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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박스 - [초특가판]
제시카 랭 출연 / 미디어체인 / 2004년 6월
평점 :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들을 접할 때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의 영화가 정치적인 성향이 짙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감상후에 오는 묵직한 느낌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오랫동안 무엇가가 걸린 듯한 느낌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페이퍼에 밝혔듯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다시 만나게 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는 역시나 다보고 나서 명치쪽에 무엇인가가 묵직하게 걸려있는 느낌을 오랜
시간 주고 있는 영화였다.
헝거리 이주민 가족의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이 헝거리 정부의 전범색출 과정에서 오래전
피해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준 가해자의 입장으로써 부각된 아버지와 그를 변호하
는 변호사 딸이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외면했던 진실에 사정없이 부대끼게 되는 시리어스
그 자체인 영화였다.

법정이 무대인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재판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와의
충돌로 야기대는 비열하고 추잡한 법정싸움의 모습은 집에서는 다정한 어머니이며, 사랑스런
딸의 모습이 아닌 지저분한 변호사의 모습으로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황 증거상 자신의 아버지는 시민권 박탈과 헝거리 본국 송환과 응징의 대상인 그 잔인한
학살자라는 확신이 점점 자리잡으나 확고한 자신의 아버지의 부인과 증인들의 증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기력하게 만듬으로써 혹시라도 있을 의혹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느낌을
주기 시작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환멸과 저질이라는 단어가 뭉글뭉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후의 증인을 위해 헝거리로 날라간 후, 거부할 수 없는 진실과 오래전 자신의 아버지
를 협박했다 의문사를 당한 어떤 남자의 유품을 전당포에서 받은 후, 그속에 들어있는 확고한
진실 속에서 절규하는 딸의 모습에서 불과 몇분전에 느꼈던 환멸과는 반대되는 동정이라는
감정이 생기기도 하였다.
자신의 아들에게 유태인 학살은 조작의 역사일 뿐이라고 세뇌를 일삼고, 헝거리 가무단의 공연장
에 난입해 쓰레기를 투척하는 열혈반공주의자인 자신의 아버지의 가면을 벗긴 후, 인정을 하지
않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올가미를 씌우는 딸의 결심에서 의당 느껴야 할
권선징악적인 모습을 결코 느낄 수 없었다.

극 초반부 이혼한 남편이 재판을 준비하는 주인공에게 던지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정의가 더 앞서야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땅의 현실과 너무나도 정확히게 맞아떨어지는 16년전 영화가 아니였나
싶다. 영화를 감상한지 48시간이 지났건만, 내 가슴은 아직까지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뱀꼬리 : 딸의 역활을 맡은 제시카 랭의 연기는 완벽 그 자체가 아니였나 싶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모습, 진실에 접근하는 모습,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마주친 후 고뇌하는
모습...120분이 넘는 동안 끊임없이 그녀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다시 만난 영화였지만...역시 최고의 영화가 아니였나 싶다.