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70922
≪철학하는 여자≫
내가 알라딘에 페이퍼를 포스팅했는데, cyrus 님이 댓글을 남겼다.
* 身邊雜記 170919 신문읽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9604827
cyrus 님의 댓글 ; * 장교 부인, 여성이 공관병 남성에게 권력 행사를 한 것이다. 최소한 권력에서 남녀 불균형은 완화된 현상으로 파악하다. (마립간님의 주장)
저는 이 주장에 대해선 다르게 봅니다. 여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동화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가부장제에 갇혀 살면서도 자신의 권위를 향상하고,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 가부장제의 관행(남편의 행동)을 모방하게 된 거죠. 이렇다 보니 가부장제는 유지되고, 이 아내는 ‘남성화된 부인’이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부장제 안에서 동화한 상황’, ‘남성화된 부인’이라는 어구다.
p192 여자는 더 도덕적이고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p192 리먼 브러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의 한 부서였더라면 세계 금융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더서나 여자들이 꼭대기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여자들이 뭔가 더 도덕적인 성별이 아닌가?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 위해 이 문장을 설명하면 반의법 문장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도덕적이지 않고 권력도 원한다.
p193 상대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고 해서 ... 그것이 도덕의 증거는 아니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캐롤 길리건 Carol Gilligan에 대한 언급이다. 남성 주의 도덕관에 대해 보살핌의 윤리라는 여성 중심 도덕관을 세워 심리학자 즉 과학자이지만, 페미니즘에서 자주 페미니스트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p195 보살핌의 윤리 care ehtics를 설파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도덕철학자 캐롤 길리건 Carol Gilligan의 대표작 ≪다른 목소리로 In a different voice≫ 역시 다르지 않다. 길리건은 (남성적) “정의 도덕”의 추상적-보편적 원칙 대신 - 여성의 도덕의식을 이미 오래도록 지배해 온 - 타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보살핌을 윤리적 결정의 기초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보살핌의 윤리는 전통적인 페미니즘과 달리 단순히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보살피는 주부, 엄마의 모범 기능과 전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 책의 주장은 여성은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음에도 여성을 도덕적으로, 또는 보살핌의 윤리로 포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남성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내 의견은 ; 남녀는 인간으로 동등하고 남녀로서 차이를 갖는다.
이 관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동등에 무게를 둔 자유주의 페미니즘 (기회의 동등)과 차이에 무게를 문화주의 페미니즘 (실질적 평등)의 대립의 재현이다.
문제의 논점으로 들어가 보자.
cyrus 님은 장군 부인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을 ‘가부장제의 동화 및 남성화된 여성’의 표현으로 갑질 (즉 사회적 폭력)은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말한다. 반면 레베카 라인하르트 ≪철학하는 여자≫에서는 이런 식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선 善하다는 사회적 생각이 여성의 굴레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 투쟁에서 밀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궁금증] 여성은 남성만큼 비도덕적이며 폭력적인가?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또 다른 논점은 ; 이 책의 주장을 긍정할 때, 자연주의 오류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남성에게 폭력적인 본성이 자연적이라고 해서 윤리적이지 않다. 여성의 모성 본능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남성과 같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본성의 폭력으로 돌아가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자연주의 오류이지 않을까?
여성이 모성 본능, 보살핌의 윤리를 사회적 환경에 의해 갖게 되는 것은 비윤리적인가?
* 身邊雜記 170922 신문읽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9611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