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6년이란 영화가 “드디어” 개봉되었다. 웹툰의 영화화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 영화만큼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포탈에 걸린 영화정보 밑에 주렁주렁 달린 평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공주마마 아버님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심어놓으신 “지역감정”은 징그럽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굳건히 이 나라를 차지하고 있나보다. "그때 다 쓸어버렸어야 이따위 영화는 안나오지." 같은 댓글은 충분히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2. 1년 가까이 몸을 담갔던 일터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사장이란 인간은 베트남 출장이 잦아지고 기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여전히 임금은 체불상태. 다행히 언급했던 “성추행”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며 재발은 없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일부러 도산 혹은 파산을 신청하고 해외 도주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받을 돈 받으면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되겠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은 한겨울을 어찌 보낼까. 가득이나 추워진 날씨에 난방을 전혀 돌리지 않아 손발이 꽁꽁 언다는데. 한여름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어놨던 사장실은 아마 후끈한 히터바람이 팽팽 돌아가겠지. 도덕적 해이. 조금 유식하게 말하면 모럴해저드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 번 개인파산한 사람이 또 다시 중복으로 파산이 가능할까?)

 

 

 

3. 얼마 전 건축주를 만나러 이동 중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의 소장님과 차안에서 수다를 떨었다. 난 주로 듣고 소장님은 말하는 분위기. 소장님은 현재의 상태가 심히 걱정스럽다고 하신다. 극심해지는 빈부격차. 부도덕을 권장하는 사회. 더불어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이 이를 장려하고 있다는 개탄스런 말씀을 열거하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 지긋하신 소장님은 속칭 “수구”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나온 투표이야기에서 한마디 명언을 남기셨다. “제 아빠한테 나쁜 것만 배웠다면 볼 짱 다 봤지.”

 

 

 

 

 

 

 

 

4.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다. 무슨 철학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악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나 떳떳하게 살아가는 건 아닌 건가라는 의문이 종종 든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환경을 유지시키며 보수시키는 것 또한 인간의 도리라고 보고 싶은데……. 요즘의 주위환경은 무섭다 못해 끔찍한 지경이다. 엽기를 넘어서 괴기의 세상이 되가는 것 같다.

 

흉흉한 사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요즘. 악인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잣대의 기준이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여러 가지로 발생할지도 모르겠지만, 통속적인 악이 더 이상 악이 되지 않는 사회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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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2-12-1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빠한테 나쁜 것만 배웠다면 볼 짱 다 봤지.”
...

Mephistopheles 2012-12-11 15:53   좋아요 0 | URL
그게 참 그렇습니다. 선대의 잘못을 맹목적으로 후대에 적용시키는 것도 뭔가 불합리하긴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모든 혜택을 두루 받은 사람의 배경을 또 무시하기도 힘들잖아요.

개인주의 2012-12-11 18:04   좋아요 0 | URL
뭉뚱그려 표현한 말이라 헉 했어요..;;
보고 배운 게 어디가겠냐 ..란 말이 생각나는..

moonnight 2012-12-1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크든 작든, 세상엔 악인이 너무 많네요. 저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울적;

Mephistopheles 2012-12-11 15:54   좋아요 0 | URL
많아도 너~~무~~많긴 해요. 잠재적 악인도 많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남에게 상당히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아예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맥거핀 2012-12-1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사이트 영화평을 얘기하시는 거라면, 저도 가끔 갑니다만, 거기를 보면서 이 사람들이 유독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게 사회의 당연한 반영일까 그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뭐 꼭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두요.

Mephistopheles 2012-12-13 09:21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것이 다양한 생각과 평가가 당연한 것인데. 나와 생각이 혹은 평가가 다르다고 배척의 정도를 넘어서 대놓고 무섭게 비난하더군요. 얇아도 너무 얇은 단편적인 생각이 세상의 진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겠죠.

saint236 2012-12-1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기는 건요. 젊은 애들 중에 안보의 이유를 들어서 문재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도대체 그네언니가 군대를 가봤습니까? 아니면 새누리 당에서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밟은 사람들이 많기나 합니까? 왜 문재인은 국방에 문제가 있다는 프레임을 설치하는 것일까요?

Mephistopheles 2012-12-13 09:22   좋아요 0 | URL
그거야. 이제 밑천이 떨어졌으니까요. 총알 떨어졌으니 길거리에 아무 짱돌이나 집어 냅다 던져야겠죠. 종북, 빨갱이, 안보..그들이 언제나 들고 나오는 레파토리라서 이젠 참신하지도 않고 신경쓰이지도 않아요.
 
