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했다.  

지난 주에 작성한 '진보와 보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정부사' 라는 과제였다. 과제 관련 수업은 한국정부론이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에 발표를 했었다.    

처음에 작성했을 때는 논란이 많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를 중심으로 비교, 정리를 했었는데 발표를 위해서 제1공화국부터 현 이명박 정부까지 모조리 조사하게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주 토요일, 집에서 주말을 잘 보내고 있던 중에 교수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그것도 한밤중에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다니...   처음에는 전화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던 이유는 월요일에 과제 발표를 할 터이니 내용을 좀 더 보충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요청에 너무 쉽게 동의는 했지만 주말동안 과제를 보충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주말에는 시험 공부를 할려고 했었다. 

토요일, 일요일.  단 이틀동안 내용 보충에다가 발표를 위한 프리젠테이션까지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틀동안 잠 한 번 제대로 자지 못한채 과제 발표 준비에만 몰두하였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하고 난 뒤에 발표할 때 내용을 수월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일종의 발표문을 따로 정리하였다.    발표문을 작성하고 나니 한국정부사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제대로 한국정부사를 공부한 셈인 것이다.

 

과제를 완성하고 나서 발표 준비 연습도 해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도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80명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를 해야되는데 말이다. 오히려 발표가 잘 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대감만 들었을 뿐이었다.  ^^;;   

 

그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었을까...?    

어쩌면 발표문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준비했던 발표문 그대로 읽으려고 작정했었기 때문이다.   

막상 강단에 오르고 나니 오히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교수님과 많은 학생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비록 발표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던 것 그리고 발표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해서 따로 준비한 발표문에 너무 의지한 채 발표했던 점만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나의 발표에 대해서 교수님과 학생들의 평이 좋았다.    아무래도 내가 준비한 과제의 주제와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그 날 나와 같이 발표했던 학생들과는 다르게 참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거 같다.  

 

처음으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프리젠테이션 발표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겼을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수업들 중에는 조별 발표가 많이 있는 편이다.  두 세번 정도 발표에 참여하게 될거 같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중간고사 끝나고 난 뒤에는 프리젠테이션 스킬에 대해서 따로 공부를 할 예정이다. 

프리젠테이션 스킬 공부하랴, 과제 준비하랴 그나마 한가할 것만 같았던 11월도 바빠질거 같다.   

 

덤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문을 올려본다.  내용은 10월 1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내용을 좀 더 수정,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갑작스런 발표 일정 때문에 이틀동안 부랴부랴 자료를 찾아 정리한 것이다.   재1공화국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까지 역사순으로 배열하여 정리하였지만 발표 시간 한계상 한국정부사에 관련된 주요 내용을 제외했고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한국정부사와 관련하여 좀 더 보충해야 할 내용 또는 참고하면 좋은 자료와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역사

제가 발표하려는 내용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한국정부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한 두 개의 역사라는 것은 북한과 남한처럼 하나의 땅덩어리에 갈라진 두 나라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즉 남한에서 알려져 있는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권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현대사를 이해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사는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진보와 보수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언급한 진보와 보수는 무엇일까요?   진보와 보수를 또 다른 말로 좌파와 우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진보는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와는 반대로 보수는 새로운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분단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갈등이 치열합니다. 진영진보 좌파를 친북 인사(북한 정권 체제를 따르는 인사) 또는 속된 말로 빨갱이로 비하되기도 하며 보수 우파는 변화를 거부하기만 하는 머리가 나쁜, 즉 꼴통 보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초창기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의 ‘좌파적’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의 여당인 한나라당은 근. 현대사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산업화, 경제 발전, 민주주의 확립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진보적인 입장의 야당인 민주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 등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뉴라이트의 실체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은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교과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에서 출간된 대안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는 말 그래도 직역하면 ‘신우익, 신보수주의’ 입니다. 20세기 중후반에 나타난 새로운 성향의 보수를 뜻합니다. 뉴라이트의 기원에는 198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대처 여사나 미국이 레이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 성장을 우선적인 목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PPT 바탕화면에 있는 커다란 마크가 뉴라이트전국연합 로고입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보수 진영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사회단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뉴라이트, 즉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정부의 역사를 진보 진영의 관점을 비교해서 정부가 수립된 제1공화국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역사적 순서대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1공화국 (이승만, 1948~1960)   

 


 

며칠 전에 KBS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를 소개한 특별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덮어주거나 4.19 혁명의 의미를 왜곡된 내용을 소개해서 다큐멘터리의 공정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히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해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진보 입장에서 이승만 정권은 남북 분단의 원인을 초래했으며 경제적 빈곤에 시달린 독재정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대체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12년 간 이어진 정권 유지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고 보고 있으며 정권 인사 편성에 친일파를 등용해서 정치적으로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보수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실시한 농지분배 덕분에 남한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독 정부 수립을 통한 한미 동맹 강화 덕분에 한반도가 안정적인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특위를 해산시켰으음에도 불구하고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하기 위한 인재 부족을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이승만 정권을 변호하는 입장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 1960~1961)

  

 

윤보선 제2대 대통령(左)와 장면 국무총리(右)

 

화면에 서로 악수를 하고 있는, 왼쪽에 있는 사람이 제2대 대통령 윤보선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장면 국무총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제2공화국을 국무총리 이름을 따서 장면 내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각이란 내각책임제를 말합니다.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은 의례적으로(형식상으로는) 국가의 우두머리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무총리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권 체제입니다. 

