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은 이제 낯설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다. 현재 대구시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은 3곳이다. 동양서점, 평화서적, 국제서적이다. 교동네거리로 가서 좌회전하면 헌책방 2(대륙서점, 규장각서점)이 있다. 하지만 헌책방이 있던 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두 곳 모두 문을 닫게 되었고 지금은 건물 형체조차 볼 수 없다. 그곳에 가면 커다란 철의 장막만이 있을 뿐이다.

 

 

 

 

 

    

 

대구시청 주변은 한때 대구역 지하도와 남문시장 주변과 더불어 헌책방들이 많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6·25 전쟁 이후 대구시청 근처에 노점상 형태의 헌책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장사가 잘되면서 대구역 지하도에 헌책방이 생겼다. 대륙서점은 5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노포(老鋪)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이곳 역시 문을 닫고 말았다. 헌책의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남은 가게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의 헌책방 활성화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륙서점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동양서점이다. 주인장은 다리가 불편한데도 매일 가게를 연다. 이곳에 가면 최소 책 한 두 권을 무조건 구입한다. 그래도 매번 가게에 갈 때마다 성과가 있는 건 아니다. 작년에 빈손으로 가게를 나온 일이 두 번 있었다. 어제 동양서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상태가 아주 좋은 러브 미스테리(비전, 1993)이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러브 미스테리사랑을 주제로 한 외국 작가들의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을 엮은 사람은 장르문학 전문 번역가인 정태원이다. 이 책은 알라딘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좀 더 읽고 나서 리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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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4-0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않은 시대가 되었으니
헌책방도 사라지는 게 순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책쟁이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시
대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오르테가 선생의 <대중의 반역>은
호시탐탐 노리던 책인데 먼저 겟하
셨네요 :>

2020-04-0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4-03 07:36   좋아요 0 | URL
어떤 헌책방 주인장은 희귀한 책에 비싼 금액을 매겨요. 이러면 책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책은 그림의 떡이 되고, 헌책방에 문 닫게 되면 책도 함께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돼요. 그럴 땐 정말 안타까워요.

stella.K 2020-04-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러브 미스테리라! 나도 솔깃하다.
더구나 알라딘엔 없는 책이라니 그 희귀성에 갖고 싶게 만드는군.
한 권뿐이 없든?ㅋ
헌책방이 문을 닫았다니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중고샵 때문이기도 할 텐데 여기 저기 접근성이 좋기도 하니
일부러 찾아가긴 쉽지 않겠지.
모르긴 해도 주인장이 책을 사 가는 건 고사하고 그렇게 찾아 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했을 텐데. 괜히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쓰렸겠네.
정말 좀 무슨 대책이라도 좀 세워주지...ㅠ

cyrus 2020-04-03 07:46   좋아요 0 | URL
<러브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을 쓴 작가들이 유명한 사람들이라서 소장 가치가 높아요.

책을 더 많이 사고 싶은데, 읽을 만한 책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한 권도 못 산 채 빈 손으로 헌책방을 나오면 주인장한테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헌책방에서 책 고르는 데 두 시간 넘거든요... ^^;;
 
