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왜 어떤 기업은 위대한 기업으로 건재한 반면, 다른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몰락하는가
짐 콜린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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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운명은 짧고 기술은 길다

부불삼세, 빈불삼세 (富不三世, 貧不三世) 

부자는 3대를 못가고, 가난도 3대를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의 변화는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 속도는 그렇지 않다. 불과 몇 년, 몇 달 아니 자고 나면 세상이 뒤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기업의 수명도 과거보다 훨씬 짧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이라는 것이라는 통설이 자리잡고 있지만 현재의 급변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기업의 평균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신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찾은 기업은 성장이 가능했지만 성공에 대한 지나친 오만(Hubris)에 빠진 기업들은 역사의 무덤 속에 묻혀 버리게 된다.

세계 카메라시장을 장악했던 코닥의 흥망성쇠는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기업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코닥의 몰락    

 

코닥의 역사는 18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유리판 필름은 대단한 기술이었다.   코닥은 그 후 카메라를 시판하기 시작했고 이처럼 코닥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싼 가격으로 제품을 시장에 내놓자 소비자들은 열광하였다. 추억을 현실속의 기록으로 남겨주는 기업으로, 카메라는 세계인들이 꼭 지녀야 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코닥은 잊혀진 기업이 되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필름의 대명사 역할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변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닥은 디지털 시대가 되면 플라스틱 필름이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서야 자신의 발등에 불똥이 튄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코닥은 뒤늦게 디지털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여전기 코닥은 전성기의 영광과 추억에 집착했다. 디지털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해오던 기존의 필름 카메라 사업 투자 비중은 오히려 확대했다.

신기술의 디지털 제품을 내놓으면 기존 시장에서 강점을 갖고 있던 아날로그식 필름 재고가 소진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일까?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대세를 읽지 못한 대가는 의외로 컸다. 시장의 반응은 혹독했다. 일본의 캐논이 디지털 시장을 석권하며 번성하고 있는 동안, 코닥은그렇게 몰락의 길을 걸어나갔다.  

  

 

  기업 몰락의 5단계  

아무리 뛰어난 기업도 언젠가는 몰락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떤 기업은 위기를 극복해 다시 뛰어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코닥이나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해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사례를 통해서 기업의 몰락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여 몰락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경영 구루 짐 콜린스는 수많은 자료검증을 토대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에 잘 나가던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몰락 1단계는 성공을 당연시하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요인을 잊을 때다.  성공에 취해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사업에는 운도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망해가는 기업은 행운으로 얻은 성공마저도 실력으로 거뒀다고 착각해 버린다. 경기가 좋아 물건이 잘 팔려도, 제품이 훌륭해서 판매가 늘었다며 좋아하는 식이다. 그러곤 앞으로 사업이 더 뻗어나가리라 믿는다.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그간의 승리를 바탕으로 여기저기로 사업을 넓혀 나가게 되며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원래의 사업에 소홀해진다.  

3단계는 위험 가능성과 위기 경고를 부정한다.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업 판매 성적이 예전만큼 좋지 못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뭔가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아야 할 테다. 그럼에도 임직원들은 상황 탓만 한다.  이때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매달리기도 한다. 인원을 떨구고 비용을 줄인다며 법석을 떤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기업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4단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시기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기업은 어려움을 한번에 날려줄 인재를 찾아 헤맨다. 여기저기서 변화와 혁신을 외쳐댄다. 이들은 그동안 다져왔던 기업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느라 힘을 쏟아보지만 반짝 성과가 날 뿐 오래 가지 못한다.

마지막 5단계는 기업의 생명력이 소멸되는 최종적인 단계이다. 기업은 부도 절차를 밝게 되지만 모든 기업이 몰락의 성적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 기사회생하는 기업들도 있다.   

   

 

  위대한 기업이란...?

짐 콜린스는 기업이 위대해지는 과정보다 몰락하는 길이 더 다양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몰락 과정이 반드시 책에서 제시되는 5단계 순서대로 거치는 것이 아니며  한 두 단계 빠르게 거치는 기업이 있는 반면에 수십 년동안 거치는 기업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정이 어떻든간에 몰락한 기업의 공통점은 위기의 길로 인도하는 관습이 몰락을 자초하게 만들었으며 기업 스스로 성공의 덫에 걸려버렸다는 점이다.  성공에의 도취가 바로 몰락의 덫으로 바뀌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에 저자가 출간했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통해서 대표적인 성공 기업의 사례로 소개된 모토로라, HP 역시 몰락의 5단계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흥망성쇠 방정식은 무척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스스로 유도하여 새로운 강점을 끊임없이 창출해내면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짐 콜린스는 현실 안주보다는 성장의 욕심에 눈이 먼 과도한 변화와 혁신 역시 스스로 기업의 몰락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 역시 실패의 서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공의 공식이 확실한만큼 성공의 덫을 피하기도 어렵다. 로마의 흥망성쇠가 그랬고,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시 초일류기업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짐 콜린스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경영인들에게 현실을 냉철하게, 해법은 착실하게 찾아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생존전략 상의 오류를 반면교사로 삼아 각각의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해 나아갈 것인가를 제시해주고 있다.  

경영 현장에 상존하는 위기와 위험신호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읽어내느냐에 따라서 그 기업의 진가를 결정짓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기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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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0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아주 좋군요!
코닥이 망한 건 여기서 첨 알았네요. 헉.
그렇죠. 문제는 욕심. 이기주의 입니다. 큰일났습니다.ㅜ
짐콜린스는 꽤 괜춘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ㅋㅋ

cyrus 2011-08-07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읽기전만 해도 한 번 망한 기업은 회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덕분에 기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경영 도서치고는 분량이 얇고 어렵지 않아서 괜찮았어요.
다음 학기 때부터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경영햑을 복수전공하게 되었거든요.
아마도 당분간은 경영학에 대해 알기 위해서 경영 도서도 읽어야할거 같아요.
^^;;

마녀고양이 2011-08-0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는 방법은 하나이나, 죽는 방법은 수천가지다 와 비슷하군요.
흥한 것은 언젠가는 망한다죠... 이는 하나의 교훈같아요, 겸손하라는.
(음.. 우리나라 누군가들에게 들려주고 싶군요. ^^)

cyrus 2011-08-07 00:06   좋아요 0 | URL
짐 콜린스는 점점 파산에 치닫고 있는 기업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소수의 기업에만 적용될 뿐 나머지는
CEO의 역량이나 그 밖의 외부 조건들 때문에 살아남기가 불가능할거 같아요,
결국에는 흥망성쇠의 진리는 부정할 수 없을듯합니다.
 