장면 내각은 빈곤한 국가의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인해 시들어진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안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정권이 제일 먼저 계획을 구상하고 실시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계획을 추진한 것은 맞지만 계획안을 제일 먼저 구상한 것은 장면 내각부터 입니다. 장면 내각이 경제개발을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면 내각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경제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미국의 원조에 기대려고 하였지만 미국 측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면 내각은 이승만 정권 및 부정선거 처리문제 등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진보, 보수 진영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실질적인 집권자나 다름없는 장면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진영 학자들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안 추친 실패를 4.19 혁명 이후 정치적 갈등(집권당 민주당 내 신. 구파 간의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어 실현되지 못했다고 국내적인 요인만 설명하고 있을 뿐, 계획 추친하는데 실패하게 만든 외부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반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면 내각은 미숙한 국정 운영을 거듭하다가 1961년 5월 16일, 한 무리의 군인들이 총과 탱크를 앞세우고 수도 서울을 한순간에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제3공화국 (박정희, 1963~1972)

  

 

그들이 바로 당시 육군사관학교 소장이었던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5.16 군사정변을 실질적으로는 군사력을 동원한 불법적인 정권 장악, 즉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장면 내각에 대해서도 설명했듯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계발계획은 장면 내각 때 수립된 것을 그저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이후에도 빈부 격차는 여전했고, 정계 내 정격 유착 등의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파병 결정은 실제로는 전쟁에 참정하는 국제적 명분의 설득력이 없었으며 ‘미국의 용병’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은 5.16 쿠데타는 무능한 국가권력을 장악한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박정희 소장이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내세운 혁명공약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혁명공약에는 총 6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속에는 이전 정권의 부패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공을 국시로 삼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3년에 박정희 소장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면서 실시한 경제개발은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국가의 발전을 가능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파병 이후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곧 경제개발계획 추진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4공화국 (유신체제, 박정희, 1972~1979)

박정희 정권의 유지는 유신체제가 성립된 제4공화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진보 입장에서는 유신체제는 집권 능률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무려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국가정보원을 기반으로 야당과 당파 저항세력에 대해서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의 통치방식을 ‘정보정치’ 또는 ‘공작정치’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단순히 개인적 권력욕 때문에 유신체제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신체제가 단행된 1960년대 후반에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공세가 강화되었고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주한 미국군의 3분의 1를 철군할 계획을 발표했었기에 박정희 정권이 급변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주국방 체제, 즉 유신체제를 선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록 대의제적 민주주의 정치 원리는 소멸되었지만 권위주의적 통치 덕분에 냉전 시대동안 국가 안보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를 기회삼아 대한민국이 경제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동지나 다름없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함으로써 종신권력의 꿈은 사라지는 동시에 18년이라는 박정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5공화국 (전두환, 1981~1987)
 

 


10.26 사태

 

 제6공화국 (노태우, 1988~1993) 

 

  

 

하지만 전두환 정권도 시민들의 민주화 바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제5공화국 헌법을 고수하여 정권의 연장을 획책하려는 정권에 대항하여 대다수 시민들이 6월 항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이 포함된 6·29 선언을 하게 됨으로써 제5공화국 종식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5년 단임제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의해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 역시 12.12 사태에 참여한 신군부 세력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다음에 노태우라는 또 다른 신군부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총선에 맞붙게 될 야권의 3후보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풍을 인식했는지 과거 신군부의 행적 처벌과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5공청문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를 했지만, 신군부 비리의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실 보수 진영에서도 노태우 정권이 신군부 세력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인정은 하고 있습니다만,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는 5공청문회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문민의 정부 (김영삼, 1993~1998) 

 


문민의 정부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영삼 정부는 과감히 개혁정잭을 폈습니다.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와 금융실명제(금융기관에서 거래를 실명으로 해야함)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하나회 소속 군인들을 숙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광주항쟁 내란 목적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단죄하지 않았고 여전히 광주학살, 12.12 사태 관련 진상 규명도 미흡했습니다. 결국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석방되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후반기로 갈수록 실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김영삼 정권 하의 최대 비리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관련되어 있어서 정부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보철강 부도 이후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외환위기까지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형에 처해졌음에도 석방되었듯이 김영삼 정부가 군부 내의 정치 세력을 완전히 청산했을지는 몰라도 과거 행적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제대로 이루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오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에 대한 내용이 누락된 점에서는 보수 진영의 역사 기록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1998~2003)  

 