심야식당 10 심야식당 1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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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먹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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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12-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10권 나왔네요. 주문해야겠어요. 읽다보면 침이 꼴깍꼴깍 ^^

Mephistopheles 2012-12-11 15:54   좋아요 0 | URL
하지만 이번 10권은 정말 "소소"한 에피소드만 실렸답니다. 그런데 참 뜸금없는게 이게 또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사실...노래하는 마스타라...상상만해도...ㅋㅋ
 

난 눈이 싫다. 늙기도 늙었지만 비와 달리 눈이 내린 후 지저분한 마무리를 싫어한다.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가 목욕탕 이태리 타월 같은 느낌이라면 펑펑 내리는 눈은 기름때 덕지덕지 낀 냄비를 설거지 한 후 손에 남아있는 불쾌한 미끈거림과 비슷하다. 더불어 눈에 대한 트라우마도 제법 있다 보니 요즘처럼 하루 멀다하고 펑펑 내리는 눈은 전혀 반갑지 않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트라우마 #1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유난을 떨었었다. 통지서를 한 손에 들고 룰루랄라 집을 나서서 저 밑에 있는 초등학교로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을 때. 난 떴다. 마이클 조단이 부럽지 않아요. 아 빌리브 아 캔 플라이 해요. 하는 느낌이 대략 4~5초간 지속되더니 무지막지한 충격음과 더불어 눈 덮인 내리막길에 사정없이 파워 밤이 작렬되었다. (주) 파워밤-프로레슬링 기술로 상대방을 들어 링에 매다 꽂는 기술. 충격도 충격이지만 비주얼과 효과음이 기가 막혀 파워풀한 기술로 통함)

 

30여초 어버버 벙어리 삼룡이 모습으로 말도 못하고 얼음판에 자빠져 있었고 상태를 지켜보던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어디 크게 다친 건 없었으나 사람이 의식을 놓친다. 란 의미를 몸소 체험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트라우마 #2

눈 온 다음날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나 내리막길에서 만화 속 이니셜 D의 장면을 연출하며 그대로 앞차를 추돌. 다행히(?)바른 생활 부부를 만나 별 문제없이 보험처리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눈 깔린 날 도로상황은 마복림 할머니의 신당동 떡볶이의 비결만큼이나 며느리도 모를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오는 날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는 사실과 이건 미끄러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전복까지 갈 수 있는 상황. 더불어 고속도로라는 상황에서 어중간한 부상이 아닌 사망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 무슨 무슨 재난영화처럼 눈 덮인 산꼭대기 고속도로에 무릎 밑까지 내린 눈에 차가 파묻혀 4시간을 넘게 갇혀 있었던 이야기. 아주 잠깐 베어 그릴스는 이 눈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환경에서 뭘 잡아먹었더라?를 생각했더랬다. (눈을 퍼 먹는 건 기억나는데 나머진 도통...)

 

이제 나도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정강이와 팔뚝의 상처를 보여주며 손자에게 들려 줄 “무용담” 정도는 하나 생겼다고 애써 해석하고 싶었단 기간.

 

펼친 부분 접기 ▲

 

 

그러므로 난 정말 눈이 싫다..우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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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2-12-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밤.. 챙피한데 벌떡 일어 날 수도 없는 데미지.. 크..

Mephistopheles 2012-12-10 13:35   좋아요 0 | URL
파일 드라이버가 아닌게 천만다행이랍니다.

moonnight 2012-12-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ㅠ_ㅠ;;;;; 눈 싫어하실 만 하네요. ㅠ_ㅠ;;;;;;;;;;;;;;;;;;
전 그다지 트라우마가 없으면서도 눈은 어렸을 적부터 싫어했어요. 어릴 때부터 이미 동심이나 낭만 같은 거랑은 거리가 먼 인간이었나봐요. 운전하기 힘들고. 투덜투덜;

Mephistopheles 2012-12-10 13:36   좋아요 0 | URL
음.....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애늙은이"혹은 영감(남자의 경우)의 범주에 속하셨단 말이었군요...(저도 그런 류에 속하는 편입니다만..)
 

꿈을 꿨다.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다. 장르는 재난 영화.

 

꿈속의 배경은 시대가 불분명하지만 주변 건물이나 사람들 옷을 보면 현재일 것이다. 단지 “석유”가 고갈 돼 버렸다는 설정이 주제라면 주제일 것이다. 모든 재난 영화에서 그렇듯 꿈 속 등장인물들은 어쩔 줄 몰라 난리들이다. 도시는 통제 불능에 빠지고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는다. 라면 한 개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 그 와중에 난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질서”를 부르짖다 누군가에게 얻어맞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네.) 헬 게이트가 열린 세상이 아마 그런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난 도시를 떠나 피난을 간다. 재미있는 건 전철을 타는데 역에서 딱 다섯 정거장 밖에 못가는 상황이다.(기름이 없어서.) 제비뽑기에 당첨 되어 운 좋게 전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이번엔 비행기를 탄다.(지구를 떠날 기세.) 역시 비행기도 일정 거리밖에 날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비행기 티켓을 건네주며 자기 대신 타라고 한다.(이런 류의 영화에 나오는 살신성인 캐릭터 등장) 비행기는 곧 이륙하고 지상의 풍경은 살벌하다. 사방이 불바다에 시체가 널려 있다. 그 시체 위로 사람들은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 한숨을 돌리고 비행기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는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리얼로 드실래요? 김치찌개로 드실래요?”