   

  모든 남자들이 생각하는 '그것' 

  

 

 

 

예전에 인터넷 서핑 중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는, 완전히 백지로만 구성된 책이 영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책 제목은 바로 What Every Man Thinks About Apart From Sex, 직역하면 ' 섹스를 제외하고 모든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 ' 이다.   가격은 4.69파운드, 원화로는 약 8540원이다.  

책 분량은 200페이지 정도인데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글자 한 자도 찾아볼 수 없는 백지뿐이다. 책이 아니라 일반 연습장이나 다름없는 형식의 틀을 깨뜨린 파격적인 형식의 책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셰리던 시무브의 집필 의도가 재미있다. 수 십 년의 연구 끝에 그가 얻은 결론은 남자들은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 목표는 남성과 똑같이 섹스를 제외하고 모든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이란다.    

이 책은 영국에서만 판매부수를 10만 권을 넘겼으며 특히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책이 국내에서 발간되었다는 사실은 카스피님의 서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제목은 ' 남자는 섹스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 ' .  제목이 노골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성 독자들의 정곡을 제대로 찌르고 있다.     

 

' 남자는 섹스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 ' 서지정보

   

카스피님 말씀대로 정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몇 부 정도 팔리는지 기대되지만 무엇보다도 만약에 이 책을 구입하게 된다면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궁금하다.  영국의 학생들은 연습장으로 사용한다고 하던데 한창 성적 호기심과 욕구가 충만한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이 책을 단순히 공부하거나 일반적인 낙서 용도의 연습장으로 사용했을까?  

 

   

  막가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성 문화    

이 독특한 구성의 책을 쓴 저자가 괴짜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결혼을 내린 ' 남자가 항상 먼저 생각하는 것 = Sex ' 는 이미 그 전에 수많은 연구에서도 증명되어 온 발칙한(?) 진리다.  예전에 이성과의 첫 소개팅에서 남자의 머리 속에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섹스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내 주위 동성 친구들의 모습을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은 확실하다.  

방금 백지로 된 책의 용도에 대해서 무척 궁금하다고 밝혔는데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영국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이 책을 단순한 연습장으로 사용하지 않을거 같다.    정말 책 제목대로 백지로 된 책에 자신들의 성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다거나 야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있다.   

좀 과장된 상상을 하자면 사드 후작에 견줄만한 노골적이면서도 포르노를 방불케하는 글도 쓰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섹스와 관련된 남성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성경험을 동성에게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줄 안다. 이성과의 하룻밤을 전쟁에 승리한마냥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여성들에게는 불쾌한 비유일 수도 있지만 이런 남자들에게 성 경험 상대 이성은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되는 전리품과 똑같은 것이다.    

이런 남성의 사고방식은 여성보다 성에 관심이 많이 가지게되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기인하고 있지만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또 다른 부차적인 원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고착화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70%가 혼전 성관계를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성경험을 공공연하게 포털 사이트에 게시할 정도로 성에 대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인식이 심각하다.

 

   
 

 

'하룻밤' 후기에 인증샷까지… 막가는 대학생 性문화   

조선일보 2011년 7월 16일

 
   

 

  

  문제는 대한민국 남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성교육이다  

우리나라도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방관적인 태도로 일돤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올바르고 제대로 된 성교육에 대한 제도가 체계적으로 도입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풍기문란한 행위에 불과하다.   

'막장' 성 문화는 결국에는 '막장' 성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잔악무도한 성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처음 만난 이성을 제대로 서 있지 모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로 만들어놓고 은밀한 신체 부위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포털 사이트에 올린다거나 한 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 범죄 사건을 줄이기 위해서 성범죄자 신상공개 사이트가 개설되었고 화학적 거세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 범죄를 줄이기 위한 정부가 내놓안 방안들은 현재 제도 도입의 효과에 대해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며 이미 발생한 행위를 이제와서 막아보려는듯한 사후약방문(死後藥訪問)의 뉘앙스를 지울 수가 없다.  

깨진 독항아리에서 새는 물줄기를 막으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독항아리가 또 다시 깨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법.

화학적 거세를 통해서 성 범죄자들의 지나친 성적 욕구들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성교육을 접해보지 못한 채 왜곡된 성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한꺼번에 바꾸기가 어렵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성교육이라고 하면 부담스럽고, 막막하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성에 대한 인식이 건강하고 밝은 생각보다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이 필요한 줄 알면서도 방법을 잘 몰라서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단순히 남들에게 떳덧히 자랑한다고해서 우리나라 성문화가 개방적이라고 할 수 없다. 몸을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부터가 바른 성 가치관이 기본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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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8-0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저책 발간되었군요^^ 얼마나 팔렸는지 갑자기 매우 심하게 궁금하네요.