김대중 정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벨 평화상과 그리고 햇볕정책입니다. 그 중에 햇볕정책은 처음 도입된 김대중 정부 시절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호불호의 반응으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남북한 사이의 긴장관계를 완화시켰으며 화해와 포용을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남긴 잊어서는 안 될 또 다른 공적은 재정 및 금융 긴축을 통한 경제개혁을 단행한 끝에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지금까지도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실시한 대북 원조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나 연평해전 발발 그리고 북측에 5억 달러가 송금된 대북 송금 사건 논란으로 인해 정책의 목적인 북한 개혁, 개방 유도는 실패였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된 1998년에 일본이 기존의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정부는 일본의 입장을 수용한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보수 진영 학자들은 이 협정으로 인해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노무현, 2003~2008)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선거 혁명을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고,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에 있어 ‘온라인 국민 참여 포털’ 구축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뒤를 이어 햇볕 정책에 이은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 10.4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여 2012년 4월 17일에 환수받기로 했습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군사 작전 통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여 자주 국가로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온 것을 시정하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기중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행정수도 이전' 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여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유력 일간신문을 비롯한 언론과 대립하여 임기 내내 언론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등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친북 좌파라는 비난을,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보수 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권력 기반이 취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관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에 일각에서는 대북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북한 반대 운동을 탄압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 민간단체의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사과한 것에 대해서도 대북 굴종 외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한미 동맹 파기를 의미하며 북한에게 군사력으로 흡수통일 될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그러면 마지막이자 현재 두 진영이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 남았는데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충돌되고 있는 최대의 논점이라면 아무래도 4대강 사업일 겁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세금만 축내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고요... 정부의 미디어 및 언론통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 정부에서의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간의 대립이 팽팽한데요...

 
최근에 정부 부처와 보수 진영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에 ‘민주주의’ 를 ‘자유민주주의’ 로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념 논쟁 중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도 지금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는 일부 보수 진영이 쓰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단어에 지금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 만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 교과서들을 담은 꾸러미에는 임시정부 법통 무시, 독재 미화, 이명박 치적 홍보 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들이며 훗날 미래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만 소개될 수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념 대립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 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습니다.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부합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정부사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쭉 훑어보면서...

역사적으로 맞는 내용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도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는, 좀 애매모호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은 다양한 관점을 같이 비교, 소개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의 관점을 인식하고 이해하면 좋을텐데 보수, 진보 이 두 진영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신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과 다른 입장을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이 무조건 맞다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헐뜯고 욕하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는 진보에게 북한에 넘어가서 아부나 떨 줄 아는 빨갱이라고 부르고 진보는 또 보수에게 앞뒤 꽉 막힌 꼴통이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념 간의 대립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지금도 좌. 우 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나름대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고정적이면서도 자신에게는 익숙한 현상에만 주목하고 그것만 가지고 사회를 인식하려고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철수 作)

이제 한국정부사를 조사하면서 느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면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에게 한 쪽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한 쪽 날개가 없는 독수리는 제대로 하늘을 날지 못한 채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리영희 한양대 교수는 진보와 보수 이념의 틀에 갇힌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즉, 이 말 속에는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쪽 날개가 없는 새는 하늘을 제대로 날 수가 없듯이 인간 역시 한 쪽 시선에만 바라볼 줄 아는 외눈박이가 된다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역사를 둘러싼 이념 논쟁은 끝낼 수 있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야하는 역사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역사를 바라보고 공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태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론 1주차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는 것' 만이 힘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요구되고 있는 힘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하는 힘이라는 것이 이념으로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볼 줄 아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자료에다가  긴 시간의 발표임에도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얻게 되었고 그 해에 바로 정식으로 제 10대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의 권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9사단장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라는 신군부 세력이 일명 12.12 사태를 일으켜 군사력을 장악하고 맙니다. 이렇다보니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서 제대로 된 권한 한 번도 행사하지 못한 채 이듬해 1981년에 역대 가장 짧은 임기 기간(약 8개월 정도)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사임하게 됩니다. 정식으로 사임하기 전까지는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게 휘둘린 그저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군부, 즉 군인들이 주축이 된 세력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과 유사하면서도 전두환 정부는 유신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구한 점이 유사했으며 반대 정치세력을 탄압했고 저항하는 광주 시민의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5.18 광주민중항쟁은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유신체제의 연장은 전두환 정권의 원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원집정제를 시도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원집정제란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절충한 정부형태를 말합니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에 관한 권한을, 총리는 내정에 관한 권한을 나누어 가지다가 국가 비상시가 되면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 때 이루어진 시민,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들은 급진적 좌파 세력이 참여, 주도했고 이를 계기로 독자적 정치 세력으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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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1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감동.. 새 그림 퍼갑니다.

cyrus 2011-10-15 19:29   좋아요 0 | URL
네~~ ^^

마녀고양이 2011-10-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늘 해야할 부분이 산더미라 장문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금방 쉽게 읽혀지네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자체도 사실 주관적(현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fact만 보라는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fact의 짜집기는 fact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양날개로 중도를 거쳐 날아야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저는 시계추와 비슷한게 역사가 아닐까 싶어요.
역사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이론이 모두 그렇죠. 정-반-합. 그러나 합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으로 변질되고, 그러면 또다른 반이 나오겠죠...
융통성있게 흐르는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해봅니다.