 

어라.비행기에서 웬 김치찌개..??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또 다시 스튜어디스가 고함을 친다.

 

“늦었어..아침밥 시리얼로 먹을 거야? 김치찌개로 먹을꺼냐고..!!!”

 

둔부를 사정없이 짓누르는 고통이 엄습한다. 눈을 뜨니 마님이 서슬 퍼렇게 날 밟고 있다. 부랴부랴 아침밥 먹고 주니어 학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데…….자동차 기름등에 불이 켜졌다.

 

예지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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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11-3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예지몽 맞네요.

Mephistopheles 2012-12-03 18:03   좋아요 0 | URL
예 기름을 넣긴 넣었는데...기름값은 여전히 1900원대더군요.

다락방 2012-11-30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꿈에 레스토랑? 식당? 뭐 여튼 그런데 가서 친구랑 둘이 밥을 시켜먹었는데요 아저씨 한명이 합석을 하자는거에요. 그래서 네, 라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저한테 군인이냐고 묻는거에요. 저 치마 입고 있는데. -_- 그래서 아니라고 답했는데 좀 있다가 또 아저씨 한 명이 와서 자리가 없으니 합석해도 되겠냐고 묻는거에요. 그래서 네, 라고 답했는데 그 아저씨가 자신의 식사를 시킨후에 또 저한테 군대에서 일하는가보다고, 군인포스라고 하는거에요. 아놔....ㅠㅠ 그래서 아니에요, 라고 했더니 아 목소리 들으니까 여자군요! 라고 했........orz

이것도 예지몽일까요? 제가.. 남자가 될까요? ㅠㅠ

Mephistopheles 2012-12-03 18:04   좋아요 0 | URL
툼레이더3을 찍을 준비가 되신 겁니다.

깐따삐야 2012-11-3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꿈이 잘 맞는 편이라 가끔 하루를 시작하는 게 두려울 때가 있는데 메피님의 예지몽은 너무 귀여우시다.^^

Mephistopheles 2012-12-03 18:04   좋아요 0 | URL
사실..무지 끔찍한 악몽도 아주 가끔 꾸는데...그게 예지몽이 된다면..진짜 세상은 헬게이트가 열리는 걸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1-30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이 스튜어디스와 비슷한 외모라는 이야기죠?

Mephistopheles 2012-12-03 18:04   좋아요 0 | URL
음....설.마.요.
 

 

어느 분께 주워들은 이야기로 객지에 나가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땐 비빔밥을 선택하라는 훈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음식만큼은 전국 비슷한 모양새와 대동소이한 평균적인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비빔밥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 동료와 함께 어느 건물의 지하상가에 들어 한 끼 해결한 적이 있었다. 식당 제목이 아마 “무슨무슨 비빔밥”이던 기억이 난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땅값 비싼 강남 그것도 오피스 거리가 운집한 동네 식당이라고 하기엔 인테리어에 걸맞지 않게 내오는 음식이 비빔밥이라니. 그냥 김밥, 라면 쫄면을 팔면 딱 어울리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었다. 더불어 한참 점심시간에 손님이 정말 뜨문뜨문 민망할 정도로 앉아 있는 모습에서 애당초 기대를 접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내 앞에 내온 비빔밥은 기대 이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단 허연 플라스틱 그릇이 아닌 제법 뜨끈하게 덥혀 논 누르스름한 방짜 유기에 음식이 담겨져 나온다. 밥 위에 올려 진 고명은 때깔도 곱다. 각종 나물들이 각자의 색깔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비비기 전 살짝 집어 먹었던 고명에선 적당한 풋내와 더불어 식감 자체가 제대로 살아있었다. 모든 것이 기대치 이상이었으나 그 기대를 넘어서는 것은 고추장이었다. 밥 위에 올려져 나와 있지 않고 다른 방짜유기 종지에 담겨져 나온 고추장은 일반 고추장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살짝 찍어 먹어 보니 참 오묘하다. 너무 맵지도 짜지도 달지도 않으면서도 식욕을 확 끌어 당겼다. 고추장을 적당량 섞어 열심히 비벼 정신없이 “퍼”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었지만, 음식 맛이 좋다 보니 섭취가 아닌 흡입의 수준이었다.

