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께 주워들은 이야기로 객지에 나가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땐 비빔밥을 선택하라는 훈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음식만큼은 전국 비슷한 모양새와 대동소이한 평균적인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비빔밥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 동료와 함께 어느 건물의 지하상가에 들어 한 끼 해결한 적이 있었다. 식당 제목이 아마 “무슨무슨 비빔밥”이던 기억이 난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땅값 비싼 강남 그것도 오피스 거리가 운집한 동네 식당이라고 하기엔 인테리어에 걸맞지 않게 내오는 음식이 비빔밥이라니. 그냥 김밥, 라면 쫄면을 팔면 딱 어울리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었다. 더불어 한참 점심시간에 손님이 정말 뜨문뜨문 민망할 정도로 앉아 있는 모습에서 애당초 기대를 접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내 앞에 내온 비빔밥은 기대 이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단 허연 플라스틱 그릇이 아닌 제법 뜨끈하게 덥혀 논 누르스름한 방짜 유기에 음식이 담겨져 나온다. 밥 위에 올려 진 고명은 때깔도 곱다. 각종 나물들이 각자의 색깔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비비기 전 살짝 집어 먹었던 고명에선 적당한 풋내와 더불어 식감 자체가 제대로 살아있었다. 모든 것이 기대치 이상이었으나 그 기대를 넘어서는 것은 고추장이었다. 밥 위에 올려져 나와 있지 않고 다른 방짜유기 종지에 담겨져 나온 고추장은 일반 고추장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살짝 찍어 먹어 보니 참 오묘하다. 너무 맵지도 짜지도 달지도 않으면서도 식욕을 확 끌어 당겼다. 고추장을 적당량 섞어 열심히 비벼 정신없이 “퍼”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었지만, 음식 맛이 좋다 보니 섭취가 아닌 흡입의 수준이었다.
몇 차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언제나 그 수준의 맛을 유지해주는 실력을 가졌었기에 입맛 없을 때 종종 찾아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그 동네에서 사회생활을 마감했을 때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만 마주친다면 그다지 불만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비빔밥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시금치나물이 분명 상했음에도 안상했다 우기는 밥집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님이 말씀하졌듯 비빔밥은 고만고만 평균 이상은 해줬던 메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비빔밥이 어쩌다 하루아침에 고상과 우아의 상징이 돼 버린 것 같다 사실 말장난의 극치 같기도 하지만 졸지에 구국의 결단, 민족 단결의 상징이 돼 버렸으니 말이다.
“다른 재료들이 고추장과 참기름이 함께 섞여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며 융합해서 하나가 될 때 시너지효과, 새로운 발전. 도약.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는 비빔밥”
아 이정도면 튀르푸, 캐비어, 푸아그라가 부럽지 않다. 거기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의 식재료에서 저런 아름답고 거룩한 뜻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평범한 비빔밥도 저리 변신할 수 있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수많은 음식들에게 찬란한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
1)부대찌게
-서양의 문물인 햄, 소시지와 일본문화가 원류인 라면과 함께 한국 고유의 양념이 만나 글로벌한 시대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한국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내포하고 있는 전 세계화된 전대미문의 부대찌개.
2)뼈다귀감자탕
-딱딱한 돼지 등뼈 속에 파묻힌 고단백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발췌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써 정밀과학과 반도체 산업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위상을 상징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하며 트레지스터한 뼈다귀 감자탕.
3)수제비
-밀가루와 물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믹싱 되어 찰진 글루틴의 효과를 100% 뽑아낸 음식으로 이는 우리 민족의 타 문물의 흡수와 더불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문화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을 표현해주는 음식.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뱀꼬리 :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정말 화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