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자리 좀 양보하지!!!
얼마 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들렸던 제법 큰 목소리의 내용은 위와 같았다. 지하철을 타보면 알겠지만 7명에서 8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와 객차의 끝부분에 3인이 앉아 갈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 객차 안에는 3인 좌석이 4셋트. 다시 말해 12명이 3명씩 조를 이뤄 앉아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3인석의 경우 노약자 석으로 지정되어 주로 거동이 불편한 분이나 노인 혹은 임신부들을 위해 제공된다.
법적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 주변엔 이 자리가 그런 분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임을 강조하는 문구가 제법 많이 붙어있다. 학습의 효과인지 젊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앉았다 치더라도 대상자가 탑승이라도 하면 슬쩍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하지만 저 고성이 흘러나왔던 지하철 그 시간대엔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었나 보다. 하긴 밤 11시가 넘어 다들 피곤한 몸을 혹은 술에 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귀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객차 안이 고요하여 저 목소리는 더욱 도드라지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지목당한 그 아가씨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잠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황급히 자릴 양보했고 그 자리는 당연히 일갈을 날릴 백발의 꽤나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할아버지가 착석하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객차는 다시 예전의 평온함을 되 찾았다.
불과 5미터 거리를 두고 있는 위치상 그 상황을 끝까지 지켜본 나로써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가 않았다. 사실 그 3인석에 원래 앉아있던 사람의 구성은 출입문 쪽 장년의 아주머니, 중간에 면박을 받은 그 아가씨, 그리고 가장 구석진 자리엔 머리를 짧게 자른 꽤나 건장하지만 인상이나 복장이 제법 범상치 않은 젋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공통점은 모두 눈을 감고 졸거나 혹은 졸고 있는 척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그 자리에서 노약자의 범위에 크게 벗어난 사람은 덩치 있고 머리 짧은 젊은 남자로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시 후 탑승한 백발의 고지식한 노인은 굳이 가운데 앉아 있던 연약해 보이는 아가씨를 지목하여 일으켜 세웠을까.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 좌석의 3분의 1을 훨씬 넘어서는 범위를 차지한 그 청년의 옆에서 한일 자로 입을 굳게 다물고 눈에 힘을 주고 어깨를 쫙 펼치고 착석한 그 할아버지의 보습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연장자의 모습을 갖추기 힘들어 보였다.
아마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와 기준이 틀린 사람이 많나 보다. 더불어 지하철 혹은 버스에 붙어 있는 약자의 기준이 과연 어떤 기준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