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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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나오는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은 재미없다. 하루 18시간씩 문제를 풀었다는 수학자 폴 에어디시(Paul Erdos) 같은 비범한 인물이 아닌 이상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이 재미없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한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 수업 시간에 문제 하나를 제대로 풀지 못해서 창피를 당했거나 한 번 놓친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좌절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수학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배웠던 수학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

 

당신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싫어해도 수학을 좋아할 수 있다. 아니면 수학에 가까이하기가 힘들어도 재미없다는 수학에 대한 인식이 사라질 수 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상한 수학책을 읽고 나면 수긍이 간다. 이상한 수학책을 읽는 것과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인간적인 학문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이상한 수학책의 저자는 수학 교사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수학이 인기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수학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공식과 기호로 가득한 학문이 아니라 아름답고 논리적인 예술이다. 그런데 대부분 수학 교사는 문제를 만들려고 이 예술을 가져와 잘게 썬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조각난 수학을 원래 모습으로 맞추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수학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매다 보면 골머리를 앓는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수학 공부를 포기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시험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시험이다(여기서 말하는 수학數學이지 修學이 아니다). 문제의 정답을 정해진 시간 안에 찾는 수학 능력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이력서의 일부가 된다. 저자는 학생들과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에 관해서 토론했다. 토론에 참여한 어떤 학생은 대학과 고용주에게 우리가 똑똑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문필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학도 우울한 학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상한 수학책은 수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울해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이상한 그림으로 보는 수학(Math with Bad Drawing)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는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수학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수업 시간에 수학 선생님들이 칠판에 써가면서 가르쳐주던 공식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 특히 수학 문제를 풀기 싫어하고 수학 공식을 보면 어지러워하는 당신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수학은 우울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학문이다.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빨리 풀라고 압박하거나 수학 공식을 암기하도록 만드는 교육 방식은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인간적인 학문인 수학은 문제를 잘 푸는 똑똑한 학생을 치켜세우고, 학생들에게 경쟁을 유도하는 시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학생은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인간적인 수학은 문제를 천천히 풀어보려는 학생들에게 배려심이 깊다. 이 학생들은 수학 공식을 전혀 몰라서 문제를 천천히 푸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한 문제에서 막히면 다른 문제로 넘어가지 못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불리한 학생도 아니다. 이들은 단순한 문제도 문제 풀이의 지름길이나 다름없는 공식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은 문제를 느리게 푸는 학생들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지고 이상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믿음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수학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만든 장벽이다.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은 어떤 현상에 대한 제 생각을 확률과 통계를 동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저자는 확률론을 온갖 역설이 부비트랩처럼 깔려 있는 현대 수학의 미묘한 가지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확률론의 역설을 피하지 못하면 헛똑똑이가 된다. 통계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데 유용한 학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통계를 지나치게 믿는 것을 경계한다. 통계가 보여주는 단순화의 장점은 오히려 대중을 속이는 거짓말이 될 수 있다. 통계학은 불완전한 목격자다. 진실을 말하지만, 결코 진실을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294) 알고 보면 통계학도 인간처럼 허점이 있는 학문이다. 이런 젬병이 있는 수학이라면 한 번쯤은 배워볼 만하다. 수학이라는 학문도 가끔은 바보가 된다. 고작 수학 문제를 못 푼다는 이유로 자책하면서 바보 취급해야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수학과 절대로 친해지기 힘들어도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면 이 책의 17장만이라도 꼭 읽어보시라. 17장에 야구선수의 능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타율과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의 탄생 과정과 전설의 4할 타자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이 세상에 수학이 없었다면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도 없었을 것이다. 수학을 미워하지 말자.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수학 교사와 학생들 모두 우울하게 만드는 이상한 교육방식이다.

 

 

 

 

Trivia

 

저자는 빌 제임스(Bill James)가 타율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야구 통계에 세이버매트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한다(307). 그가 세이버매트릭스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인 건 맞다. 그러나 빌 제임스가 세이버매트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빌 제임스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이 아니다.