흑사병 한길 히스토리아 14
필립 지글러 지음, 한은경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134710,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항구 도시 메시나에 열두 척의 배가 들어왔다. 이 배에 탄 선원들은 이미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갑판 곳곳에 주검들이 널려 있었다. 메시나 당국은 선원들이 항구에 내리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의 위력을 소문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헛수고였다. 배가 떠나면서 전염병은 해상 무역 길을 지나면서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흑사병이 죽음의 창을 휘두르면서 유럽 정복에 나선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흑사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이 병은 유럽 인구 절반의 생명을 앗아가 신이 내린 형벌로 간주할 정도였다. 유럽인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감염됐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흑사병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염됐고, 이를 차단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흑사병의 영향력에 대해서 역사가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19세기에 흑사병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들이 나오긴 했으나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흑사병(The Black Death)이라는 단순한 제목이 붙여진 책은 1969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세사가도 아니고, 전염병 전문가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아마추어 학자라고 언급하면서 그저 즐겁게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출판사에서 15년 이상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저자는 흑사병에 관한 당대 유럽인들의 기록과 후대 역사가들의 연구 논문에 나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이 책에 저자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서 확산하는 과정과 그 원인을 먼저 설명하고, 흑사병이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저자는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래도 피상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균형 있게 서술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나온 지 50년이 넘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 책에 나온 정설들은 반박되거나 수정되었을 것이다. 국내 번역본도 나온 지 십 년 넘었고,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진가를 무시할 수 없다.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꼭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오래될수록 좋은 책도 있기 마련이다. 흑사병은 그런 책이다. 전염병의 공포가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이 시국에 읽기 적절한 책이다. 전염병은 잊을 만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1969년에 나온 흑사병을 지금 읽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는 전염병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걸작이다. 카뮈의 소설에 가려져서 그렇지 보카치오(Boccaccio)데카메론(Decameron)도 흑사병이 휩쓸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전염병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한계가 있다. 작가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전염병이 확산하는 과정을 더 암울하게 묘사하거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을 넣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전염병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독자들이 생길 수 있다. 역사책을 읽으면 소설 읽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흑사병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의 위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유럽 사회와 경제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살핀다.

 

영국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대학 교수와 학자들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라틴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부족해졌고, 라틴어를 직접 영어로 옮기는 일이 늘어났다. 흑사병 시대는 서양 공통어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흑사병 시대 이후 종교에 대한 중세 유럽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교회는 흑사병을 신의 분노라고 주장하면서 교인들의 죄악을 강조하기만 했다. 중세 유럽인들은 매번 충고에 가까운 설교만 늘어놓는 교회에 실망했고, 기성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교단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전염병으로 인해 영국의 장원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노들의 수가 줄어들자 경작하지 않은 땅이 많아졌고, 그런 땅을 소유한 영주들은 농노의 이동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후로 농민들의 반란이 증가했고, 장원제 붕괴와 영주 세력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14세기 후반 영국과 유럽의 역사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같은 삶의 방식은 지주와 농민 모두에게 버려야 할 짐이었다. 삶의 질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흑사병은 유럽을 초토화한 전염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를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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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0-04-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사병이 없었다면 뉴턴의 중력이론도 늦게 탄생했겠죠!!!

cyrus 2020-04-02 08: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흑사병이 과학의 역사까지도 바꾼 셈이네요. ^^

레삭매냐 2020-04-0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대통령이나 국가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재택근무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능하게 만들
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습니다.

유럽의 인구 감소는 무엇보다 신분
제 사회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자각
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이런 책들은 왜 다 절판
이 되는지...

cyrus 2020-04-02 08:09   좋아요 0 | URL
흑사병과 관련된 역사책이 더 있는지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코로나에 크게 한 번 데였으니 전염병의 역사에 관한 책이 나올 거예요. ^^
 
TV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
닐 포스트만 / 참미디어 / 1995년 8월
평점 :
품절


 

 

캐나다의 문화평론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생각했다. 말과 글은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고 확장하기 위한 미디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TV 방송은 인간의 시각 능력을 확장한 미디어. 우리는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식을 접한다. 우리는 미디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미디어는 우리 삶의 일부다.

 