아........ 시루스님이나 저나 공부 산더미인데, 털썩!

cyrus 2011-10-15 19:32   좋아요 0 | URL
ㅎㅎ 글이 길어서 그런지 발표했을 때도 시간이 길어버렸어요.
원래 20분 정도 잡았는데,,, 해보고나니 30분 걸리더군요. ^^;;

참고로 저는 다음주 목요일부터 시험 시작이랍니다. 며칠동안 공부하느라
잠 한 번 제대로 못 잤어요 ^^;;

아이리시스 2011-10-1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그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추천 받고는 사려는 중인데, 한국 근현대사 이 책도 기억해둬야겠어요. 그래서 모든 한국사책 처음 시작할 때, 절대주의,상대주의,사실로서의 역사, 기록으로서의 역사.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믿고 안믿고는 우리의 자유지만, 그 뒷배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훗날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진짜 사실과 의도를 모를까봐 걱정이 돼요.

아........ 시루스님이나 마고님이나 공부 산더미, 안녕~~~~~~~~~~~~~~

cyrus 2011-10-15 19:34   좋아요 0 | URL
참고로 한국정부에 관한 책은 강준만 씨가 쓴 한국현대사도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내용의 책이 나왔더군요.

아이리시스님도 공부 산더미에 마주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
 

 

 

 

 

 

 

 

 

  

  

  욕설의 리얼리즘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욕설의 리얼리즘' 이라는 제목의 편지글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욕설은 부정적인 것이며 순화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신 교수의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는 그러한 통념을 뒤집으면서 욕설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시기였던 1982년은 통혁당 사건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신 교수가 욕설을 긍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오랜 교도소 생활을 했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하고 있다. 

즉, 교도소에서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욕설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욕설에 대해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욕설이 서민적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추상적 언어만을 고집하는 인텔리들의 언어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전제 아래, 욕설을 통해 세상의 사실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 교수가 욕설에서 발견한 '리얼리즘' 이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욕설(비속어)이란 상스럽고 거친 말로 어떤 대상을 아주 얕잡아 보고 경멸하는 태도로 하는 말이다.  신 교수의 말대로 욕설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심리적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며 정서적인 면에서도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욕설이 상대방을 불쾌감을 줌으로써 인간 관계를 해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의바른 말보다 욕설을 통해서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친근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특수적인 기능도 있다.  신 교수는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 이를 '감정의 비상함이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시적 효과' 라고 표현하고 있다.  

욕설을 통해서 친근감을 표현하는 대화 방식은 여자보다는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친구를 만나면 이름을 먼저 부르는 대신에 '이 새끼' 라는 욕설이 나오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이 쏟아진다.   대화의 주제나 내용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난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날 때도 욕설이 나온다.   이렇듯, 욕설은 부정적인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너무나 친숙한(?) 어휘가 되어버렸다.       

 

필자 역시 일상 생활에 욕설을 조금(?) 하는 편이다.   

정말로 화가 날 때는 나도 모르게 'ㅆ' 이 들어간 욕이 튀어나올 뿐,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는 욕설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예전에 대화하는 도중에 말해선 안 되는 욕설이 나와 크게 지적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고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면 욕설이 나오는 언어 습관이 사회 생활하는데 악영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한 언론에서는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룻동안 대화를 하면서 욕설을 몇 번 하는지 실험을 하였다.   등교 시간부터 점심 시간까지 단 4시간동안 학생들의 대화를 녹취하였다.  그 결과 일상에서의 학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385번 욕설] 

조선일보  2011년 10월 3일자 

 

 학생들은 왜 욕설을 하는가?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성별이나 성적, 생활태도에 상관없이 욕설을 자주 한다. 욕을 하는 아이나 듣는 아이나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뜻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욕설을 하면 왜 안 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의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욕설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에 기록하고, 대학 입시의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글쎄...   무조건 벌을 준다고 학생들이 욕을 덜 하게 될까?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 습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쉽게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들의 대화를 일일이 듣지도 못할뿐더러 욕 하는 정도를 기준을 잣대 삼아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욕설' 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면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가 머릿속에 떠올려졌다.    

세상 어른들의 가식과 허위, 탐욕을 견뎌내지 못하고 감수성 예민한 이 열여섯 살 소년은 말만 하면 욕설이 나온다.  지금은 샐린저의 소설은 청소년에게 권장하는 추천도서가 되었지만 출간 당시만 해도 소설 속 주인공의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 때문에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다. 