 

최초로 세이버매트릭스를 만든 사람은 월간 야구 전문 잡지 <베이스볼 매거진(Baseball Magazine)>의 편집장이었던 F. C. 레인(Ferdinand Cole Lane)이다. 레인은 1915<베이스볼 매거진>타율 시스템을 왜 바꾸어야 하는가(Why the System of Batting Averages Should Be Changed?)라는 제목의 기사를 써서 세이버매트릭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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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을 그린 이야기다. 톨스토이(Tolstoy)는 이 소설을 극찬했고, 작품이 너무 좋아서 네 번이나 계속 읽었다고 한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올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비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야외극장 지배인을 동정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극장 지배인의 일을 거드는 올렌카는 자연스럽게 남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남편의 생각에 공감했고, 배우들의 공연 연습을 지켜보는 감독 역할까지 하게 된다. 올렌카를 좋아하는 배우들은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올렌카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죽으면서 그녀는 혼자가 되고, 그 후로 집에서 울기만 하면서 지낸다. 석 달이 지난 후에 올렌카는 이웃에 사는 목재상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는 또다시 실의에 빠지지만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는 수의사를 만나면서 잠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올렌카는 외로운 생활을 한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올렌카는 귀여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간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수의사는 자신의 전처와 외아들까지 대동하여 올렌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서 기쁜 올렌카는 수의사와 전처와 외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산다. 올렌카는 수의사의 외아들을 친자식처럼 대한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빛과 마음은 온통 그 사람에게 향한다. 그녀가 귀여운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힘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그저 따라 하는 올렌카는 자의식이 부재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 올렌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올렌카는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이 된 남성에 의존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속적인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요모타 이누히코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

 

 

 

귀엽다는 일반적으로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대상(동물, 인형 등)에 호감을 나타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말에 타인을 차별하는 위험성이 있다. 일본의 문화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 犬彦)가와이이 제국 일본이라는 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가 돼버린 가와이이(かわいい, 귀엽다)의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가와이이는 일본의 미의식을 함축하는 단어다. 요모타 이누히코는 가와이이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가 보호받기 쉬운 순진한 존재의 미성숙한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기 위해서 쓰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성숙의 미학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일본의 가와이이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요모타 이누히코 이전에 가와이이의 위험성을 경계한 사람이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가와이이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증오를 드러낸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온 교태라고 지적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귀엽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라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 특성상 노인들은 자식과 손주의 보살핌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귀여운 할아버지,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에 휘둘리는 현실이 사회적 차별을 받기 쉬운 여성/노인을 남성/젊은이에게 보호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귀엽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며 귀여운 할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체호프의 소설과 가와이이 제국 일본우리가 무심결에 쓰는 귀여운이라는 표현이 한 사람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마저 축소하는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만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안해진다. 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체호프의 소설에 나오는 저 귀여운 여인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 귀여운 여인만 있는 게 아니다. 연상의 여성에게 사랑받기 쉬운 귀여운 남자의 매력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Trivia

    

 

 

 

 

2006년에 나온 가와이이 제국 일본(원제: かわいい)의 원서 앞표지는 어떤 그림도 없는 단색 디자인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본 표지에는 원서에도 없는 분홍색 전범기가 그려져 있다. 꼭 이렇게 그러야만 했을까? 정신 나간 디자인을 생각 없이 결정한 출판사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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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05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 나도 읽어볼래!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인생은 괴로운 거야, 파편 지옥이랄까. 귀여운 건 잠깐씩만. 귀여운 거 좋아하지만 성인을 유아로 만드니까 온전한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듯.

cyrus 2020-05-05 1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귀엽다’가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누님이 말씀한 것처럼 상대방, 특히 여성을 유아로 취급해버리는 한계가 있어요.
 
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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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 그때 그 느낌은 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독서 후 글쓰기 활동은 아주 중요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책을 보면서 얻은 지식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서평 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서평은 독후감보다 좀 더 체계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독서 활동 이후에 나온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쓰는 글이라면 서평은 책을 평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다. 서평을 쓰려면 책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책의 내용을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독후감 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자신들이 책을 평가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서평 쓰기를 주저한다. 어떤 사람은 서평의 형식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 자신의 글을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비판하면서 서평을 쓰는 일에 자격이 필요하나? 서평은 지식인이나 전문 서평가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또 책을 평가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서평이 독후감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후감도 서평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또는 책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글이 될 수 있다.

 

서평 쓰기의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서평 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분야의 책의 서평을 써온 강유원의 서평 모음집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과 쓰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속 내용을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강유원은 독서를 지식을 얻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획득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일이 바로 서평 쓰기다.