그런데 제 주위에 있는 남성분들은 모두 도를 닦는 듯한 자세로 살던데 그게 다 내숭이었을까요? 역시나 심하게 궁금하네요^^

cyrus 2011-08-05 15:17   좋아요 0 | URL
대대적인 홍보가 없는 이상 꽤 많이 팔려나갈지 않을거 같아요.
연령별대로 남성의 마음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하던데 그래도 공통점은 남성은
여성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거 같아요. 군 복무 시절때도 그렇고 제 주변 또래 남자들을 보면 성경험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성을 주제로 대화를 많이 하거든요. ^^;;

카스피 2011-08-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 의대생의 성추행 사건에서 볼수 있듯이 이른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의 성에 관한 의식이 아직도 음성적이고 포르노적인것을 알수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기성세대의 성에 대한 비뚤어진 의식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을 하지 않으므로써 청소년과 성을 떨어뜨려 놓을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나본데 참 어의없는 생각이지요.요즘 인터넷 몇번만 클릭해 보면 그렇고 그런 포르노를 아주 쉽게 볼수 있는 세상인데,그런 음성적 정보에만 매달리다 보면 결국은 비뚤어진 성의식만을 갖게 되기 때문이죠.
cyrus님 말씀처럼 제대로된 성교육을 통해서 보다 건정한 성 윤리관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글쎄 국내 교육환경상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군요ㅡ.ㅡ

cyrus 2011-08-07 00:07   좋아요 0 | URL
요즘엔 인터넷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도 성인물을 쉽게 볼 수 있다더군요.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제도 위주라서 정말 제대로 된 성교육이 도입되는데 현실상 불가능할거 같아요. ^^;;

맥거핀 2011-08-06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데없는 생각이겠지만, 저는 이 글을 읽으니 영화 <방자전>에서 '송새벽'이 맡았던 배역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저는 인생의 목표가 단순해요. 최대한 많은 여자랑 자는 것.'이라고 했던...아마도 그 대사를 들으면서 찔리는 남자들이 꽤 여럿 있었을듯한 것은 저만의 생각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조선일보의 저 기사는 쓸데없이 자세하네요. 요즘 조선일보 포탈에 오른 제목들을 보면, 이게 일간지인지, 삼류찌라시인지 모를 지경이던데...저런 기사를 올리는 그 속이 빤합니다.;;

cyrus 2011-08-07 00:11   좋아요 0 | URL
짧은 한 줄의 대사가 뼈가 있는데요.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제 주변 친구 한 명이 카사노바 유형이 있거든요. ^^;;

비로그인 2011-08-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생각만 하고 사는건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재밌는 책이네요. ㅎㅎ

cyrus 2011-08-07 00:13   좋아요 0 | URL
어느 정도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아이디어가 돋보인 책인거 같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1-08-0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문제는 노인들의 성병문제입니다.약 10여년전 정부에서 파고다 공원 등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의 남자노인들의 성병감염 실태를 조사했는데 그 감염률이 엄청났다고 하더군요.주로 남자노인들이 나이들고 은퇴한 매춘여성들과 성관계를 맺기 때문이죠.성병이 걸렸으면서도 계속 성을 사는 남자노인들 이야기를 들으면 성욕은 슬프다는 생각이 들어요.요즘은 홀로 된 노인들의 재혼도 많은데 이런 성병보균자들은 새로 얻은 할머니에게 성병을 옮기니까 이것도 문제지요.노인들은 아무래도 병에 대한 저항력이 젊은이나 중년보다 약하니까요.

cyrus 2011-08-07 00:17   좋아요 0 | URL
노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내용이 확실하지 않지만 올해 최근 기사에서 성 범죄자 연령대별 조사 결과 노인들의 성범죄율이 두드러지게 높아졌다는 것을 본 적이 있거든요. 좀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독거노인이 많아지고 있는만큼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어서 결국에는 사창가로 향할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부부들은 나이가 들수록 성생활도 줄어드는 것도 한 몫하고
있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08-07 14:49   좋아요 0 | URL
현직 매춘여성들은 늙은 남자 별로 안 좋아해요.결국 은퇴해서 나이든 전직 매춘여성들이 공원같이 노인들 많이 나오는 곳을 어슬렁거리다가 쇼쇼숑~ 하는 거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젊은 여자들이 남자노인들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이야기를 점점 많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8-0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이디어 짱!!! 근데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요즘 연습장도 비싸요. 아마 두껍다면 종이만으로도 그 가격 나올 듯.ㅋㅋㅋ 남자들은 정말 그 생각만 하는지 한때 저도 무척 궁금했어요. 그럼 닉쿤도, 현빈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1-08-07 00: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1학기 때 나름 공부한답시고 연습장 몇 권 사뒀는데 별로 쓰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다음부턴 정리가 필요한 과목을 듣지 않는 이상 다음부턴
연습장을 구입 안 하려고해요.

현빈이란 닉쿤은,,ㅋㅋ 글쎄요..? ^^;;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지난 주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박경신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자 성기사진을 올린데 이어 여성의 음부를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을 게재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 촌스럽게 아직도 이런 것 갖고 논쟁해야하나? ” 라며  “쿠르베의 그림은 원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소유하고 있던 것이며 라캉 사후 유족이 상승세 대신 국가에 헌납했고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다” 라며 박경신의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박경신 관련한 비방 기사들은 21세기에 참으로 한심한 일이며 " 평소엔 ’하의실종‘ 어쩌고 선정적으로 기사를 쓰다가 왜 이런 맥락에서 갑자기 유교 탈레반으로 돌변하는 건지“ 라고 덧붙였다.

이어 진중권은 “방통심의위원들을 위한 현대예술” 이란글과 함께 남녀 성기가 묘사되거나 이미지가 대입된 명화들을 트위터에 게재하며 “방통심의위 자체를 해체시켜야 합니다. 21세기에 그런 검열기관이 왜 필요한지..대한민국이 무슨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영토도 아니고..” 라고 전했다. 
  

  

 귀스타브 쿠르베 <만남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년 

화가 자신의 후원자인 알프레드 브뤼야스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에 고급스럽게 잘 차려 입고 옆에 하인까지 대동한 사람이 알프레드 브뤼야스이며 왼쪽에 허름한 복장에 등에 휴대용 화구를 메고 있는 사람이 화가 쿠르베이다. 쿠르베는 단지 특별한 것이 없는 경험적인 순간을 화폭에 담아냈지만 출품 당시 관객들로부터 냉담한 반응과 조롱을 받아야했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속한 후원자 앞에서 격조 없이 당당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 속 화가의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쿠르베의 저 당당한 모습은 파리 부르주아들의 눈에는 상당히 도발적인 자세로 보였던 것이다. 