영국 밴드 버글스(The Buggles)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외친 게 1979.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버글스와 MTV[]는 틀렸다. 한물간 매체로 여겼던 라디오는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다. 혹시 누군가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패러디해 “유튜버TV 스타를 죽였다”라고 말했어도 틀렸다. TV와 종이를 뛰어넘은 유튜브의 영향력은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TV 스타들은 유튜브로 넘어와 1인 미디어가 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반대로 유튜버는 TV에 출연하여 자신을 영향력 있는 개인(influencer)’으로 소개한다. 유튜브는 TV보다 압도적인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TV의 영향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현재 올드 미디어의 패왕 TV와 뉴 미디어의 신흥 군주 유튜브는 서로의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스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TV는 세상을 들여다보고, 때로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과 같다.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모습과 무관하게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나를 관찰한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거울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TV에 의도치 않게 빠져드는 대중의 모습과 흡사하다. TV 시청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행위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수동성 속에서 감각적 자극을 통해 몰입하게 만드는 게 TV의 장점이다. 맥루언이 미디어는 마사지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우리의 일상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듯 지배한다. 상업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서 TV가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맥루언의 영향을 받아 미디어의 영향력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파급력에 주목한 맥루언과 달리 미디어의 부정적 파급력에 비판적인 시선을 준다. 포스트먼은 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TV의 문제점에 주목했다. 그는 1985년에 발표한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TV가 중심이 된 시대를 성찰 없는 가벼운 세계로 본다. 뉴스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 광고 등 모든 것들은 상업성을 띠고 있으며 거기서 교육적이라든지 성찰할 수 있는 어떤 장점도 찾아낼 수 없다는 얘기다.

 

 

 

 

 

 

90년대 아날로그를 느낄 수 있는 책 앞표지.

KBS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국 로고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TV 화면에 있는 사진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대다.

이때 성화가 타오를 때 개막식을 위해 풀어놓은 비둘기 떼 중 한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왼쪽에 김정일 사진이 있고, 그 뒤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을 찍은 사진이 있다.

 

 

 

 

 

 

 

TV 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How to Watch TV News)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포스트먼의 저서이다. 1992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스티븐 파워즈(Steve Powers)는 라디오 및 TV 뉴스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저널리스트다. 두 저자는 미국의 뉴스 제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TV 뉴스가 어떻게 돈벌이를 우선하는 영리 기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청자를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 그 상품이 바로 뉴스다. 뉴스 앵커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과장된 어조로 뉴스를 알린다. ‘배우 앵커(actor anchor)의 모습에 푹 빠진 시청자는 뉴스가 진실한 정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는 뉴스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배우 앵커에게서 나온 말들을 사건 그 자체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두 저자는 TV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광범위한 독서를 하라고 강조한다. 책은 뉴스에서 볼 수 없는 복잡성과 사실들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물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보는 편식 독서는 분별있는 독자 또는 뉴스 시청자가 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TV 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단편적이고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와 가짜 뉴스같은 오물들이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삶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온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비판적으로 뉴스 보기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 MTV는 미국의 음악 방송 채널로 1981년 개국 당시 처음 방송한 뮤직비디오가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 보는 음악으로 변화시킨 MTV의 개국 취지에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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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3-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식 독서가 찔려요. 대학 시절에 읽었던 책 지금 마주하니까 신기해. 나이든 거겠지, 쿨럭.

cyrus 2020-03-25 22:31   좋아요 0 | URL
요즘 저도 읽기 편안한 분야의 책만 읽고 있어요.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되니까 편식 독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20-03-2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루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인간의 확장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맸던 경험이 있습니다.

cyrus 2020-04-01 08:06   좋아요 0 | URL
이름 쓰기도 어려워요. ‘맥루한’이라고 써야 하는지 아니면 ‘매클루언’이라고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누드를 벗기다 - 누드에 관한 불편한 진실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공민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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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nude)알몸(naked)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단어 모두 벌거벗은 상태또는 나체를 의미한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누드알몸을 구분했다. 누드는 예술의 한 형태이며 교육적인 용어다. 반면 알몸은 말 그대로 옷을 입지 않은 상태다. 대부분 사람은 누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부끄러워한다. 왜냐하면 누드를 알몸의 의미로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라크가 명시한 누드의 정의를 알고 나면 누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화가는 알몸을 그리지 않았다. 누드를 그렸다. 예술의 거장들이 표현한 누드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이다. 예술적인 누드는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므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누드에 대한 클라크의 입장은 1956년에 출간된 누드의 미술사에 나온다.