홀든 콜필드는 네번째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뉴욕의 거리를 헤맨다. 퇴학사유는 성적불량이지만 그 심층에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성장과정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부유한 계층에 속했지만 주인공은 현대사회의 추악한 속물 근성과 지식인 계층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는 홀든이 혼란스러운 정신을 달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욕을 해댈 수도 있다.  타이트한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욕설 대화로나마 해소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언어 습관과 문화가 좀체 고쳐지지 않는 것은 홀든이 겪고 있는 현실처럼 비이상적인 사회적, 심리적 환경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집이나 학교,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그 불만이 욕설이나 비속어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 이라는 말처럼 청소년들의 욕설문화는 청소년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재미를 더하는 추임새나, 또래 집단에서 남보다 강해 보이려는 화법 정도로 알고 있다면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들어 단호하게 지도해야 한다. 듣는 이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하거나 서로 높임말을 쓰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바른 언어습관로 개선되는 것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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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0-0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쩐다>라는 말을 우리 아이들도 써요. 그게 좋게 들리지 않는데도 아이들 사이에선 그런게 그냥 문화처럼 여겨지나봐요. 어제는 딸이 야리는게 뭐냐고 묻대요.
정말 습관이란건 오랜 시간 걸려 들여지는 건데, 아이들은 나쁜건, 금방 배워요. 튀어 보이고 싶은 마음, 또래에 속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 때문인 것 같은데, 저도 요새 고민이 많은 부분이라 잘 읽고 가요~

cyrus 2011-10-13 17:21   좋아요 0 | URL
역시 어느 지역에 가도 그런 말을 쓰는군요 ㅎㅎ 사실 저도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보면 '쩐다' 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

stella.K 2011-10-0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이제야 다루고 있다는 게 참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난 금요일이던가?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실태에 대해서 나왔는데 청소년은 한단어 걸러서 욕 아니면 비속어를 한다고 하더군.
이제부턴 아이들의 언어 습관도 성적에 반영을 한다니 욕이 좀 줄어들까?
늦었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하는데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야.

cyrus 2011-10-13 17:23   좋아요 0 | URL
한글날 오기 전부터 조선일보에서만 청소년들의 욕설 실태에 관한
기사문이 나왔더군요. 정말로 청소년이나 제 또래의 대화는
욕부터 시작해서 욕부터 끝나요. ^^;;
그런데 욕을 한다고해서 제제를 가해도 쉽게 고쳐지지 못할거 같아요.

맥거핀 2011-10-10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청소년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욕설이 많기는 많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제가 예전에 중고등학교 다닐때도 얘들이 그 정도는 썼던 것 같기도 하니까 이것이 그 나이때만의 일시적인 현상일까..? 뭐 그런 생각도 들구요. 나이가 들면서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또 대체로 욕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깎아먹는다는 걸 아니까..뭐 그렇겠지요. 어떤 기사에서보니 청소녀들한테 그 욕의 어원을 자세히 설명해줬더니 안 쓰게 되는 효과가 있더라 그런 것도 있더라구요.

cyrus 2011-10-13 17:24   좋아요 0 | URL
네, 우리가 사용하는 욕설의 의미를 알게 되면 정말로 좋지 않는 의미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나 요즘 청소년들은 욕설의 나쁜 의미를
모른채 사용한다는게 문제죠. ^^

마녀고양이 2011-10-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솔직하게 욕설까진 아니더라도
비속어를 말하다보면, 잼나긴 해요. 저는 한때 (지금도?) '쌩깐다' 라는 말에 재미들려서.

버스 타다보면 정말 중학생들은 장난 아니더라구요.
여학생이고 남학생이고 'X발'이 안 들어가면 문장 형성이 안 되더군요.
머... 저는 한때이고 패거리 문화가 한창인 사춘기라 그렇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 험해지면 행동도 역시 험해지기 쉬워진다는게 문제라는 생각은 들어요.

시루스님, 요즘 바쁘시죠? ^^

cyrus 2011-10-13 17: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대화하는데 욕설이 없으면 뭔가 이상하고요 ㅋㅋㅋ
저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욕설은 안 하는데, 정말로 화가 나고
짜증나면 욕설이 튀어나와요. 기분이 안 좋을 때 욕설이라고 하면
화가 좀 풀리거든요 ^^;;

다음주부터 시험기간이라 뒤늦게서야 댓글 확인하게 되었어요. ^^;;
 
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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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공화국' 의 현실

현재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1순위는 연예인이 된지 오래다. 대형 연예기획사에선 각자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교육시키며 호시탐탐 연예계 데뷔를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예기획사 오디션에서 탈락한 연예계 지망생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쉴새 없이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 중 스타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올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여주인공인 구애정(공효진 분)은 한때 잘 나가는 걸그룹 '국보소녀' 의 멤버였으나 비호감 연예인으로 전락하여 방송 활동과 업소 행사로 근근이 살아간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들의 세계에는 구애정처럼 방송 출연 한 번 하는데도 변변치 못하여 가난과 싸우는 생계형 연예인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근본적으로 인기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수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연예인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이 생계형인 게 연예계의 현실이다.