  

남자 성기 사진 게재 논란이 일어나면서 논란의 진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박경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동안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랐지만 '박경신 블로그' 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수백 년 전에 태어난 화가 쿠르베가 자신의 그림 <세상의 근원>과 함께 최고 3위까지 오르는 등 검색어 순위에 랭크되었다.  그것도 자신의 조국이 프랑스도 아닌, 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비록 검색어 순위에 등장한 순간은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자신과 동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프랑스 츨신의 화가들인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Top 10 축에도 껴보지도 못했던 것을 쿠르베는 자신이 그림 그림 한 장과 한국 네티즌들 덕분에(?) 사후 130여 년 만에 첫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나 역시 화제의 논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   

직접 문제가 된 박경신 블로그의 글을 읽어봤다.   역시 진중권이 왜 이 논란에 대해서 비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쿠르베의 그림이 올려진 글에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려져 있었는데 그림의 출처도 모르는채 그저 음란한 그림이라고 규정한 댓글이 많았다.   박경신이 이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진짜 남자 성기 사진처럼 포르노에서 볼 수 있는 '리얼' 여성 음부의 사진이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경신과 진중권이 언급했지만 음란한 그림이라고 규정한 여성의 음부 그림은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작품이며 현재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쿠르베라는 화가와 그가 그린 여성 음부 그림을 네티즌들이 모른다치더라도 더 웃긴 것은 이에 대한 언론매체들의 기사 내용이다.   쿠르베의 그림을 기사 원문에 게재해 당당히 기사 제목에 '음란사진' 이라고 올린 기사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주장, 즉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남성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박경신의 태도는  '오바' 였지만 이보다 더 '오바' 스러운 것은 단지 예술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남자 성기 사진과 같이 음란그림이 아닌, 그것도 '음란사진' 이라고 호들갑 떨었던 언론매체의 과민한 반응이었다. 

 

  

 

  서양화에 여성 누드가 많은 이유

   

  

 

 

 

 

   

   

 

19세기 인상주의 이전 서양의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여성의 모습에는 그저 '남성적인' 시선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 남성적인 시선에는 여성을 남성보다는 한 단계 낮은 피지배적이며 인간이 아닌 타자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비록 복제품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면 대부분 남성 누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만큼 여성이라는 존재는 '인간' 이라는 존재 규정에 벗어난 연약하면서도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누드로 그림을 그릴 수도, 조각상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이런 남성 모델 중심의 고대 미술의 취향은 근대 미술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고전주의와 귀족의 취향에 맞춰져 있는 미술 학교에서는 누드 실기를 시행하게 되면 무조건 남성 모델을 사용해야 했으며 절대로 여성 모델을 그릴 수 있는 기회조차 마련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여성의 신체에 대한 아름다움이 각광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여성 누드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예술의 터부를 깨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화가들은 여성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신화와 종교라는 주제를 빌린 것이다.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나 성녀와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신성한 대상을 그린답시고 세속적인 여성의 몸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는 남성적인 소유의 욕망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에 가장 적잘한 장르가 정물화라고 말했는데 존 버거의 말을 그대로 비유하자면 여성의 누드화는 여자의 몸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그리고 남성중심 사회에 가장 적절한 장르였던 것이다.     전시회에 찾아오는 남성 관객들은 화가의 여성 누드화를 구경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마네, 그림으로 파리 상류 사회를 도발하다    

근대 사회에 접어들수록 여성 누드화는 '남성' 화가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후원하는 '남성' 패트런(patron)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865년, 살롱전에서도 이전의 전시회와 다름 없이 벌거벗은 여인의 그려진 그림 한 점이 출품되었는데 관객들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온갖 야유와 비난을 쏟아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이전에는 <올랭피아>의 모델이 창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KBS 1TV <명작 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올랭피아>의 진짜 모델은 <풀밭 위의 점심>의 누드모델로 나선 빅토린 뫼랑이라는 사실이다.  빅토린 뫼랑은 <풀밭 위의 점심>뿐만 아니라 마네의 다른 그림 몇 점에도 등장하는 모델이다. 오늘날 쿠르베의 그림에 대한 음란성 논란처럼 <올랭피아> 역시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노골적인 나체 그림' 으로 조롱을 받아야했다.  수백년 전 '노골적인 나체 그림'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함께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논란의 그림이 바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평소에 벨라스케스와 같은 선대의 화가들을 모방했던 마네는 여성 누드화의 고전적인 구도를 자신의 누드화에 차용했고 남성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여성의 몸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차디찬 반응을 피할 수 없었다. 

살롱의 관객들인 마네의 <올랭피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표현한 묘사법에 있었다.    

별로 아릅답지도 않은 여자가 홀랑 나체를 드러내고, 그녀의 발치에는 검은 고양이가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흑인 여자가 전달된 꽃다발을 든 채 들어오고 있다.  

벌거벗은 여자, 검은 고양이 그리고 하녀로 보이는 흑인 여자.  

관객들은 <올랭피아>에 당시 파리 상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폭로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밤이 되면 남성 고객을 위해 몸을 파는 창부의 나체였고 창부의 방을 거쳐간 고객들 중에는 상류층 귀족들, 일명 사회지도층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모델은 여성 미의 상징인 비너스가 아니다.  관객들의 눈에는 아름다운 비너스의 누드가 아닌 이름 없는 싸구려 창녀의 누드가 그려진 음란한 그림으로 보였다. 자신들이 은밀하게 보던 창부의 나체를 고급스럽고 격조 높은 살롱 전시회에서 적나라하게 보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고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자신들이 숨기고 감춰왔던 은밀한 성적 욕구의 감정이 <올랭피아> 한 점 때문에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3년 

 

 

그러나 파리 상류 사회에 대한 마네의 도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 전에도 여성의 누드를 그렸다는 내용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마네는 이 그림을 구상하면서 자신에게 미술적 영감을 제공해준 벨라스케스의 기법을 모방하였으며 그저 단순히 목욕하는 여인이 그려진 그림을 제작하려고 염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롱의 반응은 냉담했으며 끝내 거절당하여  마네는 낙선전에 재출품하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거절당한 이유는 2년 후에 자신이 그리게 될 <올랭피아> 때 반응과 유사했다.  