 

서평은 책을 대하는 사람들 또는 그 책을 읽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평 쓰는 일은 사적인 독서에 해당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쓴 서평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서평을 쓴 과거의 는 몇 년 후의 본인이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때 넌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이 내가 쓴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적인 독서는 공적인 독서로 확대된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예요.” “이 책은 별로예요. 책을 사기 전에 잘 생각해보세요.” 서평 쓰기와 서평 읽기는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행위다. 강유원은 책 읽기-서평 쓰기-서평 읽기-책 읽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지식도 쌓이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한다.

 

서평 작성의 8할은 책을 요약한 내용이다.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서평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책을 요약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책을 읽은 동기나 책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도 서평을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은 책 전체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고작 몇 줄의 문장만으로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평을 잘 쓰려면 책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서평 모음집이 책 읽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되면(저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좋은 서평이 나오기 힘들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읽는 방법이, 2부는 서평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3부는 강유원이 쓴 서평으로 채워져 있다. 서평을 잘 쓰고 싶은 독자들은 당연히 2부를 먼저 볼 것이다. 책을 읽는 순서는 독자들의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1부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서평 쓰기의 시작은 책 읽기다.

 

이 책의 부록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번역본에 대한 비평적 서평인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 전문이다. 장미의 이름 읽기는 이미 절판된 책이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강유원의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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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5-0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는 항상 어려워요~

cyrus 2020-05-05 11:38   좋아요 0 | URL
철학책은 좀 어려운 주제의 책이라서 저도 철학책 서평 쓰기는 어려워요. ^^;;

페넬로페 2020-05-05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서평은 항상 훌륭해요^^
책을 선택하고 비교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0-05-05 19:59   좋아요 1 | URL
글을 잘 쓴다는 칭찬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썼다는 말을 듣는 게 더 좋아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

stella.K 2020-05-0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은 읽고 싶긴한데 너의 평점이 높진않군.

cyrus 2020-05-05 20:03   좋아요 0 | URL
제 기준으로 볼 땐 ‘보통’이었습니다. 저자의 직업상 책에 실린 서평이 인문학, 역사 분야에 치우쳐 있고, 저자가 소개한 서평 쓰는 방식은 예전에 전문 서평가들이 한 번쯤 언급했던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책에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내용은 없었어요. 철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독자라면 저자의 서평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저도 서평을 다 읽지 않았어요. syo님처럼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글이에요. ^^

syo 2020-05-05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 서평 책 한 권 내도 된다고 봐요, 나는.

cyrus 2020-05-06 08:05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가 다섯 명 이상이라면 독립 출판물 형식으로 서평 모음집을 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syo 2020-05-06 19:18   좋아요 0 | URL
11111

cyrus 2020-05-06 23:40   좋아요 0 | URL
syo님이 책 다섯 권을 주문하는 건 무효입니다.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20-05-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올해는 안 사기로(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많아서) 마음 먹었지만 cyrus님 서평 읽고 나면 어느새 책들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넣고 결재하려는 저를 발견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 2020-05-08 17:02   좋아요 1 | URL
그래도 책을 주문하기 전에 꼭 실물을 확인하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

transient-guest 2020-05-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네요 아마도...
 

 

 

신천지의 자만 들으면 이젠 신물이 나다 못해 환멸을 느낀다. 그 문제의 종교(사실 종교라고 부를 수 없는 사이비 단체이다) 때문에 신천지의 또 다른 의미들이 무색해졌다. ‘신천지라고 하면 새로운 세상이라든가 1921년과 1964년에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잡지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당분간 신천지는 금기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절판] 박상준 엮음 토탈 호러 1(서울창작, 1993)

 

 

 

신천지의 악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외국 단편소설이 있다. 소설 제목이 대구를 초토화한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소설은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그 문제 단체와 바이러스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소설의 원제는 ‘Student Body’. ‘Student Body’는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전체 수를 뜻하는 단어다. 이 소설을 번역한 역자는 지금도 꾸준히 외국 장르문학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는 박상준 씨다. 아마도 박상준 씨도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할지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소설을 쓴 작가는 미국에 태어난 F. L. 월리스(Floyd Lee Wallace). 1950~60년대에 단편소설을 주로 썼으며 ‘Student Body’는 월리스가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53년에 발표되었다. 월리스는 국내에 유명하지 않은 작가이지만, 그가 쓴 신천지의 악몽은 다시 번역되었으면 하는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이제는 절판되어 희귀 도서가 된 공포 단편소설 선집인 토탈 호러1에 수록되어 있다.