연예계 지망생의 수가 급증하게 되자 이와 관련된 신종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다.  연예인 지망생을 상대로 금품을 받거나 기획사와 PD간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 연예계 협회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을 횡령하는 등 연예기 비리뿐만 아니라 연예인 지망생들을 노리는 성상납마저 일어나고 있다.   올해 적발된 연예 비리에 관련된 피해자의 97%는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화려한 문화산업 이면에 숨겨진 가난과 비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방송, 영화 그리고 음악, 스포츠 등을 아울러 말하는 '문화산업' 은 특정 분야가 창출하는 고용이나 이윤 등의 경제학적 가치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K-POP을 중심으로 한 아이돌 가수들의 한류 열풍은 국가 이미지만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4조원이라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 불리 먹으면서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화려할 것만 같은 '문화산업' 의 현실 속에는 말 못하는 가난과 비애가 있다. 일명 문화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 즉 연예인, 연예인을 탄생시키는 기획자들까지 문화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는 대다수는 밥 세 끼 챙겨먹지 못하는 형편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계인 연예인들만 있는게 아니라 심지어 영화, 드라마를 한 편을 만드는 영화감독, 드라마 작가까지 혼자 가난에 시달리다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문화로 먹고 산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통해 한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한 우석훈은 이번에는 <문화로 먹고살기>를 통해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한국 문화산업 시스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방송, 출판, 영화, 연극, 가요, 스포츠 등 문화산업이라고 포함될 수 있는 폭넓은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예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민주당 소속 전병헌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방송출연 등급별 출연료를 공개하고 가수들에 대한 처우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국세청에서 발표된 원천징수 소득세를 역추산한 결과, 가수 월평균 수입은 80만원으로 월평균 소득 150만원인 배우에 비해 소득 수준이 월등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 한류스타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는 한국에서는 회당 16만원의 최저 출연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들의 천차만별 방송 출연료가 나오게 된 원인은 다양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버라이어티쇼의 등장과 관련된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버라이어티쇼는 신인 연예인을 데뷔시켜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등용문으로서의 목적보다는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국민적 인지도를 갖춘 연예인들의 상징자산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2차시장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pp 62)   

연예계 출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된다면 신인 연예인 데뷔는 어려워지며 특히 20대 연예인들의 활동이 쉽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 사회가 젋은층이 줄어들고 대신에 노년층이 증가하는 고령화 사회인 것처럼 연예계에도 인지도가 높은 30대 후반, 40대 중반 연예인들이 많은 고령화 현상이 될 수 있다.   

연예계 진출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근본적인 원인에는 시청률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방송의 특징도 한 몫 하고 있다.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 연예인보다는 국민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연예인 출연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폐쇄적인 연예시장 구조는 연예들끼리 방송 출연에 혈안이 되어 서로 경쟁해야하는 잔인한 현실을 만들고 있다.    

  

 

 문화로 먹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저자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을 사람 대신 화물을 잔뜩 실어 수출선으로 바꾸려는 행위에 비유했다.  문화를 팽창의 논리로만 보았지, 재생산의 눈으로는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이 발달되고 있는 과정보다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경제적인 결과에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K-POP 열풍으로 인해 아이돌 가수들의 국제적 위상은 높았지만 이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위상은 낮기만 하다. 90년대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가수라면 앨범 판매량이 100만 장 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10만 장 이상 팔려야 앨범 판매량이 높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문화산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증가하는 반면에 문화산업과 관련된 대중들의 경제적 지출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우석훈 소장은 우리나라 문화산업 지출이 줄어든 이유를 '승자독식' , '빈익빈 부익부' 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의 생태계적 구조에서 찾고 있다.    우리 문화산업 전반에 파고든 토건산업적 사고방식은 문화산업의 문화 생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에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수익에만 강조하게 되었다.   문화 생산자들은 그저 경제적 이익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의 상품처럼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산업 발달을 위해서 돈만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고 우석훈 소장은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문화' 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문화 덕분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문화 생산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문화산업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미 문화예술 영역에 들어와있는 문화 생산자들이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데에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특히 가난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드라마 작가의 자살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사건 이후로  문화예술인들의 고용, 산재 보험을 골자로 한 '예술인 복지법' 을 입법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논의 과정 끝에 유보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입법 관련 소식이 감감무소식이다.   

새로운 가치를 지닌 문화가 탄생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좀더 보편적인 복지다.  정부가 문화예술의 '한류 열풍' 을 내세우면서도 문화인 또는 문화 기획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외면하게 되면 실속 있는 문화산업으로의 장기적 발전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문화 생산자 및 관련 종사자들을 배려하는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문화로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이도, 문화를 포기하지 못해 가난에 허덕이는 이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문화로 먹고 살기 위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 관련내용 참고 언론자료

[연예비리 14건 적발…방송사 PD·브로커 등 140명 검거]  한국경제  2011년 7월 21일 

[[국감파일]슈퍼주니어 1회 TV 출연료 16만원]  경향신문 2011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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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10-0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자가 그 생산물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문화에서 문화 생산자가 소외되는 시대로 바뀌었을 뿐이군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1750년, 디종 아카데미 현상 논문 공모전에서 무일푼으로 방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장 자크 루소는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일명 학예론)>라는 논문 한 편으로 인해 공모전 우승의 명예를 거머쥐는 동시에 '사회사상가' 라는 새로운 명함도 가지게 되었다.   