여자의 누드가 너무 '사실적' 이라서.  

여성의 누드가 정중앙에 배치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이 그림을 불쾌하게 본 또 다른 이유는 여성의 누드를 둘러싼 남자 모델들이었다.   당시 파리 남성들이 입고 있었던 댄디 스타일 복장을 입은 채 중앙에 위치한 벌거벗은 여인에 둘러싸 앉아 있는 남자 모델들의 모습이 남성 관객들에게는 자신을 보는 '거울' 이었던 것이다.  2년 후에 <올랭피아>를 본 반응처럼 말이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감출줄만 알았던 자신들의 성적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공개되는듯한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마네는 그림으로 파리 상류 사회를 도발할 의도는 없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보들레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마네는 자신의 이름을 화단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에게도 자신의 미술을 후원하는 패트런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마네의 패트런은 르조슨 사령관이라는 군인이었다.   르조슨 사령관은 파리의 정계의 유력 인사들과 인맥을 맺고 있는 거물급 인사였다.  그는 마네의 그림 한 점을 구입하여 자신의 작업실에 걸어놓았는데 그의 작업실에 방문하는 유명 사회지도층과 귀족들은 르조슨 사령관이 구입한 그림 한 점을 통해서 마네의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르조슨 사령관이 구입한 그림이 바로 여성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렸다고해서 혹평을 받았던 <풀밭 위의 점심>이었다.

 

 

  박경신 블로그 사태에 대한 나의 생각  

우리나라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대중매체 또는 예술의 음란성 기준에 대해서 사회적인 논란이 많았다.  1992년에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서 시작되어 96년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2003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까지 음란물로 규정받아 법정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오늘날에는 청소년들이 듣는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 가사에 성적 뉘앙스가 있다고 판단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경신이 블로그에 올렸던 말대로 " 현재 대한민국의 음란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 "  하다.  음란한 목적에 올린 사진이라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서 공공성에 위반되는 행위이지만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로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 불거진 논란에 대해서 ' 내 생각은 이렇다 ' 라고 주장하고 싶은 여지는 없다.    

이번 박경신 블로그 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있는 기준의 의미에 대한 합일점을 찾으려한다기 보다 그저 '야하고 음란하다 ' 는 이유만으로 예술을 음란물로 매도하는 대중과 언론의 경박스러운 태도가 마네의 <올랭피아>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19세기 말에 무지한 파리 대중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베는 " 자신은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라고 말함으로써 실재하는 현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며 사실주의 미술을 강조하였다.  그가 실제로 에로티시즘에 의도하여 그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실주의 미술에 대한 쿠르베의 예술적 신념과 '세상의 근원' 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쿠르베는 자궁이 만들어낸 생명 탄생의 경험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구차하게 쿠르베의 그림을 싸잡아서 음란사진으로 규정하여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여성의 음부를 그저 '음란한 대상' 으로만 보이는, 혼자서 은밀하게 즐기려는 폐쇄적인 성 문화에 갇힌 우리들의 어두운 치부를 자신 스스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꼴인 셈이다.    

 

 

 

P.S> 요즘 사회적 논란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나름 주저리한 글입니다.  그래서 비논리적인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용이 있다면 필자의 취약한 문제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제 생각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빵가게재습격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저는 대학원생이 아니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어느 지방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부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적으로 많이 부족해서 독서나 알라딘 서재에 만나는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많이 모자란(?) 학생입니다. ^^;; 

가끔 제 댓글에 저를 대학원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서 사족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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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4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4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6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8-0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버자이너 문화사와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겠네요. 그리고 쿠르베의 그림은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포스터에도 등장해서 정면에 걸려 있죠. 다만 초점이 살짝 빗나가게 처리되어 있는데 만약 초점이 맞았다면 큰일날 뻔 했네요. 비 오는데 사이러스님 조심하시길..

cyrus 2011-08-04 23: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예전에 <명작 스캔들>이라는 심야에 방송되는 교양 프로그램에는
마네의 <올랭피아>를 소개했는데요, ^^;; 세인트님도 비 비해 없으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

마녀고양이 2011-08-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박경신 씨 논쟁은 진짜 우습죠...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낸 박경신 씨에게 저는 박수를 보냈답니다. 요즘
우리의 언론 통제, 문화 통제 진짜 우스워요.. 이리 갈팡 저리 갈팡.
코에 끼면 코걸이, 귀에 끼면 귀걸이.. 그런데 실제는 팔찌였다는 이런 상황 처럼요.

cyrus 2011-08-04 23:56   좋아요 0 | URL
확실한 기준 없이 음란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이에 대한 기준의 획일점을 찾아가는 것이 참 어려운거 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8-0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의 미술관]은 전부터 보고싶던 건데.. 쿠르베 그림 구경 좋고, 이 페이퍼 좋아요. 저는 미술사를 진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박경신님이 올린 사진의 의미가 그런 거였군요. 저는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넘겼었는데 뭐 사실 음란물의 기준도 그렇고, 사실 음란물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사람들의 관념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요.

cyrus 2011-08-07 00:54   좋아요 0 | URL
<지식의 미술관> 강추합니다. 저자가 이주헌 씨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미술사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개념들을 지루하지 않게 잘 설명해주고 있거든요. 저는 전에 글을 올리면 그림도 같이 올리다보니 저 역시 저절로
미술사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싶더라고요, ^^
 
오셀로 펭귄클래식 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석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그들은 이유가 있어서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질투심이 있어서 질투하는 거예요.  

질투는 저절로 잉태되고 저절로 태어나는 괴물이거든요.  

 

- 셰익스피어 <오셀로> 제3막 4장, 에밀리아의 대사 중에서, 펭귄클래식코리아, pp 208 -

 

 

 

  질투심 많은 사내의 슬픈 사연 

 

   
 

" 밥을 빌어서 죽을 쓸지라도 /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 마라 / 에 - 야, 어그여지야 - "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배따라기' 는 평안도 민요의 하나이며 뱃사람들의 고달프고 덧없는 생활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충동적인 감정과 본능 때문에 아내과 자신의 동생을 잃게 된 소석 속 무명의 인물이 20년 동안이나 정처 없이 헤매면서 부르는 것이 바로 배따라기다.    