 

클라크가 명쾌하게 누드의 정의를 내린 덕분에 예술가들은 누드를 마음껏 그릴 수 있었고, 그들이 표현한 누드는 외설로 오해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누드화를 보면 불편함을 느낀다. 미술사학자 프랜시스 보르젤로(Frances Borzello)는 예술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된 누드를 여전히 불편하게 느끼는 대중의 반응을 주목한다. 현대 예술가들이 묘사한 누드는 50여 년 전 클라크의 정의한 누드와 다르다. 그래서 보르젤로는 오늘날 대중은 현대의 누드를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현대의 누드는 누드이면서도 누드가 아닌 것’, 불완전한 누드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보르젤로는 누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녀가 누드에 관해 쓴 책의 제목은 누드를 벗기다(The Naked Nude). 이 제목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누드라고 알려진 남성과 여성의 몸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몸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들은 신화 속 초인적인 인물들을 강인하고 우람한 남성 누드로 묘사했다. 이때부터 예술가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젊고 탄탄한 남성의 몸을 선호했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올 때까지 여성의 누드는 인기가 없는 소재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여성의 몸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에 이르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더욱 강화되었다. 기독교는 여성의 몸을 죄악의 근원으로 봤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여성 누드를 묘사한 예술가들이 등장했지만, 그림이나 조각에 나타난 여성의 몸 역시 완벽한 비율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몸이었다.

 

클라크의 누드 이론은 이상적인 몸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예술로 회귀한다. 보르첼로는 낡아빠진 누드 이론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50여 년 동안 지속된 누드의 미술사신화를 벗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드의 미술사로 알려진 책의 원제는 ‘Nude’. 클라크는 전통적인 누드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신체예술가들은 누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을 활용해 누드를 표현했다. 신체예술가들이 선호한 몸은 병들고 아픈 몸, 뚱뚱한 몸, 거식증으로 인해 앙상해진 몸이다. 육체의 추함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누드는 전통적인 누드에서 볼 수 있었던 육체미와 에로티시즘과 거리가 멀다. 페미니스트 신체예술가들이 표현한 누드는 이상적인 몸의 허상을 벗기는 동시에 여성의 몸을 눈요기로 소비하는 남성 중심 예술의 실체를 까발린다.

 

현대의 누드는 극단적이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자해하는 행위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병든 자신의 몸을 일기 쓰듯이 사진 찍은 사진가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누드를 불편해한다. 누군가는 또 ‘이게 예술이야?’라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현대의 누드는 완벽하지 않은 몸’, ‘보기 흉한 몸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보르첼로는 현대의 누드를 대중에게 불편함과 혼란을 주는 불완전한 누드라고 정의 내린다. 대부분 사람은 비너스(Venus)나 날씬한 여체를 묘사한 고전적인 누드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비너스처럼 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으며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것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오늘날 예술가는 인간적인(연약한), 너무나 인간적인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불완전한 누드를 접한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몸의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이게 예술(누드)이야?’라고 의심했던 사람이 오늘날의 누드를 새롭게 본다면 ‘이건 인간의 몸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드를 벗기다누드의 종말을 알리는 책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누드는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있고, 화제성을 가진 소재다. 저자는 앞으로도 계속 불완전한 누드가 나타나 대중을 놀라게 할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누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꿔야 할 때가 왔다. 누드의 미술사는 잊으시라. 절판된 책을 비싼 가격으로 사서 읽을 필요 없다. 누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누드를 벗기다. 이 책은 누드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싹 벗겨준다.

 

    

 

 

 

Trivia

 

 

* 132

 

  오늘날 나체 모델의 초상화는 이상적인 누드가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일련의 나체 초상화 사진은 갤러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920년대 나체를 그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초상화부터 1980년대에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가 여성 보디빌더 리사 라이언(Lisa Lyon)을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묘사한 것을 들 수 있다.