루소는 또다시 디종 아카데미 논문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는데 아카데미가 제시한 주제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 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가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인간이 왜 불평등한가' 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만 했고,굶주려야 했던 루소가 자신의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루소는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을 문명 그 자체로 보고 있다. 귀족과 같은 특정 계급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 인간의 문명 자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들과 계몽주의 사상가들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루소의 주장은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매우 진보적이었지만 '과거' 로 표현되고 있는 자연 상태로의 복귀를 꾀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적 사상' 이기도 했다.   

특히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계몽주의 사상과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루소의 절친한 친구이자 백과전서파에 활동한 디드로 역시 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때 친분적 교류를 맺었으나 학문적 입장 차이로 인해 철천지 원수(?)가 된 볼테르는 문명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들의 '소유' 행위가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생각한 루소의 주장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다.  

"이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의 철학이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창작과 비평사, pp 102)

그리고 루소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디종 아카데미는 칭찬 일색이었던 <학예론> 때의 반응과 다르게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야박한 평가를 내렸다.  결국 루소는 두 번째로 참가한 논문 공모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  

 

얀 브뤼헐 & 피터 파울 루벤스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1615년경 

   
  미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본능 속에 갖고 있었으며,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훈련된 이성 속에 갖고 있었다.  우선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서로간에 도덕적인 관계도, 분명한 의무도 갖고 있지 않아서 선인(善人)일 수도 악인일 수도 없었으며, 악덕도 미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pp 78)  
   

   

루소에 따르면 원초적 자연상태의 인간은 행복하게 자족하는 존재이자 선악 개념에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보존의 본능에 맡겨져 서로 고립되어 생활하고, 그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전념하였다. 자연인은 미덕도 악덕도 모르고, 신체적 불평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등하였다.    루소의 입장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저마다 자유롭고 평등하여 생존을 위한 자연권을 추구하기 위해서 악하다고 보는 일명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라는 홉스의 견해를 부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개념과 감정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유순해지고 관계가 확립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pp 103) 

  

그러나 자연상태의 인간은 공동체 경험 속에서 파괴되고 만다. 비교의식과 우월성에 대한 욕구가 소유욕과 결합하면서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분업과 가족, 사유재산의 도입을 포함하는 일련의 발전과정에 의해 자연상태에서의 능력과 자질의 자연적 불평등은 시민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으로 진화된다.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더 권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pp 45)

 

루소는 지배와 굴종, 폭력과 약탈이 '소유' 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과 동등하게 여겨짐으로써 평등은 깨지고, 무질서의 불평등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사유제도의 등장과 함께 평등은 사라졌다. 사유제도는 합의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정치적 불평등을 야기시켰다.  이윽고 부자의 횡령과 빈자의 약탈이 시작돼 무서운 전쟁 상태에 이른다. 부자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계약에 의한 여러 가지 불평등,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주인과 노예의 상태를 제도화한다.

  


  시대를 넘어 지속되는 불평등

결국 이러한 탐구의 과정 끝에 루소가 제시한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루소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끝까지 제시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그토록 자유롭고 불평등에서 해방된 존재라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다. 앞서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 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상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루소는 <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 라는 일종의 대화록에서 "인간의 본성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한번 잃어버린 순수성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고 밝힌 바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해제, pp 158)    루소 자신도 역사의 움직임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Occupy Wall street(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또한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와 제도에 주된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최근 미국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월 스트리트 거리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Occupy Wall street(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현상이 그 예이다.  타락한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인류는 모두 불평등하다' 라고 말했듯이 사회 불평등은 시대를 넘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루소의 충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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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05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읽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cyrus의 글은 깊이가 있는것 같아요^^

cyrus 2011-10-07 17:26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요즘에는 글을 쓸 때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중이에요.
그렇게 쓰다보니 문맥상 안 맞는 부분도 많이 있고요.. ^^;;

빵가게재습격 2011-10-0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루소가 제기한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책'은 <사회계약론>입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홉스에 반하는 느낌의 저작이라면, <사회계약론>은 홉스와 로크의 논의를 프랑스식으로 계승한 느낌의 저작이고요. 한 번 들춰보시길... 글 읽어보고 몇마디 첨언합니다.

cyrus 2011-10-07 17:27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 그래도 <사회계약론>을 읽어보려고 했었어요. 요즘 수업 시간에
루소의 사상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있고해서 기회를 삼아 요즘
루소의 저작을 읽고 있었답니다.

2011-10-05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7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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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93] 위대한 개츠비

 

 

  삶은 풍요로웠지만 정신적으로 부족했던 남자, 개츠비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 다양하면서도 개성있는 성격을 가진 소설 속 인물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을 가진 인물들도 종종 발견하곤 한다.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같은 경우에는 올해만 해도 여러번 읽었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경우에는 각각 민음사와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출간한 번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개츠비라는 인물이 낯설지가 않다.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한 문학동네와 올해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 번역본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두 소설의 작가는 미국 출신이며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책을 읽기 위해서 몇 페이지를 펼처보는 순간, 처음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해 별로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사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욕설만 내뱉는 홀든의 그런 모습이 싫은 것처럼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부를 축적하여 아메라카 드림을 꿈꾸었지만 한 순간의 오해로 인해 허망하게 죽음을 맞게 된 개츠비가 그렇게 위대해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의 죽음이 너무 허무할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모습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달라지듯이 피츠제럴드의 소설 역시 그랬다.   여러 번 읽고나니 개츠비라는 남자에 대해 연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량하고 경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부르주아, 그러나 모든 걸 가진 척했지만 결핍으로 가득했던 남자,  그가 바로 제이 개츠비였다. 