     

소설 제목에 있는 신천지는 지구의 환경과 거의 흡사한 미지의 행성을 뜻한다. 소설에 나오는 지구인들은 우주를 개척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가 살기에 가장 알맞은 행성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주한다. 이주민들은 이 행성에 글레이드(Glade: 숲속의 빈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주민들이 탄 우주선의 총 지휘자인 해프너(Hafner) 부장은 글레이드를 제2의 지구, 즉 신천지로 만들려고 한다. 이주민들의 신천지 개척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쥐와 닮은 생명체가 우주선에 몰래 들어와 이주민들이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곡식을 먹어 치운다. 우주선에 거주하는 생물학자 다노 마린(Dano Marin)은 못 먹는 게 없는 생명체를 관찰하여 그것에게 식충이(omnivore)라는 이름을 붙인다. 처음에 로봇 고양이를 우주선에 들여놔 우주선에 들어온 식충이를 퇴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전보다 몸집이 더 커진 쥐가 나타나 로봇 고양이를 파괴한다. 이주민들은 한 단계 진화한 식충이들을 절멸하기 위해 사냥을 잘하는 테리어를 데려오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충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화하여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마린은 식충이의 정체가 옴니멀(omnimal: 전능수)이며 그 어떤 생명체보다 외부 조건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진화한다고 확신한다. 옴니멀은 무한을 뜻하는 ‘omn’과 동물을 뜻하는 ‘animal’을 합친 단어다. 옴니멀은 생존을 위해 계속 먹기만 하면서 진화하는 생명체. 해프너 부장은 무슨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옴니멀을 완전히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마린은 절대로 그들을 멸종시킬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옴니멀이 계속 진화할수록 그들의 생존력까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해프너와 마린은 또다시 진화한 옴니멀을 목격하는데, 두 사람이 옴니멀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 동물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옷이라는 것에 대해 학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지 벌거벗은 채였다. 마찬가지로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놈은 나무에서 흰색의 커다란 꽃을 꺾더니 평화의 상징으로 조용히 내밀었다.

  “어른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부도 그럴지 궁금하군요. 저 몸속에는 뭐가 있을까요?”

  “나는 그의 머리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하다네.”

  해프너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받았다.

  그놈은 인간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토탈 호러 1》 『신천지의 악몽, 305)

 

 

신천지의 악몽외계의 공포를 주제로 한 SF 소설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는 결말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외계에 인간과 흡사한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지구의 단독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개발과 생존을 위한 탐욕을 멈출 줄 모르는 인류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우리를 위협하는 공포의 존재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 공포의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우리 자신이다.

 

신천지의 악몽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한 옴니멀은 평화의 상징인 꽃을 내밀어보지만, 이 장면 하나만 가지고 행복한 미래의 결말을 상상할 수 없다. 해프너와 다린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여전히 옴니멀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옴니멀을 자신들의 상식에 벗어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또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수준을 가질 정도로 거듭 진화하는 옴니멀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옴니멀은 두려운 존재이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해치워야 할 적이다. 따라서 지구에서 온 이주민과 글레이드의 토착민인 옴니멀 간의 살육전을 예고하는 슬픈 결말을 생각할 수 있다. 생존을 둘러싼 이주민과 토착민의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는 신천지에서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 맬서스 인구론(동서문화사, 2016)

* 맬서스 인구론(동서문화사, 2011)

 

 

 

신천지의 악몽은 단순히 공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다윈(Darwin)의 진화론과 맬서스(Malthus)의 인구론이 적절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은 젊은 시절에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을 읽었다. 그는 맬서스의 주장에 매료되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구의 과잉 증가가 빈곤과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맬서스의 주장에 영감을 받은 다윈은 모든 종()은 제한된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늘 배가 고픈 옴니멀은 이주민들의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진화한다.