 

사진에 담은’, ‘사진으로 찍은이라고 쓰는 게 적절하다. 스티글리츠는 사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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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23 22:20   좋아요 0 | URL
요즘 누드사진 찍기가 힘들 걸요. 누군가는 찍고 있겠지만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누드사진을 예술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어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누드사진을 음지의 사진작가들이 찍는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0-03-2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술과 관련한 책을 보다가 누드 그림이 나오면 덜 좋아했었죠.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예요. 누드는 마른 사람보다 살이 찐 여성의 그림이 많은데 그 이유는 표현할 게 풍부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마른 사람의 몸은 비예술적인 셈이죠.

cyrus 2020-03-23 22:21   좋아요 0 | URL
네. 저도요. 버스 탈 때 미술 책 읽다가 누드화 도판 나오면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겨요.. ㅎㅎㅎㅎ
 

 

 

이산가족은 전쟁이 일어날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구미에 사는 동생이 한 달째 대구에 오지 못하고 있다. 자주 만날 수 없다 보니 동생이 매일 한 번 영상통화를 한다. 어젯밤에 동생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동생의 영상통화가 오면 부모님이 참 좋아하신다. 영상통화 중에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집에 페스트 있어?”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집에 흑사병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라고 생각했다. 나랑 같이 영상통화를 하고 있던 부모님은 페스트의 의미를 뭔지 몰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 페스트는 전염병이야. 집에 페스트가 퍼졌으면 우린 벌써 죽었지라고 말했다. 동생은 페스트, 몰라? 요즘 되게 유명하던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동생이 말한 페스트의 의미를 깨달았다. 동생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가 내 방에 있는지 물어본 거였다‥….

 

영상통화가 끝난 후에 나는 동생에게 카뮈의 책이 내 방에 있다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페스트는 민음사 판이 아니라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검은색 표지의 양장본으로 된 카뮈 전집이다.

 

 

 

 

 

 

 

내가 페스트를 사진 찍어 카톡 메시지로 보냈더니 동생은 재미없게 생겼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흥미 5이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재미없게 생겼다‥…. 예전에 달궁 독서 모임에 참석했을 때 누군가가 카뮈 전집 양장본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은 앞표지에 권수를 나타내는 붉은색 숫자가 너무 크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의 말씀이 옳았다.

 

그나저나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관심이 커지면서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찾는 독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올해의 책은 페스트가 되지 싶다. 이방인번역 논쟁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들이 카뮈에 관심을 보인다. 이쯤 되면 카뮈 전집을 가지고 있는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카뮈에게 확 끌리지 않는다. 이방인반항하는 인간을 읽어보긴 했다. 하지만 그가 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이것을 글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카뮈는 책 좀 읽어본 독자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그의 책에 대한 독자 리뷰가 꽤 많이 있다. 나름 독창적인 생각과 해석이 담긴 리뷰를 쓰고 싶어도 못 쓰겠다. 내게 카뮈는 정말 어려운 작가다.

 

나는 당장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싶지 않다. 카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식을 때 읽으려고 한다. 나는 항상 책을 읽으면 뒷북(book)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어도 올해는 카뮈를 읽어야 하는 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페스트말고 흑사병을 읽고 싶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코로나19와 동생 때문에 이 책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심야에 흑사병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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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20 23:52   좋아요 0 | URL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연약하고 한편으로는 똑똑하지 않아요. ^^;;

stella.K 2020-03-2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래. 요즘 부쩍 페스트가 읽고 싶어졌어.
책 잘 생겼구만.ㅋ

근데 어제 중고샵 다녀왔지? 어떻디? 괜찮나?

cyrus 2020-03-20 23: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점에 사람이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서점에 사람이 많이 온 것에 놀라지 않았어요. 제가 놀란 것은 서점 안에 있는 책상이었어요. 책상 위에 손 소독제는 없었어요. 계산대에 손 소독제가 있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시기에 손님들이 책상에 앉지 못하도록 알라딘이 조치를 취해야 했어요.

페크pek0501 2020-03-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스트>를 재밌게 읽었었어요. 그래서 다 읽은 뒤에 밑줄 친 곳을 몇 번이나 본 적도 있어요. 요즘 다시 읽는다면 실감날 것 같습니다. 사색적인 문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cyrus 2020-03-23 22:23   좋아요 0 | URL
카뮈의 <페스트>가 재미있는 책이었군요. 내년 독서모임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