 

 

 어두운 재즈 시대에 자란 한 송이 민들레꽃, 개츠비

중서부 출신의 가난한 청년 제이 개츠비는 군 복무 중 미모의 데이지 페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중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고 기다린다던 데이지는 곧 시카고 출신의 부자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종전 후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결혼 사실을 알고 그녀를 되찾고자 롱아일랜드에 대저택을 산다. 여성관계가 복잡한 톰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정부가 있고, 데이지도 알고 있으나 풍족한 생활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톰의 곁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개츠비가 나타난 것이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머틀의 남편 윌슨이 서부로 가자고 채근하자 광란 상태에 빠진 머틀은 거리로 뛰쳐나가다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어 사망하고 윌슨은 아내를 죽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머틀을 죽게 한 것이 개츠비라고 알고 있는 톰은 윌슨에게 개츠비의 집을 가르쳐 줌으로써 자기 가정의 위험분자를 제거할 기회로 삼는다. 윌슨의 총을 맞고 개츠비는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개츠비는 3년 동안 번 돈으로 큰 저택을 사고 호사 주말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모은다. 단지 첫사랑을 만나보려는 일편단심에서다. 혹 데이지가 들르지 않나 기다리다 결국 그녀의 사촌 닉 갤러웨이 집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아주 극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닉은 두 사람을 소개하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자 개츠비는 우리는 전에 만났다고 말하고, 데이지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다고 받는다. 개츠비는 5년 만에 보는 것이라 말하고 오는 11월이면 꼭 5년이 된다고 덧붙인다. 데이지와 헤어진 후의 날짜를 꼬박꼬박 세고 있었던 것이다.    

한평생 데이지라는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는 청교도적 경건함과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한,  20세기 초 미국의 재즈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자라난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그러나 꽃이파리를 펼치기에는 거대한 재즈 시대의 사회는 늘 어두웠고 너무나 감정이 메마른 지대였다.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얻고자 고군분투하는 개츠비. 그러나 상류사회의 이기주의에 희생되는 것은 낭만주의자 개츠비다.  그의 대저택의 불은 꺼지고, 작품 속의 사랑은 모두 막을 내린다.  꿈의 완결편인 데이지를 차지하겠다는 개츠비의 순정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부르짖는 사회와는 맞지 않았다.  이 점을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는 '위대한' 이라는 반어적인 의미의 수식어를 붙였던 것일까?  

<위대한 개츠비>가 집필되었던 20세기 초 미국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누구나 부자가 되고 미인을 차지하고, 밤마다 파티를 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개츠비는 재즈 시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빼어닮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개츠비가 단지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인 것만은 아니다.  개츠비의 모습에는 불안정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살아가야하는 '88만원 세대'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하는 '삼포세대' 라는 암울한 명함 한 장을 받게 된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개츠비의 어이없는 죽음 못지 않게 더욱 불운한 사실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은 개츠비처럼 경쟁과 이기심으로만 가득찬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사랑' 이라는 낭만이라는 감정마저도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노력 끝에 거부가 된 개츠비의 아메리칸 드림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불의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평생 부와 명예를 추구하면서도 낭만과 순정을 버릴 수 없었던 그의 원대한 꿈은 소설이 출간된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삶의 포부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 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pp 255)

 

이것은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동시대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 '88만원 세대' , '삼포세대' 를 향한 각성의 외침이기도 하다. 허무를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안개 너머 비치는 희미한 초록색 불빛,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 수 있었던 개츠비의 삶. 그 위대함을 가슴에 품은 채 말이다.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찾아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결국 자신의 파멸로 나아간 개츠비의 인생은 그럼에도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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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0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시루스님의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접하네요. ^^전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이 읽고 글을 써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제 시선이라는 것이 웃겨서 다양하게 보고자 하지만 어딘가에 고정돼 책을 바라 본다고 생각들거든요.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에 읽게 됐는데 전 그닥 느낌을 받지 못 했어요. 삼류드라마를 본다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제와서 시루스님의 리뷰를 보니 그런 오해를 싹 사라지게 하네요. ^^ 전 참 시루스님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쉬운 책을 읽는 요즘 세태에 시루스님의 독서는 그야말로 제가 20대 때 그토록 원하던 청년상이에요. ㅋㅋ 완전 멋져!

cyrus 2011-10-05 00:03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랬어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요.
사실 피츠제럴드의 이 소설 역시 처음에 출간되었을 때는 통속소설처럼
반응이 냉담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암울했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고전이라고 불릴 이유가 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