 

맬서스가 말한 인구론의 밑바탕에는 생존 투쟁에 밀린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생학을 탄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유럽에서 시작된 우생학은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우생학 관련 정책을 세계 최초로 합법화한 국가는 미국이다. 우생학 정책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사회에서 태어난 월리스가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내려고 신천지의 악몽을 쓴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천지는 진화론을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우생학이 지배한 암울한 세상, 즉 디스토피아(dystopia)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의 열린 결말은 한층 암울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 데이비드 스토브 다윈의 동화(영림카디널, 2008)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든 종이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는 다윈의 생각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들이 보기에 다윈은 인간을 그저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로 취급한다. 그래서 맬서스와 다윈의 생각이 반영된 신천지의 악몽을 보게 되면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부제를 정할 수 있다면, 나는 다윈의 잔혹 동화로 짓고 싶다. 호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스토브(David Stove)가 쓴 다윈의 동화는 자연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진리가 되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한 책이다. 저자는 반 계몽주의자인 맬서스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다윈의 진화론이 계몽주의자들의 지적 무기가 된 사실을 꼬집으면서, ‘적자생존을 지나치게 강조한 진화론자들이 우생학을 만든 역사까지 지적한다. 저자가 종의 기원을 불태워야 할 책이라면서 다윈을 과격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그는 창조론자가 아니다. 그는 진화론이 자기중심적인 오만한 도그마(dogma)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품절] 마크 리들리 HOW TO READ 다윈(웅진지식하우스, 2007)

* 찰스 다윈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다린은 옴니멀이 글레이드뿐만 아니라 지구와 여러 행성에도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만큼 옴니멀은 외부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를 형질 분기(divergence of character)라고 한다. 다윈은 변이가 큰 종일수록 다양한 장소에 적응하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종으로 번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형질 분기는 한 종에 다양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늘어나면서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다윈이 제시한 개념이다. 형질 분기에 대한 설명은 종의 기원4(제목은 자연 선택’)에 나온다.

 

HOW TO READ 다윈은 형질 분기를 형질의 분산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그 단어의 출처가 잘못되었다. 31쪽에 나오는데, 출처는 종의 기원, 생존 경쟁이라고 되어 있다. 생존 경쟁3장 제목이다. 1859년에 나온 종의 기원초판을 번역한 책(장대익 번역, 최재천 감수)에서는 생존 투쟁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역자로 참여한 장대익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히 검토하면서 번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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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5-04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신천지 사태와 총선 후에 벌어
지는 일련의 작태들을 보면서 어제
부터 다시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500년 전부터 정치와 종교에 스며든
독단과 광기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르네
상스 인문학자들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슬프네요.

cyrus 2020-05-04 23:46   좋아요 1 | URL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포교 활동을 슬슬 시작할걸요. 그리고 ‘대구=신천지’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이 꽤 오래 갈 거예요. 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일어나게 될 대구 사람들에 대한 타 지역들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요.
 

 

 

마스크를 온종일 착용하면 두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끈으로 인해 귀가 아프고, 안경에 김이 껴 앞을 보기가 어렵다. 하루 절반을 밀집 공간에 있어야 해서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렇다고 계속 마스크를 쓰는 건 아니다. 귀가 아프거나 숨쉬기가 불편하면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가 있다. 처음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모든 사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도 전염이 된다.

 

나는 마스크 착용이 전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무증상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증상 없는 사람의 전염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무증상 감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생활이 답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 [품절] 안톤 체호프 안톤 체홉의 우수(이소북, 2004)

    

 

 

 

 

 

 

 

 

 

 

 

 

 

 

 

 

 

 

* [품절]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일송북, 2008)

* [e-Book]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일송북, 2015)

 

 

    

 

내가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냐면 코로나19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올해 1월이었다. 그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우주지감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1월의 도서는 체호프 단편선이었다. 이상하게도 1월 독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달부터 시작해서 두 달 연속으로 독서 모임이 연기될 줄은 꿈에 몰랐다. 지금 대구의 상황을 봐서는 이번 달도 독서 모임 진행이 어려워 보인다.

 

민음사 판 체호프 단편선티푸스(typhu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페스트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확인해보니 티푸스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선집은 총 네 권이다. 현재 민음사 판과 최근에 나온 체호프 단편선집(작가와비평)을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절판되었다.