독자는 김동인의 소설 속에서 흘러나오는 배따라기의 구슬픈 어조를 들을 수 없지만 배따라기를 부르는 주인공의 슬픈 사연은 들을 수 있다.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는 원래 영유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 자신의 아내랑 아우와 함께 살고 있었다.  부부의 금실도 좋았고 형수와 시동생의 사이도 원만할 정도로 그는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질투심이라는 마음 속에 생긴 불씨 하나가 행복한 시간을 한순간에 파괴해버렸다.  그는 평소에 친절하고 성품이 쾌활한 아내가 미남인 동생에게 친절한 것을 보고 이를 질투하게 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아내와 동생 사이를 의심하게 되어 자주 부부싸움을 일으켰다.  

어느 날 장에 가서 아내에게 줄 거울을 사 가지고 돌아온 그는 아내와 동생이 방 안에 든 쥐를 잡느라고 옷매무새를 흐트린 것을 보고는 결정적으로 오해하여 아내를 내쫓고 만다. 며칠 뒤 아내는 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동생은 형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후 형은 동생의 종적을 찾기 위해 배따라기를 부르면서 기나긴 유랑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질투심이 만들어낸 한 순간의 오해 때문에 평생동안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져야 했다.  

 

 

  질투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질투심이 많아 비극을 초래한 이야기는 비단 김동인의 소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문학사에서 유명한 질투의 화신에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있다.

500여 년이 지났지만 <오셀로>가 여전히 널리 읽히는 것은 질투심이 단지 그만의 옹졸한 성격이 자초한 불행하면서도 극적인 결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질투심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이고 어느 누구도 이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우자의 정조를 의심하는 '부정망상(不貞妄想)' 을 일컫는 '오셀로 증후군' 은 질투의 화신인 오셀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질투는 분노와 연결이 되고, 질투는 살인적인 속성을 지닌 날카로운 칼이 된다.  질투 본능은 작품 주인공 오셀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아고 한 사람이 오셀로를 파멸의 궁지로 몰아 넣을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오셀로를 향한 질투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이아고는 흑인인 주제에 아름다운 귀족의 딸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명장으로 칭송받는 오셀로를 인정할 수 없다.  질투란 그런 감정이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내 논리 안에서 인정할 수 없는 것, 바로 그 불편한 감정 말이다. 

이아고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오셀로의 인품을 믿지 않는다. 그는 이 칭송이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정의 화약고, 질투를 자극한다. 아무리 위대한 인격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누구나에게 질투는 있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이아고의 추측이 옳았다. 질투는 의심과 짝을 이룬다. 의심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할 때 더 치명적이다. 의심이란 함께 있지 않았던 시간이 만들어낸 궁금증의 그늘이다. 언제나 함께 할 수는 없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허감의 거리가 의심과 질투를 부추기게 된다.

  

   

  대화가 필요해  

 

 

데오도르 샤세리오 <데스데모나의 잠>  19세기경 

 

   
 

자신에게 곧 닥쳐 올 죽음의 운명을 데스데모나는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표졍이 애처롭게 느껴지면서도  

'순결' 을 상징하는 흰 색 드레스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창녀' 로 오해받아야하는 그녀의 서글픈 처지를 더욱 강조되고 있다

 
   

  

데스데모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목이 졸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오셀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반면 출신 성분과 피부색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오셀로는 이아고의 간계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 아내를 의심하고 만다.  결국 일방통행적 사랑은 살인이라는 충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고(事故)를 일으키고 말았다. 

좀 더 데스데모나를 존중하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러한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셀로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일방적이었고 비록 이아고의 계락이었지만 이미 아내의 부정에 대한 확고한 심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였기에 아내의 변론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그 어떠한 변명도 그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방적인 사랑 방법으로 인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충분한 대화를 가진다면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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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0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데이트도 맘놓고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데이트 폭력이 그렇게도 많고 맘대로 헤어지지도 못하고.
누구를 만나기 전에 내가 이 사람을 만나도 될만큼 성숙한가?
그런 것도 좀 생각해 봐야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셀로는 너무 우아한데가 있어요. 그죠?ㅠ

cyrus 2011-08-03 17:16   좋아요 0 | URL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가정폭력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는데
데이트 폭력 피해자로 여성이 많은 이유가 여전히 여성의 마음
속에는 남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얻어맞으면서도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오셀로는 아무래도 장르가 비극이다보니 잔인한 인간의 파멸을
참 우아하게 표현되고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연극으로도
나오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겠죠. ^^

마녀고양이 2011-08-0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완전 말되는걸요, 역시 고전이예요.
'원래 질투심이 있어서 질투하는 거예요.' 라는 말. 저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분노하고 짜증내고 질투한다면, 그것은 상대의 영향이 절반, 제 속에 넘치는 무엇이 절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어떤 때는 제 속에 넘치는 무엇이 절반도 넘을지 모르겠어요.

사랑이라,,, 저는 가끔 사랑은 자기애의 투사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나 봐요. 애정이란 단어가 더 좋아요.

cyrus 2011-08-03 17:17   좋아요 0 | URL
저는 저 대사 몇 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게 되면 정말 삶의 진리들이
담겨져 있거든요.

아이리시스 2011-08-0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셀로에 저런 멋진 대사가 나오는군요. 읽은 것 같은데 안 읽은 듯한 이 느낌은 뭐지?ㅎㅎ 질투심은 적이예요. 나를 발전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망가뜨리는. 그 질투심으로 차라리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게 나아요. 힘든 얘기지만요.

cyrus 2011-08-07 00:52   좋아요 0 | URL
<오셀로>는 아직 안 읽어봤는데 <햄릿>을 민음사랑 펭귄클래식 판본
다 같이 읽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조금은 번역이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나중에 민음사판 <오셀로>로 읽어보려고 하는데,,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펭귄 번역이 독서하는데 나았어요. 주석도 많았고요.