 

몇 차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언제나 그 수준의 맛을 유지해주는 실력을 가졌었기에 입맛 없을 때 종종 찾아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그 동네에서 사회생활을 마감했을 때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만 마주친다면 그다지 불만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비빔밥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시금치나물이 분명 상했음에도 안상했다 우기는 밥집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님이 말씀하졌듯 비빔밥은 고만고만 평균 이상은 해줬던 메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비빔밥이 어쩌다 하루아침에 고상과 우아의 상징이 돼 버린 것 같다 사실 말장난의 극치 같기도 하지만 졸지에 구국의 결단, 민족 단결의 상징이 돼 버렸으니 말이다.

 

“다른 재료들이 고추장과 참기름이 함께 섞여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며 융합해서 하나가 될 때 시너지효과, 새로운 발전. 도약.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는 비빔밥”

 

아 이정도면 튀르푸, 캐비어, 푸아그라가 부럽지 않다. 거기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의 식재료에서 저런 아름답고 거룩한 뜻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평범한 비빔밥도 저리 변신할 수 있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수많은 음식들에게 찬란한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

 

1)부대찌게
-서양의 문물인 햄, 소시지와 일본문화가 원류인 라면과 함께 한국 고유의 양념이 만나 글로벌한 시대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한국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내포하고 있는 전 세계화된 전대미문의 부대찌개.

 

2)뼈다귀감자탕
-딱딱한 돼지 등뼈 속에 파묻힌 고단백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발췌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써 정밀과학과 반도체 산업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위상을 상징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하며 트레지스터한 뼈다귀 감자탕.

 

3)수제비
-밀가루와 물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믹싱 되어 찰진 글루틴의 효과를 100% 뽑아낸 음식으로 이는 우리 민족의 타 문물의 흡수와 더불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문화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을 표현해주는 음식.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뱀꼬리 :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정말 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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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1-2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비빔밥.
어제 모 토론에서 주인공에게 잘 하는 음식은 하고 묻자 비빔밥이라고 대답했던,
페이퍼와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 떠오르네요. 그만큼 비빔밥은 한국 대표 음식이겠죠.
사실 저는 밑반찬 해치우고 싶으면, 다 넣고 비비기 시작합니다. 음....
이렇게 하면 비빔밥이긴 한데, 거지 동냥 그릇과 비슷한 내용물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하시던 일로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살짝 걱정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예전 하던 업종의 월급이 센 편이지만
저는 그래도 다른 직업의 월급이 아무리 적어도 그것의 절반 수준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충격의 연속입니다. ㅋ

Mephistopheles 2012-11-28 16:42   좋아요 0 | URL
그 주인공되시는 분이......비빔밥을 저기 저 빨간글씨로 평가하셨습니다. 어찌나 오글거리는지...

월급의 격차는 대한민국에서 제법 많이 납니다. 제가 다른 일을 했을 때 그 노동강도에 비해 받는 월급은 처참하더군요. 그나마도 인권비 많이 나간다고 제때 안주고 밀리기도 하고요.(이 나라는 선진국 될라면 아직 멀었어요.)

감은빛 2012-11-2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꽝 찍고 갑니다! ^^

Mephistopheles 2012-11-28 16: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종종 들려주세요.^^

야클 2012-11-2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어탕'도 풀어서 해석 바랍니다.

Mephistopheles 2012-11-28 17:48   좋아요 0 | URL
외모가 먹음직스럽지 않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믹스시켜 뼈까지 분쇄하여 탕국으로 끓인 이 음식은 자랑스럽지 않은 과거를 한 순간에 이미지 메이킹시키는 특정 인물들에게 비유되는 음식. (점심은 추어탕? 드셨나요?)

야클 2012-11-28 18:03   좋아요 0 | URL
오늘 저녁메뉴가 될듯 합니다. 남원추어탕 ^^

Mephistopheles 2012-11-28 18:37   좋아요 0 | URL
야근이시군요.

antitheme 2012-11-2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맛있는 비빔밥집이 어딘지 알려주세요. 혹여 강남 가면 한번 가보고 싶군요.^^

Mephistopheles 2012-11-28 18:37   좋아요 0 | URL
선릉역 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원타워 지하였으니까요.

루쉰P 2012-11-2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전 부대찌개의 원류인 경기 북부 O시에 살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 지인들 부대찌개 대접하려고 하는데 ㅋ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음식이라 소개하면 딱이겠어요.

아 완전 감사합니다. ㅋㅋ

Mephistopheles 2012-11-29 20:51   좋아요 0 | URL
설마 진짜로 그리 소개하실라고요?? ㅋㅋ 그냥 존슨탕이라고 소개하세요. 꿀꿀이 죽이 좀 럭셔리하게 발전한 음식인데 태생이 사실 비극적인 음식이기도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