 

지금 독자들은 페스트를 열독하는 중이다. 그 사람들은 페스트가 전염병 앞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잘 묘사했다고 말한다. 나는 페스트와 체호프(Chekhov)티푸스를 비교하면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어느 것인지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런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나는 페스트를 읽기 전에 티푸스를 읽었고, 이 체호프의 소설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적인 전염병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티푸스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티푸스에 걸린 장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장교는 침대에 눕자마자 의식을 잃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장교는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장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장교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누이동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장교로부터 감염된 티푸스였다. 장교가 눈 뜨기 삼일 전에 누이동생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소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리는 장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심장이 고통으로 찌그러지는 듯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창틀에 이마를 기댔다.

  “난 왜 이리 불행한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느님, 나는 왜 이리도 불행합니까?”

  그리하여 그의 기쁨은 일상의 권태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체호프 단편선158)

 

 

장교는 자신이 걸린 병 때문에 누이동생이 죽은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났다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숙모에게 음식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일주일 후에 그는 상실감에 빠진다. 체호프는 전염병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엇갈리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결말에 보여준다.

    

 

 

 

 

 

 

 

 

 

 

 

 

 

 

     

* 전승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반니, 2019)

 

 

 

 

 

 

 

 

 

 

 

 

 

 

 

 

 

 

* [절판]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프로네시스, 2007)

* [e-Book]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프로네시스, 2012)

 

 

 

 

 

 

 

 

 

 

 

 

 

 

 

 

 

 

 

* [품절]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가람기획, 2004)

* [e-Book]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가람기획, 2010)

 

 

 

 

 

 

 

 

 

 

 

 

 

 

 

 

 

 

*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사이언스북스, 2001)

 

    

 

 

코로나19와 흑사병이 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티푸스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인류의 역사를 몇 차례 바꿨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전염병이다. 고대 그리스가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티푸스 때문이었다. 티푸스가 없었더라면 나폴레옹(Napoléon)은 세계를 정복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의 사전에 티푸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전략가 나폴레옹은 전염병이 전세를 뒤집는 복병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812년 러시아 정벌에 나섰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은 동장군과 티푸스였다. 천하의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티푸스의 위력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전염병을 소개한 책에 무조건 나오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지금도 자신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손을 잘 씻고 다닌다면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그들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까 봐 걱정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접촉하여 병에 걸릴 수 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실은 자만심은 하늘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몸을 찌른다. 티푸스에 나오는 남매의 비극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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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4-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쓰기는 쓰는데 안 쓰는 이들도 꽤 많더라구. 외국인들 중에 마스크 안 쓰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거 봤는데 좀 무서워서 얼른 피하게 되더라. 날이 이렇게 좋은데 다들 밖으로 나가고싶어서 난리인듯. 잠깐씩 흔들리는 때가 있긴 있는데 마스크 없이 봄 거리를 걷는 게 그렇게나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네. 그래도 얼른 끝나면 좋겠다. 조심해.

cyrus 2020-05-04 07:39   좋아요 0 | URL
내일 모레부터 생활형 거리두기를 시작하면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확 늘어나겠는데요. 몇 몇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게 돼요. ^^;;

stella.K 2020-04-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니도 옛날 노인인데 어렸을 때 홍역 같은 돌림병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더군.
1월이라. 난 그때만 해도 자만했지.
마스크 하고 다니는 사람들 뭘 그렇게까지 하나
메르스나 신종플루 때만 할 텐데 했거든.
이렇게 전 세계를 초토화시킬 거라곤...ㅠ
라떼는 전쟁을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놀라운 세상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ㅠ

cyrus 2020-05-04 07:44   좋아요 0 | URL
올해야말로 앞날을 예상하기 힘든 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

레삭매냐 2020-04-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스크 쓰고 벗다가 그놈의 안경
을 세 번이나 해먹었네요...

아 숨쉬기도 불편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죽갔네요 정말.

마스크 쓰기 너무 힘드네요.

cyrus 2020-05-04 07:46   좋아요 0 | URL
대구는 벌써 초여름 날씨 모드라서 낮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면 답답해요... 여름에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0-04-1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로 처음 마스크를 쓸 땐 내가 감염될까 봐 마스크를 쓰는 쪽이었는데,
요즘은 혹시 내가 증세 없는 보균자일 수가 있어서 남을 위해 마스크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cyrus 2020-05-04 07: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불편하더라도 나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마스크 착용은 필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