아이리시스 2011-08-07 01:18   좋아요 0 | URL
저는 번역까지는 안 따지지만 고전은 다른가 보더라구요. 꼭 참고할게요.^^ 오셀로랑 햄릿 끌려요. 셰익스피어 읽는 시루스님도 넘 멋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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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왕족의 말 못한 고민  

 

   
 

매사가 나를 고발하며 내 무딘 복수심을 채찍질하는구나!  허구한 날 하는 일이 먹고 자는 것뿐이라면, 사람이란 대체 뭐지?     (중략)   난 왜 ' 이 일을 해야 한다 ' 고 뇌까리고만 있는 거지?   그럴 만한 명분, 의지, 힘, 수단을 다 갖췄으면서도 말이야.  막중한 사례들이 나를 훈계하는구나.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제4막 5장 중 햄릿의 대사, pp 236, 펭귄클래식코리아 -

 
   

 

'햄릿' 이라고 하면 아마도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표적 인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맞다. 그는 매우 우유부단하고 나이 30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래서 결국엔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덴마크의 왕자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처음 읽는다거나 혹은 두 세 번 읽게 되면 이 젊은 덴마크의 왕자가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을 만큼 덕망이 있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친의 혼령을 본 이후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분노에 사로잡혀 미치광이 노릇을 할 뿐이지 그는 분명 사색적인 성향의 왕자임에는 틀립없다.  햄릿은 분명 정상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갈수록 우유부단한 면이 많이 부각되다보니 독자들 사이에서 극명한 평가로 엇갈려져 있다.  

 

햄릿뿐만 아니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황제와 왕족들 중에는 후대의 역사가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 많다. 

진시황. 그 이름은 최초로 중국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한 영웅이면서 폭군이라는 상반된 평가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출생부터 평범하지 않다.  공교롭게도 진시황 역시 햄릿처럼 기형적인 친자 관계를 안은채 세상에 등장했고 증명할 수 없는 역사적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자신의 기형적인 출생 비밀로 인해서 적잖이 고뇌를 겪어야했다.     햄릿은 선왕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삼촌과 결혼함으로써 조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친자라고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가 된 반면에 진시황은 사생아로 태어나 두 명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진나라를 다스려야했다.   진시황의 출생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여불위라는 사람의 존재로 거슬러 올러가게 된다.  

 

  

  나의 진짜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친척보다는 가깝고 혈육만큼은 못 되지!  

- <햄릿> 제1막 2장 중 햄릿의 대사, 같은 책 pp 102 -

 
   

 

전국시대 여불위라는 장사꾼은 진(秦)나라 왕손인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진나라의 소양왕은 연로했고, 그의 아들 안국군에게는 20여명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비(正妃)인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여불위는 자초의 가치를 알아보고,엄청난 자금력으로 자초가 화양부인의 양자가 되도록 힘쓴다.  나중에 자초는 태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는 재상이 된다.  멀리까지 내다볼 줄 아는 여불위의 시야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이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과 미래를 보는 시야를 가진 그 역시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비극적인 운명으로  종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여불위는 자신의 운명, 아니 진나라의 운명에 판도를 뒤바뀌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애첩인 조희를 자초에게 선사한 것이다.  자초와 결호한 조희는 왕후가 되었고 그녀가 낳은 여불위의 아들은 자초의 왕위를 승계했다. 그 아들이 바로 진시황이다.  

사마천은 <사기> ‘진시황본기’ 에선 진시황이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이라고 해놓고 같은 책 ‘여불위열전’ 에선 장양왕을 왕으로 만든 여불위의 아들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여불위가 이미 뱃속에 자신의 아이를 갖고 있던 애첩 조희를 장양왕에게 보내 그 아이가 대국을 있게 한 음모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진시황이라는 것이다.    

    

 

  진시황과 여불위, 복잡미묘한 관계

하지만 20대의 진시황에게는 복잡미묘한 출생 관계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태후와 환관과의 은밀한 내연 관계였다.   

마침 자신에게 날아온 익명의 투서 한 장이 진시황의 의혹을 증폭시켜주고 말았다.  투서에는 환관 노애는 진시황의 어머니 태후를 유혹하기 위하여 환관 행세를 하면서 접근한 것이며 노애와 태후의 내연의 관계를 맺어주게 한 사람이 바로 여불위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마천은 <사기>에서 태후의 음란한 행동을 그치기 위해서 여불위가 노애를 태후의 시종을 들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태후와 노애는 서로 정을 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에 <전국책>이라는 또 다른 사료에는 여불위와 노애는 서로 권력을 다투는 대립 관계라고 기록되어 있다.  엇갈린 기록으로 인해 노애와 태후와의 내연 관계에 여불위가 실제로 연루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여불위 역시 태후와 사사로이 정을 통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태후와 자신의 은밀한 관계가 진시황에게 발각되면 그동안 누리고 있던 부귀영화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다.  자신의 치명적인 비밀을 막기 위해서 노애를 불러들였건만 도리어 태후의 음란한 행동을 부채질하고 만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노애는 자신을 둘러싼 태후와의 내연 관계가 진시황의 귀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지만 이는 여불위의 몰락을 재촉하는 화근이 되었다.   다행히 그동안 공로 덕분에 여불위는 무거운 처벌 대신에 관직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진시황의 마음에는 여불위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만큼 여불위는 황제 다음으로 막강한 세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여불위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편지를 읽고난 뒤 여불위는 독주를 마시고 자살을 하고 만다.  

 

그대가 진나라에 무슨 공로가 있기에 진나라가 그대를 하남에 봉하고 10만 호의 식읍을 내렸소?  그대가 진나라와 무슨 친족 관계가 있기에 중부라고 불리오?   그대는 가족과 함께 촉 땅으로 옮겨 살도록 하시오.  

