 고장나서 1칸만 사용할 수 있고 남성용 소변기가 하나 있어요. 예전에는 그 화장실 문이 잘 잠겼는데, 어느날부터 고장나 잠기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남성용 소변기를 이용할 때는 혹시라도 여성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퍼를 내리게 되었죠. 문을 딱 열자마자 너무 잘 보이는 위치에 그 소변기가 있거든요.

그렇게 불편하게 소변기를 사용하던 어느날 성별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1칸만 남은 화장실을 쓴다는 걸 알았어요. 그 문 붙어있던 표시도 처음엔 여성만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순간 보니 남녀 모두 그려져 있더라구요. 그 칸은 안에서 문이 잠기니까 남녀 모두 걱정없이 쓸 수 있었던거죠. 괜히 저 혼자 문이 열리면 어쩌지 걱정하며 화장실을 썼네요.


cyrus 2020-07-04 14:43   좋아요 0 | URL
화장실 문이 나무로 만들어졌고요, 잘 닫히지가 않아요. 그래서 잠그는 것도 불가능해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건물의 통로 근처에 있는 화장실은 불편해요. 그 화장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화장실 내부가 보여요. 가끔 그런 화장실 근처를 지나가면 일부러 고개를 숙입니다.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생기는 게 쉽지 않아요. 트랜스 여성, 트랜스 남성은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아예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있는데 오히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반대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