 - 사마천 <사기열전> '여불위열전' 중에서, 김원중 역, 민음사, pp 620~621 -     

 

사마천은 여불위가 진시황이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할까봐 자살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사가들은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라는 사마천의 기록이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기록의 진위성을 의심하고 있다.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라고 똑부러지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려던 진시황에게는 여불위의 존재가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환관과의 추찹한 내연관계에 중부라고 칭할 정도로 존경해온 여불위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젋은 진시황에게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궁정에서의 모의가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반란으로 거대한 정권을 무너지기도 하며 십년도 채우지 못하고 왕의 얼굴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권력 타툼의 장소나 다름 없는 궁정의 현실을 생각하면 진시황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첩의 자식' 이라는 콤플렉스

그런데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1장 '여불위의 숙청' 편에 들어있는 각주에 의하면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설이라는 기록은 진시황을 '친부를 죽인 사생아' 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마천이 정말로 진시황을 친부를 죽인 인정 없는 잔인한 황제로 묘사하기 위한 의도로 기록했을까?

진시황의 일생을 기록한 <사기본기>의 '진시황본기' 에는 정양왕이 여불위의 첩에 반해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진시황을 낳았다고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저자는 '여불위의 숙청' 편 각주에 " 사마천은 <사기> '여불위열전' 에서 이 설을 받아들였지만, '진시황본기' 에는 적지 않았다. " (pp 55)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내용만 가지고 사마천이 여불위 생부설을 부정하고 있다기에는 근거로 삼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진시황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왕족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라 첩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여불위가 생부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진시황에게는 자신이 첩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이 권력자로서의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만약에 이 사실이 궁정에 알려진다면 왕족으로서의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으며 훗날 권력을 확장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했지만 고독했던 권력가

현존하고 있는 사료를 통해서 진시황이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족함 없이 완벽할 것만 같았던 어린 진시황에게는 이런 사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단순한 고민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상황 속에서 두터운 신임과 존경을 보낸 '중부' 여불위가 은밀한 음모 관계에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알아버린 진시황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거나 다름없다.    

진시황은 중국의 황제이기 전에 번뇌와 불안에 시달려야하는 불완전한 '인간' 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매일 밤마다 환관이랑 놀아다니고 무한한 신뢰를 주었던 중부 여불위는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였다.  두 가지 사건이 진시황에게는 강력한 군주로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커다란 인생의 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진시황은 쉴 틈 없이 하룻동안 업무에 매진할 정도로 진나라 국정의 기틀을 잡기 위해서 노력을 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진시황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른 것이 '분서갱유' , '만리장성과 아방궁을 세우게 한 장본인' , ' 불로초를 찾으려고 했던 왕 ' 으로만 알려져 있다.  학자들의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해서 유학서를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시켰으며 만리장성과 아방궁을 세우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였고 아방궁은 향락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지금 진시황에게 남아있는 것은 난폭하고 절대권력을 추구한 군주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진시황이 절대권력의 군주로 변하게 만들 수 있었던 원인에는 황제가 되기 전 태자 시절 때 겪은 사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여불위의 계획에서 비롯된 환관 노애와 어머니인 태후와의 내연 관계는 황제가 되려는 진시황에게는 절대로 잊혀질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토록 방술사의 말에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로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진시황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권력이 무너질지 모르다는 극도의 불안감은 궁정에 비밀통로로 만들 정도로 철저한 비밀주의적 생활을 하였고 자신에게 충언하는 아들 부소를 의심하고 스스로 자결하도록 명할 정도로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신하들의 간언만 듣고 여불위 다음으로 자신의 곁에 둔 이사를 처형시켰다.  무엇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하루 국정 업무에 열심히 했던 진시황은 주위 신하들로부터 ' 권력욕에 지니치다 ' 라고 할 정도로 거꾸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갈면 갈수록 진시황에게는 주위에 자신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없고 고독한 권력은 이어져만 갔다.   

 

   
 

나는 최초의 황제다. 나는 이 땅에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 왔다.  나는 법을 세워 힘센 자들의 횡포를 없앴다.  나는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내가 이 백성을 위해 이렇게나 많은 일을 했는데 왜 나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내가 아니라 어디에 이 백성은 마음을 준단 말인가?  

 - 김태권 <한나라 이야기 1> pp 210~211 -

 
   

  

그의 고독한 읊조림을 파헤쳐 보면, 진시황은 꽤나 복잡한 관계에 얽혀 있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미칠 듯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인간 자체로서 할 수밖에 없는 고뇌가 아니라 ‘ 한 나라의 황제이기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고뇌’, 그 중심에 강력한 군주인줄만 알았던 진시황은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할 사람 없이 피바람이 부는 권력 다툼의 장에서 너무나 외롭게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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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하나 2011-07-3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반가와요 ㅇㅅㅇ
앞으로 알라딘 블로그에서 자주 뵈요 ㅋㅋ

cyrus 2011-08-01 22:23   좋아요 0 | URL
ㅎㅎ 카페에서도 자주 뵈요 ^^

아이리시스 2011-07-3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시루스님, 이 많은 리뷰 페이퍼를 언제 다 읽으라고... 더워 죽겠어요. 그리고 토요일이예요. 멋진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1-08-01 22:2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알라딘에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을 때 제일 더워요.
그래서 항상 제 앞에는 시원한 것이 있어야해요. 지금도 시원한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답글을 달고 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7-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조도 자기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었음을 평생 열등감으로 생각했다지 않습니까...김두한의 어머니도 김좌진의 스쳐지나가는 여인이었을 뿐...여하튼 여러 여자에게서 자식을 보면 그 후손들이 골치아파집니다.

cyrus 2011-08-01 22: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복잡한 출신 관계 때문에 인생 역시 복잡하게 꼬아버리는거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7-3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불쌍하죠, 진시황제.
두고두고 최고의 폭군이라는 소실에, 생전에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 했으니 말이예요.
과연 제가 진시황의 입장에 서서, 역사에 끌려 어쩔 수 없는 위치로 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저 저런 위치에는 가지 않도록 빌 뿐이예요.

요즘 문재인 이사장은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야하는 심정... 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답니다.

cyrus 2011-08-01 22:2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지도자라면 고독이라는 권력의 특성을 견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도 그렇고,,
역시 지도자의 길은 정말 쉽지도 않고 어려운 일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